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5 第 23 話 =========================================================================
第 23 話 “35일째”
‘뭐, 간단하게 이겼군.’
만일 뇌룡의 포효가 없었다면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었던 싸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크는 운이 나쁜 편이라고 할까? 적어도 내가 이 무기를 얻기 전에 싸웠다면 그럭저럭 몇 번의 공격까지는 허용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얌전히 내려가는군.
인정할 수 없다며 바락바락 외쳤던 예전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내게서 허무하게 패배한 제크는 아직도 멍한 표정을 지으며 대련장에서 내려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문득 주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 방금 어떻게 된 거야?”
“제크 형님을 몇 초 만에 이긴 거지?”
“아니, 그보다 봤어? 두 대밖에 때리지 않았는데 제크 형님이 죽었잖아.”
“부길마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였나?”
웅성~ 웅성~
‘흐음.’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길드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특별한 스킬도 없이 이긴 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런 길드원의 시선을 무시하기로 한 나는 남은 다섯 명을 향해 말했다.
“다음.”
또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일부에서는 크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루딘 님! 너무 멋져요!”
“남은 인원도 모조리 이겨버리세요!”
그에 비해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다섯 명의 도전자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자기들끼리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방금 그건 어떻게 된 걸까요?”
“역동이라는 스킬 때문이에요. 맞으면 몸이 멈추거든요. 하지만 스킬을 사용할 때 바닥에 발이 붙어있지 않으면 피할 수 있는 스킬이에요.”
‘호.’
그 이야기를 한 것은 S랭크 플레이어였다. 근데 이름이 뭐였더라? 예전에 들었던 거 같긴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대지의 역동을 저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한 건 저 여자가 처음이었기에 내심 놀라기도 했다.
“아니, 스킬보다 방금 일어난 상황에 대해 말입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체 어떻게 해서 저렇게 강해진 거지?”
사이좋게 의논하면서 누군가 한 명 더 올라왔다. 그런데 표정을 보니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럴 거면 그냥 포기하면 될 텐데 왜 올라오고 난리야?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길드원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대련이 시작됩니다.]
대련이 시작됐음에도 상대방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면 재미가 없는데. 또 이런 생각은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는지 구경하고 있는 길드원들도 비슷하게 외쳤다.
“싸워라! 지금 뭐하냐?!”
“소개팅 왔냐?!”
‘내가 먼저 움직여야겠군.’
생각과 함께 걸어간다. 단순히 걸어가는 것일 뿐이지만 상대방은 크게 당황하는가 싶더니 곧장 내게 달려들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역시나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상대했다.
“역동.”
콰아앙!-
‘음?’
대지의 역동을 사용하자마자 위로 뛰어오른 길드원. 방금 전 S랭크 플레이어의 조언을 깊게 새긴 듯했다.
하지만 공중으로 뛰어오르면 어쩔 건가?
난 아랑곳하지 않으며 공중에 뜬 길드원에게 뇌룡의 포효를 휘둘렀다. 어차피 공중으로 뛰어오른 탓에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파치칙!-
“크억!”
[적중 데미지! 3,288.]
“미, 미친!”
공중에서 한 대 맞고 옆으로 나가떨어진 길드원은 이내 내 데미지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라며 외쳤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어지간히 놀란 거 같다고 생각한 난 그런 길드원에게 다가가 마무리를 지었다.
“무슨 데미지가…….”
파치칙!-
[적중 데미지! 3,296.]
[대련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말할 틈이 있다면 피하기나 할 것이지. 아무튼 당황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길드원을 향해 뇌룡의 포효를 휘둘러 어렵지 않게 승리를 따낸 나는 한편으로는 살짝 놀라기도 했다.
‘그나저나 실력이 간부급이라 그런가?’
지니고 있는 생명력이 은근히 높았다. 적어도 내가 상대한 두 명은 생명력이 4천? 혹은 그 이상쯤 되는 듯했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황혼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으니 대부분 그 정도 생명력은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나만 하더라도 빛의 수호자 칭호를 제외하면 생명력이 7천쯤 되니까.’
그런 식으로 추측하면 저들의 생명력은 5~6천 정도 되지 않을까? 그래봐야 내게 소용없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남은 건…….’
4명인가?
이후, 남은 3명까지도 간단하게 이겼지만 이것들은 그냥 쓰러지지 않았다.
“아악! 3천이 넘는 데미지라니!”
“…….”
다섯 번째 상대가 외친 그 말로 모두가 경악한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실제로 내 공격력은 3천을 넘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2,403. 그러나 나보다 근력이 낮은 상대에게는 데미지가 2배로 들어가기 때문에 3천이 넘는 데미지를 띄운 것이다.
막말로 데미지를 3천 이하로 줄이기 위해서는 저들의 방어력이 못해도 900 이상이 돼야 될 텐데…… 지금껏 싸워보니 그 정도 방어력은 안 되는 듯하다.
‘하긴, 방어력 900도 쉽지는 않겠지.’
이 또한 빛의 수호자를 제외하면 추측하기가 쉽다. 내가 빛의 수호자를 제외하면 방어력이 딱 900이 되기 때문이다. 10강 레어 방패까지 든 내 방어력이 900이었으니 그 정도 방어를 갖추기란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데미지가 3천이 넘는다고?”
“그게 가능해?”
“길마님의 멸살검은 그 이상 뜨는 거 같긴 한데…….”
“그건 S랭크 스킬이잖아. 부길마님은 스킬 하나 쓰지 않고 3천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잖아.”
“물어볼까?”
“네가 가서 물어봐.”
‘……꽤 시끌벅적하네.’
다들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대련 중이기 때문이겠지? 만일 대련이 끝나면 내게 달려들어 미친 듯이 물어볼 게 뻔했다.
‘그때는 어떻게 할까.’
간단하게 해명이라도 하는 게 좋으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슬슬 마지막 도전자인 S랭크 플레이어가 올라왔다. 유일한 여자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그녀를 응원하는 길드원도 있었다.
“다인 님! 힘내세요!”
“화이팅!”
‘아이디가 다인이었군.’
솔직히 아이디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공격력이 3천 이상인가요?”
“음? 그런 걸 왜 물어봐요?”
“그냥 궁금해서요.”
이제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려던 내게 다인이 물어왔다. 역시 내 데미지의 비밀이 궁금한 건가?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다인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길드원이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이기면 가르쳐 드리죠.”
“…….”
난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 말한 뒤, 전투를 준비했다.
[대련이 시작됩니다.]
“……가속.”
‘처음부터 S랭크 스킬인가?’
가속이라 외친 다인의 몸은 농담이 아니라 눈으로도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빨라졌다. 동시에 은신으로 몸을 숨기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대충 공격이 올 타이밍을 짐작해 대지의 역동을 사용했다.
“역동!”
콰아앙!-
‘안 맞았나?’
촤악!-
그리고 다리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타격.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762.]
‘데미지가 700?’
내 방어력을 생각하면 분명 관통 데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데미지 자체는 전에 싸웠을 때보다 더 낮아졌다. 아무래도 척살 명령으로 몇 번 정도 죽은 탓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이전보다 더 약해진 그녀를 찾는 사이, 난 몇 번의 공격을 더 허용하고야 말았다.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빠르긴 진짜 빠르군.’
불과 1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5~6번의 공격을 한 다인은 다시 뒤로 물러나 거리를 유지했다. 저 가속하는 스킬의 지속 시간이 짧은 건가?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몇 번의 공격을 해대니 지속 시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은 데미지가…… 2~3천 정도?’
그야말로 순식간에 깎여버린 생명력. 어찌 됐든 그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싸울 수는 없을 듯했다.
‘나도 S랭크 스킬로 맞서주지.’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응?’
환영이동을 사용하면 나 자신을 숨겨주는 은신 효과가 있다. 즉,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다인의 시선은 은신을 하고 있는 나를 향했다.
‘아,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은신으로 숨어도 다인은 금세 내 위치를 파악했다. 그러나 이대로 멈출 수도 없는 노릇. 환영이동을 통해 다인의 옆으로 이동한 난 재빨리 뇌룡의 포효를 휘둘렀지만, 다인은 고개를 숙이며 내 공격을 피해내더니 이내 또 다시 빨라진 움직임으로 카타르를 휘둘렀다.
‘제길.’
이대로 가다가는 다시 몇 천의 생명력이 깎일 지경!
“역동.”
콰아앙!-
가까스로 대지의 역동을 사용해 다인을 떼어낸 나는 좀 더 진지하게 상대하기로 했다. 속도에서 터무니없이 밀리니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그러던 사이, 내가 만들어놓은 환영이 다인에게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그냥 숫자로 밀어붙여?’
나와 환영의 공격력은 똑같았으니 한 대만 때려도 내가 유리해진다. 두 대를 때린다면 내 승리가 확정이고.
또 그렇게 생각한 난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엘시크의 환영이동…….”
순식간에 네 명의 환영을 더 만들자 굳어지는 다인의 표정. 동시에 다섯 명의 환영이 각각의 스킬을 사용하며 다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우, 우와! 저건 또 뭐야?! 분신술?”
“도대체 몇 명이야?”
“분신 주제에 스킬까지 쓰다니!”
분신이 다섯 명이나 되니 사용하는 스킬도 제각각이었다. 거신의 질주를 사용하는 녀석도 있고, 도발의 외침, 영혼 해방까지 사용하는 환영을 보고 있으니 내가 가진 스킬을 죄다 공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놈은 또 뭐하는 거야?’
팅-
뜬금없이 동전을 튕기는 환영까지 본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인에게 달려들었고, 다인도 환영이 이 정도로 섞인 상태에서 나를 공격하기가 힘들었는지 점차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더럽게 잘 피하네.’
나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이 돌아다니며 공격하고 있는 와중에도 다인은 계속해서 가속을 사용하며 이리저리 피해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나와 내 환영이 지닌 생명력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지금의 내 생명력은 13,234. 9레벨에 환영은 4천이 넘는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다. 제대로 공격해도 한 번에 죽일 수 없을 정도의 생명력인데, 이런 식으로 한두 번 공격하고 빠지는 행동으로는 결코 내 환영을 죽일 수 없었다.
‘이제 끝났군.’
지금까지 공격을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난 환영의 남은 시간을 떠올리며 승리를 장담했다.
번쩍-
곧이어 차례대로 빛나는 밝은 황금색의 빛. 그 빛은 환영의 몸에서 생겨났고, 갑작스런 그 빛을 본 다인은 곧장 뒤로 물러섰다. 그 뒤쪽을 제외한 주변으로는 환영이 배치된 상황.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방패를 들고 돌진했다.
“거신의 질주!”
내 돌진을 본 다인은 아주 잠깐 고민하는 기색이 보인 듯했으나 이내 옆으로 뛰어 내 돌진을 피해냈다. 피해냈지만 이미 그곳에는 황금빛을 내뿜고 있는 환영이 있었다.
콰아앙!!- 콰콰쾅!!-
[스킬 데미지! 2,843.]
[스킬 데미지…….]
[대련에서 승리하셨습니다.]
환영의 지속 시간이 다 되면 남은 생명력만큼 폭발 데미지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폭발 데미지로 승리한 난 살짝 지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후, 이거 은근히 짜증나네.’
이리도 힘들게 이길 줄이야? 한숨을 내쉰 나는 다인을 보았고, 패배해 잠깐 회색으로 변했다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 다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분하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고는 대련장에서 내려갔다.
‘아이젠 녀석은 이런 녀석을 상대로 어떻게 척살 명령을 내려 죽였지?’
접속하자마자 S랭크 스킬을 사용해 순식간에 빠져나갈 것만 같은 다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주변에서는 내 승리를 축하해주는 환호가 들렸다.
또 그 환호와 함께 아이젠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뭔 놈의 수고야? 애초에 일이 이렇게 된 것도 실력으로 부길마를 결정한다고 말한 녀석의 탓이기도 하다.
“이제 여섯 명과 싸우는 일만 남았군요.”
“여섯 명이라…….”
진짜 할 생각인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내게 도전했던 길드원을 바라보았다. 길드원은 내 시선에 흠칫거리며 어쩔 줄 모르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싸울 마음이 사라지는 듯했다.
“됐어. 어차피 나는 하겠다고 승낙하지도 않았잖아.”
처음부터 여섯 명과 싸웠다면 모를까, 한 명씩 다 싸운 뒤에 또 싸우는 건 피곤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저 모습을 보니 다시는 덤벼들지 않을 거 같다고 생각한 난 그렇게 말했고, 아이젠도 그런 내게 강요하지 않으며 이 대련의 마지막을 알렸다.
“그럼 이번 대련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다 끝났나?’
“루딘 님. 이후 계획은 어떠십니까?”
“응?”
길드에서의 일도 끝났으니 이만 빠질 생각이었던 내게 아이젠이 말했다.
“오늘은 좀 일이 있어서. 근데 왜?”
“슬슬 B랭크 의뢰를 할 때가 된 거 같아 그렇습니다.”
이 녀석은 왜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지?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B랭크 의뢰는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의뢰이기도 했다. 무려 100골드를 내야 받을 수 있는 B랭크 의뢰. 그런 의뢰의 보상은 과연 어떨까? 다만 오늘은 하기가 힘들었다.
“미안하지만 난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도록 할게.”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라도 괜찮으시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응? 내가 연락을 해야 B랭크 의뢰를 할 생각인가?’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봤는데 아직도 대련장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길드원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아이젠만 사라지면 곧장 내게 달려올 가세였다.
“……그럼 난 먼저 가볼게.”
“예.”
[귀환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재빨리 아이템 창에서 귀환 스크롤을 꺼내 저택으로 돌아온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더 피곤해지려나? 어쨌든 급한 일을 끝냈으니 이만 접속을 종료하기로 했다.
“접속 종료.”
[접속을 종료합니다.]
[다시 황혼이 비추는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