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43화 (4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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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자각

“브릴리언트, 이번 주말에 나와 함께 호그스미드에 가줘!”

남학생의 외침을 들은 리들의 얼굴 표정이 은근해졌다. 흑발 청년은 몇 번 리브가 고백을 받거나 외출 신청을 받는 장면을 본 적 있었다. 역시 저 보기좋은 얼굴 때문인가. 리들은 같은 기숙사 학생들이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리브는 상냥하고 따스한 성격으로 인해 범접하기 힘든 리들과는 달리 이성의 접근이 잦은 편이었다. 리브 본인은 모르지만 ‘G’에서 ‘R’로 끝나는 기숙사 학생들을 중심으로 뒷 세계에서는 벌써부터 그녀를 두고 소유권 분쟁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마치 톰 리들 팬클럽 여학생들이 리들을 두고 그 누구도 고백하는 배신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협약을 맺은 것처럼 말이다.(“누구든지 톰 리들에게 마수를 뻗는다면 배신자로 생각하고 처단하겠어!”)

그리고 리브는 그 어떤 남학생이 고백이든, 외출 신청을 하든 단 한 번도 허락의 말을 뱉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성 관계에 있어서는 오리온의 판단—“나중에 리브를 데려갈 남자는 마음고생 좀 할거야.”—은 적중했다. 소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학생들에게 철벽을 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돌직구를 던지면 곧바로 소녀는 물러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휭 떠나버렸다. 날아가는 속도라면 빗자루 꼬리라도 붙잡겠지만 마치 순간 이동과도 같은 속도이니 그 누구도 붙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리들은 왠지 모르게 즐거움을 느껴야만 했다.

현재 그리핀도르 남학생의 용감한 외출 신청에 리브는 푸른 벽안을 깜박였다. 예전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이런 데이트 신청이며 고백에 어느정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답은 언제나 정해져있고 나는 말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는 거쳐야겠지.

“그보다 누구…?”

“아, 나는 5학년이고…”

이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남학생에게 리브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해야겠네요. 곧 시험이라서 호그스미드에 갈 생각은 없어요.”

리들은 이제 재미있는 책을 읽는 심정으로 둘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발동되는 리브의 철벽에 리들은 붉은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그럼 다음에라도-”

“무엇보다 소이어 선배랑 저는 친분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불편하네요.”

“그럼 지금부터 알아가면-”

“미안하지만 그것도 좀 힘들겠네요. 곧 시험이라서 바쁘거든요.”

계속되는 거절에 소이어라 불린 남학생은 풀이 죽었고 그 사이 리브는 “그럼 저는 이만.”이라 짤막하게 말하며 뒤돌아섰다. 터벅터벅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가는 남학생을 보며 리들은 또다시 유쾌함을 느껴야만 했다. 리들은 기분 좋게 웃으며 이번에는 리브와 발을 맞췄다.

“시험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제가 수석 자리를 괜히 유지하는건 아니에요.”

“난 누가 너한테 차이는 모습 보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

그 말에 리브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하여간 악취미라니까, 남의 불행을 보는게 그렇게 좋아요?”

“그 불행을 만드는 너보다는 내가 낫지 뭐.”

그 말에 리브의 고운 얼굴이 살짝 찡그러졌다.

“나는 말이에요, 마음 없는 상대를 이리저리 간보며 만나는게 더 그 사람에게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녀석 말대로, 서로 알아가다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

그 말에 리브가 빤히 리들을 응시했다. 리브의 표정에 리들이 덧붙였다.

“말포이가 하는 말이야. 내 철학은 아니고.”

“어쩐지….”

“그런데 너 꽤나 쌀쌀맞더라.”

“원하는 대로 해줬으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말고 꺼지라고 하는 그쪽만할까요.”

둘은 이러쿵저러쿵 말을 주고받으며 필요의 방으로 들어섰다. 쇼파에 털썩 앉으며 둘은 계속 나누던 대화를 연장해나갔다. 사랑을 어찌 생각하냐는 리들의 말에 리브의 입술에서 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했잖아요. 난 사랑이라는 감정에 그리 가치를 많이 두고 싶지 않다고.”

리들의 잘생긴 얼굴에 맺힌 알 수 없는 표정에 리브가 덧붙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제 가치관으로 깎아내릴 생각은 없어요. 그들에게 전부라면 그런 것이겠죠.”

“……”

“제 철학이라고 해둘게요.”

“고로 너는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싶지 않다?”

리들은 핵심을 잡아냈고 당황하면서도 리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녀는 변신술 연습 겸 장미목 지팡이를 휘두르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책이 순식간에 병아리로 변했다. 작게 삐약 거리는 병아리를 찬찬히 살피며—혹시 책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나 싶어서— 리브는 다시 책으로 되돌렸다.

리브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애들까지 폄하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이 순간만큼은 진심일 테니까. 하지만 종종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노라 수줍게 고백하는 애들에게는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미안함과 동정심만으로 그들을 받아줘야겠다, 데이트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마음 없는 상대를 이리저리 간보며 만나는 건 좋지 않다. 잔인하게 희망고문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틈을 보이면 그들은 기대하겠지. 그건 싫다.

“사랑이라… 정신 차리고 보면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거죠.”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제가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요?”

“진심 어쩌고 운운할 줄 알았어. 넌 그런 여자니까.”

리들의 말에 리브가 장미목 지팡이를 손 안에서 굴리며 대꾸했다

“내 부모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야말로 불같은 격렬한 사랑을 했죠. 사랑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기꺼이 버리고 서로를 택했어요. 참 대단하죠.”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부모님에 대한 소재만 나오면 날을 세우고 감정적으로 돌변하기 일쑤였던 네가 맞는걸까. 이렇게 냉정한 얼굴로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내는 리브가 리들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흡족하기도 했다. 마음 정리가 확실히 된 것이겠지. 청년은 더 이상 소녀가 따스한 빛을 잃고 무너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따스함을 잃더라도 그 자리에서 빛나주길 바랐다.

“하지만, 빨리 타오르는 불은 그만큼 빨리 꺼지는 법이에요. 타오르는 그 순간만큼은 화려하고 뜨거울지도 모르지만 꺼지고 나면 아무 것도 없어요. 새까만 재를 다시 모으면 뭐해요. 재투성이가 되어 더러워질 뿐이죠.”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얼굴은 냉담했다.

“그런 불이라면 저는 애초에 피우고 싶지 않네요.”

리들의 얼굴을 본 리브가 고운 얼굴에 미소를 작게 머금고 말했다.

“감정에 무지한 당신이 사랑을 가치 있게 여길거라고도, 제 생각에 동의할 거라고도 생각 안해요.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할 거 없어요.”

“…내가 뭘? 난 그저 의외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렇게 내뱉으며 리들은 말없이 책을 폈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펼치더니 시험에 잘 나오는 챕터라며 아래에 주석까지 달아준다. 이런 화제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그의 성향을 알기에 리브는 멘토링이나 하자는 그의 의사를 받아들였다.

*

“미네르바 선배, 신인 루키상 받은거 정말 축하해요.”

신간 [변신술 투데이]를 흔들며 리브가 말했다. 미네르바는 쑥스러운 듯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정말 대단해요! 7학년 선배들도 받기 힘든 상을 받으시다니!”

리브는 미네르바가 제출한 논문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으며 찬사를 뱉기 바빴다. 저명한 학술지인 [변신술 투데이]에서는 종종 변신술 논문 공모전을 열곤 했는데 이번 ‘신인 루키상’에 호그와트 6학년생인 미네르바 맥고나걸이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것이다.

“리브, 아마 넌 나보다 더 빨리 받을 수 있을거야.”

그 때 상냥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은 여학생이 다가왔다. “미네르바, 신인 루키상 축하해!” 노란색과 검정색이 교차된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것을 보고 리브는 한 눈에 그녀가 후플푸프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반장 배지를 보고 그녀가 5학년이나 6학년이겠구나 어림잡은 리브였다.

“리브, 인사해. 이쪽은 내 멘티인 포모나 스프라우트. 후플푸프 5학년.”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쪽은 내가 아끼는 후배인 리브 브릴리언트.”

미네르바의 말에 포모나가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네가 바로 그 변신술 천재구나! 에드가한테 들었어, 그리고 래번클로 3학년 수석!”

“덤블도어 교수님의 애제자이기도 하지.”

“과찬이세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브가 작게 웃었다. 미네르바는 포모나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입을 열었다.

“포모나, 온실에 갔다오는 길이야?”

“응, 비어리 교수님이랑 키우고 있는 식물이 있는데 너무 활발해서 말이야.”

포모나는 리브가 대화에 낄 수 있도록 자신이 약초학 담당인 비어리 교수와 키우고 있는 식물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친절한 배려에 리브 역시 자신이 갖고 있는 약초학 지식을 동원해서 대화에 활력을 주기 시작했다. 약초학을 좋아하는 포모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 진짜 똑똑하다! 브릴- 아니 리브라고 불러도 될까?”

“그럼요.”

“에드가랑 편하게 지내던데 나한테도 편하게 해. 포모나라고 불러.”

“음, 그럼 다음에 만날 때부터 그렇게 할게요.”

이제 세 마녀는 재잘재잘 약초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변신술로 화제를 돌렸다. 과연 변신술 과목에서 선두를 달리는 사람답게 미네르바와 리브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리브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에 호의적인 미소를 띄고 있는 잘생긴 흑발 청년, 톰 리들이었다.

“브릴리언트, 여기서 뭐해.”

“아, 리들 선배.”

리브가 밝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자 리들은 소녀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청년은 소녀가 매고 있는 살짝 삐뚤어진 푸른 빛감의 넥타이를 보며 잠깐 흑안을 깜박였다.

“아직 시간은 안됐지만 내가 일이 생겼거든. 멘토링 시간을 앞당겨야 할 것 같은데.”

“전 괜찮아요.”

“지금 해야할 거 같아.”

리들은 그렇게 말하며 미네르바와 포모나에게 자신이 리브를 데려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두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브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리브는 아쉬운 듯 둘에게 나중에 보자는 말을 한 뒤 돌아섰다. 리들과 발맞춰 걸으며 리브가 불쑥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길래 갑자기 시간을 당겨요?”

“슬러그혼 교수님 호출.”

리들은 또래에 비해 키가 컸고 리브는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이었다. 그로 인해 보폭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리들은 리브가 자신과 함께 걷는 데에 버거워하지 않도록 보폭을 맞춰 주는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춘 리들은 고개를 휙 돌려 리브를 응시했다. 정확히는 리브의 목 쪽을.

“역시 못 참겠어.”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당연히 일본 만화 좋아한다고 매국노는 아니죠! 일본 문화 좋아할 수도 있고 그건 개취에요. 제가 욕한 건 역사의식 없이 일본 실드치는 것들임미다. 인터넷 하다보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둥 멍멍거리는 애들이 있더라구요.. 아바다 케다브라 날리고 싶은 느낌^^! 너흰 그냥 일본으로 꺼져⊙▽⊙

* 딴여자랑 키스한 리들을 본 리브나 고백받는 리브를 본 리들이나 왜 둘다 반응이 미적지근하냐구요? 당근 자각이 안됐으니까여!ㅎㅎ

* 여러분 제가 리들한테 리브를 쉽게 줄 것 같습니까?^0^ 오리온이 한 말 기억하세요? 리브 데려갈 남자는 마음 고생좀 할거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리들리들 난 너에게 마음고생을 수여하겠숴. 거절은 거절한다. 서브남 비스무리한 거 하나쯤 등장해서 속 좀 긁어놔야 하지 않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리들 세상만사 네뜻대로 돌아가는건 아니란다. 내가 너에게 인생의 쓴맛을 보여주마. 역시 거절은 거절한다.

* Live Brilliant! 이게 바로 현대자동차 광고 문구라죠ㅋㅋ 어떤 분이 연재 초기에 코멘으로 알려주셔서 후기에 언급해야지 하면서 계속 잊고 있었네요ㅠㅠㅠ또 어떤분이 언급하셔서 기억남ㅠㅠ 그분에겐 ㅈㅅ....사실 전 그때 첨 알았어요ㅋㅋ얼마나 신기했는지ㅋㅋㅋ비록 우리의 리브는 Live가 아니라 'Liv'지만요!ㅋㅋㅋ

<44편 예고편>

“손대지 말아요. 왜 이러는 거에요…”

*

“왜 내 얼굴을 한참 보다가 한숨을 쉬어? 그것도 두 번이나.”

“한숨 나오게 잘생겨서요. 도무지 흠이 없어.”

*

“세기의 역작일지 모르나 헤어날 수 없는 어둠에 물들면 그 아름다움은 영영 잃고 말겠지.”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한테만 알려드림 44편은 오늘밤 8시쯤에 올라갑니다!

이게 바로 삼연참.. 맞죠?ㅋㅋㅋㅋ

어쨌든 오늘 자각 챕터 끝내버릴거에요. 헿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그럼 다음편에서 만나요!

+ 헐 용량 왜이래;;; 44편은 이거보다 용량 더 많아요. 아마도...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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