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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179화 (179/211)

00179  第 39 話  =========================================================================

第 39 話 “55일째”

“루딘 님. 괜찮으세요?”

다른 이들의 비해 느긋할 정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내게 화련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의미는 뭘까? 내용을 추측한다면 주변에서 떠드는 대화를 그녀도 들은 거 같았지만 생각해보면 듣지 못한 것도 이상했다.

“괜찮죠. 문제될 건 없잖아요.”

그 대답과 함께 마탄 폭격기의 사거리까지 다가선 난 그대로 탄환을 쏟아내며 악마왕을 공격했고, 동시에 달려든 플레이어의 전황까지도 살펴보았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촉수로 인해 쉽지 않은 전투가 펼쳐지는 듯했으나 다들 실력이 없지는 않은지 촉수를 간간히 없애는 장면까지도 볼 수 있었다.

쾅쾅쾅!-

[마탄 폭격기의 저장된 모든 마나가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5초 후 자동으로 채워집니다.]

‘쯧.’

10초 뒤, 다시 마나가 떨어진 마탄 폭격기를 바닥으로 향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화련이 의아하게 물어봤다.

“공격 안 하세요?”

“탄환이 떨어져서요.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왠지 신기하네요. 황혼에 그런 무기도 있다는 게.”

근데 화련은 공격 안 할 건가?

현재 나와 악마왕의 거리는 200미터 정도 떨어진 상태다. 마법 계열 스킬을 배우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마법은 거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거예요?”

“아뇨, 슬슬 움직여야죠.”

내 질문에 화련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악마왕을 향해 움직였다. 덕분에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있었는데, 이는 마탄 폭격기의 사거리 정도로 공격이 가능한 플레이어가 없어 그런 거 같았다.

‘편하긴 하네.’

쓸데없이 떠드는 사람도 없이 혼자 있으니 그럭저럭 편하기는 했다. 솔직히 말해 아까 수군거렸던 건 불편했으니까.

‘그나저나…….’

공략은 순조롭나?

콰앙!- 콰콰쾅!!-

살펴보니 다들 수차례의 공격을 하고 있었지만 그게 잘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겉으로는 딱히 문제없이 공격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들어간 데미지는 얼마나 될지 모르니 말이다.

게다가 악마왕은 지금껏 나타나지 않은 월드 보스였으니 방어력을 비롯해 속성 저항력까지도 높을 듯했다.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검게 물든 파괴의 폭풍을 사용합니다.]

악마들은 빙산 낙하로 쓸어버린지 오래. 노래는 이미 불렀고, 촉수 공격은 먹히지도 않으니 새로운 패턴의 공격을 시도하는 악마왕이었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스킬이었다.

“회오리다! 거리를 벌려!”

“가까이 다가가면 휩쓸려 죽는다!”

이때까지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인터넷에 올라온 탓에 다들 어떤 스킬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하던 공격을 중단하고 거리를 벌렸고, 이내 악마왕 앞으로는 거대한 회오리가 생겨났다.

문제는 어떤 스킬인지는 알지만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사실상 회오리 근처에만 다가가도 빨려 들어가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걸 아는지 거리만 벌린 채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지만 몇몇 플레이어는 회오리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가서 악마왕을 공격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전 물약으로 노래 공격을 버텨냈던 플레이어였다.

‘아주 작정을 하고 왔군.’

“우와!~ 저 사람들은 누구지?”

“꽤 치열하게 싸우는데.”

문득, 낯선 소리에 뒤를 돌아본 난 꽤 많은 수의 플레이어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들은…… 잠시 살펴보니 왠지 모르게 익숙한 한 명이 보인다고 할까? 공교롭게도 그쪽 역시 날 발견했는지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엇?! 루딘이다!”

“루디이인!”

누군가 했더니 용감무쌍 길드였나?

어렵지 않게 누군지 파악한 나는 내 아이디를 크게 외치며 달려오는 플레이어. 흑신을 보았다. 달려오는 기세만 보면 나를 잡아 죽일 듯이 보였지만 내가 마탄 폭격기를 그놈에게 겨누자 달려오던 흑신은 순간 발을 멈췄다.

‘감이 좋다고 해야 되나?’

이 무기에 대해 모를 텐데 발을 멈추다니.

“네놈이 감히!”

“감히 뭐?”

덧붙여 말하자면 이놈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지팡이 때문이라 하기에는 조금 과격한 반응. 하지만 이내 다시 외치는 녀석의 말을 들으니 대충이나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보낸 길드원을 두 번이나 걷어차?!”

“직접 오라고 말했잖아.”

대답하기는 했지만 녀석의 상태를 보니 들은 거 같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 싸워? 싸우더라도 별로 상관은 없지만 안타깝게도 흑신 주위에 있는 몇몇 길드원들이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격과는 다르게 인복 하나만은 있는 듯하다.

“길마님, 진정하세요!”

“여기서 싸우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다행히 길드원의 만류에 정신을 차린 흑신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날 노려보았다.

“긴말하지 않겠다. 지팡이를 내놔라.”

“미친. 칼만 안 들었지, 강도가 따로 없네.”

“나도 그냥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아. 1천 골드를 주마. 그 정도 골드라면 시세와 맞을 테니까.”

‘어디보자, 현재 시세가 1만 원에 50실버였으니…….’

계산하면 2천만 원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레어 아이템도 어느 정도 풀려 전체적인 가격이 내려갔으니 7강 지팡이라면 2천만 원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부족한데?”

“뭣? 부족해?!”

“아, 길마님!”

내 대답에 다시 발끈하며 덤벼드려는 흑신. 저놈은 이기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덤비려는 걸까? 물론 흑신이 데려온 길드원의 숫자는 많았지만 그게 결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크, 좋다. 어떻게 하면 돌려줄 거지?”

“그냥 새로 구해.”

아무리 소환 계열의 아이템이 희귀하더라도 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주제에 저런 반응까지 보이는 걸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반대로 누군가가 내 뇌룡의 포효를 가져갔다고 하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했다.

어쨌든 계속해서 발끈하는 흑신을 내버려둔 채 악마왕을 보니 다들 회오리를 필사적으로 피하며 악마왕을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법을 쓰는 플레이어들이야 비교적 간단하게 공격하고 있었지만 근접 위주로 싸우는 플레이어는 이리저리 달린다고 여러모로 고생하는 듯했다.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가시를 사용합니다.]

‘죽음의 가시?’

어? 저 스킬은 분명…….

콰콰쾅!!-

순식간에 발동되는 스킬이라 떠올리기도 전에 악마왕 주위로는 수백 개의 가시가 올라왔다. 거의 가슴팍까지 올라온 얇고 뾰족한 가시는 근처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를 꿰뚫었고, 그 또한 부족해 위로 올린 악마왕의 손짓에 따라 가시는 천천히 하늘 높이 떠올랐다.

“젠장! 피해!”

“전력으로 달아나라!”

“빨리 뛰어!”

이번 공격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플레이어. 때문에 각자 도망치는 움직임이 보였지만 하늘로 올라간 가시는 곧이어 사방으로 내리꽂혔다.

콰콰콰콱!!-

“아악!”

수백 개의 검은 가시가 바닥에 꽂히는 소리와 함께 플레이어의 비명 또한 간간히 들려왔는데, 어찌 됐든 그렇게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미친, 몇 명이 죽은 거야?’

모르긴 몰라도 가까이 붙어 싸우는 근접 놈들은 거의 전멸한 거 같았다. 솟아오른 가시보다는 떨어지는 가시로 많은 플레이어가 죽었지만 다행이라면 처음부터 거리를 벌린 채 싸우던 플레이어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다만 방금 악마왕이 펼친 공격으로 못해도 200~300명의 플레이어가 죽은 탓에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르넬라는 어떻게든 살아남은 모양이군.’

노래 공격, 회오리 공격, 심지어 가시 공격을 받았음에도 아르넬라는 무사히 살아 있었다. 아르넬라와 같은 레이드 보스를 몇 마리만 더 봉인할 수 있었다면 악마왕이고 뭐고 쉽게 해결했을 거란 생각이 들 만큼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어이, 저 악마왕 생명력이 얼마 남았는지 체크해봐.”

“예, 대상 관찰!”

잠깐 가시 공격에 죽은 플레이어를 살펴보고 있을 때, 뒤에서는 흑신과 그의 길드원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리고 대상 관찰이라는 스킬을 사용한 플레이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간단하게 대답했다.

“83% 남았습니다.”

“쳇, 아직도 많이 남았군.”

‘83%?’

아르넬라의 빙산 낙하를 두 번이나 맞고, 이어 각종 마법 공격과 1천 명의 가까운 인원이 공격했는데도 고작 17% 깎였다는 건가? 못해도 30% 정도는 깎였을 거라 생각한 내게 지금 들리는 대화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래서야 아르넬라가 역소환 되는 게 빠르겠네.’

만일 아르넬라와 같은 레이드 보스를 두 마리만 봉인이 됐어도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르넬라가 역소환 되더라도 다른 레이드 보스를 꺼내면 되니까.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가 않으니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하, 왠지 고민이 많으신 얼굴이군요.”

그때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건네왔다. 돌아보니 용감무쌍 길드의 사람인 거 같은데, 내가 왜 왔냐는 듯이 빤히 쳐다보자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계속해 말했다.

“보니까 악마왕을 잡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요.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대답은 했다.

“그렇다면 저희 길드와 악마왕을 잡을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길마님의 지팡이를 1천 골드에 교환해준다는 조건으로요.”

“……?”

이건 무슨 헛소리지?

지금 하르페 제국의 길드가 연합해 악마왕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멋대로 돕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르는 마당에 도와준다고 말한 녀석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참고로 저희는 레이드 규칙상 지금 싸우고 있는 저들이 전멸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쪽 인원이 전멸하면 다음은 그쪽 차례인데 거기에 나까지 참여시켜 준다고요?”

“예, 나쁜 조건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만?”

‘원래 레이드가 이런가?’

녀석의 말대로 우리 쪽 인원이 전멸하면 자연스레 용감무쌍 길드가 나서 싸울 것이다. 그걸 저기 있는 연합 길드가 용납할까? 전멸했다면 다른 사람이 나서도 할 말이 없겠지만 거기에 나까지 끼어있으면…….

‘아니, 상관없지.’

애당초 아르넬라를 소환했는데도 부정적으로 떠들던 녀석들이다. 괜히 신경 쓸 이유는 없다. 때문에 난 내 이득만을 생각했는데, 녀석의 말대로 악마왕과 싸우고 있는 연합 길드가 전멸한다면 나로서는 용감무쌍 길드라는 하나의 보험으로 다시 한 번 싸우게 되는 셈이다.

“뭐, 괜찮네요.”

“정말입니까?”

“대신 지팡이는 악마왕을 잡았을 때 드리죠.”

“하하, 잡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마치 그건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는 길드원이었다. 아무래도 잡을 가능성보다 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악마왕을 잡으면 값을 낮추는 게…….”

“잡기만 한다면 낮춰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그런데 내가 왜 이 녀석이랑 협상하고 있는 걸까?

간단하게 연합 길드가 악마왕을 잡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그럼 지금의 협상 따위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봤을 때, 연합 길드가 악마왕을 잡을 가능성은 조금 희박한 거 같았다.

‘전멸하면 그냥 확 끼어들어?’

용감무쌍 길드가 나설 때 내가 멋대로 끼어드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분명 잡지 못할 게 뻔했다. 흑신 녀석의 성격으로 볼 때 악마왕보다 날 잡으려고 할 테니 말이다.

[플레이어 '시즈' 님께서 영상 기록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거절하시면 기록된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가 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응?’

뜬금없이 영상 기록에 관한 메시지가 생겨나자 용감무쌍 길드원을 바라봤는데, 그 길드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별 뜻은 없습니다. 증거는 남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별짓을 다 하는군.’

어지간히 불안한 모양이다. 설마 내가 그 지팡이를 가지고 도망칠까?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도망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 거겠지만 어쨌든 난 그 영상 기록을 수락해 악마왕을 잡으면 소정의 골드로 지팡이를 돌려준다는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이러나저러나 용감무쌍 길드에 대한 보험 작업도 끝난 거 같았다. 때문에 난 악마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웬일인지 촉수 공격에 이리저리 허둥대는 연합 길드를 엿볼 수 있었다.

‘설마 근접 계열의 인원이 없어서 그런가.’

활을 쏘는 사람들이야 그나마 촉수 공격에 반응하며 어떻게든 공격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민첩이 낮은 마법 계열의 사람들은 촉수 공격에 그대로 꿰뚫리고 있었다.

‘그리고 근접 계열이 없는 걸 보니…….’

처음에 물약을 마시면서 꿋꿋하게 공격해 큰 인상을 남겼던 플레이어들마저 전멸한 거 같았다.

불쌍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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