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170화 (170/211)

00170  第 37 話  =========================================================================

第 37 話 “51일째”

“와, 저 사람 대체 누구야?”

“용감무쌍 길드원을 학살하고 있는데?”

“분신들도 쩔어!”

“어? 저기 아이템이다!”

‘제길.’

하지만 환상 제거라는 스킬을 사용하는 놈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이 전투와 아무 관계도 없는 플레이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것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만일 이곳에 하르페 제국이라면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환영. 환영이 스킬을 사용해 저들을 휘말리게 한다면 본의 아니게 난 일반 플레이어를 죽이는 셈이 된다.

아님 이대로 환영을 없애게 놔두는 것도 방법이지만…….

‘속도가 늦어지잖아!’

콰콰콰콱!-

‘응?’

순간, 내가 만들어낸 환영 중 하나가 붉은 폭풍을 만들어냈다. 보나마나 거신의 질주일 테고, 또 그런 내 예상대로 환영은 붉은 폭풍을 휘날리며 적대 플레이어가 보다 많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돌진했다.

콰앙!- 콰콰쾅!!-

“으, 으아아악!”

‘……지금 보니 거신의 질주도 민폐군.’

환영이 사용한 거신의 질주는 수십 명의 플레이어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게다가 데미지도 낮은지 죽은 플레이어는 고작 두세 명. 죽인 숫자에 비해 여기저기 흩어진 플레이어가 더 많아 오히려 어지럽기만 했다.

“루딘! 네가 우리 용감무쌍 길드에게 적대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

잠깐 거신의 질주를 맞고 흩어진 플레이어를 보는 사이, 크게 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나름 괜찮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용감무쌍 길드원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엠페러 길드로 치자면 간부급이 아닐까?

‘근데 무슨 헛소리야?’

나 하나 이기지도 못하면서.

물론 이때까지 공격당한 게 없지는 않았다. 덕분에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지만 2만이 넘어가는 생명력을 생각하면 별거 아닌 피해이기도 했다. 그리고 행여나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면 수호의 갑옷이나 물약을 마시면 되니 아직은 여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길마님이 오실 거다!”

“그래서?”

탓!-

짧은 그 말과 함께 곧장 녀석에게 달린다. 의외로 실력이 있는 녀석인지 전력으로 달리는 내 속도에 맞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고속 참격!”

파치칙!-

[적중 데미지! 4,634.]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162.]

녀석의 공격을 무시한 채 공격에만 집중했다. 그렇기에 서로 데미지를 받은 상황이 되었지만 누가 유리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녀석은 자신에게 들어온 데미지. 혹은 내게 입힌 데미지 때문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열려는 찰나, 다시 한 번 휘두른 뇌룡의 포효에 그만 절명하고 말았다.

파치칙!-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를…….]

“후.”

어디보자…… 이제 남은 환영은 여덟인가?

새삼스럽게 말하지만 이들 용감무쌍 길드원 중에서는 내 환영을 이기는 놈이 없는 듯했다. 따라서 그냥 놔두기만 해도 환영에게 모조리 쓸릴 녀석들이지만 환상 제거로 인해 도리어 내 환영이 없어지고 있었다.

“와, 이 아이템 엄청 좋아!”

“씨발, 비켜!”

“나도 좀 줍자!”

“밀지 마! 이 새끼들아!”

결국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에 눈이 먼 플레이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와 아이템을 주웠고, 그런 거지같은 모습은 나를 감탄케 했다.

근처에서 공격 마법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아이템을 주우러 오다니?

나야 제이어의 수호방패로 비교적 데미지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근처에서 아이템을 줍고 있는 저 플레이어들은 레벨조차 낮을 거 같았다. 짐작하건데 죽는 것보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챙기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해 저러는 것일 테니 말이다.

콰콰쾅!!-

“아악! 저놈들이 공격한다!”

‘에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남은 용감무쌍 길드원을 상대한다. 환영의 활약으로 200명? 아니, 그 이상의 인원을 죽인 거 같은데도 여전히 많은 수의 용감무쌍 길드원이 있었다.

역시 일일이 잡기에는 너무 많았나?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제이어의 수호방패.”

‘그나저나 붉은 태양 길드원은 뭐하고 있는 거지?’

지속 시간이 끝나버린 제이어의 수호방패를 다시 사용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어렵지 않게 붉은 태양 길드원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 내 환영 곁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도움 자체는 되지 않아 보였다.

“제기랄! 환영만 아니면 이 따위 놈들은!”

“쉬지 말고 공격해!”

환영이 때린 대상을 집중 공격하는 적성과 그의 길드원들. 가까이 접근하는 적은 힘을 합쳐 공격하고, 날아오는 마법은 환영 뒤로 숨어 나름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반대로 뭔가 안쓰럽기도 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랫동안 쉰 거 같았다.

“아, 길마님이다!”

“길마님이 오셨다!”

‘길마?’

전투가 시작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착했다는 건가? 하긴 귀환 스크롤을 사용하면 될 테니 이상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난 근처에 있는 녀석을 없애버리고는 용감무쌍의 길드 마스터를 찾아보기로 했다.

“흑시이인!”

그러나 내가 찾기도 전에 용감무쌍의 길마 마스터 아이디를 크게 외치는 적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적성은 싸우다 말고 흑신이 있는 곳으로 냅다 달려갔는데, 당연히 그곳에는 수십 명의 길드원을 이끌고 나타난 용감무쌍 길드 마스터가 서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죽여버리겠다!”

‘너무 급한데.’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달려드는 적성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흑신은 그런 적성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곧 뭐라고 중얼거렸다.

파밧!-

동시에 흑신이 서 있는 바닥에서부터 정체모를 검은색의 뭔가가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또 그 범위는 어찌나 넓은지 내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이게 녀석의 S랭크 스킬인가?’

며칠 전 생명을 삼키는 숲에서 내가 물러나는 조건으로 들었던 녀석의 S랭크 스킬. 정확한 이름은 '데스턴의 사멸지대'였던 거 같았다. 당시에는 넓은 범위로 지속 데미지를 준다고 들었지만…….

[알 수 없는 기운이 몸속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5초마다 180의 생명력이 줄어듭니다.]

“…….”

이게 끝인가?

예상외로 별거 아닌 스킬이었다. 초당 180씩 줄어드는 게 아니라 5초마다 줄어들다니? 이 정도는 내게 걸려 있는 제이어의 수호방패로도 충분히 회복되는 수준이었다.

현재 14레벨의 효과를 받은 제이어의 수호방패는 초당 36씩 회복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긴장했네.’

하지만 흑신의 스킬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달각- 달각- 달그락-

달려오는 적성을 막아서듯이 생겨나는 해골들. 죽음 계열의 소환이었다. 더군다나 날카로운 검과 햇살에 번쩍이는 방패. 마지막으로 입고 있는 갑옷까지 중무장된 상태을 보니 그냥 해골이 아니었다.

‘뭐지? 해골 전사?’

“죽어라, 루딘!”

“아, 시끄러!”

파치칙!-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를…….]

자세히 보고 싶어도 주변에서 덤벼드는 놈들이 방해하고 있다. 남은 환영의 숫자도 고작 넷. 지구력이야 60~70% 정도 채워졌기에 다시 사용해도 되겠지만 지금은 적성 쪽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해골을 저리 많이 뽑아?’

물론 죽음 소환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체가 있으면 무한정 뽑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른바 중복 소환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현재 흑신이 서 있는 곳에는 시체가 없다는 거였다.

시체가 없는 곳에서 무려 10여 마리가 넘는 해골을 뽑아낸 흑신. 그렇게 달려드는 적성과 해골이 서로 맞부딪쳤다.

채앵!-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해골이 적성을 향해 검을 휘두른 거 같았다. 적성은 그 검을 막아냈지만 해골은 한 마리가 있는 게 아니었고, 다른 쪽에서 휘두르는 해골의 공격을 피해 적성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이 비겁한 놈!”

‘……일단 도와야겠군.’

함부로 뛰쳐나간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저대로 죽게 놔둘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용감무쌍 길드원을 죽이는 것보다 길드 마스터인 흑신을 죽이는 게 여러모로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난 이곳에는 환영을 남겨두고 움직이기로 했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콰콰쾅!!-

‘어?’

환영이동으로 적성의 근처까지 이동한 난 갑작스런 폭발과 함께 회색으로 변해버린 적성을 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은신 상태가 된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흑신까지. 아마 은신을 간파하는 스킬을 사용한 듯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쪽에서 한 제보로 내가 귀찮아졌거든.”

내 대답에 흑신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미쳤군. 고작 그거 때문에 싸움을 걸다니.”

“싸워보니까 할 만하더라고.”

“할 만하다라…… 그래, 솔직히 네 녀석의 실력이 궁금하기는 했지.”

흑신은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더는 대화할 생각이 없는지 9마리의 해골을 보냈다. 어째서 한 마리가 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소환으로 나온다면 나 역시 소환으로 맞서 싸우면 되는 일.

“카르젠 왕국 병사 소환.”

파밧!-

[카르젠 왕국 병사를 소환…….]

비록 어제 퀘스트에는 실패했지만 스킬만은 그대로 남겨졌고, 난 그 스킬로 10여 명의 카르젠 왕국 병사를 소환해 병사들로 하여금 해골들을 상대하게 했다.

“해골을 공격!”

소환수의 기본 명령은 공격과 대기가 있는데, 이는 카르젠 왕국 병사에게도 적용이 되는지 내 말을 들은 병사들은 곧장 해골들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에 다시 살펴본 해골들은 그냥 해골이 아니라 '해골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골 기사라면…….’

몇 랭크 스킬이지?

챙!- 채챙!-

어찌 됐든 해골 기사와 부딪친 병사들은 나름대로 싸우는가 싶었으나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상성은 내 쪽이 더 좋은 거 같은데.’

방패를 든 병사가 앞을 막고, 뒤에서 장창을 든 병사와 활을 든 병사가 지원 공격을 한다. 그럼에도 해골 기사들은 무자비한 칼질로 정면에 선 방패 병사를 죽이더니 이윽고 장창을 든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딱 봐도 기본 능력치에서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한눈 팔 시간까지 있다니! 공포의 외침!”

까아아아악!-

일순간 소름이 돋을 만큼 뾰족한 비명에 절로 인상을 찡그리는 사이, 내 앞으로는 몇 개의 메시지 창이 올라왔다.

[공포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관련 능력치 '투지'로 인해 미약하게나마 저항합니다.]

[공격력이 11% 감소됩니다.]

“아직 멀었다! 죽음의 발톱!”

파밧!-

흑신이 공포의 외침이란 스킬에 이어 죽음의 발톱까지 사용하자 내 머리 위로는 세 줄기의 검은색 빛이 나타나 나를 할퀴듯이 곡선으로 움직였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373.]

[관련 능력치 '투지'로 인해 미약하게나마 저항합니다.]

[마법 방어력이 14% 감소됩니다.]

‘뭔 스킬마다 이런 게 걸려?’

일부러 이런 스킬만 골라 배웠나 싶을 정도로 공격하는 스킬마다 능력치가 감소되었다. 어쩌면 흑신 본인은 이렇게 능력치를 깎고, 공격은 소환수로 하며 싸우는 스타일이 아닐까 싶었다.

또 그러던 와중에 모든 병사를 다 죽인 해골 기사들이 내게 달려들었고, 흑신은 그 기회마저도 놓치지 않았다.

“시체 폭발!”

콰콰쾅!!-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921.]

‘아, 적성을 죽인 게 이 스킬이었나?’

해골 하나가 산산조각 나면서 뼛조각은 사방으로 튀었다. 그 공격에 당한 난 수호방패를 걸고 있는데도 적지 않은 데미지가 들어왔다는 것에 놀라고는 방금 전에 적성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추측할 수 있었다.

“어떠냐?! 내 공격이!”

“…….”

하지만 난 대답하는 대신 아이템 창에서 마르지 않는 치유의 물약을 꺼내 마셨고, 그 모습에 흑신은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생명력과 마나력이…….]

“이 자식이! 시체 폭발!”

“엘시크의 환영이동.”

콰콰쾅!!-

확실한 건 흑신 저 녀석은 플레이어와 싸워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스킬로 이동하는 것까지 보고도 시체 폭발 따위나 사용하다니.

‘제정신인가?’

붉은 태양 길드와 며칠 동안 길드전을 치렀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허술한 대응이다. 아마 S랭크 스킬로 인해 기존의 배웠던 모든 스킬을 삭제했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 듯싶다.

‘그렇다면 흑신 이놈은 S랭크 스킬을 배우기 전에는 마법 계열이 아니라는 거겠지?’

다만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환영이동으로 순식간에 흑신 옆으로 이동한 나는 흑신과 그가 데려온 길드원까지 한 번에 날려버릴 생각으로 뇌룡의 포효를 바닥에 내려찍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