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40화 (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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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자각

리브는 오리온의 도움을 받으며 밀린 숙제를 해나가고 있었다. 방금 기숙사 공동 휴게실로 들어온 리들을 보며 오리온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리들 선배, 안녕하세요!”

“안녕, 둘 다 바빠 보이네.”

그제서야 리브는 고개를 들고 리들을 응시했다. 소녀는 가볍게 인사한 뒤 다시 마법의 역사 교과서로 고개를 돌렸다. 오리온의 필기를 참고하며 주석을 달고 있던 리브는 머리가 아픈듯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18세기에 일어난 도깨비 반란, 뭔 놈의 도깨비가 이렇게 많아. 그렇게 투덜거리며 리브는 부지런히 깃펜을 놀렸다.

“오리온, 나 이거 끝나고 고대 문자 필기도 보여줘.”

“그건 어제 했어, 리브.”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그럼…”

“여기 있어. 산술점.”

오리온은 책상 위로 산술점 교과서를 올려놓았다. 리브가 열심히 필기를 베끼고 숙제를 하는 사이 오리온과 리들은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에 에밀리와 멘토링을 끝낸 아브락사스가 합류했다.

“리들, 그거 알아? 퇴학당한 맥스 존슨 말이야.”

존슨이라는 말에 작문을 휘갈겨 쓰고 있던 리브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그 자식만큼은 남자구실 못하게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깃펜이 양피지를 무참하게 뚫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리온이 곤란한듯 작게 웃었다. 리들은 그런 소녀를 힐끗 보다가 팔랑팔랑 새 양피지를 던져줄 뿐이었다. 아브락사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독사한테 물려서 성뭉고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라더라.”

독사라고? 리브가 고개를 퍼뜩 들어 리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리들은 그런 소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역시 얼굴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걔네 단체로 무슨 뱀한테 원수라도 졌나봐. 걔네 퇴학당하기 전에도 뱀한테 물려서 병동에 자주 실려갔었잖아.”

“나기니한테도 물렸었지. 뱀하고 파장이 안 맞나봐.”

그렇게 말하며 리들이 작게 웃었다. 그 뻔뻔한 모습을 보며 리브는 기가 찬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중 오리온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치료되지 않는 독인가봐? 장기 입원이라는 걸 보면.”

“곧 죽겠네.”

이번에는 리들이 말했다. 그 말에 리브가 눈을 부릅뜨고 리들을 쳐다보았다. 리들은 ‘내가 뭐?’라는 표정으로 리브를 쳐다볼 뿐이었다. 둘이 치열하게 눈을 마주치는데 아브락사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그렇게 치명적인 독은 아니야. 생명엔 지장없어. 그저… 음, 조금 곤란한 부위에 물렸거든.”

“곤란한 부위라니?”

리브는 이제 리들에게서 눈을 떼고 아브락사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방금 오리온의 물음에 아브락사스가 뜸을 들였다. 입술이 씰룩 거리는 것을 보니 웃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듯, 하지만 리브를 곁눈질하며 말하기 민망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음, 리브처럼 어여쁜 숙녀 앞에서 말하기는 굉장히 곤란한데…”

그 때, 사람 얼굴만한 크기의 상자가 아브락사스의 머리에 명중했다. 백금발의 청년은 악소리를 내며 뒤통수를 문질렀다. 그리고 뒤를 확 돌아보며 소리쳤다.

“에밀리, 아프잖아! 숙녀답지 못하게 이게-”

“너야말로 신사답지 못하게 이 무슨!”

리브는 떨어진 상자를 집어 들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허니듀크 상품들이 가득 있었다. 그런데 바퀴벌레 과자며 피맛나는 사탕, 고추 도깨비—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맵다—, 딸꾹질 초콜릿 등등, 그야말로 받는 사람을 골리기 위한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선물이었다. 그나마 양호한건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였다. 에밀리는 상자에서 아무거나 꺼내 내용물을 개봉하고 있었다. 상표를 보니 ‘쫄깃빵’. 안에는 온갖 맛이 나는 팥이 듬뿍 들어있었다. 정상적인 팥이 든 것은 거의 없다고 했던거 같은데…. 그래도 에밀리가 꽤 약한 것을 꺼냈다고 생각한 리브는 쫄깃빵의 크기에 곧바로 그 생각을 수정했다. 무려 애기 주먹만한 크기였다. 에밀리가 저걸 말포이의 입에 한 번에 넣지 않으면 난 톰 리들을 착하다고 하겠어.

“아브락사스, 이거나 먹어.”

“에밀리, 자,잠깐!”

“빨리 입 벌려. 우리 아브(아브락사스의 아명) 우쭈쭈.”

“너 누가 그 이름을 부- 읍-읍-”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며 에밀리는 빅 사이즈 쫄깃빵을 청년의 입안에 쳐넣고 있었다. 까치발을 해서 왼 손으로는 청년의 백금발을 강하게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꾸역꾸역 빵을 밀어 넣는다. 기어이 끝까지 빵을 입 속으로 밀어 넣고만 에밀리는 싱긋 웃어보였다. 아브락사스는 순간 악마의 미소를 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입안에 가득찬 빵을 수습하려 애썼다. 그런 정혼자를 두고 에밀리는 리브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존슨이 독사에 물린 부위는….”

에밀리는 말끝을 흐리다가 순간 백금발의 청년을 찌릿 노려보았다. 호흡곤란에서 벗어난 아브락사스는 달콤한 팥이 걸렸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빵을 베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후계 생산에 필요한 부분 있잖아. 저 자식이 간수 못하고 함부로 휘두르고 다니는 거.”

에밀리의 노골적인 발언에 제대로 사레가 걸린 아브락사스가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오리온은 차마 눈뜨고 못 봐주겠다는 듯 말없이 아브락사스의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 유유상종이라고 하던가, 리브는 그런 친구의 발언에도 개의치 않고 입을 열어 재잘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개… 아니 강아지 같은 존슨 녀석이 고자가 되었다는 거지? 그 부위에 독이 퍼졌으면 아마 잘라 냈으려나? 전부 절단하나? 아니면 부분만?”

이번에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있던 리들이 사레에 걸려 켁켁거렸다. 나머지 두 청년은 천사같은 얼굴로 노골적이다 못해 잔인한 말을 내뱉는 리브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리브는 자신이 뇌를 안거치고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기서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게 더 이상한 법이었다.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다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에밀리를 보며 리브는 방긋방긋 웃었다. 사레에서 벗어나 표정을 수습한 리들이 손가락을 튕겨 리브의 이마를 콩 때렸다. 리브가 곧바로 아픔을 호소했다.

“왜 때려요!”

“여자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리고 머글병원도 아니고 절단은 무슨.”

“뭐야, 그럼 그 자식 고자 안된거에요? 이왕 물거면-”

그냥 뜯어버렸어야지. 그 뒷말을 삼킨 리브는 또다시 리들에게 이마를 얻어맞았다.

“말 좀 예쁘게 해라, 이 여자야.”

리브가 이마를 문지르며 리들을 흘겼다. 한참을 웃던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존슨은 앞으로 남자 구실 못한댔어. 고자 맞아.”

리브는 그거 참 잘됐다며 작문을 마저 작성하기 시작했고 간신히 패닉에서 빠져나온 아브락사스는 에밀리에게 다다다 쏘아붙이기 시작했다.(“너 그 이름으로 나 부르지마! 내가 너 엠(에밀리의 애칭이며 아명)이라고 하면 좋아?” “말포이 부부는 잘만 부르시던데! 아~브~라고 말이야!”) 그리고 오리온은 못 들은 걸로 하겠다는 류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보다 순수혈통 가문 아가씨가 말하는거 봐라! 하, 뭐라고?”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말포이 네가 아랫도리 간수 못하고 막 휘두르고 다니는거 맞잖아!”

에밀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돌직구를 내뱉었고 아브락사스는 뒷목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리들은 싸우기 시작하는 둘을 냅두고 리브의 옆에 앉았다. 물끄러미 숙제를 하는 리브를 보며 리들이 오리온에게 툭 내뱉었다.

“블랙, 가서 말포이랑 맥밀란 좀 말려봐.”

오리온은 그러겠다며 벌떡 일어나 아브락사스와 에밀리를 중재하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말포이, 이 짐승아! 오리온 넌 빠져!”) 잠깐 깃펜을 멈추며 리브가 입을 열었다.

“전부터 궁금한게 있었는데요.”

“말해봐.”

“리들 선배는 오리온이랑 아브락사스 선배랑 별로 안 친해요?”

뜬금없는 리브의 질문에 리들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소녀를 응시했다.

“꼬박 꼬박 성으로 부르길래요, 저 두 사람도 그렇고요.”

리들은 그 누구에게도 이름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리들을 지긋이 응시하며 대답을 요구하던 리브는 침묵이 길어지자 다시 깃펜을 움직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리브가 잊어버렸을 때 쯤, 리들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난 내 이름(first name)이 싫어. 너무 흔해.”

그 순간 리브가 깃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리들을 응시했다.

“굳이 따지자면 성(last name) 쪽이 나아.”

“수수께끼(Riddle)… 확실히 리들 선배랑 어울리긴 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꽃처럼 웃었다. 그 미소를 보던 리들이 손을 뻗어 넘실거리는 금빛 블론드의 끝을 가볍게 쥐고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리브가 살짝 움찔했지만 굳이 만류하지는 않았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며 리들이 생각했다. 너도 어울려. 브릴리언트(Brilliant), 빛나는 혹은 뛰어난…. 넌 뛰어나지, 그리고… 빛나는거 같아.

“잘 어울려.”

“…뭐가요? 이 머리카락?”

리들은 말없이 웃었다. 그 미소를 긍정으로 생각하며 리브가 말했다. “저도 제 금발이 마음에 들어요.” 전생에 동양인이었던 나는 흑갈색 머리칼이었다. 지금은 대조적인 화려한 금발, 태양같은 금빛이 싫을 리가 없었다. 꽤 느슨한 분위기의 리들을 보며 리브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브락사스 선배나 오리온이 그 이유를 납득했어요?”

“내가 싫다는데 지들이 어쩔거야.”

이런 무심한 인간아… 리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리온은 리들 선배 말은 끔찍하게 여기고 떠받드니까 네네 했겠지만 아브락사스 선배가 얌전히 그걸 받아들였어요?”

아브락사스는 제대로 된 통성명을 하자며 종종 귀찮게—리들 입장에서— 굴곤 했다. 그 모습을 여러 번 본 리브는 백금발의 청년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아브락사스라고 부르라는 말포이가의 청년에게 기꺼이 자신의 애칭, 리브를 흔쾌히 허락했다. 리들과 이름을 트려고 하는 청년의 레파토리는 참 다양했다.(“리들, 우리가 만난지 벌써 4년이 되어가고 있어.” “리들, 난 내 이름이 좋아. 그러니까….”)

“오리온은 그렇다 쳐도 ‘아브락사스 선배’? 너 언제부터 말포이랑 이름 텄어?”

“좀 됐는데요.”

“어째서?”

“어째서라뇨, 앞으로 자주 볼텐데 언제까지 삭막하게 성만 부르고 있어요?”

리브가 아직도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리들의 손을 탁 쳐내며 말했다.

“리들 선배, 그 두 사람만큼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어요?”

“유서 깊은 순수혈통 가문의 후계자니 가까이 지내면 상당히 쓸모 있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저 두 사람은 리들 선배 말이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기세던데… 들으면 섭섭하겠어요.”

“하늘의 별을 어떻게 따.”

리브가 전부 작성한 양피지를 돌돌 말고 작은 끈으로 묶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두 사람, 이름 정도는 불러 주는게 어때요?”

“글쎄.”

“저 둘은 리들 선배를 굉장히 좋아하던데….”

“너는?”

리들이 불쑥 뱉은 말에 산술점 책을 뒤적이던 리브의 손이 멈췄다.

“…네?”

“넌 내가 어떠냐고.”

“…리들 선배는 제가 어떤데요?”

이제 리브는 산술점 차트를 손가락으로 훑고 있었다.

“싫지 않아.”

생각보다 대답은 쉽게 떨어졌다. 대답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리브는 의아함에 고개를 들어 청년을 응시했다. 잘생긴 얼굴에 맺힌 아찔한 미소, 나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왔다.

“저도… 이제는 싫지 않아요.”

“이제는? 그럼 전에는 싫었다는 소리?”

“그건 본인이 아주 잘 아실거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예쁘게 웃었다. 콧방귀를 뀌는 리들에게 리브가 부드럽게 말했다.

“본인의 행동을 잘 돌이켜보세요.”

“내가 뭘?”

어쩜 이렇게 뻔뻔할 수가… 그래, 애초에 이런 인간이었지. 리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아직도 그 때 맞았던 뺨이 아픈데.”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왼쪽 뺨을 문질렀고 청년에게서 곧바로 반응이 왔다.

“야, 그 때 잊겠다고-”

“제가 언제요? 난 그런 말 한적 없는데?”

“야- 내가 분명-”

“그 때 아마 ‘난 전부 잊었어, 너도 잊어줘.’라고 했었죠? 그건 선배 혼자만의 생각이시고.”

리브는 그 때, 리들이 자신에게 뱉었던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그때, 나기니를 위협한 것은 맞-”

“계속 말하면 끝이 없으니까 그만해요.”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리브였다. 그리고 책상에 올려져있는 [기나긴 1초]라는 책을 리들의 품에 떠넘기듯 안겨준다. 그거나 읽고 입 다물라는 의미, 눈치 빠른 리들이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청년은 떠안게된 책을 집어 들더니 소리 나게 쾅 올려놓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순간 책상이 흔들리며 잉크병이 엎어져 버렸다. 그리고 새까만 잉크는 줄줄 흘러 리브가 옆에 올려놓은 양피지를 가득 적시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내 해석본…”

리브가 며칠에 걸쳐서 열심히 해석한 고대문자 해석본이 쌩으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대참사. 리들은 살짝 당황한 듯 지팡이를 들어보지만 새까맣게 물들어진 양피지를 되돌릴 수 있는 주문은 아무 것도 없었다. 청년은 이왕 집어든 지팡이로 엎어진 잉크병 등을 수습했지만 해석본은 원상태로 복구가 불가능했다. 리브가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짜증을 버럭냈다. 요즘 밀린 진도며 숙제로 인해 차곡차곡 쌓아졌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이다.

“이거 어떡할 거에요, 정말!”

“…넌 머리가 좋으니까 금방 다시 할 수 있을거야.”

“뭐라고요?”

리브가 으르렁거리며 말했고 그 흉흉한 기세에 리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 유감이야. 절대 이런 의도는 아니었어. 그러게 잉크병은-”

뚜껑을 잘 닫아놨어야지. 라고 말하려던 리들은 리브의 살벌한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나한테… 아, 됐어요.”

나한테 할 말 없어요? 라고 말하려던 리브는 그를 흘겨보다가 그냥 입을 닫았다. 저 인간이 참 사과를 하시겠다. 그나저나 이거 언제 다하지.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리들은 힘없이 고대 문자 책을 펼치는 리브의 손을 붙잡았다. “뭐에요?” 리브의 신경질적인 물음에 리들이 선심 쓴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고대문자 듣는데.”

“그래서요?”

“내가 해줄게. 그거 보고 베껴.”

그 말에 리브의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나름 미안하다는 뜻이겠지. 리브는 마음을 넓게 쓰기로 했다. 소녀는 살포시 웃으며 고대문자 교과서와 새 양피지를 리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조곤조곤 어느 페이지인지 설명을 해준다.

이제 둘 사이에는 사각사각 깃펜 놀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자꾸 흘러내리는 머리칼이 귀찮아진 리브는 깃펜을 내려놓고 품을 뒤적거려 빗과 끈을 꺼냈다. 아직 이 시대에는 곱창밴드가 없었기에 끈으로 모은 머리카락을 돌돌 묶어서 매듭으로 마무리를 해주어야만 했다. 대충 빗질을 한 리브는 새틴 소재의 핑크빛 끈—에밀리에게 생일 선물로 받았다.—을 입에 물고 머리카락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소녀는 옆 자리의 청년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리브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왜,왜요?”

“…아니야. 하던거 마저 해.”

그렇게 말하며 리들은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고정. 가만 보니 저 눈길은 자신의 머리끈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신기하다고, 머리끈 처음 보나? 리브는 이제 한 손으로 모은 머리카락을 잡고 끈으로 돌돌 묶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힘껏 잡아당기자 지금까지 위로 올리고 있던 팔이 아파왔다. 잠깐 한 템포 쉬고 이제 리본 모양으로 묶느라 끙끙대던 리브는 간신히 매듭을 짓고 팔을 내렸다. 리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리브가 툭 내뱉었다.

“머리 묶는거 처음 봐요?”

그 순간 리브는 애써 묶은 머리가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 귀찮게. 리브는 간당간당하게 머리칼에 매달려있는 끈을 집어 들었다. 다시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모으는데 입술에 물고 있던 머리끈이 리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 순간 청년의 손가락이 소녀의 입술을 살짝 스쳤고 리브는 그 순간 찌릿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대로 잡고 있어. 내가 묶어줄게.”

리들의 말에 리브가 몸을 틀었다. 그리고 청년의 눈에 소녀의 가냘픈 목선이 들어왔다. 잠깐 그 곳을 응시하던 리들은 리브가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블론드에 끈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두 남녀의 손이 스쳤고 리브는 마른침을 삼켰다. 청년은 부드럽게 소녀가 머리카락을 잡고있는 두 손의 위치를 조정했다.

“그래, 거기 잘 잡고 있어.”

청년의 손짓에 따라 핑크빛 끈이 머리카락을 몇 바퀴 가량 감았다. 그리고 아까 끙끙거리던 리브와는 달리 솜씨좋게 끈을 움직인다. 청년이 끈을 양쪽으로 세게 잡아당기며 머리카락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 순간 두피에 느껴지는 압박에 리브가 숨을 훅 들이마셨다.

“리들 선배, 너무 꽉 조인거 같은데…”

“그래야 안 풀리지.”

리들은 그렇게 대꾸하며 그 상태 그대로 리본을 묶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녀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 아주 살짝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리브는 여전히 너무 꽉 조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조금 편해져서 그대로 뒀다. 이어서 리들의 손짓에 따라 소녀의 금빛 블론드 위에 어여쁜 핑크빛 리본이 수놓아졌다. 거기서 리들은 한 번 더 매듭을 지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리본 모양은 전혀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완벽히 고정시켜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 리들은 그제서야 손을 뗐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어여쁘게 웃었다. 그런 소녀의 고운 얼굴을 빤히 보던 리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양피지로 시선을 돌렸다. 리들의 흑안이 어떠한 감정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청년은 아까부터 계속되던 충동을 억누르려 애쓰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떴다. 하지만 어김없이 핑크빛 끈을 물고 있던 소녀의 작은 입술이 떠올라서 애를 먹어야만 했다. 머리끈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은 여자 애들이 머리를 묶을 때 흔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런 리브에게 왜 그렇게 심장이 뛰었는지 리들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작,추천,코멘트 전부 감사합니다^^ 책 신청해주시는 분들도 감사해요!

팬아트 주신 모든 분들도요!

표지를 이번에 선물받은 팬아트로 바꿔야하는데 이놈의 조아라는 새벽이 아니면 로그인 오류 어쩌고 로그아웃 시켜버리네여ㅡㅡ 이게 바로 제가 표지를 매번 열두시 넘어서 바꾼 이유에요. 조아라 이럴때 참 짜증나네여

* 다들 존슨이 고자된게 리브 짓이라고 생각하셔서 놀랐어요ㅋㅋㅋ리들이 한 짓이에여.. 그리고 나기니도 아니에요. 얜 아직 독이 없으니까요ㅋㅋㅋㅋ그냥 지나가는 독사를 시켜서 콱! 뭐 그런거죠...

그 뱀은 무슨 죄냐는 코멘들 보고 빵터졌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리브는 착한 척이 아니고 정말로 착한거에요! 근데 존슨 고자됐다고 좋아하는거 보면 얘도 확실히 보통은 아님.........

* 리들이 리브 머리 묶어주는데서 딱 성격 나오지 않나요?ㅋㅋㅋㅋ그리고 남자들이 여자들 입에 머리끈 물고 있는거 보면 설렌다고 하더라구요ㅎㅎ 근데 예쁜 여자라는 전제가 깔려있대요...아놔....

* 요즘 글이 잘 안써져요.... 어쩌면 다음편 조금 늦어질지도 몰라요. 지금 쓰고 있는 부분 써놓고 보니 넘 무리수 같아섴ㅋㅋㅋㅋㅋㅋㅋ리브랑 리들 너무 어려워요 너희 짜증낰ㅋㅋㅋㅋㅋㅋㅋㅋ저번 챕터도 쓰기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의지를 갖고 써보겠음돠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리리플은 항상 작품설정에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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