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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Chapter 11. 변동의 조짐
마법사들의 플루 가루 네트워크는 정말 편리한 교통이었다. 다이애건 앨리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런던으로 가서 리키 콜드런을 찾는 번거로운 과정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벽난로에 초록빛의 플루 가루를 던지고 행선지를 외치면 끝이었다.
그렇게 다이애건 앨리에 도착한 리들과 리브는 우선 그린고트로 향했다. 리브는 금화를 꺼내기 위함이었고 리들은 새로 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얼마 안지나서 둘은 진홍색과 황금빛의 단복을 입은 도깨비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고 있었다 도깨비는 영리해보이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뾰족한 수염을 기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아주 긴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린고트에 온 용무를 묻는 도깨비에게 리브는 금고에서 돈을 꺼내야한다고 대답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올리비아 브릴리언트. 열쇠는 여기 있어요.”
리브는 품에서 황금빛의 열쇠를 꺼내 도깨비에게 건네주었다. 황금빛의 열쇠에는 푸른 사파이어가 박혀있었는데 도깨비는 이것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말했다.
“라이트 가문의 금고를 찾아오셨군요. 성이 달라서 몰랐습니다.”
리브의 금발과 벽안을 힐끗 보던 도깨비는 소녀에게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 리들이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려하자 도깨비가 제지했다. 리브는 의아한 얼굴로 도깨비를 응시했다.
“죄송하지만 이 분께는 금고를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어째서냐고 묻는 리들에게 도깨비는 몇 몇 순수혈통 가문의 금고는 보안이 철저하게 적용되어 가문의 일원 이외에게는 열람을 금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라이트 가문의 금고가 그중 하나라고 대답했다. 리들은 어쩔 수 없는 듯 물러 서서 자신의 용무를 보러 휭 가버렸다.
리브는 도깨비와 함께 궤도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미로를 지나갔다. 덜컹거리는 궤도차 때문에 리브는 이제 멀미를 할 것만 같았지만 다행히 그 순간 궤도차는 통로 벽에 있는 작은 문 옆에 멈춰섰다. 도깨비가 자물쇠의 문을 열었을 때 희미한 초록빛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흘러나왔다. 이어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리브는 입을 쩌억 벌려야만 했다. 산더미같이 쌓인 황금빛 갈레온과 은빛 시클. 이게 전부 내것이라고? 대체 저게 얼마야? 혀를 내두르던 리브는 금고 안에 크넛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푼돈이라서 아예 취급조차 안하는 모양이었다. 멍하니 금고 안을 보던 리브는 그 중 일부를 가방으로 잔뜩 밀어 넣었다.
*
리브가 다시 궤도차를 타고 돌아왔을 때 리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인간이 대체 어딜 간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리브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어딜 간거야. 내 금고 못 봤다고 심통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브는 일단 그린고트를 빠져나갔다. 그런 소녀의 눈에 찾는 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리들은 맥밀란 남매와 블랙가의 청년과 함께 있었다. 맥밀란 가문의 장남은 무어라 열변을 토하고 있었는데 리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가의 청년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듣다가 심드렁하게 몇 마디씩 할 뿐이었다.
“헵시바 스미스 그 여자가 뭐라 말한지 오리온 네가 들었어야해.”
“스미스 여사의 태도는 무례했지만 그 집안은 유물을 소유할 자격이 있어. 스미스 가문은 헬가 후플푸프의 먼 후손이라던데.”
“오, 그건 거짓이야! 원래 그 잔은 중세까지 우리 가문의 것이었다고.”
소녀가 사뿐사뿐 걸어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자 그들의 대화가 뚝 멈췄다.
“올리비아, 빨리 왔네.”
“리들 선배는 그새를 못 기다리고 나온거에요?”
“계좌 만드는 것은 일찍 끝났거든.”
리들에게 잠깐 투덜거리던 리브는 이내 활짝 웃으며 친구들에게 안부를 건넸다. 하지만 셋은 멍하니 리브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들이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아는 리들은 픽 웃었다. 방학동안 리브의 달라진 외모에 상당히 놀란 탓이리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에밀리였다. 에밀리는 친구를 껴안으며 소녀의 성장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리브, 너 엄청 예뻐졌다! 우우, 나도 이렇게 크고 싶어!”
에밀리의 감탄사에 정신을 차린 에드가가 리브에게 너무 달라져서 하마터면 못 알아 볼 뻔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은회안의 청년과 안부를 나누는데 그 순간 리브는 또 다른 은회안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싱긋 미소 지으며 오리온을 가볍게 포옹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청년의 몸이 파삭파삭 굳었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청년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일 뿐이었다. 줄곧 리브에게 시선을 두고 있던 리들의 눈초리가 순간 첨예해졌다.
“오리온, 네가 세심하게 알려준 덕분에 외가의 권한을 손에 넣는게 훨씬 수월했어.”
귓가에 들려오는 리브 특유의 따스한 목소리에 오리온이 멍하니 은회안을 깜박였다. 소녀와의 짧은 포옹이 끝나고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고마워, 오리온.”
“…….”
“나중에 저택에 꼭 초대할게.”
“…….”
“오리온?”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오리온을 보며 리브가 다시 한 번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청년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오리온은 자신의 태도를 사과하며 소녀의 초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라이트 저택에 초대받게 되어서 영광이야. 기쁜 마음으로 방문할게.”
그렇게 간단한 안부를 나누다가 리브는 준비물을 산다는 그들과 합류했다. 약재상에서 마법약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사고, 서점에 가서 교과서와 책을 샀다. 그리고 내내 에드가는 스미스 가문에 대해, 정확히는 헵시바 스미스라는 여자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리브는 귀한 유물로 추정되는 ‘그 물건’이 무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에밀리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후플푸프의 잔’이야. 헬가 후플푸프의 것이었지. 현재 스미스 가문에서 보관중이고 우리 집안과 소유권 분쟁중이야.”
호그와트 창립자 중 한 명인 헬가 후플푸프의 유물. 황금 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리들의 흑안이 반짝 빛났다. 한편 리브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낯익은 느낌에 머릿속을 뒤지고 있었다. 헵시바 스미스, 후플푸프의 잔.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내가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데…….
리브가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동안 리들은 그들에게서 후플푸프의 잔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뽑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에드가는 리들이 의도한 대로 술술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스미스 가문에 대해 못마땅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소유권 분쟁이라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원래 그 잔은 우리 가문의 것이었어! 중세 시대에만 해도 우리 가문에서 소유했다는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있는데 어느 순간 행방이 묘연해졌지.”
어째서냐 묻는 리브의 물음에 에드가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건 가문의 기밀이라 자세하게 말할 수가 없어.”
맥밀란가의 후계자가 한 말을 들으며 블랙가의 후계자는 픽 비웃으며 말했다.
“기밀이 아니라 치부겠지.”
“치부라니! 우리 가문은 단지 피해-”
“오, 에드가. 피해자론을 나에게까지 늘어놓을 필요 없어. 그리고 그런 귀한 유물을 도둑맞았다는 것은 가문의 보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니 가문의 치부가 맞지.”
리브는 흉흉한 에드가의 기세를 보며 분위기를 완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런데 유물을 스미스 가문에서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 수 세기 전부터 잃어버린 유물이고 그쪽에서 훔쳐간 것이라면 꽁꽁 숨겨 놓았을텐데.”
“헵시바 스미스, 그 늙은 노친네가 구멍이었지. 친한 지인에게 자신이 헬가 후플푸프의 먼 후손 뻘이라면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이 부분에서 에드가는 이를 부득 갈았다.) 보물을 보여 줬나봐.”
비밀이라고 했지만 결국 새어나갔군. 그렇게 생각하는 리들의 흑안이 반짝 빛났다. 헵시바 스미스라는 마녀가 후플푸프의 잔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리들은 후플푸프의 잔에 대해 빼낼 만큼 정보를 빼내고 더 이상 들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보물이 헬가 후플푸프의 잔이었던 거지. 맥밀란 가문이 수세기 전에 도둑맞았던.”
후플푸프의 잔에 대한 소유권 분쟁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음지에서 진행 중이었다. 스미스 가문은 자신들이 훔쳤다는 것을 들킬까봐 일을 키우고 싶어하지 않았고 맥밀란 가문은 그런 유물을 도둑맞을 정도로 취약한 보안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이게 공개적인 분쟁으로 거듭나면 망신거리가 되기에 충분했기에 두 가문 모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만큼이나 그들의 분쟁은 치열했다. 물론 정보력이 뛰어난 대귀족의 가문—블랙이나 말포이 같은—들은 이를 알고 있었다. 리브는 듣지 못했지만 라이트 저택의 초상화들도 소곤소곤 이 일에 대해 수다를 떤 적이 있었다.
“어쨌든 그건 우리 가문의 것이야. 그 잔을 가지고 자신들이 헬가 후플푸프의 후손 이라고 우겨대는데 말이 되는 소릴해야지. 그 유물을 소유했던 우리 가문도 함부로 헬가 후플푸프의 후손이라 자처하지 않는데 정말 건방지기 짝이 없어.”
에드가에 이어서 에밀리도 화를 내며 말했다.
“헵시바 스미스, 그 늙은 할망구가 우리 가문을 모욕했어! 글쎄 우리 가문이 헬가 후플푸프의 후손을 사칭하고 있대. 사칭하는게 누군데!”
“스미스 가문의 논리대로 따지면 우리 가문도 헬가 후플푸프의 후손이야. 하여간 웃겨. 그 집안에 후플푸프도 제대로 없으면서! 그리고 가풍도 일정치 않은게 온갖 기숙사가 다 모여 있어. 우리 가문은 전부 후플푸프라고.”
에드가의 말에 에밀리가 자신의 오빠를 쏘아보며 빽 소리쳤다.
“그럼 난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에밀리는 후플푸프가 아닌 래번클로에 배정받은 후로 집안 어르신들에게 간만에 태어난 여아(女兒) 후플푸프가 아니라서 무척 아쉽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있었다. 여러 세대만에 태어난 고명딸이라 무척 사랑받고 자랐으나 그와 별개로 후플푸프가 아니라는 탄식은 에밀리에게 스트레스로 자리 잡아 있었다.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에드가는 여동생을 어떻게 달래야하나 쩔쩔맸고 오리온은 그런 청년을 딱하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과거 에밀리는 순수혈통 모임에서 자신에게 왜 너는 후플푸프가 아니냐고 장난질을 한 몇 몇 가문들의 남아들에게 악귀같은 표정으로 사마귀 주문을 쏘아버린 전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에밀리는 기숙사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다. 여담을 하자면 다행스럽게도 이 날, 블랙가의 방계 막내딸, 도레아 블랙이 선심을 써서 그들의 사마귀 주문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악동 중의 악동으로 꼽히는 포터가의 외동아들, 샤를루스 포터와 서로에게 마법을 난사하는 일을 벌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에밀리의 만행은 묻히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후플푸프랑 고민하는 마법의 모자한테 후플푸프로 보내라고 고집 부리는건데!”
이제 에드가에게 주문을 쏠 기세인 에밀리를 보며 오리온이 안되겠다 싶어 외사촌을 말리기 시작했다.
“오리온 넌 비켜!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미안해 동생아, 그러니까……”
“닥쳐!”
에밀리를 달래는데 합류하려는 리브를 잡아끈건 리들이었다. 왜 그러냐는 듯이 응시하는 리브에게 리들이 소곤소곤 귓속말을 한다.
“올리비아, 나랑 어디 좀 가자.”
“……?”
어디를 가자는 것이냐고 쳐다보는 리브에게 리들이 수려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소녀의 작은 귓가에 또다시 미성을 선사했다.
“녹턴 앨리.”
*
리브는 녹턴 앨리에 미성년자들이 가면 좋지 않은 꼴을 당하기 쉽다고 만류했으나 리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기니 때문에 가는건데 싫어?”
리들은 나기니가 탈피기간에 허물을 벗는 것을 버거워한다며 온욕할 때 쓸 파충류 전용 스킨 컨디셔너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기니를 위한 물건을 산다는 말에 리브는 결국 청년의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녹턴 앨리가 가까워지자 리들은 아까 새로 맞췄던 새까만 망토를 꺼내 입더니 뒤에 달린 진초록빛 후드를 깊숙하게 뒤집어썼다. 리브도 눈치껏 새 망토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채 차근차근 단추를 채우고 있는 리브에게 가까이 다가간 리들은 소녀의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내 래번클로를 상징하는 진파랑빛의 후드가 소녀의 머리를 푹 덮었다.
둘은 그렇게 후드를 깊이 눌러쓴 채로 녹턴 앨리에 입성했다. 녹턴 앨리는 어둠의 마법 물건들을 주로 취급하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무죽죽한 골목이었다. 이런 곳에 파충류 전용 물품을 파는 곳이 있단 말이야? 뭔가 그럴듯하다.
리브는 녹턴 앨리 특유의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불안하게 눈망울을 깜박였다.
심술궂게 생긴 늙은 마녀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무언가가 잔뜩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하마터면 리브는 그 내용물을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 리들은 흘깃 리브의 벽안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쟁반 안에는 사람 손톱인 것처럼 보이는 끔찍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리들은 그걸 잠깐 쳐다볼 뿐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번씩 리브는 그 온갖 것들을 보게 되었는데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제 거의 경련을 일으킬 듯한 리브를 보며 리들이 툭 말했다.
“끔찍한 금서는 잘만 보면서 왜그래?”
“채,책이랑… 실제로 보는 것이랑은… 달라요…….”
그런 리브의 눈에 또다시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어떤 마법사가 들고 있는 커다란 병에 마치 어린 아이 같은 형상의 무언가가 담겨있었는데 리브는 질겁을 했다.
“나 갈래요! 갈거에요!”
리브가 빽 소리치자 리들은 거의 다 왔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 하지만 갓난아기 시체를 봤다고 자긴 여기 더는 못 있는 다고 외치는 리브였다. 잔뜩 겁먹은 리브를 보며 리들은 난감한 듯 작게 웃었다. 그러다가 리브에게 웃음이 나오냐고 한소리 들었지만 리들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곳에 못 있겠다고 거의 울먹거리는 리브를 부드럽게 달래기 시작했다.
“올리비아, 내가 있잖아. 응?”
“싫어요. 나 갈거에요. 시체를 봤다고요!”
“올리비아, 저거 시체 아니야. 맨드레이크를 넣어 만든 마법약이야.”
‘거짓말!’이라고 외치려던 리브는 다시 돌아보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리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리브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갓난아기 형상의 맨드레이크를 사람 시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리브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다가 조그맣게 대꾸했다.
“…여기서는 시체를 봐도 이상할게 없을 거 같단 말이에요.”
리브는 리들에게 혼자 가라며 자신은 녹턴 앨리를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출했다. 리들은 난감한 듯, 그러나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너 혼자 여기 어떻게 나가려고? 너 같은 어린 여자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할 지도 몰라.”
“으으…….”
“어…? 올리비아 네 말대로 정말 시체가 있어.”
리들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속삭였고 그 말에 제대로 질겁한 리브는 꺅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리들에게 안겨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리들이 흑안을 두어번 깜박였다. 코 끝으로 은은한 꽃향기가 훅 끼쳐왔다.
“오,올리비아…?”
당황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품속에서 부르르 떠는 리브를 보며 리들이 애매하게 웃었다. 그냥 장난친거 였는데……. 하지만 이 말을 입 밖으로 냈다가는 가만있지 않겠지. 소녀가 곧바로 태도를 돌변해서 큰 사달을 낼 거라는 것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리들은 거짓으로 일을 벌였으니 거짓으로 일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올리비아, 괜찮아. 곧 지나갈거야.”
리들은 자신의 품속에서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는게 느껴졌다. 정말 무서운지 리브는 무의식적으로 리들의 품을 파고 들고 있었는데 리들은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리들이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러자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소녀의 작은 체구가 자신의 품을 더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미묘하고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만지고 싶어.
그 충동을 참아내는데 은은했던 꽃향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향기의 근원지는 소녀의 황금빛 머리칼이었다. 그 달달한 꽃향기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리들이었다.
나는 너를…, 너를……
그렇게 어떤 생각이 맺히려는 데 리브가 리들에게서 급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청년의 생각이 뚝 끊겼다.
리들과 거리를 넓힌 리브의 고운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민망함이 가득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미쳤어. 톰 리들한테 앵기다니! 그리고 저 품에서 안겨서 마음이 진정되었다는 것을 깨닫자 리브는 얼굴이 화끈 거리는 느낌이었다.
“어서 가요. 나,날이 저물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슬그머니 리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리들은 자신에게 앵기는 계집애들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불쾌해하면 어떡하나, 그 앙갚음으로 자신을 여기 버리고 가면 어떡하나, 그렇게 별 생각을 다하며 리브는 리들을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리들 선배…?”
한편 리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미묘함과 충동의 여운에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자신을 응시하는 푸른 눈망울도, 새하얗고 작은 손도, 자신을 부르는 저 맑은 목소리도, 리브의 모든 것이 자극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애를 써서 참아내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리들의 얼굴은 냉정해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입술을 달싹 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불쾌하셨으면 죄송해요…….”
“……그런게 아니야.”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리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서늘한 감이 있었다. 리브는 또록또록 눈을 굴려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 후로 리들이 어떤 가게에 들어가서 나기니를 위한 스킨 컨디셔너를 살 때까지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둘의 침묵을 걷어낸 것은 우연히 마주친 말포이가의 청년이었다.
“리들?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반가워! 방학 잘 보냈어?”
아브락사스는 후드를 뒤집어쓴 리들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아는 척을 해왔다. 오랜만에 본 리들이 무척이나 반가운 듯 했다.
“그럼 이쪽은 리브?”
“안녕하세요.”
“둘 다 오랜 만이야. 오, 리브. 너 진짜 몰라보겠는데?”
리브에게 숙녀가 다되었다는 둥, 어여쁘다는 둥 예쁘다는 말을 여러 화법으로 떠들어 대던 아브락사스는 리들과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흠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능숙하게 말을 돌린다.
“그런데 녹턴 앨리에는 무슨 일이야?”
“그건 나야말로 묻고 싶은 말이야. 아브락사스.”
리들의 대꾸에 백금발의 청년은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가 바쁘셔서 내가 대신 이걸 처리하려고. 그래.”
아브락사스는 잘됐다는 듯 박수를 한 번 짝 치더니 말했다.
“시간 괜찮으면 같이 가지 않을래? 앞으로 내가 갈 가게는 볼거리가 많거든.”
“무슨 가게인데?”
“골동품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물건을 취급하는 곳이지. 암암리에 유명한 가게야.”
그렇게 말하는 아브락사스의 말투는 제법 의미심장했다. 녹턴 앨리에서 유명한 가게라……. 리들은 흥미가 돌았는지 기꺼이 가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리브는 다이애건 앨리로 자신을 내보내달라 주장했지만 역시 묵살되고 말았다. 리들은 ‘뭣하면 혼자가던가.’라고 말했고 리브는 결국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내가 여기오나 봐라!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전부 감사합니다!
예쁜 그림 그려주신 '금빛 안개'님, '낭랑낭'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 리브 네가 헵시바 스미스가 낯익은 이유는 원작을 읽어서 그래.
* 달달한 꽃향기 나는 리브에게 정신 못차리는 리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를 뭐??? 끝까지 말해봐ㅎㅎ
* 이번 챕터는 좀 길어질 것 같아요. 변동의 조짐이라서여!ㅋㅋㅋ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그럼 다음편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