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112화 (112/211)

00112  第 22 話  =========================================================================

第 22 話 “34일째”

‘근데 던전은 왜 판다는 거지?’

서큐버스를 잡은 뒤, 처음에 했던 말과 다르게 던전을 팔겠다고 한 라즈의 의도가 궁금했던 나는 그 이유를 물어봤지만 라즈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라즈가 찾은 던전이니 팔아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라 그냥 넘어가기는 했으나 내심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딸각-

어쨌든 던전 공략이 끝난 나와 그녀들은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 마을로 돌아왔고, 처음으로 귀환 스크롤을 사용한 라즈는 마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왜 자신만 귀환 스크롤을 주지 않았냐며 따지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귀환 스크롤을 줄 기회가 분명 있었던 거 같은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깜빡한 모양이었다.

뭐, 그 뒤로 내게서 30장의 귀환 스크롤을 구매한 라즈는 다른 던전을 찾으러 훌쩍 떠났고, 난 남은 시간 동안 제작 스킬에 집중했다. 유아와 시나는 무슨 일인지 접속을 종료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제작 스킬은 언제 다 올리지.’

남은 시간 내내 철검을 만들었는데도 불과 17레벨에서 멈춘 제작 스킬을 떠올리니 절로 짜증이 생겨나는 듯했다. 어쨌거나 제작으로 시간을 보내고 접속 종료 메시지가 뜬 나는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황혼 게시판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일반 보스와 레이드 보스의 차이점.]

[내용:레이드 보스가 한 마리씩 공략되고 있는 지금, 아직도 일반 보스와 레이드 보스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레이드 보스는 속성이 미친 듯이 높습니다. 일반 보스의 속성이 대략 10~20% 정도인 것에 비해 레이드 보스는 기본 50%가 넘어가죠. 그리고 그 속성으로 인해 레이드 보스의 공략 난이도가 올라가는 겁니다.

속성이 높으니 거의 방어력 무시 데미지로 들어오는데다 생명력도 기존 보스에 비해 몇 배나 높고, 또 플레이어들은 결코 사용할 수 없는 스킬까지 쓰는 레이드 보스가 절대 쉬울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들 레이드 보스를 상대하실 때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차이가 있었나?”

지금껏 내가 상대한 레이드 보스는 총 세 마리였다. 투루와 우스트. 마지막으로 공포의 상징이라 불리는 베크샤. 여기서 베크샤는 유니크 무기를 들고 있는 지금의 나로서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일단 전투에 돌입하면 능력치부터 깎이니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스트도 못 버틸 정도니.’

뭐랄까? 수준이 낮은 레이드 보스는 그럭저럭 상대할 자신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나 혼자서는 힘들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검푸른 수호자 세트를 전부 모아 강화까지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 내 결투 승점은 정확히 45,690점. 레어 상자를 하나밖에 구매하지 못하는 승점이었다. 남은 134,310점을 모으기 위해서는 몇 달이 걸릴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디서 레어 상자 5개 정도 안 떨어지려나?

[영상 이벤트 순위입니다.]

“응? 영상 이벤트?”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있었지.

1등을 하면 300만 원을 준다는 그 이벤트였던 거 같았다. 황혼 내에 영상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면 그에 따른 조회수와 추천을 통계로 순위를 매기는데, 그렇게 1등을 하면 300만 원. 2등은 200만 원. 3등은 100만 원. 이런 식으로 상금을 주는 것이다.

예전에 라즈도 이걸 보고 나와 같이 영상을 찍자고 했었는데…….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니.’

딸각-

그때 일을 떠올리며 클릭해보니 역시 1등은 아이젠의 멸살검이었다. 황혼 최초로 등장한 S랭크라서 그런지, 아님 S랭크 스킬이 궁금해서 사람들이 클릭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압도적인 조회수와 추천으로 1등을 차지했다.

‘이럼 아이젠이 300만 원을 버는 건가?’

“…….”

부럽긴 하네.

영상 하나 찍어놓고 300만 원이라니? 내심 부럽다고 생각한 난 2등으로 넘어갔다. 2등은 엠페러 길드와 바무트 교단과의 전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게 2등?’

하늘 높은 곳에서 찍어 사람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영상이 2위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1,2등이 엠페러 길드와 관련되어 있었다. 설마 3등도 그런가? 궁금한 마음에 나머지 3등을 확인해보자 무슨 바다에서 거대 오징어와 싸우고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거대 오징어라면 크라켄이라는 몬스터일 텐데…….’

대충 짐작은 갔다. 이오트 왕국에서 생겨난 토벌 이벤트일 것이다. 숲과 평원이 적은 이오트 왕국은 바다 속에서 던전을 찾거나, 혹은 지도에 없는 섬을 찾아 그곳에서 사냥한다고 했는데, 그때 크라켄이 나타난 탓에 바다로 진출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내가 입원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기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 영상이 3위를 차지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영상을 찍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그런데도 3위라니.

이유가 궁금했던 난 그 영상을 클릭해보니 제법 잘 찍힌 장면이 재생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쿠오오오오!

‘오, 전투에 참여한 사람이 찍었나 보네.’

게다가 모자이크 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마도 길드에서 작정하고 찍은 영상인 듯했다. 또한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크라켄의 모습은 영상으로 보는데도 위압감을 드러냈고, 배위에서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플레이어의 모습도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꺄아악!

생각했던 것보다 박진감 있는 전투에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크라켄에게 다리를 붙잡힌 여성 플레이어가 이리저리 허공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영상 구도도 참 잘 찍힌지라 로브가 뒤집혀 속옷까지 드러난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시, 싫어엇!!

첨벙!-

곧이어 크라켄의 의해 바다 속에 빠진 플레이어가 다시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기절했는지 축 늘어진 모습을 보여줬다. 문제는 거꾸로 매달린 모습이라 하얗고 늘씬한 다리와 함께…….

‘아니, 설마 이런 영상으로 3위를 한 건 아니겠지?’

혹시나 싶어 밑에 댓글을 읽어보니 역시 아니었다. 잘 찍힌 영상과 함께 크라켄의 위엄이 드러난 거 같아 멋지다는 글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몇 개의 댓글을 살펴보자면…….

[와, 저때 나도 참가할 걸.]

[착한 크라켄. 인정합니다.]

[에휴, 이번 토벌도 실패로 끝나겠네.]

[하르페 제국은 토벌 의뢰에 성공했던데.]

[이오트 왕국에 수치다!]

‘뭐, 토벌에는 실패한 모양이네.’

어쨌든 3위 영상까지 확인한 나는 곧바로 그 영상을 종료하고는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딩동~

‘응?’

무슨 일이지?

이젠 초인종 소리에 자연스럽게 유아를 떠올린 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문을 연 그곳에는 유아가 아닌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뭐하고 있었어요?”

“……쉬고 있었죠.”

“그럼 한잔해요.”

손에 든 봉지를 들어 말하는 시나. 말을 들어보니 봉지 안에 든 것이 뭔지 짐작이 갔다.

“갑자기 웬 술이에요?”

“음, 어제 일을 포함해 사과할 게 있어서요.”

어제 일이라면 무식하게 먹어치운 그 일을 말하는 듯하다.

“들어가도 되죠?”

시나는 다시 내게 허락을 구했고, 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내 집으로 들어오는 시나를 볼 수 있었는데, 그 행동을 보니 아주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근데 남자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거 아녜요?”

“왜요? 덮치게요?”

내 물음에 뒤돌아 싱긋 웃어 보이는 시나. 그런 그녀는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던 나는 잠깐 시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지만 말이다.

“……아뇨.”

“그럼 상관없잖아요.”

‘내 말이 그렇게 신용 있었나?’

마치 그럴 일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시나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 계단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유아가 내려오고 있었다.

시나에 이어 유아까지.

솔직히 예상은 했다. 시나가 생각도 없이 찾아올 리 없을 테니 아마 접속을 종료한 뒤로 무슨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게임에서도 계속 붙어있던가 해야지.’

“안녕하세요.”

“게임에서 봐놓고 무슨 인사에요.”

“그래도요.”

난 그런 유아의 인사를 받고는 털레털레 거실로 들어왔다.

“근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에요?”

“말했잖아요. 겸사겸사 기원 씨에게 사과도 하고, 유아의 집들이 축하도 해줄 생각으로 온 거예요.”

“집들이를 왜 여기서 해요?”

내 말에 시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 시나에게 뭐라고 말하기도 그랬던 나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고, 시나는 그런 내게 캔맥주를 내밀었다.

“마셔요.”

“…….”

그래, 될 대로 되라. 난 반쯤 포기한 채 맥주를 받아 마셨다.

“던전에서는 미안했어요. 제가 그 말만 안 꺼냈으면 라즈 님이 던전을 팔지 않았을 텐데.”

“그게 왜 시나 탓이에요?”

“모르셨어요? 던전 보스를 잡으려면 기원 씨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서큐버스가 기원 씨를 덮치는 게 싫어서 팔기로 한 거예요.”

“에이, 설마요.”

“설마가 아닐 걸요? 유아,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응.”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한 난 다시 술을 마셨고, 이내 다시 한 번 시나의 사과가 들려왔다.

“또 어제 일도 죄송했어요.”

“괜찮아요.”

보답이라 생각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론 계산이 만만치 않게 나오기는 했지만 그 정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괜찮다고 대답했고, 그러던 사이에 문득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응? 웬 전화에요?”

내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는 사실에 전혀 의외라는 듯이 물어보는 시나. 대답해주고 싶어도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전화를 확인해보니 친구에게 연락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구네요.”

“예?!”

“…….”

왜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걸까?

난 오늘 레어 창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몇 배는 더 놀라고 있는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들이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실감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는 사람을 친구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조용히 해요.”

집에 온 것부터 시작해, 저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몇 배는 피곤해진 거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친구 '박재훈'에게 연락이 온 것을 확인한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이야?”

-와,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무슨 일이라니. 그것보다 뭐하고 지내?

“뭐…… 그냥 일하고 있지.”

참고로 지금의 난 취직했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집에서 조금 떨어져 따로 살고 있었다. 2년 전에 직감을 깨달은 내가 게임에 집중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들은 지금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한다며 착각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유아와 시나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유아, 들었어?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해?”

“아마 사정이 있을 거야.”

‘실수했군.’

그냥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는 건데. 속으로 이런 후회를 하는 사이, 다시 친구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아무튼 시간 되면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연락했어.

“그냥 얼굴만 보자고?”

-응, 나 취직했거든. 밥이라도 사주려고. 그리고 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도 안 하잖아. 나라도 연락을 해야지.

내가 열심히 게임으로 돈을 버는 동안, 녀석은 취직까지 한 모양이다. 나름 착실하게 살고 있다고 할까? 덧붙여 몇 달간 얼굴을 못 본 것도 사실이었기에 난 알겠다고 대답한 뒤, 통화를 종료했다.

“뭐래요?”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은 해줬다.

“얼굴이라도 보자고 하네요.”

“친구가 있었다니…….”

마치 충격이라도 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시나. 반응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에 비해 유아는 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친구 분이 다른 곳에 있나 봐요.”

“예, 조금 떨어져 있죠.”

“그럼 기원 씨는 부모님과 친구 분들이랑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거예요?”

“……예.”

“왜요?”

“…….”

나 자신에게 하는 대답이라면 직감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되지? 일단 마땅히 생각나는 대답이 없었던 난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 글쎄요.”

“대답을 안 해주시네요.”

아니, 대답하고 말고도 없이 진짜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실망하는 유아의 모습에 뭔가 죄책감을 느낀 난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당황하던 사이, 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맞춰볼까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시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보니 왠지 불안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방금 전화 온 친구 말고, 다른 친구에게 돈 빌린 거죠?”

“…….”

저걸 그냥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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