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8화 (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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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경계 혹은 관심

* 이번 편은 후기를 꼭 읽어주세요.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리들과 나기니가 방을 나가고 리브는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나에게 송곳니를 드러냈다. 지금이 마법을 쓸 수 없는 방학이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호그와트였다면 주문을 쐈을지도 모른다. 배로 갚아주었으리라.

톰 리들을 건드린 자는 후환이 좋지 못했다. 호그와트에서도 종종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누군가의 애완동물이 없어지거나 하는 등 고약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범인의 꼬리를 잡지는 못했다. 리브는 그게 리들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심증뿐이었지만 말이다.

지금 리브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붉은 뺨. 이제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확 느껴지는 뺨의 고통에 리브는 얼굴을 찡그렸다. 무시무시한 얼굴로, 엄청난 힘으로 내 뺨을 내리쳤다. 그 때를 생각하니 리브는 저절로 몸이 떨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흑요석 같은 새까만 눈동자가 나에게 적의를 담고 있었다. 리브는 심호흡을 했지만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뺨 한 대가 경고라면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그는 볼드모트지. 내가 잘못했다. 그를 자극해서는 안됐는데… 어리석은 짓을 했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야 했다.

“윽, 아파….”

리브는 부어오른 왼쪽 뺨이 화끈거려서 왼 손으로 감싸쥐고 있었다. 손을 떼고 거울을 보니 정말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나쁜 자식. 이가 부득 갈렸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아까 그에게 쏘아붙인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무모한 용기가 치솟아서 따진걸까 모르겠다.

[네가 한 행동의 대가야.]

[나기니를 위협한 것만으로도 나에게 맞을 이유는 충분해.]

[네가 만약 정말 그녀를 공격했다면 뺨 한 대로 끝나지는 않았을거야.]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떠오르자 또다시 몸이 절로 떨려왔다. 자신의 것을 건드린 대가라고 했다. 나기니를 위협한 것만으로도 맞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했다. 리브는 이제 나기니가 자신을 더 이상 도발하지 않고 도망갔던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어쩌면 뺨 한 대로 끝난건 정말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래, 잊어버리자.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볼드모트를 상대로 복수전이라도 벌일거야?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게 좋아. 그래도 화가나는건 화가 나는거다. 태어나서 처음 맞은 뺨은 무척 아프고 굴욕적이었다.

내 부모는 왜 나를 버려서, 왜 난 고아원에서 자라고, 뱀한테 시달리고, 이 꼴을 당해야하는거야. 또 다시 떠오르는 어머니의 비극, 아버지의 비정함, 날 노려보던 톰 리들, 그에 담긴 적의, 그리고 뺨의 아픔. 서러움에 리브는 엉엉 울고싶은 지경이었지만 간신히 울음을 참아냈다.

울면 안 돼. 그럼 정말로 지는거야. 내가 비록 너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을지언정, 너에게 당했던 고아원 애들처럼 울지는 않을거야. 절대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테다. 이건 내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울어도 달래줄 사람 하나 없어. 자꾸 울면 버릇 돼. 그러니까 울지마. 리브는 입술을 깨물고 또 깨물며 눈물을 참아냈다.

한참을 우두커니 방에서 울음을 삼켜내던 리브는 부어오른 뺨을 가라앉히기 위해 부엌으로 내려갔다. 얼음찜질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손톱자국 같은 것은 없었다.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게 그나마 다행일까.

비닐봉지에 얼음을 담고 물을 쪼르르 넣던 리브는 방금 부엌으로 들어온 리들과 마주쳤다. 리브의 몸이 파삭파삭 굳어버렸다.

소년의 흑안과 소녀의 벽안이 부딪혔다. 소년은 그렇게 소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버렸다. 얼굴 표정을 보니 무시무시했다. 아직도 자신에게 화가 난걸까? 아까 뺨 한 대로 끝낸다고 했는데 설마 그게 아닌걸까? 소녀가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하지만 리들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부엌을 나가버렸다.

*

다음 날 나기니는 오지 않았다. 그 뱀도 양심이란게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내가 지 주인한테 뺨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긴 아는 모양이지. 평소라면 얘가 왜 안오나 궁금했을지도 모르지만 리브는 나기니가 괘씸했다.

감히 그딴 거짓말을 해서 날 곤란에 빠뜨려? 리브는 내일 나기니가 온다고 해도 화풀이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네 주인한테 뺨 맞은걸로 퉁 친거야.

리브는 나기니가 리들에게 거짓말을 한 죄값을 톡톡히 치루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나기니는 오지 않았다. 얘가 이럴 뱀이 아닌데? 리브가 알기로 나기니는 무척 수다스러웠다. 잘 생각해보니 그 톰 리들이 나기니의 수다를 전부 들어줄 리는 만무했다.

[톰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

그럴만했다. 나기니에게 자신은 수다를 풀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파셀통그를 하는 마법사는 흔치 않으니까. 아마도 호그와트에서 나와 톰 리들 뿐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파셀통그를 쓸 수 있는걸까? 그처럼 슬리데린의 후손인걸까? 하지만 외가인 라이트(Wright) 가문은 살라자르 슬리데린과 전혀 무관한 가문이었다. 톰 리들의 외가인 곤트 가문이라면 또 몰라. 그러면 ‘브릴리언트(Brilliant) 가문’에 무언가 있는걸까?

하지만 어머니에 대해 조사하면서 알게된 순수혈통 가문 중에는 ‘브릴리언트’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아버지는 혼혈이거나 머글태생 혹은 머글임이 분명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또 들끓는 증오심.

처음에는 사랑의 묘약을 생각했다. 톰 리들이 그렇게 태어난 아이니까 혹시 나도 그럴까하고. 하지만 결론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니아 라이트는 사랑의 묘약을 쓸 마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슬러그혼 교수는 가출이 아니라 ‘사랑의 도피’라고 했다.

순수혈통 가문의 영애가 사랑의 도피를 했다. 그게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그 전부터 집안에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고 공표를 했을 것이다. 집안에서는 외동딸이 약혼자도, 순수혈통도 아닌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니 기함을 했을테고… 대강의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끈질긴 집안의 반대에 못이겨 결국 사랑의 도피를 했다. 그럼 자신의 부모님은 최소한 사랑하는 사이었다는 건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렇게 절절하게 사랑하는 사이면서… 어떻게… 생각하면 할수록 리브는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 자랄 뿐이었다.

사실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남녀가 마음이 변심하는 일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사랑의 유통기간은 2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은 집안의 반대까지 물리치고 사랑의 도피를 할 정도로 서로를 절절하게 사랑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집안과 부모님을 등졌다. 그런데 자신의 아버지는 임신한 어머니를 내팽개치고 집을 나갔다.

그게 사람이야?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짓 못해. 어머니가 끔찍한 잘못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대체 그런게 어딨어? 어머니가 부정(不貞)한 여자이기라도 했어? 자신이 교수들에게 들은 지니아 라이트는 그런 마녀가 절대 아니었다. 집안에서 점 지어준 약혼자가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순간적인 감정에 집을 나갔다고 해도 결국은 돌아와야 하는거 아니야? 돌아오지 않았어.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래서 내 어머니는 나를 낳고… 내 앞에서 목을 매고… 그렇게 죽어버렸지. 아버지 하나만을 보고 집을 나온 그녀가 얼마나 절망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왜 그렇게 죽어버린거야? 나를 생각해서 살아갈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거야?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이 소중했던거야? 아니면 자신을 버린 남자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혐오스러워진 거야? 왜!

사랑이란 참 덧없구나. 그토록 절절하게 사랑한다고 해도 한 순간에 변해버린다.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아내를 버릴 정도로, 자신의 아이를 버릴 정도로. 사랑이란거 별 거 아니구나.

자신이 전생에서 읽었던 해리포터 책에서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이었다. 덤블도어는 사랑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리고 해리는 부모님의 희생과 어머니의 사랑으로 살아남은 아이였고 결국 볼드모트를 물리쳤다. 하지만 나는 해리와 다르다. 나는 사랑 때문에 버림받은 아이였다. 아버지는 사랑이 식어서 나와 어머니를 버렸고, 어머니는 사랑을 얻지 못해서 나를 버렸으니까.

리브는 왜 그토록 볼드모트가 사랑에 코웃음 쳤는지 알 것만 같았다. 사랑의 묘약으로 태어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 사랑을 할 수 있을리가. 사랑을 받아봤어야 뭘 알지. 부모님의 비극에 대해 알면 나라도 부정적인 감정만 갖게 될거야. 지금 자신이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와 달라. 그는 너무 비뚤어졌고 사악해. 난 그렇지 않아. 나는 최소한 시시비비(是是非非)가 뭔 지 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그와 다르다.

하지만 리브 역시 사랑에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영원한 것은 없어. 사랑은 특히 그래. 그런 사랑이라면 애초에 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그리고 리브는 궁금해졌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일지. 아름답고 뛰어난 마녀로 정평난 자신의 어머니를 목매게 만든 ‘그’ 브릴리언트가 궁금해졌다.

*

[……리브, 사실 나 말이야. 큰일났어. 아무래도 약혼을 하게 될 것 같아.]

에밀리의 편지를 읽던 리브는 순간 마시고 있던 물을 뿜을 뻔했다.

“뭐,뭐? 약혼?”

현재 8월 초, 나기니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리브는 지금 에밀리가 오랜만에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 동안 편지 못해서 미안해, 사실 좀 일이 있었어.’라고 시작한 편지는 엄청난 일들을 담고 있었다.

[…난 몰랐는데 몇 년 전부터 내 정혼자를 물색하고 있었대. 물론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쓰지는 않았지. 몇 몇 집안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말씀들이 없으시길래 흐지부지 끝난 줄 알았어. 이건 순수혈통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야. 그저 어르신들끼리 ‘우리 애랑 네 애랑 결혼시키는 게 어때?’라고 우스갯소리로 하기도 하는 거니까. 난 그렇게 생각했어. 난 겨우 열세 살이니까! 물론 나도 언젠가는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벌써부터 약혼이라니?]

리브는 그제서야 새삼 에밀리가 순수혈통 가문의 차녀라는 사실이 와 닿았다. 맥밀란 가문은 상당한 재력 가문이었다. 대대로 후플푸프를 배출하는 가문답게 좋은 일도 많이 했고, 그래서인지 덕망 있는 집안이었다. 이런 집안도 정략혼을 하는구나. 에밀리는 흥분하면서 썼는지 필체가 상당히 휘갈겨있었다. 편지의 양도 나기니의 수다만큼이나 상당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내용도 담겨있었다.

[이게 다 악튜러스(Arcturus) 고모부 때문이야! 고모랑 결혼한 블랙가 어르신인데 내 약혼을 주도하셨어. 순수혈통 가문의 영애는 집안의 위세를 드높이기 위해 정략혼을 하는게 의무래! 누굴 결혼하는 기계로 보고 있어! 그런데 할 말 없는게 멜라니아(Melania) 고모도 악튜러스 고모부랑 정략혼을 하셨으니까…. 정말이지 악튜러스 고모부는 극단적인 순수혈통 주의자야. 아빠랑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셔서 한 때 엄청 싸우시고 편지 한 통도 안하셨어. 이유가 뭔지 알아? 오빠가 머글태생 애들이랑 어울리는데 왜 제재를 안 하냐는 거였어. 고모 덕분에 간신히 화해를 했는데 가끔 오빠한테 친구는 가려 사귀어야 한다고 하고 나한테도 잔소리를 해. 이럴 때면 짜증나 죽겠어. 물론 용돈을 많이 주시는 것은 정말 감사하지만! 블랙 가문의 주인답게 통이 정말 크셔! 엄마가 말하기를 블랙가의 재산은 평생 펑펑 쓰고도 대대손손 먹고 살거래. 그래서 걔네 집안 애들이 사치가 심한가봐. 아, 걔네한테는 사치가 아니라 당연하거겠다. 돈이 많으니까! 아, 이야기가 샜네. 어쨌든 고모부가 내 약혼을 주선하셨어. 아빠랑 그렇게 싸우시면서도 고모는 좋아하시나봐. 나랑 오빠한테 잔소리하시는 것도 조카니까 그런거고… 어쨌든 열심히 내 약혼 상대를 물색하셨어. 그래서 가장 처음에 거론된게 바로 블랙가의 후계자였지. 그러니까 악튜러스 고모부의 아들 말이야. 너도 알거야, 슬리데린의 ‘오리온 블랙(Orion Black)’이라고… 우리랑 같은 학년이야. 저번에 본 적 있지?]

정말 근친이 장난 아니구나. 고모부의 아들이랑? 오리온 블랙(Orion Black)이라면 알고있다. 민달팽이 클럽에서 몇 번 본적 있으니까. 에밀리는 순수혈통에 재력가문의 딸이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민달팽이 클럽에 초대받은 귀빈이었다. 사실 슬러그혼 교수뿐만 아니라 에밀리도 나에게 같이 가자고 재촉을 했었지.

어쨌든 오리온 블랙은 에밀리와 친밀한 사이였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이라서 에밀리와 오리온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주로 에밀리가 말하고 있었다. 오리온 블랙은 흑발에 은회안을 가진 남학생이었는데 상당히 잘생긴 외모로 또래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거기다가 신사적인 매너까지 갖췄는데 차가운 성격이 무슨 상관일까.

내가 슬리데린인 오리온 블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에밀리가 떠들어대서도 있지만 저 녀석이 바로 내 뒤였으니까. 그러니까 성적 말이다. 슬리데린 수석. 그러나 학년 차석. 그리고… 톰 리들을 무척이나 잘 따르는 남학생.

[그런 차갑고 무뚝뚝한 녀석이랑 약혼이라니! 평생을 우울함에 파묻혀서 살아야 할거야. 난 필사적으로 반대했어. 그런데 웃긴데 뭔지 알아? 나중에 알았는데 안 그래도 그 자식도 나를 거부하고 있었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따지니까 글쎄 뭐라고 한지알아? 나랑 결혼하느니 차라리 발부르가 블랙(Walburga Black)이 낫겠대. 그게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 나빠. 그래서 걔랑 한 바탕 하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어. 그런데 일으켜 세워주고 부축해줘서 착한 내가 용서해줬어.]

용서해주든 말든 별로 신경도 안 쓸거 같은데.

[악튜러스 고모부는 안타까워했어. 오리온이 무뚝뚝해서 내가 그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거든. 하지만 그 녀석 옆에 있었다가는 나까지 어두워질 거야. 어쨌든 그 다음으로 지목된게 샤를루스 포터(Charlus Potter)였어. 포터 가문의 후계자야. 걔는 내가 말 안 해도 알거야. 호그와트에서도 유명하잖아. 물론 악튜러스 고모부가 아닌 우리 아빠가 언급하셨어. 당연히 악튜러스 고모부가 쌍수를 들고 반대하셨지. 걔네 집이 돈이 많기는 해도 걔는 답이 안 나오는 악동이잖아. 순수혈통 사이에서도 유명해. 어렸을 때 나도 걔 장난에 당한 적이 있다니까. 나는 샤를루스를 제해주신 악튜러스 고모부에게 감사했어. 그런데 안 그래도 걔는 블랙가의 방계 막내딸이랑 혼담이 오가고 있대. 물론 나는 샤를루스가 가만히 그걸 보고만 있을지 모르겠어.]

샤를루스 포터(Charlus Potter), 나와 같은 학년의 그리핀도르 남학생. 헝클어진 흑발에 헤이즐넛 눈동자를 가진 장난꾸러기 악동. 호그와트에서 자주 사고를 치곤했다. 민달팽이 클럽을 장난의 도가니로 만들어서 참다못한 슬러그혼 교수에게 퇴출당하기까지 했지.

그래서 결국 에밀리의 약혼자가 누구라는 거지? 누구는 고모부가 안 된다고 하고, 누구는 엄마가 안 된다고 하고, 누구는 고모가 안 된다고 하고… 에밀리의 편지를 쭉쭉 읽어가는 리브는 벽안을 깜박였다.

[…………어쨌든 겨우 정해진게 바로 ‘아브락사스 말포이(Abraxas Malfoy)’야. 난 오리온 다음으로 많은 애들이 언급되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어. 그렇게 집안 어르신들이 타협하고 머리를 짜매서 정한게 바로 아브락사스 말포이래. 걔네 집안이 재력가문이라서 우리 가문이랑 결합하게 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 하시는걸 들었어. 그런데 문제는 난 그가 누군지 잘 몰라. 친분이 없거든. 물론 민달팽이 클럽에서 몇 번 본 것 같기는 해. 말포이 가문 특유의 백금발은 유명하니까. 하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눠본 적은 없어. 넌 슬리데린 애들이랑 하나도 안 친하니까 이렇게 말해도 알까 모르겠다. 아하, 이렇게 말하면 알겠다. 그 있잖아. 슬리데린 ‘톰 리들’의 가장 친한 친구!]

아아, 안다. 톰 리들 옆에 딱 붙어 다니는 그 백금발 남학생! 그 사람이랑 에밀리랑 약혼한다고? 대박.

[조만간 정식으로 상견례를 하기로 했어. 약혼식을 언제 할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랑 말포이 부부와 이야기는 잘 끝난 모양이야. 아무래도 나 정말 꼼짝없이 걔랑 약혼하게 될 것 같아…. 누군지도 모르는 애랑 약혼이라니. 차라리 오리온이 낫겠어. 이게 뭐야. 난 연애도 한 번 못해봤는데! 일단 엄마, 아빠한테는 알겠다고 했는데 사실 나 약혼하기 싫어. 무서워. 난 이제 겨우 열세 살인데! 리브, 나 이제 어떡하지? 정말로 이대로 꼼짝없이 끌려가듯 약혼해야하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싫다고 할걸. 하지만 부모님이랑 집안 어르신들이 날 위해서 열심히 고르고 또 골라준 신랑감인데 그걸 내가 걷어찰 수는 없었어. 그리고 사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일이었고… 휴, 나 정말 어떡하지. 리브, 나 어떡해? 똑똑한 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나는 너처럼 똑똑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건 아는데… 리브, 나 힘들어.]

울면서 쓴 모양인지 눈물 자국으로 조금 편지가 조금 번져있었다. 리브는 에밀리가 걱정되었다. 사실 순수혈통 집안의 일원들은 전부 이런 식이었다. 마법세계의 귀족이나 다름없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일면이 밝지만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은 리브는 양피지를 꺼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위로의 답장을 써내려갔다. 내가 에밀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리브는 곰곰이 생각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에밀리, 그동안 답장이 없어서 걱정했어………… 부모님께 솔직히 말씀 드려보는 건 어때?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려. 알지도 못하는 남자랑 덥석 약혼이라니 나라도 당황스럽고 무서울거야………… 너희 부모님은 너를 사랑하시니까 이해해주실거야………… 당장 약혼을 깨자는게 아니라 상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단 식으로 말씀드려. 그럼 적어도 약혼을 보류하거나 미룰 수는 있을거야. 그리고 상대방도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 일테니까 아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몇 번 만나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깽판을 쳐. 네가 얘기 해줬던 여섯 살의 샤를루스 포터가 프레웨트 가문의 여자애한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물론 포터처럼 극단적으로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무례하게 굴거나 예의없이 굴면 그 쪽에서 알아서 널 정리해줄거야. 물론 네 이미지가 상하는 것은 감수해야 해. 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 당분간 너한테 혼담은 들어오지 않을거야. 그 당분간이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긴 시간동안 편지를 작성한 리브는 부엉이 골드에게 두툼한 편지를 묶어준 후 그대로 날려보냈다. 부디 잘 해결되어야 할텐데… 이왕이면 아브락사스 말포이라는 남학생이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그’ 톰 리들의 친구이며 흣 날에는 데스이터(Death Eater, 죽음을 먹는 자)가 될 인물이 아니던가. 이왕이면 에밀리가 깽판을 쳐서 약혼이 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리브였다.

*

나기니가 돌아온 것은 그 문제의 날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8월 중순, 방학 숙제를 끝마치고 에밀리의 답장이 왜 안오나 걱정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리브였다. 나기니의 존재를 잊고 있던 리브는 새하얀 뱀이 꼬물꼬물 방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라 펄쩍 뛸 뻔했다. 역시 뱀은 무서웠다.

[리브….]

새하얀 뱀은 풀죽은 얼굴로 쉭쉭거리며 리브에게로 다가왔다. 리브는 그저 나기니를 응시할 뿐이었다. 어디 뭐라고 말하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소녀의 눈동자가 그 때처럼 차갑지 않다는 것에 희망을 걸며 나기니가 쉭쉭거렸다.

[리브, 그 날은 미안해….]

리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 태도에 나기니는 더 풀이 죽었다.

[정말 정말 미안해. 난 톰이 너를 때릴 줄은 몰랐어. 그저 나한테 했듯이 그저 화를 낼 줄만 알았단 말야….]

나기니가 리브의 눈치를 보며 쉭쉭거렸다. 현재 리브의 뺨은 깨끗하게 나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기니가 괘씸한건 괘씸한 것이었다. 한참동안 미안하다고 쉭쉭거리는 나기니의 말을 듣기만 하던 리브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미안하면 왜 지금에서야 나타났니? 바로 그 다음 날에 와서 사과해야 하는거 아니야?]

[나도 그러고 싶었어! 하지만 톰이 나한테 벌을 줬단 말야. 한 달 동안 방 안에만 있으라고 했어.]

[벌이라고?]

리브의 시선이 다시 나기니에게로 향했다. 리브의 푸른 벽안에는 의아함이 서려있었다.

[응, 내가 톰한테 거짓말해서.. 그가 몹시 화를 냈어.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아, 그 날 그렇게 얼굴이 흉흉했던건 비단 나 때문만은 아니였던 모양이었다. 톰에게 혼났다고 이야기하는 나기니의 얼굴은 몹시 어두웠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기까지 한다. 대체 이 어린 뱀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내 뺨을 때렸는데 설마 더한 짓도 못할까. 그래도 그는 나기니를 아끼잖아. 누가 볼드모트 아니랄까봐. 자기 부하들도 고문하고 그러더니… 리브는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너를 ‘학대’했니?]

[‘학대’가 뭐야?]

[그러니까 너에게 폭력을 썼거나 가혹한 행위를 했냐는 말이야. 예를 들어서 때린다거나 고통을 준다거나….]

그렇게 물으며 리브는 방문을 닫았다. 나기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톰은 나를 학대하지 않아. 그는 나에게 잘해줘. 한 번도 그런 짓을 한 적 없었어.]

[‘없었어’라는 것은 그 날은 했다는 이야기야?]

[…난 말 못해. 톰이 싫어할거야.]

그렇게 말하는 나기니의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듯 했다.

[난 톰한테 겨우 용서받을 수 있었어. 다시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거야.]

[그래, 거짓말은 나쁜거야.]

[그러니까 리브도 더 이상 묻지말고 나를 용서해 줘.]

이건 또 무슨 논리야. 리브는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결국 소녀는 나기니를 용서했다. 자신의 주인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룬 모양인데 나까지 잔인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와 달라. 똑같은 부모를 뒀다고 해도 다르다고. 그리고 나기니는 그 날 방에서 나가기 전에 자신에게 사과하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주인에게 끌려 나갔지만.

나기니는 다시 돌아온 첫 날, 평소와는 달리 말이 줄어서 리브를 흡족하게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꼬물꼬물 리브의 방에 들어온 나기니는 평소와 같은 태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수다를 떨어 대서 리브를 또다시 질리게 만들었다. 네가 그럼 그렇지….

<경계 혹은 관심> 마침.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팬아트 그려주신 혈월사화님 제 사탕을 받으세요♥

* 전편의 독자님들 반응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는 '착한 리브가 리들한테 개기다니!'라고 하실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들 리들 욕하셬ㅋㅋㅋㅋㅋㅋㅋ나기니가 아니라 리들폭풍안티네요ㅋㅋㅋ톰레기, 거시기에 불꽃싸다구 날려달라는 코멘트보고 저 빵터졌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리브가 너무 바보같다, 너무 쫀다, 둘이 굳이 엮어야하느냐 등등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꽤 있으셔서 나름의 해명(?)을 할까해요.

우선 저는 전편의 싸닥션 사건에 대해서 다들 나기니의 폭풍안티를 예상했어요. 사실 원흉은 거짓말한 나기니이니까요. 그리고 그 때는 리들도, 리브도 예민한 상태였죠. 저는 리들이 뭔 짓을 해도 역시 볼드모트.. 이렇게 넘어가실줄^^;;; 그런뎈ㅋㅋㅋㅋ다들 분노하심ㅋㅋㅋ리브한테 크루시오라도 날리는 날에는 리들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겠네욬ㅋㅋㅋㅋㅋㅋㅋ현재 리들은 조금도 교화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려드릴게요.

애초에 처음 리들의 짝으로 맺어질 여주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가장 먼저 정한 것이 '헐 볼드모트ㄷㄷ 볼드모트에게 대적을 하다니 난 못해!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악의 무리에 합류하지는 않을거야.' 이거 였어요. 교화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그와 엮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얽히고 마는데.. 뭐 남녀사이가 다 그런게 아니겠어요^*^ 이거 톰 리들 루트 맞습니다 맞아요..

현재 리브와 리들의 서로에 대한 감정은 절대로 호감이 아닙니다. 리들은 리브를 여러모로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지만 경계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에요. 그 이유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있기 때문이죠. 리들은 호그와트에서 이미지 세탁을 아주 완벽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치명적인 과거를 알고있는 리브를 달갑게 생각할리가 없죠.

이제 리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리브는 모자가 슬리데린에 넣으려고 설득까지 한 아이에요. 슬리데린은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철저합니다. 현재 리들은 강자이고 리브는 약자에요. 그리고 리브는 현실적이고 사리에 밝습니다. 얘는 리들과 다른 면으로 아이답지 않은 애에요. 기본적으로 착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옳고 그름을 아는 아이라서 나쁜짓 못하지만 정말 현실적이에요. 그래서 처음 톰 리들이 볼드모트라는 것을 깨닫고 그와 얽히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죠. 리들이 자신과 같은 또래에 불과하다고 해도 볼드모트로 인해 암흑으로 물들 미래를 알고있는 리브는 두려울 수 밖에 없어요. 까고 말해서 볼드모트가 죽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미래도 미래지만 리브는 고아원에서의 리들의 악행을 알고있죠. 보면 볼수록 리들을 역시 볼드모트라고 확정지을 수 밖에 없는거에요.

그래서 리브가 택한 것은 방관과 회피입니다. 리브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을 거부했어요. 이는 불사조기사단도, 데스이터도 되고싶지 않다는 의미에요. 내내 톰 리들에게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알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죠. 교화? 갱생? 리브는 엄두도 못내고 있어요. 그런 위험에 뛰어들만큼 무모한 성격 아닙니다. 어찌보면 나약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에요. 현재 리들한테 발휘할 패기 따위 없습니다. 사실 전편에서 리브가 리들한테 쏘아붙인 것만으로도 정말 큰 반응을 보인거에요. 그게 나름대로 발휘한 리브의 패기에요....

리브의 심리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본편에서 쭉쭉 서술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감정과 거리 역시 멘토와 멘티로 엮이면서 차차 변해갈 예정이죠^^ 톰 리들, 쉬운 남자 아니에요. 물론 리브 브릴리언트 역시 쉬운 여자가 아니죠. 앞으로 이 두사람 어찌될지 잘 지켜봐주시길^^

* '에밀리 맥밀란(Emilly McMillian''은 제가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지만 '악튜러스 블랙(Arcturus Black)'과 '멜라니아 맥밀란(Melania McMillian)'은 원작에도 있는 인물이에요. 블랙 가계도에 있는 분들을 제가 살짜쿵 갖고와서 씁니다. 나름 원작고증 제대로 하고 있어요. 물론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조금씩 조정을 들어갔지만요..

* 전편 리리플은 작품설정에서 확인해주세요. 앞으로 리리플은 전부 그 곳에 올리겠습니다. 공지에 올려봤는데 작품설정 쪽에 올리는게 더 깔끔할 것 같아서요^^

오늘도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를 붙여주세요^^

12.08.28. 퇴고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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