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23화 (2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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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6. 진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고 많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리브 역시 올해는 호그와트에 남지 않았고 학생들과 함께 기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지금 리브는 에밀리, 오리온, 에드가와 같은 객실에 있었다. 리브는 평소처럼 책을 펼쳐놓고 있었지만 책장은 전혀 넘어가고 있지 않았다.

    “리브, 다음에는 우리 집에도 와!”

    오리온의 집에 간다는 리브에게 에밀리는 다음엔 자기네 집에 오라고 재잘거렸다. 에드가 역시 여동생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리브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하고 리브는 마법사 가정 애들은 어떤 식으로 집에 가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그들은 머글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추정되는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서 일정 요금을 내고 플루 가루 네트워크를 이용했다. 그리고 처음 이용해본 플루 가루 네트워크는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현기증에 휘청이는 리브를 먼저 도착한 오리온이 잡아주었다.

    “괜찮아?”

    “응, 익숙치 않아서 그래.”

    오리온과 도착한 곳은 역시 플루 네트워크가 설치되어 있는 가게였다. 아마도 머글들이 접근할 수 없는 그런 마법이 걸려있겠지. 리브는 이제 오리온과 가게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여긴 런던이고 우리 집은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야.” 오리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리브는 11번지와 13번지 사이에 불쑥 나타난 반짝거리는 새까만 문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리브는 깜짝 놀라 벽안을 깜박이다가 또다시 머글들은 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마법들이 걸렸을거라 생각하며 납득했다.

    오리온이 문을 두드리자 누구냐고 묻는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서 문이 저절로 열렸다. 오리온을 따라 들어가자 거대한 저택 한 채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리온이 잘생긴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환영해, 블랙 가문에 온 것을”

    *

    블랙 가문은 정말 블랙다웠다. 컨셉을 온통 검정색으로 잡은 것 같았다. 하지만 마냥 어둡기만 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몹시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유서깊은 순수혈통 가문 블랙. 과연 에밀리 말대로 돈이 썩어나는 집안답게 휘황찬란했다. 리브는 옷가짐과 머리 매무새를 똑바로 했다. 그래봤자 입은 것은 교복뿐이었지만 어쨌든 남의 집에 방문을 했으니 예의를 차려야겠지. 리브가 살짝 긴장하고 있는데 오리온이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집에 아무도 안계시는 모양이야. 긴장할거 없어.”

    오리온은 방금전 집요정에게 두 분 다 출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은 부모님께 사전에 친구를 하나 데려올 것이라고 말을 해두었지만 내심 걱정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집에 안계신다니… 고모님이 손을 쓰신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응접실로 리브를 안내하는데 오리온은 복도에서 정장 차림의 남자와 마주쳤다.

    “레귤러스 숙부님?”

    “오리온, 오랜만이구나.”

    리브는 둘을 번갈아보며 벽안을 깜박였다. 완전 닮았다. 사실은 저 남자가 오리온의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둘은 놀라울 정도로 닮은 모습이었다. 오리온은 마치 저 남자의 축소판 같았다. 같은 청흑발에 같은 은회안, 그리고 얼굴까지. 그래 분위기는 조금 다른 것 같긴 하지만… 오리온이 30대 쯤 되면 저런 모습이 될까? 리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남자의 은회안이 살짝 커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리움이 담긴 목소리.

    “지니…?”

    리브가 푸른 벽안을 깜박였다. 지니…? 아… 리브는 그 순간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알고 있다는 것을. 둘 사이를 중재에 나선 것은 오리온이었다.

    “리브 인사해, 이 쪽은 숙부님이셔. 아버지의 형제분이시지.”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올리비아 브릴리언트라고 합니다.”

    소녀는 당황했지만 특유의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그 순간 남자는 정신을 퍼뜩 차린 것 같았다. 남자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레귤러스 블랙이라 소개했다. 리브는 그제서야 이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을 이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지도. 현 블랙가의 가주인 악튜러스 블랙의 동생, 그리고… 지니아 라이트의 옛 약혼자. 어머니를 알고 있는 사람.

    오리온을 따라 응접실로 들어가는 소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레귤러스가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려버린다. 이름이… 올리비아 브릴리언트라고… 지니, 너는 끝까지 나를 비참하게 해.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똑같더라.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저 찬란한 머리칼도, 그 보석같은 눈동자도… 전부 똑같아.”

    “……”

    “저 아이를 보여주려고 내게 오라고 한거였어?”

    “…그래. 지니아의 딸이니까”

    남자와 같은 색감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간신히 내뱉었다. 네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지니아의 최후를 말해주겠노라고

    *

    오리온은 집요정을 불러 두 사람 분의 다과를 가져오라 한 뒤에 응접실을 나갔다. 이야기 끝나고 집요정을 통해 자신을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서

    “이 줄을 잡아당기면 집요정이 나올거야.”

    빈 응접실에서 리브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주변을 감상했다. 예술품도 걸려있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리브는 응접실 구경이 끝나고 지루해지자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리들과의 멘토링이 적응되자 리브는 또다시 애니마구스에 대해 지식을 쌓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책에 푹 빠져있던 리브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놀라 펄쩍 뛸뻔했다. 에밀리와, 오리온과 같은 색감인 은회안을 가진 여성이 앞에 앉아있었다. 푸르스름한 청흑발. 오리온이 말한 그 고모님?

    “아,안녕하세요. 올리비아 브릴리언트라고 합니다.”

    리브는 책을 덮고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사람이 온지도 모르고 책에 너무 푹 빠져있었던 모양이었다. 여성은 부드럽게 웃으며 소녀에게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리코리스 블랙(Lycoris Black)이라고 소개했다. 소녀와 여자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리브는 리코리스 블랙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30대 가량으로 보이는 여성은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찻잔을 집어드는 작은 손길에도 우아함과 귀족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이래서 순수혈통은 다르다고 하는걸까

    “지니아를 쏙 빼닮았어.”

    리코리스가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그 찬란한 색감의 골드 블론드와 사파이어 같은 벽안은 라이트(Wright) 가문의 것이었지. 지니… 그러니까 지니아는 라이트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애였어. 라이트 부부는 그토록 뛰어난 지니아가 딸이라는 것을 안타까워했지. 라이트 가문은 항상 손이 귀했으니까. 그만큼 지니아는 아름답고 뛰어난 마녀였어.”

    지니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리코리스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것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리코리스는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야만 했다. 그만큼 눈앞의 소녀는 무서울 정도로 지니아를 닮아 있었다. 마치 10대의 지니아와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지니아가 아니었다. 지니아의 딸이었고 친구를 죽게 만든 그 남자의 딸이었다. 오리온이 그랬었던가. 변신술에 한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역시 지니아의 딸이었다. 지니아도 변신술을 잘했으니까- 하지만 혀를 내두를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말에 또다시 그 남자를 떠올려야만 했다. 그 남자는 천재라고 했었지. 소녀의 입술이 열렸다.

    “저희 어머니와 친구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였지.”

    소위 흔히들 말하는 단짝이었다. 어릴 적부터 친했고 호그와트에서도, 졸업 후에도 그 우정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심지어는 지니아가 사랑의 도피를 하고나서 연락이 끊겼지만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리브는 무언가를 말하려는듯 입술을 달싹 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말에 담긴 내용에 비해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잔잔했다.

    “어머니는… 갓난아기인 제 눈앞에서 목을 맸어요.”

    “…!!”

    “빈 집에 혼자 남겨진 저를 이웃들이 시설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남편이 임신한 아내를 버렸노라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노라고… 그 후로 저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소녀의 말을 듣고 있던 여자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너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나는 기꺼이 너를 길렀을텐데… 그 증오스러운 남자의 딸이라도 지니아의 딸인 너를 내가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어.

    “라이트 부부가 돌아가시고 가문은 사실상 멸문했다. 그래서 누구도 너를 거둘 수가 없었어. 너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어. 내가 지금에서야 너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야. 그 남자도 너의 존재를 알지 못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만약 내가 너를 알았더라면 나는 너를 기꺼이 맡았을거야.”

    “저는 제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 것에 대한 원망을 하려는게 아니에요. 저는 그저-”

    그 순간 리브가 말을 뚝 멈췄다. ‘그 남자도 너의 존재를 알지 못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 남자라고… 설마…

    “블랙 씨, 방금 그 남자라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던 소녀의 목소리에 날이섰다. 따스함을 담고 있는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리브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떴다. 부모님의 일이 나오면 유독 감정이 흐트러지는 자신을 알기에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제가 블랙 씨를 뵈러 온 것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

    “제 아버지가 머글이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리코리스 블랙이 은회안을 깜박였다. 리브는 졸업생들의 명단을 비롯한 온갖 고서들을 뒤져 보았다. 하지만 브릴리언트라는 성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블랙 씨는 제 아버지를 아시죠?”

    리브는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 리코리스 블랙을 만나겠다고 했다. 리들의 말대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게 나을지도 몰랐다. 방금 여자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라는 남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평생 만날 일이 없으리가-  그렇게 생각하자 리브는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진정해, 마음을 가라앉혀.

    리브는 여기서 아버지에 대해 묻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도 있었다. 자신은 마녀였고 아버지는 머글,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은 아버지를 전혀 닮지도 않았다. 리브가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평생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말씀해주세요. 제 아버지에 대해서-”

    “……”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알고 계시죠?”

    하지만 알아야겠다. 자신의 어머니를 버린 그 남자가 누군지 자신은 알아야겠다.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알아야겠다. 찾아가서 자신이 당신이 버린 딸이라고, 당신이 비정하게 버린 그 여자의 딸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궁금했다. 자신을 버리고,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남자가 궁금했다.

    “알고 있지.”

    한참의 침묵 후에 굳게 닫혀있던 여자의 입술이 열렸다. 처음 올리비아 브릴리언트라는 이름을 듣고 리코리스는 헛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지니아를 사랑했던 레귤러스는 비참함을 느꼈다. 지니아는 끝까지 남편을 사랑한 모양이었다. 자신을 버린 남편을. 그래서 자신의 딸에게 남편의 이름을 따서 올리비아(Olivia)라는 이름을 준 모양이었다. 이어서 흘러나온 여자의 말에 소녀의 벽안이 충격에 휩싸였다.

    “올리버 브릴리언트(Oliver Brilliant), 그는 스큅이었지.”

    **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스큅이었다. 그리고 마법세계에서 스큅은 언제나 핍박받는 존재였다. 머글 태생의 마법사에게 머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스큅에게는 마법사의 피가 흐름에도 마법의 힘을 쓸 수 없는 돌연변이의 존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스큅이라는 꼬리표는 머글 태생의 마법사의 것보다 더 잔인하게 작용했다. 순수혈통 가문에서는 스큅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호적에서 파고 내쫓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는 일반 마법사 가정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 소년의 부모는 열한 살이 되도록 마법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호그와트의 입학장조차 받지 못한 아들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집에서 내쫓기에 이르렀다.

    거리를 떠돌다가 머글 세계에 흘러든 소년은 자연스럽게 머글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 소년은 스큅이라 천대받으며 결국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기억을 결코 잊지 않았다. 이는 마음 속 깊이 한으로 남았다. 이 한(恨)은 마법세계에 대한 증오와 마법사에 대한 열등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신이 스큅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힘을 갈망했다. 아직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뿐 잠재되어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끄집어 내기 위해 별별 수를 다 써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마법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자신에게 실망하며 돌아섰고 결국 이렇게 내쫓았다. 그 상처는 슬픔에서 증오가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마법세계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소년은 마법을 쓸수는 없을지언정 무척이나 똑똑했다. 그런 똑똑한 소년을 오랫동안 아이를 염원해 온 노부부가 입양했다. 그리고 그들은 소년에게 ‘올리버 브릴리언트(Oliver Brilliant)’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소년은 자신을 버린 옛 부모를 잊고 양부모님을 친부모로 삼았다. 노부부는 소년을 친자식처럼 여기며 사랑을 둠뿍 주었고 소년은 양부모의 기대에 힘입어 훌륭하게 자랐다.

    올리버는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그리고 유순한 성품에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좋은 아이였다.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기이하거나 신비스러운, 비정상적인 일을 참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올리버가 자연과학 쪽 전공을 공부하는 것을 보며 참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람이라고 납득할 뿐이었다.

    브릴리언트 부부는 올리버가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지만 천재인 아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올리버는 조기 졸업과 조기 입학을 밥먹듯이 하며 학계에서도 주목하는 전도유망한 과학자가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자연과학 쪽에서 명성을 떨치는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교 생물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그야말로 타고난 천재였다. 물론 이는 올리버가 천재적인 두뇌는 물론 개인적인 흥미와 끈질긴 노력도 함께 어우러진 결과였다.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몇 년후에 케임브릿지 대학교 생물학부 교수 자리를 보장받았다. 또한 현재 대학 부지내의 세인스버리(Sainsbury) 연구소 소속의 주임 연구원이기도 했다. 마법세계에서 천대받고 친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스큅 소년은 머글 세계에서 전도유망한 천재 과학자로 성장했다.

    **

    “스큅이 마법 세계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너도 알지?”

    알고 있었다. 스큅은 마법사의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마법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엾은 존재였다. 마법부에서는 스큅들이 머글세계에서 잘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리코리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아버지는 스큅들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인 모양이었다. 마법세계에 한 번 버림받고 친부모에게까지 버림받아 쫓겨난 스큅. 갖지 못한 마법의 힘을, 마법세계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겠지. 자신의 어머니를 왜 버린지 알만했다. 역시… 마녀라서 버린거였어.

    “아버지는… 마법세계를 증오했군요.”

    “그래.”

    “그래서 제 어머니를 버린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리브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리코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브가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떴다. 하지만 평소처럼 이성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제 어머니는 마녀에요. 아버지는 스큅… 마법세계를 증오했으니 철저하게 머글로 살아갔을테죠.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된거죠?”

    “…지니아가 열 여덟살 때였지.”

    **

    지니아 라이트(Zinnia Wright)는 빛처럼 눈부신 여성이었다.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찬란한 빛감의 골드 블론드와 사파이어 같은 푸른 벽안은 라이트 가문의 것으로 지니아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니아는 순수혈통 답지않게 자유분방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마녀였다. 사랑받고 자란 외동딸들이 으레 그렇듯이 지니아는 항상 행복과 기쁨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 감정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니아는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집안의 가풍대로 슬리데린에 배정받았다. 그녀는 당돌하게도 그리핀도르와 고민하는 모자에게 집안의 뜻을 따르고 싶으니 슬리데린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자유분방한 성품이었지만 지니아는 집안과 가족을 사랑했다. 자신이 그리핀도르에 감으로써 순수혈통 어르신들이 실망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블랙가의 직계 막내아들이자 단짝 친구의 동생인 레귤러스 블랙과의 약혼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 레리(레귤러스의 애칭) 너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거 같아!”

    지니아에게 레귤러스는 두 살 어린, 친구의 동생이었고, 호그와트에 입학해서는 우정을 나누게 된 사랑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레귤러스 블랙은 지니아 라이트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서 사랑했다. 서로를 향한 둘의 마음은 상이하게 달랐다. 레귤러스는 이를 알고 있었지만 약혼이라는 굴레에 묶인 자신과 정인(情人)의 관계에 만족했다. 마음은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그리 생각했다. 언젠가는 지니아도 자신을 남자로서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레귤러스에게 지니아는 첫사랑이었고 평생토록 사랑할 단 하나의 여자였다. 앞으로도 함께할 시간은 많았고 언제까지든 기다릴 수 있었다. 결국은 자신의 부인이 될테니까… 그는 지니아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레귤러스의 사랑은 한없이 깊었다. 지니아가 사랑의 도피를 하고 충격과 실의에 빠져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만큼, 결국은 자살을 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한없이 망가져버렸을 만큼, 그 이후로도 지니아를 한시도 잊지 못해 독신으로 평생을 살아갈 만큼.

    열여덟 살의 지니아 라이트는 마법부의 일로 방문하게 된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교(Cambridge University)에서 인생을 바꿔놓을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올리버 브릴리언트(Oliver Brilliant), 그는 스물 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미 학사, 석사를 마친, 천재로 떠들썩한 인물이었다. 입양아라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이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주목하고 있었으며 학교에서는 자신들이 배출한 인재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정식 교수는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벌써부터 학부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또한 대학 부지에 있는 세인스버리(Sainsbury) 연구소 소속이기도 했다.

    *

    “난 오러도 아닌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끌고 와도 되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서류 작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출동을 하라는 거야. 난 국제 마법 협력부 소속이라고”

    “리리(리코리스의 애칭), 난 마법부 소속도 아니야. 심지어”

    “라이트 씨는 은신술에 뛰어나시고…”

    사람 좋게 생긴 오러가 두 여자를 달래며 협조 부탁한다고 웃어보였다. 지니아와 리코리스는 투덜거리며—“이게 몇 번째에요. 나중에 밥사요. 비싼 걸로 뜯어먹을거야.” “난 추가 수당 받아낼거에요.”— 오러들과 교정 안으로 들어섰다. 머글 천지네. 여기가 어디에요? 어느새 지니아는 푸른 벽안을 빛내며 낯선 곳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머글 세계를 잘 아는 한 오러가 설명했다.

    “케임브릿지 대학교(Cambridge University)에요. 영국 머글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교라고 해요.”

    “대학교(University)? 그게 뭐에요? 도시(city)? 이렇게 작은 도시가 있어요?”

    “하하, 도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학교의 일종이에요.”

    지니아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학교에 다니는 사람치고는 나이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오러는 대학교에 대해 부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머글들은 교육을 오래 받네요. 그러니까 여기있는 머글들은 엘리트겠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필수가 아니니까요. 공부를 많이 해야해요.” 지니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머글들은 학구열이 높나보네. 뭘 그렇게 배우는 거지? 리더급인 오러가 오늘 이 곳에서 해야할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요. 이 학교 안에 있는 세인스버리 연구소에 들어갈 거에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이미 거짓 정보부에서 머글 수상과 얘기를 끝냈으니 괜찮아요. 여기 신분증을 받아요.”

    거짓 정보부는 마법적인 재난이나 사고가 너무 명확해서 머글들에게 해명하기 힘든 경우 머글 수상과 연락을 취하고 그럴듯한 비마법적인 해명으로 사건을 진정시키는 류의 일들을 했다. 오러가 나눠주는 신분증을 보니 뭐라고 써있는데 정부에서 파견한 감사인이라는 것 같았다.

    “머글들이 눈에 불을 키며 연구하고 있는 물건이 있는데…”

    “마법 물품이로군요?”

    “그래요, 리코리스. 문제는 보통 마법 물품이 아니라는 거에요. 자꾸 자극을 가하면 폭발을 한다거나 하는 어둠의 마법이 걸려있어요. 그런데 머글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과학 운운하면서 계속 실험을 하고 있죠.”

    오러들은 어떤 빌어먹을 마법사가 걸어놓았는지 몰라도 일부러 머글세계에 흘린 것이 분명하다며 이를 갈았다. 무슨 사단이 나기 전에 얼른 문제의 마법 물품을 회수하고 기억력 마법을 걸거나 복제품을 놓고 가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세인스버리 연구소에 도착했다. 신분증을 내밀자 그들은 쉽게 통과되었다.

    “여기 너무 넓어요. 그러니까 흩어져서 찾아요. 어떻게 생긴 물건이에요?”

    “리멤브럴이에요. 하지만 일반 리멤브럴보다 크기가 더 작고 까만 연기로 차있어요. 그리고 그건 쥐었을 때 잊어버린게 있으면 보라색으로 변해요. 하지만 문제는 그게 쥐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어느 순간에는 폭발한다는 거에요. 저번에 머글 가정집에서 폭발사건 있었는데 가엾게도 머글 아이 하나가 죽었죠.”

    원래 리멤브럴은 하얀 연기로 가득찬 유리공인데 잊어버린게 있으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물건이었다. 정말 어둠의 마법을 걸어놓은 모양인지 까만 연기에 보라색… 지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그런 짓을 왜 하는거야.

    점심시간이기 때문인지 건물 안에는 머글들이 얼마 없었다. 지니아와 리코리스는 절대로 머글 앞에서 마법을 써서는 안된다는 주의를 가득 받고 실험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스니코스코프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어둠의 마법이 걸린 물건이 탐지되면 빛을 발하며 빙빙 돌아간다— 수색을 해나가던 지니아는 누군가와 세게 부딪혔다. “아야야…” 지니아의 결좋은 골드 블론드가 흘러내리며 고운 얼굴을 가렸다.

    “이런,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부딪힌 사람은 정중하게 사과하며 여자를 일으켜주었다. 지니아는 몸을 일으키며 넘실거리는 금발을 뒤로 넘겼다. 그와 동시에 지니아의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여자는 얼굴 가득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마법세계에서 많은 남자들이 밤잠을 못이루게 만든 지니아의 미소는 머글세계의 남자에게도 어김없이 먹혀들었다. 머글 남자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금방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못보던 얼굴인데… 혹시 연구소에 탐방온 대학생…?”

    “아니요. 전 정부에서 파견된 감사인이에요.”

    “아, 오늘 정부에서 감사단원들이 파견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젊은 여성분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금갈색 머리칼에 연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깔끔한 무테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지적인 인상을 가득 자아냈다. 하지만 말투나 방금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던 몸짓은 제법 부드러웠다. 사실 지니아가 처음 접한 머글은 그녀가 지금껏 본적 없던 타입의 남자였다. 사파이어 눈동자를 깜박이며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 지니아에게 남자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혹시 찾으시는게 있으십니까? 저는 이 곳 소속의 연구원입니다.”

    “음… 사실 이 곳에서 리멤, 아니 열심히 연구 중인 물건이 있다고 들었어요. 안에는 새까만 연기로 가득 차있는 구슬이라고 하던데”

    “아- ‘Strange Ball(정체불명의 공)’을 말씀하시는 군요.”

    오, 아는 사람이 있다! 지니아는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저 미스터(Mr)…”

    “올리버 브릴리언트입니다.”

    “네, 브릴리언트 씨(Mr. Brilliant)! 그 정체불명의 공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네? 그건 좀 곤란한데…”

    “잠깐만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부탁드릴게요.”

    잠깐이면 돼, 그리고 곧바로 당신은 모든걸 잊게 될거야. 난 그 리멤브럴만 회수하면… 그렇게 지니아가 머릿 속으로 앞으로 해야할 일을 구상하는데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부탁이신데요?”

    “앞으로 자주 만나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지니아는 남자의 작업을 못알아차릴만큼 둔한 여자가 아니었다. 지금껏 만나본 적 없는 타입의 남자, 그것도 머글 남자의 호감 표현에 지니아는 신선함을 느꼈다. 지적이고 유순한 인상의 이 머글 남자는 작업도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 안그래도 지니아는 머글세계에 관심이 많아서 여행도 다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외국에 가서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외국인과 연애를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머글 세계에서 머글에 대해 알기 위해 머글과 연애까지는 아니여도 친분을 갖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지니아는 학창시절부터 많은 인기를 구가했고 남자들의 작업에는 어느정도 도가 튼 여자였다. 머글 남자의 작업 쯤이야.

    “그럼요, 전 지니아 라이트에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많은 남자들을 홀렸던 그 미소를 또 다시 얼굴 가득 띄운다. 이게 바로 올리버 브릴리언트와 지니아 라이트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그리고 예쁜 그림주신 '세린a'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 둘이 이복남매 아니냐는 몇몇 독자님의 코멘보고 빵터졌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럼 진짜 막장ㅋㅋㅋㅋㅋㅋㅋ지금 답해드립니다. 절대 아니에요!ㅋㅋㅋㅋ

    * 사실 가끔 코멘 볼때마다 헉해요.....왜  이렇게들 예리하심??ㄷㄷ 어떤 독자님께서 혹시 리브 아빠가 스큅 아니냐고 하셔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어요.... 네 스큅 맞아요....

    * 지금 보시면서 에게, 저게 운명적인 첫만남?ㅡㅡ이러실 분 있을거 알아요. 다음편에 왜 운명적인 첫만남인지 드러납니다ㅎㅎ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 '야이양-♥'님, [상이하다]가 '다르다'는 뜻이라서 [상이하게 다르다]를 [판이하게 다르다]로 써야 할 것 같다고 지적해주셨는데 [상이하다]와 [판이하다] 둘 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물론 문법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상이하게 다르다]나 [판이하게 다르다]나 둘 다 중복 사용이긴합니다. 하지만 검색을 해보시면 알겠지만 출판된 책들에도 두 표현 전부 별다른 제재없이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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