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20화 (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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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약속

큰일났다. 자,자버렸어! 리브는 밤늦게 리들이 내준 요약본을 작성하다가 래번클로 휴게실 쇼파에서 까무륵 잠들고 말았다. 눈을 비비고 비몽사몽한 기분으로 주변을 돌아보다가 퍼뜩 떠오르는 현실. 시계를 보니 아침. 이제 씻고 식사를 하러 연회장에 가야할 시간이다. 양피지에 쓰여진 양을 보니 다섯 줄… 망했다. 아아, 망했어요. 리브는 아침 식사까지 거르고 책을 보면서 정신없이 깃펜을 놀렸지만 요약본을 끝마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 그리고 오늘따라 왜 수업은 꽉꽉 차있는건지!

필요의 방에 일찍 도착한 리브는 요약을 열심히 써내려나갔지만 양피지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 책도 절반 이상 남아있다. 그리고 여섯 시, 정확한 시각에 리들은 필요의 방에 입성했다. 평소처럼 나기니가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리브, 안녕!] 안녕 못해. 으… 어떡해. 리들은 조용히 다가오더니 리브가 쓰고 있는 양피지를 쓱 빼냈다.

“이건 오늘 마감인 [마법의 약, 그 황홀한 신비로움]의 요약본?”

“……”

“그런데 왜 끊겨있지? 거기다 양피지 하나도 못채웠네?”

리들은 우아한 몸짓으로 쇼파로 걸어가더니 털썩 앉았다. 그리고 길게 뻗은 다리를 꼰 채로 리브가 쓰다만 요약본을 읽는다. 그런 청년의 얼굴은 지독히도 싸늘했다. 잘생긴 얼굴에 깃든 얼음같은 차가움. 리브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안 그래도 저기압인 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는 생각이 들자 리브는 스멀스멀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리들의 손에 있던 양피지가 팔랑팔랑 바닥으로 추락했다. 청년이 지팡이를 꺼내들자 리브는 움찔했다. 지팡이가 향한 곳은 소녀가 아닌 양피지였다. 지팡이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양피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새까맣게 재가 되어 흩어졌다. 리브는 엄청난 위협을 느끼며 미세하게 떨었다. 소녀는 청년이 화가 났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예로 계속 쉭쉭거리던 나기니는 입을 딱 다물고 있었다. 숨막히는 침묵이 흐르고 리들이 입을 열었다.

“이리와.”

“……”

“또 두 번 말하게 하지.”

리브는 주춤주춤 리들에게 다가갔다.

“나한테 할 말 없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 못한건-”

“변명은 필요없어. 넌 내가 내준 숙제를 안했고 그게 다야. 더 들을 것도 없어.”

리들은 단호하게 리브의 말을 잘랐다. 리브는 벽안을 깜박이며 리들을 응시했다. 변명은 필요 없다고 했다. 사실 변명할 것도 없었다. 어쨌든 자신이 그가 내준 숙제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도 사정이 있었다. 요즘 가뜩이나 줄어든 수면시간이며… 너무 버거웠다. 내가 뭐 지랑 멘토링만 하는 줄 알아?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못한게’ 아니라 ‘안한거야.’ 누가 너에게 내가 내준 숙제를 하지 말라고 강요했어? 생명의 위협이라도 당한거야?”

리브는 말문이 막혔다. 이건 대체- 아니, 도대체가- 나도 바쁘단 말이야. 네가 내준 숙제만 하고 있는게 아니잖아! 나도 해야할 공부가 있고 바쁘단 말야.

“혹시 그런 일을 당하기라도 했으면 말해봐. 그럼 참작해주지.”

“……”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 당하지 않도록 손도 써줄게.”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얼굴은, 눈빛은 살기를 띠고 있었다. 적어도 리브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소녀는 더 이상 변명을 했다가는 눈앞의 청년이 자신이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강하게 받았다.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하나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다음이 어딨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지금이야.”

“……”

“참 당당하네. 고개도 빳빳이 들고… 표정을 보니까 억울한가봐?”

리브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표정에 자신의 감정이 전부 드러난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리들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내리 박혔다.

“뭐가 그렇게 억울해? 내가 네 사정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

“내가 너에게 한 번이라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 적이 있던가?”

“……”

“대답 안해? 내가 너한테 불가능한 것을 요구했냐고”

“아닙니다. 하지만-”

없었다. 그는 버거울 지라도 자신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만 요구했다. 하지만… 버거운건 버거운거다.

“하지만? 최근에 학교 숙제가 많았다 라던가 그 따위 변명을 하려는 거면 관두는게 좋을거야. 내 화를 돋우고 싶지 않다면”

“…죄송합니다. 리들 선배님”

리브의 말에 리들은 픽 웃었다. 같잖다는 듯이. 리들은 리브가 정말로 진심으로 죄송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기계적인 목소리, 그리고 저 눈… 특히 소녀의 푸른빛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나며 억울하다고, 너무한다고, 아니꼽다고 외치고 있었다.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리들의 예상대로 리브는 속으로 이를 부득 갈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리들의 흑안이 가늘어지자 흠칫했다.

“날 정말 선배로 보고있기는 한거야? 얼마나 날 얕봤으면 경고를 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럴까”

“그런게 아니-”

“그럼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보란 말이야!”

리들은 손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리브가 화들짝 놀라며 움츠러들었다.

“난 나한테 거스르는 것을 싫어해. 무척”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역시 소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딱딱하고 기계적인 목소리. 죄송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는 해도 끝까지 잘못했다고는 안한다. 고개 한 번 안숙이고 빳빳이 쳐들고 있다. 리들은 저번 사건 때, 리브가 징계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파킨슨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면 조용히 끝내겠다는 데도 징계를 자청했다고 들었다. 호그와트 측에서는 계속되는 항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징계를 준 모양이지만… 교수들은 리브가 반성하고 있다며 소녀를 기특해했다.

하지만 리들은 코웃음을 쳤다. 반성? 브릴리언트는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했지, 파킨슨에게 머글식 폭력을 쓴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면만 보는 법이지. 브릴리언트는 고집이 세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로. 지금 역시 그러고 있었다. 리들은 자신이 남에게 가식적으로 굴지라도 남이 자신에게 그러는 것은 무척이나 거슬려했다. 그래서 리들은 오늘 리브를 제대로 눌러줄 생각이었다. 내 앞에서도 네가 계속 그럴 수 있나 보자. 안 그래도 리들은 리브에게 거슬리는 것이 많았다.

“넌 네가 잘못했다고 전혀 생각 안하고 있지?”

“…!!”

정곡을 찔린 듯 리브의 벽안이 살짝 커졌다.

“네가 죄송하다고 하는 것도 그냥 이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 거잖아. 넌 저번에 파킨슨과의 일 때도 그랬어. 네가 죄송한 것은 소란을 피웠다는 것뿐이었지. 머글식 폭력을 썼다는 것이 아니잖아. 오히려 넌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리브는 고개를 치켜들고 부릅뜬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본심을 간파당했다는 생각에 소녀는 깜짝 놀라야만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 그 일을 끄집어서- 어쩌려고

“물론 그 일에 대해 널 탓할 생각은 없어.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러면 왜 그 일을 꺼내시는 거죠?”

리브의 또렷한 그러나 쏘아붙이는 듯한 목소리가 리들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 소녀의 형형한 벽안과 청년의 싸늘한 흑안이 치열하게 부딪혔다.

“내 마음이야. 하나 말해주자면 지금 난 기분이 몹시 더럽거든.”

“그래서요?”

“하나하나 설명해줄게. 네가 뭘 잘못했는지. 물론 그 대가는 치러야 할거야.”

“아니요. 그러실 필요는-”

리들은 리브의 말을 끊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입에 발린 소리는 필요없어, 모르면 깨닫게 해줄수밖에”

리브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머금었다. 당신이야 말로 항상 하고 다니는 것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던가? 항상 거짓으로 웃고, 항상 거짓된 말을 하지.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태도,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지. 절대로 적의를 드러내지 않지. 그래서 다들 차분하고 모범적이며 상냥하다고들 하지. 거기다가 뛰어나기 까지 해. 누군들 매료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 중에 당신의 진심은 아무 것도 없지.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칼을 꽂지. 그게 바로 당신이지. 그 본모습을 아는 나에게는 어김없이 본모습을 드러내지. 간혹 짓는 미소는 비웃음일 뿐, 절대로 웃어주지 않지. 싸늘한 모습으로, 차가운 모습으로, 적의를 드러내지. 내가 잠시 잊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볼드모트지. 왜 그걸 잊었을까.

“다시 한 번 묻지, 내가 너에게 한 번이라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 적이 있던가?”

“선배님은 제게 버거운 것을 요구하셨어요.”

“내 물음에 대답해, 불가능한 것을 요구했어? 내가 물은 것은 ‘불가능하냐, 아니냐’야.”

“…아니요.”

리들은 리브에게 버거울지 언정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사실 충분히 해나갈 수 있었다. 리들은 항상 리브가 해낼 수 있는 아슬아슬한 수준의 것을 요구했다. 부족하지도, 너무 넘치지도 않는 것을 정확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리브는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묵묵히 해나갔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멘토링만 하는게 아니잖아요. 전 학교 숙제도 있고… 선배님이 그러셨죠. 오리온한테 수석 자리 뺏기면 가만 안둔다고, 그 수석자리 지키는게 쉬운지 아세요? 평소에도 어느 정도 공부를…”

“그럼 왜 말 안했어.”

리들의 나지막하지만 힘있는 대꾸, 그 말에 담긴 의미. 왜 말을 안했냐고 한다. 리브는 정말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왜 말 안했냐고, 한 번이라도 내게 그런 사정을 설명한 적이 있어?”

“그야… 말을 해도…”

받아주지 않을테니까… 리브는 뒷말을 삼켰다. 당신이, 내가 말한다고… 그걸 받아줄 리가 없잖아. 소용없을 테니까. 그래서 감히 요구하지도 못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했다.

“소용없으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

“브릴리언트, 나에 대해 멋대로 판단하지 마. 내가 그렇게 쉬워보여?”

“…쉽게 본적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쉽게 봤으면 이러지도 않아.

“이게 쉽게 보는거지 뭐야.”

“……”

“네가 충분히 사정을 설명했다면, 난 이해를 했을거야. 그리고 조정을 해주었겠지.”

믿을 수 없다. 당신이? 당신이 나를 이해한다고? 내 편의를 봐주었을거라고? 거짓말 하지마.

“못 믿겠다는 눈치네. 상관없어. 이왕 이렇게 된거 전부 털어보자고.”

무슨 꿍꿍이지? 리브의 벽안이 가늘어졌다. 소녀의 눈동자에 비친 경계심,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리들이 말했다.

“우선 너 정말 거슬려.”

리브는 순간 그의 새까만 눈동자에서 붉은 빛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 멍하니 혼자 속으로 궁시렁대지 말고, 분명하게 네 의사를 표현하란 말이야.”

리들은 리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살짝 멍해지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얼굴에 전부 드러난다. 적어도 자신은 그게 너무나도 잘 보였다. 그게 무척이나 거슬렸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정말이지, 왜 넌 말이랑 생각이 따로 놀아? 어떻게 알았냐고? 네 얼굴에 다 써져있어.”

리브가 당황스러운 듯 눈망울을 깜박였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왜 나한테는 호박씨를 까냐고”

“선배님은 안 그러세요? 선배님도 그러시잖아요.”

“최소한 너한테는 안 그러잖아.”

그랬다. 리들은 다른 이에게는 가식적인 모습을 보였을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가면을 벗고 본모습을 보인다. 리브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너한테 할 말 다 하면 넌 나를 가만두지 않을텐데… 내가 어떻게 너에게… 진심을 전부 내보일 수가 있겠어. 그랬다. 리브는 리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했지만 유일하게 리들에게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눈치빠른 리들은 이를 간파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그러지 말란 말이야. 기분 더러워. 내 뒤통수라도 칠 셈이야?”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세요?”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고 있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

리브는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야 할지 말지. 문제는 많지. 우선 네가 볼드모트라는거야. 하지만 그걸 고대로 말할 수는 없다. 소녀의 얼굴에 고민하는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리들은 잡아냈다.

“브릴리언트,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봐.”

리들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얼굴에 떠오르는 것은 미소, 많은 이를 매료시켰던, 잘생긴 얼굴에 떠오르는 그 매력적인 미소. 가끔 리브도 심장이 내려앉곤 하는- 리브는 마음이 약해졌다. 저 미소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리들은 그렇게 리브의 틈을 파고들었다.

“올리비아 브릴리언트, 말을 해봐.”

그리고 청년의 붉은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소녀의 풀네임, 또 다시 소녀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제가, 다른 사람 대하듯 선배님을 대하면… 선배님은 절 가만두지 않을테니까요…”

“그래서 할 말도 못하고 계속 그렇게 호박씨 깐거야? 너 그렇게 안봤는데 참 가식적이었네.”

가식적이라는 말에 발끈한 리브가 줄줄줄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게… 그러니까… 무섭다고요. 전 리들 선배님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무섭단 말이에요! 제가 거슬린다고 하셨죠? 리들 선배님은 절 싫어하시잖아요. 리들 선배님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이 어떤 꼴을 당한지- 저는 잘 알아요. 고아원에서도 그랬죠. 선배님을 건드린 애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죠. 그리고 호그와트에서도 그렇죠.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죠. 얼마 전에 금지된 숲을 떠돌던 학생들부터가 리들 선배님의 짓이 아니던가요?"

결국 말하고 말았다. 리브는 속안에 있는 말을 전부 쏟아냈다. 이제 난 몰라, 또 뺨 맞는거 아니야? 소녀의 말을 듣고있던 리들의 흑안이 살짝 커졌다.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에 리들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네가 한 말을 전부 부정하지는 않겠어.”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보석같은 벽안,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사파이어 눈동자. 네가 나를 줄곧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거 알아. 나에게 거슬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도 알아. 넌 나를 알지. 그래서 처음에 그토록 나에게 네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겠지. 그래, 처음에는 네 존재가 달갑지 않았어. 마음에 안들었어. 짜증이 났어. 하지만 지금은… 흥미일까, 호기심일까, 이게 무엇일까. 하지만 하나 확실한건, 넌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나를 잘 알아. 그런데도 네가 싫지는 않아. 참 신기하지. 리들은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틀린게 있어.”

“……?”

“난 너를 싫어하지 않아, 브릴리언트”

리들은 솔직하게 말해보기로 한다. 네가 솔직히 말을 해줬으니 특별히 말해주는거야. 아무래도 브릴리언트는 내 대답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네가 솔직히 말했으니까 나도 솔직히 말해주는거야. 싫어하는 애를 멘티로 지목해서, 이토록 공들여서 멘토링 해주는 취미 없어. 아무리 상금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야.”

“……”

“앞으로는 멋대로 나에 대해 판단하지 마. 몹시 불쾌해. 그럼 정말로 너를 싫어해버릴지도 몰라.”

알고 있다.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계속해서 당당한 태도로 고개를 들고있던 리브는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말이 전부 옳았다. 도저히 무어라 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의 과거를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싫어할거라고 생각했다. 멘티로 지목한 것도 나를 엿 먹이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 그리고 멘토링을 꽤 제대로 하는 것은 상금에 눈이 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전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난 네 멘토야.”

사실 그와 멘토링을 하면서…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정말 나를 싫어할까, 가끔 의문을 가지곤 했다. 하지만 눈앞의 그가 미래의 볼드모트라는 생각이 들면… 미래의… 미래… 그래 아직은 볼드모트가 아니지. 지금의 그는 호그와트 4학년 생인 톰 리들일 뿐이지. 하지만 그가 볼드모트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리브의 눈에, 톰 리들의 행보는 미래에 볼드모트가 될 소질이 다분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어둠의 마법사. 그는 실제로도 어둠의 마법에 빠져있었다. 내가 어찌 당신을 볼드모트가 아닌 톰 리들로 볼 수 있겠어.

“난 멘토링을 시작하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분명히 말했어. 우리에게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 않았나? 난 1등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성과를 내야한다고, 네가 마법약 과목에서 특출함을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만들거라고 분명히 말해주었어. 지금의 널 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건 본인도 잘 알테니 더 말하지는 않겠어. 그리고 난 너에게 시키는 대로만 따라오면 된다고 했어. 넌 그리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어. 그런데 지금 넌 내 말을 따르지 않았지. 이래도 잘못이 아니야?”

“……”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내가 너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했던가? 난 네 마법약 제조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넌 전혀 애쓰고 있지 않잖아.”

리들의 말이 리브의 심장에 콕콕 박혔다. 정곡을 찌른다. 그가 볼드모트인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그와 약속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리브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워졌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도- 애쓰고 있어요. 하지만 어젯밤에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그게 애쓴거야? 너, 천문학 시험 때 조는 바람에 시험을 망쳤다고 했지? 긴장감이 없으니까 잠이 온거야. 그래, 너의 범인(凡人)보다 뛰어난 두뇌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어.”

그리고 너를 가르치면서도 항상 깨닫고 있지. 소녀는 과연 교수들이며 학생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리들은 순수 두뇌로만 보면 오리온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 학교 공부 같은 것은 별거 아니었겠지. 리들이 본 리브의 문제점은 포기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손을 놔버린다. 마법약 과목처럼-

“모든 공부가 너에게는 쉬웠겠지. 그리고 재능도 제법 있겠다… 특히 변신술, 덤블도어 교수가 하는 말을 들었어. 너에게는 숨 쉬는 것보다 더 쉬워 보인다고 하더라? 넌 네가 잘하는 것에만 흥미를 가지는 타입이지. 그래서 변신술 실력은 날이 다르게 향상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불행히도 못하는 과목은 더욱 더 바닥으로 추락하지. 마법약 같은 과목 말이야."

리브가 살짝 입을 벌렸다. 톰 리들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나를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 자신보다 더-

“너, 마법약 제조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따로 노력한 거 없지?”

“……”

“또 대답 안하지? 자꾸 두 번 말하게 할거야?”

“……”

“브릴리언트, 빨리 대답해. 날 여기서 더 화나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네, 맞아요. 리들 선배님 말씀대로… 하지만 전 재능이 없단 말이에요.”

리브는 마법약에 재능이 없었다. 그걸 본인이 너무도 잘 알았다. 그렇다고 따로 연습을 한다거나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못하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를 않았다. 싫어졌다. 리들의 말대로 리브는 못하는 것에 대해 포기가 빨랐다. 자연스럽게 마법약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못하는 과목이므로

“재능이 없으면 더욱 더 노력을 해야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그 것도 하나 못 따라와서… 너 그렇게 근성없는 여자였어?”

너 그렇게 근성없는 여자였어? 지난 번에도 들었던 말이다.

“자, 할 말 있으면 해봐. 지금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할 말이 있으면 전부 해. 너에게 해를 입히거나 하지 않을테니까- 분명하게 네 의사를 표현하란 말이야.”

긴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청년, 그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소녀. 나기니는 둘을 번갈아 보며 똬리를 틀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나기니는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대화가 오간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침묵이 흐르고 소녀가 할 말이 없다는 것을 판단한 리들의 입술이 열렸다.

“자, 이래도 네가 잘못한게 아니야?”

“…죄송해요.”

리들은 빤히 리브를 응시할 뿐이었다. 리브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리고 소녀의 입술에서 리들이 들으려는 그 말이 흘러나왔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리브는 결국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뱉는 잘못했다는 말, 하필 그 상대가 톰 리들이라니…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의 말은 전부 옳았고, 그의 말대로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멋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무엇을 시키든 잘 따라가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내 잘못이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확 와닿자 리브는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무엇을?”

리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소녀에게서 기어이 잘못했다는 소리를 듣고, 이제 무엇이냐고 묻는다. 정말 악취미다. 리브는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다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숙제 안해온 거요.”

“그게 아니야.”

단호하게 떨어지는 리들의 차가운 목소리, 나기니는 이제 리브를 가엾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리브가 톰한테 혼나고 있는 것 같은데. 나기니는 혀를 낼름거리며 둘을 번갈아 보았다.

“네 잘못은, 나와의 약속을 어겼다는 거야.”

“……”

“너는 내가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약속했지. 그래서 난 너에게 숙제를 내줬고, 그런데 넌 그동안 숙제를 성실하게 해오지 않았어. 난 분명 경고를 했어. 그런데 오늘은 아예 제출조차 하지 않았지. 너는 나와의 약속을 어겼어.”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가, 눈동자가, 분위기가 너무나도 차디차서 리브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리들은 누구에게나 호의적이고 상냥한 학생이었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학생이기도 했다. 특히 슬리데린 학생들은 그를 추종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무서워하기도 했다. 아마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리라. 그를 건드리면 후환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자신보다 확실히 강자라는 것을. 이게 바로 학생들이 함부로 못하는 그의 위압감인걸까. 리브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잘못했다고,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아까 내가 말했지? 대가는 치러야 할거라고”

그 말에 리브는 정신이 번쩍 나서 고개를 퍼뜩 들었다.

“오늘 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거야.”

리들의 말에 리브의 푸르른 벽안이 흔들렸다. 소녀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떴다. 그 사이 리들은 눈앞의 소녀에게 무슨 벌을 줘야 할지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못하도록 확실히-

“때리세요.”

“…뭐?”

“저번처럼 제 뺨을 치시려는거 아니에요? 어서 치세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문다. 그 모습에 리들은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나를 뭘로 보고… 그래, 그러고 보니 저번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뺨을 때려버렸다. 힘 조절도 못했지… 자신이 내리치면서 휘청이던 소녀의 몸과 붉게 부어오른 소녀의 뺨이 떠올랐다. 그리고 줄곧 자신이 손을 뻗으면 움찔하는 모습까지. 그게 그 때문이었나. 리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부득 갈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가났다.

“눈 떠.”

누,눈을 뜨라고? 무서워, 싫어.

“안 때릴거니까 눈 뜨라고”

“저,정말…이에요?”

“그래, 앞으로도 너한테 그런 식으로는 손 안대.”

그제서야 리브는 눈을 떴다. 소녀의 고운 얼굴에 다시 푸른 벽안이 드러났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리들의 얼굴은 살벌했다. 어떡해… 뺨 때리는 거 말고 무슨 짓을 하려고? 더 심한게 뭐있지? 크루시아투스 저주? 리브는 불안한 듯 푸르른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렸다. 하지만 이어서 리들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말에 리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기니를 만져.”

“……!!”

“그게 내가 주는 벌이야.”

리브는 푸른 눈동자를 부릅떴다. 항상 따스함을 담고 있던 벽안은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리들은 또다시 리브에게는 사형선고가 될지도 모를 그 말을 내뱉는다.

“뭐해, 어서 나기니 안 만지고”

리브는 어릴 적에 뱀에 물려 죽을 뻔한 트라우마 때문에 뱀을 무척이나 무서워했다. 나기니를 제외한 다른 뱀은 보기만 해도 소녀는 진저리를 쳤다. 저번에 뱀사건을 주동한 것도 사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무모함이 솟았나 궁금할 정도였다. 특히 새까만 뱀은 리브에게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나기니에게는 거부감이 덜한 이유는 그녀가 새하얀 뱀인데다가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적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여전히 나기니조차 만지는 것은 꺼려했다. 나기니는 그런 소녀를 배려해서 절대로 접촉하지 않았다. 그런데 리들이 그런 리브에게 명했다. 나기니를 만지라고.

“빨리 안만져?”

“시,싫어요. 무서워요…”

“싫다고?”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리브는 발작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리들에게 제발 그 것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소녀의 벽안에는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차있었다. 처음 보는 소녀의 모습에 리들은 흠칫했지만 한 번 뱉은 말을 거두지 않았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뱀을 만지라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두려워?”

“네, 두려워요. 제발…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럼 내 약속을 어기지 말았어야지.”

“다시는 안 그럴게요…”

리브의 애원에도 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 나기니가 둘을 번갈아보며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렸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리고 이 정도는 되어야 네가 앞으로는 내 약속을 잘 지키지 않겠어?”

“아니에요, 한 번만 봐주세요. 그럼…”

“입 다물어, 나를 더 화나게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

“내가 임페리우스 저주라도 걸어야겠어? 얼른 나기니를 만져.”

리브는 도저히 리들이 자신을 용서할 생각이 없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애원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여기서 도망치거나 하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버티고 있으면 정말로 임페리우스 저주든, 무엇이든 날아올지도 모른다. 리브가 꿈쩍도 하지 않자 리들은 품에 있는 지팡이를 쥐었다. 그 움직임을 본 리브가 빽  소리쳤다.

“마,만질게요! 제 손으로, 제 스스로 만질테니까 그러지 말라고요!”

리브는 눈을 질끈 감은채로 나기니에게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눈 떠. 나기니를 똑바로 보고 만져.” 리들은 리브에게 그 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잔인했다. “임페리우스 저주 걸어줘?” 리브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간신히 눈을 떴다. 나기니는 똬리를 틀고 자신에게 손을 뻗고있는 리브를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리브! 날 만져 주는거야?]

[나기니, 넌 가만히 있어.]

리브의 손이 다가오자 꼬물꼬물 움직이려던 나기니는 주인의 명령에 꼼짝않고 있었다. 리브는 나기니를 처음 봤을 때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리브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나기니에게로 가까워졌다.

“손이 안 닿잖아, 더 뻗어야지. 가까이 다가가고”

“흐흑…”

리브의 입술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리들이 흑안을 깜박였다. 이제 리브의 사파이어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무서워, 만지기 싫어. 한 번 터진 눈물은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리브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손은 더 이상 뻗지 못한 채로 소리내어 울어버리는 리브를 멍하니 보던 리들의 눈앞에 도서관에서 울던 소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 때처럼, 또 울고 있다.

[리브, 울지마. 왜 그래?]

나기니는 이제 아이처럼 엉엉 우는 소녀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쉭쉭거렸다. 리브는 머릿속이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차서 결국 울음을 가득 토해내고 말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청년은 눈물을 쏟아내며 손을 간신히 뻗고있는 소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쇼파로 밀어버린다. 리브는 휘청이다가 쇼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내어 우는 소녀를 보며 리들이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울지마, 보기 싫어.”

하지만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두려움과 공포심, 그리고 서러움에 휩싸인 소녀는 한바탕 울음을 쏟아냈다. 또다시 리들은 도서관에서 눈물을 쏟아내던 소녀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보기 싫다. 한참동안 서럽게 우는 소녀를 보며 리들이 빽 소리쳤다.

“앞으로는 나기니 만지라고 하지 않을테니까- 젠장, 그만 울라고!”

리들의 욕설섞인 외침에 리브가 깜짝 놀란 듯 울음을 뚝 멈췄다. 눈물범벅인 소녀의 고운 얼굴을 보며 리들은 알 수없는 감정에 휩싸여야만 했다. 거슬린다, 몹시 거슬렸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 감정… 리브의 벽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지자 리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명백히 화가 났다는 표시였다.

“눈물 그쳐, 당장”

리브는 입술을 깨물고 또 깨물어서 간신히 눈물을 참아냈다. 잔뜩 울어서 붉어진 눈시울이 리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한 얼굴도. 리들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차가웠다.

“눈물 닦아.”

리들의 말에 소매로 눈물을 닦던 리브는 품을 뒤적거리다가 손수건을 하나 발견했다. 이건… 저번에 리들이 자신의 손을 감아주었던 그 손수건이다. 이거 돌려줘야하는데… 리들의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리브는 일단 그걸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손수건이 가득 젖는게 느껴졌다. 눈물이 완전히 그치자 이제 소녀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입을 틀어막았지만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딸꾹질 소리. 그 모습에 리들은 헛웃음을 뱉었다. 딸꾹질은 멈추라고 해도 본인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지. 리들이 자신의 뱀에게 속삭였다. [나기니, 브릴리언트에게 가까이 가. 접촉하지는 말고 그냥 놀래키기만 하면 돼.] 나기니는 꼬물꼬물 딸꾹질을 하느라 정신없는 소녀에게로 기어갔다.

[리브, 리브!]

자신의 발 바로 앞에 나기니가 와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녀가 꺅 비명을 지르며 소파로 발을 올렸다. 부들부들 떨며 쇼파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소녀를 보며 나기니가 풀이 죽었다. 리브는 언제쯤 나를 만져줄까… [나기니, 이리 와.] 나기니는 리들의 몸에 올라타며 쉭쉭거렸다. [리브가 싫다면 접촉 안할게, 그냥 놀래킨거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리브는 딸꾹질이 멈췄음을 깨달았다. 리들의 흑안과 리브의 벽안이 마주쳤다. 둘 사이에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것은 리들이었다.

“너- 내 앞에서 다시는 울지마. 꼴도 보기 싫어.”

“죄,죄송해요.”

리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바탕 울어서인지 소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쉬어있었다. 울음과 눈물은 그쳤지만 너무 울어서 붉어진 눈시울은 리들도, 리브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봐줬지만 다음에는 안 봐줘.”

리들의 말에 리브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대답을 안하고 고갯짓을 한다. 어김없이 리들의 입에서 싸늘한 말이 흘러나왔다.

“대답 안하는 거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리브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 했지만 나오는 것은 쉬어버린 목소리. 리들은 새 양피지를 가져와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브에게 휙 던져준다. 양피지를 받아든 리브는 저번에 자신에게 주었던 읽어야할 책 목록임을 알아차렸다. 저번 목록과는 다른 느낌에 리브가 벽안을 깜박였다. 기간이 늘었다. 그 것도 상당히-

“저번에 준 것은 버리고 앞으로는 여기 쓰여진 대로 해와.”

“……”

“기간 충분히 늘려줬어. 한 번만 더 이딴 식으로 해봐. 그 때는 정말 안봐줘.”

리들은 대답도 듣지않고 오늘은 이만 가보라며 소녀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소녀는 꾸벅 인사한 뒤 필요의 방을 빠져 나갔다. 리들은 쇼파에 몸을 편하게 기대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귓가에 아른거리는 소녀의 울음소리,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리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 결국 리들은 눈을 감아버렸다. 이번에는 한참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잔상이 계속 남아서 청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약속> 마침.

============================ 작품 후기 ============================

오늘 코멘에도 톰레기가 넘쳐날듯....... 감히 예상해봄미다

다음 챕터 쓰고있는데 잘 안써지네요..ㅜㅜ 왜이렇게 안넘어가지지

* 리들은 리브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죠. 리브는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해요. 하지만 리들한테는 안그랬고... 리들은 그걸 간파해서 빵 터뜨림. 그런데 뱀 무서워하는 애한테 뱀을 만지라니 이 개객기야^^! 결국 눈물 쏙 빼놓음.. 하지만 막상 리브가 펑펑 우니까 당황하는거 보소. 당황한거 맞아요. 답지않게 욕도함. 어쨌든 리들리들 난 너에게 쉽게 리브를 주지 않을고야. 리브가 몇 번 도망가고 맘고생도좀해야 그런짓은하지말아야했는데하고 후회를... 제가 이말했더니 지인들이 리들은 리브가 도망가면 리브 발목에 족쇄 채우고도 남을 놈이래욬ㅋㅋㅋㅋㅋㅋ근데 진짜그럴거같아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런데 리들 섹시하지 않아요? 여성독자님들 조각같은 외모에 길게 뻗은 다리를 꼬고 쇼파에 기대앉은 리들을 상상해보셔요........

* 으아니 여러분 오리온이요? 얘는 리들빠돌이...... 리브 도망가면 지가 찾아다가 리들한테 알아서 던져줄지도ㅋㅋㅋㅋㅋㅋ아니면 그간의 정을 봐서 리브에게 순순히 돌아가라고 조언을 한다던가ㅋㅋㅋㅋㅋ하긴 리들이 저모양이니 매너남 오리온이 빛을 발하는군요!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 예쁜 그림주신 LaCiene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뜰에 금손독자님들이 그려주신 팬아트들이 있는데 시간되시면 보세요! 완전 이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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