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184화 (184/211)

00184  第 39 話  =========================================================================

第 39 話 “55일째”

지끈-

“윽.”

평소 사용하던 직감을 넘어 두 번째 직감까지 발동시킨 난 왠지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황혼 내에서 이런 고통이 느껴지는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거기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됐다.’

어찌 됐든 두 번째 직감을 발동시켰으니까.

그 상태에서 환영과 싸우고 있는 최상급 악마를 주시하니 머릿속으로 여러 정보가 들어왔다. 남아 있는 생명력부터 시작해, 간략한 능력치, 지금 움직이는 행동 패턴까지 전부 들어와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말이다.

‘생명력은 절반 이하였군.’

반대로 근력이나 민첩과 같은 능력치는 나보다 높았다. 보다 정확한 수치를 알아내려면 좀 더 확인해야겠지만 모른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다.

“감히 내 앞에서 한눈팔다니!”

‘공격?’

순간, 최상급 악마의 외침이 들려오기도 전에 내 머릿속은 어떤 공격인지 인식되었고, 난 그게 내 안면을 향해 날아든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장 자세를 낮췄다.

휙-

그리고 내 머리 위로 스치는 최상급 악마의 주먹과 녀석의 다리를 향해 휘두르는 나의 뇌룡의 포효. 이 행동들은 거의 동시에 이뤄진 것이기에 이번만큼은 최상급 악마도 어떻게 막아내지 못했다.

파치칙!-

[적중 데미지! 1,309.]

“크윽, 네놈이!”

‘다음 공격은…….’

조금 전 공방은 녀석에게도 의외였는지 근처에 다른 환영이 하는 공격들을 무시한 채 나만 노려보는 최상급 악마였지만 두 번째 직감을 사용한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쾅!- 콰앙!-

난 순식간에 뻗어오는 최상급 악마의 주먹을 한발 먼저 움직여 뇌룡의 포효로 쳐내거나 혹은 피해냈다. 그것만으로 내게 들어오는 데미지는 일절 없을 정도. 그리고 계속해서 공격이 무효로 돌아가자 최상급 악마의 분노는 점점 짙어졌다.

“크아아아!”

‘응?’

탓!-

피해야 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과 함께 뒤쪽으로 몸을 날린 난 내가 있던 위치에 어떤 충격음이 들려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콰아앙!-

“뭐, 뭣이?!”

마치 피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놀라는 최상급 악마.

‘……조금 전에 곰탱이를 짓누르던 그건가?’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달리 해석하면 녀석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도 권능까지 사용할 정도였으니까. 또 직감으로 녀석의 생명력이 20~30% 정도라는 것을 파악한 나는 다시 달려들어 재차 공격을 시도했고, 최상급 악마도 그걸 피하지는 않았다.

콰쾅!- 쾅!-

“어? 왠지 처음보다 더 잘 버티는 거 같지 않아?”

“그러게? 지금쯤이면 환영이 전부 없어질 시간인데.”

“루딘! 준비 됐으니 나와라!”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와 마지막에 외친 흑신의 말이 들려온다. 준비가 됐다는 말은 시체 폭발을 말하는 것일 테지만 가볍게 무시하며 최상급 악마만을 상대하기로 했다.

“큭,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숨기기는 뭘 숨겨?

대답할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나였지만 그런 도중에도 환영이 계속 공격하고 있으니 데미지는 지속적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버티고 있으면 최상급 악마도 쓰러뜨릴 수 있을 듯했다.

‘어? 그러고 보니 환영의 지속 시간이…….’

번쩍-

잠깐 환영의 지속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생각했을 때, 최상급 악마를 공격하고 있던 환영에게서 황금색 빛이 번쩍이더니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크억!”

[스킬 데미지! 3,646.]

[스킬 데미지…….]

게다가 연달아 폭발하는 환영. 그렇게 생겨난 폭발 데미지는 비록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데미지를 줬고, 난 아주 잠시나마 폭발의 충격에 비틀거리는 최상급 악마를 보고는 뇌룡의 포효와 녀석의 생명력을 비교했다.

‘된다!’

콰아앙!-

[뇌룡의 포효 발동!]

[모든 마나력이 소모됩니다.]

직감을 통해 뇌룡의 포효를 발동시키면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난 그대로 바닥을 향해 뇌룡의 포효를 내리찍었고, 그와 함께 황금색 전격이 퍼져나가 최상급 악마까지 휩쓸었다.

쿠오오오오!!-

그리고 그 전격 속에서 최상급 악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거기까지일 뿐이었다.

[전투 경험치 86,750 획득!]

[띠링!~ 'B랭크 스킬북'을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최상급 악마의 징표'를 획득하셨습니다.]

“후.”

힘들긴 힘드네.

두 번째 직감까지 사용했지만 전투 자체는 힘겹기 그지없었다. 그만큼 최상급 악마는 웬만한 보스보다 강했다. 적어도 레이드 보스인 우스트보다는 강하지 않을까?

‘근데 B랭크 스킬북?’

무려 최상급 악마를 잡았는데 나온 스킬북이 B랭크라니? 예전에 중급 악마를 잡았을 때도 B랭크 스킬북이 나왔다는 것을 떠올린 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악마왕을 잡아도 B랭크가 뜨는 건 아니겠지?

참고로 베아디 산맥에서의 전투로 내가 악마에게 획득한 스킬북은 총 네 권이었지만 그 네 권의 스킬은 전부 D~C랭크였다.

“이야~ 대단한데? 역시 네임드 플레이어야.”

“다른 곳 상황은?”

“다른 곳? 직접 봐봐.”

흑신은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라는 듯이 손짓을 했고, 난 고개를 돌려 다른 최상급 악마가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콰콰쾅!- 콰쾅!!-

“제기랄! 막아! 막으라고!”

“말만 하지 말고 네가 막아봐! 이 미친 자식아!”

남은 최상급 악마는 세 마리. 그 세 마리 중에 두 마리는 눈에 보이는 플레이어를 그야말로 학살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눈에 봐도 플레이어의 숫자가 확 줄어든 것이 보일 정도였는데, 못해도 몇백 명은 죽은 듯했다.

“그나마 상대하고 있는 곳은 저쪽일까?”

흑신의 말대로 남은 한 마리의 최상급 악마는 그럭저럭 상대하고 있었다. 상대하고 있는 이는 의외로 아이젠. 더군다나 아이젠은 홀로 최상급 악마를 상대하고 있었기에 내게 적지 않은 놀라움을 안겨줬다.

‘……근데 보조 마법을 몇 개나 받은 거야?’

현재 아이젠의 몸에는 수십 개의 형형색색 빛과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새하얀 빛이 함께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각종 보조 마법과 회복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막아내고 있다는 게 어딘가?

어쨌든 내가 최상급 악마를 해치운 탓에 조금은 여유가 생긴 근처 플레이어들은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도 잘 막아내는데?”

“아이젠이지? 엠페러 길드의?”

“엠페러 길드가 대단하긴 해. 다른 쪽은 수십 명이서도 막지 못하는데, 엠페러 길드에서는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잖아.”

“황혼 최강 길드라더니…….”

‘그나저나 어쩌지.’

최상급 악마가 나타나 싸우는 동안 악마왕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최상급 악마를 없앨 때까지 침묵을 유지하는 거 같았다. 그렇다면 이때 공격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와주지 않는 건가?”

“저쪽은 딱히 도와줄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

각종 보조 마법과 회복을 받고 있는 아이젠이 막아내는 사이에 다른 이들은 각종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저대로 놔둬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 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반대편은 정말인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 이대로 지구력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것보다 소환수를 악마왕에게 보내봐.”

“악마왕에게? 아아, 그렇군. 좋아, 네 말대로 해볼까.”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내가 악마왕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지금껏 계속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흑신은 근처에 있는 소환수를 악마왕에게 보냈다.

콰득- 콰득- 콰득-

‘응?’

하지만 소환수가 악마왕에게 다가가기가 무섭게 바닥에서는 수십 개의 촉수가 올라와 근처에 있는 소환수를 순식간에 찌르며 공격했다.

“악! 내 소환수가!”

‘왠지 촉수 숫자가 더 늘어난 거 같은데…….’

나타난 촉수의 숫자는 20~30개 정도였다. 보통은 2~3개. 많아봤자 7~8개 정도 올라오는 반면, 이번에는 그 몇 배나 되는 촉수가 올라온 것이다.

생명력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촉수 숫자까지 늘어나나?

“길마님! 최상급 악마가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뭐?!”

그 외침에 옆을 바라보니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최상급 악마를 피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를 뒤쫓아 사이좋게 달려오는 최상급 악마까지 본 흑신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저 씨발 새끼들이,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미친.’

마나력은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지구력은 절반조차 채워지지 않았다.

“물품 보관창.”

어쩔 수 없이 아이템 창을 열어 마르지 않는 치유의 물약을 포함해 시나에게 받은 각종 물약을 마셔 생명력과 마나력을 회복한 나는 점차 줄어드는 물약을 보며 남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생명력과 마나력이 5138/4830 회복합니다.]

[생명력과 마나력이 500/300 회복합니다.]

[마나력이 500 회복…….]

‘모아둔 물약을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다만 지구력만큼은 물약으로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지구력을 채워주는 물약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나가 준 레어 물약인 '환상의 영혼 치유 물약'이라면 지구력도 회복되겠지만 고작 5%를 회복하기 위해 마시기는 아까웠다.

이러나저러나 물약으로 회복을 끝낸 난 근처에서 플레이어를 잡아 죽이는 최상급 악마를 보았다.

“하찮은 모습과 걸맞게 도망치는구나!”

“여기 악마도 좀 잡아줘!”

“닥쳐 이 새끼들아! 여기로 왜 끌고 오는 거야?!”

‘저놈의 생명력이…….’

생명력을 떠올리자 대략적으로 70%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선전했다고 해야 되나? 마냥 도망치기만 한 건 아닌 듯했다.

파밧!-

“……?”

뭐지?

한참을 학살하고 있던 최상급 악마는 순간 검은색 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악마왕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악마왕에게 날아간 검은색 빛은 두 개. 물약으로 회복하는 사이에 아이젠이 맡았던 최상급 악마도 처리한 거 같았지만, 다들 갑작스레 일어난 이 상황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여줬다.

“뭐야? 왜 싸우다 말고 사라져?”

“악마왕에게 갔는데?”

“야! 악마왕의 생명력을 체크해!”

“에, 예!”

그 뒤를 이어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이 들려왔다. 그러나 난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악마왕을 주시했고, 황당하게도 악마왕의 생명력이 절반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63%입니다!”

“생명력이 더 늘었잖아!”

‘오히려 다행이지 않나?’

생명력이 늘어나는 거야 짜증나는 일이지만 최상급 악마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좋았다. 적어도 악마왕은 스킬만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부분의 스킬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있는 만큼 지금 상황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뭐해?! 빨리 공격이나 해!”

‘인원이 많이 줄어든 건 아쉽지만.’

못해도 1천 명 이상은 죽었을 것이다. 만일 나와 아이젠이 한 마리씩 맡아 없애지 못했지만 인원은 지금보다 훨씬 줄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면 전투를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 정도로 인원이 줄어든 게 아니었다.

“공격해! 공격!”

“이번에야 말로 죽여주마!”

곧이어 펼쳐진 플레이어의 공격. 난 그런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고는 자리에 앉아 지구력을 회복하기 위한 휴식을 취했다.

콰앙!- 콰콰쾅!!-

최상급 악마가 사라진 탓인지 플레이어의 표정은 한결 여유가 있었다. 지금과 같이 무난하게 공격이 이어진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지만 이상하게 최상급 악마를 소환한 스킬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스킬을 두 번이나 쓰지는 않겠지?

지잉-

‘윽.’

단순히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 어처구니없게도 직감은 앞으로 한 번 더 사용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친. 그걸 한 번 더 사용한다고?’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검게 물든 파괴의 폭풍을 사용합니다.]

콰콰콰콱!!-

직감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내는 동안 악마왕은 회오리를 소환하는 등의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회오리는 악마왕 바로 앞에 만들어졌고, 그런 회오리에 휩쓸리는 것은 소환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타락의 빛이었나?

그걸 다시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플레이어들은 있는 힘껏 악마왕을 공격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