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206화 (206/211)

00206  第 43 話  =========================================================================

第 44 話 “63일째”

“호, 내 부탁을 들어준다는 사람들이 자네들이군.”

노클로가 살고 있는 대저택에 도착한 우리들은 파티를 맺고, 영상 기록까지 작동시킨 상태였다. 한마디로 지금 이 상황도 영상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다만 영상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내가 왜 나서야 되는 건지.’

도와준다는 말은 했지만 그건 단순히 옆에서 도와준다는 것이지, 영상 주인공으로 도와준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간곡한 시나의 부탁을 이기지 못한 나는 노클로 앞에 서서 말투마저도 바꾼 채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제국의 영웅이 나설 줄은 몰랐네.”

[노클로와의 호감도가 2 상승합니다.]

뭔가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하는 노클로를 보고 있자니 어떤 퀘스트를 줄지 고민하는 걸로 느껴졌다.

“뒤에는 자네 동료들인가?”

“예.”

“영웅인 루딘의 동료라면 보통이 아니겠지. 보다 특별한 부탁을 해야겠군.”

“……?”

특별한 부탁?

일반 플레이어가 받는 의뢰조차 난이도가 상당해 완료하는 이가 적다. 그런데 특별한 부탁을 하다니? 전투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엉뚱한 의뢰를 던져준다면 나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내가 괜히 온 건가?’

일이 이렇게 된 것도 되도 않는 영웅 칭호를 받은 내게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노클로는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농담이니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지 말게.”

“아, 농담이시군요.”

“아무리 영웅이지만 따로 취급할 수는 없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쉬운 부탁을 하겠네.”

이상할 정도로 믿음이 가지 않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나였다. 여기서 쓸데없는 말까지 더해 괜히 일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반응에 노클로는 슬슬 퀘스트 내용을 말했다.

“내가 한때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마셨던 술이 있네. 듣기로는 엘프가 만든 술이라더군. 그걸 다시 마시고 싶네.”

‘술?’

[NPC 의뢰가 생겨났습니다.]

하필이면 이런 퀘스트가 튀어나오다니.

싸워야 되는 전투 퀘스트도 아니고, 뭔가를 만드는 생산 퀘스트도 아니다. 그저 엘프가 만든 술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퀘스트. 하지만 그게 어떤 건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난이도는 급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의 술을 구하라.]

설명:노클로는 한때 대륙을 돌아다녔을 당시에 마셨던 엘프의 술을 원합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으시다면 의뢰를 승낙하세요.

<퀘스트 수락:없음.>

<퀘스트 거절:퀘스트 소멸.>

<퀘스트 완료:경험치 5,000. 두 번째 퀘스트 생성.>

<퀘스트 실패:퀘스트 소멸.>

‘전혀 평범하고 쉽지 않은데.’

거기다 퀘스트 보상도 좋지 않다. 이걸 다섯 번까지 깨야 된다고 했으니 아직 한참 남은 셈이지만, 단순히 이 보상만 본다면 딱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떤가? 가져올 수 있겠는가?”

“……노력해보겠습니다.”

[의뢰를 받았습니다. '엘프의 술을 구하라.']

“기대하겠네.”

그렇게 퀘스트를 받은 우리들은 노클로의 저택에서 나와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찾기에는 정보가 너무 없었기에 그 정보부터 얻어야 되겠지만 아쉽게도 거기서부터 막혀버렸다.

“엘프의 술이라니. 황혼에 엘프도 있었어요?”

“아마 있지 않을까요?”

이미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머메이드와 해신족을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엘프 역시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반대로 인간 말고 다른 종족을 보지 못했던 시나는 그 엘프가 있는지부터 의심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죠?”

“정보부터 모아야죠.”

“정보라…… 그럼 전 홈페이지에서 찾아볼게요.”

홈페이지 게시판에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나 역시 따로 정보를 모으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누구에게 물어보면 좋을까?

솔직히 말해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도 있다. 길드원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몇천 명이나 되는 길드원 중에 엘프의 술을 알고 있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고, 잘하면 직접 엘프의 술을 가져다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지.’

이건 내 생각이지만 여기 있는 인원으로 퀘스트를 깨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난데없이 길드의 도움을 받아 퀘스트를 깨버린다면 보는 사람들도 실망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물어본다면 NPC가 좋았다.

‘근데 내가 알고 있는 NPC는 몇 안 되는데.’

NPC라면 유아와 시나가 더 잘 알지 않을까? 그녀들은 퀘스트 위주로 플레이를 했기에 알고 있는 NPC도 나보다는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아 씨. 혹시 물어볼 NPC 없으세요?”

“엘프의 술이요? 글쎄요. 주점에 아저씨라면 알지 않을까요?”

“그럼 그곳으로 가봐요.”

단순히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좋겠다고 생각한 난 주점으로 가자고 제의했고, 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와중에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는 시나는 허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나와 유아를 따라왔다.

“생각보다 어려운 퀘스트를 주네요.”

“뭐, 전투와 생산 퀘스트를 피해서 준 거겠죠.”

애당초 노클로 퀘스트가 그랬다. 엘프의 술을 구해오라는 것도 전투와 생산을 피해서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이후 계속 진행한다고 치면 네 번의 퀘스트가 남아 있으니 그 전부 지금과 같은 종류의 퀘스트를 주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최악인데.’

아무튼 유아와 함께 주점에 들어선 나는 카운터에 있는 NPC를 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난 저 NPC와 안면이 없었기에 이야기를 하는 것도 유아가 직접 해야만 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 음…… 아, 유아로군. 그래, 무슨 일인가?”

“혹시 엘프의 술에 대해 아시나 해서요.”

중간에 유아가 누군지 생각하는 듯했으나 다행히 떠오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가까스로 그녀의 이름을 말한 주점의 NPC는 엘프의 술이라는 단어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을 열었다.

“엘프의 술이라면 엘프가 만든 술이겠지. 아쉽게도 나도 본 적이 없어.”

“어디서 구하는지도 모르나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주점 NPC. 주점까지 온 보람도 없을 만큼 소득도 없었지만 일이 이 정도로 쉽게 풀린다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NPC를 알아봐야 되나.’

또 계속해서 홈페이지를 뒤져보고 있는 시나를 보고 있니 별다른 소득도 없을 듯했다.

“어떻게 하죠?”

“그야 알고 있을 만한 NPC를 찾아야겠죠. 문제는 제가 알고 있는 NPC 중에서는 없을 거 같은데…….”

내가 알고 있는 NPC라고 해봐야 몇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대장간 주인이나 하르페 황제. 혹은 실시간 경매장에 있는 NPC 정도? 마지막으로 빛의 교단의 사제도 있지만 그들 중에서 엘프의 술에 대해 알고 있을 만한 인물은…….

‘음, 지점장?’

아이템 감정에 대해 다른 NPC와 차별된 느낌을 줬던 지점장이라면 엘프의 술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지 몰랐다. 물론 가지고 있진 않겠지만 힌트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난 망설일 것도 없이 실시간 경매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실시간 경매장으로 가봐요.”

“실시간 경매장이요?”

“그곳에 물어볼 사람이 있거든요.”

덧붙여 아이템도 등록하고 말이다. 하이츠를 잡고 획득한 죽음의 향기가 묻은 세트는 내가 가지고 있어 봤자 쓸 곳도 없으니 겸사겸사 팔아버릴 생각까지 하며 실시간 경매장으로 향하던 도중, 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누군가 엘프의 술을 만드는 레시피를 습득하고 있대요.”

레시피?

“그 레시피는 어디서 나오는데요?”

“몰라요. 또 레시피를 구한다고 해도 C랭크 이상의 요리 스킬을 배워야만 습득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어요.”

‘……예상대로 도움이 안 되는군.’

다만 누군가 레시피로 습득했다고 했으니 잘하면 현금 거래창에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럴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애당초 현금 거래창으로 구매할 바에는 길드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어디로 가세요?”

“은행으로 갔다가 실시간 경매장으로 가려고요.”

“실시간 경매장이요?”

“그곳 NPC에게 물어볼 생각이거든요.”

시나도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지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난 은행으로 이동해 세트 아이템을 꺼내고는 실시간 경매장으로 향했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붉은 머리의 아델라가 날 반겨줬다.

“오랜만이시군요. 루딘 님.”

“예, 혹시 지점장과 만날 수 있나요?”

“물품을 등록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있고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델라는 지점장에게 연락했고, 이내 1층으로 내려오는 지점장을 볼 수 있었다.

혹시 물품을 등록하지 않는다면 만날 수도 없나?

“이거, 루딘 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그보다 물어볼 게 있…….”

“여기서는 이야기를 하기가 그러니 올라오시죠.”

“…….”

내 말 좀 들어라.

뭐가 그리 기쁜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2층으로 안내하는 지점장이었다. 그런 나와 지점장을 따라 같이 올라온 유아와 시나까지. 파티를 맺은 탓인지는 몰라도 올라오는 둘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지점장이었다.

철커덕-

“이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2층에 위치한 방에 들어선 우리들은 지점장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고, 지점장 역시 맞은편에 앉아 처음 보여줬던 표정 그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물품부터 볼까요?”

‘물품부터인가.’

왠지 보여주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거 같았던 난 먼저 아이템부터 꺼내 보여줬다.

“호오, 이건 하이츠가 사용하던 장비로군요. 더군다나 모든 세트까지. 역시 루딘 님이십니다.”

역시나 NPC답지 않게 이상한 정보까지 알고 있었다. 이게 하이츠가 착용한 장비라는 건 어떻게 알고 있을까? 베크샤 장비를 보여줬을 때부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작사 측에서 작정하고 만든 NPC라면 모든 아이템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 장비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죽음 계열의 마법을 습득해야 되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겠군요. 나름 습득한 사람들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아, 예.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엘프의 술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

경매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질문을 한 탓인지 몰라도 지점장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지만 반대로 그 모습이 뭔가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른다면 곧장 대답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지점장의 입에서는 어떤 정보가 흘러나왔다.

“엘프와의 교류가 끊어진 지금, 그런 물품은 구하기가 힘듭니다만…… 한 가지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짐작 가는 곳이라면?”

“정령이 머무는 비경의 숲이죠. 한때 엘프들이 살고 있었으니 잘하면 몇 개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경의 숲?’

그거 아이젠이 원정대까지 결성해 이 잡듯이 뒤져본 곳 아니었나?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포기한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엘프들이 살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소문도 퍼졌을 텐데 그 소문조차 없으니 신빙성이 떨어지는 정보로 느껴졌다.

“그곳을 뒤져본 사람의 말로는 아무것도 없다던데요?”

“엘프 고유의 결계로 숨겨놓은 거겠죠. 하지만 루딘 님이라면 찾아내실 거라 믿습니다.”

아무래도 해신족의 결계와 비슷한 종류로 숨겨놓은 듯한데…….

문제는 결계를 찾을 방법이었다. 아이젠이 원정대까지 파견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던 만큼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을 거 같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니 이야기는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은요?”

“아쉽게도 그것 외에는 모르겠습니다.”

“결계를 찾을 방법도요?”

“예.”

‘아무런 소득이 없군.’

그래도 정보 하나는 건진 셈이다. 정령이 머무는 비경의 숲에 엘프들이 살고 있었다는 정보. 다만 결계를 찾을 방법이 없었으니 유용한 정보는 아니었다.

‘후,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

답답함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난 앞서 꺼내놓은 죽음의 향기가 묻은 세트를 등록시킨 뒤, 건물에서 나왔다. 당연히 옆에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던 그녀들도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냥 현금으로 구매해버릴까요?”

“…….”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시나의 말에 제일 먼저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