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200화 (200/211)

00200  第 43 話  =========================================================================

第 43 話 “62일째”

무기 방어에서 내가 거둔 성적을 확인한 제온은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다. 의외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패배를 시인한 것. 그로 인해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제온까지 이겼으니 루딘이야 말로 황혼 최강이다!' 라고 떠들어댔지만 다행히 지금은 잠잠해진 상태다.

‘생각해보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

미쳤다는 말이 간간히 섞여 들려오는 함성과 팬이라면서 다가오는 플레이어. 물론 그들을 다 뿌리치고 이벤트 지역에서 나간 뒤, 다시 아케인으로 바꿔 접속해 귀찮은 일은 대부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들 못지않게 흥분한 시나가 달라붙어 곤혹 아닌 곤혹을 치르게 되었다.

‘마지막에 일부러 끝내신 거 맞죠? 정말 놀랬잖아요. 근데 제대로 하면 몇 개까지 막을 수 있으세요?’

‘아니,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요.’

‘에이~ 듣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요. 빨리 말해줘요.’

‘…….’

그나마 유아가 나선 탓에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고 할까? 이후 그녀들과 각종 이벤트를 즐기며 온종일 재미있게 보낸 난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진짜 짜증날 정도로 넓네.”

이미 레벨은 100을 찍은 상황이었고, 여러 스킬들도 레벨이 올랐기에 지금의 내 능력치는 이전보다 높아지긴 했다.

그럼에도 이곳 몬스터를 상대하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였지만.

솔직히 한 마리는 어떻게 상대할 수 있어도 두세 마리가 나타난다면 환영이동을 사용해 도망치는 편이 좋다. 덕분에 현재 환영이동은 16레벨까지 찍은 상황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마을 같은 건 찾아봐도 없으니…… 슬슬 돌아갈까.”

바다 속을 돌아다니는 재미도 잠시뿐이지 지금은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다. 뭐라도 발견한다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없으니 단순히 레벨 높은 사냥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콰아아앙-

“응?”

갑자기 웬 폭발음이지?

단언컨대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는 나 하나였다. 며칠간 돌아다니면서 다른 플레이어의 그림자도 본 적 없으니 틀림없는 사실이겠지만 갑작스레 들려온 폭발음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볼까.’

만일 가보고 별거 아니면 귀환 스크롤을 써서 돌아갈 생각을 한 나는 그 폭발음이 들려온 곳으로 향했고, 이내 10여 명의 사람이 거대 해양 마물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사람?’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아!”

“준비 됐으면 공격해!”

……사람은 아니네.

자세히 보니 사람은 아니었다. 피부색과 더불어 귀 부분이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되어 있는데다 팔과 다리에는 비늘 같은 것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NPC인 듯하다. 또 NPC들이 상대하고 있는 녀석은 '그리드론'이라는 거대하면서도 넓적한 형태의 물고기였다.

‘그냥 놔둬도 이기긴 이기겠군.’

나도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현재 절반 이상의 NPC들이 갈고리 같은 걸로 그리드론의 몸을 붙잡았고, 남은 NPC가 뒤에서 공격하고 있었으니 이대로 가면 NPC의 승리가 확실했다.

‘저 입만 조심하면 별거 아니니.’

참고로 그리드론이라는 몬스터는 입안에 있는 촉수로 상대를 붙잡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형태의 공격을 했지만 그것만 조심하면 딱히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반대로 촉수에 붙잡혀 끌려간 환영이 그대로 씹어 먹혀 소멸된 걸로 봐서 저 입안에 들어가게 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됐다! 거의 끝나간다!”

“계속 붙잡고 있기 힘드니까 빨리 끝내!”

‘음, 역시.’

예상대로 뒤에서 맹공격을 펼친 NPC들의 활약으로 손쉽게 그리드론을 처리한 것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엇? 모두 경계!”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동시에 나를 발견한 NPC들은 각각 손에 든 창을 내게 겨누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며칠 동안 돌아다녀 간신히 발견한 NPC였기에 싸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모험가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쪽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인어 종족. 머메이드와는 다른 모습을 지녔으니 종족도 다를 거라 생각한 난 그것부터 물어봤으나 들려오는 대답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모험가? 아니, 이런 곳에 모험가가 있을 리가 없잖아!”

“머메이드인가? 하지만 혼자서 여기까지 올 리가 없는데.”

“아, 인간입니다만.”

“인간이라고? 인간이 바다 속. 그것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쯧, 화술 스킬이라도 배워야 되나.’

NPC들은 내가 인간이라는 것과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만 의문을 띄우고 있었다. 이대로는 진행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화술 스킬을 떠올렸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어떻게든 직접 진행을 해보기로 했다.

“이래 봬도 실력이 있어서요. 그런데 말씀 안 해주실 건가요?”

“음, 우린 해신족이다. 자랑스러운 용의 피를 이은 종족이지.”

‘……그런 종족도 있었나?’

이런저런 온라인 게임을 했던 나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종족이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NPC가 있다는 게 아니겠는가? NPC가 있으니 마을도 있을 테고, 또 그 마을의 집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이동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골드라면 집을 구하고도 남을 테니.

“어쨌든 네가 인간 모험가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알 수 없군. 그 이유부터 말해라.”

뭐라고 대답하지?

인터넷에 사람들이 적어놓은 글에는 NPC와 대화만 잘해도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와 관련된 예로 재훈이 NPC에게 얻은 정보로 소용돌이를 통과하는 방법을 찾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대화만 잘 이끌어나가도 생각했던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유는 딱히 없네요. 새로운 걸 발견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도중 폭발음을 듣고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그런가? 하긴, 적대하지 않는다면 상관이야 없겠지. 우린 돌아가겠다.”

“어디로요?”

“당연히 신전이지 않겠나?”

신전? 마을이 아니라 신전이라고?

의아한 대답이긴 했지만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 해신족이라고 소개한 NPC를 따라가는 편이 좋을 듯했다.

“괜찮다면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따라온다고? 인간인 네가?”

“며칠 동안 바다 속을 돌아다녀서 조금 쉬고 싶거든요.”

내 대답에 해신족 NPC 중 하나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그 생각하는 시간이 긴 것으로 봐서 왠지 안 될 거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머메이드 마을은 보스 몬스터를 잡아오라고 했는데.’

이놈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NPC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례가 없지만 약해빠진 인간이니 안 될 건 없지. 따라오도록 해라.”

“아, 예. 감사합니다.”

‘약해빠진 인간이라고?’

그리드론이라는 물고기조차 10여 명이나 붙어서 잡은 NPC에게 그 말을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허락을 해줬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소란이라도 피운다면 즉각 쫓겨날 줄 알아라.”

“그야 당연하죠.”

“말귀를 알아듣는 놈이군.”

단순히 대화만 들어본다면 날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해신족 NPC를 따라간 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투명한 보호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우리 해신족의 신전이 나온다.”

“결계 같은 거네요.”

“결계 같은 게 아니라 결계다. 보통은 해신족이 아닌 너는 들어올 수 없지만 우리와 같이 들어가면 입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NPC와 같이 들어서니 결계에서는 어떤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덧붙여 그 결계를 통과해 들어서자마자 특이하게도 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장 두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탁-

“호, 넘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여긴 어째서 물이 없죠?”

“혹시 모를 침입자를 대비해서지. 우리 해신족은 바다 속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으니까.”

아까 상대한 물고기 같은 놈을 대비해서 만든 건가?

어찌 됐든 NPC의 도움으로 결계를 통과한 나는 저 멀리 위치한 어떤 건물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 건물이 해신족이 말한 신전 같았다.

‘……근데 신전이 아니라 성인데.’

신전은 멀리서 봐도 상당한 크기를 지녔다. 적어도 하르페 제국의 왕성보다도 커다란 신전을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해신족 NPC의 목소리마저 들려왔다.

“놀란 표정을 보니 인간 세계에는 이런 신전이 없나?”

“아, 예. 없죠.”

“모처럼 좋은 구경을 한 셈이군.”

좋은 구경?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걸음을 옮겨 신전에 다가서니 결계 때문인지 몰라도 열고 닫는 문조차 없었다. 그리고 신전 안으로 들어선 난 생각했던 신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신전 안에는 대략 30~40여 채의 자그마한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럼 신전도 성도 아닌 마을이잖아?’

그리고 신전인지, 마을인지 모를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해신족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르페 제국 왕성에서 정갈한 차림으로 돌아다닌 하녀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길드성 같은 분위기네.’

“그리고 네 녀석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여기 1층뿐이다. 2층은 우리와 같은 전사들만 오를 수 있으니 괜히 착각해 쫓겨나지 않도록 해라.”

“오를 방법이 전혀 없나요?”

“네가 해신족의 전사로 인정을 받는다면 언제든지 올라올 수 있지. 그 이상은 무리겠지만.”

들어보니 3층 그 이상도 있는 모양이었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당연한가? 어쨌거나 설명해준 NPC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할 일이 끝났다는 듯이 같이 온 해신족 NPC를 데리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최소한 그 방법이라도 말해줄 것이지.’

일단 신전으로 들어왔으니 목적은 달성한 것과 다름없는 셈이지만.

그렇게 잠시 신전 안을 둘러보던 나는 일단 내 근처를 지나가는 해신족 한 명을 붙잡고 상점의 위치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잠시만요.”

“예? 응? 누구세요?”

단번에 내가 해신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것부터 물어보는 NPC였지만 다행히 적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정도? 그걸 깨달은 난 내심 안도하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인간 모험가요. 그보다 이곳에도 상점 같은 게 있나요?”

“인간이요? 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아, 그래요?”

“근데 상점이 뭐에요?”

“…….”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대가를 주고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 설명을 했고, 그런 내 설명을 들은 해신족 NPC는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곳이라면 모이드 할아버지에게 가면 될 거 같아요. 모이드 할아버지가 전사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어주고 있거든요.”

“거기가 어디인데요?”

“따라오세요. 안내해드릴게요.”

“아뇨, 안내까지는…….”

“이쪽이에요.”

뭔가 적극적인 해신족 NPC를 잠시 바라본 난 곧이어 걸음을 옮겨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러나저러나 적대적인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또 그 해신족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여러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아, 인간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인간님이라니…….

“루딘입니다.”

“아~ 루딘 님. 전 니르티스라고 해요.”

“니르타스 님이군요.”

“편하게 닐이라고 불러주세요.”

“……예, 닐.”

[니르티스와의 호감도가 1 상승합니다.]

이놈의 호감도는 왜 상승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안내해준 니르티스를 따라 어떤 건물로 들어서자 웬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 NPC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이드 할아버지!”

“음? 아, 닐인가.”

“할아버지에게 볼일이 있다는 손님 데려왔어요.”

“손님?”

손님이라는 말에 모이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가 아무리 투구와 전신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 NPC는 내가 해신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모이드 역시 어렵지 않게 그 사실부터 알아차렸다.

“우리 종족이 아니로군. 머메이드인가?”

“인간이래요!”

“인간? 인간이라면 이곳까지 올 수가 없을 텐데.”

혼잣말로 중얼거린 모이드는 곧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말했다.

“어쨌든 만나게 돼서 반갑군. 모이드라고 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