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7 第 34 話 =========================================================================
第 34 話 “48일째”
‘씨발, 저게 몇 미터야?’
적어도 10미터 이상의 크기를 지닌 식인식물. 내가 그 식인식물을 올려다보는 사이, 식인식물의 거대한 줄기는 잠깐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나를 향해 순식간에 쏘아졌다.
이전 식인식물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은 속도.
게다가 크기가 크기인지라 무슨 거대한 투창이 날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크기에 압도된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고, 이내 방패를 통해 엄청난 충격이 나를 뒤쪽으로 밀어냈다.
콰아앙!!-
[수호의 갑옷이 충격을 대신해서 받습니다. -6,742.]
“크윽!”
뭐야? 이 미친 공격력은?!
충격은 있지만 고통은 없었기에 재빨리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난 방금 들어온 데미지로 인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수호의 갑옷을 펼치지 않은 상태에서 막았다면 이보다 더 낮은 데미지가 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친 공격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씨앗을 뿌리면 그걸 다 처리해야 된다는 건가?’
[죽음의 식인식물이 맹독 안개를 사용합니다.]
촤아아아아-
‘그래, 왜 사용 안 하나 했다.’
레벨이 오른 탓인지, 아님 크기가 커진 탓인지 맹독 안개라 불리는 녹색 연기는 미칠 듯이 뿜어져 사방을 뒤덮었다. 불과 1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하이츠를 비롯한 거대한 줄기까지도 모두 보이지 않을 정도. 난 점점 퍼져오는 맹독 안개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아르넬라에게 지시했다.
“아르넬라! 빙산 낙하!”
“……빙산 낙하.”
일단 맹독 안개는 시야를 방해하니 우선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아르넬라에게 빙산 낙하를 사용하게 한 나는 곧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빙산을 볼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소환 스킬 데미지! 48,720.]
[소환 스킬 데미지! 30,286.]
‘뭐지? 설마 안 죽었나?’
보고도 믿기지 않을 데미지가 떴지만 맹독 안개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퍼져나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빙산 낙하를 사용해야 되나? 하긴, 아르넬라의 최강의 스킬을 놔두고 다른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이전과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아르넬라. 다시 빙산 낙하.”
“남은 횟수는 한 번뿐이지만…… 그대의 말에 따르겠다.”
응? 방금 뭐라고 했지?
“한 번뿐이라니?”
“빙산 낙하.”
그러고 보니 데로나크와 싸웠을 때에도 빙산 낙하를 세 번 이상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난 거기에 대해 물어봤지만, 아르넬라는 그런 내 말을 무시한 채 빙산 낙하를 사용했다.
콰아아아아앙!!-
51레벨이나 상승한 식인식물도 두 번의 빙산 낙하를 버티지 못하는지 퍼지는 맹독 안개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였지만 이제 남은 횟수가 없다는 사실에 내 시선은 아르넬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빙산 낙하는 내 고유의 힘을 소모해 사용하는 마법. 세 번 이상 사용하면 나라는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
지금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음 궁전에서의 레이드도 빙산 낙하를 세 번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세 번이라고 해도 버틸 플레이어가 몇 명이나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젠 빙산 낙하를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지?”
“그렇다. 하지만 다른 마법은 가능하니 그대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빙산 낙하도 못 쓰는데 무슨…….”
그나저나 하이츠 이놈은 사용하는 스킬이 별거 아닌 거 같은데도 공략하기가 어려웠다. 소환을 해서 그런가? 데로나크 같은 경우에는 그저 공격만 하면 되지만 하이츠는 소환 때문에 그 공격이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빙산 낙하를 세 번이나 맞았으니 10만 정도는 깎았겠지?’
[죽음을 재배하는 하이츠가 죽음의 식인식물을 소환합니다.]
“일어서라. 나의 인형들이여.”
하이츠에게 입힌 데미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하이츠는 다시 죽음의 식인식물을 소환했고, 그에 대항하듯이 아르넬라 역시 얼음 골렘 세 마리를 일으켰다.
“전진. 그리고 몰살.”
‘소환된 꽃은 저 골렘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는 나대로 움직여볼까.
“제이어의 수호방패.”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활성화됩니다.]
파밧!-
제이어의 수호방패를 사용한 난 달려가는 골렘들보다 훨씬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까지 하이츠를 상대해본 결과, 녀석이 직접적으로 공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최대한 붙어 공격만 한다면 샌드백처럼 녀석을 팰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죽음의 식인식물이 맹독 안개를 사용합니다.]
“거신의 질주!”
맹독 안개로 하이츠의 모습이 가려진다. 하지만 그 하이츠가 있는 방향으로 쭉 달리고 있었던 나는 거신의 질주까지 사용해 일직선으로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방패에 뭔가가 부딪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6,506.]
“커헉!”
‘어?’
[관련 능력치 투지(279)가 보정됩니다.]
[초당 72의 생명력이 줄어듭니다.]
솔직히 말해 모습이 보이지 않은 하이츠를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나였지만 의외로 방패에서는 뭔가 밀어내는 듯했다. 그 사실에 나는 다시 앞으로 달려나갔고, 이내 연기 밖으로 벗어난 하이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근력이 나보다 낮은 건가?’
레이드 보스 주제에?
이건 기회일 수도 있었다. 하이츠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거신의 질주로 날려버리면 된다는 뜻이니까. 그걸 깨달은 난 옆으로 살짝 돌아 아르넬라가 있는 위치로 거신의 질주를 사용했다.
“거신의 질주!”
쨍그랑-
[죽음을 재배하는 하이츠가 꿈틀거리는 줄기를 소환합니다.]
“늦어!”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6,483.]
거신의 질주로 달리는 와중에 소환한 줄기는 내가 공격하고 나서야 솟아올랐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대응. 또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줄기보다 날아가는 하이츠의 몸이 더 빨랐기에 줄기가 내 공격을 막을 일은 없었다.
“큭큭, 제법이구나.”
[죽음을 재배하는 하이츠가 사신의 향기를 사용합니다.]
‘스킬?’
난 하이츠가 사용한 스킬이 발동되기 전에 다시 한 번 거신의 질주를 사용했고, 그렇게 하이츠를 향해 달려가던 중에 코끝으로 스치는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사신의 향기가 몸속으로 스며듭니다.]
[민첩이 하락됩니다. 현재 하락된 민첩은 1%입니다.]
콰아아앙!!-
‘고작 이런 스킬이라니.’
민첩 1%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향기는 이미 사방에 퍼졌기에 냄새를 맡지 않을 수가 없었고, 결국 한두 번의 냄새를 더 맡으니 하락되는 민첩의 폭이 더 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민첩이 하락됩니다. 현재 하락된 민첩은 4%입니다.]
‘숨이라도 참아야 되나?’
향기를 맡아 민첩이 하락되니 숨을 참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헛수고였다.
[민첩이 하락됩니다. 현재 하락된 민첩은 9%입니다.]
‘젠장.’
차라리 공격이나 한 번 더 하는 건데.
그리고 민첩을 보니 몇 분 되지 않아 100%까지 하락될 거 같았다. 민첩이 그 정도로 하락된다면 내가 전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일단 하이츠에게서 떨어지기로 하며 뒤로 물러났다.
‘접근전이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이 있지.’
어제의 나라면 모를까, 지금의 내겐 원거리 스킬이 존재했다.
[황혼 캐쉬 아이템. '원격 은행 이용권'을…….]
다만 활과 화살을 원격 은행으로 집어넣은 상태였기에 다시 1만 원을 소모해 그것들을 꺼낸 난 오늘 배운 파괴화살로 하이츠를 공격할 준비를 끝냈다.
“파괴화살.”
뭐, 그렇게 파괴화살이 만들어지는 동안 아르넬라의 얼음 공격이 이어졌지만 이상하게도 하이츠에게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거 같았다. 아니, 데미지는 확실히 들어가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할까? 잠깐 유심히 살펴본 나는 가까스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자식…… 결빙이 안 되잖아?’
원래 아르넬라의 공격에는 결빙 효과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하이츠는 그 결빙이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장비를 의심했다.
‘결빙 상태를 무효화시키는 장비라도 있나?’
[죽음을 재배하는 하이츠가 죽음의 씨앗을 뿌립니다.]
“또 시작하는군.”
난 이를 갈며 자신의 주변에다 씨앗을 뿌리는 하이츠를 보았다. 저 씨앗도 일정 개수가 되면 식인식물을 소환할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원래는 하이츠에게 쏠 화살을 바닥에 뿌려진 씨앗으로 바꿔 날렸다.
콰아아앙!!-
“……?”
내심 파괴화살의 범위를 믿고 모든 씨앗을 없앨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나였지만 결과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씨앗이었다. 그리고 사방에 흩어진 씨앗은 여전히 검은색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공격으로는 씨앗을 없앨 수 없는 건가?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밟아 씨앗을 없애야 된다는 말인데,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1천이라는 고정 데미지가 들어오는 씨앗을 밟아 없애다니? 저 씨앗을 없애기 위해서는 다수의 소환수가 필요할 거 같았다.
‘공략법은 알겠는데…… 음?’
순간, 아르넬라의 골렘들이 하이츠를 향해 달려가는 게 보였다. 두 마리로 줄어들긴 했지만 상황을 보니 식인식물은 처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달려가는 얼음 골렘들은 하이츠가 깔아놓은 씨앗에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콰콰쾅!- 콰쾅!!-
‘그래도 씨앗은 처리했으니 다행이긴 하군.’
[죽음을 재배하는 하이츠가 죽음의 씨앗을 뿌립니다.]
“…….”
다행은 개뿔.
난 계속 파괴화살을 만들어 날리면서 아르넬라에게 외쳤다.
“얼음 골렘을 소환해!”
데로나크 때에는 허무하게 당한 게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제 보니 얼음 골렘도 괜찮은 소환수였다. 아님 이곳이 얼음 세계라 그럴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얼음 계열의 스킬 효과가 150% 증가하는 거니 말이다.
쿠쿠쿵!-
어쨌거나 얼음 골렘을 소환은 아르넬라는 그 골렘을 하이츠에게 보냈고, 그로 인해 바닥에 깔린 대부분의 씨앗을 터트릴 수 있었다.
“크크큭, 나를 이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다니.”
[죽음을 재배하는 하이츠가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
생명력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보고 놀라기도 전에 하이츠는 물약을 꺼내더니 대뜸 마시기 시작했다. 무슨 레이드 보스가 물약을 쳐 마셔?! 나도 안 마시는 물약을 거침없이 마셔대는 하이츠를 보며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든 말든 물약으로 생명력을 회복한 하이츠는 다시 움직였다.
‘포기해야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저 물약으로 회복된 양이 100~200 따위가 아닐 듯했다. 적어도 몇 만은 채워지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깎은 생명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회복됐다고 생각하니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저런 회복 기술은 자주 사용하지 못할 거야.’
또한 식인식물과 죽음의 씨앗의 공략법도 이미 깨달은 상태. 여기서 물러선다면 그것도 웃긴 일이라고 생각한 난 공격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파괴화살.”
파밧!-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파괴화살을 사용해도 아르넬라가 사용하는 마법 데미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 파괴화살 데미지는 고작 1천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용하는 이유는 약간의 도움과 스킬 레벨을 위해서다.
꾸물- 꾸물-
“응?”
문득 내 옆을 지나가는 거대한 다섯 개의 줄기. 이게 아직도 있네? 생각해보니 저기 있는 하이츠가 꿈틀거리는 줄기를 소환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소환한 탓인 듯하다.
‘그럼 하이츠를 다시 멀리 날려버리면?’
이 거대한 줄기는 방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줄기를 소환하지 못하는 하이츠의 전력은 지금과 같이 공략 가능한 상태로 변할 거라 생각한 난 깎이는 민첩을 각오하고 거신의 질주를 사용했다.
“거신의 질주!”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2,231.]
[민첩이 하락…….]
민첩은 이제 14%로 하락됐지만 하이츠를 날렸다는 것에 만족한 난 다시 거리를 벌려 활로 바꿔 들었다. 줄기들은 여전히 하이츠를 향해 기어가고 있는 중이었고, 그 속도를 보아하니 몇 분 정도는 걸릴 듯했다.
그때까지 하이츠를 죽일 수만 있다면…….
“크하핫! 더는 봐줄 수가 없구나!”
[죽음을 재배하는 하이츠가 검은 세계수를 소환합니다.]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물약을 던지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능력으로 소환하는 듯한 검은 세계수를 지켜보니 하이츠의 등 뒤로 식인식물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거대한 나무가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