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6 第 23 話 =========================================================================
第 23 話 “35일째”
“그러니까…… 유아가 루딘 님 집에서 자고 있다고요?”
“……예.”
접속을 종료하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곧장 유아부터 돌보기 시작했다. 어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자제심을 잃은 난 배려 따위는 일절 찾을 수도 없을 만큼 집요하게 유아를 탐했고, 유아는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며 그런 날 받아주었다.
다만 처음이었던 유아에게 너무 가혹한 행위였는지 그녀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상태가 되어 쓰러져 잠들었지만, 다행히도 접속을 종료한 뒤에는 깨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 그렇게 깨어난 유아를 몇 시간 내내 돌봐주었고, 이내 다시 잠든 것을 보고는 방해되지 않게 황혼으로 접속. 곧 내 집에서 물약을 만들고 있는 시나를 만날 수 있었다.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짐승.”
“…….”
사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처음인 것도 아닌데 유아의 몸을 안는 순간부터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몇 번이고 욕정을 쏟아부은 뒤, 반쯤 기절하듯이 쓰러져 잠들었기 때문에 끝낼 수 있었던 거 같았다.
아니었으면…….
뭐, 이유야 어찌 됐든 유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음, 왠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네요.”
“예?”
“유아를 안은 게 후회돼요? 아니라면 그런 표정은 짓지 마세요. 유아에게도 실례에요. 들어보니 유아가 원해서 한 거라면서요?”
‘후회하는 게 아닌데…… 아니, 비슷한가?’
어쨌든 시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제작 스킬에 대해 떠올렸다. 지금 17레벨이니 잘하면 오늘 19레벨. 아님 18레벨까지 올릴 수 있을 듯했다. 직감으로 혼이 깃든 장검을 찍어내는데도 이 정도 속도니 다른 플레이어들은 얼마나 올리기가 힘들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긴 해요.”
“다행이라뇨?”
“유아 말이에요. 게임에서도 쫓아다니고, 현실에서도 쫓아다녀서 결국 원하던 것을 이뤄냈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나?
내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물약을 다 만든 시나는 테이블 위에 그 물약을 올려놓고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저기 물약 놔뒀으니 가져가세요.”
“오늘은 채집이나 퀘스트 하러 안 가요?”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시나의 모습이 조금 피곤한 듯했다.
“채집은 던전으로 가야 돼요. 필드에 있는 약초로는 좋은 물약을 만들 수 없거든요. 퀘스트는…… 해야 되긴 한데, 막혔어요.”
“그래요?”
“예. 왕성에 있는 약제사를 찾아가는 퀘스트거든요. 근데 왕성에는 추천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잖아요. 그 추천장을 얻는 부분에서 막혀서요.”
‘왕성?’
왕성이라면 난 들어갈 수 있지 않나? 그것도 세 가지나 되는 방법으로 말이다. 대장간 데론의 추천장. 기사단의 추천장. 마지막으로 하르페 황제가 준 검까지 합쳐 총 세 개. 그걸 깨달은 난 시나에게 말했다.
“추천장을 받으면 되지 않나요?”
“그러려면 왕성에 연이 닿은 NPC와 친하게 지내야 돼요. 이 수도에서 그런 NPC는 딱 한 명 있지만 얼마나 귀한 몸인지 만날 수가 없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아~ 짜증나' 라는 말을 덧붙이는 시나. 채집도 막히고, 퀘스트도 막히니 여러모로 답답한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난 둘 다 해결해줄 수 있네.’
던전이야 엠페러 길드의 던전으로 가면 되고, 왕성이야 내 레어 검을 빌려주면 된다.
“일어나요.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설마 엠페러 길드의 던전으로 가려고요?”
“그것도 괜찮겠지만…… 왕성부터 가요.”
“에?”
내 말에 시나는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왕성에는 어떻게 가려고요?”
“몇 가지 방법이 있거든요. 뭐, 저도 처음 가보는 거라 장담은 못하지만요.”
그런 내 말에 시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고, 난 그런 시나와 같이 왕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시나는 접속하자마자 자신을 도와주는 나를 보며 조금 미안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루딘 님도 하실 게 있지 않나요?”
“나중에 하면 되죠.”
왕성까지 갔다 오는 거야 얼마 거리지도 않을 테니 문제없을 거라 생각한 나는 곧 왕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지. 이곳은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아, 루딘 님이시군요.”
‘쯧, 게임은 게임이군.’
아이템 창에서 레어 검을 꺼내자마자 태도가 돌변하는 병사를 본 나는 역시나 게임이라 생각하고는 옆에 시나를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옆에 이 사람도 같이 가도 되나요?”
“으음, 원래 규정에는 안 되지만 폐하께 인정을 받으신 루딘 님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군요. 들어가시죠.”
원래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시나에게 검을 빌려줄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 듯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왕성 구경이나 해볼까? 모처럼 여기까지 온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왕성 안으로 향했고, 시나는 내 옆에 붙어 감탄한 눈빛으로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렇게 쉽게 왕성에 들어오고?”
“황제에게 받은 검이 있거든요.”
“아, 방금 그 검이요?”
“예. 바무트 교단 전투에서 공적치 1등으로 받은 거예요.”
“그런 것도 받았어요? 전에는 기여도 6위 했다는 말만 들었는데…….”
그랬나? 어쨌든 왕성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내부가 나와 시나를 반겨주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된 벽에는 가택 정보창에서도 볼 수 없는 고풍스런 가구와 액자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발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푹신한 카펫이 계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와…… 멋지네요.”
또한 내부를 돌아다니는 하녀들의 모습도 대단했다. 머리나 옷차림은 이제 막 정리하고 나온 사람처럼 단정했고, 돌아다니는 자세까지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루딘 님. 어딜 보고 있는 거예요?”
“응? 아, 저기 있는 NPC요.”
“……나중에 유아에게 이를 거예요.”
당당한 내 대답에 시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지만 딱히 NPC 가지고 뭐라 할 거 같진 않았다.
“그것보다 약제사는 어디 있는지 모르죠?”
“저 여기 처음이에요.”
나도 처음이다. 이러나저러나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거라 판단한 나는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하녀 NPC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약제사 펠로크 님이요? 저쪽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가셔서 나오는 첫 번째 방에 있어요.”
비교적 간단하게 위치를 알아낸 나는 시나를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원래는 따라갈 생각이 없었지만 바뀌었다고 할까? 나로 인해 들어온 시나였으니 내가 없으면 다시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탓이기도 했다.
똑- 똑-
“음, 들어오게.”
그렇게 3층에 도착한 시나는 문을 두드렸고, 이내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흐음.’
안으로 들어서니 약초 같은 냄새가 확 풍겨왔다. 또 사방에 배치된 각종 약초를 구경하려고 했지만 이쪽을 빤히 바라보던 펠로크의 입이 먼저 열렸다.
“못 보던 얼굴이군. 자네들은 누군가?”
“아, 전 로민 님의 부탁으로 이곳에 온 시나입니다.”
‘거참, 예의도 바르네.’
이렇게 예의가 바른 시나의 모습은 처음 보는 거 같았다.
“로민? 아아, 전에 도와줬던 녀석이군. 그래, 녀석의 무슨 부탁을 하러 이곳까지 온 건가?”
“여기 편지가 있습니다.”
똑- 똑-
“……?”
시나가 펠로크에게 편지를 건네주던 사이, 다시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노크 소리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던 펠로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오게.”
“실례합니다.”
‘응?’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기사 차림을 한 NPC였다. 기사가 왜 이곳에 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무슨 일인가?”
“이곳에 루딘 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혹시 루딘 님이 누구십니까?”
“전데요?”
살짝 손을 들어 말하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펠로크는 작게나마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오, 저 사람이 루딘이었나? 바무트 교단에 대해서는 멀리서나마 들었네. 꽤 힘든 일을 해주었어.”
“예. 그보다 폐하께서 루딘 님을 찾으십니다. 죄송하지만 같이 가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
난 그냥 구경이나 할 생각으로 이곳에 온 건데 왜 날 보자는 거지? 어쨌거나 거절할 상황도 아닌 거 같았고, 내게도 나쁜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도록 하죠.”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보다 폐하라면…….’
아마 황제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반대로 황제는 부르는 이유는 뭘까? 바무트 교단에 대한 보상이야 검으로 받았으니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고맙다고 칭찬이나 하려고 오게 하지는 않을 테니 남은 건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안내해준 기사를 지나쳐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곳은 식당이었다.
‘……웬 식당?’
“오, 그대가 루딘인가?”
‘음?’
길쭉한 테이블에 차려진 각종 음식들로 인해 시선을 뺏긴 난 뒤늦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는 30대? 아니, 40대 정도? 하지만 우람한 덩치와 호쾌한 인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그런 사내였다.
“내가 바로 이 제국의 황제. 데이론트 하르페네.”
“예, 루딘입니다.”
하르페? 하르페 제국이라 하르페인가?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게나.”
“예.”황제 치고는 뭔가 위엄이 없는 그런 모습이지만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난 황제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고, 그렇게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바무트 교단에서 큰 활약을 해줘서 고맙네.”
일단 황제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잠자코 듣고 있으니 내용은 정말 별거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무트 교단을 없애줘서 고맙다.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사실 그 녀석들은 몇 년 전에 없앴는데 어느 샌가 또 나타난 것이다 등등.
‘평소에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나?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이 시대에 영웅이 있다면 그건 자네일 것이다. 라는 말까지 듣고는 슬슬 짜증마저 생겨나려던 찰나, 황제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실은 자네를 부른 것은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있지만…… 부탁할 게 있어서네.”
“부탁이요?”
되묻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설명을 시작했다.
“한 20년 전에 일이었네.”
‘20년 전?’
아무튼 황제가 말한 그 설명을 간단하게 추려내면 다음과 같았다. 20년 전에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마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마물은 엄청나게 강했다. 도저히 해치울 방법이 없었기에 절벽 밑에 커다란 구멍으로 빠뜨렸지만 마물이 조금씩 구멍을 파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황제는 더 늦지 않게 그 마물을 해치울 사람을 찾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밖에 없을 거 같네.”
“…….”
[NPC 의뢰가 생겨났습니다.]
그 해치울 사람이 나라는 거 같았다.
‘20년 전에도 해치우지 못한 괴물을 나보고 해치우라고?’
혹시 몰라 의뢰를 확인해봤다.
[하르페 황제의 부탁.]
설명:하르페 황제는 20년 전에 가둔 마물이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깨닫고는 당신에게 그 마물을 해치워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으시다면 의뢰를 승낙하세요.
<퀘스트 수락:없음.>
<퀘스트 거절:의뢰 소멸.>
<퀘스트 완료:경험치 650,000. 왕성에서 일할 수 있는 직책. 황실 무구 창고에 있는 물품 두 개.>
<퀘스트 실패:명성의 절반 소멸. 의뢰 소멸.>
‘경험치 65만?!’
경험치가 65만이라면 전에 했던 도박 퀘스트보다 난이도가 더 높다는 뜻이다. 이런 의뢰를 나보고 하라고? 난 황당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저 혼자서는 힘들 거 같은데요?”
“알고 있네. 내 기사를 수백 명이나 죽인 놈이었으니까.”
의외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였다.
“하나, 자네 동료들과 함께 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나? 그 동료들을 부르도록 하게. 만일 그 마물을 잡는다면 자네와 동료들까지 모두 동일한 보상을 내릴 터이니.”
[띠링!~ 이 의뢰는 자신을 포함해 총 10명의 인원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10명이라…….’
나와 유아. 라즈. 시나까지 데려간다고 해도 4명. 아니, 그녀들을 데려가는 건 좋지 않다. 난이도가 어떨지도 모르는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 필요한데…….
‘길드 간부들밖에 없나?’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잠깐? 이 퀘스트를 파트너 공유로 해버리면 총 20명이서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또한 20명 인원 전부 엠페러 길드의 간부로 데려간다면 왠지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았다.
“아님 거절할 텐가?”
“……아뇨, 해보죠.”
[의뢰를 받았습니다. '하르페 황제의 부탁.']
[지도에 특정 위치가 표시됩니다. '지도 확인'이라는 명령어로 그 위치를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