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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진실
올리버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춘 천재 과학자를 학교에서는 다시 받아주었다. 물론 지탄의 소리는 피할 수 없었지만 어떤 이들은 누구든 슬럼프가 오고 방황하는 법이라고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올리버는 돌아오자마자 미친 듯이 학문과 연구에 몰두했다. 그 역시 버림받은 지니아가 괴로워했듯이 똑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임브릿지 대학교는 지니아와의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세인스버리 연구소도, 킹스 칼리지 예배당도, 지니아와 함께 거닐던 교정도, 함께 책을 보던 도서관도… 모든 곳에 지니아와 보낸 시간이 녹아있었다. 지니아와 처음으로 만난 곳이었고 함께 사랑을 속삭인 곳이었다. 이곳에서 지니아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올리버는 지니아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신은 여전히 지니아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그녀를 버리다니,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만을 믿고 집을 나온 그녀를 버리다니- 시간이 흐르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올리버가 지니아와 함께했던 시골 마을로 돌아갔을 때, 그 곳은 텅 비어있었다. 사람도 집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마을은 정부의 발전소 건설 계획으로 철거된 곳이었다. 그래서 원래 그 곳에 살던 주민들은 몇 달 전에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올리버는 지니아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이제 올리버는 불안해졌다. 언제 이곳에 사람이 살았냐는 듯 깨끗하게 없어진 이 마을처럼 지니아와 자신의 사랑 역시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것만 같았다. 가서 용서를 빌어야했다. 당신이 마녀여도 상관없다고, 자신이 잠시 미쳤던 거라고, 이제 두려움에 휩싸였다. 지니아가 자신을 용서해줄까.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줄까.
올리버는 열한 살에 떠난 후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마법세계를 다시 찾았다. 지니아의 처녀적 성 라이트(Wright),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라이트 가문은 순수혈통 가문이었다. 올리버는 가까운 부엉이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한적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릴 적에 스큅이라 판명받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연과 머글 고아원에서 양부모에게 입양되었으며 나이가 있으셔서 자신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지만 정말 자신을 친자식처럼 길러주신 고마운 분들이라고, 뛰어난 두뇌와 양부모님의 후원 그리고 마법세계에서는 버림받았을지언정 머글세계에서는 성공하고 말겠다는 집념과 노력으로 천재 노선을 밟게 되었다고, 마법에 대한 증오와 반발심으로 과학자라는 직업을 택했고 결국 그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해 너에게 몹쓸짓을 했다고… 올리버는 당신이 마녀여도 상관없다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자신이 정말 어리석었다고,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절절한 편지를 작성했다. 답장은 케임브릿지 대학교 세인스버리 연구소로 보내달라고 추신을 덧붙이며 부엉이를 지니아가 있을 라이트 저택으로 날려보냈다. 불행히도 그는 지니아가 저세상 사람임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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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를 받은 것은 나였어. 지니아가 그렇게 떠나고 충격과 실의에 빠진 라이트 부부를 자주 방문하며 돌봐드리고 있었으니까. 라이트 부부는 늘그막에 얻은 딸이라며 지니아를 무척이나 애지중지 하셨어. 나도 친 딸처럼 아껴주셨지. 그런데 하루아침에 외동딸이 집을 나갔으니 제정신이실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는 리코리스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라이트 부부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네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나는 충격에 휩싸였지. 왜냐하면 지니아는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지니아와 한동안 주고받던 서신도 끊긴지 한참이었어.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어. 지니아는 편지에 마법세계를 그리워하면서도 남편과 함께 하는게 정말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난 네 아버지와 둘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 알았지. 그래서 굳이 연락하지 않았던거야. 지니아는 그 남자가 비정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거든. 난 지니를 곤란하게 하고싶지 않았어. 확실히 머글 가정집에 편지를 든 부엉이가 드나드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리코리스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증오와 후회가 묻어있었다. 계속 편지를 보낼 것을…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난 그 이후로 행방불명된 네 어머니의 소식을 애타게 찾아 헤맸단다. 난 그 당시에 지니아가 임신한지도 몰랐고, 죽었다고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어. 마을이 철거 되었으면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을 거라고 생각했어. 근처 마을부터 뒤지려고 했지만 전부 싹 철거가 되어있더구나. 결국 레귤러스의 도움까지 받으며 몇 년을 지니아의 소식만 수소문했지. 그리고 들었단다. 지니아가… 자살을 했다고”
리코리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믿지 않았어. 지니아가 자살을 하다니? 무슨 착오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말도 안 돼, 지니아가 자살을 하다니… 지니아 라이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꾸준히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지. 물론 나는 대신 답장을 해주지 않았어.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저택에 찾아오기까지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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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편지를 보내던 올리버는 답장이 오지 않자 라이트 저택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올리버를 본 리코리스는 그를 저택 바깥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라이트 부부가 이 남자를 본다면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자는-
남자를 쫓아내며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오냐고 독설을 뱉는 리코리스에게 올리버가 애원했다. 지니아를 보게 해달라고, 직접 만나 용서를 빌게 해달라고,
그 말에 리코리스의 눈이 뒤집혔다. 몇 달 전에 겨우 입수한 지니아가 자살했다는 정보가 떠올랐다. 믿지 않았다. 절대로 믿지 않을거야. 지니아, 네가 그렇게 죽을 리가 없어. 절대로-
하지만 이렇게 지니아가 없는 여기 찾아와 지니아를 보게 해달라는 이 남자를 보니 엄습하는 불안감. 정말로 지니아가 죽은걸까. 정말로 죽은거야? 그럴 리 없어! 리코리스는 그 사실을 부정하듯 악을 쓰며 소리쳤다.
“지니아는 이곳에 없어!”
“뭐,뭐라고… 하셨습니까…?”
“당신과 떠난 후에 지니는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야!”
올리버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럴 리가-
“당신이 지금까지 내내 보내온 편지들! 지니아는 한 통도 받지 못했어, 왜냐고? 지니아는 죽었으니까!”
“…!!”
“지니아는 죽었어. 당신이 떠나고 1년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당신이 죽였어. 당신이 지니아를 죽인거야!”
올리버는 몇 번이나 물었다. 정말로 그녀가 죽었냐고, 그리고 종국에는 그럴리 없다고,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부르짖었다. 그 모습에 리코리스의 이성이 끊겼다. 당신이 지니아를 그렇게 만들었어, 당신만 아니였으면 내 동생과 결혼해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을 애야! 당신이 모든 것을 망쳐놨어! 그렇게 독설과 막말을 쏟아내고 지니아는 당신 때문에 죽었노라고 못을 박았다. 평생 괴로워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라고.
*
“네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그 때까지도 믿지 않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돌아오지 않는 지니아를 보며 그녀가 죽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얼마나 슬퍼했던가, 라이트 부부에게는 차마 지니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채 세상을 떠났다. 어디선가 지니아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거라 믿으면서. 그리고 리코리스는 슬픔에 못 이겨 도망치듯 프랑스로 떠났다. 리브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최근이었다. 오리온이 편지에 동봉했던 민달팽이 클럽의 사진 속에 담긴, 지니아와 똑같이 생긴 여학생을 보고 처음 알았다.
사실 지니아 라이트에게 딸이 있었으며 지니아가 죽었다는 소식은 리브가 호그와트에 입학했을 당시 순수혈통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리브는 대외적으로 부모님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코리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누구도 지니아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리코리스에게 그녀가 죽었다는 잔인한 소식을 알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알게 되었다. 리코리스는 곧바로 덤블도어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지니아가 어린 딸을 두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슬픔에 목을 매었다고. 덤블도어의 편지를 보며 얼마나 울었던가. 아아, 너는 정말로 죽었구나. 결국 그렇게 죽었구나. 정말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구나.
“그리고 최근에 들었단다. 네 어머니의 최후를…”
그렇게 말하는 리코리스의 은회안에서 내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리코리스는 후손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라이트 가문의 유산을 자신이 받았노라고 지니아의 딸인 리브에게 저택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리브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린고트에 라이트 가문의 것인 금고가 있다며 리브에게 황금빛 열쇠를 넘겨주었다. 리코리스는 소유주까지 전부 리브의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라이트 저택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리브는 간신히 입을 열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오리온이 말해주었던 줄을 잡아댕겼다. 그러자 집요정이 나타났다.
“오리온에게 안내해줘.”
“저를 따라오세요, 아가씨”
리브는 리코리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집요정과 함께 응접실을 나왔다. 집요정은 리브를 오리온이 있는 서재로 안내했다. 잠시 기다려달라고 한 뒤 집요정은 서재로 들어가 오리온에게 리브가 찾는다고 일렀다. 서재에서 나온 오리온은 리브의 얼굴을 보고 굳어버렸다. 청년은 소녀의 고운 얼굴에 깔린 짙은 슬픔을 읽어내고 말았다.
“리브, 괜찮-”
“지금 호그와트로 돌아가고 싶어.”
오리온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손가락을 튕기며 다른 집요정을 부를 뿐이었다.
“크리처”
“부르셨어요, 도련님”
“이 아가씨를 호그와트에 안전하게 데려다 줘.”
호그와트에서는 순간이동이 불가능하지만 집요정들의 마법은 마법사들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예외였다. 그리고 오리온은 이를 알고 있었다. 호그와트에서도 크리처는 부르면 어김없이 나타났기 때문에 터득하게 된 사실이었다. 오리온의 명령에 크리처는 꽥꽥 거리며 그리하겠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아가씨, 제 손을 잡아주세요.” 하지만 리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 오리온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직접 리브의 손을 크리처의 손과 맞잡도록 했다.(“리브, 잠깐 실례할게.”) 오리온이 눈짓을 하자 크리처와 리브가 펑하고 사라졌다.
주변의 풍경이 호그와트로 변했다. 리브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소녀는 크리처에게 고맙다고 한 뒤 돌려보냈다. 크리처는 마법사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듣자 몸둘바를 몰라하다가 다시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크리처가 리브를 데려다준 곳은 호그와트 성의 지하였다. 과일이 담긴 커다란 은그릇이 그려진 그림을 보니 주방 입구인 모양이었다. 리브는 자신의 기숙사가 있을 6층으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저녁식사 시간으로 학생들은 대연회장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복도는 텅 비어서 매우 조용했다. 리브는 슬픈 상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머글이 아니라 스큅이었다. 그래서 호그와트에 다닐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어머니는 마녀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마법 세계를 증오한 아버지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녀인 어머니를 버렸다. 자신이 갖지 못한 힘을 갖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사랑이 변할 수가 있는걸까.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첫눈에 반한 여자이자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를 택했듯이 아버지 역시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어머니와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을 택했다. 둘은 서로를 절절하게 사랑했다.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한 순간에 깨어졌다.
차라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사랑의 묘약을 썼다던가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사랑을 얻어냈다는 사실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럼 아버지를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이성적으로나마 동조해줄 수 있었다.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머리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정말 힘들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버리고 죽음을 택한 어머니를 결국은 용서했듯이!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가엾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었다. 리들 선배의 조언대로 아버지의 존재를 잊자고 되뇌이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자신을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평생 어머니를 가여워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말을 듣고 서로를 절절하게 사랑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은 추측에 불과했다. 톰 리들 1세와 메로프 곤트 역시 이웃들에게는 눈이 맞아서 사랑의 도피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니까… 그래, 나는 나의 어머니가 메로프 곤트처럼 사랑의 묘약같은 저급한 방법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낼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능성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톰 리들 1세를 봐. 그는 메로프 곤트를 사랑하지 않았어. 결국은 그도 피해자였어. 그에게 무슨 죄가 있겠어. 아아,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슬프고 또 슬펐다. 이젠 모르겠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서로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았든 둘 다 비극은 비극이었다. 사실 어느것이 낫고 안낫고의 경중을 따질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마녀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그녀를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홀로 자신을 낳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몇 년후에 후회하고 돌아왔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이미 어머니는 목숨을 끊어버렸는데! 그것도 갓난아기인 자신의 눈앞에서 목을 매고 말았는데! 이미 죽고 없는 사람에게 용서를 빌며 여전히 사랑한다고 속삭인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이야! 추측해왔던 것이 사실로 다가오자 리브는 숨이 턱 막혀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고… 하, 이 세상에 딸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톰 리들은 자신에게 아버지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틀렸다. 그 전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 이어 자신도 함께 버렸다고, 비정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아버지를 증오했다. 훗날 리들 가족을 몰살하게 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큼, 그런 생각을 갖게된 내 자신이 두려울만큼 아버지라는 남자를 증오했다. 하지만 이제 소용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아예 내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난 지금까지 무얼한거지?
정말 힘든 과정이었지만 나를 버리고 죽음을 택한 어머니를 용서했다. 정말 힘들고 괴로웠지만 차라리 어머니를 가여워하는 것을 택했다. 많은 이들이 추억할 만큼 좋은 마녀라고, 그런 어머니를 증오해서는 안된다고, 어머니는 그저 사랑을 했을 뿐이라고, 그저 남자보는 눈이 형편없었던 것뿐이라고, 그렇게 내 자신에게 세뇌시키듯… 사실은 내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 어머니를 용서했다. 그 대신 모든 증오를 아버지에게로 돌렸다.
아내의 뱃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를 버린 당신이 나빠, 전부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어머니를 버리지만 않았어도 어머니가 나를 버리는 일은 없었어. 어머니는 죽지 않았을거야. 당신은 어머니를, 그리고 나를 버리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게 아버지만을 증오했다. 그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전부 소용없어졌다. 아버지는 아예 내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한다. 아마 어디선가 새 출발을 했겠지. 어딘가에서 자신의 딸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평생 그렇게 모르고…
리브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걷는 속도가 점점 올라가더니 이제 소녀는 뛰기 시작했다. 이를 악문채로, 그렇게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콰당 넘어지고 말았다. 어찌나 심하게 넘어졌는지 오른쪽 무릎이 다 깨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깨진 무릎처럼 소녀의 마음도 깨져버렸다. 다리가 점점 피로 젖을수록 리브의 얼굴 역시 눈물로 흠뻑 적셔지고 있었다. 아파, 너무 아파.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아. 이제 소녀의 앙다문 입술에서는 서러운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피가 흐르는 무릎을 부여잡은 채, 한참동안 울음을 토해내던 소녀의 주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5층 반장전용 욕실에서 목욕을 한 뒤—반장은 아니었지만 암호는 알고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리들은 누군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 누가 울든 자신이 알바 아니라는 생각에 지나치려던 리들은 이 목소리가 상당히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리들은 그 울음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청년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에서 울음소리의 근원인 찬란한 금빛 블론드를 발견했다. 저 색감은 브릴리언트…
가까이 가서보니 가관이었다. 심하게 넘어진 모양인지 다리는 피투성이에 애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고있다. 리들이 아는 한 리브는 넘어졌다고 울만큼 나약한 성품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우는 모습은… 저번에 자신이 나기니를 만지라고 했을 때보다 정도가 더 심했다. 대체 무슨…?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대답도 없이 그저 울음을 토해내기 바쁘다. 리들은 자세를 낮춰 리브와 눈을 맞췄다. 청년의 흑안에 눈물 젖은 소녀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그제서야 소녀는 울음을 멈추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모양새를 보니 가까스로 울음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리브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지만 다친 무릎 때문에 이내 힘없이 비틀거리고 만다. 그런 소녀를 청년이 붙잡았다. 하지만 소녀는 리들을 뿌리쳤다.
“너 이 상태로는 못 걸어. 가만히 있어!”
“상관 말아요!”
"브릴리언트!“
소녀는 자신을 붙잡는 청년을 다시 한 번 뿌리쳤다. 리들은 더이상 소녀를 붙잡지 않았다. 냉정해 보일 정도로 표정 없는 얼굴로 그 위태로운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리브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지만 무릎에 힘이 풀려 또 넘어지고 말았다. 몇 번이고 그 과정이 반복되었지만 리브는 끝내 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 독한 계집애… 리들이 휘적휘적 걸어가 리브와 거리를 좁혔다.
“이래도 상관하지 말라고?”
“…가라고요! 당신은 누구 도와주고 그러는 사람 아니잖아!”
리들은 이제 기가 찰 지경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리브를 보며 리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리브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리들에게 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앞에서 우는 모습은 저번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도움이나 친절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와의 접점은 멘토링으로 끝내고 싶었다. 이 이상으로 관계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멘토와 멘티로 맺어진 것만으로도 너무 관계가 커져버렸다고 생각하는 리브였다.
처음에는 이 사람 앞에서만 움츠러드는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그는 볼드모트였다. 차라리 움츠러들기만 하던 때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그런 자신이 싫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와 자신은 닮은꼴 이었다. 닮은 점들을 하나하나 발견 할수록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항상 세뇌하듯 자신에게 되뇌어왔다. 나는 당신과 달라. 앞으로 그럴거고 절대로 이해하지 않을테다. 아아, 싫다. 이래서 애초부터 엮이고 싶지 않았던거야. 내 존재를 모르는 아버지, 불쌍하게 죽어간 어머니, 그리고 톰 리들. 아파, 힘들어, 이제는 견디기 힘들어. 싫어… 리브의 벽안에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울음소리를 참으려는 듯 끅끅거렸다. 그 모습은 몹시 애처로워 보여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을게, 그러니까…”
리들은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소녀의 말대로 자신은 누군가를 도와준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한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들은 이런 리브를 도저히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아프잖아.”
리들의 말에 리브의 앙다문 입술에서 발작스럽게 울음이 터져나왔다. 리들은 한 손으로는 리브의 등 뒤를, 다른 한 손으로는 다리를 받치더니 소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리브는 고개를 숙인채로 여전히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리브의 결좋은 머리칼이 소녀를 안은 리들의 팔을 간지럽혔다. 리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에 흑안을 몇 번 깜박였다.
병동이 있는 층으로 내려가려던 리들은 젤러 부인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떠올랐다. 이를 어쩐담. 그러다가 리들은 7층으로 발걸음을 옮겨 필요의 방으로 들어왔다. 리브와 항상 멘토링을 하는 그 공간이었다.
리들은 쇼파에 리브를 살며시 내려놓고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그러자 바로 옆 탁자 위에 구급상자가 있었다. 리들은 구급상자를 열어 치료약을 훑어보았다. 디터니 원액, 그 것을 쏟으려던 리들은 그 전에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로 물든 리브의 다리를 닦기 시작했다.
이 손수건은 처음에 리들이 리브의 손에 감싸주었던 그 것이었다. 처음에는 피가 흐르는 소녀의 손을 감쌌고, 지난번에는 리들한테 한 소리 듣다가 눈물이 흐르는 소녀의 얼굴을 닦았다. 리들은 돌려받지 않으려 했지만 며칠 전 리브는 기어이 리들의 손에 쥐어주고 말았다. 그 손수건은 또 다시 소녀에게 쓰이고 있었다. 피를 전부 닦아낸 후 리들은 상처가 심한 무릎에 디터니 원액을 주르륵 쏟기 시작했다.
그 순간 리브의 입술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디터니 원액은 상처를 낫게 하고 흉터를 없애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그 고통까지는 없애주지 못했다. 오히려 상처가 낫는 동안은 그 고통을 배가시켰다.
“조금만 참아.”
리들은 그렇게 말하며 피로 젖은 손수건을 향해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피로 물든 손수건이 깨끗해지는 동안 리브는 또다시 눈물과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또다시 소녀가 울음을 뱉어내자 리들은 움찔했다. 청년의 얼굴에 순간 착잡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리들은 소녀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며 상처의 아픔 때문만은 아닐거라고 판단했다. 청년은 마법으로 손수건 길이를 조금 늘리더니 상처가 나아가는 무릎을 감싸고 매듭을 지었다.
소녀는 그렇게 한참동안 눈물을 쏟아냈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듯 끅끅거리는 소녀를 보며 리들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내뱉었다.
“상관없으니까 그냥 마음껏 울어.”
그 말이 신호가 된 것처럼 소녀는 곧바로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다. 누군가가 우는 모습을 보면 구질구질하고 청승맞다고 생각했던 리들은 소녀가 우는 모습을 보며 그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서럽게 울음을 쏟아내는 리브의 모습은 세상의 온갖 슬픔은 전부 다 떠안고 있는 것 같아 리들의 기분 역시 가라앉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울어대는거야. 보기 싫어. 거슬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목구멍에 뭐가 탁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리들은 냉정한 사람이었다. 누가 울든 말든 제 알바 아니었고 오히려 그것을 지긋지긋해 했다. 고아원에서부터 우는 모습은 질리도록 봐왔고 호그와트에서도 자신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한 계집애들이 질질 짜곤 했다. 눈물은 나약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강함을 추구하는 리들은 이를 경멸했다.
그래서 청년은 처음에 리브가 도서관에서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말하며 눈물을 흘린 소녀를 보고도 흠칫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기니까지 동원해 리브의 눈물을 쏙 빼놓고도 울지 말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눈물을 당장 그치라고 윽박지르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참 이상하지.
리들은 쇼파에 앉았다. 옆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한없이 울음을 토해내는 금발을 가만히 응시하던 리들은 소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버렸다.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듯 리들의 흑안이 커졌다. 내가 무슨 짓을… 참 이상했다. 하지만 리들은 리브를 감싸안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이 느낌이 싫지 않았다.
누군가를 달래주는 것,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물론 어떻게 하는지 이론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실행해본 적은 없었다. 리들의 교복 와이셔츠가 계속해서 소녀의 눈물로 젖고 있었다. 리들은 흑안을 깜박이다가 어색하게 손을 움직여 소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리고 가볍게 등을 토닥이는 것을 반복했다. 필요의 방을 가득 채우던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았다.
리들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소녀가 우는 것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는 안아서 달래주기까지 했다. 톰 리들이 우는 여자애를 달래줬다. 아브락사스나 오리온이 들었다면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냐고 비웃었을 것이다. 만약 이 장면을 보았더라면 필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으리라. 리들 자신이 생각해도 참 이상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들은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리브 역시. 그런 자신에게 놀랄 정도로
리들의 품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따뜻했던 손만큼이나- 그리고 안정감을 주기까지 했다. 톰 리들, 정말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남자였다. 미래의 볼드모트, 지금은 볼드모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무자비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리브는 그가 미래에 볼드모트 경이 되리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달래주고 있다. 그리고 배려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리들은 자신에게 한해서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에게는 가식적으로 굴지 않았고 지난번의 경고 이후로는 리브 역시 그를 다른 사람처럼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실 누군가에게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리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리들과 리브는 성품 자체가 상극이었다. 하지만 닮았다. 둘은 닮은꼴이었다. 아마 리들도 그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다보면 상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리브는 그것이 두려웠다. 리들을 이해하게 될까봐, 그래서 그에게 만큼은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리들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몰랐던, 보고 싶지 않았던, 없기를 바랐던 그런 면모를 볼 때마다 리브의 마음은 어김없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마음은, 감정은 자신이 알 수 없는 곳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곳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금같은 상황처럼 리브는 종종 리들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았다. 처음에 ‘너도 결국은 사람이구나.’했던 사소한 것들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리브는 항상 세뇌하듯 자신에게 되뇌어왔다. 그와 내가 닮았다 한들 나와 그는 달라. 그러니까 나는 결코 그를 이해하지 않아. 그는 악인이고 볼드모트를 이해하게 돼서는 안돼. 하지만 이제 그 세뇌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위로에 위안을 얻고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가증스러울 정도로-
*
리브는 리들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울기만 했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듯 쉴새없이 눈물만을 쏟아냈다. 목이 쉴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보다 못한 리들이 속삭였다.
“브릴리언트, 그만 울어. 이러다 탈진할거야.”
그래도 리브는 서러운 울음을 뱉을 뿐이었다. 여전히 소녀를 감싸 안은 채로 리들은 슬며시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살짝 휘둘러 수면마법을 걸었다. 주목나무 지팡이에서 새하얀 빛이 튀어나왔고 이내 소녀의 눈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리들은 고개를 돌리고 저쯤에 침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년은 필요의 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리들은 그대로 잠든 소녀를 안아들어 방금 생긴 침대에 살며시 눕혔다. 눈물로 젖어있는 소녀의 고운 얼굴을 보며 리들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올렸다.
“묻지 않겠다고 했지, 알아내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어.”
앞으로 자신이 할 행동에 대해 변명하듯 그렇게 속삭이던 리들은 주목나무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신중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운다.
“레질리먼스”
레질리먼시, 앞으로 그의 특기가 될지도 모르는, 타인의 정신에 침투하여 감정이나 기억을 읽어내는 정신계 마법이었다. 오클러먼시를 습득한 사람만이 레질리먼시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리브는 오클러먼시를 습득하지 않은 상태였을 뿐더러 무방비한 수면 상태로 레질리먼시를 막아내는 시도조차 할 수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깨어나더라도 자신이 레질리먼시를 당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리라.
그렇게 리들은 리브의 기억을 읽어냈다. 레질리먼시는 감정도 함께 읽을 수 있었지만 아직 리들은 레질리먼시를 완전히 섭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감정은 둘째치고 소녀의 기억을 읽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억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소녀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정말 정신적으로 몹시 취약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리브가 얼마나 혼란스러워한지,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 사실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져서 리들은 소녀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온 몸으로 슬퍼하고 있었나.
너와 나는 비슷한 부모님을 두었지. 자신의 어머니는 고아원 앞에서 자신을 낳고 죽었다. 나약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마녀라면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리 없다고, 그렇게 나약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머글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녀였다. 그런 자신의 혼란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은 브릴리언트였다.
[혹시 병에 걸려있었을지도 몰라요. 아팠을지도 모르죠. 마법사라고 아프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세상에는 치료되지 않는 병도 많아요. 마법이 만능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납득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아팠을지도 모른다고, 추운 겨울날에 임신한 몸으로 그렇게 떠돌아다녔으니 몸이 허약해질 수밖에 없을터.
[아픈 몸으로 선배님을 낳은 어머니에게 감사하시는건 어때요?]
감사하라고- 그래, 이렇게 태어나게 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해야할지도 모르겠지. 리브의 기억을 읽으며 리들은 소녀의 슬픔과 고뇌를 보았다. 소녀는 자신과 달랐다. 부모님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생각한 자신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리들은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리들은 리브가 어머니를 한없이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목을 맨 어미를 어찌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소녀는 어머니를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브릴리언트는 자신의 어미를 용서했다. 그 대신 아비를 증오하는 것을 택했지만.
리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머글 아버지 따위, 그래, 어쩌면 브릴리언트의 아버지처럼 스큅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찌되었든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므로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이다. 거기다가 한 쪽 배우자가 마법사라는 이유로 부부관계가 파탄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으니 자신의 어머니 역시 그런 케이스일 확률이 높았다. 추운 겨울날에 임신한 몸으로 그렇게 떠돌아다녔으면… 상황은 뻔하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린 모양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상관없다. 이해할 생각도 알아낼 생각도 없다. 어쨌든 버렸다는 건 팩트니까. 그렇게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변하는 것은 없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 후로도 자신을 찾지 않았고 자신 역시 머글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없는 존재라 생각하고 살아가면 간단한 것을…
그래서 리들은 리브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증오한다고? 어째서 그런 감정소모를 하는걸까. 그리고 그 아비는 딸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고. 그럼 그냥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역시 너와 나는 다르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소녀와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너와 나는 정말 다르다.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말 그대로 상극이었다.
보통 사람은 자신과 전혀 상극인 사람을 보면 싫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들은 리브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 부터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님에 대한 진실로 무너져 내리는 리브를 보니 리들은 걱정되고 안타깝고… 리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동질감으로 시작된 감정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치닫고 있었다. 리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 마침.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 참고로 리코리스는 올리버의 편지를 전부 태워버렸음돠. 어느 순간부터는 읽지도 않았어요. 이 편지를 라이트 부부가 보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며 전부 편지를 빼돌림. 저 진실은 아무도 몰라요. 이제 리코리스와 리브, 투영마법으로 같이들었던 레귤러스, 레질리먼시를 써서 읽어낸 리들 정도가 되겠네요. 물론 오리온은 모릅니다. 남의 가정사 함부로 엿들을만큼 무례한 성품 아님. 고로 리들 너란 남자 무례한 남자....
* 올리버의 행방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쓰자면.. 올리버는 몹시 슬퍼하며 폐인생활을 하다가 자살...은 아니구요. 그 슬픔을 잊기위해 미친듯이 학문에 몰두하고 있어요. 이제 나이는 40대 정도. 올리버는 평생 지니아를 잊지 못하고 리코리스의 저주대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거에요. 리브와 만날지 안 만날지는 노코멘트 쉿^^
* 후기에 매번 예고편을 쓰는건 아니구요. 가끔 써요 이렇게 연참할 때..ㅋㅋㅋ 예고편 괜찮으시면 자주 쓰도록 노력해볼게요. 사실 제가 비축분을 어느 정도 쌓아놓고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퇴고를 하거든요. 그래서 부분발췌가 가능해요ㅋㅋ
* 사실 이번 편은 쓰기가 유독 힘들었던 화에요..ㅜㅜ 리브의 부모님에 대한 갈등과 리들에 대한 갈등이며 리들이 리브를 걱정하는 그런 서툰 부분이며...으악 심리묘사는 어려움!ㅜㅜ 뭔가 성에 차지 않네요 이번 화는...일단 밤에 올리기로 했으니 올려봅니다. 으앙 그냥 내일 올린다고 할걸!
* 이번 편으로 진실 챕터는 끝입니다! 리브의 부모님 얘기가 나와서 다른 챕터보다 길어졌네요. 다음 챕터 소제목은 '갈등'이에요^^ 아 싱난다
<27화 부분 발췌>
……어떤 책 제목을 본 순간 리브의 생각이 끊겼다.………
리브는 멍하니 그 책을 꺼내 책장을 주르륵 넘기기 시작했다. 책 안에는 온갖 사악한 마법들이 가득 적혀있었는데 대충 훑는 것만으로도 리브는 몸서리쳐야만 했다. 정말 무시무시했다. 이런 책을 학생들이 읽을 수 있게 하다니… 어둠의 마법사 양성이 목표인가 책이 뭐 이렇게…
**
이제 소녀는……… 책장들을 한 손 가득 쥐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자신이 움켜쥔 책장을 바라본다. 그런 소녀의 작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리브는 결심한 듯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그것들을 북북 찢어버렸다. 리브의 손에 쥐어진 책장들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동시에 리브의 고운 얼굴도 일그러졌다.
… 지금 자신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편에서 만나요!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