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33화 (3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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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변화

슬리데린 4학년생, 톰 리들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학생이었다. 슬리데린 학생들은 그를 떠받들어 추종했고 타 기숙사에도 그를 동경하는 학생들은 꽤 많았다. 심지어 슬리데린의 천적이라는 그리핀도르에서도 톰 리들에게 만큼은 호의적이었다. 래번클로 3학년생인 올리비아 브릴리언트 역시 이미지가 좋은 학생이었다. 예쁜 외모로 암암리에 인기를 구가하던 소녀는 이번 학년에 톰 리들의 멘티로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물론 파킨슨 머리채 사건도 한몫 했다.) 그리고 외모 못지않은 따스한 성품으로 많은 이들이 리브를 좋아했고 친분을 갖고 싶어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보다는 자신의 기숙사 학생들과 주로 어울렸다.

이렇게 톰 리들과 올리비아 브릴리언트는 여러모로 유명한 학생들이었다. 호그와트에서 이들의 평판은 청신호를 울리고 있었다. 아마 몇 년이 지나고 나면 하늘을 찌르리라. 아, 이미 톰 리들의 평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톰 리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나 시기와 질투는 있는 법이다. 물론 이는 극소수 여서 리들의 행보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리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거나 해를 가하는 이들을 그냥 두고보지 못했다. 싹부터 잘라버리는 주의였다. 그는 철저하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었다. 이는 은밀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간혹 그들에게는 고약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리들은 비웃음을 지어보임으로써 경고를 날렸다. 그렇게 철저하게 밟아주었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보며 소름이 돋곤했던 리브는 이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하여간 사악하다니까. 그리고 리브는 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도, 어설프게 양심을 일깨우지도 않았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리브는 지금 자기 앞가림이 더 우선이었다. 예전에 호되게 당했던 슬리데린 여학생들이 또다시 리브에게 송곳니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한창 앓다가 실어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기세등등해진게 분명했다. 에밀리를 비롯한 래번클로 학생들이 철저하게 감싸고 있어서 직접적인 해는 가하지 못했으나 말로 비아냥거리곤 했다. 벙어리라는 둥, 귀머거리라는 둥… 물론 리브는 이같은 유치하고 무례한 언행들에 표정으로서 유감을 표할 뿐이었다. 그리고 최근 블러저 때문에 부상을 당한 에밀리가 입원하는 바람에 혼자 다니는 경우가 잦아진 리브에게 이는 더욱더 심해졌다.

“Dum-Dum! Dumb-Dumb!”

('dum-dum'은 얼간이, 바보라는 뜻의 속어로 발음이 유사한 ‘dumb’은 벙어리를 모욕적으로 들리게 함)

"She dumb ass!"

('dumb ass'는 ‘멍청한’이라는 뜻의 속어)

리브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것들 입 놀리는 것 좀 보소. 숫자를 보니 두 명. 또 슬리데린이냐.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유감을 표하던 리브는 그들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거기다가 저것들은 상습이었다. 소녀가 사뿐사뿐 여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들은 픽 웃으며 소녀를 위아래로 훑어볼 뿐이었다.

“우리한테 할 말 있니?”

“이거 어쩌면 좋아, 말을 못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두 여학생이 깔깔거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두 여학생의 머리칼을 훑어보던 리브의 사파이어 벽안이 순간 차갑게 빛났다. 둘 다 긴 머리, 어디보자. 리브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하지만 이내 깔깔거리던 두 여학생의 웃음소리는 뚝 멈췄다.

“실렌시오, 실렌시오.”

소녀가 장미목 지팡이를 휘두르며 그들의 등 뒤에 주문을 쏘았다. 내가 말을 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주문을 외울때거든. 그렇게 생각하며 리브는 여학생들을 향해 곱게 웃었다. 침묵마법에 걸린 두 여학생은 뻐끔거리며 목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리브는 빠르게 양손으로 두 여학생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머리채를 잡힌 두 여학생이 비명을 질러보지만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리브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 손으로 쥐고 있는 각각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비어있는 다른 손으로 끈을 꺼내 두 여학생의 머리채를 사이좋게 묶어주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매듭까지 지어준 후 리브는 탁탁 손을 턴다. 아마 풀기 좀 힘들거야. 그들에게 비웃음을 지어준 후 망설임 없이 돌아서는 소녀였다.

머리카락이 함께 묶여 샴쌈둥이가 되어버린 여학생들은 발을 굴리며 노발대발했다. 한 여학생이 리브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침묵마법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말이 나올 턱이 없었다. 고로 리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채 리브에게 쫓아가려는 시도를 했고, 머리카락을 함께 묶인 여학생은 중심을 잃고 말았다. 뒤에 이어진 상황은 뻔했다. 둘은 볼썽사납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머리카락이 어찌나 단단히 묶였던지 두 여학생은 풀지도 못하고, 머리가 붙어있어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살짝 뒤를 돌아본 리브는 그 꼴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내가 입은 닫혀있어도 손은 멀쩡하거든. 한 번만 더 개겨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팔랑팔랑 자리를 뜬 리브는 누군가와 맞닥뜨렸다. 톰 리들이었다. 얼굴 표정을 보니 자신이 한 짓을 전부 본 모양이었다. 리브는 그저 고개 숙여 인사를 할 뿐이었다. 이제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나란히 복도를 걷고 있었다. 리들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 옆에 선 리브가 걸음을 서둘렀고 그런 소녀를 힐끔보며 청년이 보폭을 살짝 줄였다. 몇몇 학생들이 둘을 보고 속닥속닥 거리고 있었다.(“톰 리들이다.” “저기 봐, 리들 선배랑 리브 선배야.”) 흑발의 청년이 금발의 소녀를 향해 수려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문 외우듯이 이제 그만 말문을 여는건 어때?”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제법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강한 어조가 숨겨져 있다. 이런 식으로 리들은 종종 리브에게 이제 그만 입을 열 것을 부드럽게 종용하곤 했다. 이럴 때면 정말 곤란하다. 하지만 리브는 입을 열지도, 고갯짓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청년의 미소에 대한 화답으로 소녀는 꽃처럼 웃었다. 그 곱디 고운 미소를 빤히 보던 리들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리브의 귓가에 입술을 스칠 정도로 가까이 댄다. 청년의 숨결이 귓가에 닿자 소녀가 살짝 떨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게 느껴졌다.

“난 인내심이 그리 깊지 않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리들 성격에 이만한 것도 큰 배려였다. 리들은 리브가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길어질수록 점점 강제로 입을 열게 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그렇게 독하게 말을 안하면서 주문은 왜 외우냐는 리들의 지적은 이미 몇 차례 있었다. 물론 리브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리들은 레질리먼시로 기어이 그 대답을 찾아냈다.

[나에게는 말을 안해도 좋단다. 하지만 지팡이에게는 말을 걸어주지 않으련?]

[어서 네가 내 시간에 재능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리들은 리브가 덤블도어의 꼬드김에 홀랑 넘어갔다고 생각하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내가 입을 열라고 할 때는 그렇게 거부하고는! 역시 덤블도어, 그 교수는 맘에 안들어. 리들은 무척이나 불만스러웠다. 자신이 교수와는 달리 소녀를 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입을 열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청년이었다.

*

아브락사스는 오는 여자 안막고 가는 여자 안막는, 소위 말하는 바람둥이에 카사노바였다. 말포이 가문의 후계자는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당히 즉흥적이었다. 자기 취향에 맞거나 예쁜 여자가 있으면 혈통과 나이를 불문하고 습관적으로 작업을 걸기 일쑤. 꽃미소를 날린다거나 달콤한 매너를 선보인다던가, 방법은 무궁무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브락사스에게 넘어가서 홀딱 빠지기 일쑤였다. 뛰어난 외모에, 고귀한 혈통, 막강한 재력까지 갖춘 아브락사스는 1초만에 여자를 후렸고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손가락 하나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휘두르곤 했다.

그렇게 수많은 여자를 만나는데도 아브락사스의 평판은 그렇게 바닥을 치지 않았다. 사실 아브락사스는 흔히 말하는 어장관리의 귀재였다. 달콤한 말을 속삭여서 유혹을 하지만 그 뿐이었다.

[우리가 연인 사이야? 내가 너한테 사귀자고 한 적이 있던가?]

언젠가 바람을 핀다고 화를 내는 여학생에게 아브락사스가 꽃미소를 지으며 건넨 말이었다. 펄펄 뛰는 여학생을 부드럽게 달랜 아브락사스는 영리하게 그녀를 뒷탈없이 정리했다. 또한 청년은 진도를 A부터 Z까지 나가버리고 나면 금방 질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난다. 그게 무한 반복. 오리온은 그러다가 한 번 호되게 당할 거라고 혀를 끌끌 찼지만 아브락사스는 아무리 나라도 상대는 가려서 건드린다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아브락사스는 건드려도 될 상대와 그래서는 안될 상대를 잘 구분했다. 이성간의 관계에 도가 터서 상황별로 잘 대처하기도 했다. 상대에 따라서 정리하는 방법도 다르고 그녀들이 잘 받아들이도록 입을 놀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볼썽 사나운 치정극의 주인공이 된다거나 더러운 추문에 휩싸이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에밀리는 문란한 생활이라 꼬집으며 이같은 행태에 치를 떨었다.

에밀리와 정혼 관계가 성립되고도 그의 화려한 여성 편력은 여전했다. 에드가 때문에 집안 어르신들에게 호되게 혼이 난 이후로는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여자를 만나고 다니기 일쑤였다. 에밀리는 제 버릇 개 못주는 법이라며 비꼴 뿐 정혼녀로서의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치를 떨던 소녀도 적응이 되가는건지 여자가 그새 또 바뀌었다고 대꾸하거나 너도 참 취향이 한결같다며 종국에는 래번클로답게 분석을 하기에 이르렀다.

네가 만나는 여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금발이더라. 눈동자 색은 밝고… 나랑은 정 반대. 맞지? 그 말을 들으며 아브락사스는 내 취향을 어찌 그리 잘 아냐며 종국에는 자세하게 알려 주기에 이르렀다. 연하를 만날 때는 소녀같은게 좋고 연상을 만날 때는 섹시한게 좋아. 그리고 내가 만난 여자 중에 말이야… 언젠가 아브락사스는 자신이 만난 여자 중에 모델도 있다며 하이틴 스타의 이름을 늘어놓았고 사기치지 말라고 대꾸한 에밀리는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입을 쩌억 벌렸고 오리온은 그게 나중에 결혼할 사람들 끼리 할 소리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브락사스와 에밀리는 상당히 많이 싸웠지만 그만큼 짝짜꿍이 잘 맞기도 했다. 처음에는 양가 어르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던 멘토링도 잘 해나가고 있었고 데이트 역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에밀리는 아브락사스를 난잡한 여성 편력만 빼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리브에게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재력가 집안 후계자라 그런지 상당히 똑똑해. 에드가랑 얘기하는거 들은 적 있는데 우리 집안이랑 사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 사고방식은 조금 달라도 처세술 같은 것은 상당히 뛰어나.]

[충분히 자신에게 프라이드 가질 만 해. 뛰어나. 하지만 허세 부릴 때는 짜증나서 때려주고 싶어.]

사이가 꽤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에밀리는 아브락사스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런 허세남에 바람둥이 놈이랑 결혼해서 무슨 마음고생을 하려고? 그리고 덧붙인다. 그냥 오리온이랑 약혼할 걸 그랬나봐.

“안녕, 아브락사스.”

“안녕, 에밀리.”

아브락사스는 에밀리가 퇴원할 때까지 매일 매일 병문안을 왔다. 에밀리와 아브락사스는 평소와 태도가 미묘하게 달랐는데, 답지않게도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이번 부활절에 우리집에 같이 가자. 부모님께서 널 초대하셨어.”

“그래.”

평소라면 에밀리는 내가 미쳤다고 너희 집에 왜가냐고 소리치고 아브락사스는 넌 그게 정혼자한테 할 소리냐고 대꾸하고… 그렇게 바락바락 싸우는게 순서였지만 요즘 그들은 서로에게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그런 둘을 보며 리브는 서먹해진거 같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지금도 에밀리는 복도에서 아브락사스와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끊겨버리는 대화,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그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에밀리는 리브가 기다린다며 도망치듯 기숙사로 돌아가 버린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아브락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리온이 혀를 끌끌 찼다. 둘의 사이가 서먹해진 것은 에밀리가 병동에 입원했던 문제의 그 날 이후부터였다.

“그러게 감당 못할 짓은 왜 저질러?”

오리온은 핵심을 찔렀다. 항상 꽃미소를 날리던 아브락사스는 보기 드물게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멘토링 중에 에드가는 파트너인 오리온에게 아브락사스가 에밀리를 덮치려고 했다며 이를 부득 갈았는데 이야기를 듣던 오리온은 그럴리 없다고 단칼에 잘랐다. 물론 이는 오히려 에드가의 분노를 부추겼지만 오리온은 심드렁하게 아예예라고 대꾸할 뿐이었다. 그렇게 에드가의 말들을 한 귀로 흘리며 과민 반응이라 여겼던 오리온은 둘의 미묘하게 변한 사이를 보며 에드가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참 아브락사스 답지 않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며 오리온이 또다시 툭 내뱉었다.

“넌 가볍게 온갖 여자들 다 건드리고 다녀도 상대는 구분하잖아.”

오리온의 말을 묵묵히 듣던 아브락사스가 이번에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내 약혼녀 좀 건드리겠다는데 이유가 필요해?”

“건드릴거면 진작에 건드렸겠지. 넌 그런 인간이잖아.”

오리온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아브락사스를 지긋이 응시한다. 침묵이 흐르자 백금발의 청년이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뭐야, 오리온.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데?”

“에밀리가 좋아지기라도 한거야?”

오리온은 돌직구를 던지며 특유의 차가운 얼굴에 보기 드문 미소를 쓱 지어보인다. 아브락사스가 고개를 휙 돌리며 무어라 입을 열지만 오리온에 의해 끊기고 만다.

“무슨-”

“뻔하잖아. 네 성격에 건드릴거면 진작에 건드리고도 남지. 손놓고 있던건 여자로 안보여서 그런거 아니었어?”

“……”

“에밀리는 네 취향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리브가 훨씬 네 취향에 가깝던-”

“야, 너 그 소리 리들 앞에서는 절대로 하지 마라.”

이번에는 아브락사스가 정말로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 말에 블랙가의 청년은 은회안을 깜박였다. 아브락사스는 상념에 빠져있는 오리온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에밀리는 지금까지 내가 봐온 여자애들이랑은 달라.”

아브락사스는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막는 주의였다. 물론 정말 자기 취향이면 자신을 본체만체하는 여자라도 공을 들이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에밀리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흔한 연갈색 머리칼에 질리도록 보는 은회안. 거기서부터 탈락이다.

“내숭도 안부리고 예쁜 척도 안하고 여우같은 계집애들에 비하면 순수한 편이지. 애가 눈치가 없는 듯싶으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예리하고… 덜렁대기는 해도 멍청하지는 않지.”

“그런 애들은 네 취향 아니잖아. 재미없다며.”

“알아, 에밀리는 내 취향 아니야. 그런데…”

아브락사스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칼을 헤집는다. 오리온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에밀리가 저런 반응 보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

“애가 얼마나 놀랐겠어. 에밀리를 네가 지금껏 만나온 여자들과 동일선상에 놓으면 곤란해.”

오리온의 책망이 가득한 말투, 정말 자신이 천하의 나쁜놈이 된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브락사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머릿속에서 에밀리가 했던 말들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브락사스 말포이, 너 경고하는데 나를 다른 여자애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

[진지하게 말하는거야. 이런 장난도 치지마. 네가 나를 존중한다면 다시는 이러지 마.]

그렇게 말하는 에밀리의 표정은 몹시 굳어있었다. 갑작스럽게 스킨십을 시도한 자신에게 당황한 듯 하면서도 종국에는 세차게 밀어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한다. 매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난 네 유희거리가 아니야. 그런건 다른 여자애들한테 해. 난 정말 상관 안해. 그렇게 화를 내는 소녀를 보며 아브락사스는 자신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씁쓸해졌다. 차라리 평소처럼 자신에게 발끈해서 짜증을 냈으면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텐데.

“내가 실수한거 아니까 그만해.”

“이제 상대도 안 가리고 아무나 건드리는 거야? 발정났어? 정말 왜 그러고 사냐?”

오리온의 질타는 결국 정점을 찍었고 아브락사스는 버럭 짜증을 냈다.

“그만해, 진짜! 안 그래도 머리 터질거 같거든?”

“그러게 감당못할 짓은 왜 저질렀냐고.”

블랙가의 청년은 굴하지 않고 따복따복 대꾸한다. 결국 아브락사스는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무 예뻐 보여서 그랬다, 왜!”

정작 본인이 외쳐놓고도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아브락사스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 모습에 점잖기로 유명한 블랙가의 청년은 허리까지 젖혀가며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

4월 초, 1주일간의 부활절 휴일이 시작되자 일부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리브는 매 년 그랬듯이 호그와트에 머물기로 했다. 한편 에밀리는 말포이 가문을 방문해야 한다며 아브락사스와 함께 호그와트를 비웠다. 한동안 서먹하게 굴던 둘은 어느새 또다시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리브는 평소보다 일찍 필요의 방에 들어서서 쇼파에 털썩 앉았다. 소녀는 커다란 쿠션을 부둥켜안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말문을 닫은지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리브는 말을 하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그렇게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물론 불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리브는 그것을 기꺼이 감수했다. 친구들은 알아서 소녀의 편의를 봐주었고 기숙사 사감인 메리쏘우트 교수는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슬러그혼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고 덤블도어 역시 인자하게 웃으며 자신의 방문은 언제든 열려있다고 했다. 리브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로 어둠 속에 잠식되던 소녀는 점차 극복해나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어두웠던 얼굴은 밝아졌고 전처럼 따스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해가고 있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생각들이 풀어지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 많은 이들이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공허한 마음속이 넉넉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슬픔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저사람 역시,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다.

“나기니 온욕 좀 시키느라 늦었어. 블루 현상이 한창이거든.”

리들은 급하게 온 듯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하며 말했다. 리브는 괜찮다는 듯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또 허물을 벗으려나 봐. 올해는 많이 크려는 모양이야.”

리들은 성장이 빠를수록 허물을 자주 벗는다고 덧붙이며 리브가 갖고 온 물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병을 열고 머그컵에 물을 따른 뒤 입술에 가져다 댄다. 빤히 쳐다보는 리브의 시선에 “왜, 마시면 안 돼?”라고 툭 내뱉는다. 이 뻔뻔한 인간아, 순서가 바뀌었잖아. 먼저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는게… 리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숙제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리브가 리들을 빤히 쳐다본 것은 뻔뻔함 때문만은 아니었다.(이제 리들의 뻔뻔함은 너무나 익숙한 리브였다.) 물을 마시는 지극히 평범한 행동도 리들이 하면 달라 보인다. 그래, 우아해보였다.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보고 있다 보면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를 순수혈통으로 오해하고 있을만 했다. 그가 고아출신임을 알고 있는 오리온마저 리들 선배에게는 순수하고 훌륭한 혈통의 피가 섞여있을 거라고 찬양을 하곤 했으니 말 다한거다. 순수한 피는 무슨. 피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난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이니까”

리들이 픽 웃으며 한 말에 리브는 그가 자신의 오클러먼시를 무너뜨렸음을 깨달았다. 리브가 쏘아보자 리들이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느낌이 싫지 않기에 리브는 리들의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네 오클러먼시가 약한 걸 누굴 탓해?”

하지만 역시 얄밉다. 리브는 리들의 손을 확 쳐내버렸다. 리들은 민망해하지도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리브의 옆에 앉았다. 마법의 역사 숙제인 ‘중세의 마녀사냥’에 대한 논술을 써내려가는 리브의 양피지를 훑는다. 옆을 보니 다른 과목 숙제인 것으로 보이는 양피지 두루마리 묶음이 있었다. 그것을 집어든 리들은 펼쳐서 쭉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숙제를 리들이 멋대로 펼쳐보는 일은 흔한 일이었기에 리브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리들은 전에 그토록 궁금해했던, 교수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3학년 수석학생의 작문을 시시때때로 열람하고 있었다. 소녀 특유의 둥글둥글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리들은 리브의 작문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리브는 이를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다. 흠 잡을게 없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리들이 자신의 숙제를 펼쳐봐도 개의치 않았다.

“브릴리언트, 네 작문을 볼 때마다 느끼는건데…”

운을 떼는 리들의 말투가 은근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리브는 글을 쓰던 것을 멈추고 리들을 돌아보았다.

“넌 쓸데없이 글을 길게 늘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어.”

작문에 대해서는 찬사만 받아온 리브였다. 처음으로 악평을 받은 리브의 얼굴이 구겨졌다. 쓸데없이 글을 길게 늘려? 분량이 많기는 하지만 전부 필요한 내용이라고!

“가만 보면 왜 모자가 너를 우리 기숙사로 넣으려고 한지 알거같아.”

리들의 말을 듣고 있던 리브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하여간 영악해가지고.”

리브는 자신의 손에 있는 깃펜으로 리들의 손등을 찍어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지는 얼마나 글을 잘쓰시길래…

“내일 같은 시간에 기숙사 공동 휴게실로 와. 내 작문 보여줄게. 얼마나 잘쓰는지 네 눈으로 확인해 봐.”

그렇게 말하며 리들은 수려하게 웃는다. 잘생긴 얼굴에 맺힌 의기양양한 미소. 이 자식 또 레질리먼시 쓴거야? 리브가 리들을 찌릿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 리들이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레질리먼시 안 썼어. 네가 생각하는 건 뻔하지.”

나는 다 보여. 그렇게 말하며 리들은 또다시 웃었다.

*

“톰 리들, 이 개자식!”

슬리데린 기숙사 휴게실, ‘맥스 존슨(Max Johnson)’이 이를 부득갈며 소리쳤다. 은색과 초록색이 교차된 넥타이를 매고 있는 이 6학년생은 슬리데린에서 보기 드물게 톰 리들을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리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애꿎은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마구잡이로 주문을 쏘고다니는 그를 타 기숙사에서는 몹시 싫어했다. 슬리데린 내부에서도 점차 고립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이는 리들의 입김이 들어가기도 했다. 리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거나 해를 가하려는 존슨 패거리를 팀탁치 않게 여겼다. 슬리데린의 중심인 리들이 존슨을 곤란하다고 하니 다른 학생들 모두 그를 기피하게 되었다.

최근 존슨은 리들에게 주문을 쏘려다가 오히려 톡톡히 당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징계까지 받았다. 예전에도 금지된 숲에 들어갔다는 죄목으로 징계를 받은 존슨은 리들의 짓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증거도 없었고 교수들은 금지된 숲에서 발견되었으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그를 엄하게 꾸짖었다. 존슨은 그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계속해서 주장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리들이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짓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저 자식의 짓이었어! 그때를 생각하면 존슨은 아직도 이가 갈렸다. 존슨과 항상 붙어 다니는 세 명의 남학생 역시 리들의 욕을 하며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냐고 분노를 토해냈다.

“맥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거야?”

“맞아, 본때를 보여주자고. 계집애들은 그 반반한 얼굴이 좋다고 꺅꺅 거리던데 그 얼굴을 확…”

그런 그들의 눈에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새하얀 뱀이 포착되었다. 쉭쉭거리며 붉은 눈을 번뜩이는 뱀을 보며 존슨의 패거리들이 욕설을 뱉었다.

“리들, 그 개자식은 지같은 동물을 키운다니까.”

“콱 밟아버리고 싶다.”

“리들도 없는데 그냥 확!”

그렇게 뱀에게 거리를 좁히던 네 명의 남학생은 이내 리들이 나타나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리들과 눈이 마주친 그들은 움찔했다. 하지만 존슨은 리들을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픽 비웃음을 지어보인다. 그 모습에 존슨이 더 열을 낸 것은 당연했다.

“저 자식, 가만 안두겠어! 어디 두고 보자!”

존슨이 리들에게 큰 소리로 욕을 뱉었고 그 소리를 들은 여학생들이 속닥속닥 거렸다. 잘난 리들에게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거라며 신랄하게 입방아를 찧어대기 시작했다. “저게 바로 열폭이지 뭐니, 리들은 완벽하잖아.” “주제를 모르고 말이야. 저러다가 또 된통 당하지.” 여학생들은 깔깔거리다가 무서운 표정의 존슨과 눈이 마주쳤다. 당장에 자신들에게 주문을 쏠 듯한 기세인 존슨 패거리를 보며 여학생들은 살짝 겁을 먹은 듯 침실로 쪼르르 올라가버렸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맞다, 책 신청해주시는 분들도 감사해요!

알린님 예쁜 그림 정말 감사합니다ㅜㅜ♡

* 리들리브를 보면 리브가 마냥 호구처럼 끌려다니는거 같기는 해도 오롯이 리들 마음대로 되지는 않아요ㅋㅋ저번에 둘이 폭풍싸웠을때, 리들이 리브한테 말려서 소리치죠. 네가 그런다고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는 해? 아, 그리고요 리들이 퉁치자고 했을때 리브는 퉁치겠다고 답한적이 음슴....ㅋㅋ

* 아브엠(아브락사스X에밀리)은 메인커플 리들리브가 진지돋아서 활기찬 기운을 주기 위해 넣은 서브커플이에요ㅋㅋㅋㅋ에밀리가 지난번에 아브의 스킨십에 심하게 당황해서 바로 대처못한 것은 모솔이라서...ㅋ..ㅋㅋ..ㅋㅋㅋㅋ저 예전에 관심 1프로도 없는 남자애가 머리 쓰담쓰담했을때 순간 설레가지곸ㅋㅋㅋㅋㅋ모솔분들은 동감하실거에욬ㅋㅋㅋㅋㅋㅋㅋ아나 얘네는 썸타고 연애하는데 난 뭘하는거지....아 눙물 좀 닦을게여

<34편 부분발췌>

호그와트 대부분이 톰 리들을 동경하고 좋아했지만 100%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학년들 중에는 잘난 그를 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맞다면 이들은 리들에게 표면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는 과격파임이 분명했다. …… 젠장, 잘못 걸렸다.

*

“이러다 큰일나. 이 계집애는 벙어리라니까 위협만 하고 그냥 보내자. 뱀만 숨기면 되잖아.”

*

……입술을 깨물고 또 깨물었다. 입술이 터져 입안에 비릿한 피맛이 감돌았다.

“톰 리들을 원망해. 그가 너를 아낀다니 혹시 아니? 구하러 올지도.”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를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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