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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진실
필요의 방은 마법의 약 교실과 같은 환경도 조성해주었다. 그래서 리들과 리브는 지하에 있는 마법약 교실보다는 필요의 방을 더 애용하고 있었다. 오늘도 리브는 리들이 보는 앞에서 마법약을 제조하고 있었다. 이제 리브는 뿔 모양의 민달팽이를 완벽에 가깝게 삶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데이지 뿌리를 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리들이 말했다.
“잠깐 멈춰봐, 뿌리를 썰 때는 자잘하게 써는게 좋아. 물론 마법약에 따라서 굵게 썰어도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얇게 써는게 시간과 효율 면에서 좋아. 끓을 때 잘 녹아나서…”
계속해서 설명하던 리들은 흘깃 리브의 얼굴을 보았다. 소녀의 얼굴은 살짝 멍했다. 리들은 말을 멈추고 소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리브는 미동없이 뿌리를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리들이 소녀의 눈앞에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그러자 리브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깜박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집중안해?”
“아… 죄송해요.”
“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
“뿌리를 썰 때는 자잘하게 써는게 좋고…”
리브가 말끝을 흐렸다. 뭐라고 더 말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고개 숙인 리브를 보며 리들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정신 안차리지?” “죄송해요.” 리들은 소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설명을 해주었고 이번에 리브는 잘 귀담아 들었다.
어느새 리브가 재료를 써는 소리와 마법약 끓는 소리만이 필요의 방에 가득찼다. 심드렁하게 아르마딜로의 담즙을 냄비 안에 흘러 넣는 리브를 지켜보던 리들이 소리쳤다.
“멈춰!”
하지만 리브는 벽안을 깜박이며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리들이 소녀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 힘에 리브는 휘청이다가 리들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리들이 리브를 감싸안음과 동시에 냄비 안에서 끓고 있던 마법약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리브는 리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짝 떨고 있는 소녀의 몸이 느껴짐과 동시에 살랑거리는 소녀의 블론드가 리들의 목을 간지럽혔다. 리들은 미묘한 느낌에 리브를 떼어내고 양 어깨를 쥔 채로 소리쳤다.
“너 미쳤어? 정신을 어따 두고 있는거야!”
“……”
“아르마딜로의 담즙이랑 빌리위그의 담즙 하나 구분 못해? 내가 아르마딜로 담즙 넣으면 폭발한다고 몇 번을 말했어? 분명히 주의하라고-”
표정이나 목에 핏대가 선 것을 보니 소리 치고 있는 모양인데 리브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안들린다고 말해야하는데 입이 열리지를 않는다. 리들은 말을 뚝 멈췄다. 청년은 아까보다 더 멍한 표정의 리브를 보고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심하게 놀란 모양이었다. 청년은 소녀를 데려가 쇼파에 앉혔다.
“쉬고 있어.”
그렇게 툭 내뱉은 리들은 폭발한 잔해물들을 치우기 위해 돌아섰다. 품에 있는 주목나무 지팡이를 쥐고 꺼내려는데 잔해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소멸마법으로 깨끗하게 없애려고 했던 리들은 필요의 방이 그 것들을 없앴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소녀에게로 돌아섰다. 무어라 한 소리 하려던 리들은 소녀가 두 손을 귓가에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손으로 귀를 막았다 뗐다 한다. "브릴리언트“ 리들은 나지막하게 소녀를 불러보았지만 리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뭐야, 설마 안들리는거야?”
리들이 리브에게 가까이 다가와 눈을 마주쳤다. 리브의 얼굴은 여전히 멍했다. 그리고 입술은 열리지 않는다. 리들은 지금 리브의 멍한 표정이 생각에 잠겨 있는게 아닌 현실 감각이 없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들리면 안 들린다고 말을 해야-” 그렇게 외친 리들은 아무 것도 안 들리는 애한테 자신이 지금 뭘하나 싶어서 일단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우선 병동에 데려가야 했다.
*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네, 젤러 부인. 말도 안하고 쭉 이 상태에요. 청각에 문제가 생긴게 아닐지.”
“기다리렴, 많이 놀란 것 같구나. 일단 진정물약을 먹여야겠다. 그런데 리들 넌 괜찮니?”
“전 괜찮습니다.”
젤러 부인이 진정 물약을 컵에 덜어 리브의 손에 쥐어주었다. 리브는 꿈뻑꿈뻑 컵을 쳐다보다가 그 것을 쭉 들이켰다. 약을 먹을 정신은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쿵쾅쿵쾅 뛰던 심장이 진정되고 그제서야 리브는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리들 선배가 멈추라고 했는데 그리고 폭발해서… 그래, 귀가 안들렸어. 뭐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입도 안 떨어지고 아, 지금도 안들린다. 귀가 윙윙거린다. 주변을 보니까 이곳은 필요의 방이 아니라 병동…
“얘야, 괜찮니?”
젤러 부인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그가 자신을 병동으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리브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젤러 부인, 아무 것도 안들려요. 귀가 윙윙거려요.” “이런, 귀에 무리가 간 모양이구나. 기다리렴” 젤러 부인은 약을 가지러 갔고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리던 리브는 기분이 상당히 안좋아보이는 리들을 발견했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
“제가 아까 넣은게 아르딜로의 담즙이었나요?”
리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붉은 입술을 열더니 무어라 다다다 내뱉기 시작한다. 분명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닐터.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브에게는 그저 윙윙거리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리브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안 들려요.” 처음으로 리브는 리들의 말을 끊어보았다.
“아무 것도 안 들리는걸요. 그냥 윙윙거리는 소리로 밖에 안들려요.”
“……”
“리들 선배님, 안 바쁘세요?”
그리고 축객령까지 내린다. 리들은 실소를 내뱉었다. 얘가 진짜 정신이 나갔나… 리브는 썩어 들어가는 리들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약이 좀 오를거다. 하지만 상대는 톰 리들이었다. 그는 언제 챙겨왔는지 가방을 뒤져 새까만 노트와 깃펜을 꺼낸다. 리브가 대면식 때 보았던 그 노트였다. 이 인간이 저따가 또 뭘 적으려고… 새까맣고 두꺼운 양장본 노트의 뒷면에는 런던 복스홀 가에 있는 잡화점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리들이 노트를 펼치고 무언가를 적으려는데 젤러 부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리브의 손에 약이 담긴 잔을 쥐어주었다. 마시라는 무언의 표시에 리브는 한 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윽 써… 소녀가 쓰디쓴 약을 마시느라 고군분투하는 사이 청년과 치료사는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젤러 부인은 커튼을 치고 가버렸다. 리브는 3분의 1가량을 남기고 잔을 내려놓았다. 못 마시겠어. 그냥 잘래. 그런데 어김없이 리들은 리브의 손에 잔을 쥐어준다. 그리고 노트를 눈앞에 드리민다.
[전부 마셔야지.]
“너무 쓰단 말이에요. 다 안 마셔도 약효는 돌아요.”
[전부 마셔.]
“지금 심술 부리시는거죠?”
[난 멘티의 건강을 염려하는거야.]
“거짓말!”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브는 약을 전부 마셔야만 했다. 리브가 오만상 찌푸리며 비어있는 잔을 내려놓았을 때. 리들은 노트에 깃펜을 놀리고 있었다. 또다시 소녀의 벽안에 청년의 수려한 필체가 담겼다.
[오늘 하루는 병동에서 쉬어야 하고 귀는 곧 돌아올 거라고 했어.]
[내가 아르마딜로의 담즙이랑 빌리위그의 담즙 구분하는 법 몇 번이나 가르쳐줬어? 그걸 또 그새 까먹고 틀려가지고 이 사달을 내? 요즘 계속 정신 못차리지. 대체 뭐가 문제야?]
요즘 리브는 확실히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멍한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리브는 무슨 생각을 곰곰이 할 때만 표정이 멍해지는 버릇이 있었다. 예리한 리들은 그걸 캐치해낸 것이다. 리브는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리들에게는 아무 문제없었다. 문제의 그 날 자신을 제대로 족친 후, 더 이상 아무 것도 문제삼지 않았다. 거기다 숙제 기한도 충분히 늘려주었고 덕분에 리브의 생활패턴은 원래대로 돌아가서 잠도 충분히 자고 있었다. 단지 머릿속이 복잡할 뿐이었다. 곧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는구나. 리브는 빤히 쳐다보는 리들의 시선을 느끼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 문제없어요. 죄송해요. 조심할게요.” 리들은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공책에 무어라 적기 시작했다. 일단 얘도 알아야겠지.
[블랙이 너랑 내가 고아원에서 자란거 알고 있어.]
“…!!”
리브는 놀란 듯 벽안을 부릅떴다가 리들의 얼굴을 지긋이 응시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그 말을 뱉고야 만다. 말투는 제법 진지했다.
“오리온… 살아있죠?”
“뭐?”
“리들 선배님이 말씀해주신건 아닐테고 어쩌다 알게된 모양인데 그걸 선배님 성격에 그냥 냅둘 리가 없잖아요.”
리브의 말에 리들은 실소를 뱉었다. “야, 너 나를 뭘로 보고-” 그렇게 말하다가 리들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 위해 깃펜을 들었다. 하지만 리들이 글씨를 쓰는 것보다 리브의 말이 더 빨랐다.
“오리온은 입이 무거우니까 괜찮을거에요. 그런데 지팡이는 뒀다 마법약 만들 때 쓸거에요? 기억력 마법을 걸면 되잖아요.”
“진짜 못들어주겠네. 기억력 마법이 얼마나 섬세하고 까다로운줄-”
“안 들려요. 할 말 있으면 적어요”
리브는 새초롬하게 내뱉었다. 리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 영악한 계집애…” 리브가 대꾸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욕했죠?” 리들은 대꾸하지 않은채 빠르게 노트에 깃펜을 휘갈겼다.
[기억력 마법 잘못 썼다가는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내가 블랙가의 후계자를 백치로 만들어서 잡혀가면 좋겠어?]
“그런건 신경도 안쓸 줄 알았는데… 오리온이 리들 선배님 마음에 들었나보네요?”
리브의 말에 리들이 흑안을 깜박였다. 사실 리들이 오리온에게 기억력 마법을 거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리들은 몇 번이나 오리온의 등 뒤에 지팡이를 겨누었다. 하지만 정말로 자칫하면 오리온의 기억이 전부 날아가버릴 수가 있었다.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만 현재 리들에게는 위험부담이 따르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실망했냐고 물었을 때 청흑발을 가진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전 리들 선배를 좋아하고 정말로 존경해요.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리고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소년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조금도- 리들은 사람을 믿지 않는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짓을 저지르면 항상 완전범죄를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줄곧 그렇게 행동해왔다. 대답하지 않는 리들을 보며 리브가 특유의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들 선배님은 오리온이 걱정됐으니까 기억력 마법을 못건거에요. 아마 앞으로도 그러시겠죠.”
“아니, 걸거야.”
“아니라고 했죠, 방금? 하지만 리들 선배님은 앞으로도 오리온한테 기억력 마법도, 그 무슨 짓도 못하실거에요. 만약 걸거라면 저한테 이런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처리했겠죠.”
리들은 노트에 깃펜을 휘갈겼다. [보류해둔거야. 비밀로 해주겠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어.] 그 글귀를 물끄러미 보다가 리브가 말했다.
“오리온을 입이 무거운 애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리들 선배님을 많이 좋아하잖아요. 비밀로 하겠다고 하면 정말로 그럴거에요.”
[넌 네 친구, 맥밀란이 네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좋아? 너라면 믿을 수 있겠어?]
“전 에밀리를 믿어요. 에밀리는 제 친구니까요.”
리브의 눈빛은, 목소리는 분명하고 또렷했다. 리들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족에게 편지를 받지 못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죠. 편지를 보내줄 가족이 없으니까… 하지만 에밀리는 저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아요. 어쩌면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르죠.”
[친구이니 우정이니 믿음이니 하는 것을 나에게 운운하려는거라면 관둬. 세상에 자신 외에는 믿을 수 있는 것은 없어.]
노트를 자신에게 보여주는 리들의 흑안은 싸늘했다. 하지만 리브는 청년을 지긋이 응시하다가 말했다.
“세상에 이런 말이 있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말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리들의 입모양으로 대충 뜻을 유추한 리브가 대답했다.
“리들 선배님이 남을 믿지 못하고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남들도 그럴 거라는 이야기에요.”
무어라 노트에 쓰려던 리들을 리브가 조심스럽게 제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모든 이들이 리들 선배님을 우러러보고, 좋아하고 따르고 있다는거 알아요. 말포이 선배나 오리온만 봐도 알 수 있죠. 하지만 리들 선배님은 그들에게 진심이 아니시죠?”
“……”
“리들 선배님이 계속해서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시면 그들도 더 이상 진심을 내보이지 않을거에요. 사람인 이상 결국은 느낄거에요. 아, 이 사람은 내게 진심이 아니구나.”
[그게 무슨 상관이지? 진심? 그런게 중요해?]
이 사람은 감정에 무지하다.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애초에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적어도 이 사람에게는 말이다.
“리들 선배님이 저번에 저한테 그러셨죠. 말이랑 생각이랑 따로 논다고, 기분 더럽다고”
“……”
“저의 진심이 아닌 태도를 선배님이 느끼신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럴 거라는 이야기에요.”
“…그럼 너는 내게 진심이야?”
리브가 벽안을 가늘게 떴다. 아직도 귀는 여전히 윙윙거렸다. 고로 방금 리들이 뭐라고 한지 들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입모양을 놓쳐서 뜻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적어주세요.” 리들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노트에 깃펜을 휘갈겼다. [됐어, 별거 아니야. 잊어버려.] 리들은 화제를 돌리는 것을 택했다. 리브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저 한 마디 했을 뿐이다.
“리들 선배님”
“말 해.”
“…오리온은 그냥 두시면 안될까요?”
[내 마음이야.]
리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들은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은 그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 그가 나쁜 짓을 해도 자신은 그저 방관하고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어린 날의 나는 그와 얽히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그와 엮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를 알면 알수록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 학교에 남지? 오늘 하다만거 다시 할거야.]
“…올해는 안남아요.”
리들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소녀에게로 향했다. 설마 고아원에 가는거냐고, 어디에 가냐는 물음. 리브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오리온 집에 가요. 초대받았거든요.”
“네가 블랙가는 왜…”
그렇게 중얼거리던 리들은 노트에 무언가를 휘갈겼다. [너 블랙이랑 사귀냐? 그래서 그렇게 오리온을 냅두라고 하셨구만?] 적힌 글귀를 보고 리브가 무슨 헛소릴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제가 오리온이랑 왜 사겨요. 대체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오는거에요?”
[남자가 자기 집에 여자를 초대하는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리브가 사파이어 눈동자를 깜박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오리온이… ["오해하지는 마, 그런 의미는 아니니까“] 아, 그래서 오해하지 말라고! 리들이 노트에 적고 있는 것을 흘깃 보니 가관이다. [어쩐지 블랙이 너한테 살갑게 굴-] 리브는 리들의 손에서 깃펜을 쓱 빼냈다.
“진짜 못하는 소리가 없으시네요. 오리온은 그저 매너가 좋은거에요. 어디가서 이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랬다가 슬리데린 여자애들한테 또-”
[만만해 보이는 계집애 한 명 골라서 네 특기인 머리채 잡아주면 되잖아. 이번에는 대연회장 말고 다른 데서 하는게 좋을거야. 파킨슨처럼 집안 좋은 애는 건드리지 말고]
이 인간이 진짜! 리브는 다시 리들의 손에서 깃펜을 빼내려고 했지만 청년이 소녀의 손목을 낚아채는게 더 빨랐다. 그리고 얄밉게 웃어보인다. 리브가 손을 뿌리치며—그는 쉽게 놓아주었다— 말했다.
“오리온의 고모님이 절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그래요!”
[벌써 그런 깊은 관계야?]
“아오 진짜, 계속 이러실 거에요?”
리들이 씩 웃으며 깃펜을 휘갈겼다. [네가 왜 블랙의 고모를 만나는데?] 그리고 대답하라는 듯 소녀를 빤히 쳐다본다. 리브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말해버렸다. 어차피 오리온이 말해줄지도 모른다. 걔는 톰 리들 빠돌이니까.
“오리온의 고모님이… 제 어머니랑 가장 친한 친구 사이셨대요.”
그 순간 리들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지니아가 리코리스와 항상 붙어다니던 모습도 선명해요. 둘은 가장 친한 친구였죠.”] 리코리스 블랙이라는 여자인가. 리들은 예리했다. 요즘 이거 때문에 그렇게 정신을 놓고다닌건가
[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야?]
리들은 돌직구로 물었다. 노트에 쓰여진 말을 본 리브의 얼굴이 굳었다. 리브는 간신히 입을 열어 답했다.
“리들 선배님이라면… 궁금하지 않겠어요? 제 어머니를 버리고, 저를 버리고…”
리브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어머니가 목을 매도록 만든 그 남자가 궁금하다. 나는 누군지 알아야겠다. 온갖 감정이 섞여있는 리브의 고운 얼굴을 보며 리들이 또박또박 글을 적었다.
[나는 머글 아버지 따위 궁금하지 않아.]
“……”
[마법의 힘도 없는 머글 따위에게 그렇게 감정 쏟지마. 그냥 없다고 생각해.]
리브가 사파이어 눈동자를 깜박이며 리들의 잘생긴 얼굴을 응시했다. 약 기운이 돌기 시작했는지 소녀의 눈이 스르륵 감기기 시작했다. 리들은 그런 소녀의 양어깨를 잡고 살짝 밀어 침대에 눕혔다. 리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순히 누웠다. 소녀는 잠에 취해가는 모양인지 표정이 몽롱했다. 리들은 이불을 목까지 덮어준 뒤에 병동을 나가버렸다. 한 마디를 남긴 채.
“잘 자.”
몽롱한 정신에서 들리는 리들의 목소리는 꽤 듣기 좋았다. 리브는 잠의 수마에 빠져들며 생각했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원작에서 톰 리들은 리들 가족을 몰살한다. 아버지 톰 리들 1세를 비롯해서 조부모까지 전부 죽인다. 그리고 모핀 곤트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머글 아버지에게 조금의 정도… 아니 아예 아무 감정도 없어보였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감정 쏟지 말라고, 없다고 생각하라 조언하지 않았던가. 정말로 아버지가 머글이기 때문에 조금의 관심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리브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그는 왜 리들 가족을 몰살시키게 되는걸까? 원작과 다른 부분일까? 달라지는 걸까? 아니다. 그는 볼드모트잖아…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던 리브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 둘이 좀 가까워진거 같죠? 리브는 그 날 이후로 리들에게도 진심으로 대하고 있어요.
* 리들의 저 새까만 노트... 눈치채셨나요? 네, 원작(비밀의 방)에 나왔던 그 '톰 리들의 일기장'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리브와의 꽁냥꽁냥(??) 노트가 되어버렸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리들은 대면식 이후로도 공적인 장소에서 리브 속을 긁을 때(?) 저 노트를 사용해요.....물론 이제는 리브도 끄적끄적 맞받아치겠지만요ㅋㅋㅋ
* 여러분 저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마음껏 코멘트 작성해주세요^^! 하지만 리들 욕하는 건 참아도 제 욕은 못참아요ㅋㅋㅋㅋㅋㅋㅋ진짜임 진지한 궁서체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 사단을 내다(X) -> 사달을 내다(O)
맞춤법에는 자신 있었는데 전 아직 멀었나보네요..ㅋㅋ어쨌든 'anone'님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