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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경계 혹은 관심
“리들, 이번 방학 때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음, 생각해볼게.”
백금발에 은회안을 가진 남학생, 아브라삭스 말포이와 대화를 나누던 슬리데린 3학년생, 톰 리들은 나기니의 외침에 시선을 돌렸다.
[톰, 리브(Liv)다 리브!]
나기니는 어디서 줏어 들은건지 어느새 소녀의 애칭까지 불러대고 있었다. 뱀이라면 질색하는 브릴리언트가 알면 진저리를 치리라.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눈에 선했다. 브릴리언트는 자신을 대외적으로 ‘리브 브릴리언트(Liv Brilliant)’라고 소개했다. 다들 그녀를 올리비아(Olivia)가 아닌 ‘리브(Liv)’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는 1년 내내 리들이 리브를 집요하게 관찰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브릴리언트는 누가 래번클로 아니랄까봐 책을 상당히 좋아했다, 자신처럼. 항상 책을 들고 다녔고 도서관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리고 오리온 블랙이 말하기를, 변신술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데에 반해 마법의 약은 겨우 평균 혹은 그 이하에 머무른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과목은 전부 특출함과 기대 이상으로 도배를 해서 학년 수석이라고… 특히 필기는 전과목 만점이라는 이야기를 슬러그혼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신입생 때부터 민달팽이 클럽ㅡ슬러그혼 교수가 총애하는 학생들의 모임ㅡ에 초청을 받은 학생이었다. 극구 사양하다가 슬러그혼의 끈질긴 권유에 못이겨 이번 학년부터 출석하고 있었다. 슬러그혼은 브릴리언트를 무척이나 총애했다.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총애가 딸에게까지 이어진 모양이었다.
리들은 리브가 왜 갑자기 민달팽이 클럽에 출석한지 알 수 있었다. 목적이 있어서였다. 사실 그 이유를 알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 날, 자신은 마법의 약 교실에 두고 온게 있어서 저녁 먹기 전에 가져가려고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학생들이 우르르 나가고 있었다. 교복을 보아하니 래번클로와 슬리데린의 수업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슬리데린 2학년생 여럿이 리들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고 소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해주었다. 리들은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사였다. 톰 리들을 알아본 몇 몇 래번클로 2학년생들이 그를 선망의 눈길로 응시하고 있었다.
“리들 선배!”
리들을 알아본 슬리데린 2학년생 ‘오리온 블랙(Orion Black)’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아브라삭스가 리들에게 소개해준 오리온은 블랙 가문의 후계자였다. 리들은 그에게 친절한 선배였고 오리온은 그를 몹시 잘따랐다.
“여긴 무슨 일이세요?”
“두고 간게 있어서.”
리들은 오리온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부드럽게 떼어내고ㅡ“블랙, 네 친구들이 기다린다, 연회장에 보자.”ㅡ 교실로 향했다. 교실로 들어서려던 리들은 슬러그혼이 낯익은 여학생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브릴리언트였다. 뒷모습에 불과했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찬란한 색감의 골드 블론드를 통해 리들은 쉽게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지? 여기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리들은 그들이 자신을 볼 수 없도록 투영 마법을 걸고 살금살금 교실로 들어갔다. 마법은 잘 걸린 모양인지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오. 리브. 정말이지 나는 너처럼 뛰어난 학생은 처음이란다. 네가 우리 기숙사에 들어왔어야 했는데… 그 때 모자가 결정을 번복한게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구나.”
“아직 전 부족한게 많은걸요.”
“오, 겸손하기까지 하지!”
슬러그혼은 브릴리언트를 예뻐죽겠다는 듯이 쳐다보며 숙제에 대한 평을 늘어놓았다. 몇 몇 교수들이 그녀의 작문에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ㅡ마치 자신의 숙제처럼ㅡ 슬러그혼도 그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보통이면 지적을 하는데에 비해 슬러그혼은 브릴리언트가 제출한 작문 한 문장, 한 문장에 감탄을 하기에 바빴다. 대체 얼마나 잘 썼길래? 슬그머니 궁금해졌다. 나중에 슬러그혼한테 보여달라고 해볼까. 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슬러그혼은 계속해서 입을 열고 있었다.
“넌 정말 네 엄마보다 똑똑하구나, 오, 그녀가 모자란 학생이라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말렴. 그녀도 뛰어난 학생이었지.”
슬러그혼이 브릴리언트의 어머니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너를 볼 때마다 나는 그녀를 떠올리곤 한단다. 정말이지 꼭 닮았어….”
“제가 그렇게 어머니를 닮았나요?”
“그럼, 물론이지!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그 눈까지 전부 닮았단다. 꼭 빼어 닮았어.”
순간 브릴리언트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녀는 계속해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아내고 싶은 듯 했다. 아하, 그래서 민달팽이 클럽에 출석을 했군? 리들은 예리하게도 거기까지 눈치챘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도서관에서 그녀가 순수혈통과 관련한 책들은 모조리 섭렵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같은 기숙사 학생에게 학문적인 호기심 어쩌고 하더니 실상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처럼 부모님에 대해 찾는 모양이었다. 리들 역시 부모님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 순수혈통과 관련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은 전적이 있었다, 뭐 하나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론 지금까지 성과는 없었다.
“지니아의 집안은 대대로 슬리데린이었으니까 그녀가 슬리데린인 것도 당연했지.”
그리고 슬러그혼은 계속해서 소녀에게 정보를 내어주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교수의 이야기를 듣던 브릴리언트를 보며 리들은 알아낼 수 없는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대체 난 누구를 닮은걸까. 두 사람 다 골고루 닮은걸까. 브릴리언트는 교수들이 누구 딸인지 한 번에 알아내던데 왜 나는 못 알아내지? 둘 중 아무도 안 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들도 리브처럼 현재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자신을 낳고 죽어버린 어미는 나약한 머글이라 생각하고 아버지 ‘톰 리들’에 대해 찾고 있었다. 학생 명단까지 뒤져가며 ‘톰 리들’이라는 이름을 찾았지만 지금까지 ‘리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요즘은 브릴리언트를 관찰하느라 그 작업이 늦어지고 있었다. 비밀의 방에 대해서도 알아봐야하는데 그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지니아는 순수혈통 답지 않게 자유분방한 마녀였지. 그래도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단다. 그렇게 사랑의 도피를 할 줄은-”
그 순간 슬러그혼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 떠오르는 낭패의 표정. 해서는 안될 말을 했을 때 나타나는… 그리고 리들은 소녀의 벽안이 살짝 커진 것도 캐치했다. 들은 모양이었다. 물론 소년도 들었다. ‘사랑의 도피’
슬러그혼은 헛기침을 하더니 황급히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말을 마무리하고 숙제로 다시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리들은 그녀가 슬러그혼의 말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는 살짝 멍해지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지금 사랑의 도피를 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리들은 곧바로 교실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서 소년은 리브가 굉장히 멍한 표정으로 교실을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투영 마법을 풀었음에도 소녀는 자신을 보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깊이 빠져있었다. 아니면 그 사랑의 도피가 충격적이었던가.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는데 소년에게 슬러그혼 교수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오, 톰! 이 시간에 무슨 일이니?”
“두고 온게 있어서 가지러 왔습니다.”
그렇다. 리들은 이번 학년 내내 리브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안심할 수 없었다. 같은 고아원 출신의 계집애. 달갑지 않다. 처음에 든 생각은 그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처럼 파셀마우스라는 것을 알게 되자 흥미가 생겼다. 나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계집애가 그 능력을 갖고 있다니?
물론 저 계집애가 그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특별한 능력은 맞다. 파셀통그. 뱀과 의사소통을 하는 이 능력은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리들은 자신이 슬리데린의 후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순수혈통 가문을 뒤지고 또 뒤졌다. 물론 아버지에 대해서는 찾지 못했지만. 혹시 그 여자애도 자신처럼 슬리데린의 후손인걸까? 어쨌든 어떤 애인지 알아야겠어. 이런 심정으로 소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눈치 빠른 여자애는 자신의 시선을 눈치챈 모양인지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리브의 행동반경은 쉽게 파악되었고 리들은 리브를 관찰하고 있으니 소녀와 자주 눈이 마주치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학기 초 만해도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거나 흠칫하던 계집애가 날이 지날수록 태도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 계집애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면 ‘안녕하세요. 리들 선배님.’이라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러면 리들은 말없이 고개를 까딱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브릴리언트는 언제부턴가 나를 신경쓰지 않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를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포기한 모양이지. 그리고 흥미로운건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것 봐라?
“안녕, 브릴리언트.”
그래서 나는 이건 어떠냐는 심정으로 그 계집애에게 먼저 아는척 해보았다. 순간 그녀의 벽안이 커졌다. 그리고 ‘왜 갑자기 나한테 아는 척하지?’라는말이 얼굴에 써져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오늘따라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리들 선배님.”
내 팔에 감겨있던 나기니가 쉭쉭거리며 [리브다, 리브 안녕!]이라고 외쳤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저,저한테 무슨 볼 일이시라도….”
“그냥 인사한거야.”
리들은 피식 웃으며 지나갔다. 살짝 뒤돌아보니 멍한 표정으로 서있다. 별 뜻 없는데 또 뭘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게 놀라운가? 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툭 혼잣말을 내뱉었다.
“재밌네.”
그 이후로도 리들은 리브를 발견하면 종종 먼저 다가가서 ‘안녕, 브릴리언트.’라고 인사를 건냈고 소녀는 그때마다 색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것도 시간이 지나자 적응된 모양이지만. 하지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을 응시하는게 재밌었다.
“브릴리언트, 어디가?”
“도서관이요.”
“책 좋아하나보네.”
리들이 지나가자마자 주변 친구들이 소녀에게 톰 리들과 어떻게 아는 사이냐며 캐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친구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난감해하며 민달팽이 클럽에서 알게 되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역시 재미있다.
브릴리언트는 멍 때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무슨 생각이 저렇게 많아. 맞아, 그러고 보니 고아원에서도 저랬던거 같다. 말도 없고… 벙어리라서가 아니라 생각에 잠겨있어서 그랬던 거였어. 아니면 귀찮거나.
리들은 생각보다 리브에 대해서 잘 파악해가고 있었다. 그다지 알기 어려운 성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녀를 관찰하던 리들은 고아원에서와 딴 판인 모습에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고아원에서의 브릴리언트는 기억이 희미해서 머리를 쥐어짜야 생각나곤 했지만 지금과 다르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누가 저 계집애를 ‘그’ 벙어리로 보겠어. 리들은 그녀가 왜 고아원에서 벙어리로 인식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저 계집애는 낯을 가린다. 친한 자신의 기숙사 학생들과는 재잘재잘 웃으면서 이야기를 잘 했지만 타 기숙사 학생과는 데면데면 하고 말 수가 지극히 적어졌다. 나기니랑은 말도 잘하던데… 뱀이라서 그런가?
[톰, 리브(Liv)다 리브!]
내 팔에 얌전히 있던 나기니는 당장에 브릴리언트에게로 기어가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학기 초에 절대로 그녀에게 아는 척하지 말라는 내 명령에 복종했다. 나기니는 말이 많기는 해도 말을 잘 듣는 뱀이었다. 내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는걸 알고 스스로 말을 줄이며 착하게 굴었다. 물론 지난 여름방학 때, 브릴리언트에게 쓸데없이 내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기니는 브릴리언트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파셀통그를 하는 마법사라서 호감을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나기니의 수다를 전부 들어주지 않으니까 그 계집애를 그 타깃으로 삼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브릴리언트는 나기니를 진저리치며 무어라 지껄이든 무시하는 방법을 썼지만 내가 한 소리하자 그만두었다. 눈치도 빠르지. 가끔, 아니 자주 나기니를 집어던지고 싶다는 오오라를 뿜어댔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나는 언젠가 나기니에게 그토록 널 진저리치는데 어째서 계속 그 애의 방에 가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기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쁘잖아! 언젠가 나를 만져줬으면 좋겠어. 손길이 부드러울 것 같아.]
나는 순간 나기니의 성별을 의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분명히 암컷이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쓸데없는 말을 한 벌로 며칠간 브릴리언트의 방에 가는 것을 금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기니는 축 늘어지며 속상해했지만 얌전히 내 말에 따랐다. 그리고 근신이 풀리자마자 곧바로 브릴리언트의 방으로 기어갔다. 나중에 나기니를 데리러갔을 때 브릴리언트의 안색을 보니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들은 또 웃었다. 나기니가 얼마나 수다를 떨어댔는지 알만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기니는 그녀를 발견하고 쉭쉭거리며 저기 있다고 자신의 주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뱀이 쉭쉭거리자 아브라삭스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금발의 래번클로 여학생을 발견했다. 저 뱀은 유독 저 여자애만 보이면 쉭쉭거렸다. 물론 저 여학생이 꽤 예쁘기는 했다. 쟤 이름이 뭐였더라. 아브라삭스가 툭 내뱉었다.
“나기니는 저 여자애만 보이면 이러더라.”
아브라삭스는 이제 리들에게 자신의 집에 오라고 재촉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기니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래번클로 여자애를 보고있다. 찬란한 골드 블론드에 보석같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꽤 예쁜 축에 속했다. 이제보니 나기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구도 저 여자애를 보고 있었다. 아브라삭스는 리들이 저 여학생을 응시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 있었다.
“리들, 저런 스타일 좋아해?”
아브라삭스의 말에 리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마치 자신을 뭘로 보냐는 비웃음 같기도 했는데 어쨌든 명백한 부정이었다. 하지만 리들의 눈길은 여전히 골드 블론드에게 향해 있었다. 평소 관찰할 때처럼 제법 싸늘한 눈빛이었지만 아브라삭스는 알지 못했다. 리브는 그 싸늘함을 눈치채고 종종 떨었지만.
[톰, 리브 표정이 안 좋아. 무슨 일 있는걸까?]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브릴리언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몹시 어두웠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도서관으로 들어가버렸다.
“말포이, 나 잠깐 도서관 좀 다녀올게.”
그렇게 말을 마친 리들은 도서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기니에게 축소 마법을 걸고 소매 안에 보이지 않게 넣었다. 핀스 부인이 알면 쫓아낼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으로 들어갔는데도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갔지? 주위를 둘러보던 리들은 책장 틈으로 골드 블론드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브릴리언트의 머리카락이다.
살며시 그 곳으로 다가간 리들은 리브의 푸른 벽안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았다. 입술을 깨물며 책을 훑고 있지만 여전히 울 듯한 표정. 물론 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리브가 울려고 해. 왜 우는-]
[쉿.]
쉭쉭거리는 나기니를 제지한 리들은 소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자신을 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멍하니 작은 손으로 책을 쓸던 브릴리언트의 벽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리들이 흑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이제 소녀는 눈물을 닦으며 끅끅 거렸다. 울음을 참으려는 듯. 그 모습은 제법 안쓰러워 보였지만 리들은 무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흑안에는 살짝 의아한 빛이 서려있었다.
소녀는 결국 눈물을 한아름 쏟아내고 말았다. 한참을 눈물만 쏟아내는 소녀를 보며 리들은 나기니를 쓰다듬었다. 별거 아니야. 그렇게 되뇌는 리들의 머릿속에 리브에 대한 한 가지 정보가 더 추가되었다. 눈물이 많은 여자애.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의외네. 그리고 리들은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하지만, 별거 아닌게 아니었다. 한동안 리들은 리브를 볼 때마다 그 날, 눈물을 쏟아내던 모습이 아른거려야만 했던 것이다. 역시 계집애가 우는 모습이라서 그런거야. 거슬려서 그런거다. 고아원에서부터 우는 애들은 질리게 많이 봤고 가끔 나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한 계집애들이 질질짜곤 했으니까.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또 떠올랐다. 보기 싫다. 그 후로 리들은 리브가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종종 그 모습이 떠올라야만 했다.
브릴리언트가 흥미로운 애라는 것을 리들은 기꺼이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고아출신에, 파셀마우스, 그리고 교수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여러 가지로 뛰어난 학생. 고아원과는 영 딴판인 이미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나와 마주칠 때마다 남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경계어린 관심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흥미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나와 닮은 점을 하나 하나 발견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톰, 혹시 특별히 멘토(Mentor)로 원하는 선배가 있니? 아니면 멘티(Mentee)로 삼고 싶은 후배라던가.”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브릴리언트를 멘티(Mentee)로 지목하게 된 것은. 물론 별 의미는 없었다. 그저 궁금해졌으니까. 흥미 그리고 호기심이었다. 그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계집애들과는 달리 나에게 흑심을 품거나 관심을 구걸하지 않으니 편하리라. 그래, 그 계집애는 다른 계집애들과는 달랐다. 자신을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지도, 관심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래번클로의 올리비아 브릴리언트, 제가 그 여학생의 멘토가 되어도 괜찮을까요?”
============================ 작품 후기 ============================
선작이 2000을 앞두고 있네요. 선작, 추천, 코멘트 전부 감사합니다! 특히 코멘트 써주시는 분들, 정말 정말 사,사..좋아해요^^!
* 리들의 주변 여자애들은 항상 리들에게 관심을 갈구하고 흑심을 품어요. 잘생기고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범적인 수석학생 톰 리들. 어느 여자가 그를 거부하겠어요? 전부 홀려있죠. 하지만 리브는 다른 여자애들과 달리 리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리브는 달라요. 리들은 그걸 알죠. 그래서 더욱 더 흥미롭게 생각해요. [나한테 이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이건 어디서나 통하는 만고 불변의 진리 아니겠어요?ㅎㅎ
* 정정합니다.
'물이 주인을 만나매, 얼굴이 붉어졌도다'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conscious water saw its God and blushed
Author: Richard Crashaw
Source: Translation of His Own Epigram on the Miracle of Cana--St. John's Gospel (ch. II)
이것은 리처드 크래슈 (Richard Crashaw : 1613 – 1649)의 글로 바이런보다 1세기 앞서 표현된 글이다. / 출처 : http://redflame.tistory.com/32
'레파보르레옹'님이 바이런의 시가 아니라는 지적을 해주셨는데 찾아보니까 '리처드 크래슈'라는 시인의 것이라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12.08.28. 퇴고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