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5 第 41 話 =========================================================================
第 41 話 “58일째”
“푸디잉!”
바다 푸딩의 왕은 자신의 육중한 덩치를 날려 공격을 시도했지만 난 간단하게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피해냈다. 애당초 민첩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탓에 바다 푸딩의 왕이 행하는 공격 자체가 느리게 느껴졌다.
‘이건 뭐…….’
쉬워도 너무 쉽다.
공격이 느리니 맞을 리가 없고, 덩치가 크니 빗나갈 리가 없다. 대충 휘둘러도 거의 모든 공격을 적중시킨 나는 말 그대로 바다 푸딩의 왕을 가지고 놀고 있는 중이었다.
[바다 푸딩의 왕이 근처에 있는 다수의 바다 푸딩을 소환합니다.]
“그래, 소환이라도 해야지.”
주변에 소환된 10여 마리의 바다 푸딩을 확인하자마자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고민했다. 일단 그냥 공격으로 때려잡을 수 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쉽게 풀리니 차라리 스킬 레벨을 올리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극대파멸.”
웅웅-
S랭크 볼렉크의 극대파멸.
단 1레벨만 오르더라도 웬만한 스킬 2~3레벨이 오르는 것보다 효율이 좋다. 그리고 볼렉크의 극대파멸을 사용한 내 뇌룡의 포효에서는 검붉은 빛이 일렁였고, 그 빛이 생겨나는 것을 본 나는 그대로 바닥을 향해 뇌룡의 포효를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6,041.]
동시에 모든 움직임이 멈춘 바다 푸딩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이 공격만으로 소환된 모든 바다 푸딩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극대파멸의 공격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스킬 데미지! 317.]
[스킬 데미지…….]
마치 폭발하듯이 솟아오른 화염은 도합 다섯 번의 데미지를 줬지만 모두 합쳐도 대지 공격만도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내 지능과 마법 공격력이 낮아 생긴 일이기도 한데, 어차피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 사용한 것이니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자, 그럼 아케인의 스킬을 써볼까.
“불꽃 화살.”
원래는 극대파멸의 페널티로 300초 동안 모든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 다만 공유된 스킬은 어떨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 불꽃 화살을 사용했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까지 공유될 필요가 없는데.’
어쨌든 더는 시간을 끌어도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난 슬슬 마무리를 짓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파칙- 파치칙!-
[적중 데미지! 1,622.]
[적중 데미지…….]
“푸디잉!”
데미지 자체는 기존 스킬보다 낮다. 낮지만 내가 전력으로 공격하면 초당 2~3번씩 공격할 수 있으니 장기전으로 보면 지구력을 소모하는 스킬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이대로 10초만 때려도 3~4만의 데미지를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파치칙!-
“푸, 디잉…….”
‘끝났나?’
언뜻 마지막 말을 내뱉는 듯한 소리에 그 생각을 한 나는 곧이어 흐물흐물 거리며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녹듯이 쓰러지는 바다 푸딩의 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끝난 듯했다.
[보스 '바다 푸딩의 왕'이 쓰러졌습니다!]
[전투 경험치 250,000 획득!]
[띠링!~ 2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바다 푸딩의 모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바다 푸딩의 모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빛나는 무기 강화석'을 획득하셨습니다!]
‘역시 루딘으로는 쉽군.’
덧붙여 메시지를 계속 지켜보니 나보다 레벨이 낮은 건지 홀로 보스를 쓰러뜨린 업적 같은 건 뜨지 않았다. 떴으면 랜덤 스킬북이라도 하나 얻었겠지만 없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조차 되지 않았기에 딱히 아쉬움도 없었다.
“근데 왜 같은 아이템이 두 개나 떴지?”
고개를 갸웃거린 난 그 아이템을 꺼내 확인했다.
[바다 푸딩의 모자] (Magic)
설명:귀여운 바다 푸딩의 형상을 띈 모자. 바다에서 살아가는 바다 푸딩의 힘을 간직한 이 모자를 쓰면 바다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모든 능력치(10)>
방어력:50 마법 방어력:50
내구력:100/100
*물속에서 호흡 가능.
“…….”
친구 재훈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아이템이 바다 푸딩의 왕을 잡아 나올 줄은 몰랐던 난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갈림길에 보스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여기서 수중 호흡 아이템을 구하라는 뜻인 듯했다.
“근데 이걸 머리에 쓰라고 만든 아이템인가?”
현재 내 손에 들린 바다 푸딩의 모자는 바로 조금 전까지 봤던 바다 푸딩을 작게 축소한 듯한 모자였다. 이걸 머리에 쓸 사람이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머리에 쓰고 돌아다니면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거 같았다.
“어쨌든 모자가 두 개 나왔으니까…….”
내가 검푸른 수호자 투구를 따로 꺼내 사용하면 총 세 개가 된다. 그럼 인원수에 맞춰 모든 수중 호흡 아이템을 구한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이름에 떡하니 바다 푸딩의 모자라고 적혀 있어 설명하기가 난감한 면이 없지 않았다.
‘무기 강화석도 애매한 감이 없지 않고.’
만일 레어 무기 강화석이 나왔다면 나름대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강화할 아이템이 몇 개는 되니 말이다. 하지만 직감을 가진 내게 있어 일반 강화석이나 매직급 강화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뭐, 생각난 김에 작업이나 해보자.’
어차피 바다 푸딩의 왕도 잡았으니 당분간 이곳에는 그 어떤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난 자리에 앉아 악마왕을 잡고 획득한 A랭크 신앙 랜덤 스킬북을 꺼냈다.
‘여기서 작업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람도 없고 하니 괜찮은 환경이긴 하다.
사실 이전까지는 신전에서 이런저런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탓에 이 스킬북으로 작업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모처럼 시간이 생겼으니 여기서 부활 스킬을 획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보통 신앙 스킬에는 공격, 회복, 보조, 부활이 있으니…….’
다르게 말해 경우의 수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아마 5분 만에 뽑지 않을까? 난 그런 생각으로 직감을 발동한 채 랜덤 스킬죽 작업을 시도하려 했지만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지잉-
“어? 뭐, 뭐야?”
제어가 안 돼?
직감을 발동시키자마자 평상시의 직감이 아닌 두 번째 직감으로 훌쩍 넘어간 것을 느낀 난 당황하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했다.
‘왜 멋대로 두 번째 직감으로 넘어간 거지?’
직감을 사용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 내가 실수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던 나는 일단 접속을 종료해 두 번째 직감부터 끝내기로 했다.
“접속 종료.”
[접속을 종료합니다.]
[다시 황혼이 비추는 거리에서…….]
“접속.”
그렇게 접속을 종료한 난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황혼에 접속했다. 접속을 끊은 탓에 두 번째 직감은 자연스레 사라졌고, 다시 기회를 얻은 나는 이번에야 말로 평상시의 직감을 사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자, 침착하게…… 천천히 집중한다면.’
지잉-
“아, 미친!”
다시 시도한 직감조차 여지없이 두 번째 직감으로 넘어간 것을 느낀 내 표정은 절로 굳어지고 말았다. 이래서야 강화나 스킬북과 같은 작업이 불가능해진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시간이 비교적 짧게 걸리는 강화는 모르겠지만 스킬북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온종일 스킬북만 펼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일단 이 스킬북부터 끝내놓고 생각해볼까.”
따지고 보면 두 번째 직감으로 스킬북 작업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난 지금의 스킬북을 끝내놓고 직감에 대해 생각하기로 하고는 부활 스킬 작업을 시도했다.
‘부활 스킬이…….’
또 두 번째 직감 때문인지 스킬북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A랭크 신앙 스킬은 모두 19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개수였다. 난 그중에서 부활 스킬이 나올 때까지 스킬북을 펼쳤고,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활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A랭크 스킬. '생명의 깃털'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을 습득함에 따라, 능력치가 올라갑니다.]
[마력이 2 상승합니다.]
[띠링!~ 새로운 능력치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신앙은 황혼 내에 존재하는 빛의 신을 믿고 받드는 힘입니다. 신앙이 높아질수록 빛의 기술의 힘이 보다 상승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신앙이 10 상승합니다.]
‘생명의 깃털?’
생명의 깃털이라면 전에 엠페러 길드의 간부로 있는 에리스가 사용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에리스 역시 A랭크 부활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어렵지 않게 부활 스킬을 습득한 나는 다시 접속을 종료한 뒤, 두 번째 직감을 없애고는 한숨과 함께 접속을 시도했다.
‘그나저나 이젠 어쩌지?’
다시 시도해볼까? 아니, 시도해봤자 헛수고일 게 뻔했다.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야 앞에 나왔던 결과대로 두 번째 직감으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앞으로는 랜덤 스킬북으로 작업을 못하는 건가.’
정확하게는 S랭크를 뽑지 못할 거 같았다. 뭐, 1시간 정도 작업한 뒤에 휴식을 반복하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두 번째 직감을 계속 사용해버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 심각했다.
실제로 두 번째 직감을 계속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바다 푸딩의 왕까지 잡았을 때만 해도 좋았던 기분 한순간에 내려간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습득한 스킬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상세 정보. 생명의 깃털.”
[A랭크 생명의 깃털 효과] (LV3)(+2)
-사용 시, 반경 1M 이내에 죽은 대상을 부활.
-사용 시, 대상의 생명력 600 회복.
-신앙 수치에 따른 추가 회복 적용.
-부활시킨 대상의 경험치를 14% 복구.
-부활시킨 대상의 스킬 경험치 14% 복구.
-부활시킨 대상의 소지금 14% 복구.
-특정 경우를 제외한 모든 물품을 떨어뜨리지 않음.
*사용 시, 마나력 소모 320.
*사용 시, 지구력 소모 11.2%.
“확실히 좋긴 좋은데…….”
특정 경우는 또 뭐야?
아무튼 부활 스킬을 살펴보니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사용하면 얼마 회복하지 못할 테니 전투가 끝난 시점에 써야 되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부활 스킬은 습득한 보람이 있었다.
‘레벨을 올리면 더 좋아지겠지?’
문제는 이 스킬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죽은 플레이어가 필요했다. 따지고 보면 악마왕 전투에서 에리스가 상당한 레벨을 올렸을 듯한데, 이유는 그때 죽은 플레이어의 숫자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아.”
그보다 직감을 어떻게 하지.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의 난 직감이 없어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상태다. 단순히 레이드 보스만 잡아도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었기에 직감은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최대 무기나 다름없는 직감을 봉인해야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내가 직감 없이 잘할 수 있을까.
인정하고 말고도 없이 지금까지 직감으로 많은 이득을 취한 건 사실이었다. 며칠 전에 악마왕을 잡을 때만 해도 두 번째 직감을 사용해 잡지 않았던가? 게다가 직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다짐해도 내 뜻대로 될 거 같지 않았다.
이 황혼을 계속하는 한.
‘뭐, 여기서 황혼을 그만둔다면 그것도 웃긴 일이긴 하지.’
그래도 내가 가진 모든 장비를 팔아버린다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듯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유니크 아이템의 개수만 10개였고, 레어 세트만 4개였으니 말이다.
“…….”
어쨌거나 앉아 한참을 고민한 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감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반대로 황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난 되도록 직감을 쓰지 않는 쪽으로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것도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런 식으로 직감을 어정쩡하게 정리한 난 이후 할 일에 대해 떠올려보니 대략 두 개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
빛의 교단에서 신성 공적치를 얻는 것과 친구 녀석의 도움으로 온 이곳을 탐험하는 것.
일단 마을로 돌아간다면 실시간 경매장을 통해 죽음의 향기가 묻은 세트를 팔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곳을 벗어나면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린 나는 탐험 쪽으로 선택하고는 출구로 걸음을 옮겨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