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7 第 36 話 =========================================================================
第 36 話 “50일째”
로스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난 곧이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다수의 발소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발소리가 아군일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10~20마리의 악마들이 추가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착했군.”
‘아주 작정하고 찾아왔네.’
다만 눈에 보이는 악마들은 대부분 중급 악마였다. 상급은 내가 맡고, 중급은 아르넬라가 처리하면 될 테니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악마들 중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악마가 있었다.
“이번에는 한가락 하는 놈이 있나 보군.”
다른 악마에 비해 두 배 정도는 큰 덩치. 불그스름한 피부와 비정상적으로 두꺼운 양팔의 악마가 천천히 다가오자, 나와 대치 중이었던 로스모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가리카스 님.”
[최상급 악마 가리카스(BOSS)]
‘최상급 악마…….’
뭐,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제 발로 찾아와주니 고맙다고 해야 되나? 이제 저놈만 잡으면 이 지긋지긋한 퀘스트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수십 마리의 악마들이 포위한 상태라 함부로 움직이기가 힘들 듯했다.
“가토벨은 죽었는가?”
“예.”
“인간 주제에 대단하군.”
‘뭐가 저리 느긋해?’
이미 포위했으니 다 잡은 사냥감이라는 것도 아니고. 어찌 됐든 저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아르넬라! 빙판!”
“……얼음의 세계여.”
파밧!-
[모든 얼음 계열의 스킬 효과가 150%로 상승합니다.]
커다란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던 주변 배경이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빙판으로 변해갔다. 일단 공간 변화를 사용한 이유는 둘. 하나는 아르넬라의 화력을 높이기 위해서고, 나머지 하나는…….
“네이라!”
“예, 빛이여! 이곳의 어둠을 걷어내소서!”
네이라가 퍼트린 빛으로 주변 악마들의 접근을 막아서게 하는 것. 이번에는 나무와 같은 엄폐물이 없었기에 악마들은 빛이 닿지 않는 저 멀리까지 이동했지만 최상급 악마인 가리카스라는 놈은 달랐다.
‘물러서게 하는 건 중급 악마가 고작인가.’
가리카스는 그저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만 했을 뿐, 다른 악마와는 다르게 이런 공격쯤은 버틸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찮은 짓을 하다니!”
‘공격?’
그렇다고 해도 네이라의 빛이 불쾌했는지 언성을 높인 가리카스는 다른 이와 비교해 몇 배나 되는 두꺼운 팔을 내질렀다. 거리가 있는데도 저런 행동을 한다면 분명 원거리 공격이라 생각한 난 방패를 들어 네이라 앞을 막아섰고, 이내 엄청난 충격이 방패 너머로 느껴졌다.
콰아아앙!!-
[수호의 갑옷이 충격을 대신해서 받습니다. -5,375.]
‘큭!’
“꺄악!”
결국 충격에 이기지 못한 난 네이라와 함께 뒤로 나뒹굴었고, 그로 인해 네이라가 사용한 빛이 사라지고 말았다. 또 그 빛이 사라지자마자 뒤로 물러섰던 중급 악마들이 분노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죽여주마!”
“사지를 갈가리 찢어버릴 테다!”
와, 진짜 개떼처럼 달려드네.
만일 달려드는 녀석들이 악마가 아니라 플레이어라면 이런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뇌룡의 포효 1~2번 휘두르고, 아르넬라가 마법을 사용하면 대부분 죽을 테니 말이다.
“아르넬라 곁으로 가요!”
문제는 저것들이 플레이어가 아니라 악마라는 점. 그걸 생각한 난 네이라를 아르넬라 곁으로 보냈다. 처음 아르넬라에게 네이라를 지키라는 지시도 내렸던 만큼 그녀 곁으로 가면 안전하다고 생각한 난 그렇게 네이라를 보내고는 달려드는 중급 악마를 막아냈다.
쾅!-
“얌전히 죽어라!”
‘그래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군.’
상급 악마와 비교할 것도 없이 중급 악마들은 움직임 자체가 느렸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하거나 쳐낼 수 있었지만 이놈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던 탓에 어느 정도는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콰쾅!- 콰아앙!-
[수호의 갑옷이 충격을 대신해서…….]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수호의 갑옷마저 깨지다니.’
콰아아앙!!-
계속된 공격으로 수호의 갑옷이 깨지자마자, 내 주위로는 푸른색 냉기가 터지듯이 솟아올랐다. 아마도 아르넬라의 냉기 폭발. 또 그 냉기 폭발은 주변에 있던 모든 중급 악마를 집어삼켰고, 난 잠시나마 공격이 멈춘 틈을 노려 이 망할 녀석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걸로 끝이다!”
[뇌룡의 포효 발동!]
[모든 마나력이 소모됩니다.]
쿠오오오오!!-
생겨난 전격이 주변에 있는 모든 중급 악마를 휩쓴다. 아르넬라의 냉기 폭발에 이은 내 뇌룡의 포효. 그리고 처음 네이라가 사용했던 빛이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줬다면 분명 이 공격으로 없앨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스킬 데미지! 16,843.]
[스킬 데미지…….]
[전투 경험치…….]
‘역시.’
거의 10여 마리 이상 사라지는 중급 악마. 난 내 주변에 악마들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아이템 창에서 마르지 않는 치유의 물약을 꺼내 마셨다.
[생명력과 마나력이 4519/4472 회복합니다.]
‘4천 회복이라…….’
뇌룡의 포효로 마나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마신 물약이었지만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어쨌든 생명력과 마나력. 둘 다 회복한 나는 다음 악마를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주변에 있는 악마들은 몇 마리 없었다.
“음?”
이놈의 악마들이 다 어디 갔지? 의아한 난 주변을 살펴보았고, 이내 내가 아닌 네이라를 공격하려는 악마들을 볼 수 있었다.
“접근하는 악마들을 막아라!”
물론 네이라 곁에는 아르넬라와 볼레스가 있었다. 볼레스는 병사들을 소환해 접근하는 악마들을 막았고, 아르넬라도 다시 얼음 골렘을 소환해 그럭저럭 막아내는가 싶었지만 그 악마들 중에는 최상급 악마인 가리카스도 있었다.
“부질없는 짓이다!”
콰콰쾅!-
가리카스의 손짓에 힘없이 쓰러지는 병사들. 어차피 병사들이야 기대도 안 했으니 쓰러지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아르넬라의 얼음 골렘까지도 몇 대 버티지 못한 채 쓰러지는 광경을 본 나는 이게 예삿일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곧장 그곳으로 달렸다.
“어디 가느냐?!”
그때 몇 마리의 중급 악마가 나를 향해 외쳤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하지만 가리카스가 이런 날 대신 반응하고는 내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로스모. 저 녀석을 막아라.”
“예.”
그와 함께 나를 막아서는 듯이 앞으로 나오는 로스모. 지금과 같은 상황만 아니었다면 느긋하게 상대했을 테지만 최상급 악마가 작정하고 네이라를 공격하려는 이상, 녀석에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제이어의 수호방패. 거신의 질주.”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활성화됩니다.]
콰콰콰콱!!-
아까 거신의 질주로 로스모 녀석을 날려버린 것을 떠오른 난 이번에도 날려버릴 생각으로 거신의 질주를 사용했다. 그렇게 내 거신의 질주에 맞춰 녀석 또한 기다란 창을 내질렀으나 거신의 질주는 그런 외부의 충격을 무시하는 효과가 있었다.
콰아아앙!!-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942.]
[스킬 데미지! 7,213.]
“크억!”
젠장, 이 공격으로 뒈져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난 내 거신의 질주에 부딪쳐 멀리 날아가는 로스모에게서 시선을 떼며 가리카스를 보았다. 가리카스는 막으라고 지시한 로스모가 허무하게 날아간 탓인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경고하건데 나를 막아서면 편히 죽지 못할 것이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녀석의 헛소리를 무시하며 환영이동을 사용해 가리카스의 뒤로 이동한 나는 곧이어 환영이 가리카스에게 덤벼드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 역시 가리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와 환영. 양쪽으로 행하는 공격.
가리카스는 당연히 눈에 보이는 환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난 그 행동으로 인해 훤히 보이는 가리카스의 등을 목표로 전력으로 달렸다.
“거신의 질주!”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6,978.]
‘젠장, 힘 하나는 더럽게 높군.’
거신의 질주를 정면으로 맞은 가리카스였지만 녀석은 그저 움찔거리기만 할 뿐, 튕겨나가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환영이 쉬지도 않고 공격하고 있어 나름 데미지를 줬다고는 생각되지만 죽이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할 듯싶었다.
‘지구력도 40% 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르게 말해 A~S랭크 스킬은 10번도 사용하지 못하는 횟수. 이런 지구력으로도 최상급 악마를 상대하지 못할 건 없었지만 스킬을 사용하면 녀석의 발을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었기에 내심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팟-
“……!?”
그때 가리카스의 거대한 팔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덩치와 팔이 지닌 크기에 맞지 않게 엄청나게 빠른 공격. 그리고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되는 주먹은 살짝 움직인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콰아앙!-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2,388.]
“큭!”
일단 급한 대로 방패를 들어 가리카스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녀석의 엄청난 힘으로 인해 내 몸은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이건 뭐…….’
힘이며, 민첩이며 뭐하나 상대되는 게 없다. 환영 역시 가리카스에게 한 대 얻어맞고는 뒤로 나자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나와 환영을 쓰러뜨린 가리카스는 다시 네이라를 향해 움직였다.
“후, 쉴 틈을 안 주네.”
비록 아르넬라와 네이라가 각각 마법 공격을 사용해 접근하는 악마들을 죽이고는 있었지만 최상급 악마에게는 안 될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르넬라 정도면 최상급 악마도 이길 수 있겠지만 그전에 네이라가 죽는다면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된다.
‘그러고 보니 네이라가 죽으면 퀘스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마 실패하려나? 지금 내가 받은 퀘스트는 네이라가 준 퀘스트였다. 그러니 네이라가 죽으면 퀘스트도 자연스레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난 이 퀘스트 실패로 생기는 일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가리카스에게 달렸다.
‘실패하면…… 악마왕이 등장한다고 했나? 토벌 퀘스트까지 생기고?’
콰쾅!- 콰아앙!-
그 순간, 가리카스는 아르넬라의 냉기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아르넬라의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상대방을 밀어내는 식의 마법은 없었기에 저렇게 무시하고 달려들 수 있었던 거 같았다.
“원래라면 보다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었지만…… 네년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리고 아르넬라를 향해 외친 가리카스의 손에서는 무슨 이상한 구슬 같은 것이 생겨났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파밧!-
지금 아르넬라의 연이은 공격을 버텨내면서도 만들어낸 구슬.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구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난 환영이동을 사용해 가리카스의 앞을 막아섰지만, 가리카스는 내가 앞에 있는 것도 모른 채 계속 앞으로 달려들었다.
쾅!-
동시에 가리카스와 부딪친 난 은신이 풀리고 말았고,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나를 향해 가리카스는 구슬이 없는 왼쪽 팔을 휘둘렀다.
‘젠장, 이 자식은 놀라지도 않나?!’
어쨌든 황급히 자세를 낮춰 가리카스의 주먹을 피해냈으나 그 공격에 이어 올려 차는 발까지는 피하지 못한 난 넘어지지 않게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가리카스는 그 틈을 노려 네이라에게 그 구슬을 던졌다.
“아르넬…….”
“아아악!”
‘늦은 건가?’
뒤늦게 네이라를 보니 그녀는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또 그런 네이라의 몸에서는 검은색 연기 같은 게 피어올랐는데, 그녀가 빛의 교단의 주교라는 것을 생각하면 믿기 힘든 색이었다.
“뭐한 거야?!”
“가르쳐줄 이유가 있을까? 확실한 건 이제 곧 악마왕이 부활한다는 것이다!”
“악마왕?”
악마왕이라면 분명…….
[NPC 의뢰에 실패했습니다.]
[경고! 현재 NPC '네이라'의 몸에는 지금껏 악마들이 모은 인간들의 원혼이 강제적으로 주입된 상태입니다. 원래는 원혼이 충분하지 못해 부활은 불가능에 가까우나 젊은 나이로 주교의 자리까지 오른 네이라의 잠재능력이 매개체가 되어 불안정한 부활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루, 루딘 님…….”
괴로운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쓰러지는 네이라. 어찌 됐든 퀘스트는 실패로 끝났고, 실패로 끝났으니 악마왕이 튀어나와 토벌 퀘스트가 생길 것은 분명했다.
“아르넬라! 빙산 낙하!”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쓰러진 네이라는 검은색 연기로 인해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 게다가 퀘스트도 실패했으니 NPC에 대한 걱정도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난 이곳에 있는 악마들부터 정리할 생각으로 아르넬라의 최강의 스킬. 빙산 낙하를 외쳤고, 아르넬라는 그런 내 지시에 따라 빙산 낙하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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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나을 생각을 안 하네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