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52화 (5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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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Chapter 11. 변동의 조짐

라이트 가문의 가계도에 이름을 올리다.

이는 라이트 가문 소속의 집요정들과 주종관계가 성립했음을 의미했다. 집요정 뿐일까. 라이트 저택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손에 쥐었으며 초상화들 역시 사실상 여주인으로 등극한 소녀에게 봉사할 의무를 가진다. 오리온은 이런 사실들을 전부 리브에게 일러주었다.

“이제 슬슬 나가봐야 하지 않겠어?”

멍하니 생각에 젖어있는 리브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리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청년의 말에 리브는 벽안을 두어 번 깜박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멍한 표정의 리브를 보며 리들이 선심을 베풀 듯 말했다.

“도와줘?”

“…….”

“…….”

“아니요. 제 집이니까 제가 알아서 할 거에요. 절대 나서지 마세요.”

그렇게 답하며 리브는 가계도가 걸려있는 방을 빠져나갔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그 표정을 보며 리들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은 이 가문과 저택에서 외부인에 불과하므로. 가계도에 이름을 적는 것을 도와주는 것 까지가 리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리들이 본 리브는 고작 이 저택 하나를 장악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

리들의 안목은 정확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평소 소녀는 한없이 너그럽고 상냥한 성품인지라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도 이러저리 휘둘릴지 모르겠다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리들은 리브를 마음 약하고 감정적인 여자라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리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저택의 초상화들에게 자신을 라이트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라 소개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물론 많은 초상화들이 불만스러운 내색을 보였고 몇 몇 용감한 초상화들은 후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외치곤 했다. 뒤에서 몇 몇 집요정들이 더러운 머글의 피가 섞인 후손을 인정할 수 없는게 당연하다는 둥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리들은 철저한 방관자의 자세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닌듯 리브가 날카롭게 말했다.

“전부 입 다물어. 한 마디도 하지마.”

리브의 명령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해서 집요정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저는 가계도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고 라이트 저택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손에 쥐었으며 제 몸 속에는 명백히 라이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상화들은 가주에게 봉사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리브의 말에 몇 몇 초상화들이 소녀는 정식 가주가 아니라며 봉사할 의무 따위 없다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리브의 조부인 엘비스를 비롯한 몇 몇 초상화들이 그들과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우리 가문 마지막 후손 아이인데 그러실 겁니까?”) 어떤 초상화들은 불쾌감을 표시하며 다른 초상화로 넘어가려는 낌새를 보였고 그들을 제지한건 리브였다.

“지금 다른 초상화로 가시면 후회하게 되실 거에요.”

물론 그 초상화들은 콧방귀를 뀌며 휭 다른 초상화로 넘어가버렸다. 리브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장미목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휘둘러서 마법을 쓰려던 소녀는 아차했다. 이제 이곳은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더 이상 성인 마법사의 집이 아니었다. 고로 마법을 썼다가는 마법부에서 경고장이 날아올 터. 그것을 깨닫고 지팡이를 집어넣으려는 리브의 움직임을 제지한 것은 리들이었다.

“마법 써도 돼. 분명 추적 불가 마법이 걸려있을 테니.”

그 말에 리브가 고개를 휙 돌려 리들을 응시했다.

“유서깊은 순수혈통 가문의 저택에 온갖 방어 마법이 걸려있는 것은 당연한거 아니야? 이곳에서 어떤 마법이 쓰여지든 간에 추적 불가. 그리고 저 많은 집요정들이 쓰는 마법이랑 겹쳐져서 미성년의 마법인지도 분간 불가.”

뭐라고? 분명 그 때…

[거긴 서류상으로 네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더 이상 성인 마법사의 집이 아니야. 마법을 쓰면 곧바로 마법부에서는 네 짓이라는 것을 알아 차릴거야. 마법 한두 번 쓰는 정도는 경고장으로 끝난다 해도… 글쎄, 그렇게 쉽게 집요정들을 막을 수 있을까?]

리브는 그제서야 자신이 리들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이 인간 날 낚았어…. 리브가 눈에 힘을 주고 리들을 노려보았지만 청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뭐해? 하던 일 마저 해.”

나중에 두고 보자는 듯 청년을 쏘아본 리브는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비어있는 초상화들 각각에 지팡이를 가져다 대고 무어라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새까만 커튼이 생성되었고 리브는 그것들을 단단히 쳐서 고정시켜 놓았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초상화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혹시 이중에 또 저한테 불만이신 분 계세요? 뭣하면 커튼 말고 안대로 해드릴 수도 있는데.”

“…….”

“말씀 하세요. 초상화를 아예 떼버려서 다른 곳에 처박아 버릴 수도 있지만 그건 이 저택을 계속 지켜오신 조상님들께 너무 가혹한 짓인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는 상냥하기 그지없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초상화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어떤 초상화가 소녀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며 노여움을 표출했다가 강제로 안대를 착용해야만 했다. 계속해서 시끄럽게 구는 초상화를 소녀는 단번에 조용히 시켰다.

“침묵 마법을 걸어드릴까요? 아니면, 마스크를 씌워드릴까요?”

그렇게 꼬장꼬장한 조상들의 초상화들을 압박한 소녀가 집요정들을 다스리지 못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주인을 거부하는 집요정이라면 나도 필요없어.”

리브는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이에게까지 착하게 구는 성품은 아니었다. 조상님이라는 것을 감안해 초상화들에게는 예의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소녀의 태도는 180도 바뀌어 있었다. 고운 얼굴에 담겨있던 미소는 온데간데 없었고 늘 상냥하던 목소리는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진심이 아닌 강요에 의한 복종이라면 내 쪽에서 거절하겠어.”

초상화들은 애저녁에 조용해졌고 집요정들도 데굴데굴 눈만 굴리며 소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숨 막힐 듯 조용한 저택 안에서 청년의 미성이 나지막하게 퍼졌다.

“진심이든 강요든 복종만 하면 된거 아닌가?”

“아뇨.”

“어째서? 순수혈통 집안의 집요정들의 주종관계는 특별하지. 절대로 네 명령을 어기지 못해. 이 집요정 군단들을 뭣하러 해고해? 일손은 많을수록 좋아.”

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뭣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는 듯.

“피의 마법으로 결속된 주종관계는 저도 알아요. 하지만 내 명령의 빈틈을 찾아서 쓸데없는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내가 무심코 나가버리라고 했다고 집을 나가서 나의 적에게 나의 기밀을 발설한다거나 하는 일 말이죠.”

리들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아예 생각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으리라. 그에게 자신보다 약한 존재는 필요 가치가 없다면 조금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한 번 충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심이 깃든 충성이 아니면 내가 싫다는 거에요.”

“그놈의 진심 타령….”

그 후로도 리들은 몇 번씩 끼어들었고 세 번째에 접어들자 리브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당신은… 제발 좀… 나서지 말아요! 내가 위계질서 잡고 있는거 안보여요?”

한 번만 더 나서면 쫓아낼거라 위협하려던 리브는 눈 하나 깜짝 안할 리들을 떠올리고는 관두었다. 다행히 리들은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다.

*

으리으리한 만큼 라이트 저택의 집요정 수는 꽤 많았는데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 그룹은 꼬장꼬장하고 순수혈통 우월주의를 그대로 물려받은 늙은 집요정들이 대다수였고, 다른 한 그룹은 비교적 어린 축에 드는 집요정들이었다. 리브는 자신의 태생을 모욕하거나 불만스러워 보이는 전자의 그룹에서 몇 명을 본보기로 해고시켜 버렸다. 옷을 던져주는 리브의 손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얼굴은 냉정해 보일 정도로 무표정했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조상님들 얼굴을 어찌 보라고!”

리브에게 강제적으로 해고를 당한 집요정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리브의 고운 얼굴에 살짝 착잡함이 스쳐지나갔지만 그 뿐이었다. 새로운 주인님이 어려서 자신들의 가치를 모른다는 둥, 나중에 후회할거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리브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의 가치를 알아줄 다른 집안으로 가렴.”

초상화들은 딴청을 피우거나 자는 척을 하는 등 집요정들을 위해 조금도 힘써주지 않았고—겨우 집요정들에게 마음을 쓸 작자들도 아니었다— 새로운 여주인은 냉정했다.

“억지로 나를 모셔서 어찌하겠다고? 그런 거짓된 충성이라면 필요없어. 주인을 물지도 모르는 개를 내가 왜 집 안에 둬야하지?”

본보기로 몇 명의 집요정을 해고시켰음에도 전자의 그룹은 리브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바칠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리브는 그들 대부분을 해고시켜버렸다. 그들을 해고시키고도 집요정의 수는 열이 넘었다. 이 큰 저택을 유지하는 데에는 이 정도 숫자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하니 더욱더 거리낌 없어졌다. 본래 착하고 따스한 성격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이었다. 소녀에게서 이성적인 면모와 맺고 끊음의 확실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리들은 다시 한 번 리브가 슬리데린에 배정받을 뻔한 학생이라는 것을 떠올려야만 했다.

“일단 오늘은 저택을 둘러봐야겠어. 거기 너, 안내 해.”

리브가 작고 순한 외모와는 달리 무른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집요정들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브는 저택을 둘러보려다가 리들의 존재를 떠올리고 집요정 하나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이쪽은 앞으로 저택에서 머무르게 될 분이니까 적당히 방 하나를 내어드려.”

“네, 여주인님(mistress).”

집요정이 리들을 방으로 안내하려는데 청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도 저택을 구경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출했다. 그래서 결국 둘은 사이좋게 집요정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택은 전체적으로 고풍스럽고 엔티크한 분위기였다. 1층에는 커다란 거실과 부엌, 두어 개의 방이 있었고, 2층에는 침실과 서재부터 시작해서 집무실을 비롯한 많은 방들이 위치했다. 하나하나 방을 열어보던 리브는 어떤 방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지니아 아가씨께서 쓰시던 방이에요.”

집요정의 말에 리브는 멍하니 그 안으로 들어섰다. 엔티크한 가구로 채워진 방은 고급스러움을 물씬 풍기고 있었지만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여자아이 방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휑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지만 먼지 한 톨 없이 관리가 굉장히 잘 되어 있었다. 리브는 집요정을 물리고 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곳이 어머니가 쓰던 방이라고…

“올리비아.”

마찬가지로 방을 구경하던 리들이 조용히 리브에게 손짓했다. 리들은 사진이 끼워진 액자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리브와 그것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리들은 왜 호그와트 교수들이 리브를 보며 지니아라는 여성을 떠올리는지 알 수 있었다. 분위기는 사뭇 달랐으나 딸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정도로 쏙 빼닮은 모습이었다. 아마 몇 년의 세월이 지나면 이 사진 속의 여성과 무서울 정도로 똑같아 지리라.

“그게 뭔-”

사진 속에는 리브와 같은 금발에 벽안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 여러 빛깔의 꽃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차분하고 잔잔한 리브와는 정 반대의 분위기인데다가 행복과 기쁨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빛처럼 눈부셨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누군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리브는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훗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성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 생각을 하자 리브는 가슴 한 쪽이 아려왔다.

“엄마….”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가 밉고 증오스러웠다. 리브는 스큅이라서, 마녀인 어머니에게 열등감을 가졌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타인의 일이라면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일이었다. 이성적으로는 납득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 당신이 내게 어머니를 앗아갔어. 부모라는 존재를, 평범한 가족이라는 존재를 앗아갔어.

더 이상 리브는 전처럼 어머니를 떠올리며 울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못 이겨 분노의 눈물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그저 서늘한 얼굴로 고요히 증오를 곱씹고 어머니를 동정할 뿐이었다. 하지만 리브는 자신이 왜 이토록 어머니에게 집착하고 아버지를 증오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착잡함에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눈을 질끈 감아버린 리브의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하나 얹어졌다. 그 손길을 느끼며 리브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소녀에게 리들이 눈높이를 맞추고 제법 상냥하게 말했다.

“어머니 사진 더 찾아볼래?”

“…….”

“이거 말고도 더 있을거 같은데.”

청년의 고요한 흑안과 소녀의 벽안이 마주쳤다. 내내 일렁이던 벽안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리브는 어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

방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지니아의 사진을 싹싹 긁어모으던 둘은 대규모 서재에 이르러서 눈을 반짝 빛냈다. 그리고 조부모님이 생전에 쓰시던 방에서 지니아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발견했다. 연도를 보니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사진이 전부 담겨있었다. 이제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사이좋게 앨범을 넘겨보는 둘이었다.

“너 어렸을 때랑 똑같은거 같아.”

다섯 살 가량으로 보이는 지니아의 사진을 보며 리들이 툭 내뱉었다. 의아함을 느끼며 리브가 질문을 던졌다.

“그 때의 저를 기억해요?”

사실 리들은 고아원 시절의 리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야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머리를 쥐어짜며 잘 생각해보면 조금 기억이 날듯 말듯 했다.

“뭐, 조금……. 그런데 아까 너 집요정들 살벌하게 자르더라.”

그 말에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리브가 고개를 돌려 리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아까의 불만을 주르륵 쏟아내기 시작했다. 맞아, 따질게 있었지!

“맞아, 당신 날 낚았어! 저택에서는 마법을 못 쓴다고요? 미성년 마법 제한 같은거 이 저택 안에서는 소용이 없잖아요!”

“그땐 몰랐어. 여기 와서 깨달았거든.”

분명히 거짓말이다. 리브는 속마음을 표출해냈다.

“거짓말!”

이 뻔뻔한 인간 좀 보소…. 자신을 새초롬하게 쏘아보는 리브에게 리들 역시 잊고 있었던 소재를 입에 올렸다.

“그보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게 왜 쓸데없이 집요정들을 해고시켜? 명령만 잘 들으면 그만이고 기밀을 누설한다고 해도 사전에 주의를 잘 주면 되잖아.”

“작은 구멍이 큰 배를 가라앉히는 법이죠.(A small leak will sink a great ship.)”

“겨우 집요정 따위에 뚫릴 배라면 애초에 글러먹은 거지.”

리들의 냉담한 말에 리브가 쓰게 웃었다. 톰 리들은 본래 이런 사람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이번에도 내가 잘하는 짓인지는 나도 모른다. 어줍잖은 충고일지도 모르고 씨알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안을까. 리브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진지하게 말할테니 잘 들어요.”

“해봐.”

청년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리브는 어떤 식으로 충고를 해야 하나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리들이 어서 말하라며 채근하자 리브는 돌직구를 던졌다.

“리들 선배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무시하고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점을 고쳐야 해요. 계속 그러다가는 언젠가 뒤통수 크게 맞을 거에요.”

“누가 감히 나를?”

과연 그다운 오만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거기다 쓴소리는 듣기 좋지 않은 법이다. 리들 역시 그러한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리브가 한숨을 뱉어내듯 말했다.

“히틀러의 독재가 영원할거라고 생각해요?”

리브는 리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 어느 것도.”

내가 전생에 읽었던 원작에서 그토록 악명을 떨치던 당신도 결국 영원하지 못했어. 결국 해리포터에 의해 파멸하고 말았지. 그리고 내 부모 역시.

“히틀러는 몰락할 거에요. 그리고 미래에 독일은 그의 악명을 부끄럽게 여기겠죠.”

“말도 안되는 소리, 히틀러는 독일의 위상을 드높였어. 독일의 구세주가 아니던가?”

리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미래에 지탄 받을 거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들을 저지르고 있으니까요.”

“그들의 힘은 절대적이야. 약육강식의 법칙 그리고 힘의 논리.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 ‘힘이 정의다.(Might is right.)’라는 말이 있지. 힘이 있다면 무엇이든 용서가 되는거야. 나치 사상이 절대적인 논리로 자리잡혀있는 것을 보면 모르겠어?”

“절대적인 논리라고요? 나치 사상은 잘못되었어요. 사회적 다윈주의는 위험한 사상이라고요. 이 사상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지금의 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에요.”

(사회적 다윈주의는 야생에서 강한 동물만이 살아남듯 사회에서도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으로 히틀러는 이를 이용해 유태인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 또한 전쟁 찬양자들 역시 이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음. 약한 자들이 자연적으로 도퇴되는 것은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함.)

리들이 픽 웃으며 대꾸했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아. 다수의, 그리고 강한 힘을 지녔다면 그건 옳은 것이 되는거야.”

“소수를 무시해서는 안돼요. 그게 바로 독재에요. 독재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어요.”

영롱한 벽안이 흑빛 청년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대답한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강자만이 모든 것을 얻는거야.”

“…….”

“영원한건 없다고? 영원하게 만들면 돼.”

그는 교만하면서도 오만했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 역시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리브는 청년의 마음속에 내재된 사악한 본성을 알았다. 그 본성을 억누를 수는 있을지 언정 바꿀 수 없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바꾸고 싶다. 조그마한 시도라도 나는 해보고 싶다. 누군가는 헛된 시도라 비웃을지 몰라도 나는 당신이 볼드모트가 되어 훗날 파멸하게 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 리브의 입술에서 씁쓸한 어조의 말이 흘러나왔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가 행복할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강자가 약자보다 행복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며 논리적 비약이에요.”

소녀는 정말 래번클로다웠다. 열네 살이 뱉기에는 난해한 용어가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고 허점을 찾아 지적한다. 그리고 열다섯 살의 비범한 청년은 소녀가 무슨 의미로 저 용어를 뱉는지 알았다. 두 남녀는 마법사에게 부족한 논리로 가득 채워진 부류였다. 사고방식은 사뭇 달랐지만.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약육강식이 철저한 힘의 논리일지 몰라도 우리는 인간이에요. 물론 능력있고 강한 자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포식자 노릇을 하고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행복순은 아니에요. 약자가 강자보다 더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절대적인 힘을 지녔다고 절대적인 행복 역시 느끼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거에요.”

소녀의 조곤조곤한 말을 듣고 있는 청년의 얼굴은 지독할 정도로 무표정했다. 고요한 흑안에 어떠한 감정이 일렁였다. 리브는 종종 리들에게 이런 식의 말을 늘어놓곤 했다. 리브는 리들에게 나쁜 사람이라며 무조건적인 비난은 하지 않았다. 종종 청년은 못되고 심술궂다며 새초롬한 말을 내뱉곤 했지만 리들을 ‘옳지 않다’라던가 ‘나쁘다’는 등의 이분법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같은 태도는 기피했다. 나쁜 ‘짓’이라고 서슴없이 지적해도, 리들을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는 식의 발언은 절대 삼갔다. 지금도 그러했다.

하지만 리들은 그 때마다 소녀의 영롱한 벽안을 마주하며 자신이 정말 나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지금도 저 보석같은 눈망울이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 비난하는 것 같았다. 리들은 세간의 시선에는 신경써서 이미지 관리를 할지 몰라도 개개인의 시선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나쁘다고 비난해도 리들은 이에 마음 쓸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쓰인다.

“내가… 아니, 강한 것을 추구하는게 뭐가 나빠?”

‘내가 왜 나빠?’ 그렇게 물을 뻔했던 것을 간신히 정정한 리들이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흑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왜 나빠?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정말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으니까.

리들은 냉정하다 못해 냉혹한 사람이었다. 또한 좋고 나쁨, 선과 악에 마음 쓰는 부류가 아니었다. 약함을 경멸했고 강함을 추구할 뿐이었다. 악이면 뭐 어떤가. 강하다면 선이든 악이든 아무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 톰 리들은 그런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라 비난을 받아도 개의치 않을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그래, 비난을 하는 주체가 소녀라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리브에게 만큼은 그러한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듯 소녀 역시 그랬으면 했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거에요.”

하지만 소녀는 자신을 추종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분명하게 다르다. 그래, 너는 그런 여자였지.

“아마 리들 선배는 세간의 평대로 장차 대마법사가 될거에요. 마법세계에 어떤 식으로든 한 획을 긋겠죠.”

그래서 내가 이토록 너를 신경쓰는 걸지도 모른다. 보기 좋은 얼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면 때문에…  나와는 정 반대에 상극이고 이렇게 쓴소리를 뱉는 너란 여자를 나는 왜 이토록…….

“저는 말이에요. 리들 선배가 약자를 짓밟는 강자가 아니라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강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같은 거요.”

(노블리스 오블리제 :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고운 얼굴에 따스한 미소를 담았다. 하지만 그 꽃같은 미소는 살짝 서글퍼보이기도 했다. 그 미소를 보며 리들은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로 새어나오는 한숨.

마음에 안들면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자신에게 제동을 걸면 역시 제거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리브만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윽박지르고 눈물을 쏙 빼놓아서 다시는 그런 건방진 소리를 뱉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제 리들은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팬아트 주신 여나잎님, 책 신청해주신 분들, 식물 키워주시는 분들 전부 감사드려요♡

* 다들 동거를 반겨주시는 군요!ㅋㅋㅋ그런데 사실 고아원이랑 다를거 없어요... 각자 방 따로 쓰니까여...ㅋㅋㅋㅋㅋㅋ

* 저택 내에서는 미성년 마법사가 마법을 써도 마법부에서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일단 순수혈통 가문의 저택에는 온갖 방어마법들이 걸려있어서 추적을 제한하고, 만약 추적이 된다고 해도 집요정들이 쓰는 마법과 마법사가 쓰는 마법을 구분하는 것을 불가능해요. 원작에서도 보면 도비가 마법을 썼는데 마법부에서는 해리가 썼다고 하죠! 미성년 마법사의 행동제한에는 허점이 많은 듯 싶어요.. 아니, 마법세계의 법들이 전부 그런듯ㅋㅋㅋㅋ마법사들에게 논리가 부족하다는 것은 이럴때 딱 드러나네요.

* 주인공들이 똑똑하면 쓰는 저는 골치아픕니다ㅎㅎ... 리브가 리들한테 히틀러가 어떻고 나치정권이 어떻고 주저리주저리 말하면서 논리적으로 리들을 설득하고 사고방식을 고쳐주려는 이런 대화는 특히요! 쓰면서 머리 터지는줄!!!!!!

*  그런데 리들과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니... 과연 그런날이 올련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뜻을 자기 입맛에 맞게 뜯어고칠놈인데 말이에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느끼셨을지 모르지만 리들이랑 리브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매우 복잡해요. 닮은꼴이지만 사고방식에서는 철저하게 상극을 달리니까... 둘다 그걸 알고 서로 갈등을 안빚으려고 하는데 리브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그런게 있고, 리들은 자신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리브가 불만스러운거고... 그러다가 한 번 빵 터지면 정말 살벌하게 날을 세우는거에요ㅜㅜ 그런데 둘만이 알 수있는 그런 동질감같은 것들 때문에 끌리는 건 또 어찌할 수 없고... 이러한 것들이 리들이 리브에게 관대하고, 리브가 리들을 방관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후기를 읽어주시는 분들의 특권으로 다음편 예고를 쓰고싶은데 음.. 딱히 발췌하기가 힘들어서..ㅠㅠ 아, 이거만 말씀드릴게여! 초상화들은 리들을 눈독(?) 들이고 있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중에 금발에 벽안가진 아들하나는 우리 집안 성을 써야된다고함옄ㅋㅋㅋㅋㅋㅋㅋㅋ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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