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57화 (5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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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Chapter 11. 변동의 조짐

리브가 외가에 아무 정이 없듯이 리들 역시 곤트가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리들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마볼로 곤트와 모핀 곤트가 아즈카반으로 끌려가고 몇 달 후, 리틀 행글턴 마을은 지주의 아들과 비렁뱅이의 딸이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스캔으로 뒤집어졌다. 리들은 호그와트 학생 목록이 아닌 머글 변두리 신문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보았다. 그렇게 청년은 아버지가 머글이라는 확인사살을 당했다. 그게 끝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감상은.

“레질리먼스!”

리브가 부모님에 집착하는 반면 리들은 그런 모습을 한 조각도 보여주지 않았다. 리들은 자신을 낳다 죽은 어머니는 애초에 논외 대상일만큼 감정에 메말랐고 아버지가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관심을 끊을 만큼 냉담했다. 그 모습은 담백하다 못해 무미건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리브는 이 상황이 몹시나 당혹스러웠다.

어째서? 갑자기 어머니에게 관심이라도 생긴거야? 당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잖아. 어째서!

리들은 본래 철두철미한 자였다. 언제 누가 들이 닥칠지도 모르는 이런 가게에서, 무작정 레질리먼시를 시전하는 그런 무모한 행동은 리들에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게 일어났다.

[자신을 곤트가의 마녀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리들의 이성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리들은 장사꾼 노인의 기억을 뒤적였다. 온갖 잡념이 가득 일었지만 리들은 애써 그것을 떨쳐내고 어머니의 기억을 찾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청년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옆에서 리브가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음에도 리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방해 하지 말라는 말을 뱉은 후 눈앞의 노인과 눈을 마주치고 기억을 찾아내는 데에 열중한다.

“리들 선배!”

“이 로켓을 판 사람은 내 어머니야. 방금 못 들었어? 1926년의 크리스마스 직전, 거기다가 곤트가의 마녀래잖아!”

리들은 그렇게 소리치며 자신의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리브를 뿌리쳤다.

“나라고 내 어머니가 안 궁금한 줄 알아?”

청년의 입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정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리들은 그런 자신에게 놀랄 겨를도 없었다. 연륜 있는 마법사의 머릿속에서 특정 기억을 빼내는 것은 상당한 정신력을 요구했다. 리들은 모든 잡념을 떨쳐내려 노력하며 강한 레질리먼시를 시전하는 데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억을 찾아냈다.

*

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날, 떨어진 누더기 차림에 거의 거지꼴을 한 젊은 마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크게 부풀어있는 배를 감싼 모습은 그녀가 산모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지쳐있는 산모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로켓을 벗어내더니 가게주인에게 대뜸 내밀었다.

[이 목걸이는 슬리데린의 것이에요. 곧 예정일이라서…… 저는 돈이 필요해요.]

거짓말일게 뻔하다는 생각으로 내쫓으려 한 버크는 로켓에 새겨진 S자 문양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이건 슬리데린의 표식…? 버크는 마녀가 건넨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정말로 슬리데린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이 마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니 진실을 판별해야만 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마녀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있었다. 버크는 몹시 지쳐 보이는 마녀를 보자 절로 측은함이 들어 혀를 끌끌 찼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해 보이는데 쯧쯔……. 아이를 낳을 수나 있겠소?]

버크의 눈에 여자는 임신을 유지하는 것이 용해 보일 정도로 허약해 보였다.

[낳을 수 있어요. 제가 사랑하는 남자의 핏줄이에요. 저까지 이 아이를 버릴 수는 없는걸요.]

그렇게 말하는 마녀의 목소리는 슬픔에 잠겨있었다. 눈앞의 마녀가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버크는 또다시 혀를 찼다. 마녀는 배를 쓰다듬으며 물기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가야, 걱정말렴.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널 꼭 낳고 말거란다. 엄마는 널 사랑해.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마렴.]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뱃속의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묻어있었다. 버크는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마녀에게 감정을 하는 동안 따뜻한 차라도 마시라며 자리를 권했다. 본래 관대한 성품도 아니었고 귀한 손님이 아니면 푸대접하기 일쑤인 자였으나 눈앞의 마녀에게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장사꾼의 본성이 어딜 가겠는가. 마녀가 천천히 자리를 옮기는 동안 버크는 그녀의 등 뒤에 지팡이를 겨누고 거짓을 판별하기 위한 몇 가지 정신계 마법을 약하게 걸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정말 이게 슬리데린의 것이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보물이니 맞을거에요.]

[이름이?]

[메로프 곤트.]

[곤트? 슬리데린의 후손이라는 그 곤트 가문?]

[네, 맞아요.]

버크는 살짝 몽롱해 보이는 마녀를 빤히 응시했다. 마법이 걸린 이상 거짓을 말할 리는 없었다. 버크는 다시 이리저리 로켓을 살펴보았다. 이게 정말로 슬리데린의 것이라니! 그래, 이건 정말로 슬리데린의 표식이 분명했다. 버크의 눈에 이윽고 탐욕이 서렸다. 이건 가치를 따질 수 없을만큼 귀중한 유물이었다. 이 마녀를 잘 꼬드긴다면 쉽게 얻어낼 수 있을터. 어떻게 해야 이 유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버크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슬쩍 눈치를 보니 마녀는 흥정을 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아니, 이 물건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그리고 이날 버크는 가게 역사상 최고의 흥정을 이루어냈다. 10갈레온이라는 가격에 슬리데린의 유물을 사낸 것이다. 버크는 혹시 메로프가 겨우 10갈레온이냐고 화를 내며 나가버리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지만 메로프는 10갈레온을 받더니 몹시 좋아했다.

*

레질리먼시를 시전하는 리들의 지팡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메로프가 10갈레온을 받아 들고 웃음을 띠며 가게를 나가는 것까지 전부 본 리들은 지팡이를 내렸다. 강한 레질리먼시를 시전한 탓에 정신이 몹시 피로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의 리들이었다면 이성적이고 침착한 태도로 뒷수습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태가 되지 못했다. 끊어진 이성은 완전히 돌아오기가 힘들어 보였다. 몰려오는 분노 그리고 휘몰아치는 온갖 감정들. 그 폭풍 속에서 리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 사이 몽롱했던 버크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곧 정신을 차릴 것이다. 강력한 레질리먼시를 당했으므로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눈치 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빠른 판단을 내린 리브가 리들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

“어서…… 이 노인에게 기억력 마법을 걸어요. 강력한 레질리먼시를 썼으니 눈치 챘을 거에요.”

리브 자신이 걸 수도 있었으나 기억력 마법처럼 고난이도의 정신계 마법을 감당할 실력이 되지 못했다. 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브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본 그의 기분이 어떨지 감히 예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소녀는 강한 어조로 청년을 재촉했다.

“어서요!”

리들이 주목나무 지팡이를 들어 버크에게 겨누었다. 이윽고 청년의 입술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스투페파이.”

리브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걸라는 기억력 마법은 안 걸고 기절 마법이라니! 소녀가 눈을 부릅뜨며 청년을 응시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실수를 한건가? 하지만 실수한 것 치고는 태도가 너무나도 태연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다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리브는 발을 동동 굴리다가 결국 장미목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 몸짓에 청년이 휙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의 장미목 지팡이가 향한 곳은 가게의 문이었다.

“콜로포터스!”

주문을 외우는 목소리에는 체념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고운 얼굴에는 무거운 감정이 짙게 깔려있었다. 난 이제 그를 방관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어째서 나는…!

리브는 잠금 마법에 이어 커튼까지 쳐서 바깥에서 내부가 보이는 것을 차단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들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리브는 여전히 장미목 지팡이를 쥔 채로 청년에게 말했다.

“도가 지나치는 짓을 한다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네가 뭘- 어쩔건데?”

“……뭐든 할 수 있겠죠.”

리들의 입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비웃음에 리브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리들은 더없이 우아한 몸짓으로 벽에 걸린 슬리데린의 로켓을 낚아챌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기절한 노인에게 지팡이를 겨눈다. 그런 리들의 얼굴은 몹시 살벌했다. 금방이라도 저 지팡이에서 초록 불빛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리들 선배! 뭘 하려는-”

“머릿속에서 모든 기억을 삭제할거야. 이 로켓도, 내 어머니도…… 전부 잊게 되겠지.”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묻어 있었다. 기억을 삭제 하는게 아니라 생명을 삭제 하는거 아니야?

“생각 같아서는 죽이고 싶지만 말이야.”

“리들 선배!”

“네가 가만있지 않겠다니 이 정도로 끝내야 겠지. 일도 커질테니 말이야.”

“…….”

“귀찮아지는 것은 딱 질색이거든.”

리브는 눈을 또록또록 굴리다가 장미목 지팡이를 로켓이 걸려있던 빈 진열장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한숨처럼 어떤 주문을 외웠다.

“제미니오.”

복제 마법은 감쪽같이 시전되어 순식간에 똑같은 로켓이 또 하나 생성되었다. 리브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기억을 삭제하는 것 보다는 조작을 하는게 더 나아요. 기억이 비어있으면 의심할테고 최악의 상황에는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어요. 그럼 용의자는 리들 선배에요. 이런 구석에 있는 물건에 누가 관심을 갖겠어요.”

순간 리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이번에야 말로 리브가 자신을 방해할거라 생각한 리들은 의외의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청년은 그 기분을 그대로 말로 옮겨냈다.

“어째서?”

“…….”

리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그 이유를 알았더라면 절대로- 이 지경까지 오도록 방치하지 않았어.

“눈감아 주는 것도 이번 한 번 뿐이에요.”

그렇게 리브는 단호한 어조로 리들의 불가해(不可解)를 끊어냈다. 그리고 리들을 지긋이 응시한다.

애초에 왜 이런 짓을 저질러서……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소녀의 벽안과 청년의 흑안이 일직선으로 부딪혔다. 먼저 눈을 피한 것은 리들이었다. 소녀에게서 무언의 책망을 읽어낸 청년이 입을 열었다. 강한 레질리먼시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로해졌기 때문일까. 리들은 이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기 보다는 여과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택했다.

“이 노인이 무슨 짓을 한지 알아? 단 10갈레온에 내 어머니의 물건을 탈취했어!”

“…….”

“내 어머니가 자진해서 판거라고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녀를 속이고 빼앗은거나 다름없어. 이게 겨우 10갈레온이라고 생각해?”

그 외침에 리브의 벽안에 순간 균열이 일어났다. 하지만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리는 눈동자의 초점을 잡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긋이 쳐다본다.

“난 내 것을 돌려받는 것뿐이야. 날 비난하지 마.”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을 비난한 적도 없어요.”

리들의 입술에서 또다시 감정적인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럼 왜 그런 눈으로 쳐다 보는건데?”

“…….”

“나는-”

“변명은 그만해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리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변명’이라는 단어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리들의 손이 축 아래로 처졌다.

변명,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

리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리브에게는 ‘변명’으로 들릴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싫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가 난다.

“변명? 나는 실로 잘못되지 않았어. 이 노인이 나쁜거야.”

“이 노인이 정당하지 못한 짓을 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거에요. 어서 하던 일이나 해요.”

여전히 리브의 눈빛에는 책망의 어조가 서려있었다. 적어도 리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대치상태가 길어지자 리브의 입술에서 리들이 흠칫할 정도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브락사스 선배가 오기 전에 어서 일을 끝내야 할 텐데요.”

리들은 고개를 휙 돌리고 버크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마법을 시전했다. 우선적으로 어머니와 관련한 기억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른 루트로 슬리데린의 로켓의 진품이라 추정되는 물건을 들여놓았다는 기억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이 복제품을 진품이라 믿도록 강한 암시를 걸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계 마법을 쏟아 붓는 리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뜩이나 강한 레질리먼시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였다. 하지만 일은 완벽해야만 했고 리들은 이를 해냈다.

리들이 마법시전을 끝낸 것을 보며 리브는 잠금 마법을 풀고 커텐을 걷어냈다. 운 좋게도 아직 아브락사스는 가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와서 이 광경을 본다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는 톰 리들을 거의 추종하다시피 하니까.

*

리들의 마법 실력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 어떤 부작용도 없었고, 버크는 조금의 의구심도 갖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잠깐 정신을 놓았다며 허허 웃었다. 또한 그 복제품을 진품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리브는 새삼 리들의 능력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대체 얼마나 강한 암시를 걸었길래… 그 뿐만이 아니다. 리들은 특정 기억을 삭제하고 그 빈 공간을 다른 기억으로 밀어 넣은 후 그것을 정확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하지만 톰 리들도 사람인 모양인지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한 레질리먼시에 각종 정신계 마법을 시전했으니 지칠만도 했다. 현재의 리브는 엄두조차 못내는 고난이도 수준의 마법이었다. 리브는 현재 열 다섯 살인 리들이 훗날 성인이 되면 대체 어느 지경에 오를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소녀는 왜 볼드모트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라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볼드모트는 그 알버스 덤블도어와 맞먹는 대마법사라고 했지. 이 엄청난 능력들이 악(惡)에 사용된다고…… 리브는 순간 공포의 전율을 느꼈다.

소녀가 힐끗 본 리들은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브락사스는 그런 친우를 보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 보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리들은 차갑고 냉랭한 얼굴로 아예 말문을 닫아버렸고 리브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아브락사스는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을 한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채근할 수도 없었다.

리브는 어머니의 기억을 본 리들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볼품 없는 모습을 한 어머니를 보고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부모님의 비극을 알았을 때처럼 그도 비참함을 느끼고 있을까? 대답은 금방 나왔다.

그럴 리 없다. 그는 톰 리들이다. 지금 이렇게 심기가 불편한 것도 순수혈통 마녀인 어머니가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일테다. 그는 자신의 부모에게 조그마한 관심도 없는 자였다. 어머니의 기억을 본 것도 순간적인 호기심이었겠지. 호기심 하나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다니……. 하지만 역시 뭔가 석연치 않았다. 리브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리본 모양으로 묶여야 할 끈이 다른 모양으로 엉켜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리브는 그 느낌을 외면해버렸다.

“그럼 개학 때 보자.”

리들의 불편한 심기는 단지 어머니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리들은 리브에게도 유감이 많아 보였다. 흑발의 청년은 소녀에게 눈길 한 번, 언질 하나 없었다. 일행에게 짤막한 작별인사를 한 뒤 휭 돌아서 버렸다. 그 모습에 리브는 물론 전부가 당황해야만 했다.

“리들 선배랑 무슨 일 있었어?”

오리온의 물음에 리브는 불안스럽게 벽안을 깜박일 뿐이었다. 외면해 버렸던 그 엉킨 끈이 리브를 옥죄이고 있었다.

“리브. 무슨 일이-”

“나도 이만 가볼게. 개학 때 봐.”

리브는 오리온의 궁금증을 끊어내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오리온이 무슨 말을 할 지는 뻔했다. 톰 리들의 편을 들며 나에게 뭘 잘못했냐고 그럴거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왜 그러냐고 하겠지. 그렇다. 톰 리들은 화가 나있었다. 리브는 청년의 뒷모습을 쫓아갔다. 간신히 그 뒤를 바짝 붙었음에도 리들은 리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다행히도 리들은 옆에 따라붙는 리브를 내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차갑게 굳어있는 리들의 얼굴을 보며 리브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옆에 선 청년을 불러 보았다.

"리들 선배.“

하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재차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부르고 나서야 고개를 돌리는 리들이었다. 리들의 흑안과 리브의 벽안이 일직선으로 부딪혔다. 이번에는 리브가 흠칫해야만 했다. 리들의 흑안에 맺혀있는 감정을 읽어낸 리브는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외면해 버렸던 엉킨 끈이 좀처럼 풀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 끈이 소녀를 더욱더 옥죄인다.

“올리비아, 넌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왜 나만은 이해하지를 않아?”

흑안에 맺힌 감정을 청년의 붉은 입술이 담아낸다. 그렇게 흘러나온 미성은 소녀의 귓가에 내려앉아 마음을 파고들어 깊숙하게 침투한다.

“그,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묻는 리브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리들의 차가운 시선이 소녀에게 직격으로 내리 박혔다. 리브는 흠칫했다.

“말 그대로야. 나는 너를 이해하는데 너는 나를 이해하지 않아.”

“무,무슨-”

“너는 나를 비난하고 책망하지. 나의 말을 변명이라 일축해버렸지.”

리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하고 지쳐있었다. 처음 목격한 자신의 어머니는 볼품없었고 이는 그에게 굴욕감을 선사했다. 곤트가는 리들이 생각한 한 것 이상으로 몰락한 집안이었고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인 어머니는 나약했다. 어머니의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로 가치 없는 자들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리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그런 볼품없는 모습으로 떠돌아다닌 이유가 머글 아버지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더 열이 치솟았다.

그리고 하나 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는 리브에게도 화가 났다. 서운함과 섭섭함 그리고 원망감. 무의식적으로 리브는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그랬다. 그녀에게 기대를 했다. 그녀와 나는 같은 부모를 두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실망스러웠다. 자신을 지긋이 응시하며 소리없이 책망하고 비난하는 소녀에게 화가 났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봐. 너라면 날 이해할 줄 알았어. 설사 내가 그 노인을 죽여 버렸다 해도 너는 나의 분노를 이해해줬어야 했어. 결코 소녀가 그런 자신을 묵인해줄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기를 바랐다.

물론 리브가 자신의 행동을 팀탁치 않게 여기며 제동을 걸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소녀가 끝에 자신을 도와주었을 때 기묘함을 느꼈다. 내 심정을 이해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뻤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소녀는 자신에게 비난과 책망의 눈초리를 쏘아 보내고 있었다. 너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화가 난다. 왜 너는 나를 이해하지 않는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왜. 리들은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지금 자신이 자제하기 힘든 상태라는 것은 리들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그렇게 청년은 입술을 달싹 거리며 무어라 말하려는 리브의 시도를 무참히 끊어냈다. 소녀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너랑 말 섞고 싶지 않아.”

리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충격과 함께 밀려오는 것은 자신이 지독한 오판을 했다는 깨달음. 하지만 애써 변명을 해본다.

톰 리들은 감정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냉정한 자였다. 그래서 부모에 대해서도 그 어떤 마음도 쓰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어머니에 대해 아무 감정도 없을거라고.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레질리먼시를 시전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가 어머니의 비극을 알더라도 슬픔도, 분노도, 그 어느 것도 느끼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볼드모트, 톰 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이어진 사이이거늘. 왜 나는 이 점을 그에게 적용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원작이라는 틀에, 볼드모트라는 틀에 갇혀서 나는 무얼 한걸까.

[이 노인이 무슨 짓을 한지 알아? 단 10갈레온에 내 어머니의 물건을 탈취했어!]

아까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리 없다고, 톰 리들이 어머니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질리 없다고. 그리 여겨버렸다.

[내 어머니가 자진해서 판거라고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녀를 속이고 빼앗은거나 다름없어. 이게 겨우 10갈레온이라고 생각해?]

그 외침을 듣고도 나는…… 그가 옳지 못한 짓을 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깨닫지 못했다.

[날 비난하지 마.]

외면해버렸다. 그러니 리본은 묶일 리 없었고 끈은 엉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왜 그런 눈으로 쳐다 보는건데?]

나는 그에게 비난하고 책망하는 눈길을 주어서는 안됐다.

[올리비아, 넌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왜 나만은 이해하지를 않아?]

나는 전에도 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존슨을 비롯한 슬리데린 남학생들을 퇴학시킨 그에게 비난과 책망의 말을 쏟아냈을 때. 그는 나를 위해 그랬노라 화를 냈다. 그리고 그 때도 이렇게 말했다. 넌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왜 나만은 이해하지를 않아? 그 말에서 느껴지는 원망과 서운함.

나야말로. 당신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어. 하지만 당신이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잖아! 하지만 그렇게 외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정말 나는 그에게만 마음을 닫고 있는게 아닐까. 원작의 틀에 갇혀서 그렇게……. 그래.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톰 리들은 그럴 리 없다고. 그렇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자 미안함이 몰려왔다.

리브는 간신히 용기를 내 리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하지만 청년은 망설임 없이 뿌리쳐버린다. 그리고 소녀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차갑게 말을 뱉어낸다.

“건들지 마.”

화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리브는 휘적휘적 걸어가 버리는 리들을 다시 한 번 붙잡아 보지만 청년은 또다시 매정하게 뿌리칠 뿐이었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로, 초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해졌다. 그래서 일까. 도리어 리브가 빽 소리쳤다.

“리들 선배가 먼저 일을 저질렀잖아요! 저한테 왜 화를 내는거에요?”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너한테 화낸 적도 없어.”

리브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난 내 것을 돌려받는 것뿐이야. 날 비난하지 마.]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을 비난한 적도 없어요.]

아까의 상황이 그대로 오버랩 되었다. 리들이 자신에게 아까의 말을 그대로 갚아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리브가 또다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깨물었는지 작은 입술에 핏방울이 맺혀 비릿한 핏내음이 느껴졌다. 그런 소녀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분이 어때?”

리브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이해하는데, 왜 너는 나를 이해하지 않아?”

“…….”

“그때, 이해한다고 했잖아. 넌 분명 그렇게 말했어. 나는 기억해.”

순간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편린.

[너 역시 나를 이해하지?]

[이해하지?]

그리고 나의 대답은.

[…네, 당신을 이해해요.]

리브는 참담함에 또다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핏내음이 진하게 느껴질수록 아픔도 진해졌지만 이는 무감각했다. 그보다 지금 이 감정들이 더 복잡하고 진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식물이 쑥쑥 자라고 있어여 다들 감사드림미다

* 사실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퇴고가 안돼서 못올림^_ㅜ...요즘 연재 주기도 길어졌는데 글 퀄리티까지 떨어지는 기분이라서 뭔가 죄송스럽네여. 슬럼프 티내는거 같아서여ㅠㅠ 그렇다고 넹 맞아여 작가님 제대로 좀 하셈ㅡㅡ 이러면 저 상처받음.......

* 다른 글을 쓰고 싶다는 유혹을 간혹 받지만... 리들리브 잤잤은 못시켜도 키스까지는 시켜야하지 않겠어요????????? 너흴 이대로 놓을 수는 업숴!

* 쓰다가 생각한건데 리들은 초딩같아요. 말 그대로 전부 다 되갚아 주는거 보소... 너랑 말하기 싫어=너랑 안놀아. 이런 느낌^^! 리브 너보다 한 살 어린애다 이자식아...

후기까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당. 다음 편은 금방 들고 올게요♡

그럼 오늘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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