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6 第 32 話 =========================================================================
第 32 話 “46일째”
‘일단…….’
혹시라도 시나. 혹은 레이라가 공격받지 않도록 시선을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한 난 도발부터 사용하기로 했다.
“도발의 외침.”
쾅!-
동시에 내 몸에서는 붉은색 기류가 퍼져나갔고, 그 기류에 닿은 얼음의 정령들은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시퍼런 얼굴로 일제히 쳐다보니 지금까지 상대한 어느 몬스터보다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히히, 히히힛!”
‘타락한 게 아니라 미친 거 같은데.’
아무튼 곧장 달려들 줄 알았던 얼음의 정령들은 다시 거리를 벌리는가 싶더니 내게 하얀색 수증기 같은 것을 쏘아댔고, 난 간단하게 그것을 피해내고는 재빨리 다가가 공격을 시도했다.
파치칙!-
[적중 데미지! 3,932.]
“꺄아악!”
‘3,900?’
확실히 설원 트롤보다 강하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데미지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분명 두 배로 적용된 데미지일 텐데도 이 정도라니? 또 내게서 한 대 맞은 얼음의 정령들은 각자 흩어져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짜증나게.’
이놈도 날아다니다니. 하지만 이곳의 지형은 숲이었기에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듯했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환영이동으로 근처 나뭇가지 위로 이동한 나는 재빨리 뛰어내려 밑에 있는 얼음의 정령을 내리쳤다. 그리고 다시 내 공격에 적중당한 얼음의 정령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소멸하는 장면까지도 보였다.
[적중 데미지! 3,950.]
[전투 경험치 1,620 획득!]
[띠링!~ 파티원 루딘 님께서 '얼음 결정'을 획득하셨습니다.]
‘얼음 결정?’
그게 어떤 건지 알아내기도 전에 난 분신을 상대로 공격하고 있는 다음 정령을 상대했고, 역시나 엘시크의 환영이동을 바탕으로 싸우니 별로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었다.
[전투 경험치 1,620 획득!]
“와, 정말 쉽게 이기셨네요.”
“약초 안 캐고 뭐해요?”
“그게…… 룬 님이 실수라도 하시면 도망가려고요.”
주저하며 말하는 것치고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다. 간단하게 말해 내가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도망치겠다는 말이 아닌가? 황당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숲에 올 수 있었으니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그에 비해 시나는 열심히 캐고 있군.’
애초에 내가 질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듯하다. 내 실력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는 레이라에게 말했다.
“이런 몬스터야 몇 마리든 잡을 수 있으니 약초부터 캐요.”
“에, 예.”
레이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근처에 있는 약초를 캤고, 나 역시 시나를 돕기 위해 약초를 캐기로 했다.
‘약초 스킬을 이럴 때 쓰게 될 줄이야.’
전에 레어 장갑을 얻을 때 말고는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배워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초반에 배운 스킬들. 광석 채광이나 철괴 제련과 같은 스킬은 아직도 1레벨이니 기회가 되면 삭제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그 두 개를 삭제하면 배울 스킬이 12개로 늘어나는 건가?’
12개나 남았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걸 언제 다 배워?
“루…… 아니, 룬 님! 모닥불 좀 피워줘요!”
“아, 제가 피워드릴게요.”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지구력이 꽤 소모됐는지 시나는 불 좀 피워달라는 요청을 했고, 레이라는 즉각 대답하며 장작을 꺼내들었다.
자체 회복이 되지 않으니 이게 진짜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화르륵!-
[따뜻한 기운이 추위를 몰아냅니다.]
[추위로 인한 지구력 감소가 사라집니다.]
“아~ 따뜻하다. 근데 레이라 님은 자급자족으로 물약을 구하시나 봐요?”
“자급자족? 예, 그런 것도 있지만 팔아서 돈을 모으려고요.”
“물약이 잘 팔려요?”
“천옷 제작이나 요리보다는 잘 팔려요. 원래는 천옷 제작을 습득해서 그걸로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잘 안 팔려서 물약 제조로 바꿨거든요.”
‘천옷 제작?’
지구력도 회복할 겸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그녀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었던 난 천옷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천옷 제작이 몇 랭크에요?”
“천옷이요? C랭크에요.”
‘C랭크?’
적어도 C랭크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C랭크일 줄이야.
천옷 제작에 관해 물어보는 이유는 베크샤의 가죽을 가지고 외투를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죽인지라 내가 가지고 있어봤자 쓸모도 없었고, 그럴 바에야 외투를 만들어 지금 입고 다니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괜찮다면 외투 좀 만들어주세요.”
“외투요? 상관은 없지만…… 지금 만들어드려요?”
“예. 그리고 재료는 확인하지 말아주세요.”
이런 내 말에 레이라는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 내가 베크샤의 가죽을 건네주자 레이라는 그 가죽을 받아 천천히 제작하는 듯했고, 곧이어 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재료이기에 보지 말라는 거예요?”
“뭐, 있어요. 그런 게.”
“……예전부터 느꼈지만 숨기는 게 참 많아요.”
‘그런가?’
생각해보니 시나가 말한 대로 숨기는 게 없지는 않았기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 얼음 결정 얻었죠? 무슨 아이템이에요?”
“얼음 결정? 아.”
타락한 얼음의 정령을 잡고 획득한 아이템. 그게 떠오른 나는 아이템 창을 열어 얼음 결정을 꺼내보았다. 얼음 결정은 장갑을 끼고 있는 내 손에서도 시린 느낌이 전해질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얼음 결정] (Magic)
설명:특별한 기운이 뭉쳐 만들어진 얼음 결정. 그 어떤 재료에도 녹아드는 성질이 있다. 만일 이 재료를 제작과 관련된 어느 것에 넣는다면 얼음 속성이 깃들 확률이 높다.
*재료 가치 25.
“재료 아이템이네요.”
“재료요? 잠시만요.”
시나는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오더니 얼음 결정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걸 저 가죽에 넣으면 좋지 않을까요?”
“외투에요?”
“예. 보니까 천옷 제작에도 쓸 수 있는 재료잖아요.”
확실히 그냥 만드는 것보다 이런 거라도 넣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난 레이라가 외투를 완성시키기 전에 얼음 결정을 건네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제작을 중단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재료도 같이 넣으면 되나요?”
“아, 예.”
의외로 눈치 빠른 행동에 살짝 당황하며 얼음 결정을 건네주었고, 레이라는 그 결정과 함께 외투를 만들었다.
“완성한다.”
파밧!-
“어?”
“왜 그래요?”
“아뇨, 이상한 이름이 붙어서요. 일단 완성은 됐어요.”
난 레어급 재료. 베크샤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적갈색의 외투를 보았다. 레어급 재료로 만들었으니 이 외투도 레어급이 아닐까? 또 이런 내 예상은 틀리지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추위를 굴복시키는 공포의 외투] (Rare)
설명:공포의 상징이라 불리는 베크샤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외투. 가죽 자체에 깃든 모종의 힘과 얼음의 힘이 섞여 추위에 대한 높은 내성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이 외투를 입는다면 어느 정도 추위의 저항할 수 있지만 두꺼운 가죽으로 인해 움직임 그 자체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근력(50), 민첩(-100), 위압(50)>
<얼음 속성 저항력 5%>
내구력:125/125
*추위 내성 47% 상승.
*얼음 속성으로 받는 피해 15% 감소.
‘오.’
예상했던 대로 레어급 외투가 나왔고, 효과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얼음 속성 5% 저항에 피해 데미지 15% 감소라니? 게다가 추위 내성도 47%. 팔아버린다고 해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듯했다.
‘민첩이 100 감소된다는 것만 제외하면 좋네.’
아무튼 내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어떤 외투가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는지 내게 물어왔다.
“보면 안 돼요?”
“다음에 보여드릴게요.”
“……추위 내성이 이 곰 가죽보다 낫죠?”
“예.”
“그럼 물약은 필요 없겠네요.”
외투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에서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시나는 그런 식으로 답했다. 확실히 이런 외투라면 조금 전 곰 가죽 외투를 입은 상태에서 추위 내성 22% 올라가는 물약을 마신 거나 다름없으니 물약도 필요 없을지도 몰랐다.
“…….”
“아, 농담이에요. 그렇게 고민하지 마세요.”
그때 물약에 관해 생각하던 나를 보고 시나는 오해했는지 농담이라는 말을 꺼냈다. 다만 그전에 숨기는 게 많다는 말이 떠올랐던 나는 쉽사리 그 농담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시나의 말대로 내가 숨기는 게 많은 건가?’
어찌 보면 이것도 직감과 관련되어 있다.
외투를 보면 베크샤를 떠올릴 테고, 그 뒤로는 어떻게 해서 베크샤를 잡았는지, 어떻게 해서 그 능력치를 가졌는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직감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덧붙여 이런 식으로 계속 숨겨야 되는 것들이 많아지면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고 판단한 난 잠깐 모닥불을 쬐고 있는 시나를 보았다. 나를 돕기 위해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는 시나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한 나는 이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건네줬다.
“보세요.”
“어? 정말로요?”
그래도 내심 기대를 했는지 시나는 거절하지 않고 냉큼 외투를 잡아 확인했다.
“와, 와. 이건 대체 뭐예요?”
“재료가 워낙 좋아서 이런 게 만들어진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응? 베크샤?”
“지구력도 회복됐으니 다시 약초 캐러 가요.”
베크샤라는 단어에서 뭔가 생각났는지 시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근처 약초를 채집했다. 하지만 시나는 약초 채집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레이라 몰래 내게 다가왔다.
“루딘 님. 설마 베크샤 잡았어요?”
“예, 영웅도 그 녀석 잡고 된 거예요.”
“아~ 일정 레벨 이상의 레이드 보스를 잡으면 영웅 칭호를 주나 보네요.”
“아뇨, 혼자서 잡아야 주는 거 같던데요?”
“…….”
난 놀람을 넘어 할 말조차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시나에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저,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베크샤 말고도 물어볼 질문은 몇 개 더 있을 텐데도 충격이 어지간히 컸는지 시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런 시나와는 별개로 나 또한 열심히 약초를 캤고, 대충 정교한 약초 채집이 4레벨로 올라가자마자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일단 근처에 있는 약초는 다 캔 거 같아요.”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갈까요?”
“아뇨, 지금 가지고 있는 약초만으로도 충분해요. 일단 숲에서 나가자마자 물약부터 만들어 드릴게요.”
“레이라 님은요?”
“저도 괜찮아요. 충분히 캤어요.”
그 말까지 들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숲에서 빠져나왔고, 이내 시나는 그 자리에 서서 곧장 물약부터 만들었다. 반대로 레이라는 여기서 물약을 만들 생각이 없었는지 나와 시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두 분은 여기서 물약을 만드실 거예요?”
“예, 물약만 만들고 바로 돌아가려고요.”
시나는 잠시라도 이런 지역에 있기가 싫은지 그 말을 꺼냈다. 또 그 대답에 어색하게 미소 지은 레이라는 알겠다는 듯이 끄덕이고는 이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오늘 감사했어요.”
“어? 벌써 가시게요?”
“물약만 만들고 돌아가신다면서요? 저도 마을로 가려고요.”
“아, 그러네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두 분도요.”
그렇게 레이라가 돌아간 이후에도 계속 물약을 제작한 시나는 이내 추위 내성이 13~18% 붙은 물약 몇십 개를 만들어 내게 건네주었고, 난 그 물약들을 감사하게 받았다.
“후, 다 만들었네요.”
“예. 고생하셨어요.”
“베크샤를 잡으실 정도면…… 실바크 잡으러 여기로 온 거 아니죠?”
거의 확신에 찬 말투. 이제 와서 속이는 것도 웃긴 짓이라 생각한 나는 간단하게 여기에 온 목표를 말해주었다.
“아르넬라 정도는 잡아야죠.”
“……죽지만 마세요.”
“그러려고 물약까지 만든 거잖아요.”
내 대답에 시나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템 창에서 귀환 스크롤을 꺼냈다. 보나마나 하르페 제국에 있는 내 저택으로 이동하는 스크롤일 것이다.
“아니면 저라도 마지막까지 도와드려요?”
“아뇨, 도움은 이미 충분히 받았어요.”
“음, 그것도 그러네요. 어쨌거나 힘내세요.”
이어 귀환 스크롤을 사용한 시나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덕분에 홀로 남은 난 마을에서 마지막 정비를 끝낸 뒤에 아르넬라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