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53화 (5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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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Chapter 11. 변동의 조짐

라이트 저택에서의 여름방학은 평화로웠다. 종종 부엉이들이 가져오는 편지들을 읽으며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예언자 일보로 마법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곤했다.

“갤러트 그린델왈드가 아이슬란드 마법부를 점거하고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대요.”

“얼마 전에는 덤스트랭을 습격 했다던데 언제 아이슬란드로 간거야? 자신을 퇴학시킨게 어지간히도 못마땅했나보네.”

“그래도 후배들한테 그게 뭔 짓이래요. 본인이 위험한 마법 실험하다가 퇴학당한 거면서.”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혀를 찼다. 머글세계에서 히틀러의 악명이 높듯이 마법세계에서는 갤러트 그린델왈드의 악명이 높았다. 그의 세력은 컸고 그에 의해 털린 국가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영국과 몇 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부 그에게 호된 테러를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 맞서고 반대하는 마법사들은 전부 누멘가드라는 탑에 갇히거나 죽었다.

“왜 우리나라는 오지 않는 걸까. 혹시 영국인인가?”

“자기 모교도 습격한 인간이 퍽이나 애국심 있겠어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리브는 속으로 리들의 예리함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바틸다 백셧과 친척관계였으니 갤러트 그린델왈드는 영국인이 맞을거다. 영국은 침략하지 않는 이유는… 알버스 덤블도어 때문 인걸까. 아리애나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고 있어서 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아가씨, 식사 후에 디저트를 드시겠어요?”

집요정의 말에 리브는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리브가 한바탕 집요정들을 해고 시킨 일의 여파로 저택 내의 집요정의 수가 절반으로 뚝 줄어버렸지만 저택의 유지에는 조금의 문제도 없었다. 이 부분이 마음에 쓰인 리브는 집요정들에게 일손이 줄어서 많이 불편하냐 물었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평소 자신들과 충돌하던 집요정들이 사라진게 기쁜 듯 했다. 처음 리브가 저택에 들어섰을때 집요정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두 그룹은 리브의 예상대로 사이가 좋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찌보면 그들 중 한 그룹이 사라졌으니 업무가 좀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리브는 순수혈통 집안의 집요정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지닌지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머글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비록 아버지는 스큅이었지만.—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알았다. 그래서 리브는 그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세게 나갔고 이는 효과적으로 먹혀들어 집요정들은 내심 리브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물론 리들은 그런 리브를 보며 같잖지도 않게 센 척을 한다며 비웃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리브는 그들에게 착하고 상냥한 아가씨가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기선제압 때문에 무섭게 굴었지만 소녀의 착하고 따스한 성품이 점차 드러났다. 이를 몸소 느낀 집요정들은 하찮은 자신들을 이토록 신경써주시는 착하신 주인님이라며 앞으로 정성껏 보필하겠다고 꽥꽥거렸다.

하지만 집요정들에게 리들은 여전히 무서운 존재였다. 리들은 리브처럼 착하고 상냥한 성품이 아니었고 집요정들을 친절하게 대할 만큼 사려 깊은 족속이 되지도 못했다. 물론 집요정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리브의 강한 당부 때문에 그들을 혹독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고 천한 마법생물이라며 멸시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고 관심 자체가 없어보였다. 청년은 이종족을 지독한 무관심으로 대했고 리브는 그 모습을 보며 무시하고 깔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안도했다.

“호칭은 언제 바꿨어?”

“꽤 됐어요.”

리브에게 꼬박꼬박 여주인님(mistress)이라 부르던 집요정들의 호칭은 어느새 아가씨로 바뀌어있었다.

“여주인님(mistress)이라는 호칭은 부담스러워서요.”

그렇게 대꾸하며 리브는 디저트로 나온 푸딩을 한입 먹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듯 다시 입을 연다.

“오늘 저 외출하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어디 가는데?”

‘마법부’라고 답하며 리브는 다시 푸딩을 한입 떠먹었다.

“마법부는 왜?”

“필리우스 선배가 마법부 산하의 마법 연구소 견학시켜주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라이트 가문 재산 관련해서 아직 처리할 일이 조금 있고요.”

“필리우스 플리트윅? 아, 이번 방학 때 연구소 인턴 생활한다고 했던가.”

리브는 푸딩을 떠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 혼자?”

리들이 미심쩍은 얼굴로 뱉은 말에 리브가 고개를 저었고 푸딩을 삼킨 후 대답했다.

“아뇨, 저 말고 다른 학생들도 몇 있을거에요.”

리브는 푸딩을 다 먹고 이제 마카롱을 집어 들었다. 그릇에 수북한 초콜릿 마카롱을 보고 리들이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거 다 먹게?”

마카롱을 오물오물 씹으며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상 하나 내밀어 보았지만 리들은 고개를 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그 사이 집요정은 리브의 컵에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리브가 우유를 마시며 쾌활하게 말했다.

“이렇게 우유를 매일 매일 마셔서 그런가, 키가 많이 큰거같아.”

“네, 아가씨. 방학동안 정말 많이 성장하셨어요.”

“정말?”

“그럼요. 키를 재보시겠어요?”

당장이라도 줄자를 소환할 듯한 집요정의 기세를 보며 리브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사실 많이 안컸는데 수치를 보고 실망하고 싶지 않아. 그런 소녀를 보며 청년이 툭 내뱉었다.

“그렇게 단 것만 먹는데 큰게 신기해.”

“이건 간식이거든요?”

리들은 피식 웃으며 포크를 들어 접시 위의 마카롱을 쿡쿡 찔렀다. 그러면서 눈은 집요정과 재잘재잘 얘기를 나누는 리브를 향해 있다. 리브는 여름방학 동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했다. 또래보다 작던 키는 상당히 컸고, 고운 얼굴은 앳된 티를 살짝 벗어 전보다 성숙해 보였다. 성장기이기 때문인지 리브의 식사량은 부쩍 늘었고 최근에는 맛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반짝 반짝 생기가 도는 리브를 보며 리들은 포크로 마카롱을 쿡 찔렀다. 부서지기 쉽고 연약한 마카롱인지라 포크의 힘에 모양이 망가져버렸다. 부스러기가 접시에 흩어진 걸 보며 리브가 한 쪽 눈을 찡그렸다. 리브가 뭐라 한소리 하려는데 리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서지기 쉽고 약하기 짝이 없어. 쓸데없이 달기만 하고.”

그리고 툭 내뱉는다. 이런걸 왜 그렇게 좋아하지? 리브가 이번에는 금빛 마카롱을 집어들며 말했다.

“그 달콤한 맛 때문에 먹는거에요.”

“그건 또 뭐야?”

“아, 이거요? 제가 마카롱 좋아하니까 부엌의 집요정들이 새로 만든거에요. 위에 뿌린게 금가루인가?”

한입 베어 먹어보니 카라멜 마카롱이었다. 입맛에 맞냐고 물어보는 집요정에게 리브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요정은 금가루가 좀 남아서 보기 좋으라고 뿌려보았다고 입에 맞아서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한편 리들은 접시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금빛 마카롱을 한 번 보고 리브를 한 번 보았다. 쓸데없이 달고 부서지기 쉬운 약한 과자지만 미관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동글동글한 모양이 어여쁜데 이렇게 금가루까지 뿌려놓으니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래, 보기는 좋다. 리들은 다시 포크를 들어 이번에는 금빛 마카롱을 쿡쿡 찔러볼까 하다가 멈칫하다 그만두었다. 그 대신 옆에 있는 애꿎은 브라운 빛깔의 초콜릿 마카롱으로 목표물을 바꾸었다. 그리고 리들은 리브에게 한소리 들어야만 했다.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요!”

*

“고손녀야, 어디 가니?”

나갈 채비를 하는 리브를 보며 중년 여성의 초상화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마가렛 라이트(Margaret Wright), 리브의 외고조모로 생전에 성뭉고 병원에서 치료사로 일했던 마녀이기도 했다.

“마법부에 가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마가렛은 은근한 목소리로 용건을 꺼냈다.

“그런데 저 방에 머무는 청년 말이다. 어느 집안 자제냐?”

리브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근처에 걸려있는 엘빈스 라이트(리브의 외조부)의 초상화가 끼어들어 소리쳤다.

“마가렛 할머니도 참, 딱 보면 모르겠습니까? 귀한 집안의 아들이겠죠.”

“그래도 일단 어느 집안 자제인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보통 사이는 아닌 듯 한데.”

“보통 사이가 아닌건 여기 있는 어르신들과 저택 내의 집요정들이 전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별걸 다 물으십니다.”

리브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벽안을 깜박였다. 지금 이 분들이 얘기하고 있는게 리들 선배 맞지? 보통 사이가 아니라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교장실에서 막 건너온 리차드 라이트(리브의 외증조부)였다.

“거참 쉬러 왔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버지 목소리가 제일 큽니다.”

“엘빈스 말대로다. 리차드 넌 좀 조용히 하거라.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가렛은 손자 편을 들며 아들을 타박했고 리차드는 성질을 버럭 냈다. 이내 시끄럽게 떠드는 초상화들을 보던 리브는 그들의 헛된 망상을 깨기보다는 일단 자리를 뜨기로 했다. 마법부에서 일을 처리하고 필리우스 선배를 만나기로 했는데 이러다가 약속에 늦겠어.

“어르신들, 저는 일단 가볼게요.”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며 자리를 뜨려는 리브의 걸음을 뚝 멈추게 한 것은 마가렛의 외침이었다.

“고손녀야, 그 톰 리들이라는 청년은 네 약혼자냐?”

엄청난 것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초상화를 돌아본 리브였다. 살짝 입을 벌린채 리브가 빽 소리쳤다.

“약혼자라니……. 절대 아니에요!”

마가렛은 펄쩍 뛸듯한 기세인 고손녀를 보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냐며 핀잔을 주었고 엘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할머님도 참……. 성질도 급하십니다. 약혼자가 아니라 미래를 약속한 그런 각별한 사이 같은데요.”

고조모보다 조부가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리브가 부정하기도 전에 초상화들이 쉴새없이 두 남녀의 사이에 대해 재잘거렸다. 소녀는 그게 아니라 말했지만 초상화들은 소녀가 그러던가 말던가 톰 리들을 유일한 후손 여아(女兒)의 배필이라 생각하며 품평회를 열고 있었다. 리브와 갈등을 빚어 처음에 커튼을 치고 안대를 착용시키겠다는 협박을 받은 조상들도 슬그머니 끼어들어 입을 놀리고 있었다.(“이름이 뭐라고? 톰 리들? 그 청년은 어느 집안인고?”) 심지어 성질을 부리던 리차드 라이트(리브의 외증조부, 역대 교장)마저 말이다.(“둘이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더니 그런 관계였군.”)

“내가 말포이 가문의 초상화가 말하는걸 들었는데 그 집안 후계자가 톰 리들과 제일 친한 친구라더군.”

“그래. 리차드, 네가 말해보거라. 그 청년은 어떠냐?”

“호그와트에서 가장 뛰어나고 천재적인 학생이죠. 만년 수석이고 그 타고난 재능에는 교수들이 혀를 내두릅디다. 이번에 5학년이 되는데 반장으로 낙점되었죠.”

“기숙사는 어디냐? 당연히 슬리데린이겠지?”

“물론 자랑스러운 슬리데린이죠.”

이제 초상화들의 대화는 졸업하고 나서 바로 결혼을 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까지 진행되었고 리브는 뜨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아가, 나중에 둘이 결혼을 하고 나면 금발에 벽안가진 아들 하나는 우리 집안 성을 쓰는거다.”

이 정도까지 되자 리브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리들 선배랑 저는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그만 하세요.”

“아니, 어째서?”

“집안에 데리고 들어왔으면서 아무 사이가 아니라니!”

“집요정들이 아주 정중하게 대하던데?”

리브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이래서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던건데!

“리들 선배랑 저는 선후배 사이일 뿐이고요. 지금은 머글세계의 전쟁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집에 방을 하나 내드린거에요. 손님이라고요 손님!”

초상화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리들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혈통 따지는 꼬장꼬장한 어른들이 웬일이래? 리브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금방 납득했다. 리들 선배는 뭐하나 빠지는게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니까. 또한 다른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렇듯이 조상님들도 리들이 순수혈통이라고 생각하는게 분명했다. 순수혈통이 아니라 한쪽이 머글인 혼혈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리브를 인정하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다가 호그와트에서 무척 우수한 학생으로 꼽힌다는 것을 듣고 그래도 라이트의 피가 흐르지 않냐며 태도를 바꾼 조상들이었다. 아마 리들이 고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도 경이로운 능력을 보며 순수하고 훌륭한 혈통의 피가 흐를 거라고 하겠지. 오리온이 그랬듯이. 순수혈통은 그런 족속들이었다.

“선후배 사이치고는 각별해 보이던데……. 상당히 친해보였단 말이다!”

“그건 저랑 리들 선배가 유년시절을 같이 보냈기 때문이에요. 그냥 친한 선후배로만 봐주시고 말도 안되는 상상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건 리들 선배에게 실례가 될테니까요.”

“친한 선후배라니……. 남녀사이에 그런게 어딨노…….”

리브가 해당 초상화를 찌릿 노려보았고 조상은 딴청을 부리며 다른 초상화들에게 자신의 말에 동의해줄 것을 바랐다.

“아니, 남녀사이에 그런게 어딨답니까? 안그렇소?”

“맞소. 거 블랙의 루크레티아, 그 아이도 그렇게 친구고 동급생이라고 고집을 부리더니 결국 눈이 맞더만.”

“프레웨트의 남아(男兒)였던가?”

리브가 초상화들의 대화를 끊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리들 선배랑 저는 절대 그런 사이 아니니까 그만들 하세요. 우리 가문을 방문한 손님에게 그런 스캔들에 휘말리게 해서 되겠어요? 괜히 다른 집안 초상화한테 허튼 소리 마시고요!”

초상화들의 인맥 네트워크 시스템은 상상하는 것 훨씬 이상이었다. 머글세계에 ‘낮말은 새가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말이 있으면 마법세계에는 ‘모든 말은 초상화가 듣는다.’ ‘초상화와 비밀을 논하지 말라. 만약 논했다면 반드시 함구를 약속받아라.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이 있었다. 초상화들은 투덜거리다가 어린 후손 여아의 째림을 받고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 전 이말 가볼테니-”

“아가, 넌 정말 그 청년에게 아무 생각없니?”

마가렛의 의미심장한 말에 리브는 벽안을 두어번 깜박이다가 대답했다.

“……훌륭한 선배님이라고 생각해요.”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면서 그 뿐?”

말이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거지, 사실 리들과 리브는 고아원에서 접점 하나 없는 사이였다. 둘의 사이를 남녀관계로 의심하는 다른 이들에게 둘러대는 핑계로 대는 말이었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라서 친한 것일 뿐이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 리들 역시 리브를 여동생 같은 아이라서 챙기는 것뿐이라 발언함으로써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을 차단했다. 의혹의 눈길을 쉽게 거두지 않는 초상화들을 보며 리브는 한숨처럼 말을 뱉어냈다.

“그럼 오빠같은 사람이라고 해둘게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돌아섰다. 얼른 가야겠다. 시간이 너무 지났네.

“근데 아가, 난 너랑 각별한 사이인줄 알고 우리 가문 특별 서재를 알려줬지 뭐냐.”

“괜찮아요. 서재의 책은 뭐 손님도 열람할 수 있죠. 리들 선배는 책을 좋아하시거든요.”

대충 대꾸하며 서둘러 저택을 나가려던 리브는 그 다음으로 들려오는 말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그 서재 말고……. 오래된 고서나 귀한 희귀본들이 모아져있는 작은 서재가 있단다. 너에게 미리 알려준다는 것을 깜박했지 뭐냐.”

오래된 고서나 귀한 희귀본…….

“뭐, 책이 상당히 난해하니 잠깐 들어갔다 말았겠지. 어둠의 마법이나 고대 마법들 서적이 가득하단다. 위험한 것들도 있으니 함부로 시도하지는 말고. 사실 익히기도 쉽지 않을게다.”

“…….”

“일반 서재에 있는 것들과는 수준이 다른 것들이지. 혹 관심 있으면 가서 보거라. 세간에서는 어둠의 마법을 악이라 규정하지만 그 매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지. 네가 슬리데린에 배정될 뻔했다는 것은 들었단다. 우리 집안은 어둠의 마법에 그리 배타적이지 않으니 혹 흥미가 있다면…….”

“어,언제…… 그 서재를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묻는 리브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지난 달 초에 알려줬단다. 그런데 왜그러냐?”

특별 서재에는 오래된 고서나 희귀본. 아마 금서들도 은밀하게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위험한 어둠의 마법이나 고대마법 관련한 서적이 가득하리라. 알 수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도, 이런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 상대는 톰 리들이었다. 결국 리브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혹시 여기 마법부에 가본 집요정있니? 누가 내 심부름 좀 해야겠다.”

“아가씨, 제가 다녀올게요.”

“그래, 미키. 마법부 중앙홀에 가서 ‘필리우스 플리트윅’이라는 사람을 찾아. 아마 학생들 몇 명이 모여 있을테니 한 눈에 알아볼거야.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연구소로 가시라고 전해줘.”

필리우스가 인턴으로 일하는 마법부 산하의 연구소는 마법부가 아닌 다른 곳에 위치했다. 친한 학생들에게 견학을 시켜주겠다던 필리우스는 동반 순간이동으로 리브를 그곳에 데려가기로 했다. 소녀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혹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먼저 가시라는 정중한 사과편지를 적어 집요정에게 건내주었다. 이것도 꼭 전해주라는 리브의 명령에 집요정은 그리 하겠다 대답하며 뿅하고 사라졌다.

“지금 리들 선배는 어디에 있니?”

“그 분은 자신의 방에 계셔요.”

“뭘 하고 있지?”

“독서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리브는 엘빈스 초상화가 알려준 어떤 방 안으로 들어섰다. 특별 서재는 보통 사람이라면 지나칠 법한 은밀한 곳에 위치해있었다. 리브는 자신을 뒤따라온 집요정에게 이 집안에서 가장 오래일한 집요정을 데려오라 일렀다. 얼마 안지나서 늙은 집요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부르셨어요?”

“이름이…… ‘루니스’였던가?”

늙은 집요정은 아가씨께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며 감격했다.

“루니스, 너라면 특별 서재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겠지?”

“그곳은 라이트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곳이라서 집요정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알고 있어요. 은밀한 곳이라서 관리도 거의 안되어 있는데…….”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럼 너 이외에도 아는 집요정이 또 있니?”

“아니요. 몇 명 더 있었는데 그들은 죽거나 저택을 나가서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해고시킨 집요정들 중에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들어가자.”

“네, 아가씨.”

집요정 루니스와 함께 특별 서재 안에 들어선 리브는 일단 책들을 살펴보았다. 일반 비하면 소규모였고 책의 수 역시 그에 비할바가 아니었지만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전부 어둠의 마법이나 고대 마법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걸 옮겨야한다. 근데 이걸 어떻게 다 옮기지? 싸그리 치워버려야 하는데……. 대체 어르신들은 집안의 외부인에게 이런 서재를 왜 알려 준거야? 아니, 그들의 탓이 아니다. 톰 리들이 살살 잘 구슬렸겠지. 그는 그런 인간이니까! 왜 내가 이 생각을 못했을까. 톰 리들은 분명 순수혈통 가문에 은밀한 서재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초상화들에게 운을 띄웠겠지.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 냈을테고.

“아가씨, 어떻게 할까요? 책을 옮길까요?”

“잠깐만.”

서재를 돌아보던 리브는 먼지가 쌓인 책과 안 쌓인 책의 구분이 뚜렷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먼지가 안 쌓인 책이 더 많았다. 먼지가 쌓인 것은 톰 리들이 건드리지 않은 책들. 먼지가 안 쌓인 것은… 톰 리들이 건드린 책들. 즉 해당 책은 읽었다는 소리다. 그러한 책의 위치를 보니 차례대로 읽어 나간게 아니라 구미에 당기는 책부터 읽은 모양이었다. 톰 리들이 읽었다는 흔적으로 먼지가 쌓이지 않은 책들은 어둠의 마법 관련 서적이었고, 반대로 먼지가 쌓여있는 책들은 고대 마법 관련 서적이었다. 그리고 리브는 리들이 이 작은 서재에 있는 어둠의 마법 관련 서적을 전부 읽었음을 깨달았다. 리브의 입술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항상 방에 처박혀서 무얼하나 했더니 이 서재의 책을 읽고 있었어…….”

리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독을 하는 자였다. 지난 달 초부터 지금까지. 약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이곳의 책만 주구장창 읽었으리라. 또한 이 서재에 들어서서 어떤 종류의 책들인지 살펴본 톰 리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리브는 리들의 성향을 알았다. 그의 성향은 어둠의 마법을 흥미롭게 여기는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어둠의 마법에 지독하게 빠져있었고 그것을 지나치게 탐닉했다. 그래서 불안한거다. 그래서 두려운거다. 그래서 무서운거다. 사악한 어둠의 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톰 리들기이기에.

지금 역사상 가장 위험한 어둠의 마법사 1위로 꼽히는 갤러트 그린델왈드도 미래에는 볼드모트에게 그 왕좌를 넘겨줘야만 했다. 볼드모트는 그런 자였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어둠의 마법사.

그리고 톰 리들은 볼드모트의 과거. 볼드모트는 미래의 톰 리들. 그 생각을 하자 리브는 속이 뒤틀리다 못해 숨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안 돼. 그건 싫어.

“아가씨,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좋으세요.”

집요정 루니스의 말에 리브는 미소를 지었지만 얼굴은 쓰디썼다.

“주제넘은 참견일지 모르지만…… 혹시 그 손님께서 이 서재의 책을 상당수 읽으신 것 같아서 걱정 하시는건가요?”

루니스는 순수혈통 가문에서 가장 오래 일한 집요정답게 눈치가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 리브가 벽안을 몇 번 깜박이다가 입을 열었다. 쓰디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데에서 그치면 내가 왜 걱정을 하겠어.”

톰 리들은 그것들을 악용할 소지가 다분한 사람이니까. 뒷말을 삼킨 리브는 멍하니 한 책을 응시했다.

[가장 사악한 어둠의 마법의 비밀]

리브의 벽안이 커졌다. 이 책은 내가 호그와트 금서 구역에서 보고 찢어버렸던 그것이었다. 리브는 급한 몸짓으로 해당 책을 꺼내들었다. 어찌나 급하기 움직였는지 옆에 있던 책과 함께 딸려나와 다른 책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리브는 개의치 않고 그 책을 살펴보았다.

역시 먼지가 쌓여있지 않다. 톰 리들은 이 책을 읽었다.

리브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리브는 책에 무언가가 끼어있음을 깨달았다. 브라운 빛깔의 그라데이션 색감이 특징인 손수건. 그리고 그곳에 새겨진 금빛 이니셜.

[T. M. Riddle]

손수건이 끼어져있던 페이지는 호크룩스가 적힌 챕터였다. 책을 든 리브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어떡하면 좋아……. 이어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리브는 손수건을 품안에 집어넣고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 놓았다. 그런 소녀의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침착하게 생각하자. 그래, 그는 이 부분을 읽었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는 호크룩스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을까? 불사를 갈망하고 있을까? 원작은 그랬지만 지금의 그는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그는 볼드모트야, 어리석게 굴지 마. 하지만 이제는 헛된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어진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차라리 어리석어지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합리화를 하기로 했다. 호크룩스 페이지를 읽었다고 그가 호크룩스를 만든건 아니잖아? 그냥 흥미에서 그칠 수도……. 이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는 내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리브의 눈에 바닥에 추락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를 빛낸 어둠의 마법사들]

이 책은 호그와트 금서 구역에도 있는 것이었다. 리브는 몇 번 제목을 본 기억이 있었다. 아마 이 서재에 있는 것은 초판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리브는 멍하니 그것을 집어들어 펼쳐진 페이지를 읽었다.

[고대 그리스 어둠의 마법사 중 하나인 헤르포 더 파울은 최초로 바실리스크를 부화시켰으며 파셀마우스이기도 하다. 또한 호크룩스를 창조한 대마법사로……………………… 필자는 창조된 마법들 중에서 가장 사악하다고 꼽을 수 있는 호크룩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헤르포 더 파울이라면…….

[파셀마우스의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어. 유명한 파셀마우스로는 살라자르 슬리데린과… 헤르포 더 파울이 있지.]

예전에 톰 리들이 파셀마우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마법사였다. 그는 호크룩스의 존재를 내가 책장을 찢어내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 분명했다.

[창조된 마법들 중에서 가장 사악하다고 꼽을 수 있는 호크룩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은 그의 흥미와 호승심을 자극했겠지. 온갖 책을 뒤져서 호크룩스에 대해 기어이 찾아냈겠지. 어쩌면 내가 책장을 찢어내기 전에 이미 그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현재 톰 리들은 호크룩스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고 있고 이를 막으려 했던 내 시도는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 그 때 책장을 찢으면서 했던 생각은 정확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지금 이렇게 맞닥뜨리고 나서야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정말 쓸데없고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그가 볼드모트가 되어 파멸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나는 정말로 나약하고 어리석다. 쓸데없고 소용없는 짓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시도하겠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면서도 행동은 감정적이기 짝이 없었다. 리브는 이제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낄 정도였다. 나는 왜 내 어린 날의 결심을 깨어버렸는가. 그렇게 톰 리들을 철저하게 방관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너무나도.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책 신청해주시는 분들이랑 식물 키워주시는 분들도요♡

사실 오늘도 평소처럼 여덟시 가량 올리려고 했는데 약속이 있어서 일찍 올립니다!

* 현재 시간대는 8월 말이고요. 리브는 여름방학 사이에 폭풍 성장했습니다! 전에는 되게 어린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제 앳된 티를 좀 벗었습니다ㅋㅋ일단 키가 커서 리브는 만족 스러워하는중ㅋㅋㅋㅋ어쩌면 미모도 리즈시절일지 모르겠네요ㅋㅋㅋㅋ개학하고나면 친구들이 리브보고 깜짝 놀랄 예정!! 아, 리들요? 얘는 뭐.. 매년 크고 있고요... 훤칠하심. 마왕님 미모는 뭐 항상 리즈아니겠어요?ㅋㅋㅋㅋ

* 리브는 집요정들이랑 초상화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초상화들이랑 제법 대화도 잘 나구고 그래요. 지니아를 닮은 후손을 그들은 철저하게 외면하지 못합니다....ㅋㅋㅋ그리고 마지막 핏줄이니까요.

* 루크레티아 블랙,  오리온의 누님이고요. 이그니셔스 프레웨트라는 동갑내기와 결혼했습니다. 뜰에 있는 블랙가계도에 보시면 뙇 있습니다. 출연시킬지는 미정이에요ㅎㅎ 졸업한지는 좀 됐고 마법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ㅋㅋㅋㅋ블랙이니까 미인일테고 엘리트겠죠.

* 리들은 리브를 여동생 같은 애라고 하고, 리브는 리들을 오빠같다고 합니다. 그래 리브, 오빠가 애인되고 뭐 그런거지^^! 근데 리들리들 여동생한테 키스하고 싶다고 키스하는 미친놈은 없단다.

* 리들은 초상화들을 잘 구워삶아서 특별서재에서 어둠의 마법 관련 서적을 모조리 섭렵했습니다. 리들은 고대마법을 어둠의 마법보다 낮게 평가하고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원작에서도 보면 볼드모트가 고대마법을 무시했다(?)는 식으로 나오죠. 그래서 릴리가 해리한테 건 고대마법에 의해 몰락하고... 그러고보니 4권에서 무시하던 고대마법으로 부활했는데 좀 아이러니하네요ㅋㅋㅋ

52화 리리플 업뎃되었습니다. 작품설정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런데 여러분.....저는 100개 넘는 코멘수가 너무나도 익숙해여..ㅜㅜ 전편보다 50개 가량 줄었어.... 50분 어디가셨어요 엉엉

한때는 200개도 찍었는데 개강 버프인것인가^_ㅜ... 아니면 재미가 떨어진건가..ㅜㅜ

앞으로 더 분발하겠습니다!

오늘도 리리플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셔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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