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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Chapter 11. 변동의 조짐
[보진과 버크]
아브락사스가 데려온 가게의 상호명이었다. 가게의 규모를 보며 리브는 녹턴 앨리에서 가장 큰 가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가게 이름 이상하게 낯익단 말이야……. 그렇게 고개를 갸웃하며 리브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세 사람이 들어가자 종이 딸랑하고 울리며 손님의 존재를 주인에게 알렸다. 아브락사스는 익숙하게 카운터로 다가가 종을 울렸다.
“버크 씨 계십니까?”
리브와 리들이 가게를 둘러보는데 카운터 뒤에서 왜소한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그 노인은 ‘카락투카스 버크’로 이 가게를 설립하는데 큰 일조를 한 자로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노인은 말포이 가문 특유의 백금발을 보며 구변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포이가의 도련님이시군요. 이렇게 반가울데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버크 씨. 그나저나 보진 씨가 안 계시는군요.”
“허허, 그는 휴가를 갔습니다. 도련님, 여기 앉으시지요.”
아브락사스는 노인이 안내한 자리에 착석한 후 테이블에 서류봉투를 올려놓았다. 아브락사스와 같이 들어온 두 사람을 흘깃 본 버크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 저 분들은…….”
“친구들인데 이 가게를 구경시켜주고 싶어서 데려왔습니다. 괜찮겠지요?”
“오, 물론이죠.”
버크와 아브락사스는 이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리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었고 리브는 골똘히 생각해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내 보진과 버크가 왜 낯익은가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소녀 역시 진열된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자인 이상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다른 가게와는 달리 그런 것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리 케이스 안에는 쿠션 위에 놓인 말라빠진 손 하나와, 피로 얼룩진 카드 한 벌과, 노려보는 유리 눈알 하나가 들어 있었다. 벽에서는 기분 나쁜 가면들이 내려다보고 있었고, 카운터에는 여러 가지 종류를 한데 모아놓은 사람의 종합뼈 세트들이 놓여 있는가 하면, 천장에는 녹슨 뾰족한 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음산한 물건들을 보며 리브는 순간순간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새 적응이 됐는지 아까처럼 질겁하지는 않았다. 녹턴 앨리답게 가게 안에는 끔찍한 저주나 어둠의 마법이 걸린 물건들이 가득했지만 아까 길에서 본 그 끔찍한 것들 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었다.
리들이 쿠션 위에 있는 말라빠진 손에 관심을 보이는 사이 리브는 몸을 돌려 다른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리다가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을 반복하던 리브는 이윽고 어떤 목걸이 앞에 멈춰섰다. 좀처럼 보이지 않는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이 이렇게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리브가 벽안을 깜박였다. 이건 혹시…….
“오, 영광의 손!”
아브락사스가 서류를 작성하는 사이, 버크가 말라빠진 손에 관심을 표하는 리들에게 소리쳤다. 리들이 자신을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음에도 노인은 매끄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초를 넣으면 그걸 잡고 있는 사람에게만 불을 비춰주는 물건이죠! 도둑들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할까요? 손님, 안목이 훌륭하시군요.”
이제 리들은 몸을 돌려 긴 오팔 목걸이를 보고 있었다. 절대로 만지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 적힌 카드를 읽은 청년이 은근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올리비아, 이거 봐. 지금까지 머글 주인 열 아홉명의 목숨을 앗아간거래. 어떻게 한 걸-”
리들은 그제서야 리브가 자신의 옆에 붙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리브는 어떤 물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리브에게 가까이 간 리들은 소녀가 보고 있는 목걸이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물건을 본 리들의 흑안에 어느 순간 붉은 이채가 서렸다.
*
리브는 황금 사슬 목걸이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목걸이 장식인 황금빛의 로켓(사진이나 기념품, 머리카락 따위를 넣어 목걸이 줄에 매다는 작은 케이스)을. 세심한 세공이 돋보이는 묵직한 로켓에는 뱀 모양의 S자 장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최근 특별 서재의 책을 독파중인 리브는 그곳에 비치된 희귀한 고서에서 이 목걸이를 보았다. 뱀 모양의 S자 장식은 슬리데린의 표식이었다. 고로 이것은 슬리데린의 로켓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고서에는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인 곤트 가문에서 소유권을 갖고 있었는데……. 그 순간 리브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하…….”
그제서야 리브는 지금까지 느꼈던 낯익음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전생에 읽었던 원작 때문이었다. 원작에 의하면 후플푸프의 잔, 슬리데린의 로켓. 이는 모두 볼드모트의 호크룩스였다. 물론 지금은 귀한 유물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미래에는……. 리브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한편 리들은 로켓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청년은 우아하게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불빛에 대고 자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건…….”
리들 역시 이 물건이 슬리데린의 로켓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이건 슬리데린의 표식이었다. 곤트가의 것이 어째서 여기 있는거지? 곤트가가 지나친 사치와 향락으로 무너져 간다고는 하나 이 귀한 유물을 팔아야 할 정도로 몰락한 것인가? 아니, 그럴리 없다. 자신들이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이라는 것을 나보다 더 자랑스러워 할 족속들이다. 그런데 그 증표인 이것을 팔 리가……. 어째서?
“오, 이걸 보고 계셨군요.”
버크는 리들의 손에 들린 로켓을 자연스럽게 회수해 원래의 자리에 걸어두었다. 그 순간 리들의 흑안이 붉은 빛이 서렸으나 노인은 보지 못했다. 리브는 그런 리들을 긴장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토록 로켓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봐서 톰 리들은 이 물건의 정체를 눈치챈게 분명했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로켓. 톰 리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든 손에 넣을 것이 분명했다.
원작대로라면 리들은 졸업 후에 보진과 버크에서 일하면서 헵시바 스미스에게서 이 로켓을 처음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를 죽인 뒤 로켓과 잔을 손에 넣는다. 고로 원작대로라면 오늘 그는 이 로켓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어야했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으니 보지 못하고 지나칠 법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이 로켓을 봐버렸다. 어떻게 일이 돌아가게 될지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이건 전부 나 때문이야. 리브는 순간 참담한 심정이 들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법 묵직하죠. 무슨 짓을 해도 뚜껑이 열리지 않더군요. 마법이 걸려있거나 아예 열리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진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펑 하고 나타난 집요정이 아브락사스에게 무어라 꽥꽥 거렸다. 아브락사스는 알겠다는 듯 집요정을 보내고 버크에게 다가왔다.
“버크 씨, 잠깐 다녀와야 겠습니다. 누락된 서류가 있는데 아버지께 받아 와야 할 듯싶습니다.”
“오, 그럼 다녀오십시오.”
“30분 정도 걸릴 겁니다. 리들, 가게 구경하고 있을래? 아, 리브. 다이애건 앨리로 가고 싶다고 했지?”
자신이 데려다 주겠노라는 아브락사스의 말에 리브는 고개를 저었다. 리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어 이 가게를 떠날 수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가게 주인을 죽이고 저 로켓을 탈취할지도 모른다.
리들 역시 가게에 흥미로운 물건이 많다고 말함으로써 가게를 구경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아브락사스는 금방 다녀오겠다며 가게를 나갔다. 이제 노인은 리들을 예비 고객으로 생각하고 장사꾼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가게의 물건을 팔지는 않지만 눈앞의 청년은 그 유명한 말포이 가문의 후계자의 친구였다. 그리고 리들의 조각같은 외모와 우아한 행동을 보니 어느 귀한 순수혈통 집안의 자제일 듯 싶었다.
“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이 로켓이 어떤 방법으로든 열린다 해도 아마 안은 비어 있을겁니다.”
“어째서죠?”
리들의 물음에 버크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수 십년간 이런 물건들을 취급해온 자신의 감이라고 했다. 리들이 쓱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 귀한 유물을 어떻게 취급하게 되셨는지 수완이 대단하십니다.”
“허허, 이건 단지 로켓일 뿐인데 그리 말씀해주시니 이 늙은이는 기쁠 따름…”
“버크 씨.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흑안이 요요스럽게 빛났다. 순간 청년에게서 말할 수 없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슬리데린의 표식이죠.”
“오, 안목이 있으시군요. 보통은 정교한 가품이라 생각하고 지나치시는데 말이죠.”
노인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본 탓에 청년의 범상치 않은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잘 상대하고 있었다.
“이 로켓을 어찌 구하셨습니까?”
리브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가엾은 메로프 곤트에게서 헐값에 샀으리라. 그 생각을 하자 리브는 눈앞의 노인에 대해 스멀스멀 불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날에 떠돌아다니는, 거기다가 곧 산달이 가까워진 산모에게 제값도 채 주지 않고…… 정말 나쁘다. 얼굴부터 봐도 인자함이나 관대함이라고는 한 조각도 있지 않은 자였다.
“허허, 보통 손님들은 출처보다는 가격을 궁금해하는데 말입죠…….”
“어찌 구하셨습니까?”
리들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
리들이 안면에 호의적인 미소를 띄우며 부드럽게 말했다.
“순수한 호기심이니 편하게 대답해주세요. 그저 저는 버크 씨의 안목과 수완에 놀라움을 느꼈을 뿐입니다. 이런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가게의 설립자는 역시 다르구나 싶어서요.”
청년의 달콤한 말에 카락타쿠스 버크는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리들이 몇 번 더 미사여구를 입에 담자 카락타쿠스 버크는 청년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에게서 로켓의 출처가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허, 이 물건으로 말씀 드리자면 크리스마스 직전에 한 젊은 마녀가 가지고 왔는데……. 그래요, 오래전 일이지만 이 늙은이는 아직도 기억이 나는군요. 1926년이었죠.”
“…!”
“그 마녀는 곧 아이를 낳을 몸이었는데 돈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톰 리들은 1926년 12월 31일 생이었다. 그의 어머니인 메로프 곤트가 분명하다. 리브는 리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마녀는 슬리데린의 것이라고 했지만……, 이 늙은이는 그런 소리를 수십 번도 더 들으며 살았습니다. 멀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찻잔도 많이 봐왔죠. 하지만 이 물건을 보았을 때 저는 그 표식을 알아보았고…….”
“…이게 진품이라고 확신하시는 건가요? 제 눈에는 흠……, 잘 세공된 가품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리브는 지금 이 상황이 폭풍전야같이 느껴졌다. 몹시 불안했다.
“아이고, 가품이라뇨. 몇 가지 간단한 주문이면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 여자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고…….”
노인이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은밀하게 속삭였다.
“자신을 곤트가의 마녀라고 했습니다.”
곤트가의 마녀라고……. 그 순간 내내 차분했던 리들의 흑안이 살짝 커지더니 균열이 일어났다. 청년은 슬그머니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 모습에 리브가 벽안을 크게 떴다. 설마-
"손님도 아시겠지만 이 로켓은 거의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녀는 그 물건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눈치였지만 말이에요 허허.”
가게 역사상 최고의 흥정이었다는 말은 쏙 빼버린 버크였다.
“혹 구매 의사가 있으신지요. 저는 이 귀한 유물을 그 가치를 알아보는 분에게 넘겨드리고 싶습니다만, 도련님께서는-”
순간 버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리들이 지팡이를 꺼내 버크에게 겨누고 주문을 외운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레질리먼스!”
동시에 버크의 눈이 몽롱해졌다. 리브가 깜짝 놀라 ‘리들 선배!’하고 빽 소리쳤지만 리들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지금- 뭘하는 거에요!”
“…….”
“리들 선배!”
“…방해하지 마.”
리들의 입술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리브는 발을 동동 굴리다가 리들의 팔을 붙잡고 재차 소리쳤다.
“리들 선배!”
“이 로켓을 판 사람은 내 어머니야. 방금 못 들었어? 1926년의 크리스마스 직전, 거기다가 곤트가의 마녀래잖아!”
“하지만…!”
이러면 안돼요! 리브는 리들을 만류했다. 리브가 자꾸 자신의 정신을 흐트러뜨리자 리들은 이제 자신을 붙잡은 소녀를 확 뿌리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라고 내 어머니가 안 궁금한 줄 알아?”
그렇게 외치는 리들의 목소리는 음산하다 못해 음습했다. 리브는 순간 리들의 목소리에서 눅눅함을 느꼈다. 그걸 느끼자 리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리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한 얼굴로 노인의 눈을 응시하며 기억을 찾고 있었다.
불안해졌다. 그리고 불안과 동시에 밀려오는 걱정. 처음으로 보게 될 어머니에게 그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사실 리브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머글 아버지에게 무관심하고 담백하다 못해 무미건조한 리들이었다. 자신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없던 걸로 하라고 조언한 자였다. 그래서 그에게 어머니 역시 그런 존재일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였던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그는 톰 리들이다. 그럴리 없어.
어찌됐든 리브는 이 상황을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녀는 청년이 로켓을 탈취하고 기억을 조작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레질리먼시였다. 어째서? 그리고 이러다가 누가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리고 어느 순간 리들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그가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냈음을 깨달았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특히 코멘트 적어주시는 분들 제 사탕 받으세요♥
책 신청해주시는 분들도 감사드려요^0^
* 원래 리들은 저 로켓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어야 했습니다. 원작에서 리들은 헵시바 스미스에게서 처음 슬리데린의 로켓을 보게되죠. 리브의 본의 아닌 행동으로 인해 구석에 비치된 로켓을 발견했고.. 이렇게 된겁니다! 리브가또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