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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Chapter 11. 변동의 조짐
“아가씨, 도련님이랑 싸우셨어요?”
한 집요정이 리브에게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저녁 식사 내내 리들과 리브 사이에는 냉랭한 공기가 감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냉랭함은 리들의 일방적인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리브는 내내 그런 청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 때문에 리브는 몇 번이나 체할 것만 같았다. 소녀는 속이 결려서 몇 번이나 명치 부위를 두드려야만 했지만 리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를 끝낸 후 자신의 방으로 휭 가버릴 뿐이었다. 리브는 결국 풀죽은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그리고 혼잣말을 뱉어본다.
“사과 하려고 했는데. 저러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어.”
리브의 한숨섞인 말에 집요정이 용기를 내시라며 꽥꽥 거렸다. 하지만 소녀의 입술에서 또다시 새어나오는 한숨.
“또 화낼거야. 저 인간 속 좁아.”
“그래도 도련님은 아가씨한테 잘해주시잖아요.”
“뭐?”
리브의 고운 얼굴에 띄워지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 집요정들이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저희는 그분이 되게 차갑고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가씨한테는 잘해주시는 걸요.”
“맞아 맞아, 식사 하실 때도 보면 항상 아가씨한테 속도 맞춰주시고!”
“아가씨를 좋아 하시는게 틀림없어요!”
집요정들의 말을 듣는 리브의 표정이 기묘했다. 집요정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들의 주인을 응시했으나 어린 아가씨가 꺼내든 카드는 부정이었다.
“그럴리 없어.”
리브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는 살짝 풀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도련님은 아가씨랑 있을 때 표정이 부드러워 지는걸요.”
“도련님은 아가씨를 소중히 여기시는게 틀림없어요!”
“아가씨는 그분께 사랑받고 계시는거에요. 아가씨도 그분을 좋아하시죠?”
내가 톰 리들을 좋아한다고? 사랑을 받아? 리브는 엄청난 것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집요정을 응시했다. 얘가 미쳤나. 하지만 그 집요정은 초롱초롱한 얼굴로 리브에게 긍정의 대답이 나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뭔 말을 해도 안 통할거야. 리브는 룸메이트인 유진에게서 이런 표정을 접한 적이 있었다. 머글태생인 그녀는 좋아하는 머글 연예인이 처음으로 열애설이 났을 때 ‘나의 크리스가 그럴리 없어! 그렇겠지?’라고 자스민에게 외치곤 했는데 딱 그때의 표정이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리고 리브는 긍정 대신 또다시 부정 비스무리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투덜도 한 조각도 첨가해서.
“그 인간이 나를 좋아한다고? 그럴리 없어.”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화를 낼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잔에 담긴 것을 벌컥벌컥 마셨다.
“막…… 내가 붙잡아도 계속 뿌리치구…… 막 건들지 말라고 그러구…… 말 섞기 싫다고 그러구…… 근데 난 그가 왜 그러는지 아니까…… 미안하긴 한데…… 막 섭섭하고 그래.”
답지 않게 리브는 어린애처럼 징징 거려 보았다. 그리고 이내 짜증스럽게 투덜거려도 본다.
“너희 말대로 날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고 잘해주면 화도 내지 말아야 하는거 아니야?”
그런 리브에게 해답을 내준 것은 조부의 초상화였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지.”
엘비스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에 담긴 메시지에 리브의 표정이 약간 흐려졌다.
“미안하다면 진심으로 사과해보렴.”
“…받아주지 않을거에요.”
“외면 당할까봐 무서운게로구나.”
핵심을 간파당한 탓일까. 리브는 정곡에 찔린 표정을 얼굴에 띄우고 말았다. 그러다가 이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다. 엘비스 초상화가 정감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 괜찮을 거란다.”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리들 군이 너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니.”
“…사과를 했을 때, 안 받아 주면 어떡하죠? 분명 그는 절 외면할 거에요.”
리브의 말에 엘비스 초상화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확 안아버리렴.”
리브가 ‘네에?’하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어감을 담아 반문했지만 초상화는 씩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요긴한 정보를 알려주는 양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남자는 본래 육탄 공격에 약한 법이거든.”
아마 당해내지 못할게다. 그렇게 말하며 초상화는 껄껄 웃었다.
*
리브는 리들의 방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노크를 하려 했으나 리브의 손은 문에 좀처럼 닿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렇게 망설였을까. 간신히 문을 두드린 리브는 응답을 기다렸으나 방주인은 어떠한 대답도 내어주지 않았다.
“리들 선배.”
불러 보지만 대답이 없다.
“할 말 있으니 문 좀 열어줘요.”
“…….”
“안 열어주면 직접 따고 들어갈 거에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안에서 차가운 미성이 들려왔다.
“난 너랑 할 말 없어.”
“…나는 분명 말 했어요.”
리브는 잠깐 물러서더니 장미목 지팡이를 꺼내 문을 향해 겨누었다.
“알로호모라.”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리브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리브는 다소곳하게 문을 닫았다. 하지만 몸을 돌리자마자 곧바로 리들의 차가운 얼굴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곧바로 떨어지는 축객령.
“나가.”
“…리들 선배-”
“싫다면 내가 나갈 수 밖에.”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휙 소녀를 지나쳤다.
“리들 선배!”
소녀의 외침에도 리들은 문 쪽으로 발을 옮길 뿐이었다. 리브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런 청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붙잡힌 자가 뿌리치려는 낌새를 보이자 소녀는 그런 청년의 뒷모습을 힘껏 끌어안아 버렸다. 확 느껴지는 체온과 훅 끼쳐오는 은은한 꽃향기. 그리고 묘한 자릿함. 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미,미안해요.”
“…….”
“리들 선배가 어머니에게 마음쓰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 말에 리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바로 부정 비스무리한 말을 내뱉는다.
“나는 그런게…… 너, 사람 잘못봤어.”
“리들 선배는 나랑 다르니까…… 난 항상 부모님한테 벗어나지 못하는데 당신은 그게 아니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거라고 생각해서…….”
리브는 리들의 부정 비슷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자기 할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리들은 이제 긍정도 부정도 그 어느 것도 표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브에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을 떼어내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래서 정말로 마음 쓰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 버렸나봐요. 사람인 이상 그럴리 없는데…….”
“난 그런게 아니-”
그런 볼품없고 나약한 어머니에게 마음 쓰고 있지 않다고, 그리 의사를 표현하려 했던 리들은 순간 말을 멈추었다. 등에 무언가가 닿은 것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녀의 가라앉은 목소리.
“선배는 나랑 다르니까…… 강한 사람이니까.”
리브의 입술에서 제법 진솔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선배 말대로 어리석고 나약해요. 그래서 얼굴조차 모르는 부모님한테 매달리고 집착해요.”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목소리가 쓰디썼다. 뭔가 억누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대로 소녀는 다시 리들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게 아니니까.”
“…….”
“나는 말이에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목소리가 젖어있는 것 같아서 리들은 무어라 함부로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냉소적인 말을 기점으로 소녀가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아서. 아니, 이미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 상황까지 몰고 온 자신이 싫어진다. 섭섭함이나 원망 따위가 뭐란 말인가. 이해 따위가 뭐란 말인가. 올리비아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곱씹으며 울고 있는데. 슬퍼하고 있는데. 그러지 마.
“그래서 당신이 부러웠어요.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정말로 나는 톰 리들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톰 리들은 부모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나와는 다르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닮았지만 너무나도 달랐기에. 나와는 다른 그런 점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비웃겠죠, 어떻게 나약한 너 따위가 감히 나처럼 될 수 있겠냐고 하겠죠.”
리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아까 보진과 버크에서 리브가 리들에게 비난과 책망의 눈초리를 보냈듯이, 이번에는 리들이 리브에게 넌 나약하기 짝이 없다고 비웃을 수 있었다. 사실 톰 리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하지만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리브는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쩌면 지금 그 수려한 얼굴에 비웃음과 경멸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어쩌면 지금 그는 무슨 말을 해야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지독한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톰 리들은 당한게 있으면 배로 되갚아주는 자니까. 기대했던 나에게 이해받기를 거부당했으니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줄 터……. 나에게 이해받기를 거부당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리브는 리들이 자신에게 어떤 말을 내뱉든지. 설사 그 말이 자신의 마음을 무참히 난도질 하게 되더라도 전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마음이 풀리기만 한다면…… 그래야겠지.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지 마. 그렇게 네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아.”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였다. 그래서 냉정하고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를 그런 말투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그러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따스함에 리브는 울음이 왈칵 터질 것만 같았다. 이윽고 소녀가 얼굴을 묻고 있는 옷이 점차 젖기 시작했다.
“올리비아…….”
리브는 리들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이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리들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소녀의 두 팔을 부드럽게 풀어내더니 몸을 돌려 소녀와 마주섰다. 그리고 청년은 자세를 낮춰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울지 마.”
눈물이 그렁그렁한 푸른 눈망울을 보며 리들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네가 울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순간 리브의 벽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그런 얘기까지 꺼내게 해서…… 미안해.”
“으…… 아니요…… 내가, 내가 미안해요.”
리들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리브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속삭인다.
“이제 안 그럴거지?”
그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마치 마성 같았다.
“올리비아 너만은…… 나를 이해하지?”
리브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답해줘. 내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황금빛 머리카락이 사르륵 흘러내리며 소녀의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네, 당신을 이해…할게요.”
이번에도 리브는 리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리들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
뜨거운 차가 담긴 찻잔을 입술에 가져다 댄 리브는 순간 아픔이 느껴져 눈살을 찌푸렸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리브는 혀로 입술을 훑었다. 아랫입술에서 희미하게 핏내음이 느껴졌다. 피가 아직도 안 멈췄나. 리브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밀착시키다가 다시 혀로 입술을 훑었다. 찢어진 부위가 쓰라리다. 그러다가 리브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었고 순간 리들과 눈이 마주쳤다.
“…….”
“…….”
왠지 모를 어색함, 그리고 이렇게 몰려오는 감정들 때문일까. 리브는 슬그머니 리들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소녀를 응시하는 끈질긴 시선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리브가 무의식적으로 또다시 아랫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 그때, 길게 뻗은 손가락이 소녀의 입술을 훑었다.
“그러지 마.”
손가락을 통해 입술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 그리고 순간의 짜릿한 전율. 리브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움찔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묘한 느낌. 이상하게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입술이 이게 뭐야. 또 피 나잖아.”
그렇게 말하며 리들은 리브를 침대에 사붓이 앉혔다. 그리고 서랍에서 간단한 구급상자를 꺼내 올려놓는다. 리브는 그 상자를 열고 연고를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고 손가락에 짜려는데 리들이 소녀의 손에서 연고를 쏙 빼갔다.
“손이 얼마나 더러운데.”
그렇게 말하며 리들은 상자에서 면봉을 꺼내들었다. 순식간에 더러운 손을 갖게 된 리브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댓발 내밀었다. 리들은 그런 소녀의 입술에 연고를 가져다 대고 적당량을 짜냈다. 그리고 면봉으로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으…… 아파.”
“그러니까 왜 그렇게 깨물어. 내가 너 언젠가 한 번 이렇게 찢어질 줄 알았다.”
그렇게 대꾸하며 리들은 면봉을 입술에서 떼어냈다. 리브가 무의식적으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밀착시키고 혀로 훑자 리들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약 발라놨는데 그러면 어떡해.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입술 좀 가만히 냅둬라, 응?”
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리브는 눈을 꿈벅꿈벅. 그러다가 리들의 잘생긴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새하얀 얼굴에 더없이 이상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이목구비. 그리고 그 이목구비 하나하나도 섬세하기 그지없다. 완벽 그 자체. 이런 수려한 미모가 또 어디에 있을까. 얼마 안 지나서 리들이 소녀의 입술에서 면봉을 떼어냈다. 리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
“언제부터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끼게 됐어요?”
리브는 리들의 감정을 정확하게 명시했다.
연민.
그 단어에 리들이 흑안을 깜박였다. 어머니를 떠올리자 아까 보았던 기억들이 또다시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아가야, 걱정말렴.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널 꼭 낳고 말거란다. 엄마는 널 사랑해.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마렴.]
그 말을 들었을 때, 리들은 잠깐 멍 때려야만 했다. 자신을 꼭 낳고 말겠다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속삭이는 어머니의 말을 듣자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거운게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소처럼 분노나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훨씬 따스한… 그런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어머니의 모성애는 따스하다 못해 뜨거웠다.
나는 왜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끼고 모성애라는 것을 느끼게 된걸까. 모성애라…….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사랑받지 못한 리들에게는 무척이나 머나먼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자 리들은 그런 자신에게 기묘함을 느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모님. 왜 나는 나약하다고만 생각했던 어머니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까.
[낳을 수 있어요. 제가 사랑하는 남자의 핏줄이에요. 저까지 이 아이를 버릴 수는 없는걸요.]
그리고 그 말에서 느껴진 어머니의 어두운 감정. 버림받았다는 슬픔. 끝까지 자신을 버린… 그리고 뱃속의 아이를 버린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느낀 연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
또 하나, 나와 비슷한 부모를 둔 올리비아가 떠올랐다.
레질리먼시로 그녀의 마음속을 엿보았을 때 보았던 감정들을 이제 내가 느끼고 있었다. 감정을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처음으로 연민을 느끼고 마음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까지. 살심이 들 지경이었다.
혹, 나는 올리비아에게 동화된 것일까. 그녀의 감정을 엿보고 이해하려 들다가 결국 나까지 그리 된 것일까.
올리비아 때문에, 올리비아의 마음을 엿보고, 올리비아의 감정을 느끼면서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올리비아, 전에는 몰랐는데…….”
그렇게 운을 뗀 리들은 한참 후에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나 역시 아버지가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워 졌으니까.
리들은 그 뒷말은 삼킨 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청년의 어투는 부드러웠지만 잘생긴 얼굴에 맺힌 미소는 이유모를 한기가 묻어났다. 말투와 얼굴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리브는 순간 청년의 흑안에서 붉은 빛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소녀 역시 이해하기 때문에 작은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변동의 조짐> 마침.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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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키워주시는 분들까지 모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 리브 그려주신 사과소다님 정말 감사드려요♡
* 리들과 리브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게 문제인 듯 싶어요.
* 이걸로 이번 챕터는 끝입니다! 연재 초반에는 슝슝 잘써졌는데 한챕터 한챕터 넘어갈 수록 둘의 감정이 부딪히고 얽히고 그러니까.. 쓰는 저는 죽을 맛ㅠㅠㅠㅠㅠ이번 챕터 진짜ㅠㅠㅠㅠ야 너희 그만 좀 싸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이걸로 비축분이 똑 떨어졌습니다! 저 이제 어떡하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