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51화 (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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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Chapter 11. 변동의 조짐

    분명 여름방학이 막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모든게 좋았다.

    “올리비아.”

    애칭(리브)은 아니더라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여름방학 잘 보내. 아브락사스, 오리온.”

    톰 리들이 오리온과 아브락사스 선배를 이름으로 불러서 그들이 감격에 젖어 있는 것도.

    “그럼 나도 너를 ‘톰’이라고-”

    “그건 사양할게, 아브락사스.”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은 허락하지 않은 것도.

    전부 좋았다. 코올 부인에게 외가와 인연이 닿아 더 이상 고아원에서 신세를 지을 필요 없다고 말 했을 때, 그녀가 은근히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할지라도—전시상태라서 고아원 사정이 좋지 못했다.— 말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게 괜찮았다. 귀신같은 타이밍에 내 방에 침입한 톰 리들이 저택의 방 한칸을 내어달라 고집을 부리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생떼를 부리는 리들을 리브가 어찌 이길 수 있으리랴.

    *

    양떼와 초원이 펼쳐진 구릉지대, 코츠월드(cotswolds) 지방. 런던에서 약 세 시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전원 마을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 다다른 순간 리브는 마치 중세시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야만 했다. 온화하고 고적한 시골마을은 마치 동화 속 같았다. 이 한적한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감동에 벅차있던 리브를 일깨운 것은 흑발의 청년이었다.

    “이렇게 감상할 시간 없어. 날이 어두워졌잖아.”

    그 미성에 리브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코츠월드(Cotswolds) 지방의 바이버리(Bibury) 마을, 알링턴로(Arlington Row) 7번지.”

    리들은 머릿속에 넣은 라이트 저택의 주소를 읊으며 수려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 리브는 저 미소에 응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정말 내가 잘 한걸까. 저 화상 정말! 리브가 리들을 말없이 흘겨보았다. 최근 있었던 일을 하나 말하자면 리브가 코올 고아원을 나왔다는 것이다. 리들 역시. 그리고 현재 둘의 행선지는 같았다.

    그렇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리브는 방 한 칸을 내놓으라는 리들의 생떼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

    “라이트 저택에 갈거지? 코올 부인한테 고아원 나간다고 하는거 들었어.”

    그렇게 말하며 짐을 싸고 있는 리브의 방에 침입한 리들이었다. 나기니가 쉭쉭거리며 꼬물꼬물 기어와 소리쳤다.

    [리브, 리브. 어디 가? 나도 데려가!]

    [넌 네 주인이랑 있어야지.]

    [그럼 톰도 같이가면 되겠다!]

    헛소리 하네. 리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짐을 마저 챙겼다. 그런 리브에게 리들이 말했다.

    “가계도에 이름 적는거 도와줄게.”

    “도와주실 필요 없어요. 가서 그냥 이름만 적으면 되는 것을.”

    “쉽지 않을걸.”

    리들의 은근한 말투에 그제서야 리브는 청년을 응시했다.

    “거기 집요정들이 초상화들의 사주를 받고 널 막으려 할지도 몰라.”

    “그럴리가요. 내 몸속에 라이트의 피가 흐르는 이상 전부 내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어요.”

    리들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계도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거야. 그 전에는 소용없어. 그 예로 집요정들은 가계도에서 제명된 사람들의 명은 듣지 않아. 그 말에 리브는 무언가 떠오른 듯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반디’, 나와봐.”

    호그와트 주방에서 봤던 ‘반디’는 라이트 저택 소속의 집요정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보았으니… 하지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집요정들과의 주종관계는 피의 마법으로 성립 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리브는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리온이 말하기를 여전히 라이트 저택에는 집요정들이 상당 수 남아있다더라.”

    “…….”

    “그 집요정들이 전부 너를 막아 세우면 가계도에는 얼씬도 못할걸.”

    끙, 리브는 그네들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집요정들의 마법은 무시할게 못된다.

    “올리비아 네가 그랬지? 집요정들의 마법은 무시할게 못된다고. 만만치 않을거야.”

    “…뭐 어떻게든 되겠죠. 나도 마녀에요.”

    “미성년 마법사는 방학 중에 마법 못 써.”

    그리고 리들은 덧붙인다. 거긴 서류상으로 네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더 이상 성인 마법사의 집이 아니야. 마법을 쓰면 곧바로 마법부에서는 네 짓이라는 것을 알아 차릴거야. 마법 한두 번 쓰는 정도는 경고장으로 끝난다 해도… 글쎄, 그렇게 쉽게 집요정들을 막을 수 있을까? 리들의 말에 리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소녀를 보는 청년의 흑안이 반짝 빛났다.

    “올리비아, 내가 도와줄게.”

    “…리들 선배가 어떻게요?”

    “네가 가계도에 무사히 이름을 적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리브가 침묵하자 리들이 고개를 치켜 올리며 덧붙인다.

    “내가 뭐 못하는거 봤어?”

    거만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역시 잘 어울리고 그럴 듯하다. 지금 소녀의 눈앞에 있는 청년은 슬리데린 이었다. 자선을 베풀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다. 분명 원하는게 있을 터. 리브는 그걸 알았다.

    “원하는게 뭐에요?”

    “올리비아, 내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네.”

    “헛소리는 그만 하시고요…. 내가 리들 선배를 하루 이틀 봐요?”

    저건 분명 뭔가 원하는게 있을 때 짓는 표정이렷다. 리들이 리브에 대해 잘 아는 만큼, 리브 역시 리들에 대해 잘 알았다. 그리고 리들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리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 한 칸만 줘.”

    마치 맡겨놓은 물건 찾아 가듯 당당한 말투였다. 뭘 달라고?

    “라이트 저택에 있는 방 한 칸.”

    리브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리들을 응시했지만 청년은 거리낌 없었다.

    “날 이 고아원에 버려둘 셈이야?”

    그 말에 리브는 순간 벽안을 깜박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녀의 고운 얼굴에 잠깐 어떤 표정이 스쳐갔다.

    “버리긴 뭘 버려요. 난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돌아가기는, 태어나서 처음 가는 거면서.”

    리들은 이어서 자신 역시 이 지긋지긋한 고아원을 나오고 싶다며 리브에게 라이트 저택에 있는 방 한 칸을 내달라 재차 요구했다. 저 당당한 모습보소. 리브는 절대 안된다고 외쳤다.

    “다 큰 여자 집에 들어와서 살겠다고요? 말도 안되는 소리!”

    리브가 이성관계에 둔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 자각은 있었다. 한 지붕아래 남녀가 단 둘이 살다니!

    “다 큰 여자같은 소리하네. 아직 덜 컸어. 키도 이렇게 작잖아.”

    그렇게 말하며 리들은 리브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리브는 리들의 손을 내치고는 소리쳤다.

    “제가 미쳤다고 리들 선배랑 동거를 해요? 남녀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건-”

    “지금도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잖아.”

    리들의 대꾸에 리브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맞다, 같은 고아원…. 한 건물 안에서 각자 다른 방만 쓰고 있었다. 그렇게 리브가 아차하는 사이에 리들은 능란한 화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유서깊은 순수혈통 집안의 저택은 무척이나 넓을테지. 그리고 방도 많을 텐데 그 중에 하나만 달라는거야.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그것도 못 들어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전시상태라서 뒤숭숭한 이런 곳에 날 두고 가려고? 고아원 사정도 안 좋아서 언제 문 닫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또 공습이 시작되면 어떡해? 난 그냥 죽으라는건가?”

    리들은 이제 리브가 고아원을 떠나고 다음 날 폭격에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네가 순순히 폭격에 맞아 죽을 인간이냐! 리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폭격 따위 더 이상 없어요!’라고 외쳤지만 리들은 히틀러가 언제 또 영국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대꾸했다.

    히틀러의 야심은 전 세계적으로 뻗어있었다. 그의 악명은 다섯 살짜리 꼬맹이도 알 정도였다. 물론 언젠가는 히틀러의 독재도 끝이 나고 몰락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히틀러의 세상이었다. 현재 전생의 기억은 희미했고 리브는 도저히 2차 세계 대전에 대해 기억할 수가 없었다. 런던을 향한 폭격이 또 있었던가? 모르겠어…. 이제 그런거 기억안나.

    그리고 리들의 말을 계속 듣다보니 이런 혼란한 전시상태에 자신만 홀랑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은 정말 비정한 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마음이 약해지는 리브를 보며 리들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 안에는 나랑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집요정들이랑 초상화들도 있잖아. 단 둘이 사는 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알았어요. 생각 좀 해볼게요.”

    그 대답에 리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생각하지 말고 지금 결정해.”

    강압적인 말투에 리브가 움찔했다. 역효과가 날까 싶어 리들은 곧바로 부드럽게 표정을 관리했다.

    “올리비아, 방 하나만 줘. 난 이 고아원이 정말 지긋지긋해.”

    계속해서 이어지는 리들의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든 내용은…. 청년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리브는 이제 양심의 가책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뭣하면 하숙비라도 낼게. 올리비아, 넌 따뜻하고 착한 여자니까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방 한 칸을 안주고 혼자 떠나버리면 정말 천하의 나쁜 계집애가 될 것만 같았다. 다음 학기에 만날 오리온의 질타—“리브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야. 네가 그렇게 냉정한 애일 줄은 몰랐어.”—가 들려오는 듯 했다.

    “올리비아, 정말 안될까?”

    무엇보다도 리브는 리들이 얼마나 고아원을 싫어하는지 알았다. 어릴 적에도 고아라는 이유로 동정의 눈길을 받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소년은 항상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듯이 고고하고 특별하게 굴었다. 그는 자존심도 강하고 자존감도 높다. 자기애가 엄청나다. 고아 출신이라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토록 혈통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자랐더라면 달랐을테지. 그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어떤 기분인지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톰 리들이 가여웠다. 그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해주고 싶어. 그래서 일지 모른다. 내가 그를 잘 따르는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올리비아, 나 버리고 갈거야?”

    그는 별 의미 없이 뱉은 말 일테지만 나는 순간 마음이 찌르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버림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큰 트라우마였다. 그 역시, 내색은 하지 않아도…. 리브는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다. 저 흑요석 같은 흑안을 나는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그래, 그의 말대로 하숙시켜 준다고 생각하자.

    “…안 버려요. 우리 같이 가요.”

    내 허락에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게 웃어보였다.

    *

    [알링턴로(Arlington Row)]

    7번지 근처로 다가가자 6번지와 8번지 사이에 어떤 문이 생겨났다. 곧이어 넓은 담벼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양쪽 집을 옆으로 밀친 것만 같았다. 머글은 접근 할 수도, 볼 수도 없는 마법이 걸려있음이 분명했다. 리브는 품에서 리코리스에게 받았던 열쇠를 꺼내 들었고 그것을 열쇠구멍으로 넣고 돌렸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넓은 정원과 거대한 저택이었다.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과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저택의 위용에 리브는 잠깐 넋을 잃었다. 오랫동안 비워져 있었다는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그런 리브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리들이었다.

    “올리비아, 정신 똑바로 차려. 이곳의 주인은 너야.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굴어.”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리브는 라이트 저택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서서 복도에 발을 들어놓자마자 반기는 것은 침입자라고 외치는 초상화들의 목소리였다. 리브가 넘실거리는 블론드를 넘기며 그들을 돌아보자 초상화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예전에 이 저택에 살던 아름다운 여성의 어릴적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모습 때문이었다. 그렇게 쥐죽은 듯 조용해진 복도에 이어서 나타난 것은 집요정들이었다. 그들 중 몇 명이 소리쳤다.

    “지니아 아가씨!”

    “지니아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어!”

    하지만 어떤 집요정들은 리브를 긴장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집요정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그 집요정은 리브의 얼굴을 보고 움찔하는 듯 했으나 초상화에게 전해 들은게 있는 모양인지 딱딱하게 말을 내뱉는다.

    “누구신지는 몰라도 이곳은 고귀하고 유서깊은 라이트 가문의 저택이니 나가주세요.”

    “고작 집요정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나가라 마라 명령 하는거야? 웃기지도 않군.”

    리들의 붉은 입술에서 얼음장처럼 차디찬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눈이 부실 만큼 뛰어난 미모는 물론이거와 귀족적이고 우아한 분위기에 집요정들은 살짝 기가 눌린 듯 했다. 그리고 청년의 잘생긴 얼굴은 무척이나 싸늘했다. 리들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챈 리브는 불안감에 푸른 눈망울을 또록또록 굴렸다. 늙은 집요정이 긴장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는 라이트 가문의 저택에서 오랫동안 봉사해온 집요정들이에요.”

    “그럼 본분에 맞게 새로운 주인을 맞으면 되겠군.”

    “저 분이 지니아 아가씨의 따님이라고 해도 가풍에 어긋나는 이는 절대로 따를 수 없어요! 더러운 머글의 피가 섞여있다니, 집안 어르신들이 보면 뭐라 하실까. 오오 믿을 수 없- 히이익!”

    주목나무 지팡이를 꺼내 집요정에게 겨눈 리들의 기세는 몹시 흉흉했다. 리브는 식겁하며 그의 말리기 시작했다.

    “리들 선배!”

    “올리비아, 놔.”

    리브는 리들의 앞을 막아서더니 그의 지팡이 끝을 한 손으로 막았다.

    “리들 선배, 진정 해요.”

    “널 모욕했어.”

    “저 집요정은 집안 어르신들한테 그렇게 주입받은 것 뿐이에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참아요. 제발-!”

    리들은 그제서야 지팡이를 내렸다. 내가 알아서 할거에요. 리들 선배는 가만히 있어요. 그렇게 리들에게 경고성이 담긴 말을 뱉은 뒤 리브는 집요정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 말한다.

    “난 마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이 저택의 소유주야. 그리고 지니아 라이트의 딸이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집요정들이 있는가 하면 리브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집요정들도 있었다. 보아하니 집요정들이 전부 사이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세력이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다. 전자는 나에게 불만이 가득해 보이고, 후자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리브는 후자의 집요정들을 향해 따스하게 웃으며 물었다.

    “가계도는 어디에 있니?”

    리브의 말에 벽에 걸려있는 초상화들이 더욱더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절대 알려주면 안된다는 외침이 있는가 하면, 아까부터 빨리 쫓아내라고 지껄이는가 하면… 저 방에 있단다, 아가. 인자한 목소리에 리브는 고개를 휙 돌렸다. 중년 남자의 초상화가 리브에게 손짓했다. 자신과 같은 금발에 벽안. 이름은 엘비스 라이트(Elvis Wright). 어떤 관계인지는 금방 드러났다.

    “손녀 아가, 가계도는 복도를 쭉 걷다보면 거실이 나오는데…… 방이 하나 있을게다. 그 안에 있단다. 그리고…”

    초상화의 남자는 나의 할아버지였다. 그 세심한 설명을 들으며 리브가 감사의 뜻을 표하며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이해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장미목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어떤 초상화들이 가계도에 이름을 적게 해서는 안된다고 소리 소리를 치고 있었다. 리들은 그런 그들에게 주목나무 지팡이를 겨누며 살벌하게 말했다.

    “올리비아, 이 시끄러운 것들 전부 다 태워 버릴까.”

    리브는 대답대신 애매하게 웃었다. 물론 리들의 위협에 초상화 속의 인물들은 식겁하며 모습을 감춰버렸다. 필시 다른 초상화로 건너갔으리라. 리브의 앞을 가로막고 곧은 기개를 뽐내던 집요정들은 리들의 오오라에 달달 떨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리브가 상냥하게 말했다.

    “이제 비켜주지 않을래?”

    *

    몇 몇 늙은 집요정들이 펄쩍 뛰며 리브가 가계도가 있는 방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 하고 다른 집요정들이 아가씨를 방해하지 말라고 꽥꽥 거리는 등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 살았던 아가씨를 닮은 어린 마녀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입혔다가는 저 조각 같은 미모의 청년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집요정들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귀족 가문의 집요정들은 눈치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고 저 싸늘한 미청년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리들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래서 동족의 피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깐깐한 늙은 집요정들—리들에 대한 무서움을 떨치고 호기롭게 리브를 막으려하는.—을 제 손으로 막기에 이르렀다.

    조부인 엘비스 라이트가 알려준 방에 도착한 리브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계도를 발견했다. 벽 전체에 걸려있는 거대한 푸른 빛깔의 양탄자. 무척이나 오래된 듯 낡아 보였지만 훼손된 부분은 조금도 없었고 고아한 정취를 풍겼다. 양탄자에 금빛으로 수놓아진 문양은 여전히 번쩍 번쩍 빛을 발하며 구불구불 뻗어나간 가문의 가계도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얼핏 보니 가계도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직계로 근근히 핏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데릴사위의 흔적도 꽤 있었고 나의 조부인 엘비스 라이트는 하나, 둘, 셋… 이게 대체 몇 대 독자야. 손이 귀하다더니 장난 아니네. 나중에 세어 봐야지. 그리고 집안에서 제명당한 듯 간혹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리브는 발견했다. 어머니의 이름을.

    [지니아 라이트(Zinnia Wright)]

    리브는 장미목 지팡이를 들어올려 양탄자에 가까이 댔다. 순간 어떠한 기운이 느껴지며 금빛 실이 지팡이 끝에서 얽히기 시작했다. 리브는 어머니의 이름 옆에 금빛 실을 연결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적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부르르 지팡이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Zinnia Wright —]

    가만히 가계도를 보며 엘비스 라이트가 5대 독자임을 알아낸 리들은 블랙이라던가, 말포이라던가 낯익은 가문의 이름을 윗세대에서 꽤 발견했다. 온갖 순수혈통 가문들이 전부 모여있는 것 같았다. 중세에는 손이 이토록 귀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근세에 들어서면서 손이 줄기 시작하더니 근대 부터는 참담했다. 그리고 리브의 어머니에서 끊겨있었다. 그렇게 흥미롭게 가계도를 구경하던 리들은 리브가 아직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깥에서는 집요정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리들은 리브를 채근하려 했으나 지팡이의 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그녀가 무엇을 갈등하는지 알아차렸다. 아버지의 이름을 적을지 말지로 고민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리들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사생아가 되고 싶지 않으면 적는게 좋아.”

    사생아(私生兒), 혼인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리브는 감정에 젖어있던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래, 굳이 사생아라는 불명예를 떠안을 필요는 없어.

    [Zinnia Wright — Oliver Brilliant]

    리브는 아버지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금빛 실이 수놓아지는 내내 리브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또다시 곱씹었다. 당신을 인정했기 때문에 적는게 아니야. 어머니에게 미혼모라는 굴레를 씌우고 싶지 않아서야. 그리고 리브는 부모님의 이름 아래에 자신의 이름 역시 새겨 넣었다.

    [Olivia Brilliant]

    마지막 알파벳을 적었는데도 리브의 지팡이 끝에는 금빛 실이 얽혀 있었다. 소녀는 자신의 탄생 날짜(1927.12.31)를 적었다. 그래도 가계도와 연결을 끊지 않는 지팡이를 보며 리브는 쓰디 쓴 얼굴로 어머니의 생존 연도(1928)를 마무리 지었다. 그제 서야 가계도는 장미목 지팡이와의 연결을 끊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밝은 빛을 띠던 어머니의 이름이 불이 탁 꺼진 것 마냥 어두워졌다. 라이트 가계도의 수많은 이름 중 리브의 이름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리브는 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마법들이며 모든 권한이 자신에게로 넘어왔음을 느꼈다. 자신이 원하면 저 마법들을 해제할 수도 변형시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라이트 저택이 완전하게 리브의 손으로 넘어왔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아피아체레입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우선 휴재공지 낼름 던지고 사라졌는데ㅜㅜ 기다려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코멘트들 정말 큰 힘이 됐고요. 저 감동했어요ㅠㅠ.. 어디서 훈훈하고 따뜻한 냄새 안나요??? 개인적으로 쪽지 보내주신 분들, 성장아이템 주신 분들, 식물 키워주시는 분들 전부전부 감사드려요.

    그리고 팬아트 그려주신 _지아님, 다니스님, 히건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 제 뜰에 가시면 정말 금손분들이 그려주신 어여쁜 그림들을 보실 수 있어요! 꼭 꼭 보세용

    사실 다음주나 이번 주말에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휴재한지 열흘이 넘은지라.. 비축분 털어서 올리고 갑니다 헿

    제가 아직 슬럼프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지라.. 비축분 보충이 끊겼고..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작에서 시기를 착각한 부분이 있어서 플롯을 뜯어 고쳐야했고...ㅜㅜ 휴재를 한다고 멘토링을 완전히 놓기는 힘들더라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한동안 글 안썼다고 손이 녹슨것 같고...하아... 뭐 페이스는 다시 찾으면 되겠죠! 뭔가 말이 횡설수설한 것같은데 기분 탓일거에요 아마도요......

    본편 얘기를 하자면 이번 챕터는 여름방학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음, 딱히 오늘은 덧붙일 말이 없네요.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리리플 남겨주세요.

    49화 리리플까지 작품설정란에 업뎃 완료 되었습니다.

    이변 편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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