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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145화 (145/211)

00145  第 32 話  =========================================================================

第 32 話 “46일째”

“크엉!”

섬뜩한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오는 설원 늑대. 모르긴 몰라도 저 이빨에 닿으면 살가죽은 우습게 파고들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다. 그런 늑대가 맹렬하게 내게 달려오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난 대충 타이밍에 맞춰 뇌룡의 포효를 휘둘렀다.

파치칙!-

“깨갱!”

[적중 데미지! 7,472.]

[전투 경험치 28 획득!]

‘너무 느리게 보이니 쓸데없는 생각만 나는군.’

주는 경험치도 형편없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한참이나 떨어졌는데도 아직까지 설원 늑대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내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으, 루딘 님. 혹시 불 마법 없어요? 불 마법이라도 쓰면 추위가 사라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물어보는 시나에게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나도 대충은 짐작했는지 딱히 실망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런 지역에서는 불 마법이 유용할 거 같았다.

“그보다 약초는 충분해요?”

“글쎄요. 개수는 충분하지만 어떤 물약이 나올지 몰라서요. 일단 시험 삼아 하나 만들어볼게요.”

시나는 그 말을 하더니 이내 아이템 창에서 커다란 테이블 하나를 꺼내들었다. 내가 무기를 제작할 때 망치와 모루가 필요하듯이 연금술을 할 때에는 저런 테이블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아, 지금 지구력이 얼마나 남았지?’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확인해보니 지구력은 1분마다 감소되었다. 또 외투를 입은 내 지구력이 0.7~0.8% 정도 감소됐으니 원래는 1분마다 1%의 지구력이 감소되는 듯했다.

[지구력:88.7%]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네.’

물론 여유가 있는 것도 내 경우에 한해서다. 난 방패에 있는 효과로 몬스터를 죽일 때마다 지구력이 1%씩 채워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시나의 경우에는 이런 나보다 지구력이 더 없을지도 몰랐다.

“연금술을 사용해도 지구력은 소모되죠?”

“그야 당연하죠. 그러니 가만히 있지 말고 옆에 모닥불 좀 피워봐요.”

“…….”

하긴, 내 무기 제작도 지구력이 소모되는 마당에 연금술이 소모되지 않을 리가 없다. 난 시나의 말대로 나무 장작을 꺼내 근처에 놓고는 공짜로 얻은 부싯돌을 가지고 불을 붙였다.

화르륵!-

“……?”

뭐 이리 쉽게 붙어?

게임이라 그런지 그냥 나무 장작 근처에서 부싯돌만 튀겼는데도 알아서 불이 붙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따뜻한 기운이 추위를 몰아냅니다.]

[추위로 인한 지구력 감소가 사라집니다.]

“와, 금방 붙이시네요.”

아무튼 모닥불이 주는 온기에 이제 살 거 같다는 표정을 지은 시나는 지금까지 채집한 약초 몇 개를 꺼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물약을 만드는 과정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조용히 그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스킬 사용. 고도의 연금술.”

팟!-

곧이어 시나가 B랭크 연금술을 사용하자 꺼낸 약초들이 고운 가루로 변하는 것이 보였고, 시나는 그렇게 변한 가루를 병에다 적절히 담고 있었다. 아마도 약초를 배합하는 것일 것이다.

“음, 이 정도면 됐나? 제작.”

‘생각보다 간단하군.’

보고 있자니 내 무기 제작과 비슷할 수준으로 간단한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거나 물약은 완성되었고, 그 물약을 확인해본 시나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여줬다.

“추위 내성은 만들어졌는데…… 그냥 보세요.”

설명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을까? 시나는 내게 물약을 내밀며 말했다.

[미약한 추위 저항 물약] (Normal)

설명:추운 지역에서만 자라는 약초를 배합해 만든 물약. 마시면 몸이 미약하게 뜨거워져 어느 정도의 추위를 저항할 수 있다.

-513초 동안 추위 내성 8% 상승.

-1회용 소모품.

“어때요?”

“지속 시간 하나만은 좋네요.”

대략 8~9분 정도의 지속 시간을 지녔으니 그것 하나만은 마음에 들었지만 추위 내성 8% 효과는 별로였다. 아무래도 약초가 좋지 않은 탓에 이런 물약이 만들어진 듯하다.

‘적어도 20%는 됐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아르넬라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5~6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장작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개수가 정해져 있으니 최대한 지구력을 아껴야 된다는 말인데, 이런 물약으로는 거기까지 갈 수가 없을 거 같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른 약초도 구해봐요.”

내가 긍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시나는 만들었던 물약을 자신의 입으로 털어 넣었다.

“으, 그래도 춥긴 춥구나. 가요.”

“……예.”

어쨌든 시나와 함께 다시 한참이나 걸음을 옮기자, 이번에는 나름 괜찮은 사냥터 지역으로 왔는지 상당한 수의 플레이어들이 사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콰쾅!-

“아싸!~ 불 마법! 계속 써주세요!”

“물약만 줘요. 계속 써드릴 테니까.”

둘러보니 플레이어들이 상대하고 있는 녀석은 설원 트롤과 설원 늑대였다.

‘저놈의 늑대는 어딜 가든 등장하네.’

난 플레이어가 휘두른 무기 한 방에 뻗어버리는 늑대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옆에 있는 설원 트롤이라는 녀석을 보았다.

[설원 트롤]

‘보스는 아니군.’

조금 놀랍기는 했다. 트롤 주제에 보스가 아니라니? 전에 의뢰에서는 그냥 트롤도 보스로 취급이 됐지만 여기서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구경하는 사이에 근처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트롤은 나와 시나를 발견하고는 곧장 달려왔다.

“쿠어어!”

“잡을 수 있죠?”

“그걸 왜 물어봐요?”

보스도 아닌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잡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다니? 대답할 가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달려오는 트롤을 보며 아무 생각도 없이 망치를 휘둘러 어깨 부분을 강타했다.

파치칙!-

[적중 데미지! 5,932.]

[전투 경험치 1,200 획득!]

간단하게 설원 트롤을 처리한 나를 향해 역시라는 표정을 짓는 시나와는 달리, 근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플레이어들은 전부 놀란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방금 트롤 한 방에 잡지 않았어?”

“데미지가 6천이 넘는다는 말이잖아. 어떤 스킬이지?”

“번개 계열의 스킬 같던데…….”

그나마 이곳에서는 내가 루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플레이어가 없어 편한 거 같았다.

“다른 곳으로 가야겠죠?”

“예. 사냥터라서 그런지 약초가 안 보여요. 그리고 약초는 숲에 많으니 숲을 찾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요.”

“숲이요?”

숲이라는 단어에 난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듬성듬성 나무가 심어져 있었지만 숲으로 보이는 곳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 눈 덮인 곳에서 숲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기가 어려웠다.

“저기요, 님. 아까 보니까 실력이 상당하시던데 괜찮다면 같이 사냥하지 않으실래요?”

“일단 숲을 위주로 찾아보죠.”

“예.”

그렇게 나와 시나는 같이 사냥이라도 하자는 플레이어를 무시한 채로 이곳을 떠나려고 했으나 반대쪽에서 그런 우리들을 불러세우는 어느 외침이 들려왔다.

“잠깐만요!”

“……?”

덕분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뭔가 다급하게 이쪽으로 달려오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런 플레이어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들 앞에서 달리던 발을 멈춘 플레이어는 이런 말을 했다.

“저기, 약초를 구하러 가는 건가요?”

“그런데요?”

“아, 제가 좋은 장소를 알고 있어요. 괜찮다면 같이 데려가주세요.”

‘좋은 장소?’

좋은 장소라는 말에 옆에 시나를 바라보았다. 대충 어떻게 할 건지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서였지만 시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음대로 하라는듯한 태도를 취했다.

반대로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다급했는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거기로 가면 엄청나게 많은 약초들이 있어요.”

“약초보다 왜 같이 가려는 건데요?”

“그게…….”

“보면 몰라요? 거기 나오는 몬스터가 강하다는 말이잖아요.”

대답은 옆에 있는 시나가 대신해줬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시 플레이어를 보았고, 플레이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나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맞아요. 거기 나오는 몹이 트롤보다 훨씬 강해서…… 아, 그래도 트롤을 한 방에 죽이신 님이라면 그 숲에서도 사냥하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의외로 간단한 거였군.’

어쨌거나 좋은 기회일 수도 있었다. 언제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난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런 내 대답에 그 플레이어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대신 파티는 해드릴 수 없어요.”

“파티요? 예, 괜찮아요.”

파티를 하면 내 아이디가 나타나기 때문에 미리 말하는 거였지만 플레이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끄덕여줬다.

“그럼 안내할게요. 이쪽이에요.”

플레이어는 먼저 앞장서서 길을 걸었고, 나와 시나는 그런 플레이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디는 어떻게 되세요? 전 레이라에요.”

‘아이디?’

파티를 할 수 없다는 말로 사전에 차단했지만 직접 물어볼 줄은 몰랐던 난 잠깐 가명으로 쓸 아이디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시나의 대답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시나에요. 옆에는 룬 님이고요.”

이전의 말로 시나는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이상한 아이디를 말했다. 근데 이 황혼에서 한 글자 아이디도 되는 건가? 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레이라라고 소개한 플레이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룬 님이랑 시나 님이시네요. 그런데 약초를 찾아 돌아다니시는 걸 보면 이 근처에는 처음이신가 봐요?”

“원래는 하르페 제국에 있거든요.”

“아, 그래요? 거긴 이렇게 춥지 않죠?”

“오히려 따뜻해요.”

“아니스 왕국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따뜻하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 이곳 날씨만 이러네요.”

‘여기만 추운 거였나?’

생각해보면 아니스 왕국 전체가 추운 지역일 리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어느 누가 아니스 왕국에서 활동하겠는가? 다만 이 정도로 추운 지역이 아니스 왕국에만 있다고 생각한 나는 몇 가지 궁금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근데 어디로 가고 있어요?”

“녹지 않는 얼음의 숲이요. 거기에 각종 약초들이 자라고 있거든요. 듣기로는 정령의 기운이 풍부해 약초 같은 게 잘 자란대요.”

정령의 기운이 풍부하다고?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어요?”

“퀘스트를 하다보면 NPC에게 들을 수 있어요.”

애당초 퀘스트를 몇 번 하지 않은 나로서는 모르겠지만 시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정보도 잘 알고 있을 거 같았다. 시나도 매일 퀘스트를 한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으니 말이다.

“숲에서는 어떤 몬스터가 나와요?”

“타락한 얼음의 정령이랑 설원 거대 거미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숲으로 가면 이리저리 거미줄이 쳐져 있어 쉽게 돌아다닐 수 없는 지형이에요.”

“난 거미 싫은데…….”

중얼거리는 시나의 말을 뒤로 한 채 대충 그곳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를 들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정령이라면 날아다니겠지? 상대하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혹시나 시나를 공격한다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시나 님은 좋으시겠네요. 저렇게 강한 분이 도와주시고.”

“도움이 필요하면 길드에 가입하면 되잖아요.”

“가입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서요.”

‘길드가 몇 개 없나?’

하르페 제국 수도는 엠페러 길드가 거의 다 쓸어버렸기에 그곳에서 활동하는 길드는 몇 없었다. 아마 여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길드가 없다면 대표적인 이유가 길드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경우를 떠올렸지만 역시나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레이라를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니 뭔가 투명한 나무들이 즐비한 곳을 볼 수 있었다.

“저곳이 녹지 않는 얼음의 숲이에요.”

“확실히 약초가 많네요.”

약초가 많다는 말에 잠깐 살펴보니 확실히 지면에 반짝이는 것들이 사방에 보일 정도로 약초는 많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냥하는 플레이어가 없나? 트롤보다 강하다고 해도 인원이 모이면 사냥하지 못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 내게 이런 의문은 당연했다.

“여기에는 사냥하는 사람이 없나 보네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거미줄 때문에 사냥하기가 힘든 곳이라 들었어요.”

‘밟으면 거미라도 튀어나오나?’

그럼 그 거미까지 잡으면 될 것을. 어쨌든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시나는 주변을 살펴보며 근처에 있는 약초를 채집했다.

-흐흐흐흐.

뭔 소리야?

“정령이에요!”

정령이라는 말에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주시하니 농담이 아니라 처녀 귀신 같이 생긴 반투명한 유령 몇 마리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정령이라고요?”

“예. 이름도 적혀 있잖아요.”

[타락한 얼음의 정령]

이름은 맞긴 한데…….

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 정령을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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