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第 27 話 =========================================================================
第 27 話 “39일째”
다시 한 번 메시지를 읽어보니 레이드 보스는 두 개 이상 가질 수 없는 듯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방금 전까지 좋아졌던 기분이 급격하게 하락했으나 이내 정신 차리며 어떤 것을 포기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확실히 크라켄이 강하긴 강해.’
1만 명의 플레이어와 싸우면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 1분도 걸리지 않아 우스트를 죽여 버릴 정도의 힘. 크라켄은 지금까지 내가 본 어느 보스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크라켄의 크기였다.
‘본체까지 합치면 200미터는 되지 않을까?’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 바다의 폭군 크라켄이 쓰러졌습니다.]
[토벌 의뢰를 완료했습니다!]
[크라켄을 처리한 위대한 인물의 이름은 '루딘' 님입니다.]
[축하합니다. 플레이어 '루딘' 님은 토벌 의뢰에 대한 보상으로 3개의 레어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바다의 폭군 크라켄.”
['바다의 폭군 크라켄'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크라켄을 포기하는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라켄은 던전과 같은 공간에서 소환할 수 있는 소환수가 아닌 듯했다. 차라리 크라켄을 봉인했던 방법으로 다른 레이드 보스를 봉인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난 과감하게 크라켄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래.”
[봉인한 '바다의 폭군 크라켄'이 사라집니다.]
동시에 손에 들린 크라켄의 카드가 사라지자마자 움직이지 않았던 내 몸은 다시 자유를 되찾았고, 난 사라진 크라켄에 대한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강제로 소환이 해제된 우스트를 떠올렸다.
‘한동안은 함께해야겠군.’
그러는 사이, 내 앞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생겨났다.
[삐- 바다의 폭군 크라켄을 잡았지만, 그 대상은 하르페 제국 소속의 사람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이오트 왕은 자신의 나라에 활동하고 있는 모든 모험가에게 실망합니다.]
[지금부터 이오트 왕국에 있는 모든 상점의 비용이 50% 상승합니다.]
“어? 이런 게 있었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리 큰 패널티도 아니다. 누가 상점을 이용하겠는가? 플레이어가 판매하는 물품을 구매하고 말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긴 난 계속 메시지 쪽을 주시했지만 역시나 올라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 이럴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기여도도 없고, 보상도 없고, 공적치도 없다. 크라켄을 죽인 게 아니라 봉인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스트 때 겪어봤던 일인지라 딱히 새삼스럽지도 않았으나 반대로 개고생을 하며 크라켄과 싸웠던 이오트 왕국의 플레이어에겐 단체로 공황 상태에 빠뜨린 거 같았다.
“뭐야? 왜 아무것도 안 줘?”
“아이템이랑 골드 어디 있어?!”
“분명 레이드 보스잖아! 왜 기여도가 없는 거야?!”
“씨발, 루딘 어디 있어?!”
대부분 레이드 보스를 잡았는데도 아무 보상을 주지 않았다는 것에 격분하고 있었다.
‘잡았으면 됐지, 보상까지 바라다니.’
어쨌든 난 레어 상자 세 개를 얻었으니 된 건가?
기여도와 보상. 크라켄까지 포기한 건 아쉬웠으나 레어 상자 세 개면 이곳에 온 보람이 있었다. 결국 레어 상자로 만족한 나는 수면 위로 올라가면서 이걸로 뭘 얻을지 고민했다.
‘지금 레어 상자가 네 개니까…….’
이론상 검푸른 수호자 세트를 전부 뽑고도 한 개가 남는다. 그 한 개는 자연을 담은 고귀한 장신구를 얻는다면 난 두 개의 세트 아이템을 맞추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이게 나와야 말이지.’
며칠 전에 시도해본 결과, 얻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였기에 여차하면 골드로 팔아버릴 생각까지 하며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이런 날 발견한 누군가는 즉시 외쳐대기 시작했다.
“어? 씨발, 저기 루딘이다!”
“야이 개자식아! 왜 네가 크라켄을 잡고 난리야?!”
“어떻게 보상할 거야!”
‘응?’
근데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들 입장에서는 크라켄을 잡은 것만 해도 좋은 일이 아니었나? 하지만 자세히 보니 보상을 못 받았다고 하기에는 플레이어들의 분노하는 기색이 너무 뚜렷했다.
자기들이 무조건 보상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을 텐데 저러는 걸 보면…….
“루딘 님!”
“……?”
문득 누군가가 날 부르는 소리에 확인해보니 내가 탔던 배에 플레이어들이 사다리를 가리키며 올라오라 소리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천천히 헤엄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이내 간판 위로 발을 내딛자 모두에게서 수고했다는 말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설마 그 상황에서 크라켄을 잡을 줄 몰랐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크라켄이 다리 다섯 개로 미친 듯이 공격하던데.”
‘다리 다섯 개?’
어쩐지 이상하게 우스트가 빨리 죽었다고 했는데, 남은 다리 다섯 개를 모두 동원해 때린 듯했다. 그리고 이들의 반응을 보니 그런 크라켄의 공격 속에서 살아남은 내가 어지간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 토벌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준 나는 친구 녀석이 무사한지 찾아보았고, 곧이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여자 친구와 티격태격 다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저놈은 게임 안에서도 저러네.
그래도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나는 아직까지도 나를 향해 욕을 내뱉고 있는 플레이어를 둘러보았다. 다른 배에 타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기서 한바탕 싸울 기세였다.
‘귀찮은데 귀환 스크롤을 써?’
순간, 누군가의 외침이 이 소란스러움을 단숨에 정리했다.
“닥쳐! 쫑알쫑알 더럽게 시끄럽네!”
“하지만 길마님! 보면 아시겠지만…….”
“닥치라고 했지? 그런 건 너보다 백배는 잘 알아. 야, 육지로 배돌려!”
보아하니 저기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곳에서도 시끄럽다는 외침이 모든 이의 입을 다물게 했다. 덕분에 조용해지긴 했으나 작게 투덜거리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는지 그냥 내버려두는 듯했다.
‘그런데 이들의 목적은 크라켄을 잡는 거 아니었나?’
분위기가 왜 이래?
크라켄도 잡았으니 이들은 다시 원래대로 사냥터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다. 아무튼 배들은 천천히 육지로 향하고 있었고, 남은 배도 6~70척 정도였지만 대부분이 중형 이상의 크기를 가진 배였기에 실제로 입은 피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
물론 죽은 플레이어까지 합치면 엄청난 손실이겠지만.
‘못해도 3~4천 명은 죽었을 텐데…….’
전에 바무트 교단과 싸웠을 때에도 엠페러 길드원이 절반 이상 죽어가며 겨우 잡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두 배 이상의 인원이 죽어나갔다.
그런데도 얻은 건 아무것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날 고용한 대항해 길드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크고 작은 배가 100척 이상 부서졌으니 말이다.
“육지다!”
‘도착했군.’
그렇게 육지로 도착한 배가 정박하자마자 난 땅으로 내려왔고, 다른 모든 이들도 한 명씩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또 그렇게 내려온 인물 중에는 나피엘도 있었다.
“루딘 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글쎄요. 제가 잡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럼 기여도나 보상은…….”
“저도 그런 건 못 얻었어요.”
이건 사실이다. 내가 얻은 거라고는 레어 상자 3개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문득 이런 대답을 하는 사이에 몇 명의 플레이어가 험악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 이 씨발,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것들 봐라?
“무슨 책임?”
“너 때문에 상점 이용 가격이 50% 늘었잖아!”
50%. 분명 큰 수치다. 하지만 상점을 이용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다만 이들이 화난 이유는 크라켄에게 얻을 보상 때문이 아니라 상점 이용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이용하지 마. 간단하잖아?”
“뭐?!”
난 오른손에 든 뇌룡의 포효를 까딱였다.
“아님 불만 있으면 덤비던가.”
“덤비라고 하면 못 덤빌 줄 알아?!”
“그만.”
막상 내게 덤벼드려는 녀석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행동을 멈추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통 열 받으면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덤벼들지 않나?
“왜 애꿎은 사람에게 난리야? 루딘은 단지 돈 받고 고용된 용병일 뿐이잖아.”
“하지만…….”
“저리 꺼져. 괜히 일 키우지 말고.”
그는 짜증난 얼굴로 근처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죄다 옆으로 밀치며 내게 다가왔다.
“절대자 길드의 마스터 흑룡이다. 일단 고맙다는 말은 해두지. 과정이야 어찌 됐든 크라켄 토벌에는 성공했으니까.”
‘절대자 길드?’
절대자 길드라면 어제 시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오트 왕국에는 가장 큰 길드가 세 개 있는데, 각각 대항해 길드, 절대자 길드, 마지막으로 은하수 길드라고 했었다.
그럼 이 녀석이 그 3대 길드 중에 하나인 절대자 길드 마스터였나?
이어 흑룡이라 소개한 그는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곧장 나피엘에게 말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네가 독단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고용한 탓에 일이 이 지경이 됐어.”
“하지만 고용하지 않았다면 크라켄은 잡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럴까? 아직도 남은 배가 수십 척이고, 플레이어 또한 수천 명이 있었는데 잡을 수 없었을 거라고? 넌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다른 이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을 걸?”
“…….”
“뭐, 좋아. 네가 이걸로 뭘 얻으려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원망 좀 사게 될 거야.”
거기까지 말한 흑룡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은 듯한 기색으로 자신의 모든 길드원을 이끌고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알 수 없었던 난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나와 같은 배를 타고 돌아온 대항해 길드원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그야…… 상점 이용 가격이 50% 늘었기 때문이죠.”
“이용 안 하면 되잖아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이용을 안 해요. 상점을 이용해야 배를 살 수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오트 왕국은 배가 있었지?’
바다로 나가 사냥터를 찾아야 되는 이오트 왕국에서는 배가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크라켄 토벌로 침몰된 배도 많지 않은가? 그래도 이 황혼이라면 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직접 만들 수는 없어요?”
“직접 만들어도 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자재부터 시작해서 전부 사람이 옮겨야 되거든요. 그에 비해 상점에서 구매하는 배는 바로 튀어나오니 전부 그쪽을 이용하고 있어요.”
그 뒤에 말은 배를 구매해도 바다로 나가면 해양 마물들이 나타나 배를 공격한다고 한다. 어차피 돌아와서 수리를 하면 된다지만 수리를 하면 전체 내구력이 낮아진다나? 이러나저러나 배 자체가 소모품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배를 구매해야 되는데 비싸져서 지금의 분위기가 됐다?’
또한 조금 전에 흑룡의 이야기를 들은 주변 플레이어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항해 길드에서 독단으로 고용한 거야?”
“만일 고용하지 않았으면 크라켄도 우리가 잡았을 텐데.”
“아, 이제부터 배를 어떻게 구매해.”
“한 사람당 몇 골드씩 걷는 건 아니겠지?”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대항해 길드에서 용병을 고용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크라켄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보상도 받고, 상점 가격 인상도 없었을 것이다. 라고.
‘뭐, 실제로 잡았을지 못 잡았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이, 나피엘이 고용한 플레이어들은 이제 모든 할 일이 끝났다는 듯이 말했다.
“대항해 길드 마스터님. 토벌도 끝났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다음에도 불러주시던가요.”
뭔가 키득이며 웃고 있는 플레이어와는 다르게, 그 인사를 받은 나피엘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아지트로 가려는 건가? 난 그런 나피엘의 모습을 보고는 레어 상자 이외에 또 다른 보상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잘됐군.’
난 단순히 크라켄을 봉인해서 기여도와 보상을 날려버릴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데, 지금 보니 의도치 않게 대항해 길드에게 위기까지 넘겨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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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도와 공적치는 보스를 죽여야 정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