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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친밀감 혹은 그 이상(1부 完)
“오블리비아테”
차가운 미성과 함께 소년에게 명중하는 새하얀 빛, 이내 행복으로 반짝거리던 소년의 눈망울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리브는 목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휙 돌렸고 마법을 시전한 자는 톰 리들이었다. 주목나무 지팡이를 소년에게 겨누고 기억력 마법을 걸고 있는 리들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싸늘함이 묻어있었다. 순간 청년의 흑안에 붉은 빛이 살짝 감돌다가 사라졌다.
멀리서 지켜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조심성 없이 복도에서 나기니랑 재잘거리다가 일반 학생에게 파셀마우스라는 것을 들킨 것으로도 모자라서… 비밀을 지켜준다는 대가로… 기가 막힌 거래까지 하고 있었다. 또한 저학년생의 당돌한 외출 신청에 리들은 헛웃음을 뱉었다. 당연히 리브가 거절할거라 생각했던 청년은 리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이어서 속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누구랑 외출을 해? 그 많은 남학생들 걷어차놓고 고작 택한게 저 젖비린내 나는 남자애? 저런 취향이었던가? 리들은 이 상황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리가 좋으면서 기억력 마법 걸 생각은 못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리들은 휘적휘적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된 것이었다. 리들은 알렉스에게서 문제가 되는 기억을 말끔히 지우고 나서야 지팡이를 내렸다.
“리,리들 선배?”
리브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멍하니 있다가 현실을 파악하고 기겁했다. 오블리비아테라면… 기억력 마법 아니야? 이러다가 기억 전부 다 날아가면 어쩌려고! 리브의 경악어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들은 자기 할 말을 할 뿐이었다.
“이 녀석은 네가 파셀마우스라는 것도, 너에게 당돌한 협박을 한 것도 기억하지 못할거야.”
“아….”
순간 멍해있던 알렉스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소년은 자신이 왜 여기 있나 고민하다가 눈앞의 리브와 리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특히 리들은 알렉스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살벌한 것 같아 소년은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리들이 붉은 입술을 열어 차가운 미성을 뱉어냈다.
“내 멘티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아,아닙니다!”
대답을 잘 하는 걸 보니 리들의 기억력 마법은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었다. 알렉스는 리들의 기에 눌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 자리를 떠버렸다. 알렉스가 가버리자 리들의 차가운 흑안은 이제 소녀에게로 향했다.
“너 제정신이야? 왜 그렇게 조심성 없이 굴어? 지금 파셀마우스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몰라?”
“저기 그게…”
리들은 주변을 휙 살피다가 혹시 모르니 지팡이를 휘둘러 간단하게 방음마법을 걸었다.
“마법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파셀통그는 나쁜 재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안 그래도 지금 그린델왈드 때문에 어둠의 마법에 특히 경계하고 있는데 파셀마우스라는 것을 사방팔방-”
“그래서 알렉스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한거에요.”
“비밀? 세상에 비밀이 어딨어. 너만 알라고 친구 한 명한테 말하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한테 말하고… 그래, 전교생의 비밀이 되겠구나.”
리들은 리브의 안일한 대처를 신랄하게 비꼬았다. 리브는 뜨끔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입을 열어 반박했다.
“하지만 제가 부탁을 들어주면 비밀을 지켜줄-”
“그래서 그 협박에 순순히 응하고 있었구만?”
“협박이라뇨! 이름 불러주는거랑 호그스미드 구경 시켜주는게 뭐가 대수라고-”
“어쨌든 협박 맞잖아. 그래, 이름은 그렇다 쳐도 호그스미드 구경? 저 녀석이 네가 파셀마우스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호그스미드 가자고 해도 승낙할거야?”
“상관 없잖아요. 알렉스뿐만 아니라 다른 3학년 애들도 같이 데려가면 되는거고…”
이어서 나오는 리브의 대답에 리들은 또다시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순진할까. 아무래도 아브락사스가 리브를 정확하게 본 것 같았다.
[리브는 똑똑하고 눈치도 빠른데 이성 관계에는 도통 둔하단 말이야. 지금까지는 철벽을 쳐서 잘 막고 있지만… 저런 순한 양의 철벽은 의외로 다른 면에서 구멍이 있기 마련이지.]
알렉스는 다른 면을 이용해 리브의 단단한 철벽에서 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리들의 눈에는 저 어린 소년의 흑심이 뻔히 보였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니…
“이 순진한 여자야, 저 녀석이 너한테 외출 신청 한거잖아.”
“네? 그냥 저한테 호그스미드 구경을…”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네가 순수하게 후배에게 호그스미드 구경을 시켜줬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볼거라고 생각해? 저 녀석도 그렇게 안 받아 들일걸?”
“알렉스는 그냥 기숙사 후배에요!”
“저 녀석이 너를 그냥 선배로만 보는 거 같아? 이 둔한 여자야. 눈치는 어디다가 팔아먹은거야?”
리브가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보다 어린 남학생인데다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깜빡 속은 리브였다. 자신에게 흑심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던 것이다.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에 리브의 철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리들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럴 때는 기억력 마법을 걸어서 말끔하게 증거를 없애버렸어야지.”
“하지만 그랬다가 알렉스의 기억이 전부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단 말이에요!”
리들이 무어라 반박하려는데 리브가 대화의 흐름을 잡아챘다.
“그보다 어떻게 그런 위험한 마법을 남용할 수가 있어요? 그랬다가 알렉스가 백치라도 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지금 ‘남용’이라고 했어?”
리들은 소녀가 거론한 단어 하나를 입에 머금더니 픽 비웃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난 기억력 마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했을 뿐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았어. 너도 봤지만 말끔하게 문제되는 부분만 지웠지. 난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지르는 성정도 아닐뿐더러… 내가 감당 못할 일은 없어.”
오만하기 그지없는 발언이었지만 리들의 미성이 담아낸 순간 그 주인에게 적합한 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대화의 흐름은 다시 리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너 솔직히 말해, 기억력 마법까지는 생각도 못했지?”
리브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리들의 말대로였다. 너무 당황해서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어도 자신은 필요한 부분만 정확히 지울 정도의 실력자가 되지 못했다. 한편 리들은 입술을 달싹 거리다가 아까부터 거슬렸던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너, 다음에 걔 만나면 이름으로 부르면 안 돼. 그건 방금 너와의 거래 내용이었으니까.”
“아, 그러네요.”
다행히 소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리브의 품에 있던 나기니는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유난히 날카로운 태도를 보이는 리들을 보며 리브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일단 자신을 곤경에서 구해줬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의 말대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니 저질렀겠지. 그에게 기억력 마법 정도야 손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일테니. 결과가 좋았으니 리브는 더 이상 책망을 할 필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소녀는 특유의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어쨌든 고마워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리들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어디를 가냐고 물었고 리브는 도서관에 간다며 자신의 품에 있는 책을 보여주었다. 곧 여름방학이니 그전에 책을 반납하려는 모양이었다. 리들은 품 안의 나기니를 쓰다듬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얼마 전에 고서에서 본 내용인데…”
리들은 꾸준하게 비밀의 방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고서를 읽다가 우연히 파셀통그에 대한 내용을 발견했다. 그리고 리브의 미스테리한 파셀통그 능력의 출처를 짐작할 수 있었다.
“파셀통그는 절대적으로 선천적인 능력이라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언어가 아니야.”
그 말에 리브의 벽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내 파셀통그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새까만 뱀에 물려 죽을 뻔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뱀은 본능적으로 파셀마우스에게 호의를 갖는다. 그리고 자신이 선천적인 파셀마우스라면 어린 나에게 새까만 뱀이 쉭쉭거리며 위협하던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결국 난 두려움에 마법능력을 발동해서 그 뱀을 날려버렸고 발목을 콱 물리고 말았지. 그리고 한 달 가량을 독 때문에 잠들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확실히 파셀마우스가 아니었다. 대체 언제 생긴 능력일까. 한 때 리브는 이에 대해 무척이나 고민 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어느 순간 저편으로 밀어버렸다.
“그럼 후천적인 습득이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리브의 물음에 리들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건 아니야. 너 어렸을 때, 뱀에 물려 죽을 뻔 했다고 했지? 간혹, 아주 우연하게 그런 일이 있다고 해.”
리들은 고서에서 봤던 내용을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파셀마우스의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어. 유명한 파셀마우스로는 살라자르 슬리데린과… 헤르포 더 파울이 있지.”
“‘헤르포 더 파울’이 누구에요?”
“고대 그리스의 어둠의 마법사, 바실리스크를 처음 부화시킨 것으로 유명하지.”
어둠의 마법을 깊이 탐닉하고 있는 리들은 그와 관련하여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 있었다. 리브는 어둠의 마법이 매력적이고 흥미롭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처럼 깊이 빠져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변신술이라면 몰라도 어둠의 마법에서는 리들처럼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파셀통그는 특별하고 선천적인 것이지. 하지만 종종 너처럼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경우고 있다고 해. 아주 드문 케이스지만…”
“…?”
“독사에 물려서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살아난 사람들 중에 간혹 파셀통그의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군. 아마 너를 물었던 그 독사는 보통 뱀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리들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가 사경을 헤매며 잠들어 있는 동안 파셀통그의 능력을 흡수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한참동안 리들에게서 파셀통그와 파셀마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리브는 자신이 가진 이 파셀통그의 능력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새삼 느껴야만 했다.
*
도서관 근처 복도에서 리브는 덤블도어 교수를 발견하고 꾸벅 인사했다. 리들은 나기니에게 축소마법을 걸고 소매 안으로 넣다가 역시 정중하게 인사했다. 덤블도어는 역시 둘 다 책을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말하며 인자하게 웃었다. 그리고 지난주에 봤던 시험에 대해 입을 연다.
“적어도 내 과목에서는 특출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청년과 소녀 둘 다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 속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소녀는 이번에도 최고 성적을 받았다는 기쁨인 반면 청년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덤블도어는 리브에게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옆의 리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리들이 들으면 리브가 곤란해할 것 같아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말을 하려는데 리들이 먼저 선수를 쳤다.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려는 모양이니 저는 이만 자리를 피해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톰.”
“그럼 저는 내일 수업 시간에 뵙겠습니다.”
덤블도어에게 작별인사를 한 리들은 자신에게 나중에 보자며 고개를 까딱이는 리브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 친근한 모습을 보며 덤블도어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리들이 자리를 뜨자 덤블도어는 소녀와 자신의 사무실로 가며 인자하게 말했다.
“톰과 많이 친해진 모양이구나.”
“그렇게 보이세요?”
“그렇단다. 리브, 지금도 톰을 싫어하니?”
덤블도어의 물음에 리브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연다. 저는 더 이상 그를 싫어하지 않아요. 진심이 담긴 대답이었다,
“그나저나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래. 라이트 교수님께서 너를 보고싶어 한다는구나.”
그 말에 리브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라이트 교수라면 교장실에 걸려있는 초상화로 접때 자신과 한 판 했던 외가의 조상님이렷다. 리브는 살짝 팀탁치 않다는 표정으로 날짜와 시간을 통보받았다. 아이고, 오늘 밤이네.
*
리브가 덤블도어 교수의 사무실에서 나와 다시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가는데 리들이 따라 붙었다. 어디서 나타난건가 싶어 리브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리들은 곧바로 덤블도어와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왜요, 리들 선배 욕이라도 했을까봐요?”
“뭐야, 덤블도어가 너한테 내 욕했어?”
“하아? 농담도 못하나. 그런 얘기 안했어요!”
자꾸 무슨 얘기를 했느냐 캐묻는 리들에게 질린 리브는 교장실 호출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네가 교장실은 왜?”
“역대 교장 중에 외가의 조상님이 있는데 그 초상화가 절 보고 싶대요.”
“너를 왜?”
“후손이니까 그렇죠.”
리들은 계속해서 추궁하기 시작했고 리브는 책을 도서관에 들어서서 핀스 부인에게 책을 반납하는 순간까지 꾹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리들은 끈질겼고 리브는 얼굴 가득 질린 표정을 짓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리브는 도서관에서 나오자마자 소리쳤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요!”
“전부.”
“말했잖아요. 교장실에 있는 저의 조상님 초상화가 저를-”
“그니까, 그 초상화가 왜 너를 보고 싶어 하냐고. 너 저번에도 교장실 가지 않았어?”
리브는 말한 적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고 소리쳤고 리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가 모르는게 어딨어. 그 뻔뻔한 대답에 리브는 헛웃음을 뱉었다.
“난 너에 대해 전부 궁금해.”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얼굴은 진지했고 목소리 역시 진중했다. 리브는 마른 침을 삼켰다. 기분이 이상하다. 심장 부근이 간지럽다는 생각을 하며 리브는 벽안을 깜박였다. 그리고 이제 리브는 리들에게 라이트 저택에 대해 털어놓고 있었다.
“부르는 이유는 뻔하네. 널 인정한거야.”
“허, 설마요. 그 초상화는 저를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사실… 제가 그 조상님이랑 한 판 하고 왔거든요.”
리브가 망설이듯 뱉은 말에 리들이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말한다.
“네가 설사 막말을 뱉었다 해도 결국 널 인정할 수밖에 없어. 넌 라이트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니까. 너 외에는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고 가문의 명맥을 이어나가려면 너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어떤 초상화들은 핏줄이 끊기지 않았다는 생각에 만세를 부르고 있을걸.”
“그럴리가요. 고지식하고 깐깐한 순수혈통 주의자들이 절 반길 리가 없잖아요. 그들의 기준으로 전 천한 피가 섞여있는 계집애인걸요.”
“그래도 네 몸 속에 라이트 가문의 순수한 피가 흐른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리들의 말에 리브가 툭 내뱉었다.
“그놈의 피가 뭐라고… 피는 다 똑같은 붉은색이라고요. 그걸로 무슨 우월성이며 순수성을 따지고 있어.”
“순수혈통의 피는 달라. 순수할수록 강한 마법력이 깃들어 있지. 네가 그토록 뛰어난 것도 전부 그 피 때문이야.”
이제 리들과 리브의 대화는 순수혈통의 우월성에 대한 논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요. 저의 두뇌는 아버지의 것이에요.”
“하지만 너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변신술 실력은 어머니의 것이지.”
리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너의 그 보기 좋은 외모도 어머니의 것이지. 그 화려한 금발이며 벽안은 라이트 가문의 것이잖아.”
순수혈통은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외모도 뛰어나다는 그의 말에 리브는 곧바로 반박했다.
“크레이브랑 고일은요? 걔네도 순수혈통이라던데.”
“…어디나 불량품은 있는 법이지.”
리들의 신랄한 말에 리브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핀잔을 줬다. 그럴 때는 예외라고 하는거에요. 물론 리들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말이다. 둘의 논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리들 선배는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이죠?”
“그래, 내가 특별한 것도 전부 곤트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흑안이 오만하게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 절반은 머글 부친의 것이죠. 그리고 리들 선배의 그 잘생긴 얼굴 말이에요. 정말 곤트 가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곤트 가에 대해 조사했다면 기사에서 사진은 봤을텐데요.”
머글을 상습으로 공격하는 범죄자였으니까, 그 뒷말은 삼킨 리브였다. 리들은 곤트 가문에 대해 조사하면서 외할아버지인 마볼로 곤트와 외숙부인 모핀 곤트에 관한 기사를 보았고 그들의 사진도 보았다. 누가봐도 부자지간일 만큼 닮아있는 그 모습을 보며 리들은 그들과 자신이 조금도 닮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래, 빌어먹게도 더러운 머글 아버지의 것이지.”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살벌했다. 그 순간 리브는 또다시 청년의 흑안에서 붉은빛을 보았다. 자신이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은 리브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브릴리언트, 너와 나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아버지를 증오한다는 거야.”
“……”
“난 내 아비와 닮은 점이 있다는게 싫어.”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에는 짙은 증오와 경멸이 묻어나 있었다.
“저는…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아요.”
하지만 리브는 리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슬며시 눈길을 피하는 리브의 귓가로 리들의 차가운 미성이 내려앉았다.
“정말?”
“…….”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 정말로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아?”
리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꺼풀을 내리깔고 입술을 파르르 떠는 리브를 보며 리들이 차갑게 웃었다.
“브릴리언트, 너는 거짓말이 서툴러. 그래서 레질리먼시따위 쓰지 않아도 전부 보여.”
“…….”
“마녀인 어미를 버린 비정한 아비라며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지 않았던가? 너는 네 아비를 증오하지.”
리들은 핵심을 찔렀다. 그리고 리브는 마음 깊은 곳을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소녀를 보는 청년의 흑안이 요요하게 빛났다. 리브가 간신히 입을 열어 변명하듯 말을 뱉어냈다.
“…나는, 당신처럼 아버지가 마법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증오하는게 아니에요.”
리브는 차마 부모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면 안된다고, 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이어진 사이라는 그런 말들을 뱉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런 어줍잖은 충고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가식이고 지독한 위선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만큼 아버지를 증오한다. 결국 나는 내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을 택했다. 진실을 알고 나서도 이 선택은 그대로 이어졌고 더욱더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키울 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만큼 착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내가 진실로 착하다면 아버지를 용서했겠지. 그렇게 생각도 끊기고 마음 깊숙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난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렸기 때문에… 증오하는거라고요.”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에 리들이 흑안을 깜박였다. 고개 숙인 리브의 머리를 가볍게 누르며 리들이 말했다.
“알아.”
청년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나는 그런 너를 이해해.”
감정 한 조각 없는 목소리였으나 리브는 울컥 마음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를 이해해준다고 했다. 다른 이라면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겠냐고 할, 그런 나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올리비아 브릴리언트, 나를 봐.”
청년의 붉은 입술이 소녀의 이름을 머금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라고 말한다. 리브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결코 들지 않을 것 같던 얼굴을 천천히 들어 미성의 주인공을 응시했다. 소녀의 벽안과 청년의 흑안이 얽혀들어갔다.
“너 역시 나를 이해하지?”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흑안에 이채가 서렸다. 이해한다고 대답 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간절해보였다. 자신에게 공감을 구하는 저 흑요석 같은 눈을, 리브는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리브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하지?”
그리고 확실한 대답을 원하는 그에게 리브는 그 대답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네, 당신을 이해해요.”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작은 입술을 열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내어준 소녀를 보는 청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저 코멘트 읽는거 너무너무 좋아해요>< 감상코멘 보면 힘이 솟아요!
맞아, 팬아트 그려주신 AnneMo님 정말 감사합니다! 리브 너무너무 귀여워요ㅜㅜ독자님들도 가서 보세요!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움..♡
* 저 선작 5000넘었어요! 얏호! 3000 넘었을 때만해도 너무 놀라서 이거 유지만 하자고 했는데 4000이 넘어가고 이제는 5000ㄷㄷㄷ 진짜 지금부터야 말로 유지해야할 시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선작 3000인가 4000넘었을 때 올리려고 써놓은 외전이 있었는데 '선작 5000기념 외전'이 되겠네요ㅋㅋㅋ왜 못올렸냐면요. 본편이랑 살짝 안맞는 부분이 있어서에요ㅋㅋㅋ그 문제의 에피소드를 지난 챕터부터 넣으려고 했는데 뭔가 안맞아서 못넣고 있음..ㅠㅠㅠ이번 챕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넣어야해여...그래서 외전은 아마 이번 챕터가 끝나면 수정 좀 거쳐서 올라갈 수 있을것 같아요ㅋㅋㅋ그냥 리들리브의 소소한 에피소드에요ㅋㅋㅋ
* 코멘이나 쪽지로 오타지적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