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28화 (2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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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7. 갈등

    리브는 계속해서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부모님의 비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과도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리브의 몸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오늘도 마법약 재료를 손질하다가 자신의 손목을 자르려는 리브를 제지한 것은 리들이었다. 청년은 빠르게 칼이 들린 소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소녀의 손에서 칼을 휙 빼냈다.

    “대체 뭘 자르려는거야? 네 손이라도 넣을 셈이야?”

    “…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 너 상태 안좋아.”

    “아니요, 괜찮-”

    “손가락이라도 자르게?”

    그렇게 쏘아붙인 리들은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약 제조기구들을 전부 없애버렸다. 원래 생각을 하면 필요의 방이 자연스레 없애주지만 오늘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리들과 리브의 생각이 충돌한 모양이었다. 리들은 근처의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리브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멘토링 중간 보고서 써야해, 와서 앉아.”

    리들의 말에 리브는 그의 옆에 앉았다. 사각사각 양피지에 글을 작성하며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선 개요를 짜고 있는 듯 리브는 깃펜을 들고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었다. 글을 쭉 써내려가던 리들은 책상 앞으로 골드 블론드가 살랑거리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리브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리들은 턱을 괴고 빤히 쳐다보았다.

    요즘 많이 피곤해보이던데… 리들은 아브락사스와 에밀리가 떠들던 것을 기억해냈다.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에 잠도 많이 안 잔다고 했었나. 이제 리브는 아예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한 쪽 팔을 베고 고개는 리들을 향해 돌린 채로 그대로 자버린다. 금빛 블론드가 흘러내리며 소녀의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머리카락 틈으로 소녀의 지친 얼굴이 조금 보였다.

    리들이 흑안을 깜박였다. 아까까지는 없던 담요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다. 담요와 소녀를 몇 번 번갈아보던 리들은 담요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소녀의 몸 위로 덮어주었다. 리들의 눈에도 요즘 리브는 무척이나 위태로워보였다. 여전히 부모님 때문에 괴로워하는걸까. 무어라 말을 해주려고 할 때마다 소녀는 말을 돌렸다. 아무 것도 묻지 말라고 했지. 그건 모른 척 해달라는 의미일 터. 지쳐 보이는 소녀의 얼굴을 보며 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소녀의 머리칼을 만졌다. 부드럽다.

    리들은 이토록 찬란한 빛깔의 블론드를 단 한 번도 본적 없었다. 말포이의 백금발도 볼만했지만 심미안인 리들의 안목으로는 리브의 금발이 한 수 위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리브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던 리들은 움찔하며 황급히 손을 뗐다. 내가 무슨 짓을…

    리들은 흑안을 깜박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는 완전히 드러난 소녀의 고운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리들은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또 이런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자 리들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소음에 리브가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비몽사몽한 얼굴로 몽롱한 눈을 깜박이던 리브는 소음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심상치 않은 리들의 표정에 리브는 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미쳤다. 멘토링 중에 잠들다니! 리브는 벌떡 일어났다.

    “죄,죄송해요! 일부러 자거나 그런 것은-”

    그렇게 말하던 리브는 자신의 몸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담요를 발견했다. 웬 담요가…? 리브가 담요를 집어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리들은 소녀의 양어깨를 누르며 의자에 앉혔다. 어어, 다시 의자에 주저앉은 리브는 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어서있던 리들 역시 의자에 앉았고 이제는 리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리브가 긴장된 표정으로 리들의 눈치를 보는데 청년이 소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툭 내뱉었다.

    “너 눈꼽 꼈어.”

    그 말에 리브가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비볐다. 아 쪽팔리게… 그 모습을 빤히보던 리들이 입을 열었다.

    “너 요즘 잠은 자는거야?”

    “…남들 자는 만큼 자요.”

    리브의 벽안을 꿰뚫듯이 응시하던 리들이 대꾸했다.

    “거짓말 하지마, 난 다 알아.”

    리들의 흑안을 마주한 순간에 느껴진 이질감에 리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느낌… 이상하다. 기분 탓이겠지. 리브는 양피지로 고개를 들리고 깃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런 소녀의 귓가에 리들의 진중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내 미들네임의 주인, 외할아버지를 알아냈어. 마볼로 곤트”

    고서를 뒤적이던 리들은 우연히 옛날 날짜의 예언자 일보에서 한 기사를 보았다. 곤트 가의 마지막 후손들이 머글을 공격하고 마법부 직원에게 상해를 입힌 죄로 아즈카반 형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마볼로 곤트’라는 이름을 보고 리들은 곤트 가문이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마지막 후손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리들은 곧바로 곤트 가문에 대해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곤트 가문은 아주 오래된 순수혈통 가문이었지만 몇 세대 전에 집안의 재산을 전부 탕진하고 가난으로 처박힌 사실상 몰락한 집안이었다. 곤트 가문에 대해 묻는 리들에게 아브락사스는 유용한 정보를 하나 주었다. [곤트 가의 일원들은 전부 파셀통그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손이기 때문이겠지.] 리들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파셀통그가 곤트 가의 것임을-

    “내 어머니는 곤트가의 마녀였어. 곤트 가문은 대대로 홈스쿨링을 한 모양이야. 너도 알다시피 졸업생들의 목록에 곤트라는 성은 없었지.”

    “곤트 가문은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마지막 후손이에요. 지금 저에게 선배님의 혈통을 자랑하시려는 건가요?”

    리브의 푸른 눈동자가 번뜩였다. 리브의 신경질적인 대꾸에 리들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순수혈통인 나의 어머니가 머글인 내 아비를 어떻게 만난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를 가졌지.”

    “……”

    “코올 부인에게 들었는데 그녀는 몹시 허약한 상태였다고 했어. 임신을 유지한게 용할 정도로 말이야.”

    아마 혼신의 힘을 다해 임신을 유지했으리라.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뱃속의 아들을 사랑했으리라. 톰 리들 1세에게 버림받았지만 메로프는 끝까지 남편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남편의 이름을 물려주었다. 마치 어머니가 남편을 끝까지 놓지 못해 내 이름을 올리비아로 지은 것처럼.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메로프는 다르다. 메로프는 몸이 허약해져서 불가항력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내 어머니는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내 어머니는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음을 택했다. 그래서 리브는 리들을 질투했다. 어머니의 모성애를 받은 리들을 질투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거기다가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마저 알지 못한다. 그 생각이 들자 리브는 무언가가 울컥 치미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였어. 추운 겨울날, 임신한 몸으로 그렇게 떠돌았다는 것은… 내 어머니 역시 남편에게 버림 받은 모양이야. 역시 내 어머니도 마녀이기 때문에 버림받은 걸까.”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거에요?”

    “나는 너와 비슷한 부모를 두었지.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에게 매달리지는 않아.”

    리브의 날선 목소리에 리들은 멈춰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몸을 혹사시키고 망가져가는 소녀를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너무나도 위태로워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너도 더 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부모에게 감정 쏟지 마.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왜-”

    “그만하세요. 듣고 싶지 않아요.”

    리브가 리들의 말을 끊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차갑게 날이 서있었다. 하지만 리들은 멈추지 않았다. 리들은 이런 리브의 상태가 내내 짜증나고 거슬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니, 똑똑히 들어. 왜 그렇게 어리석게 굴어. 너 이렇게 나약한 여자였어? 왜 얼굴조차 모르는 부모님에 매달리고 너 자신을 망가뜨리는 거야. 그런다고 변하는게 있어?”

    “선배님이 제 기분을 알아요?”

    리브의 입술에서 놀랍도록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리브의 싸늘한 벽안과 리들의 흑안이 부딪혔다.

    “알 리가 없죠. 나 세스트랄이 보여요.”

    “……”

    “전 죽음을 본 기억이 없어요. 그 때 깨달았죠. 아, 나는 내 어머니의 죽음을 보았구나. 그 기분을- 알아요?”

    “나도 세스트랄이 보여. 너랑 똑같아. 갓 태어난 내 눈 앞에서 내 어머니도-”

    “같지 않아요.”

    “죽었다는건 똑같잖아.”

    리들의 대꾸에 리브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리브의 하이톤 목소리가 필요의 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같아! 내 어머니는 날 버리고 죽음을 택했어. 그것도 내 눈 앞에서! 하지만 당신 어머니는 자살한게 아니잖아! 당신을 버리지 않았잖아!! 허약한 몸으로 끝까지 당신을 낳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같아!!”

    갑작스럽게 돌변한 리브의 태도에 리들의 흑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차갑게 대꾸했다.

    “결국은 같아. 둘 다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너와 나를 낳고 죽었지.”

    “리들 선-”

    “죽은 자에게 매달리지 마, 네 아버지나 내 아버지는 어딘가에 살아있겠지. 하지만 만날 일 없어.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이야. 특히 넌 네 어머니를 빼닮아서 스쳐지나간다고 해도 모르겠지. 그 뿐이야? 네 아버지는 너의 존재 자체도 모르잖아. 그럼 더욱 더 만날 일이-”

    “그걸- 대체 선배님이 어떻게 알아요?”

    순간 리들은 자신이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리브는 그 순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리들이 말했다. […역시 내 어머니도 마녀이기 때문에 버림받은 걸까.] 어머니‘도’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아버지가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리브의 벽안이 커졌다. 어떻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는거야. 난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리들의 고요한 흑안을 보며 리브는 깨달았다.

    아까 그 이질감- 설마- 리브는 그제서야 리들이 자신이 말하지 않은 사실들을 알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리브는 이를 부득 갈았다. 왜 잊고 있었을까, 볼드모트의 주특기를!

    “저한테 레질리먼시를 썼군요?”

    “……”

    대답하지 않는다. 긍정이었다. 리브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것도 묻지 말라고 했는데- 끊어진 이성의 끈은 연결되지 않았다. 몰려드는 분노로 그 끈은 자잘하게 분쇄되기 시작했다.

    “무방비한 상태로 자고 있는 내 기억을 읽어냈군요? 아무 것도 묻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묻지 않겠다고만 했지. 알아내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어.”

    리들은 레질리먼시를 쓰기 전에 잠든 소녀에게 변명하듯 한 말을 또다시 뱉었다. 하지만 그 말은 리브를 더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성이 전부 사라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하! 겉으로는 날 위로하면서 속으로는 내 머릿속을 파헤칠 생각으로- 전부 거짓이었어.”

    울고 있는 자신을 감싸 안은 리들의 품은 따스했다. 자신을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다. 자신은 그 위로에 안정을 얻었다. 그런 자신이 가증스러울 정도로 위안을 받아버렸다. 하지만 속았다.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내 정신을 파헤칠 생각으로 그렇게- 리브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내가 멍청했다. 볼드모트에게 진심이라니? 이제 리브는 분노를 쏟아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레질리먼시로 항상 내 머릿속을 읽고 있었군요? 어쩐지 나에 대해 너무 잘 파악한다고 했어!”

    “그런적 없어.”

    “날 속일 생각은 말아요! 아까도 잠은 자냐고 물어놓고 레질리먼시를 써서 내 말이 거짓인걸 알아냈잖아요! 그 때, 눈을 마주쳤을 때의 그 이질감은 레질리먼시에요. 난 그 느낌을 알아요!”

    리들은 리브의 반박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억울했다. 리브에게 레질리먼시를 쓴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항상 쓰고 있었다고? 그런 적 없어! 리들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항상 레질리먼시를 쓰지는 않았어! 그건 오해-”

    “거짓말 말아요. 오해라고요? 전 선배님을 알아요. 모든 사람을 손 안에 쥐고 흔들죠.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에요!”

    리브의 외침에 멈칫하던 리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브릴리언트, 나는 네가 왜 그렇게 우는지 알아야-”

    “알긴 뭘 알아야 해요? 난 알리고 싶지 않았단 말이에요! 몰랐다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리들 선배님은 뭐든 자기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죠?”

    “너-”

    “정말 당신이란 사람은- 어쩜 그렇게 사람을 배려할 줄 몰라요?”

    리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리들의 귓가에 내리박혔다.

    “자기 호기심만 채우면 끝이에요? 내가 분명 아무 것도 묻지 말아 댤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내 약점을 알고 나를 쥐흔들고 싶었어요? 날 그렇게 맘대로 하고 싶었어요? 정말이지 사람이 어쩜 그렇게 못되쳐먹을수가!”

    지금까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던 리들도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리들은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불문율이 깨져버렸다.

    “야, 네가 그런다고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나 해? 네가 단 한 번이라도 내 맘대로 움직인 적이 있느냐는-”

    그렇게 소리치던 청년은 말을 뚝 멈췄다. 아니, 이게 아니었다. 자신은 너에게 레질리먼시를 쓰고 있지 않았고 너의 약점을 잡으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오해를 푸는게 순서였다. 순간 말려들고 말았다. 그걸 깨달은 리들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리브가 더 빨랐다. 거기다가 소녀는 더 이상 리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제 자기 입으로 인정하시는 군요! 내가 본인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못마땅해서- 처음에는 내 뺨을 때렸지! 그리고 전에는 나기니를 만지라고 해서 나를 압박하고-”

    “다시는 그런 식으로 너 안 건드린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기니도 다시는 만지라고 하지 않겠다고 했어!”

    페이스를 찾으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리들은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페이스를 잃어버렸다. 리브에게 완전히 말려들었다. 그리고 소녀는 이미 오래전에 이성이 끊긴 상태였다. 이제 쌓인 것들을 전부 쏟아내고 있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하죠! 자초지종도 모르고 함부로 손찌검 해놓고는 나중에 한다는 소리가 뭐? 자신도 잊을 테니 너도 잊어달라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리브의 말에 리들이 당황한 듯 흑안을 깜박였다. 손찌검을 한건 지나친 행동이었다.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걸 소녀가 콕 찝으니 당황스러운 심경이었다. 리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그 일을 끄집어낸 적이 없었다. 아니 리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 무어라 반발한 적 자체가 없었다.

    “내가 뱀 무서워 하는거 알면서도 일부러 나기니 만지라고 했죠! 정말이지 악취미야. 사람이 어쩜 그렇게-”

    “다시는 안 그런다고 했잖아!”

    “됐어요, 이 얘기는 그만해요.”

    “뭐?”

    리들은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다. 아니, 지가 먼저 얘기를 꺼내놓고 그만하자고? 사실 리들은 처음 접하는 리브의 분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브는 지금까지 리들에게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화를 낸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성품이 아니었다. 못마땅한게 있으면 몇 번 쏘아붙이거나 조곤조곤 입장을 표명할 뿐, 이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굴지 않았다. 사실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리들은 상당히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리들 선배님이랑 마주보고 싶지 않아요. 아니, 선배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아!”

    항상 선배님이라고 꼬박꼬박 붙이던 호칭과 정중한 존대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지 오래였다. 리들이 무어라 입을 열지만 무참히 말은 끊기고 만다.

    “브릴리언트, 너-”

    “당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리브가 괴로워보이는 얼굴로 소리쳤다.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순간 리들은 심장 고동소리를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낯설지만은 않은 미묘함. 하지만 이내 이어진 리브의 외침에 그 느낌은 묻혀버렸다.

    “하지만 나도 내 어머니처럼 사람 보는 눈이 형편없는 모양이야.”

    리브는 리들을 차갑게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를 계속 질러댔더니 머리가 멍하기까지 했다.

    “멘토링은 그만 두겠어요. 앞으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 너-”

    “당신을 믿어보려 했던 내가 어리석었어.”

    잠시나마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볼드모트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미래를 바꾸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한 내가 정말이지 어리석었어. 호크룩스 페이지를 찢어낸다고 당신이 변할 리가, 그럼 호크룩스 이상의 사악한 짓을 하겠지. 정말로 쓸데없는 짓을 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리브는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필요의 방을 나온 리브는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몹시 저조했다. 속이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밖에 나가야겠다. 성 밖을 나가면 기분이 좀 나아질지도 몰라.

    하지만 성 밖을 나와 정원에 도착했을 때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추운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몹시 추워서 꽁꽁 얼 것만 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어느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월에 눈도 아니고 비라니… 리브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손바닥을 펼쳤다. 빗방울이 손바닥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점점 많이 온다.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온 몸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브는 멍하니 손바닥을 펼친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손바닥에 빗방울을 담아보려 해도 조금도 받아지지 않는다. 주르륵 전부 흘러내리고 만다. 손바닥에 빗방울을 담기에는 너무 불안정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듯 리브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비는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눈물은 뜨거웠다. 그리고 내 마음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텅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 공허했다. 하지만 복잡했다. 모순인거 안다.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데 복잡하다니. 하지만 사실인걸. 빗방울을 담아내지 못하는 손바닥처럼 나 역시 몹시 불안정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정신연령이 높고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전생이 있는 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 전생은 이제 기억조차 희미해져 간다. 의미가 없다. 그만큼 나는 불안정하다. 그리고 나약하다. 어쩌면 이런 나보다 톰 리들이 더 정신연령이 높을지도 모른다. 오래 살았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사실 전생에 수명을 다 채우고 죽은 것도 아니고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그리고 지금은 최근에 열 네 살이 된 여자애에 불과한데. 나는 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모양이었다.

    열등감에 마녀인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 나중에 돌아왔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야. 하지만 내 존재를 알았으면 당신은 어머니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져. 더욱 더 비참해질 뿐이야. 톰 리들의 말대로 그냥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게 너무 힘들단 말이야. 애초에 날 버린 것도 아니고 내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고 하잖아. 하지만 그 남자가 증오스러워. 어머니가 너무 가엾어. 미칠 것 같다. 부모님에 이어서 톰 리들 때문에 또 미칠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나를 흔들어 놓는거야. 내 어린 날의 결심을 흔들지 마. 그런데 왜 자꾸…

    마음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비에 이 복잡한 마음이 전부 씻겨나가면 좋을텐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다고 변하는건 없어. 슬픔은 스스로 감당해야 해. 나는 왜 이리도 어리석고 나약한가. 뭐 하나 제대로 된게 없다. 부모님도, 톰 리들도, 내 마음도…

    리브는 한 걸음 걸으려다가 세상이 핑글 도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어지러워… 세상이 돌고 있었다. 정말로 돌아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미쳐버리는 걸까. 눈앞이 뿌옇게 보였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안 보이는거야. 하지만 이어지는 극심한 어지러움에 리브는 주저앉고 말았다. 차갑게 귓가를 때리는 빗소리. 계속해서 몸을 적시는 빗방울. 최근 몸을 몹시 혹사시킨 리브는 체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다. 몸이 이상하다… 숨이 차오른다. 호흡하기가 힘들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마자 느껴지는 메스꺼움과 극심한 현기증… 그렇게 눈이 감기고 어둠이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선작이 4천을 넘었어요! 여러분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편에서 응원어린 코멘트들도 정말 감사해요. 감동먹었음..ㅜㅜ

    * 리들은 곤트가 출신인 어머니에 대해 알게된지는 좀 됐어요. 정확한 시기를 말씀드리자면 음, 기억하실까 모르겠네요. 앞에서 나기니로 리브 족쳤을 때 리들 폭풍 예민한 시기였어요. 좀 리브한테 과하다는 생각 안드셨어요? 겨우 꼴랑 숙제 안해온거가지고 애를 되게 잡음;; 그 시기에 엄마 알아내서..뭐 그런거죠. 지금에서야 밝힙니다. 그때 리들이 리브한테 화풀이를 없잖아 한게 좀 있음ㅇㅇ

    * 이번 편에서 리들은 리브한테 발린게 맞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다들 속 좀 시원하시죠?^0^ 저도 어찌나 신이나던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레질리먼시를 들켜서....리들 이 피융신... 리브한테 털렸음^^!

    * 맞다, 머틀이 래번클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제보 감사합니다. 사실 전 슬리데린으로 알고있었어요;;;; 아주아주 처음에는 머틀 후플푸프 출신이겠지ㅋ했는데 누가 슬리데린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때 멘붕...헐 슬리데린이라니 어쩐지 애가 좀 그렇더라... 근데 뭐라구여? 래번클로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보받고 2차멘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쨌든 머틀은 슬리데린으로 가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이렇게 된거 후플푸프로 갈까하고 나기니의 과묵함만큼 고민했다가 이미 연재를 했으니 그냥 슬리데린으로 갈게요.

    리리플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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