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1 第 37 話 =========================================================================
第 37 話 “51일째”
콰아앙!!-
[뇌룡의 포효 발동!]
[모든 마나력이 소모됩니다.]
쿠오오오오!!-
흑신이 사용했던 공포의 외침. 그 소름끼치는 소리와는 달랐다. 마치 위엄마저 깃든 짐승의 울부짖음과 함께 황금색 전격이 사방으로 휘몰아쳤고, 그 전격에 휩쓸린 용감무쌍 길드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스킬 데미지! 10,093.]
[스킬 데미지…….]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를…….]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군.’
S랭크 스킬을 배웠다고 기고만장하던 흑신을 손쉽게 없애버린 난 천천히 둘러보며 남은 인원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직도 많네.’
더군다나 환영까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덕분에 붉은 태양 길드원도 모두 전멸당한 거 같은데, 한 가지 의외인 것은 그럼에도 내게 덤벼드는 놈이 없다는 거였다.
남은 적은 나 하나밖에 없는데도 덤벼들지 않다니?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미 전멸해버린 붉은 태양 길드원이 떠올랐다.
‘후, 적성 이 병신 같은 놈.’
멋대로 덤벼들지 않았으면 길드원도 전멸당하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내게 덤벼드는 놈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또 붉은 태양 길드원이 전멸한 마당에 나 혼자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난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부터 살펴보았다.
한눈에 봐도 수십 개나 되는 아이템이 내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인원을 단번에 죽인 증거로 떨어진 아이템. 이중에는 흑신의 아이템도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난 아이템 창을 열어 겉으로 봐도 등급이 낮아 보이는 아이템을 버린 뒤, 비교적 비싸 보이는 아이템을 주워 담았다.
“와, 아이템을 버리기까지 하다니.”
“부럽다.”
‘……부럽기는.’
내가 이 자리를 떠나는 순간, 저것들은 개떼처럼 달려들어 아이템을 주워갈 게 분명했다. 아무튼 간단하게 아이템 정리를 끝내고는 시작 지점에 서 있는 용감무쌍 놈들에게 다가가자 그놈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씨, 씨발, 어떻게 하지?”
“한꺼번에 달려들면…… 안 되겠지?”
“지금 절반이 넘는 인원이 죽었는데 무슨 헛소리야!”
“그리고 길마님까지 죽었잖아.”
“…….”
이야기를 들어보니 왠지 싸우지 않고도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싸운다고 해도 상관이야 없지만 흑신 놈에게 복수도 성공했고, 이제 붉은 태양 길드원이 접속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인지라 되도록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친다면 공격하지 않겠다.”
예상대로 내 말의 크게 동요하는 용감무쌍 길드원들. 언뜻 살펴봐도 남은 인원은 200명 정도였다. 내가 죽인 숫자는 100여 명이 안 되니 나머지 200명 이상은 환영이 죽였다는 말인데, 어찌 됐든 내가 내뱉은 말에 그들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도, 도망치면 살 수 있나?”
“도망치면 길마나 간부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럼? 여기서 계속 죽자고?”
뭐, 저들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이지만.
싸운다고 해도 가망이 없고, 도망친다고 해도 나중에 누군가가 알리기라도 한다면 길드 내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없을 테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런 사정까지 생각한다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봐줄 수도 없는 일.
저벅-
난 그런 그들의 결정을 쉽게 정할 수 있도록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실제로 공격 범위 안까지 들어오면 주저 없이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들 중 하나는 천천히 걸어오는 날 보고는 이내 뒤돌아 도망쳤다.
“아, 나 몰라!”
“야! 임마! 나도 같이 가!”
한 명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나머지 인원들도 뒤따라 우르르 도망친다. 순식간에 확 줄어든 인원. 남은 놈들도 어떻게 해야 될지 망설이다 곧이어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도망쳤고, 결국 그런 식으로 시작 지점에 있는 모든 인원을 다 보내버릴 수 있었다.
파밧!-
동시에 대략 10여 명의 인원이 동시에 접속하는가 싶더니 이어 줄줄이 접속하는 플레이어. 아무래도 붉은 태양 길드원 같았다. 그 붉은 태양 길드원은 접속하자마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용감무쌍 길드가 없는데?”
“길마님도 안 보여.”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난 건가?’
적성과 그의 길드원이 전멸당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적성이 원했던 결과는 이끌어낸 셈이다. 난 이때까지 있었던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접속한 붉은 태양 길드원에게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루딘 님.”
이후 2시간 정도 기다리자 적성은 다시 접속했고, 시작 지점에 배치된 자신의 길드원을 확인하고는 내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물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용감무쌍 길드원이 접속을 시도하긴 했지만 지금 이곳에 배치된 붉은 태양 길드원의 숫자만 400명이었다.
접속할 때에는 잠시간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때 집중 공격을 하면 웬만한 상대는 곧장 죽일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후 용감무쌍 길드와 동맹을 맺은 또 다른 길드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루딘 님이 말씀하신 상자입니다.”
감사의 말을 전한 적성은 곧바로 거래 신청을 통해 명품관 상자 두 개를 건네주었다.
무려 500골드나 하는 명품관 상자가 두 개.
‘이걸로 유니크 아이템 두 개는 뽑을 수 있겠군.’
어떤 아이템이 나올까? 덜도 말고 유니크 활이 나왔으면 했다. 유니크 활만 나온다면 내 파괴화살의 위력도 한층 강해질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죄송하지만 루딘 님. 이후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그건 왜요?”
“한 3일. 그때까지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3일이라…….’
너무 길지 않나?
적성의 말은 3일간 용감무쌍 길드와의 전투를 도와달라는 말인데, 상황을 보면 나 혼자 미친 듯이 싸워야 될 거 같았다. 그만큼 현재 붉은 태양 길드가 위태로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접속한 인원이라고 해봐야 400명.
3천 명에 해당하는 용감무쌍 길드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인데다 동맹 길드까지 생각한다면 400명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붉은 태양 길드도 동맹 길드가 있지 않나?’
동맹하니 거기에 관한 생각까지 떠오른 난 적성에게 물어보았다.
“동맹 길드는요?”
“연락했지만…… 도와줄 수 없다더군요.”
“이 인원으로 해결해야 된다. 이거네요.”
“예.”
400명의 인원으로 해결하려면 아무래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있다고 해도 피해는 어쩔 수 없이 생길 것이다. 이전 전투에서도 그렇듯이 8명의 붉은 태양 길드원도 전멸 당했으니까. 또 한 차례 싸움이 벌어진다면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까?
단지 죽은 인원이 8명에서 400명으로 바뀔 뿐이다.
‘내가 돕는다고 해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군.’
“곤란하신가 보군요.”
문득 내 표정을 살펴본 적성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어? 투혼 길드다!”
“전부 준비해! 투혼 길드가 왔다!”
“……?”
투혼 길드라는 말에 확인해보니 머리 위에 적대 표시를 단 수많은 인원이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몇 명이지? 자세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못해도 700~800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그들은 의외로 싸울 생각이 없는지 다가오던 걸음을 멈췄고, 이내 10여 명 정도의 인원만 다가왔다.
“적성이었나? 아무튼 오랜만이군. 설마 다른 사람의 손까지 빌려 일어설 줄이야.”
“무슨 일로 왔지?”
“중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거든. 이유야 어찌 됐든 서로에게 피해가 가는 짓은 그만하자고 하던데?”
‘흑신 그놈이 그렇게 말했나?’
만일 이 전투가 계속 지속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았다. 나야 시작 지점에 있을 테고, 적대 놈들이 나타나는 족족 죽일 것이다. 확실한 건 이미 내게 죽은 흑신 그놈은 절대 접속하지 못할 거라는 정도? 또 접속하지 않는 녀석을 보니 그놈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받아드릴 거라 생각했나?”
“그럼? 싸우기라도 하려고? 아니면 이 정도 인원이야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나? 저녁이 되면 이보다 두 배 이상의 인원을 모을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않나보군.”
“…….”
“이건 네게도 기회야.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한 녀석이 흑신이니까. 네가 받아드리기만 한다면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얌전히 있겠다고 했으니 너도 그때까지 재정비를 할 수 있지 않나?”
“루딘 님을 경계하는 거로군.”
그런 적성에 말에 상대방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몰라도 루딘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지. 들어보니 녀석에게 300명 넘게 당했다던데. 아, 당신이 루딘인가?”
말을 하는 도중, 내게 시선을 옮긴 그 플레이어와 마주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훑어봤는데, 이제는 저런 시선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긴, 혼자서 몇백 명을 죽일 실력이라면 레이드도 뛸 수 있겠지.”
‘그럴까?’
나를 훑어본 그는 스스로 납득한 듯이 말했지만 솔직히 내 실력으로는 기껏해야 투루밖에 잡을 수 없을 거 같았다. 데로나크와 하이츠는 어림도 없다는 말이지만 녀석은 거기까지 생각을 못한 듯했다.
“그보다 적성. 네 의견이 궁금한데.”
“그놈이 뺏은 던전. 그걸 돌려준다면 받아들이지.”
‘응?’
적성은 길게 끌 것도 없이 조건을 제시했다. 적대 관계 해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어쩌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렵지 않군. 지금쯤이면 그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구했을 테니.”
아직 이름도 모르는 플레이어는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곧이어 옆에 있는 길드원에게 말했다.
“그 조건으로 흑신 놈에게 연락해봐.”
“예.”
그리고는 접속을 종료하는 길드원. 대략 몇 분 정도 기다리니 다시 접속하는 길드원을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현실에서 흑신과 대화를 나누고 온 모양이었다.
“받아들이겠답니다.”
“역시. 그럼 슬슬 접속하라고 해.”
“예.”
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접속을 종료하는 길드원.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불쌍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지금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붉은 태양 길드원은 지금껏 긴장한 표정을 살짝 누그러뜨렸고, 이후 용감무쌍 길드 마스터인 흑신이 접속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크, 운도 좋은 새끼.”
접속하자마자 적성에게 그 말을 내뱉은 흑신.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적대 관계나 풀어.”
“아아, 좋아. 하지만 명심해라.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됐기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뭔 준비야?’
녀석이 말한 준비가 뭘까? 거기에 대해 생각해보니 아마도 S랭크 스킬의 효율을 최대한 이끌어낼 스킬이나 장비를 갖추지 못한 거 같았다. 근데 S랭크 스킬이라 해봐야 범위 지속 데미지가 아니었나?
‘……아니, S랭크 스킬이 고작 그 따위 효과밖에 없을 리가 없지.’
그럼 다른 효과가 뭔지 생각한 나는 처음에 시체 없이 해골 기사를 뽑아낸 게 마음에 걸렸다. 사멸지대인지 뭔지 하는 스킬은 시체 없이 해골 기사를 뽑아낼 수 있는 스킬이지 않을까?
어쨌든 적성과 대화를 나눈 흑신은 적대 관계를 해제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에 나타난 적대 표시도 사라졌는데, 그렇게 적대 관계를 해제하자마자 흑신은 나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제보한 거 때문에 이렇게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뭘 받기로 했나보지?”
‘응?’
무슨 말이야? 흑신은 내가 적성에게 뭘 받은 대가로 싸웠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지만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그저 말없이 흑신을 바라보았다.
“칫, 고작 한 놈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다니.”
흑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내게서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는 이내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적대 관계가 풀려버린 지금, 내가 용감무쌍 길드를 공격하기 위해선 엠페러 길드 쪽에서 적대 관계를 신청해야만 했다.
물론 아이젠에게 부탁하면 적대 관계야 신청해주겠지만…….
‘지금은 명품관 상자에 집중하자.’
모든 걸 떠나서 명품관 상자 두 개를 얻은 게 오늘 최대의 이득이 아닐까 싶다. 그로 인해 기분이 좋아진 나였지만, 반대로 옆에 서 있는 적성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한 달이라는 기간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한 달이라…….’
그러고 보니 남은 한 달 동안 재정비를 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까, 아님 길드원이 빠져나갈 확률이 높을까.
문득 그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적성에 역량에 따라 달라질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