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162화 (162/211)

00162  第 36 話  =========================================================================

第 36 話 “50일째”

‘일단 카르젠 왕국으로 오긴 했는데…….’

이놈의 용감무쌍 길드를 찾으려면 꽤 고생할 거 같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용감무쌍 길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다시 한 번 생명을 삼키는 숲에 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하이츠도 없는 마당에 그놈들이 거길 지키고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 용감무쌍 길마가 S랭크 스킬을 배웠다니.”

“카르젠 왕국도 하르페 제국처럼 되는 건가? 용감무쌍 길드가 전부 먹어버리는 거지.”

“설마. 전에 길드전 했을 때 도와준 길드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래도 몰라. 일단 비밀로 했다는 것 자체가 수상해.”

‘분위기는 조금 안 좋은 방향으로 갔나?’

잠깐 걸음을 멈추고 들어보니 용감무쌍 길드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물론 추측이기에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도와준 길드들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냥 확 싸우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루딘은 어떻게 하이츠를 잡았지? 거긴 용감무쌍 길드가 점령한 곳이잖아?”

“소문으로는 루딘이 몰래 들어가서 죽였대. 솔직히 말이 안 되지. 레이드 보스가 몇 초 만에 죽는 조무래기 몬스터도 아닌데 어떻게 몰래 들어가서 죽여?”

“하긴. 근데 루딘이 잠입 계열이었나?”

“잠입은 개뿔. 탱커 중에 탱커라더라. 공격을 해도 데미지 자체가 안 들어간다나?”

아무튼 언제까지 저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슬슬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내 발걸음을 붙잡는 어떤 단어가 들려왔다.

“이번 기회에 붉은 태양 길드가 살아나면 좋을 텐데.”

“붉은 태양 길드는 왜? 용감무쌍 길드가 필드를 점령해서?”

“그야 당연하지. 생명을 삼키는 숲도 그렇고, 다른 필드들도 그놈들이 점령하려는 추세잖아. 게다가 용감무쌍 길드와 싸울 수 있는 길드는 붉은 태양 길드밖에 없고. 만일 붉은 태양 길드가 살아나서 다시 동맹 길드들을 모으면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걸?”

“힘들어. 살아나는 거야 둘째 치고, 길드들이 도와줄 리가 없거든.”

‘붉은 태양 길드라…….’

문득, 예전에 도와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붉은 태양 길드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린 난 잠시 거기에 대해 생각했다. 이왕 용감무쌍 길드를 처리하는 거 붉은 태양 길드에게 빚을 지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붉은 태양 길드를 찾아가야겠지?’

아직도 아지트에 있으려나?

다만 붉은 태양 아지트의 위치를 몰랐기에 물어볼 필요가 있었는데, 저들에게 물어보면 단번에 소문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던 난 비교적 얌전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를 찾아 말을 걸었다.

“저기, 붉은 태양 길드 아지트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예? 아마 저쪽에 있는 3층 저택일 텐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비교적 간단하게 위치를 알아낸 나는 그곳으로 향했고, 이내 도착한 3층 저택에는 의외로 감시하는 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용감무쌍 길드가 사람을 대기해 놓는다고 했는데.

‘뭐, 철수했겠지.’

어렵지 않게 결론지은 난 저택 문을 두드렸지만 딱히 반응은 없었다.

“……설마 접은 건가?”

만일 접었다면 근처에 용감무쌍 길드원이 없는 것도 이해가 갔지만 이상하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전까지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어쨌거나 붉은 태양 길드가 없다면 볼일 또한 없었기에 발걸음을 돌린 난 몇 명의 플레이어가 나를 막아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이,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지?”

“용감무쌍 길드?”

“그렇다면 어쩔 건데?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게다가 반응을 보니 숨어서 감시하고 있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고작 다섯 명이라니.’

적어도 30명 정도는 몰려오면 좋을 텐데. 그 이상의 인원이 모여들면 아이템 창의 한계로 내가 힘들어지니 적당히 30명 정도가 좋았다. 그리고 내가 대답 대신 무기를 꺼내드니 녀석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웃었다.

“하, 보니까 싸울 생각인가 본데?”

“다시는 접속하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난 녀석들이 덤벼들기도 전에 환영이동으로 그들 중심에 파고들고는 방금 꺼낸 뇌룡의 포효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냥 싸워도 내가 질 일은 없겠지만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고, 또 최대한 빨리 끝내는 방법은 이 뇌룡의 포효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모든 마나력이 소모됩니다.]

쿠오오오오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전격의 폭풍. 장담하건데 플레이어 중에서 이 공격을 버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크아악!”

[스킬 데미지! 21,549.]

[스킬 데미지…….]

예상대로 다섯 명의 용감무쌍 길드원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며 회색으로 변해 사라졌지만, 그런 내 앞으로는 어떤 메시지가 추가로 올라왔다.

[당신은 플레이어를 공격하셨습니다.]

[상대 플레이어에게 정당방위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전투 경험치…….]

[띠링!~ 1골드 56실버…….]

[경고! 당신은 플레이어를 죽였기에 현상범으로 지정됐습니다. 만일 추적자가 당신을 죽일 경우에는 죽음 페널티가 한층 더 심해지니 주의하십시오.]

“이런 것도 뜨네.”

고개를 갸웃거린다. 난생 처음 보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난 정당방위 시스템을 이용해 플레이어를 죽였지, 내가 먼저 죽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보니까 살인자 표시 같은 건 없는 모양이군.’

온라인 게임을 보면 사람을 죽일 경우에 아이디가 빨간색이 되거나 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런 게 없는 듯했다. 어쩐지 죽이겠다고 난리 치는 놈들이 많다고 했지. 난 그 이유에 대해 납득하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어떤 소리가 들렸다.

철커덕-

“……?”

뭐지? 뭔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저택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루딘이요.”

“루딘? 그 엠페러 길드의 루딘이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 플레이어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망설이더니 이내 문을 조금 더 열어 내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들어가야 되나.’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척하더니 내가 용감무쌍 길드원을 잡아 죽이자마자 문을 연 그 모습은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한 나는 열린 문을 향해 들어갔고, 플레이어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황급히 문을 닫았다.

“문을 그리 급하게 닫을 필요 있어요?”

“저희가 게임을 접었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거든요. 원래는 문을 열면 안 되는데…….”

‘용감무쌍 길드의 감시가 없어지길 기다렸던 건가?’

하지만 그럼에도 문을 열었으니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문제는 내게 죽은 그놈들. 영혼 상태가 되어 문을 연 장면을 봤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으나 그것까지 생각을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잘못하면 용감무쌍 길드가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대신 루딘 님을 붙잡았잖아요.”

“뭐…….”

기다리는 것보다 나를 붙잡는 게 이득이라 생각한 거였나?

“아무튼 이야기하러 오신 거 맞죠?”

“일단은 그렇죠.”

“그럼 따라오세요. 안내해 드릴게요.”

안내해주는 그 플레이어를 따라 3층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가자, 총 두 명의 플레이어가 심각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저들 중에서 붉은 태양 마스터가 있겠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접속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응? 가람아. 그 사람은 누구야?”

“엠페러 길드의 루딘 님. 어쩐 일인지 여기까지 찾아오셨어.”

“루딘이라고?”

루딘이라는 단어에 그는 놀란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전 붉은 태양 길드를 이끌고 있는 적성이라고 합니다.”

“예, 루딘이에요.”

“실례지만 여기까지 찾아오신 건 저희를 도와주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라고 하면 쫓아내기라도 할 건가?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내 반응에 그는 반색하며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아, 감사합니다. 일단 여기 앉으시죠.”

“예.”

“전에 길드원을 하르페 제국까지 보냈지만 거절하셔서 포기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시니 다시 한 번 감사할 따름입니다.”

“뭘요.”

어쨌든 자리에 앉은 난 이것저것 시간 끌 것도 없이 본론부터 꺼냈다.

“그보다 제게서 어떤 도움을 원하시는 거죠?”

모르긴 몰라도 용감무쌍 길드의 인원수는 3천명 정도였다. 그 인원은 나보고 다 죽이라고 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 못 죽일 건 없지만 아마도 끊임없이 싸워야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혼자서는 시작 지점을 막을 수 없었기에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또 이런 내 생각과 비슷한 내용이 적성의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일단 최우선적으로 시작 지점에 있는 그놈들만 처리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루딘 님도 아시겠지만 시작 지점에 대기한 그놈들 때문에 접속하지 못하는 길드원이 꽤 많기 때문이죠.”

“그 길드원은 연락이 되나요?”

“인터넷 카페가 있으니 거기에 글을 올리면 될 겁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는지라 당장은 실행할 수 없겠지만요.”

그쪽으로 연락해 약속 시간을 잡은 뒤, 한 번에 접속하려는 계획인가? 인원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날 감탄시켰다.

“이런 상황인데도 길드원은 기다려주네요.”

“하하, 실은…… 꽤 많은 인원이 캐릭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레벨이 낮은 사람들이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또 나머지 길드원들은 제가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한 탓에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그때가 언제까지인데요?”

“……이틀 뒤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이틀만 더 늦었어도 게임을 접은 붉은 태양을 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게임을 접는 건 둘째 치더라도 문제가 남았다.

“길드가 해체돼도 적대 관계는 안 풀리잖아요?”

“…….”

지금까지 키운 게 아까워 캐릭을 삭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게임을 포기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 사람들을 무시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적성이라는 사람은 그러지 않을 듯했다.

‘아님 항복하고 그놈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생각이었나?’

난 재훈이와 했던 대화를 떠올리고는 적성 옆에서 불안한 눈빛을 보이고 있는 플레이어를 보았다. 정확하게는 날 여기까지 안내해준 플레이어. 긴 생머리를 가진 청순하면서도 예쁜 그 여성 플레이어를 본 나는 다시 시선을 거두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도와드리죠.”

“예, 정말 감사합니다.”

“잠깐.”

그때 적성 옆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적성과 같이 앉아 있었던 플레이어였다.

“도와주는 거야 고맙지만 고작 한 명으로 그 길드와 상대하겠다고?”

“해볼 때까지 해봐야지. 그리고 루딘이잖아. 네임드 플레이어.”

‘저 거지 같은 호칭을 여기서 듣다니.’

속으로 네임드 플레이어라는 단어에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루딘. 저택 설정으로 들어왔을 테니 루딘이 맞긴 하겠지. 하지만 루딘 한 명으로 우리가 역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역전이라…….’

하긴, 길드전은 시작 지점을 점령하는 형태로 싸우는 것이니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용감무쌍 길드하고 싸우라고 한다면 그건 쉽겠지만 말이다.

“지트. 넌 조용히 해.”

아이디가 지트인 그 플레이어를 조용히 시킨 적성은 내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번 길드전 때 제일 많이 죽은 녀석이라서 예민해진 모양입니다.”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상식적으로 나 한 명 왔다고 몇천 명이나 되는 인원과 싸워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용감무쌍 길드와 동맹을 맺은 길드도 있으니 어쩌면 1만 명이 넘을지도 몰랐다.

그에 비해 붉은 태양 길드원은 몇 명이 남았을까?

혹시나 이긴다고 하더라도 적잖은 피해가 생길 테고, 자칫 잘못하면 재기할 수 없어질지도 모르니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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