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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약속
호그스미드 첫 방문일이 이번 주말로 잡혔다. 3학년 학생들은 특히 호그스미드에 대해 떠들며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호그스미드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마법사들만 모여사는 마을이었다. 샤를루스 포터는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가서 온갖 것들을 쓸어올 계획이라며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친구와 함께 마담 퍼디풋의 찻집에 가겠다는 여학생들도 상당 수 였다. 리브 역시 에밀리와 함께 허니듀크부터 시작해서 스리브룸스틱스까지 가게를 전부 돌아보기로 했다.
“버터맥주는 꼭 마셔봐야 해, 그리고…”
리브는 초코멜로우—생김새는 다른 평범한 초콜릿과 동일하지만 마쉬멜로우같은 촉감으로 씹으면 초콜릿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그 어떤 초콜렛보다 달고 맛있어서 허니듀크의 인기상품ㅡ를 꼭 먹어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에밀리도 박수를 한 번 딱 치더니 가서 쓸어올거라고 재잘거렸다. 그 때 뒤에서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허니듀크를 털어도 상관은 없는데 브릴리언트랑은 못 가.”
“오리온, 네가 여긴 웬일? 그리고 내가 리브랑 왜 못 가?”
반발하는 에밀리를 무시하고 오리온이 리브에게 쓱 양피지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소녀는 이게 뭐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리들 선배가 전해주래. 멘토링 계획서야.”
“오리온, 얼른 말해봐. 내가 왜 리브랑 호그스미드를 못 가는데?”
리브가 양피지를 펼쳐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사본을 보내준다고 했었지. 마법의 약이 중점적이네. 기초 제조부터 싹 가르치겠다고? 퍽이나… 겨우 계획서인데도 장난 아니네. 체계적이고 정말이지 이대로 멘토링을 받으면 마법의 약 달인이 될 것같은 기분이었다. 이래서 다들 톰 리들, 톰 리들 하는건가… 내가 계획서를 읽는 사이 에밀리와 블랙은 호그스미드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정확히는 에밀리 혼자서지만)
“그야 넌 아브락사스랑 가야하니까”
“안 가! 안 간다고! 그냥 대충 같이 허니듀크에 갔다 왔다고 할거야!”
“흐음, 사기를 치시겠다?”
“내가 사기를 치든 말든 넌 빠져!”
“그럴 수는 없어, 내가 그 쪽들 감시자니까”
오리온의 말에 에밀리는 그와 같은 색감인 은회안을 깜박이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널 매수하면 끝나는거네? 앞으로 잘 부탁해, 오리온”
“누가 매수당해준대? 난 아버지랑 외숙 내외한테 거짓말할 생각없어.”
“원하는게 뭐야? 돈?”
“내가 블랙가의 후계자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지?”
오리온의 말에 에밀리가 “맞아 블랙가는 돈이 썩어나지.”라고 중얼거렸다. 듣기 싫은 말은 아닌지 오리온은 별 말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외사촌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쉰다.
“에밀리, 아브락사스한테 그렇게 정을 못 붙이겠어?”
“내가 그 자식한테 정을 왜 붙여!”
“부부가 될테니까”
오리온의 말에 에밀 리가 빽하고 소리쳤다.
“부부는 무슨!! 집요정이 요리 망치는 소리하네!!”
“이왕 결혼할거 좋게 생각해봐. 아브락사스 괜찮은 녀석이야.”
“그 바람둥이에 허세남이 뭐가 괜찮아!”
그 사이에 리브는 다 읽은 계획서를 다시 돌돌 말아서 품에 넣었다. 그리고 오리온을 잡아먹을 듯이 구는 에밀리를 잡아끌며 말했다. “에밀리, 난 괜찮으니까 말포이 선배랑 갔다와.” 에밀리는 입을 댓발 내밀며 투덜거렸다. “싫단 말이야. 난 그 녀석이 싫어.” 리브가 곤란한 듯 작게 웃으며 에밀리의 투정을 들어주는데 오리온이 쓱 다가와 리브에게 툭 말을 던졌다.
“브릴리언트, 앞으로 오리온이라고 불러도 좋아.”
투덜거리던 에밀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둘이 드디어 친해지는 거야?” 리브는 살짝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블랙이 지금 나한테 자기 이름 허락한거야? 사실 리브가 오리온과 친해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에밀리와 있으면서 자주 마주쳤으니까, 또 둘은 항상 수석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리브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그렇게 가깝지 않지만 멀지도 않은 어정쩡한 관계를 2년 넘게 유지해왔다. 블랙은 톰 리들의 추종자였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이지만 에밀리를 챙겨주는 것을 보면… 지금도 자신의 사촌인 에밀리를 걱정해서 아브락사스에게 정을 붙이라고 하는거겠지. 내가 에밀리와 친구인 이상 블랙과의 접점을 피할 수 없을터.
“넌 내 라이벌인데다가 리들 선배의 멘티니까 말이야.”
결국은 톰 리들 때문인건가, 누가 추종자 아니랄까봐. 이젠 뭐 상관없겠지. 앞으로 더욱더 자주보게 될테고… 결국 리브도 오리온에게 자신의 이름을 허락했다. 소녀가 특유의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리브라고 불러, 오리온”
*
멘토링 프로그램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멘토와 멘티, 1:1로 이루어지고 전교생이 참가하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일일이 관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10월 말, 멘토링 프로그램이 시작된지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멘토링 프로그램을 위해 만든 기숙사 공동 휴게실은 학생들의 또 다른 휴게실로 변질되었고 멘토링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학생은 거의 없어보였다. 래번클로 고학년 생들이 특히 이같은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들은 영리하게도 기숙사 공동 휴게실을 자기 기숙사 학생들 간의 스터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들에 직면한 교수들은 학년 말에 계획서와 보고서를 제출해야한다고 그들을 일깨워주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계획서랑 결과 보고서같은 건 그냥 그 때만 만나서 제출하면 되는거지. 그딴거보다 O.W.L.시험이 더 급해.”
리브와 리들 역시 번지르르한 계획서만 제출했을 뿐, 별 다른 만남을 갖고 있지 않았다. 리브도 리들에게 제대로 된 멘토링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기에 별 말 하지 않았다. 거기다 리브는 리들을 만나기가 더욱더 껄끄러웠다. 저번에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주제 넘었다. 그리고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했다. 리브는 부모님에 대해서 유독 감정적으로 변하는 자신이 불만스러웠다. 얼굴도 못 본 부모님인데 왜- 이래서 부모와 자식 간을 천륜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하는건가.
“공고 붙은거 봤어? 대박!”
“500갈레온이래!”
새롭게 붙은 공고로 학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장 큰 자기 발전을 보이는 팀들에게 상금이 수여된다는 것이었다. 심사 기준은 계획서와 보고서, 성적, 태도, 파트너간의 친밀감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채점과 직결된다고 적혀있었다. 교수들이 흐지부지 되어가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싸맨 계책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 것은 바로 상당한 액수의 상금이었다.
[우승팀 500갈레온, 준우승팀 300갈레온, 준준우승팀 100갈레온]
상금 액수에 학생들의 의욕이 불타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계획서를 성의없이 제출한 것에 땅을 치고 후회하며 다시 제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를 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은 멘토링 프로그램에 열의를 보이는 학생들을 보며 무척 흡족해했다. 그리고 원래 제출한 계획서를 돌려줄 수는 없지만—심사에 반영하겠다는 뜻이리라— 다시 제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선심을 베풀었다. 리브 역시 상금에 눈을 빛냈지만 자신의 멘토를 생각하자 고개를 저었다. 상금 안녕.
아니지! 어쩌면 그도 상금에 욕심을 낼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다. 리브의 예상은 맞아떨어져서 곧바로 그에게 반응이 왔다. 슬러그혼 교수의 방에서 열리는 민달팽이 클럽에서 그가 접촉을 해온 것이다.
“안녕, 브릴리언트”
“아,안녕하세요, 리들 선배님”
다행히 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리브를 대했다. 리브는 거기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만약 그가 그 문제를 걸고 넘어졌거나 무어라 한 소리했다면 정말로 난감했으리라. 감정적으로 변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아픈 몸으로 자신을 낳은 어머니께 감사하라니… 내가 뭣하러 그런 소리를… 그 날 리브는 감정적으로 굴었던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났다. 왜 그런 소리를- 뭣하러 내 어머니가 내 눈 앞에서 목을 맸다고, 나를 버리고 죽음을 택했다고 그런 소리를 한걸까, 왜 내 속내를 보인걸까, 그렇게 말한다고 그가 나를 이해할리는- 이해라니, 톰 리들에게 이해를 바라다니, 네가 정말 미쳤구나. 아무도 이해 못해. 어쨌든 리브는 그 일을 끄집어내지 않는 톰 리들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그 일을 언급했다면 정말로 견딜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리들은 리브를 아무도 없는 복도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운을 뗀다.
“이번에 새로 공고붙은 것은 봤겠지?”
리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들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입모양으로 ‘대답해’라는 말을 만들어낸다. 리브는 “네”라고 대답했다. 리들은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난 저 상금에 흥미가 있어.”
“멘토링 프로그램에 제대로 참여하실 생각이세요?”
리들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매력적인 미소를 만들어냈다. 정말이지 얼굴 하나는 잘생겼다니까? 마음도 얼굴처럼 곱게 쓰면 좋을텐데… 리브가 돌직구를 던졌다.
“대신 상금은 반반이에요.”
리브의 말에 리들은 그 엄청난 계획서는 자신이 만들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뭐야, 지가 상금을 더 먹겠다는거야? 리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멘토와 멘티의 상호 발전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멘토의 역량을 보는거야. 얼마나 멘티의 능력을 끌어올렸는가. 이게 관건이지. 그 정도 파악도 안돼?”
내가 너의 능력을 향상 시켜줄테니 상금 반반은 어림도 없다는 뜻이렷다. 잘못하면 상금을 저 자식이 다 먹어버릴지도? 그런 생각에 도달하자 리브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상금을 쌩으로 네 놈한테 뺏길 수는 없지.
“하지만 멘티가 멘토의 역량에 따라주지 못하면 전부 소용없는 일이죠. 리들 선배님이야 말로 여기까지는 생각을 못하셨나봐요.”
리브의 말은 즉, ‘내가 네 하라는 대로 안하면 어림도 없어. 까딱하면 멘토링 전부 망쳐버릴 수도 있다’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리들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눈썹을 치켜 올린다. 이 영악한 계집애…
“그럼 상금 얘기는 나중에 하고… 계획서 읽어봤지?”
“계획서 새로 제출해야할 것 같은데 조만간 기숙사 공동 휴게-”
“새로 제출하다니? 그랬다가는 감점이야. 그런 일 없어.”
리들의 말에 리브가 눈꺼풀을 깜박이다가 입을 쩌억 벌렸다. 그걸 그대로 다한다고?
“계획서는 완벽해. 너 그 정도도 못 따라오는거 아니지?”
“하지만 1학년 과정부터 하는 건 무리수에요!”
“무리수? 그런게 어딨어. 내가 한다면 하는거야.”
이 자식이 상금에 환장했나… 하긴 상당한 액수이기는 했다. 자신도 욕심이 났으니
“우선 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부터 확인할거야. 내일 저녁에 시간 비워놔.”
이럴 때는 내일 저녁에 시간 있냐고 물어 보는게 예의 아니야? 리브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내일 시간 안되는데요!”
“왜 안돼.”
“저 징계받는 중이에요. 도서관에서 책 정리해야해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씩 웃었다. 사실 책 정리는 도서관 닫기 두 시간 전부터 한다. 하지만 그걸 눈 앞의 톰 리들이 알리는 만무했다. 징계 받는다는데 어쩔거야? 리브의 말에 이제는 리들이 씩 웃으며 말한다.
“그거 9시부터 하는거잖아. 그 전에 끝내주면 되는거지?”
어,어떻게 알았지!
“매일 매일, 9시부터 11시까지, 규칙적인 징계던데, 그거 곧 끝나지 아마?”
10월 한 달 동안이니까 며칠 후면 끝이 난다. 리브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들은 뭐가 맘에 안드는지 눈썹을 치켜올린다.
“또 대답 안하지.”
“…네, 곧 끝나요.”
“내일 저녁 6시에 마법의 약 교실로 와.”
*
“재수없는 차 찌꺼기!”
점술 수업을 듣고온 '에밀리‘가 씩씩거리며 교과서를 쾅하고 내려놓았다. 방금 산술점 수업을 듣고 온 리브는 점술을 듣는 동급생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자그맣게 물었다. 유진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교수님이 에밀리의 찻잎을 해석 하셨거든. 그게 맘에 안들어서 그래.” 무슨 예언이길래? 리브의 궁금증은 당사자에 의해 금방 해결되었다.
“글쎄, 내가 호그스미드에 백금발을 가진 남자랑 가게될 예정이라는 거야!”
백금발이면 말포이…? 리브 역시 유진처럼 작게 킬킬거렸다. 왜 에밀리가 화를 내는지 알만했다.
“나도 차라리 리브 너처럼 산술점을 듣는건데!”
에밀리는 저녁을 먹는 내내 점술 과목에 대해 투덜거렸다. 리브는 전생에 읽었던 해리포터 책 탓인지 점술에 대해서는 도저히 신뢰성이 가지 않았다. 물론 현재의 점술교수는 트릴로니가 아니였지만… 어쨌든 리브는 산술점을 택했다. 그리고 리브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산술점은 수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점술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이었다. 친구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하던 리브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브, 어디가?”
“6시에 멘토링이 있어.”
톰 리들을 보러가는 거냐며 여학생들이 리브를 탄성을 뱉었다. 리브는 작게 웃으며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톰 리들이 그렇게 좋을까… 하긴 얼굴 잘생겼지, 성적 뛰어나지, 재능도 탁월하지… 그럼 뭐해, 성격이 그 따위인데. 문제는 그 성격을 나 밖에 모른다는 거지… 연회장을 나온 리브는 그 리들과 마주쳤다. 짤막하게 인사를 나눈 둘은 나란히 마법의 약 교실이 있는 지하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리들에게 아는 척을 하거나 인사를 건내온다. 리들 역시 그들에게 호의적으로 화답한다.
마법의 약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리들은 리브에게 양피지 꾸러미를 휙 던져주었다. 간신히 받아낸 리브는 불만스러운듯 그를 살짝 흘기다가 그 것들을 펴보았다. 뭐야 이게?
“간단한 이론 테스트야, 풀어.”
사각사각 리브가 깃펜을 놀리는 소리만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이론은 자신있다. 그런데 뒤로 넘어갈수록 문제 푸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이게 무슨 간단한 이론 테스트야! 헐, 이게 뭐야? 이건 교과서에 없는 내용인데…
“리들 선배님, 이건 교과서에 없는 내용인데요.”
"일단 풀리는 데까지 풀어.“
리브는 문제를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하나도 못풀겠다. 이런 것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거머리즙의 역할? 몸을 오그라들게하는 마법약에 들어가는 건 알지만 그 역할까지는… 거기다 이건 아직 배우지도 않았다고! 3학년 교과서를 전부 외워두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꼼짝없이 전멸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리들은 리브가 보고있는 시험지들을 빼갔다.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해.”
“잠깐만요. 아직-”
“안푼게 아니라 못푸는 문제들이잖아. 안그래?”
리브는 불만스러운 듯 깃펜을 탁 소리가 나도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험지를 훑어볼 뿐이다. 또박또박 정갈한 글씨체가 양피지 위를 가득 수놓고 있었다. 리브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리들의 표정을 읽으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지독한 포커페이스에 싸늘한 흑안. 이게 바로 그의 본모습이리라. 그런데 정말 잘생겼다. 오리온 블랙보다 더 잘생긴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이었다. 얼굴을 보다보면 여자애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잘생겼으니까. 그냥 잘생긴 것도 아니고 기가 막힐 정도로 잘생겼다. 몇 년만 더 지나면 장난 아니겠다. 물론 지금도 장난 아니지만… 그럼 뭐해, 인성이 개판인데. 정말 신은 공평하다. 톰 리들에게 모든 것을 줬지만 인간성은 조금도 주지 않았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야 신이 공평하…헉”
리브는 그 순간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본심이 새어나왔다. 미쳤어, 무슨 소리를! 리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리브를 응시한다. “하려던 말 계속해봐.” 리브는 여전히 작은 손으로 입술을 막은 채였다. 그리고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 “말 해.” 이어지는 강압적인 리들의 목소리. 그리고 또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대는 리브. 소녀와 청년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리브는 꿈뻑꿈뻑 눈망울을 깜박이며 의자를 뒤로 끌었지만 거리는 어김없이 가까워진다.
“말 안하지?”
“벼,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데 왜 말을 못해?”
“……”
“화 안낼테니까 말해봐.”
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목소리가 제법 부드럽다. 그리고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매력적인 미소를 만들어낸다. 리브는 고개를 푹 숙이며 꾹 닫혀있던 입술을 열었다.
“신이 공평하다고요.”
“……?”
“리들 선배님을 보니까 신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왜?”
리들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리브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툭 뱉어냈다.
“선배님은 모든걸 가졌지만 하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잖아요.”
“하아? 그게-”
“그게 뭔지는 선배님이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씩 웃었다. 네 인간성 말이야. 곧 저 잘생긴 얼굴이 썩어 들어가겠구나. 지도 양심이 있으면 알겠지. 그런데 나 이러다가 또 뺨 맞는거 아니야? 하지만 리들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말에 오히려 리브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집안이나 재력을 말하는건가?”
이 인간, 아예 자각이 없어… 리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아, 됐어요. 그보다 시험 결과나 알려주세요.”
리들은 양피지를 쭉 펼치더니 책상 위에 올려진 리브의 깃펜을 들어 틀린 부분을 체크해주었다. 푼 것은 대부분 맞았다. 리들은 리브가 교과서 외의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 책 많이 읽던데 마법약 관련 서적은 하나도 안 읽나보지?”
리브에게 마법약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미쳤다고 따로 시간을 내서 읽어?
“지금까지는 교과서나 수업 필기만으로 필기 만점을 받았을지 몰라도 고학년이 되면 어림도 없어.”
“작문숙제 할 때 참고용으로 읽는 것도 있어요.”
“그거 뿐이잖아.”
리들의 대꾸에 리브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리브는 마법약 과목을 싫어했다. 제조에 무척이나 서툴렀고 못하는 과목이다 보니 흥미도 없어졌다. 다른 과목들은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지만—특히 변신술— 마법의 약은 손도 대지 않았다. 재미 없으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사실 시험 기간마다 리브는 마법의 약 과목 때문에 항상 골머리를 앓았다. 이제 리들은 리브에게 특정 마법 약을 제조해보라고 했다. 친절하게 레시피까지 적어준다. 리들의 수려한 글씨체가 칠판을 가득 수놓기 시작했다.
*
리브는 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법약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끓고 있는 푸른빛의 마법약을 보며 리브는 이게 맞나 고민해야만 했다. 중간에 약이 마구잡이로 튀는 일도 없었고 그럭저럭 잘된 것 같은데… 그런데 리들의 표정을 보니 심상치 않다.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려는 리브는 동작을 멈췄다. “그만”이라는 리들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색깔이 나와?”
리브가 사파이어 눈동자를 깜박였다. 아, 망했구나.
“그 다음 과정 말해봐.”
“…거머리즙을 넣어야 해요.”
“너, 거기서 거머리즙 넣었으면 폭발했어.”
그 말에 리브가 약이 끓고 있는 냄비에서 황급히 떨어졌다. 리들은 휘적휘적 다가와 불을 꺼버렸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하나 까발려준다.
“재료를 그렇게 뭉텅뭉텅 썰면 제대로 녹아들지를 않잖아. 그리고 쐐기풀은 왜 그거 밖에 안넣었어? 앞에 넣은 재료랑 상쇄되도록 양을 맞춰서 넣어야지. 그건 기본이잖아. 그리고 너 데이지 뿌리 넣는거 깜박해서 나중에 넣었지? 그 순서가 바뀌어서……”
원래 지금쯤이면 오렌지색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로 리들의 말은 끝이 났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래도 기초가 개판이 아니냐고. 그리고 이어지는 제조 실력에 대한 악평과 조롱.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리브가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건 한 번도 안 만들어 본거란 말이에요!”
“이 약은 3학년 수준이야. 그렇게 잘났으면 어디 한 번 배워본거 만들어 봐.”
“……”
“자신있게 만들 수 있는 마법약 하나도 없지?”
리들은 혀를 끌끌 찼다. 리브는 꿀먹은 벙어리가 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부 사실이니까.
“제조 연습도 안하지?”
리브는 뜨끔했다. 연습은… 아아, 안한다. 할 리가 없잖아. 재미없는걸. 싫어. 난 재능도 없어. 타 과목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도통 마법약에는 재능이 없는 리브였다.
“계속 대답 안하지.”
“…선배님 말씀 전부 맞으니까 대답하라고 하실 필요도 없어요.”
리브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리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목소리는 낮았다.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말하든 똑바로 대답해.”
“……”
“고갯짓 허용 안해,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확실하게 대답하란 말이야, 알겠어?”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차디찼는데 정말로 거슬리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도 그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하면 그때마다 대답을 요구했다. 리들은 항상 그 것을 거슬려했다. 리브는 순순히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시간을 보니 아홉시가 되어간다. 도서관에 가야할 시간이었다. 리브가 시계를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리들이 다음 약속을 잡았다. 물론 일방적으로 그 날에 시간을 비우라는 통보였지만.
“그리고 그 시험지, 틀린 문제, 모르는 문제 전부 알아서 채워와.”
“네?”
“1주일 줄게.”
뒷정리를 하던 리브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리들을 휙 돌아보았다. 다짜고짜 1주일 줄테니 그 문제들을 다 풀어오라고?
“리들 선배님 잠깐만요, 교과서에도 없는 내용을 제가 무슨 재주로 채워요?”
“너 그 정도 능력도 안돼?”
“아니-”
무어라 말하려는 리브의 말을 끊고 리들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내가 그 방법까지 하나하나 짚어줘야 해? 네가 1학년이야?”
그렇게 말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리브는 얄미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와, 약오르다. 정말 약올라! 어쩜 인간이 저렇게 얄미울 수가 있지? 그리고 리들의 말은 정점을 찍었다.
“블랙이 너를 왜 못이기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이런게 수석이라니… 올해 3학년 애들이 전체적으로 띨띨한가?”
리브의 손에 있던 양피지가 처참하게 구겨졌다.
============================ 작품 후기 ============================
알린님 예쁜 그림 감사합니다^^
* 드디어 오리온이랑 친구 먹은 리브
* 리브도 리들을 잘생겼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리브도 여자니까요ㅋㅋ 기가 막힐 정도로 잘생긴 리들... 하지만 본성격도 기가 막히다는게 함정ㅋㅋㅋ
* 리들은 여전히 리브의 속을 긁습니다. 근데 리브가 마법약 못하는건 사실이에요..ㅋㅋㅋㅋㅋ필기 만점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음... 리브를 무척이나 예뻐하는 슬러그혼도 상당히 난색을 표합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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