소설리스트

멘토링-62화 (6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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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인지와 인정 사이

* 오늘은 피드백이 있습니다. 후기를 읽어주세요.

톰 리들은 O.W.L.(Ordinary Wizarding Levels, 표준 마법사 수준)시험을 치르게 될 5학년 학생이었다. 그래서 일까. 요즘 그는 통 기숙사에 처박혀 있기 일쑤였다. 다른 학생들은 그가 미리미리 시험공부를 하는 모양이라고 했지만 리브는 그를 알았다. 겨우 이런 시험에—그의 기준에서— 정성을 쏟을 인물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수준은 웬만한 성인 마법사를 뛰어넘고도 남았다. 대체 기숙사에 처박혀서 무얼하고 있는거지?

“리브, 어디가?”

“슬리데린 기숙사. 리들 선배한테 책만 받아 올거야.”

시간을 보니 리들과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약속한 이는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니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왜 또 슬리데린 기숙사 앞으로 오라는거야. 예전에 데려갈 때 궁금하다고 곧이곧대로 따라가는게 아니었는데……. 그 때문에 슬리데린 기숙사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핑계는 쓸 수도 없었다. 뭐, O.W.L.학년이니 내가 이해를 해야…… 가만, 톰 리들이 겨우 이런 시험에 기숙사에 처박혀 공부를 할 인간이 아닌데? 뭘 하느라 그렇게 바쁜거지? 그렇게 리브가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이 소리는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이 거짓말쟁이 계집애야. 말이 되는 소릴 하고 다녔어야지.”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해. 그러니까 입을 놀리기 전에 생각을 한 번 더 했어야지.”

“기숙사 암호는 너의 리들 선배에게 가서 물어보렴. 키스까지 한 사이라며?”

이어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슬리데린 복도로 진입한 리브는 여학생 여러 명이 한 여학생을 몰아세우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여학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로 흠뻑 젖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물벼락을 맞은 모양이었다. 리브는 작게 혀를 찼다. 거기다가 눈가가 붉은 것을 보니 한참을 울었던 모양인데 그 애처로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여학생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리브는 저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저 계집애들은 톰 리들 팬클럽이고. 다시 또 울듯한 모습을 보이는 저 여학생은…… 셜리 머틀(Shirley Myrtle)이었다.

*

셜리 머틀(Shirley Myrtle). 슬리데린 소속의 4학년 생으로 리브의 동급생이기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로 그다지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특징이 있다면 히스테릭하고 짜증스러운 말투를 자주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눈물이 많아서 툭하면 울기 일쑤였다. 별명은 ‘모우닝(Moaning) 머틀’이었는데 리브는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딱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볼 때마다 그녀는 특유의 짜증스러운 말투로 친구들에게 사소한 일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이다.(‘moan’에는 ‘투덜거리다, 불평하다,’라는 뜻이 있다.) 또한 슬리데린 소속의 어떤 남학생과 툭하면 싸웠는데 그러다가 분에 못 이겨서 울음을 터뜨리기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그 남학생은 낄낄거리며 지겹도록 그녀를 놀려먹곤 했다. 아무래도 그걸 몹시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 남학생 이름이 올리브 혼비(Olive Hornby)였던가. 흠, 나중에 후회할텐데.

원작에 의하면 모우닝 머틀은 비밀의 방 사건으로 톰 리들에게 희생되는 인물이었다. 이제는 너무 희미한 전생의 기억 속에서 가만히 원작을 더듬어 보지만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톰 리들이 학창시절에 비밀의 방을 열었고 머틀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 뿐. 그래서 리브는 그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럼 비밀의 방은 언제 열리는 것일까. 지금 톰 리들은 비밀의 방을 찾았을까? 그는 신입생 시절부터 꾸준하게 비밀의 방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찾았다면 그의 성격 상 곧바로 열어보았을 것이다. 그래, 아직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리브는 그 비밀의 방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여는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2층 여자 화장실, 파셀통그, 바실리스크.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게 헛된 소망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톰 리들과 스캔들에 휩싸인 주인공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 절대로 톰 리들과 접점이 없을 것 같은 그 여학생이 톰 리들과 이성적으로 얽히게 된 경위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지난 학기에 톰 리들이 호그와트에서 예쁘기로 유명한 여학생들과 공개적으로 키스를 하는 등 염문설을 흩뿌리고 다닐 때, 그 중 하나였던 것이다. 물론 리들과 머틀이 키스를 한 곳은 구석진 복도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연히 목격하게 된 리브와 당사자들뿐이었다. 그때 호기롭게 그 톰 리들을 유혹하고 직접 입술을 가져다 댔지. 리브는 그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 누가 셜리 머틀이 톰 리들과 키스했다는 것을 믿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녀의 외모를 떠올리면 톰 리들과의 조합은 우스갯소리도 되지 못할 정도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 리들과 이성적으로 얽혔던 여학생들은 전부 한 미모씩 하기로 유명한 미녀들이었다. 하지만 셜리 머틀은 미녀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사실 리브는 그때 머틀이 무슨 자신감으로 리들에게 고백하고, 거기다가 덮치기까지 한건지 그녀의 패기가 놀라웠다. 물론 그 결과는 처참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거기서 끝내야 했다. 호그와트의 왕자님이며 아이돌인 톰 리들과 키스를 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물러서야 했다. 물론 다가가도 리들이 호락호락하게 받아줄 인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톰 리들과 키스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마저 꿈을 꾼 모양이라고 자신에게 그 꿈을 팔지 않겠냐고 깔깔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왜 믿어주지 않냐며 히스테릭한 성격을 드러내며 정말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다. 물론 톰 리들 팬클럽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리브가 톰 리들의 멘티가 되었을 때 악랄하게 굴던 그들이 헛소리를 하는 머틀을 곱게 두겠는가.

이 스캔들에 대한 리들의 대응은 무미건조했다.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조합이었고 감히 톰 리들에게 직접 그게 사실이냐고 질문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혹 그런 용감한 이가 나타나도 리들은 머틀과의 스캔들에 대해 그저 곤란함과 어이없음의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당사자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리들의 주변인들만 질문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그들은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열변을 토하기 일쑤였다. 리들의 멘티인 죄로 리브도 몇 번 그런 질문을 받은 적 있었다. 하지만 리브는 다른 측근들과는 달리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저 곤란하다는 얼굴로 자신은 멘티일 뿐이니 리들 선배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리브가 알기로 리들은 여자와, 그것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모우닝 머틀과 이성적으로 얽힌 것을 무척이나 불쾌해했다. 그는 아브락사스나 오리온 같은 친밀한 지인들에 한해서 그 감정을 은근하게 드러내곤 했다. 리들은 교활했다. 그의 이런 조그마한 태도들이 쌓이고 쌓여서 머틀을 궁지로 몰고 있었다. 톰 리들 팬클럽이라는 훌륭한 촉매제와 당사자의 말없는 압박들로 머틀은 철저하게 고립되고 있었다. 리브는 이게 리들의 작품이라는 것에 그린고트 계좌를 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리브는 그 참혹한 왕따의 현장을 지금 이렇게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이곳은 슬리데린 구역이었고 지나가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초록빛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런 괴롭힘을 제지하는 법이 없다. 그녀는 슬리데린 내부에서 지독한 왕따를 당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톰 리들 팬클럽은 악명이 높았다. 근처의 남학생들은 여자들의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고 여학생들은 그 무서운 팬클럽과는 충돌을 피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키스는 무슨. 그냥 이 계집애가 거짓말을 하는거지. 너도 그걸 믿니?”

“근데 이 계집애가 계속 키스한게 맞다고 그러잖아! 주제를 알아야지.”

“라폴레랑 브랜스턴은 예쁘기라도 했지! 얘는 그냥 질질짜는 울보에 짜증만 부리는(moaning) 머틀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열이 받는지 머틀을 확 밀쳐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 불쌍한 소녀는 주저앉아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밀어버린 당사자는 얼굴을 가득 찡그리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딴게 리들의 열애설 상대라니! 당치도 않아서! 브릴리언트는 예쁘기라도 했어!”

“내가 다 자존심 상해! 리들이 이딴 계집애랑 키스를 했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리가!”

“그냥 이 미친 계집애의 망상일 뿐이지. 그런데 문제는 망상으로 끝내지 않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녔다는거야!”

리브는 그 말을 들으며 고운 얼굴에 딱하다는 표정을 띄웠다. 너희들의 왕자님인 톰 리들이 저 머틀이랑 키스한건 맞아……. 내가 봤거든. 하지만 문득 그 장면이 떠오르자 리브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소녀는 그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러고 보니 라폴레랑 브랜스턴을 비롯해서 그 열애설 났던 여학생들 전부 다 졸업했구나. 톰 리들은 설마 일부러 뒷일을 생각해서 그 당시에 7학년만 건드린건가? 그래서 남은게 쟤 하나고? 이건 그가 의도한 철두철미함일까.

“겨우 이런 거짓말에 이렇게 신경쓸 필요 없어. 정말 그런 사이면 리들이 얘를 감싸줬겠지.”

“아무 대응도 안하는 리들은 정말 대인배야. 나 같으면 가만 안 있어. 당장 이 요망한 입을……”

머틀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명이서 한 여학생을 해코지하고 있는데도 지나가는 슬리데린 학생들은 여전히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시끄러운지 얼굴 표정을 구길 뿐이었다. 심지어 반장배지를 달고 있는 고학년생도 모른 척 방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리브는 여학생들 중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여학생은 다른 여학생들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리브의 존재를 알리는 모양이었다. 그 중 가장 드세 보이는 여학생이 휙 고개를 돌리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브릴리언트. 와서 착한 척 말리기라도 할 생각이니?”

“타 기숙사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라면 그만 두는게 좋을걸!”

“넌 빠져!”

리브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난 아무 말도 안했는데 왜 저래. 이런걸 바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지들이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나 보지. 그러던 리브는 울고 있는 머틀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던 것 같아서 리브는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순간 또다시 리브의 머릿속에 리들의 키스 장면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리들 선배는 셜리 머틀과 키스를 했었지. 나는 그 장면을 봤고.

“브,브릴리언트!”

내내 울던 머틀이 눈물을 멈추고 리브를 부른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리브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의외의 상황에 벽안을 깜박였다.

“너는…… 알지?”

리브는 머틀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치 챘다. 머틀은 자신을 도와달라는 듯 리브를 간절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브릴리언트, 너는 봤잖아…! 내가 리들 선배랑-”

“이 미친 계집애가 무슨 소릴 하는거야!”

“브릴리언트… 네가… 말해줘! 저 애가 봤어. 저 애가 진실을 말해줄거야!”

팬클럽 여학생들은 분개하기 시작했다. 머틀은 리브가 그녀의 진실을 증명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항상 따스함을 담고 있는 리브의 푸르른 벽안이 순간 서늘하게 빛났다.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너랑 리들 선배랑 키스한게 맞다고 증언이라도 해주라는거야? 내가 왜 그래야하지? 리브의 마음속에 싫다는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뭐야, 브릴리언트 너 봤어? 이 계집애랑 정말 리들 선배랑 키스했단 말이야?”

리브가 자신과 리들이 키스하는 것을 봤노라 주장하는 머틀의 태도는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확신에 차있었다. 그녀의 계속되는 발언에 팬클럽 일원들이 일제히 리브에게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말 저 모우닝 머틀 말대로 브릴리언트가 목격자란 말이야? 말도 안 돼. 하지만 머틀 계집애가 저렇게 확신에 차 있잖아. 설마 진짜야? 그렇게 속닥이던 여학생들이 하나 둘 씩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모우닝 머틀 말이 사실이야? 브릴리언트, 당장 말 해!”

“브릴리언트, 아니지?”

“왜 말을 안 해!”

이제 팬클럽 일원들은 모우닝 머틀 괴롭히기를 잠깐 멈추고 리브에게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리브는 리들의 사생활에 관한 발언을 극히 삼가는 태도를 보여 왔다. 지금 이 여학생들의 상태를 보니 전처럼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말은 통하지도 않을 듯 했다. 자신에게 어서 사실대로 말을 하라 몰아세우고 있지 않은가.

“브릴리언트, 제발…! 너는 봤잖아…!”

“…….”

“나랑 리들 선배랑 키스하는거 넌 봤잖아…!”

머틀을 내려다보는 리브의 벽안이 차갑게 빛났다. 지금 머틀은 누가 봐도 불쌍해 보일 정도로 울고 있었지만 리브는 그녀의 속을 금방 꿰뚫어 보았다. 리브가 머틀의 편을 들어 정말로 둘이 키스하는 것을 보았노라 말한다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톰 리들의 멘티이며 그가 오라비를 자처할 만큼 아끼는 후배인 리브의 발언은 그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다른 주변인들 만큼이나. 또한 톰 리들 팬클럽이 잔뜩 흥분해 있는 지금, 리브가 사실을 얘기 하면 그녀들의 분노는 전부 목격자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머틀은 유유히 그 거짓말쟁이에 망상증에 걸린 미친 계집애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겠지. 그녀는 이를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리브에게로 중심이 옮겨가자 관심하나 없던 학생들이 슬금슬금 이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도 리브가 어떤 확답을 해줄지 궁금해진 것이다. 리브는 이제 자신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머틀에게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진실을 밝히고 싶었으면 진작에 나를 찾아와서 증언을 해달라 부탁을 했어야지. 그게 순서였다. 그런데 그 순서는 홀랑 까먹고 이런 괘씸한 짓을 해? 네가 쓰고 있는 그 오명을 전부 나에게 돌리려고? 주제 파악 못하고 입을 놀려서 분란을 자초하더니 나를 휘말리게 만들어? 누가 슬리데린 아니랄까봐…… 이 교활한 계집애.

지금까지 리브는 사실에 대한 증언도, 아니라는 부정도 하지 않았다. 줄곧 입을 다물어 왔다. 그건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머틀에 대한 일종의 배려이기도 했다. 사실 리브는 머틀이 먼저 리들을 덮쳤으며 그는 몹시 불쾌해했다고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말함으로써 머틀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둘이 키스를 한 것은 명백한 팩트지만 솔직히 그 자세한 사정이 세세하게 드러나면 머틀에게 더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리브는 둘의 스캔들에 대해서 묵비권을 행사해왔다. 또한 자신의 사실 발언은 리들의 분노를 살 수도 있었다. 리들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속사정이 어떻든 명백한 팩트인 머틀과 키스를 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리브는 줄곧 입을 다물어 왔다. 그런데…! 리브는 톰 리들 팬클럽과 또다시 얽혀서 갈등을 빚게 될 상황을 원치 않았다. 더 이상의 분란은 피하고 싶었다. 리브에게 대답을 촉구하는 팬클럽 일원들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스멀스멀 불쾌한 감정이 온몸을 감쌌다.

“그만해!”

리브의 입술에서 날카로운 하이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녀의 차가운 벽안이 여학생들을 하나씩 쏘아보았다. 흉흉한 모습을 보이던 팬클럽 일원들은 소녀의 싸늘한 모습에 기세를 수그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브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자 이제 그들은 움찔했다. 그녀들은 리브가 작년에 파킨슨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자신의 머리채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든 것이다. 순하고 착하기로 정평이 난 눈앞의 래번클로 소녀는 한 번 화가 나면 한 사람을 짓밟아 놓을 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거기다가 리브에게 해코지를 했다가 평소 소녀의 오라비를 자처하는 리들이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이 될 터.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철저한 슬리데린답게 그녀들은 주제파악을 잘했다.

“브릴리언트, 우리는 그저 궁금한 것뿐이야.”

“넌 리들이랑 친하잖아. 그러면 혹시 알까 하고…….”

“브릴리언트 네가 아는대로 말해주면 끝날 일이야.”

그 기 세고 서슬 퍼런 톰 리들 팬클럽은 고작 한 명의 소녀에게 살짝 쩔쩔매는 기색이었다. 그 모습은 어쩌면 우스워 보일정도였지만 구경꾼들은 그보다 리브가 어떤 말을 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고로 더 이상 묵비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됐지. 리브는 잠깐 머틀을 쏘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리들 선배가 머틀한테 키스를 했는지 그게 궁금해?”

리브의 말에 구경꾼들이 술렁이는 것을 멈췄고 팬클럽 일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알고 있겠지? 이걸로 확실하게 종결을 내자. 그렇게 쫑알거리던 여학생들은 어서 말하라는 듯 리브를 응시했다. 그리고 머틀 역시 리브를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간절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리브는 그런 머틀을 보며 입꼬리를 쓱 올렸다. 네가 착각한게 있다면 내가 네 편을 들어줄거란 거야. 조용히 있던 날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리브의 보석같은 벽안이 싸늘하게 빛을 발했다.

“내가 알기로 리들 선배는 머틀한테 키스한 적 없어.”

머틀 네가 키스했지. 리들 선배는 그냥 받아준거고. 리브는 교묘하게 진실을 숨겼다. 사실대로 전부 말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리브는 굳이 그렇게 팩트를 드러내서 리들의 분노를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팬클럽 여학생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비웃고 있었다. 구경꾼들도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머틀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거,거짓말 하지마! 어떻게 네가 그럴 수가 있어!”

머틀이 절망이 깃든 얼굴로 비명처럼 소리쳤다. 리브가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그렇게 원망스럽게 소녀를 응시한다. 그리고 붉으락푸르락 변해가는 얼굴로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 시도는 얼마 안 지나서 무산되었다. 한 여학생이 바닥을 지탱하는 손을 짓밟은 것이다. 그 아픔에 눈물을 주르륵 쏟으며 훌쩍거리는 머틀을 차갑게 응시하던 리브가 말했다.

“난 거짓말 한 적 없어. 내가 그럴 이유가 있겠니.”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차디찼다.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고운 얼굴에는 감정 하나 깃들어져 있지 않아서 마치 차가운 유리인형 같았다.

“그리고 머틀 너 되게 괘씸하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보였니? 사람 잘못 봤어.”

결국 한소리 하고 만 리브가 돌아서서 휭 가버리려는데 머틀이 빽 소리쳤다.

“브릴리언트 너 톰 리들을 좋아하는거지? 그러니까 나랑 그가 키스한게 못 마땅한거야!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거야!”

유리 인형같은 소녀의 얼굴에 순간 어떤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뒤돌아 서있기에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리브가 빙그르르 돌아서서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리들 선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혹 연애 감정을 말하는 거라면 헛다리 짚었어.”

“네가 고백이며 외출제안을 모조리 거절하는 이유는 톰 리들 때문이겠지!”

리브는 순간 지팡이를 뽑아 머틀에게 주문을 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리브는 간신히 참아냈다. 주변 학생들은 머틀의 외침에 귀가 솔깃해졌는지 속닥거리고 있었다. 자신과 톰 리들에 대한 이야기임이 뻔했다. 간신히 잠재워놓은 열애설을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헛소리 작작해. 내가 남학생들을 거절하는 이유가 톰 리들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거짓말을 할리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그리고 대체 그와 내가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서 남매같은 사이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해야겠니? 머틀, 너는 친오빠에게도 성적 욕망을 갖나봐?”

“브릴-”

“그리고 내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개인적인 신념 때문이야. 그걸 리들 선배 때문이라 넘겨짚으며 그를 곤란하게 하지 마. 지금도 그는 충분히 곤란한 상황이니까. 왜 그런지는 당사자인 네가 잘 알겠지.”

리브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더니 그들을 휭 지나쳐버렸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눈에 선했지만 리브는 무시해버렸다. 그 방관의 태도에 도리어 당황한 것은 톰 리들 팬클럽 여학생들이었다. 이제 리브가 이쯤하라는 식으로 소위 착한 척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팬클럽 일원들은 모우닝 머틀 괴롭히기를 재개했고 리브가 나타난 순간부터 은근 슬쩍 구경하던 학생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오늘 이 일은 삽시간에 전교에 퍼지리라.

“브릴리언트 얼굴 봤어? 화났나봐.”

“나 같아도 화나겠다. 모우닝 머틀 쟤가 거짓말을 한다는 둥 브릴리언트를 몰아 세웠잖아.”

“브릴리언트가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그렇지. 화나면 장난 없잖아. 연회장에서 파킨슨 머리채 잡은 사건 기억 안 나?”

여학생들은 착하기로 정평이 난 리브마저 옹호의 기색 없이 지나쳐버리자 더욱 더 신이 난 듯 했다. 마치 면죄부라도 되는 양 더욱 더 머틀을 악랄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머틀의 울음소리가 더욱더 서글퍼졌고 동정심이 살짝 올라왔으나 리브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 괘씸한 계집애. 날 건드려? 날 그런 식으로 휘말리게 하지만 않았어도… 정중하게 부탁이라도 했어도…. 그 순간 생각이 끊겼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리브에게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랬다면 너는 머틀의 편을 들어줬을까?

들어줬을 지도 모른다. 사실대로 말을 해서 저런 식의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거짓말 하지마. 넌 톰 리들에게 미움받기 싫잖아. 그의 분노가 너를 향하는 것은 견딜 수 없어 하잖아. 사실대로 말함으로써 톰 리들을 거스른다면 그와의 관계가 나락으로 치닫을지도 모르는데?

“교묘하게 진실을 숨기기는 했지만 내가 한 말에 문제는 없어. 먼저 키스한건 머틀이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브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머틀의 외침이 귓가에 맴돌았다.

[브릴리언트 너 톰 리들을 좋아하는거지? 그러니까 나랑 그가 키스한게 못마땅한거야!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거야!]

왜 그때 나는 흔들렸던 것일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부정한다. 톰 리들을 좋아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이 호그와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있다 해도 극소수일 뿐.

많은 이들이 그를 추종하거나 동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를 추종하지는 않지만 동경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능력이 출중했고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그리고 나를 특별하게 여기고 고작 변명일 뿐이라 해도 여동생 같은 아이라며 나를 챙기는 그를 이젠 더 이상 싫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매료되었을지도.

그래서 나는 가끔 톰 리들에게 떨리는 이 마음이, 설레고 마는 이 마음이 사실 무섭다.

[네가 고백이며 외출제안을 모조리 거절하는 이유는 톰 리들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말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부정할 수 있었다. 내가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부모님의 선례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 외에도 나에게 사랑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어. 내 아버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열등감 때문에 버렸지. 그렇게 한순간에 변하는게 사랑이라면 나는 하고 싶지 않아. 그러므로 나는 부정할 것이다.

*

크리스는 부드럽고 상냥했다. 부잣집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거들먹거리지 않았고 어른스러운 성격이기까지 했다. 또한 여학생들에게 프랑스 남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정도로 신사적이고 매너가 훌륭했다. 친근한 성격에 사교성이 무척이나 좋은지라 남녀노소 전부가 그에게 호의를 가졌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후플푸프 사감인 허버트 비어리와 친분을 가지기 까지 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다.

리브는 저학년 시절의 습관으로 인해 그리핀도르 학생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벽을 치곤 했으나 크리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리브의 철벽은 크리스가 해사하게 미소 지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과도 같았다.

“리브, 내가 호그스미드는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혹시 구경시켜 줄 수 있어?”

“호그스미드?”

“응. 샤를루스는 징계이고 아놀드는 여자친구랑 간다고 해서 말이야. 혼자 갈 수도 있지만 길을 잃을 것 같아. 난 심각한 길치거든.”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런던 시내에서도 길을 잃은 적이 있어서 고생을 좀 했지. 그렇게 잠깐 투덜거리던 크리스가 덧붙였다.

“혹시 바쁘거나 하면 거절해도 괜찮아. 혼자라도 가보지 뭐…….”

다른 남학생이라면 바로 거절의 대답이 떨어졌겠지만 리브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것은 긍정이었다. 조금의 흑심도 없이 순수하게 호그스미드가 처음이라 걱정하는 친구를 외면할 만큼 리브는 매몰차지 못했다.

“호그스미드 안내해줄게. 변신술 파트너인데 그 정도도 못해줄까.”

난공불락과도 같던 리브의 철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 하누이카님,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리브는 푸른색 눈동자로, 말씀하신 그 벽안이 맞습니다. 그리고 ‘사파이어’를 말씀하시면서 괴리감을 언급하셨는데 흔히 사파이어 하면 푸른색이 연상되지 않나요?^^;;; 또한 전 한 번도 리브를 녹색 눈동자라고 묘사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녹안이라 칭하고 에메랄드로 묘사 했을거에요. 그동안 누누이 푸른 눈망울이라던가 푸른 벽안이라던가 푸른빛이라던가, 이런 식으로 리브가 푸른색 눈동자라는 것을 충분히 표현해왔는데 말이죠..ㅠㅠ

그리고 벽안이 과도하게 언급된다고 하셨는데 벽안뿐만 아니라 흑안, 은회안, 자안도 골고루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실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그냥 단순하게 눈이라고 하는 것 보다는 저런 표현들을 좋아합니다. 또 그냥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간결한 문장 보다는 [청년의 흑안과 소녀의 벽안이 마주쳤다.] 혹은 [얽혀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나름 묘사해서 쓰곤 해요. 이는 은연중에 둘의 심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입니다.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 표현이 있을 때는 대부분이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나 무언가가 오가고 있다는 신호랍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말이죠!

* 지난 편에서 리들이 크리스를 ‘그 치’라고 불렀는데요. 여기서 ‘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오타가 아닙니다^^;;;

* 셜리 머틀. 42편에서 잠깐 등장했었는데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리들이 키스하면서 리브랑 이리저리 비교했던 여학생입니다^0^

사실 나중에 그녀를 원작대로 래번클로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썰을 이리저리 풀어보고 오호 이거 좋은데! 하며 바꾸려했으나 제가 42편에 깔아놓은 떡밥때문에+뜯어 고쳐야해서 fail... 나중에, 음 비밀의 방 사건이 끝나고 머틀 래번클로 '썰만' 공개할게요. 아마 리브의 후배였어도 재밌었을거에요. 아마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정을 주지 않으려 했겠지만요^^;;; 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네요ㅠㅠ 왜 나는 42편에 이미 셜리 머틀을 등장시켰는가..! 나중에 확 수정해버릴까보다!

* 이 챕터가 끝나고 선작 6000기념 외전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해리포터 패러디 작품인 [KEENBLACK(킨블랙)]과 [마리오네뜨의 리들]을 연재중이신 '롱템플와르'님께서 써주신 글입니다♡ 다들 좋아하실거에요! 짧다는게 함정이지만 달달함의 극치임미다 헿. 여러분 제가 엥간해서는 후기에서 이런 말 안하는데 킨블랙 정말 강추합니다. 그냥 보세요. 두번 보세요. 참고로 전 수도 없이 읽음ㅋㅋㅋㅋㅋ 처음에 보고 전 충격먹었어요ㅇ0ㅇ 어떻게 이런 은혜로운 작품이..!

오랜만에 <63편 예고>

“미안. 의외여서 말이야.”

“뭐가?”

“톰 리들이 너를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게.”

*

“리브, 넌 착하고 선해. 분별도 있고. 뭐가 옳고 그른지도 알지. 이제 내 페르몬에도 끄떡없는 걸 보면 정신력이나 의지도 강한 것 같고.”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저는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 루천(淚釧)님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가끔 리들이랑 리브를 바꿔서 써요...ㅜㅜ

청풍l슬레이어님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죄송해요 여러분 머틀 42화 등장이에여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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