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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진실
“손 안에 쥐고 있으면 보라색으로 변하는 물건이라고 해서 제가 쥐어봤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안 변하더라고요.”
“아, 그런가요?”
“네, 그런데 교수님이 쥐어보았을 때는 어김없이 변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변하고 어떤 사람은 안변하고… 온도에 따라 변하는 건지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보고 있는데…”
올리버는 지니아를 실험실로 안내하며 정체불명의 공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머글들의 과학에는 문외한인 지니아였지만 올리버의 설명은 꽤나 훌륭해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손에서는 보라색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올리버의 말에 지니아는 눈앞의 남자가 상당히 꼼꼼한 성격이라고 추측했다.
처음으로 들어가보는 머글 실험실에 지니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때 지니아의 주머니에 있던 스니코스코프가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던 지니아는 그걸 느끼고 바짝 긴장했다. 올리버는 실험용 장갑을 끼고 후드 안에 넣어놓은 리멤브럴을 꺼냈다. 그 것을 본 지니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저거다. 마녀인 지니아에게는 그다지 낯선 물건이 아니었다.
“원래 이걸 쥐면 보라색으로 변하는데 말이죠. 저같은 경우는 절대 변하지가… 어? 이번에는 변하네.”
올리버는 갸우뚱하며 보라색으로 변하는 유리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니아는 속으로 쿡쿡 웃었다. 이 남자, 무언가를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니아의 품속에 있는 스니코스코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니아는 감이 좋은 편이었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스니코스코프, 자꾸 자극을 가하면 폭발한다고 했다, 순간 엄습하는 불안감. 여자는 남자가 쥐고 있는 리멤브럴의 색감이 더욱 더 진해지며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리멤브럴을 쥔 손을 접었다 폈다하며 강도에 따라 변하는건가, 후드의 온도를 조절할게 아니라 다른 실험을 해봐야하나 고민하던 올리버에게 지니아가 빽하고 소리쳤다.
“그거 내려놔요!”
“그게 무슨…?”
“당장요!”
지니아는 자신의 손으로 리멤브럴을 쥐고있는 남자의 손을 내리쳤다. 리멤브럴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보라색은 계속해서 진해져 이제는 검은색이 되려하고 있었다. 균열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지니아는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남자를 힘껏 잡아당겼다. 머글 가정집에서 폭발함으로써 머글 아이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을 기억해낸 지니아는 그대로 몸을 던져 남자를 실험실 바깥으로 밀쳐냈다. 두 사람이 실험실 바깥, 복도로 밀려나옴과 동시에 실험실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다. 리멤브럴이 지니아의 예상대로 결국 폭발한 것이다. 그 폭발의 여파로 두 남녀는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놀란 올리버는 고개를 들어 내부가 완전히 박살났을 실험실을 멍하니 응시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지금쯤 요단강을 건넜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축 늘어져있는 누군가의 몸을 느낀 올리버의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지니아는 올리버를 감싸안은 채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엄청난 폭발 소음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완전히 날아가버린 실험실을 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연구원들과 직원들이 허둥지둥 달려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발 늦은거냐며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뛰어온 오러들은 정신을 잃은 지니아의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올리버는 침착하게 실신한 지니아를 안아들었다. “구급차를 부르세요. 병원으로 가야합니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전 이 여자 분이 감싸주셔서 괜찮습니다.” 그 올리버 브릴리언트답게 더없이 이성적이고 침착한 태도였지만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남자의 심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
머글 병원으로 이송되려는 지니아를 막은 것은 오러들과 리코리스였다. 올리버는 지금 폭발 사고로 심각한 상태일지 모르니 엠뷸런스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일반인에게는 열람이 금지된 극비품을 보여줌으로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니 자신의 실책이라고 정중하게 사과한 올리버는 치료비는 자신의 사비로 부담하겠다고 했다.
오러들은 지금 치료비고 나발이고 미치고 팔짝뛰기 직전이었다. 라이트 가문의 고명딸을 위험에 몰아넣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머글식 치료를 받게한다? 라이트 가문에서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머글 남자는 완강했다. 지니아를 넘겨달라고 해도 병원으로 가야할 환자를 어디 데려가려는 것이라며 집요하게 군다. 여기서 마법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리코리스의 얼굴을 보니 까딱하면 깽판치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오러들 중 하나가 기지를 발휘했다.
“라이트 씨는 일반 병원에서 치료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
“이렇게 어린 여자 분이 정부의 감사인이라는 것에 대해 의아하지 않으셨나요?”
올리버는 어릴 적부터 뛰어난 두뇌로 천재라 불리면서 조기 졸업과 조기 입학을 밥 먹듯이 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어려보이는 여자가 정부에서 파견된 감사인이라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고 그렇구나하고 넘겼을 뿐이었다. 세상에 자신같은 사람이 더 없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거기다가 아까 여자는 당당하게 신분증도 보여주었다.
“귀하신 분입니다. 주치의에게 모셔가야하니 어서 저희에게 넘겨주십시오.”
올리버는 자신이 안고있는 여자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부잣집 아가씨인 모양이었다. 화려한 외모는 물론이거와 어쩐지 귀하게 자란 인상이 가득하다 했다. 그제서야 남자는 순순히 여자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남들이 안보는 사이에 자신의 명함을 넣는 것은 잊지 않았다. 천재 노선을 밟으며 항상 학문에만 전념하며 살아온 올리버 브릴리언트는 처음 보는 여자에게 첫 눈에 반해버렸다.
*
즉시 성뭉고 병원으로 이송된 지니아는 시간이 흐르자 정신을 차렸다. 간단한 검사를 거친 후 치료사는 폭발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 뿐이라며 오러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당분간 안정을 취해야한다고 당부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난 괜찮아요. 브릴리언트 씨, 그러니까 그 머글 남자는 무사해요?”
“그 머글은 무사해.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 지니, 괜찮은거야?”
리코리스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며 자신의 친구를 채근했다. 지니아는 있었던 일을 대략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오러들은 머글 연구소에서 실험실이 폭발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라서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병실에 홀로남은 지니아는 품에서 낯익은 이름이 적힌 명함을 발견했다.
[올리버 브릴리언트(Oliver Brilliant), 영국 세인스버리 연구소 소속,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교 생물학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Master degree(석사 학위)? degree는 학위… 어쨌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어. 대학교를 다니는데다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던데 연구소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엘리트라는 건데… 똑똑한 사람이구나.
지니아는 퇴원 후에 다시 케임브릿지 대학교를 찾아갔다. 그 때는 보이지 않았던 대학교의 풍경이 지니아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니아는 올리버는 까맣게 잊은채 교정을 거닐기에 바빴다.
케임브릿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 지니아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킹스 칼리지 예배당(King's College Chapel)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섬세한 부채꼴 볼트를 올린 장방형 건물의 내부에는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좌르륵 펼쳐져있었다. 킹스 칼리지 예배당은 단순하고 통일된 구조였지만 이 단순함이 미(美)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 킹스 칼리지 예배당에서 지니아와 올리버는 재회했다.
“지니아 라이트 씨?”
찬란한 색감의 골드 블론드의 뒷모습을 보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올리버가 이제 낯설지 않은 그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우는 것도 모른 채 여자는 예배당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었다. 마녀인 지니아에게는 머글세계의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올리버는 케임브릿지 대학교의 방문객들이 킹스 칼리지 예배당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모습을 자주 본 적 있었다. 이 아가씨 역시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름답죠? 저도 처음에는 당신처럼 혀를 내둘렀죠.”
“…어머, 브릴리언트 씨!”
그제서야 옆에 다가온 사람의 존재를 눈치챈 지니아의 벽안이 커졌다. 그녀는 반가움을 표했고 올리버는 몸은 괜찮냐며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병문안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연락을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제가 이렇게 찾아온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지니아는 싱긋 웃어보였다. 올리버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라이트 씨”
“지니아라고 부르세요. 저도 올리버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럼요. 지니아”
*
올리버에게 지니아는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아가씨였다. 자신이 고작 스물 셋의 나이에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라고 했는데도 그러시냐고 대꾸할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들은 정말이냐고 되묻거나 역시 천재라고 그를 치켜세우기에 바빴기에 올리버는 의외의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다왔으며 홈스쿨링을 했다는 지니아의 말—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에 올리버는 쉽게 수긍했다.
둘은 그 이후로도 자주 만났다. 올리버는 지니아에게 케임브릿지 대학교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리고 함께 런던의 명소들에 들리기도 했다. 지니아는 남다른 여자였다. 올리버가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은 자신의 전공에 대해 이야기하면 난색을 표하거나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지니아는 눈을 빛내며 올리버의 얘기를 전부 귀담아 들었다. 올리버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니아는 머글들의 과학에 신기함을 느꼈다. 만남의 횟수가 늘수록 둘의 친분은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감정은 사랑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나는 과학을 하나도 몰라. 한 번은 과학책을 펼쳐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어려워서 바로 덮어버렸지 뭐야. 그런데 올리버가 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어렵지 않아. 당신은 가르치는 일 하시면 잘할거 같아. 음, 교수같은 거!”
“종종 강의를 하고 있기는 해. 그리고 박사 과정을 마치면 교수직을 받기로 했어.”
“잘 됐다! 올리버는 교수라는 직업이 정말 잘 어울릴거 같아.”
올리버에게 지니아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타입의 여자였고 지니아에게도 역시 올리버가 그러했다. 똑똑하고 지적인데다가 유순한 성품의 올리버에게 지니아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올리버 역시 아름다운 외모뿐만이 아니라 총명하고 따스한 지니아에게 더욱 더 사랑을 느꼈다. 지니아 라이트는 마법세계에서도, 머글세계에서도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지니, 아이작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했다고 말해준거 기억해?”
올리버의 말에 지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하게도 뉴턴이 당신과 같은 케임브릿지 대학교 출신이라고도 말해준 것도 기억한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 올리버는 그렇게 재잘거리는 여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결국 끌어안고 말았다. 보석같은 벽안을 깜박이는 지니아의 고운 얼굴을 지긋이 응시하다가 올리버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는 지니아, 당신이 그 날 연구소에 들어온 것을 보고 사랑을 발견했어.”
올리버의 갑작스러운 입맞춤과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그 말에 담긴 의미, 천재 과학자라 찬양받는 올리버 브릴리언트다운 지적인 고백에 지니아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이제 남자는 여자에게 아까보다 깊은 입맞춤을 선사했다. 그리고 여자는 받아들였다. 키스와 함께 남자의 마음을. 지니아 라이트 역시 올리버 브릴리언트에게서 사랑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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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브는 실소를 머금었다. 자신의 부모님은 그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첫눈에 반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제 어머니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오리온의 숙부님이라는 레귤러스 블랙 씨 맞죠?”
리코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영마법을 걸고 응접실에 들어와 둘의 대화를 듣고있던 레귤러스의 얼굴에 슬픔이 맺혔다.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꼭 닮은 리브를 보며 지니아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이 귀한 순수혈통 집안의 외동딸이었어요. 아마 어릴 때부터 약혼자가 있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졸업 후에 곧바로 결혼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네 말대로 졸업 후에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는게 정석이었지. 하지만 지니아는 하고 싶은게 많다고 했어. 그리고 레귤러스는 지니아를 배려해서 결혼을 미루었어.”
변신술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지니아를 원하는 곳은 많았다.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는게 어떠냐는 양가 어르신의 말에 지니아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레귤러스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며 지니아를 배려했다. 그리고 훗날 이 선택을 평생토록 후회하게 되었다. 그 때, 결혼을 미루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니아에게 남자는 자신 뿐이라 생각했던 오만의 대가는 크디컸다.
“그 사이에…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고… 사랑에 빠졌군요.”
리브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불확실했던 퍼즐 조각이 하나하나 완벽하게 짜맞춰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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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비밀 법령에 의하면 마법사는 머글에게 마법의 존재를 발설해서는 안된다. 이를 어기면 마법부의 처벌을 받게되었다. 자유분방한 성품인 지니아에게 이는 별 문제되지 않았다. 내가 마녀라고 올리버한테 말한다고 지들이 알아?
하지만 지니아는 올리버에게 자신이 마녀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뼛속까지 과학자였다. 마법사에게는 부족한 논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기이하고 신기한 것들을 비과학적인 것들이라 치부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올리버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것들에 심각한 거부감을 보였다.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연인의 사고방식을 아는 지니아는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밝힐 수 없었다. 또한 그는 독실한 학자였다. 마법이라는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으며 동화 속에나 있는 것이라 말하는 연인에게 어찌 자신이 그 마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법을 보여주면 믿겠지. 처음에는 속임수라고 무슨 마술을 부린 것이냐고 하다가도 자신이 물건을 동물로 변신시키거나 하면 결국 마법의 존재를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지니아는 두려웠다. 그 후의 올리버의 반응이. 자신에게도 거부감을 보이고 두려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마법의 존재는 과학자인 그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흔들리라. 그리고 자신은 처음으로 느낀 사랑을 송두리째 잃게 되리라. 머글과 사랑에 빠진 다른 마법사들이 그렇듯이 지니아 역시 마녀임을 포기하고 머글로 살리라 마음먹었다. 마법사가 마법의 힘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니아는 사랑하는 올리버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올리버를 사랑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레귤러스와는 결혼 못해요.”
라이트 부부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뿐인 딸을 사랑했다. 아가, 어느 집안의 자제길래 그러는거니. 그렇게 묻는 노부부에게 지니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는 머글이라고. 그 후의 상황은 말을 안해도 뻔한 일이었다. 라이트 부부는 머글 태생이라도 기함할 일인데 마법사도 아닌 머글 남자와 결혼할거라는 외동딸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당연히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야만 했다. 하지만 지니아는 용감무쌍하게도 약혼자인 레귤러스에게 직접 파혼을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약혼자의 파혼 선언에 레귤러스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지니아와 심하게 싸웠다.
“지니아!”
“너도 알고 있었잖아, 너와 나의 마음이 다르다는거”
“너야말로 알잖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너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난 네가 아닌 그이를 사랑해.”
지니아는 냉정하고 잔인했다. 어릴 적부터 10년 가까이 자신만을 사랑해온 레귤러스에게 말한다. 네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애초부터 널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고. 이제 레귤러스는 애원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제발 자신을 봐달라고. 지금까지 너만을 사랑해온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이러지 마,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넌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한거야! 너라면 네 손안에 있는 사람을 빼앗겼는데-”
“내가 대체 언제 네 손안에 있었던거지? 단지 우리는 약혼이라는 굴레에 엮여있었을 뿐이야.”
리코리스는 항상 자신의 남동생의 짝사랑이 안타까웠다. 둘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언젠가는 지니아와 레귤러스의 마음이 통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지니아가 올리버 브릴리언트라는 머글 남자에 대해 재잘거리는 것을 들을 때마다 리코리스의 불안감은 더욱 더 증폭되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결국 자신의 친구는 머글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말았다. 리코리스는 지니아가 금방 흥미를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지 흥미를 느꼈을 뿐이야. 어차피 마지막은 레귤러스야. 하지만 흥미가 아니었다. 지니아는 그 머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머글 남자 역시 지니아를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지독하게 빠져있었다. 하지만 리코리스는 둘의 사랑을 축복하는 대신 친구를 뜯어 말렸다.
“마녀임을 포기하고 살아야해. 그럴 수 있어?”
“이미 예전부터 결심해왔던 일이야. 머글로 살겠어. 안 들키면 돼.”
“오, 지니 제발! 평생토록 숨길 수 있을거 같아? 너와 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마법사일거야! 결국 들키게 될거라고!”
“아이가 있으면 올리버는 내가 마녀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헤어지지 못할거야.”
“머글들은 마법을 이해하지 못해! 지니 제발… 그러지마. 응?”
리코리스는 레귤러스와 결혼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나 그 머글 남자만큼은 안된다고 친구의 선택을 뜯어 말렸다. 블랙 부부나 라이트 부부도 지니아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지니아는 레귤러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라이트 부부는 결국 지니아를 집에 근신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니아는 결국 집을 탈출하고 말았다.
올리버는 지니아의 집안에서 자신을 팀탁치 않게 여기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지니아가 고민 끝에 자신에게는 어릴 적부터 약혼자가 있었다고 말했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어쨌든 지니아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올리버는 지니아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그녀는 집을 뛰쳐나와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았던가. 그녀가 자신을 선택해준 것만으로도 올리버는 행복했다.
“올리버, 미안해… 우리 집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미안해…”
“괜찮아, 떠나자. 전부 정리할게. 조금만 기다려줘.”
올리버는 기꺼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포기했다. 전도유망한 천재 과학자가 연구소에 사표를 내고 박사 과정까지 중단하자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교수들이며 심지어 학계에서까지 올리버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남자는 단호했다. 그만큼 올리버의 지니아에 대한 사랑은 깊고도 깊었다. 그 후 지니아와 올리버는 첫 만남 후에 재회했던 킹스 칼리지 예배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떠났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마법 세계, 순수혈통들 사이에서 라이트 가문의 외동딸이 머글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사실이 빠르게 퍼졌다. 이는 그 당시에 치명적인 스캔들이었다.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지니아의 약혼자였던 레귤러스 블랙은 충격과 실의에 빠져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다. 리코리스 역시 기어이 친구가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충격에 빠져야만 했다. 그렇게 말렸는데… 기어이… 부엉이를 통해 제발 돌아오라는 편지를 몇 번 보내던 리코리스는 친구에게 더 이상 자신을 찾지 말라고, 자신은 이제 마녀가 아닌 머글이라고, 미안하다는 답장을 받으며 슬퍼했다.
그렇게 요란스러운 도피를 하면서까지 얻어낸 사랑은 달콤했다. 지니아와 올리버는 서로를 절절하게 사랑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망설임 없이 버릴만큼. 서로에게 미쳐있었다. 지니아는 집안과 가족, 친구들은 물론이거와 마녀라는 정체성까지 버려가며 올리버를 택했다. 그리고 올리버는 전도유망한 천재 과학자로서의 보장받은 미래 대신 기꺼이 지니아를 택했다. 그들은 작은 시골마을에 정착해서 둘 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평생토록 계속될거라 생각했던 그 행복은 영원하지 못했다. 그 절절한 사랑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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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떠났으면 행복하게 살 것이지… 어째서… 지니아는 마법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었어. 머글들과 결혼한 마법사들이 흔히 겪는 증상이지. 향수병. 음… 브릴리언트 양? 올리비아?”
리코리스는 리브를 무어라 불러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브릴리언트? 올리비아? 그 고민을 눈치챈 리브가 대답했다.
“리브(Liv)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리브. 너라면 할 수 있겠니? 그 마법의 힘을 포기하고, 지팡이를 버리고 머글처럼 살아야 해.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지… 그래서 난 지니아를 그토록 말린거야. 그런데 기어이…”
리브는 리코리스를 이해했다. 자신이라도 에밀리가 머글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뜯어 말릴 것이다. 마법사 비밀 법령에 의해 마법사는 머글에게 마법의 존재를 발설하면 안된다. 마법사가 마법의 힘을 포기하고 머글로 살아간다… 애초에 마법의 힘을 갖고 있지 않은 머글들은 아무 문제없겠지만 마법사에게는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어머니는 향수병에 시달렸으리라.
**
마법사가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마법의 힘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리버가 종종 연구소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듯이 지니아 역시 마녀로서의 삶을 그리워하곤 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옅어지지 않았다. 올리버는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보람을 얻었고 지니아 역시 가정 주부로서 사랑하는 남편과 사는 것에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사랑과 행복과는 별개로 그리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지니아는 가족들과 친구들, 자신의 세계가 너무 그리워서 견디지 못할 때면 가끔 침대 밑에 숨겨놓은 지팡이를 꺼내보며 슬픔을 터뜨렸다.
지니아는 친구인 리코리스의 경고대로 언젠가 마법의 힘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만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비정상적인 것을 싫어했다. 유순하고 차분한 성품인 올리버는 유독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진저리치며 조금의 이해도 하려들지 않았다. 이해심 깊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남편의 이러한 성향은 강박적이기 까지 했다.
“지니, 당신이 호기심 많고 신기한 것을 좋아한다는 건 알아. 나는 그런 당신은 사랑하고 이해하지만 그런 비과학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해. 그러니까 강요하지 마.”
훗날을 위해 마법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는 지니아의 시도는 처참했다. 그녀는 남편의 견고한 벽을 도저히 깰 수가 없었다. 이제 지니아는 두려워졌다. 자신이 임신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가 마법의 힘을 보인다면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때는 밝혀야 했다. 자신이 마녀이고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이 아이 역시 마법사라고. 그래도 지니아는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남편은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올리버는 자신을 사랑하니까. 지니아는 그렇게 애써 합리화를 하고 불안을 떨쳐내려 했다.
“이게 웬 부엉이야?”
“아, 올리버… 아무래도 주변에 산이 있어서 그런가봐.”
“이 곳은 부엉이가 살만한 곳이 아닌데”
부엉이를 보는 남편의 눈길이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지으며 아내를 껴안는다. “그럼 다녀올게.” 남편이 출근하고 지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글세계에서 부엉이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남편이 못보는 사이에 옷 속에 숨겨놓은 편지를 꺼내 읽어 내려가던 지니아의 벽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레귤러스는 여전히 너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야. 지니, 네가 보고싶어.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하지 않을게. 어디냐고 묻지도 않을게. 레귤러스한테도 말 안할게. 그저 이렇게 나랑 종종 편지라도 주고받자. 난 네가 걱정돼. 지니, 힘들지는 않니? 팍팍한 머글세계에서 네가 고생만 하고 있는게 아닌지 나는 그게 너무 걱정돼서…]
그 후로 지니아는 종종 리코리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올리버는 부엉이를 향해 여전히 날카로운 눈길을 보냈지만 지니아는 마법세계와의 유일한 소통의 끈을 포기하지 못했다. 아슬아슬한 상황을 여러번 겪으면서 지니아는 결국 리코리스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관두었다. 지니아는 답장을 매어주지 않은채 그대로 부엉이를 날려보냈다. 리코리스는 자신의 뜻을 알아듣고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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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답장이 끊기더구나. 나는 깨달았어. 더 이상 지니아가 나와 서신을 주고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난 지니의 뜻대로 해주었지. 혹시 마법세계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가 그 남자의 손에 간다거나 해서 지니의 결혼생활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비록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남동생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과의 관계까지 버리고 남자를 택한 비정한 친구였지만 리코리스는 지니아를 놓지 못했다. 애초에 지니아가 올리버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뜯어말린 것도 그녀를 걱정해서였다. 이왕 사랑의 도피를 했다면 끝까지 행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멀린은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예쁜 그림 그려주신 'rose pluie'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 사탕을 받으세요~!
* 왜 운명적인 첫만남인지 아셨죠? 올리버는 지니아에게 첫눈에 반했고 지니아는 올리버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바로 첫만남에서요! 이게 바로 운명이죠ㅋㅋ비록 끝은 비극이지만...
* 참고로 올리버의 손에 있던 어둠의(?) 리멤브럴의 색이 변한 이유는 올리버가 지니아를 보고 정신이 팔려서 해야할 일을 잊어서에요ㅋㅋㅋㅋㅋㅋ
* 몇 몇 분들이 리브의 파셀통그 능력을 보고 친가쪽 유전이 아니냐는 추측을 해주셨는데.. 아 여러분 후기를 안읽으시는군요ㅜㅜ 그럼 이것도 못보시려나..? 연재 초반에도 말씀드렸듯이 리브의 파셀통그는 어렸을때 새까만뱀에 물려 죽을뻔한 일로 생긴 능력입니다.(이건 제가 따로 집어넣은 설정임) 리들의 파셀통그가 선천적인 것(곤트가문)이라면 리브의 것은 후천적인 습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리리플은 항상 작품설정에 올라갑니다. 모바일 유저 분들은 작품설정을 못보신다고 하셨는데 그 점은 양해 부탁드릴게요^^;;; 본편 후기에 넣으면 분량 체크가 힘들어서요ㅜㅜ
오늘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