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4 第 38 話 =========================================================================
第 38 話 “53일째”
“자, 오늘은 제가 살 테니 마음껏 드세요.”
“잘 먹을게.”
선심 쓰듯이 말하는 시나와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유아. 난 그런 그녀들을 보고는 앞에 놓인 음식 하나를 집어 먹었다. 이렇게 현실에서 셋이 모인 이유는 일주일 전에 실시간 경매장으로 돈을 벌어들인 시나가 웬일인지 점심을 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놈의 악마왕을 어떻게 하지.’
이틀 전, 수천 명의 플레이어와 함께 악마왕 레이드에 나선 나는 처참한 패배를 맛볼 수 있었다. 촉수로 인해 진형이 흐트러지고, 노래를 불러 주변 인원을 학살하니 싸우고 말고도 없었지만.
또 일이 그렇게 된 이유는 사전 정보가 부족한 탓일지도 몰랐다.
노래가 들리면 그냥 뒤로 물러설 것이지, 이걸 어떻게 막아?! 하며 우왕좌왕거리는 플레이어로 인해 전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노래 하나만으로 남은 인원은 1천 명 정도로 확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괜찮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놈의 악마왕은 죽은 플레이어의 시체를 가지고 하급, 중급 악마까지 만들어내 그나마 남아 있던 플레이어들의 전의마저 잃게 만들었다.
뭐, 결과적으로 레이드는 고사하고 악마왕의 전력만 더 증가시킨 셈이다.
이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플레이어는 주저하지 않고 도망치고 말았고,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난 하는 수 없이 그런 플레이어와 함께 도망치는 것으로 첫 악마왕 레이드를 장식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원 씨. 어제 경매장 참여했어요?”
“아뇨, 바빠서 생각도 못했어요.”
거짓말은 아니다. 어제는 마을에서 대기하면서 세 차례나 레이드를 뛰었으니까. 덕분에 실시간 경매장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템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이미 억 단위의 돈을 벌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그래요?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하던데.”
“사람들이 왜 아쉬워해요?”
“레이드 장비잖아요. 구경이라고 하고 싶어서인지 어제 경매장 참여 인원수는 첫날보다 훨씬 많았대요.”
“…….”
알게 뭐야.
누군 악마왕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깟 레이드 장비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다니. 그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실시간 경매장에서 물품을 올릴 정도로 난 한가롭지 못했다.
“그것보다 집 앞에 아직도 사람 많아요?”
“어제는 거의 없었어요. 몇 명은 숨어서 지켜보는 거 같지만.”
숨어서 지켜본다고?
“덕분에 귀환 스크롤도 못 쓰고 힘들어요. 처음에는 귀환 스크롤 없이 게임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음.’
귀환 스크롤 이야기가 나오니 하나 생각나는 게 있었다. 내가 길드성으로 가는 귀환 스크롤을 준다면 그 문제에 대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렇게 하면 길드에 가입해야 될 텐데, 시나는 길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겠죠.”
이러나저러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거기까지만 말한 난 마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것도 드세요.”
“아, 고마워요.”
그때 옆에 있던 유아가 어떤 음식을 챙겨줬고, 나는 그런 유아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시나에게는 별로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는지 조금은 불만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근데 둘은 언제까지 말을 높일 거예요? 나이도 같잖아요.”
참고로 나와 유아. 시나는 모두 같은 나이다.
“시나 씨에게도 말을 높이잖아요?”
“시나가 아니라 신아에요. 그리고 전 상관없지만 둘은 사귀는 사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시나의 이름을 들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시나라고 부르고 있었던 거 같았다. 지금까지는 지적하지 않아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편하게 말하세요. 보고 있으니 답답해서 그러니까.”
“뭐, 예.”
“그리고 유아, 너도 그래. 남자 친구가 게임만 하게 놔둘 생각이야?”
그 물음에 유아는 딱히 생각나는 대답이 없는지 어물쩍거리는 태도를 취했고, 덩달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황혼이 비추는 거리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를…….]
‘후.’
결코 순탄치 않았던 점심 식사가 끝나자마자 시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듯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유아와 함께 몇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온 난 그제야 황혼에 접속할 수 있었다.
‘오늘은 악마왕을 잡을 수 있으려나.’
[현재 네이라의 영혼 침식도 32%.]
생각과 함께 영혼 침식도를 확인해보니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남은 시간으로 따지면 일주일 정도? 이 일주일 안에 악마왕을 어떻게 해야 되지만 어제 세 차례나 있었던 전투를 생각하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놈의 노래가 문제이긴 한데.’
악마왕이 부르는 노래만 없어진다면 어떻게 공략 방법이 있을 거 같지만 그 노래가 계속 발목을 붙잡았다. 초당 100의 생명력이 빠지니 사람들은 회복 스킬을 사용해야만 했고, 회복 스킬을 사용하면 지구력이 떨어져 이후 전투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경우를 대비해 몇몇 사람들은 물약으로 채우긴 했지만…… 도합 1만 8천의 데미지를 물약으로 채우려면 대체 몇 병을 마셔야 될까?
“자자, 이번에는 꼭 성공하도록 해요!”
“물약 팝니다! 회복하기에 딱 좋은 물약 팝니다!”
웅성~ 웅성~
그나저나 접속하고 둘러보니 상당수의 플레이어가 있었다. 아마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난 대충 둘러봐도 바글바글 거리는 플레이어 사이에서 악마왕에게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그런 사람을 찾기도 전에 어떤 외침이 들려왔다.
“마을 밖에 악마왕 있어요!”
“지금 나가시면 안 됩니다! 다른 쪽 문으로 가세요!”
‘악마왕이 움직이고 있나?’
확실히 베아디 산맥에서 부활한 악마왕이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산맥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만 봐도 악마왕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하루 만에 마을 근처까지 왔다는 것은…….
‘뭐, 현실에서 하루라도 황혼에서는 이틀이니.’
그래도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몬스터가 마을 안으로 들어온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니 그 부분을 이용하면 공략 방법도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어떤 메시지가 생겨났다.
[경고! 이제 5분 뒤,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마을을 공격합니다.]
[마을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없을 경우, 이 마을은 악마왕 아그라네스에게 함락된 것으로 판단하며 모든 NPC들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마을에 있는 시설 또한 이용할 수 없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어, 엇?! 이게 뭐야?!”
“5분 뒤에 악마왕이 공격한다!”
‘이런 것도 있다니.’
메시지를 읽은 난 주변부터 훑어보았다. 메시지야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받았는지 다들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는데, 난 그런 사람들보다 이 마을에 지형을 살펴보았다.
카르젠 왕국의 수도와 떨어진 외각에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거의 나무로 된 집이 한가득했다. 당연히 마을 주변도 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었지만 그 나무 울타리를 제외하고 본다면 집과 같은 지형지물이 많아 그럭저럭 싸울 수는 있을 듯했다.
‘그래도 다행이긴 하네.’
만일 접속하는 시간이 10분만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난 영문도 모르고 싸우는 전장 속에서 접속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거나 난 아이템 창에서 마탄 폭격기를 꺼내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비켜!”
“고, 공간이동 장치!”
그와 반대로 도망치는 플레이어도 보였지만 말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도움도 되지 않는 플레이어가 몇백 명 있을 바에야 나 혼자 싸우는 편이 좋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싸워야 되나?”
문득 든 생각. 마땅한 대책도 세워지지 않은 마당에 싸워봤자 승산이 없었다. 어쩌면 도망치는 플레이어가 현명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싸울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직접 찾아오다니. 갈 수고를 덜었군.”
“이제 3분도 안 남았다!”
“노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못해도 2~3천 명 정도. 지금까지의 악마왕을 생각하면 적은 숫자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남아서 싸우려는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또 시간이 지나자 마을 밖으로는 서서히 미끄러지듯이 다가오는 악마왕과 수십 마리의 하급, 중급 악마들이 보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상급 악마가 없다는 정도랄까? 저 정도 악마들이라면 플레이어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듯했다.
[악마왕 아그라네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마탄 폭격기 사거리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까지 싸워본 결과로는 마탄 폭격기의 사거리는 50미터. 여기서 강화 옵션으로 200미터가 늘어나 총 250미터가 되었지만, 반대로 악마왕의 노래 반경은 300미터 정도였다.
만일 레어 무기 강화석으로 몇 번 더 강화한다면 노래 반경에서 벗어나 공격할 수 있을 테지만 아직 그 레어 강화석이 없는 관계로 어쩔 수 없었다.
콰득- 콰득-
“……!?”
순간, 바닥에서 올라오는 검은색 촉수. 지금까지는 모든 플레이어가 우르르 몰려가서 몰랐지만 이제 보니 촉수는 악마왕의 시야가 닿는 범위 어디서든 소환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뭐, 뭐야?! 왜 촉수가 튀어나와!”
“뭐하고 있어?!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없애버려!”
“제기랄!”
탓-
난 바닥에서 올라와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를 찌르는 촉수를 보고는 재빨리 나무 집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아직 촉수를 없애지 못해 도망 다니고 있는 곳을 찾아 마탄 폭격기에 방아쇠를 당겼다.
쾅쾅쾅쾅쾅!!-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푸른색 탄환. 이미 이틀 간 사용한 탓에 익숙해져 적중률도 그럭저럭 높았고, 덕분에 대부분의 탄환을 꿈틀거리는 촉수에 명중시킬 수 있었다.
[적중 데미지! 1,066.]
[적중 데미지…….]
‘끝났군.’
거의 3초 만에 촉수 하나를 없앤 나는 다른 곳을 살펴봤지만 위험한 곳은 없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런 촉수 말고 본체를 공격해야 될 텐데…….
콰득- 콰득- 콰득-
하지만 모든 이들이 촉수를 없애기도 전에 다시 몇십 개의 촉수가 올라왔다. 처음 나타난 숫자보다 훨씬 많았는데, 그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아놔, 왜 자꾸 튀어나와!”
물론 모든 이들이 촉수만 상대하는 건 아니다. 몇백 명은 마을 내에서 튀어나오는 촉수를 무시한 채 악마왕에게 달려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미 악마왕의 주변에는 수십 마리의 악마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또 저 정도 인원이 몰려가면 분명 노래를 불렀다.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절망을 이끄는 노래를 사용합니다.]
역시.
“씨발, 노래다!”
“회복!”
“뒤로 물러나!”
회복이나 물약을 마시면서 싸운다면 어떻게든 데미지를 입힐 수야 있겠지만 손해가 심했다. 저 악마왕의 생명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데 고작 데미지 얼마 입혔다고 죽겠는가? 난 공격하는 대신 거리를 벌려 노래 범위에서 벗어났다.
“젠장, 일단 물러난다!”
“빨리 거기서 비켜! 나 죽는다!”
그리고 3분이 지나 노래가 끝나자마자 곧장 악마왕을 향해 달렸다. 노래가 끝났으니 당분간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고, 그때까지 최대한 데미지를 입혀야만 했다.
탓-
‘이 정도면…….’
아직 악마왕과 거리가 있지만 마탄 폭격기의 사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 난 방아쇠를 당겼고, 그와 함께 푸른색 탄환이 악마왕을 향해 쏘아졌다.
쾅쾅쾅쾅쾅!!-
[적중 데미지! 51.]
[적중 데미지…….]
“엇?! 저 무기 뭐야?!”
“총 같은데?”
“미친, 밸런스 파괴 무기잖아!”
밸런스 파괴 무기라…….
지붕 위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내 모습을 발견한 플레이어들은 뭐라 외치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지금 내가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7초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마탄 폭격기의 저장된 모든 마나가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5초 후 자동으로 채워집니다.]
‘후, 벌써 끝나다니.’
처음 이 마탄 폭격기는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라 생각했지만 10초 사용하고 나면 5초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30발 쏘고 5초는 기다려야 된다는 말인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괜찮은 무기임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