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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변화
약속 시간인 열 시 정각에 도착한 리들은 리브가 답지 않게 늦는다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소녀는 항상 약속 시간보다 5분에서 10분 일찍 와있곤 했었다. 리들은 부활절 휴일이라 그런지 학교에 적막감이 흐른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책에서 눈을 떼고 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늦잠이라도 자고 있나? 리들은 탁자에 올려놓은 양피지 꾸러미 여러 개를 가방으로 쑤셔 넣었다. 요즘 너그럽게 봐줬더니 이거 봐라. 나중에 한소리 해주겠다고 생각하며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리들은 자신의 애완뱀, 나기니에게 자유 시간을 주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리들은 나기니를 기다릴 겸 계속해서 책을 읽기로 했다. 열두시가 넘자 리들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나기니가 좀 늦게 오려는 모양이었다.
대연회장에서 식사를 하는 리들에게로 존슨 패거리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맥스 존슨은 품에서 파란 넥타이를 꺼내 리들의 눈앞에 이리저리 흔들어보였다. 리들은 그들의 존재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그들을 중재한 것은 비어리 교수였다.
“지금 대연회장에서 뭘 하는거죠?”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교수님.”
그렇게 말하며 존슨은 패거리들을 이끌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낄낄거리며 리들에게 보란듯이 넥타이를 흔들어댔다. 리들의 주위에 있던 슬리데린 학생 중 하나가 “리들 선배, 저들이 또 왜 저러는 걸까요?”라며 리들에게 말을 건넸고 청년은 픽 웃을 뿐이었다.
리들은 식사를 마친 뒤 다시 필요의 방으로 돌아와 책을 끝까지 읽고 과제를 했다. 전부 마무리 짓고 시계를 확인해보니 시간은 4시가 조금 넘었다. 리브는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리들은 그녀가 자신의 약속을 잊었음을 깨닫고 괘씸함을 느꼈다. 어디 두고 보자. 이제 리들은 돌아오지 않는 애완뱀에게로 신경이 쏠렸다. 지금쯤이면 돌아올 때가 한참 지났는데… 왜 안와. 그러던 리들은 나기니가 호그와트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 길을 잃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찾으러 가야겠군. 필요의 방을 나와 복도를 걷던 리들은 누군가와 마주쳤다. 덤블도어 교수였다.
“톰, 휴일은 잘 보내고 있니?”
“네, 교수님.”
리들은 덤블도어 교수의 말에 예의바르게 대꾸했다. 리들에게 덤블도어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대였다. 적당히 대꾸하고 돌아서려는데 덤블도어가 흥미로운 화제를 꺼내놓았다.
“멘토링 중간 보고서는 잘 보았단다. 리브와 멘토링을 잘하고 있는 것 같구나.”
“감사합니다. 교수님.”
“톰.”
덤블도어 교수가 나지막히 청년을 불렀다. 덤블도어는 리들과 리브의 관계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 질색을 하던 리브는 리들과 생각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솔직히 리들과 리브를 엮으면서도 반신반의 했던 덤블도어였다. 리들과 닮은꼴이지만 상극인 리브.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점점 확신하고 있었다.
“리브를 어떻게 생각하니?”
덤블도어의 입에서 리브(Liv)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싸늘했던 리들의 흑안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그 모습에 덤블도어의 하늘색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브릴리언트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뛰어난 마녀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수석답게 똑똑하더군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상투적인 대답을 늘어놓았지만 리들은 당혹스러운 심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그녀는 다른 한심한 계집애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녀 앞에만 서면 자신은 이상해진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러했다. 덤블도어에게 간단히 대꾸를 하던 리들은 저 멀리서 새하얀 뱀이 꼬물꼬물 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나기니는 답지 않게 빠른 속도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어라 쉭쉭거리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날카롭게 말했다.
“톰, 뱀을 학교에 풀어둔거니?”
“네, 문제가 되나요?”
“혹시 학생을 물면 문제가 되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덤블도어의 말에 “나기니는 사람을 물지 않습니다. 순한 뱀이에요.”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청년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혀를 낼름거리며 쉭쉭거리는 뱀의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톰! 리브가 갇혀있어, 도와줘!]
[뭐?]
자신도 모르게 파셀통그를 쓴 리들은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다행히 지나가는 학생이 없었다. 덤블도어는 자신이 파셀마우스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갇혀있다고? 리들은 아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리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점심시간에 대연회장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톰이랑 사이 나쁜 애들이 리브를 어딘가에 가둬놨어! 그리고 나도 발로 차고 밟았어! 같이 가둬놨는데 구멍이 있어서 나만 빠져나왔어!]
나기니의 말을 들은 리들의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뱀과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싸늘하게 얼굴을 굳힌 리들을 보며 덤블도어가 물었다.
“톰, 무슨 일이니?”
“어떤 학생들이- 제 애완뱀과 브릴리언트에게 질나쁜 장난을 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차디찼다. 잠시 리브의 화제로 부드러워졌던 청년의 흑안이 다시 싸늘해졌다. 그 순간 리들은 점심시간에 대연회장에서 자신을 향해 파란색 넥타이를 흔들어대며 낄낄거리던 존슨 패거리가 떠올랐다. 그 자식들 소행이로군. 감히 내 것을 건들였겠다. 리들은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지긋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얼굴은 잔잔했지만 흑안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제 뱀에게 상해를 입히고 그녀와 함께 어딘가에 감금을 시켰다는 군요. 제 뱀만 겨우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
나기니는 리브가 갇힌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리들은 침착하게 갇힌 곳이 어땠는지 물었다. 혹시 창고였다면 어떤 물건들이 들어차있었냐고 묻는 리들에게 나기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새까매서 아무 것도 안보였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공기가 싸늘했어.]
[그럴 리가 없어. 눈이 적응되면 무언가는 보이는 법이야. 그리고 구멍을 통해 빠져나왔다고 했지? 그럼 그 곳을 통해 빛이 들어올 거 아니야. 나기니, 똑바로 말해.]
그렇게 쉭쉭거리는 리들의 목소리는 유난히도 날카로웠다.
[정말이야! 완전 어둠 그 자체였어! 리브는 무서워서 울고 있어. 빨리 가서 구해줘야 해.]
울고 있다고? 그 말에 리들의 얼굴이 더욱더 싸늘해졌다. 우선 리들은 덤블도어에게 나기니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리들의 말을 들은 덤블도어의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맙소사, ‘어둠의 방’…”
“지금- 어둠의 방이라고 하셨습니까?”
리들과 교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호그와트의 역사에서 리들은 어둠의 방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고 몇백년 전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기 위해 사용되었다고만 적혀있었다.
“리브가 언제부터 그곳에 갇혀있었지?”
“적어도 열 시 이후일겁니다. 저와 그 시간에 만나기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시각은 네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리브가 어둠의 방에 한나절 가량을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덤블도어가 아연실색했다. 어둠의 방은 문제 학생들을 벌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방 이름 그대로 끝없는 어둠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절대로 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한 번 갇히면 누군가가 꺼내주기 전에는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나기니가 빠져나온 그 구멍은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문이 닫히면 빛을 차단하는 강력한 고대마법이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방 안에는 디멘터의 음의 에너지가 희미하게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물론 디멘터를 마주한 것처럼 모든 행복을 빼앗아가는 그런 끔찍함까지는 아니었지만 불안감과 두려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어둠의 방 징계는 심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에게 두는 초강수였다. 이는 너무나도 가혹한 행위라며 선대 교장인 ‘딜리스 덜웬트’가 이곳을 폐쇄했고 이런 비윤리적인 징계는 앞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 후로 이곳은 사용되지 않았다.
여섯 시간이나 갇혀있다니! 몇 백년 전에도 어둠의 방 징계를 줄 때 최대가 두 시간이었다. 거기다가 그곳에는 각성 마법까지 걸려있어서 리브는 기절하지도 못할테고 지금 제정신이 아닐게 분명했다. 덤블도어에게 어둠의 방에 대해 들으며 리들은 더욱 더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 자식들 가만두지 않으리라. 청년이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던지 손마디가 새하얗게 변해있을 지경이었다.
그 문제의 어둠의 방 앞에 도착한 리들은 문고리를 돌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청년은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알로호모라.” 그리고 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은 이토록 밝은데 안은 새까만 어둠 뿐. 안에는 빛이 한 점도 들지 않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문에 투명한 벽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덤블도어가 문을 잡았고 리들은 지팡이를 어둠 속으로 겨누었다. “루모스 솔렘.” 리들의 주목나무 지팡이가 강한 빛을 내뿜었다. 빛이 어둠을 뚫고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묻고있는 리브를 비췄다. 그 순간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리들이 급하게 다가가 소녀를 손을 잡고 일으켰다. 리브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는데다가 청년을 응시하는 푸른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리들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1월에 몹시 앓고 난 후의 생기 없는 소녀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 돼, 내가 너를 전처럼 돌리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안 돼, 이러지 마.
그 순간 방 안에 들어서면서 느껴진 싸늘한 공기가 온 몸을 엄습했다. 리들은 이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잠식하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리브가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불안감에 이어서 이제는 두려워졌다. 내 눈앞에 있는 너는 허상이 아니지? 정말, 브릴리언트 네가 맞는거지? 리들은 리브를 확 끌어안았다. 몸이 차가웠지만 심장 고동소리가 느껴졌다. 그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톰! 당장 리브와 방을 나오렴!”
덤블도어의 다급한 외침에 그제서야 리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녀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방을 빠져 나왔다. 방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불안감이 다소 사라졌다. 저 방의 디멘터의 음의 에너지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희미하게 남아있다더니 순간 자신의 약해진 마음을 그대로 파고 든 것이 분명했다. 정말 빌어먹을 방이었다.
*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나는 점점 공포에 질려갔다. 괴로웠다. 고통스러웠다. 내가 겨우 견딜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생각했다면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 칭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려웠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설사 그게 끊어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줄이라고 해도 나는 필요했다. 의지할 것이. 그렇게 나는 한 사람만을 기다렸다. 톰 리들. 그가 오기를. 그리고 나를 이 어둠 속에서 구해주기를.
갇힌지 얼마나 지났을까라는 시간 개념도 없었고 나를 이렇게 만든 애들에 대한 분노도 없었다. 오직 불안감과 두려움뿐이었다. 그리고 톰 리들이 올거라는 실날같은 희망. 나를 여기서 꺼내줄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그 희망은 금방이라도 내 손을 떠날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나는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너무 공포에 질려서 종종 숨이 막혀왔지만 나는 그 희망을 통해 겨우 숨쉴 수 있었다. 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내게 희망의 빛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희망은 점점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오지 않을지도 몰라. 기다려도 소용없을지도 몰라. 문득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로 정신을 놓아버리는게 아닐까, 미쳐버리는게 아닐까, 왜 오지 않아!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마음 속의 빛이 깜박깜박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꺼져버렸다. 아, 이제 켜지지 않는구나.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눈앞에 정말로 빛이 펼쳐졌다. 내가 견디기 위해 내 자신에게 세뇌하듯 되뇌인 거짓같은 희망이 아니였다. 정말로, 그가, 톰 리들이 눈앞에 있었다. 와주었다. 이 어둠속에서 나를 구해주러 왔어. 정말로 왔어. 빛이 다시 켜졌다. 그의 품에 안기는 순간 불안감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구원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랬다.
*
“어둠의 방이라뇨! 누가 그런 몹쓸 짓을!”
젤러 부인은 몹시 분노했다. 그녀는 어둠의 방에 걸린 각성마법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멍한 상태인 리브에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각성 마법이 전부 해제되자 그제서야 소녀의 초점없는 벽안이 스르르 감겼다. 젤러 부인은 소녀에게 온갖 치료 주문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파리한 안색이 원래의 혈색으로 돌아오자 치료사는 서너개의 마법약을 꺼내왔다. 뚜껑을 열고 스푼을 넣는데 병동 문이 열리며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이었는데 뼈가 부러진 듯 부축을 받고 있는 학생, 피투성이인 학생… 덤블도어는 어쩌다 이렇게 다쳤냐며 그들에게 휘적휘적 걸어갔다. 훈련 도중에 다친 모양인데 상태가 몹시 안 좋아보였다. 치료사는 리들에게 약병들을 내밀었다. “이 약들을 전부 한 스푼씩만 먹여주렴. 저쪽이 급하니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며 젤러 부인은 커튼을 치고 학생들에게 휭 가버렸다.
리들은 약을 한 번, 리브를 한 번 번갈아 보다가 스푼을 쥐고 약을 떴다. 그리고 스푼을 그대로 소녀의 입술로 가져가 입안으로 흘러 넣는데 쉽지 않았다. 소녀는 약을 삼키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요령이 없어서 옆으로 약이 다 새고 있었다. 젤러 부인은 잘만 먹이던데. 그렇게 생각하며 리들은 휴지를 집어들고 흘러내린 약물을 닦았다. 안되겠다 싶어 리들은 젤러 부인을 부르려고 했지만 바깥 상황을 보니 치료가 한창이었다. 저것들은 왜 다쳐 와가지고. 리들의 눈초리가 순간 사나워졌다.
아무래도 자신이 먹여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먹인담. 어쩔 수 없지. 입으로 먹이는 수밖에. 리들은 약을 입에 머금고 그대로 소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말캉한 감촉 그리고 순간의 짜릿함. 하마터면 약을 뱉어낼 뻔한 리들은 간신히 그것을 참아내고 약을 넘겨주었다. 목으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뗀 리들은 다른 약을 집어 들었다. 그 몸짓은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리들은 방금처럼 다시 닫혀있는 소녀의 입술을 벌리고 그대로 약물을 넘겨주었다. 이번에는 온 몸으로 퍼지는 짜릿함.
황급히 입술을 뗀 리들은 심호흡을 했다. 이상했다. 감당할 수 없는 충동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더 이상 입술을 맞대면 안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먹여야 했다. 리들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다시 약을 머금었다. 또다시 청년의 입술이 소녀의 입술을 덮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참동안 청년의 입술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청년의 흑발이 소녀의 얼굴을 한참동안 간지럽혔다. 그대로 있고 싶어졌다. 조금만 더.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약 먹이다가 지금 뭐 하는거야.
정신이 번쩍 들어 리들은 입술을 떼고 소녀에게서 한발자국 떨어졌다. 하지만 리들의 흑안은 어떠한 감정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성과 본능이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리들은 침착하게 이성을 끌어올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확인했다. 커텐을 쳐서 바깥과 차단됨, 젤러 부인은 몹시 바쁨, 덤블도어도 자기 기숙사 애들 보느라 바쁨, 고로 아무도 보지 못함. 리들은 본능의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인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성이라는 놈을 잡아 족치기로 했다. 다시 그 감촉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갈증이 몰려왔다. 리들의 흑안이 격동적으로 일렁였다. 그리고 본능이 승리했다.
살짝 고개를 튼 리들의 얼굴이 소녀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리들의 붉은 입술이 소녀의 작은 입술을 삼키듯이 덮었다. 부드럽다. 그래, 이걸 원했어. 리들은 혀로 살짝 소녀의 입술을 핥았다. 무방비 상태인 소녀의 입술은 쉽게 열렸다. 청년의 혀가 소녀의 치열을 훑고 더 깊이 침투했다. 얌전하게 잠들어있는 소녀의 혀를 장난스럽게 건드리는 듯싶더니 이제는 빠르게 입안을 헤집고 있었다. 씁쓸한 약내음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달콤한 쾌감.
지금까지 리들은 입술을 맞대고 쪽쪽거리는 커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청년은 감정에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성욕에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족속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리 예쁜 여학생들을 봐도 감흥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리들은 처음으로 아브락사스의 끝없는 연애 사업과 바람둥이 짓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말포이가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건가. 첫키스의 쾌감에 청년의 잘생긴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 나기니는 내내 헤매고 또 헤매다가... 운좋게+간신히 리들을 발견했음돠
* 기대하셔도 좋다고 한건 바로 이겁니다. 마왕님의 도둑키스^^!
근데 리들 너 이자식 지금 자고있는 애한테 무슨짓???!!!!!!!!!!!!!! 먹이라는 약은 안 먹이고... 아, 먹이긴 먹였구나;; 어쨌든 리들이 성욕에 눈을 떴음돠
* 어둠의 방은 원작에 없는 설정이에요. 제가 만든거임 헿
* 이번 챕터 [변화]는 좀 길어질 예정이에요!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