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4 第 41 話 =========================================================================
第 41 話 “58일째”
“마을?”
“마을이네.”
동굴의 끝에 다다른 나는 입구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있는 물속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물약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재훈과 주연도 물약을 마셨다는 게 의외랄까? 어쨌든 그 물약을 마셔 동굴을 빠져나온 난 여전히 바다 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 바다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우리들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웬 마을까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너 전에도 오지 않았어?”
“그때는 물약이 없어서 이렇게 돌아다니지도 못했어.”
“아, 그래?”
“응, 아무튼 가볼까?”
“……잠깐 생각 좀 해보자.”
저게 진짜 마을이라면 상관은 없다. 반대로 오크 부락과 같이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특히나 우리들은 바다 속에 있었기에 움직임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한몫했다.
‘근데 바다 속에 무슨 마을이지?’
이런저런 고민을 했지만 분위기를 보니 가보는 쪽으로 결정될 듯하다. 솔직히 여기서 아무리 생각해봤자 물약의 지속 시간만 떨어질 뿐이니 어떤 식이든 행동을 하는 게 좋았다.
“가보자.”
“알았…… 응? 어째서 네 의견에 결정되는 거지?”
‘그야 네가 삽질만 하니 그렇지.’
난 그런 속마음을 숨긴 채 마을로 접근했다. 마을은 신기하게도 외각에 둥근 보호막 같은 것이 걸쳐져 있어 그곳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사실을 깨달은 우리들은 입구 쪽을 찾아 나섰다.
이러나저러나 입구는 찾을 수 있었지만…….
“멈춰라! 음? 인간?”
“뭐지?”
“아무래도 인어 같은데.”
투구를 포함해 가벼운 경갑 차림. 게다가 삼지창까지 들고 있는 상체까지만 보면 기존 인간 NPC와 흡사한 모습이지만 하체가 물고기처럼 되어 있는 것을 본 나는 재훈의 말대로 인어를 떠올렸다.
‘머리 위에 이름이 없는데…… NPC라는 뜻인가?’
“와~ 황혼에 인간 말고 다른 종족도 있었구나.”
“오빠, 스샷 찍어서 올리면 대박나지 않을까?”
“올리려면 아무도 모르는 계정부터 만들어야 될 걸?”
재훈과 주연이 그런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우릴 잠자코 지켜보던 인어 경비병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인간이 여긴 어떻게 왔지? 결계로 막혀 있을 텐데?”
“결계라면 회오리를 말하는 건가?”
“응, 그래도 이야기가 통하니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뭔 짓을 하려고?”
“일단 지켜보고 있어.”
재훈은 그 대답과 함께 인어 쪽으로 다가갔다. 저게 겁도 없이 접근하네? 아무튼 지켜보고 있으니 재훈은 인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했는데 그 결과는 딱히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괜찮다면 마을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내가 뭐 때문에 그래야 되는 거지? 헛소리는 그만하고 돌아가라. 인간을 본 건 오랜만이기도 하니 이번만큼은 봐주도록 하겠다.”
이후 재훈은 몇 마디의 말을 더 시도했지만 반응은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할 듯했다. 또 단호한 인어 경비병의 대답에 재훈은 포기했는지 결국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하아, 말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화술 스킬이라도 있어?”
“요즘 누가 그런 스킬을 배워?”
“…….”
화술 스킬을 습득하면 NPC와 대화 진행 중에 선택지가 뜬다. 그 선택지를 잘 고른다면 보다 수월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데, 그것도 배우지 않고 말만 잘하면 될 줄 알았다는 친구를 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다른 방법을 찾아봐.”
“다른 방법?”
“조건을 거는 거지. 마을로 들어가게 해주는 대신 어떤 일을 해주겠다. 일종의 퀘스트 개념으로 뭔가 해주겠다고 해봐.”
“아, 그것도 괜찮겠네.”
‘그냥 내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새로운 마을과 종족을 발견한 탓인지 재훈의 의욕은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내 말을 들은 재훈은 다시 인어에게 다가가 마을로 들어가게 해주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말했고, 그 말에 인어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재훈을 쳐다보았다.
“그렇게까지 마을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지?”
“인어는 처음이거든요. 어떤 마을인지 궁금해요.”
“음, 마음은 알겠지만 외부인을 들여보내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래도 아주 적대적이진 않군.’
태도를 보아하니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재훈과 인어의 대화를 조용히 듣기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어 경비병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만일 너희들이 바다의 포식자 '그로케스'를 잡아 그 증거를 가져온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
[NPC 의뢰가 생겨났습니다.]
‘NPC 의뢰가 나한테도 생겨나네.’
파티를 해서 그런가? 의아하게 생각한 나는 이내 그로케스라는 몬스터가 뭔지 확인하기 위해 의뢰를 확인해봤다.
[바다의 포식자 그로케스를 해치워라.]
설명:머메이드의 마을. 시룬에 입장하기 위해 머메이드 경비병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으시다면 의뢰를 승낙하세요.
<퀘스트 수락:바다의 포식자 그로케스의 위치 표시.>
<퀘스트 거절:없음.>
<퀘스트 완료:경험치 200,000. 시룬의 지배자와 이야기 가능.>
<퀘스트 실패:현실 시간으로 7일간 마을 입장 불가능.>
‘의뢰 보상이 최악이네.’
마을로 입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을 지배자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 만일 이야기를 하다 실패라도 한다면 그대로 마을 입장이 불가능해진다는 말이기도 했다.
“잠시 동료들과 이야기 좀 할게요.”
“좋을 대로 해라. 나야 늘 이곳에 있어야 하니.”
재훈은 그 말을 남기고는 이쪽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글쎄. 힘들지 않을까?”
일단 바다 속에서 싸워야 된다는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의뢰 보상으로 주는 경험치를 살펴보니 레이드 보스가 아닌 일반 보스 같았지만 조금 전에 바다 푸딩의 왕도 잡지 못한 걸 생각하면 이 퀘스트는 깰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물약도 몇 개 없잖아.”
현재 내게 남은 물약은 3개. 돌아다닌다고 3개의 물약을 써버린 탓에 남은 물약도 3개밖에 없었고, 이는 물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15분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약…… 그러네. 아~ 수중 호흡이 붙은 아이템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
참고로 내 검푸른 수호자의 투구가 그 수중 호흡이라는 게 붙어 있었다.
“수중 호흡 아이템이 비싸?”
“그걸 말이라고. 부르는 게 값이야. 특히나 이오트 왕국은 바다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아이템이 있으면 물약 같은 걸 마시지 않아도 되잖아.”
“잠수 스킬은?”
“잠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물속에 있을 수 있는 스킬이지 그 자체로 숨은 쉴 수 없어.”
거기까지 들은 난 재훈과 주연도 물약을 마신 상태라는 것을 떠올렸다. 하긴, 물약을 마시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있을 수도 없었겠지. 어쨌거나 여기서 활동하려면 수중 호흡 아이템이 필수적인 듯했다.
“하아, 수중 호흡 아이템을 구해야 되나.”
“어떻게 구할 건데?”
“지금부터 찾아봐야지.”
‘뭐, 녀석의 입장에서 보면 아쉽기도 하겠군.’
혹시나 내가 방어구 제작 스킬을 습득한 상태였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루딘으로 재료를 구한 뒤, 직감을 사용해 만든다면 혹시나 나올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바다의 숨결 지속 시간이 10초 남았습니다.]
“……물품 보관창.”
그때 튀어나온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아이템 창에서 다시 물약을 꺼내 마셨다. 바다 속이라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어쨌든 아무리 생각해도 남은 15분 사이에 보스를 잡고 돌아올 수는 없을 듯했다.
“일단 퀘스트는 받아. 시간제한이 없는 거 같으니까.”
“알았어.”
이 의견에는 재훈도 의의가 없는지 경비병에게 다가가 퀘스트를 받았다. 지금 파티장이 재훈이라 그런지 몰라도 퀘스트를 수락하자마자 나 역시 자연스레 퀘스트에 수락한 걸로 됐는데, 확실히 시간제한이 없으니 상관은 없었다.
[의뢰를 받았습니다. '바다의 포식자 그로케스를 해치워라.']
[지도에 특정 위치가 표시됩니다. '지도 확인'이라는 명령어로 그 위치를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꽤 멀리 있네요.”
“그러게.”
표시된 지도를 보니 모르긴 몰라도 가는 사이에 물약이 다 떨어질 거 같았다. 어찌 됐든 지금은 잡을 수 없다는 게 결정된 셈이다.
‘이제 재훈이랑 주연은 돌아가려나?’
이건 내 예상이긴 했지만 수중 호흡이 붙어 있는 아이템을 구할 때까지 연락을 하지 않을 듯했다. 덧붙여 그 아이템의 가격이 상당하다고 했으니 며칠간은 연락이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난 잠시 뒤에 내가 할 일에 대해 떠올렸다.
“이제 어디 섬이 있는지 살펴보자.”
‘……응?’
당연히 돌아가자고 말할 줄 알았던 재훈은 문득 이상한 말을 꺼냈다.
“섬을 찾아보자고?”
“응, 아직 물약 남았지? 그 사이에 섬으로 가서 탐색 스킬을 사용하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
“돌아가지 않고?”
이런 내 물음에 재훈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날 바라봤다.
“너 여기까지 오는데 10골드나 썼잖아. 뭐라도 하나 건져야지.”
“…….”
뭐, 배려하는 의도는 좋지만 내게 10골드는 별거 아닌 돈이기도 했다. 그걸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지만. 게다가 가로막힌 필드를 뚫고 나갈 방법을 알려준 것만 해도 10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실제로 내가 탐색 스킬이 있었다면 하르페 제국의 가로막힌 길을 뚫었을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탐색 스킬을 어떻게든 구해봐야 되나.’
아무튼 고개를 끄덕인 난 재훈의 의견대로 조금 더 움직여보기로 했다.
길어봤자 15분일 테니.
“그래, 가보자.”
“일단 저쪽으로 가볼까?”
하지만 그런 재훈의 의도와는 별개로 섬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 의도대로 된 셈인데, 결국 마지막 물약을 마신 나를 보며 재훈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미안,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알아보는 건데.”
“전에는 물약도 안 가지고 왔다며.”
“그래도 다시 오려면 올 수 있었으니까.”
그 대답에 난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얻은 게 많았던 나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튼 수중 호흡 아이템을 구하는 대로 부를게.”
“천천히 구해.”
“혹시 모르니까 너도 10골드는 모아놓고.”
“다음에 봬요.”
곧이어 재훈과 주연은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 사라졌고, 그걸 확인한 난 착용한 모든 장신구를 벗어 루딘으로 바꾸기로 했다.
“스킬 사용. 영혼 변환.”
[교체할 영혼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루딘.”
[영혼 변환을 시작합…….]
영혼 변환을 사용해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원래의 루딘이 입고 있는 검푸른 수호자 세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벗어놨던 모든 장신구를 착용하자 드디어 어색했던 모든 느낌이 사라지는 듯했다.
“후우.”
답답해서 죽을 뻔했네.
근력이나 민첩이 미친 듯이 상승한 탓에 몸 자체도 가벼워진 듯하다. 이대로 그로케스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나 잡으러 가볼까? 검푸른 수호자 세트를 입고 있는 루딘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지도 표시가 왜 사라졌지?”
의아한 마음에 확인해보니 퀘스트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퀘스트는 공유가 안 되는 듯한데, 반대로 말하자면 그 보스는 아케인으로 바꿔 잡아야 된다는 뜻이었다.
“음, 불꽃 화살.”
퀘스트 공유가 안 된다면 스킬 공유는 어떨까.
화륵-
난 그걸 확인하기 위해 아케인으로 습득한 불꽃 화살을 시전했고, 이내 내 주위로 두 발의 화살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스킬은 공유가 된다는 게 확실해진 것이다.
[물속에서 불 속성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불 속성 데미지가 절반으로 감소됩니다.]
‘절반 감소?’
뭐, 물속에서 불 속성 마법을 사용하는 것부터 이상했지만 게임이라 그런지 일단은 사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이 불 마법에 대해 제외하더라도 지금의 난 다른 플레이어와 차별된 60개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는 말이지만 솔직히 좋다고는 하기 힘들었다.
“루딘 쪽도 스킬을 다 못 배웠는데 무슨…….”
아직 루딘으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 6개나 남았다는 것을 떠올린 난 불꽃 화살의 정보부터 살펴보았다.
“상세 정보. 불꽃 화살.”
[F랭크 불꽃 화살 효과] (LV7)(+2)
-불꽃 화살 데미지 +70 적용.
-총 2개의 불꽃 화살을 소환.
-사용 시, 지능의 속도로 발사.
-사거리 12→15M
*사용 시, 마나력 소모 18.
*사용 시, 지구력 소모 0.6%.
“검푸른 수호자 세트로 적용받고 있네.”
2레벨만 올라간 불꽃 화살을 살펴보니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예상대로였는데, 착용한 아이템의 효과가 적용받지 않았다면 바다 푸딩의 왕 전투에서 소환한 카르젠 왕국 병사로 인해 난 탈진 상태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탈진 상태가 되지 않았다는 건 아이템의 효과를 적용받고 있다는 뜻.
아무튼 스킬 공유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아본 나는 슬슬 몸을 돌려 친구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정확하게는 소용돌이를 빠져나왔던 그 동굴로 다시 항햐고 있는 중이다.
‘먼저 바다 푸딩의 왕. 그놈부터 없애주지.’
아케인으로 붙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도망쳤지만 내심 마음에 들진 않았던 난 복수하기 위해 헤엄치는 속도를 점차 높여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