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32화 (3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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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8. 변화

    리들은 리브에게 상당히 잘해주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말할 것도 없고 퇴원 직후 여전히 리들에게 날을 세우던 리브 역시 그 배려에 마음이 풀렸는지 점점 둥글둥글하게 대하고 있었다. 리들은 실어증인 리브의 표정을 읽고 눈을 마주쳐 소녀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캐치하곤 했다. 예를 들어, 리들은 기숙사 공동 휴게실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소녀에게 잉크병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 모습에 오리온은 신기해하며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고 리들은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오늘 금서 구역에서 마주친 리들에게 리브는 인사차 목례를 하고 책을 찾고 있었다. 리들은 오늘도 어둠의 마법 관련 서고에 있었고 리브는 변신슬 서고에 있었다. 책을 고르고 나가려던 리들은 리브가 한참동안 서성이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리브가 돌아보자 리들은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능숙하게 책을 찾아서 건네준다.

    “애니마구스라… 그러고 보니 미네르바 맥고나걸이 애니마구스 등록을 할 거라던데.”

    리브는 얼마 전에 미네르바가 감쪽같이 고양이로 변신하고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리들이 리브에게 넌지시 물었다.

    “변신하고 싶은 동물 있어?”

    다른 이들은 리브에게 고갯짓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말만 건넸지만 리들은 그러한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레질리먼시로 읽으면 되니까. 리브가 아무리 노력해도 리들의 레질리먼시를 뛰어넘는 것은 무리였다.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무리이니 소녀는 소녀 나름대로 메시지만 전달하려는 오클러먼시를 펼쳤다. 리들의 레질리먼시를 100% 차단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보면 되겠다.

    “하긴 애니마구스는 지독하게 어려우니까 벌레로라도 변신하면 좋은거지.”

    벌레라는 소리에 리브의 인형같은 얼굴에 감정이 서렸다. 리들을 찌릿 노려보다가 책을 신경질적으로 받아들고 핀스 부인에게 가버린다. 이럴 때의 리브는 리들을 쏘아보며 ‘나쁜놈’ ‘네 실체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야 할텐데’ ‘착하기는 개뿔’ 이런류의 생각을 강하게 한다. 하지만 빗자루 타는 놈 위에 순간이동 하는 놈 있다고 했다. 리들은 일부러 소녀가 노려볼 때는 레질리먼시를 쓰지 않았다. 가끔 자기도 모르게 레질리먼시를 사용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못되쳐먹었다니까! 누가 이 인간을 착하다고 하는거야.’

    “뭐? 너 뭐라고 했어.”

    ‘못되쳐먹었다고 했다. 왜?‘

    “와, 이제 반말까지 쓰는 거 봐라? 너 진짜 정신에 이상 생긴거 아냐?”

    ‘내 정신 걱정보다는 주위를 살피는게 좋을걸?’

    리브의 메시지대로 복도를 지나가는 몇 몇 학생들이 리들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리들 혼자 원맨쇼를 하는 걸로 보일테니 말이다. 이 영악한 계집애! 리들은 이를 부득 갈았고 리브는 고소하다는 미소를 가득 지으며 휭 지나가버렸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리브는 공개된 장소에서만 이랬다.— 리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손해라는 것을 깨닫고 아예 소녀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은 얄밉게 웃어주니 이제는 소녀가 약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약 오르면 말을 하면 되잖아, 안그래?”

    이럴 때마다 리브는 리들을 걷어 차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았으므로. 아브락사스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에밀리의 심정이 이럴거야.

    *

    오늘은 래번클로와 슬리데린의 퀴디치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비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데뷔 시합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지난 그리핀도르와의 시합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에밀리는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선수였다. 에밀리의 데뷔 시합은 후플푸프와의 경기였는데 추격꾼인 에드가와 살벌하게 퀘이플 싸움을 했었다. 이에 샤를루스는 퀘이플 하나에 남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광경을 보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래번클로와 슬리데린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독수리와 뱀의 대결이죠! 사실 결과는 뻔한게 아닌가요? 뱀은 하늘을 못 날잖아요!”

    슬리데린 학생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핀드로 3학년 생, 샤를루스 포터는 헤이즐넛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낄낄거릴 뿐이었다. 악동의 해설과 함께 엄청난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양 팀의 선수들이 입장해서 각자의 자리에 섰다. 래번클로의 주장과 슬리데린의 주장이 서로의 손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자 모든 선수들이 동시에 날아오르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래번클로의 에밀리 맥밀란이 퀘이플을 갖고 있습니다! 저 선수는 데뷔 시합에서 가족도 안 봐주는 인정사정없는 경기를 선보였죠. 약혼자도 안봐줄 거라고 저는 멀린의-”

    퀘이플을 다른 추격꾼에게 패스한 에밀리가 샤를루스에게 날아와 해설을 끊고 바락바락 소리쳤다.

    “약혼자가 아니라 정혼자거든!! 말은 똑바로 해, 이 악동 포터!”

    그렇게 말하며 에밀리가 휙 퀘이플을 뺏으러 날아갔다. 샤를루스는 낄낄 웃으며 딴 소리를 하다가 어서 해설이나 하라는 슬리데린 학생들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샤를루스는 “답답하면 니들이 해설하던가!”라고 응수하며 편파적인 해설을 했다.(“누가 슬리데린 아니랄까봐 뱀 같은 비행을 하네요. 저러다가 빗자루에서 미끄러질지도 몰라요. 맙소사, 하는 짓도 뱀처럼 교활하군요! 래번클로에 자유투! 독수리들이 성공했습니다!”)

    “네, 지금 슬리데린의 오리온 블랙이 스니치를 찾고 있네요. 난 어디 있는지 아는데! 멋있는 포터님이라고 하면 알려줄 용의도 있지만… 오, 슬리데린의 볼스트로드가 퀘이플을 잡았습니다! 네, 래번클로의 에밀리 맥밀란이 빼앗으려고 돌진하고 있고요. 어? 조심해요!”

    슬리데린의 몰이꾼인 아브락사스가 블러저를 휙 날렸고 에밀리가 고개를 숙여서 그것을 피했다. 그 사이에 볼스트로드는 퀘이플을 골대에 명중시켜 득점시켰다.

    “20:10으로 아직까지는 슬리데린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에밀리는 이를 부득갈며 자신에게 블러저를 날린 원흉에게로 휙 날아갔다.

    “너! 내 머리를 날려버리려고 했겠다?”

    “워워, 블러저가 그리로 날아간 것뿐이야.”

    둘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며 샤를루스가 신이나는 듯이 외쳤다.

    “지금 맥밀란과 말포이가 싸우고 있네요? 여러분은 지금 약혼 관계가 파탄나는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에밀리는 “약혼 아니라니까!”라고 소리치며 퀘이플을 향해 휙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아 빠르게 빗자루를 몰더니 골대로 골인 시켰다. 에밀리가 슬리데린의 추격꾼들을 떨치며 종횡무진하는 모습에 래번클로의 응원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양 팀의 수색꾼들은 아직 스니치를 찾지 못한 모양인지 경기장을 빙빙 돌기만 하고 있었다. 서로를 경계하면서.

    “네, 래번클로가 또 득점했습니다! 현재 스코어는 70:20으로 래번클로가 선전하고 있습니다! 슬리데린 아무래도 파수꾼을 다시 뽑아야할 것 같네요! 역시 독수리 앞에서 뱀은 어쩔 수가 없어요!”

    샤를루스의 말에 슬리데린 학생들이 또다시 야유를 보내고 욕설을 퍼부었다. 물론 샤를루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설을 이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 팀은 슬금슬금 반칙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수색꾼 간의 대결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스니치를 발견한 둘은 한 곳을 향해 기를 쓰고 날아갔다. 오리온이 조금 더 빨라 스니치를 잡으려고 하는데 그 순간 블러저가 휙 날아왔다. 오리온이 간신히 그것을 피한 사이 스니치는 또다시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브락사스! 내 엄호 안하고 뭐하는거야! 네 역할이잖아!”

    다 잡은 걸 놓친 오리온이 분에 찬듯 소리쳤다. 아브락사스 역시 일이 잘 안풀리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블러저를 그 어느 때보다도 세게 쳤다. 어디로 날아가지도 모르는 채. 그리고 그 블러저는 휙 날아가서… 퀘이플을 안고 높이 치솟으며 상대팀들을 따돌리던 에밀리의 머리에 명중했다. 퀘이플을 놓침과 동시에 에밀리는 빗자루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깜짝 놀란 아브락사스가 휙 날아갔다. 하지만 따라잡기에는 추락하는 속도가 너무 심했고 백금발의 청년은 빗자루를 멈추고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아레스토 모멘텀!”

    주문이 빗나갔다.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레스토 모멘텀!”

    이번에 주문은 제대로 명중해서 에밀리가 추락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관중석에 있던 리브가 경기장과 거리를 좁히며 소리쳤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물건을 띄우는 기초 주문이었지만 강하게 걸었기에 에밀리는 바닥에 닿기 불과 30cm 전에 둥둥 떠있었다. 속도가 느려졌다고 해도 추락할 시에 몸에 상해를 입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의식이 없는 에밀리는 곧바로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

    정신을 차린 에밀리는 대뜸 경기 결과부터 물었고 기운 없는 팀원들의 모습에 역시 풀이 죽었다. 결국 오리온이 스니치를 잡았고 170:100으로 슬리데린의 승리로 경기는 끝이 난 것이다. 이제 에밀리는 고개를 휘휘 돌리며 블러저로 내 머리를 박살내려고 한게 누구냐며 이를 갈았다. 팀원 중 한 명의 입에서 자신의 정혼자 이름이 나오자 에밀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소리는 당장 말포이를 내 눈앞으로 데려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부르러 갈 필요도 없이 말포이가의 후계자는 선수복을 입은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에밀리! 너 괜찮-”

    “말포이, 꺼져!”

    방금까지 당장 눈앞으로 대령하라고 소리를 질렀던 소녀는 이제 꺼지라고 외치고 있었다. 백금발의 청년이 가까이 오자 머리맡의 베개를 힘껏 던진다. 그리고 그 베개는 보기 좋게 아브락사스의 얼굴에 명중했다. 친구의 포악한 모습에 리브가 움찔하며 잡고 있던 에밀리의 손을 놓았다. 팀원들은 슬금슬금 병동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타이밍을 놓친 리브는 두 남녀를 번갈아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에밀리, 이건 사고였어. 워워 진정을-”

    “진정은 무슨! 내 붕대 투성이 머리를 봐! 아파 죽겠단 말이야!”

    “젤러 부인이 치료 못하는게 어딨어. 그리고 너 맞자마자 기절해서 하나도 안 아팠을텐데”

    “뭐야? 이 자식이!”

    결국 아브락사스는 에밀리가 던진 초콜릿으로 이마를 얻어맞았다, 리브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입을 얄밉게 놀린 대가를 치루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날아간 베개를 주워왔다. 에밀리는 리브가 회수해온 베개를 들고 아브락사스를 패기 시작했다. 그것도 얼굴을 중심으로. 교복으로 갈아입고 느긋하게 외사촌의 상태를 보러온 오리온은 이게 뭔 상황인지 잠시 관망하다가 조용히 리브를 데리고 병동을 나가는 것을 택했다.

    “짜증나! 너 때문이야!”

    “야야, 오리온이 스니치 잡아서 너 멀쩡했어도 우리가 이겼거든?”

    베개를 든 에밀리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그리고 후려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점수 차라도 좁혀놨겠지! 너 좀 맞자! 짜증나게!”

    “내가 네 샌드백이냐!”

    우리 기숙사가 이겼다면 또 몰라! 져서 더 열받아! 이런 말을 하며 에밀리는 화풀이를 멈추지 않았다. 지은 죄가 있어서 곱게 맞아주던 아브락사스는 베개를 턱 붙잡았다.

    “맞아주는건 여기까지야, 정혼녀 씨.”

    에밀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베개를 세게 내팽겨쳤고 그 순간 아브락사스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기우뚱했다. 에밀리가 있는 침대 쪽으로. 중심을 잡고자 아브락사스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붙잡았고, 에밀리의 어깨를 짚은 채로 쓰러져버렸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아브락사스의 얼굴에 에밀리의 은회안이 커졌다. 아브락사스 역시 마찬가지로 소녀와 같은 색감인 은회안이 살짝 커져있었다. 하지만 이내 씩 웃는다.

    “우리 자세 상당히 묘한데.”

    청년의 말대로였다. 남들이 보고 말포이가 맥밀란을 덮치려고 한다고 소리쳐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아브락사스의 얼굴이 점점 에밀리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청년의 코와 소녀의 코가 살짝 부딪혔다. 입술이 무척이나 가깝다. 부딪힐지도 몰라. 그 자세 그대로, 청년이 소녀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속삭인다.

    “에밀리, 키스가 뭔지 알려줄까?”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에 청년의 백금발이 반짝 빛났다.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 청년의 숨결이 소녀의 입술에 닿았다.

    “넌 내 정혼녀니까 특별히 순서를 따져줄게. 처음이 손잡기던가?”

    그렇게 말하며 아브락사스는 그 자세 그대로 소녀의 손을 잡는다. 에밀리가 살짝 움찔했다. 굳어있는 소녀를 보며 청년이 얼굴 가득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다.

    “보기보다 순진한 아가씨네. 물론 이쪽도 신선해서 좋지만.”

    에밀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머릿속이 눈앞의 청년 하나로 가득차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키스가 뭔지 알려 주겠다 속삭이는 아브락사스의 목소리가 너무… 너무… 에밀리의 생각을 끊으며 에드가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포이, 이 카사노바 자식! 엠(에밀리의 애칭)한테서 안 떨어져?”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란 아브락사스가 얼굴을 앞으로 움직였다. 현재 코가 닿은 상태, 살짝 고개를 틀고 조금만 더 가까이가면 입술이 부딪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 하지만 아브락사스는 고개를 틀지 못한채 정면으로 마주본 그 상태 그대로 이마를 박고 말았다. 입술 박치기가 아닌 이마 박치기. 그 순간 에밀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브락사스를 힘껏 밀쳐냈다.

    “이,이,이 바람둥이 자식이!”

    에밀리가 무어라 더 소리치기도 전에 에드가가 아브락사스를 끌어냈다. 그리고 옷깃을 잡고 이리저리 흔든다.

    “너, 이 자식 엠한테 뭔 짓 하려고! 대낮부터!”

    “뭔 짓이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아, 쪽팔리게 이마 박치기가 뭐야.”

    이마를 문지르며 아브락사스가 에드가에게 툭 내뱉었다.

    “너 같은 남자끼리 너무한다. 분위기 다 잡아놨는데 판 깨기냐? 하여간 눈치가 없어요.”

    “뭐? 이 자식이! 남의 여동생을 덮치려고 한 주제에!”

    “네 여동생이지만 내 정혼녀이기도 하지. 내가 내 정혼녀 덮친다는데, 불만 있어? 너도 억울하면-”

    아브락사스의 말은 날아온 베개에 의해 중단되었다. 동시에 청년의 귀에 박히는 소녀의 목소리.

    “으… 저리 꺼져, 말포이!”

    에밀리한테 꺼지라는 소리 듣는게 한 두 번이던가, 아브락사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쉽지만 키스는 다음에 알려줄게, 정혼녀 아가씨.”

    그 말에 에밀리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아브락사스는 에밀리의 연갈색 머리칼을 들고 입을 맞춘다. 그리고 속삭인다.

    “아쉽지만 여기서-”

    아브락사스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이제 악소리를 내며 “야, 너 이거 안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에밀리가 청년의 머리칼을 움켜쥔 것이다. 두 손 가득 백금발을 쥐며 이리저리 흔든다. 이거 느낌 괜찮은데? 머리채를 잡힌 아브락사스의 모습에 에드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에밀리는 아브락사스의 머리칼을 놔주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돈하며 투덜거리는 아브락사스를 지긋이 쳐다보며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아브락사스 말포이, 너 경고하는데 나를 다른 여자애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

    “야, 장난 좀 친거 가지고-”

    “진지하게 말하는거야. 이런 장난도 치지마. 네가 나를 존중한다면 다시는 이러지 마.”

    그렇게 말하는 에밀리의 얼굴과 목소리는 제법 진지했다. 매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장난스러웠던 아브락사스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에밀리는 분명하게 말한다.

    “난 네 유희거리가 아니야. 우리는 정혼관계일 뿐이야.”

    “……”

    “연인이 아니라고, 그런건 다른 여자 애들한테 해. 난 정말 상관 안해.”

    무어라 더 말을 늘어놓으려는 에밀리의 입술에 아브락사스는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쉿”

    에밀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청년의 손가락을 떨쳐냈다.

    “아브락사스, 너-”

    “알았어, 안 그럴게. 화내지 마.”

    그렇게 말하며 아브락사스는 달래듯이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에밀리는 아브락사스의 얼굴에 맺힌 알 수없는 미소에 입을 다물었다. 순간 청년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스쳐지나간 듯 했지만 에밀리는 그게 뭐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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