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0 第 22 話 =========================================================================
第 22 話 “34일째”
‘뭐, 시도는 해보는 게 좋겠지.’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있는데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라즈의 말대로 해보기로 결정한 나는 다시 불을 밝히는 그녀들을 보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응? 경험치가 800이나 들어왔네?”
“지금 인원이 네 명이니 악마가 주는 경험치는 2천이라는 말이네요.”
“2천이나 준다는 말이에요? 루딘, 악마는 어땠어?”
시나가 말한 경험치에 놀란 라즈는 악마에 대해 물어왔다.
“글쎄.”
“네가 잡은 거 아냐?”
잡기야 했지만 이미 내 능력치는 다른 플레이어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넘어서고 말았다. 남들은 이런저런 스킬을 다 써서 공격력 2천을 넘기느니 마느니 하는데, 난 망치만 휘둘러도 2천이 나온다.
그런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형편없었어.”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나도 잡을 수 있겠네.”
‘응?’
갑자기 무슨 소리지?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형편없다고 말한 거지, 라즈가 상대하가엔 좀 어려울 수 있다. 악마가 지닌 생명력이 못해도 2천은 넘었기 때문이다.
“잠은 어떻게 하려고?”
“은신으로 기습하면 될 거 같기도 해.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게 더 힘들 거 같은데.’
아니, 그보다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그런데 라즈 님. 던전 보스는 왜 잡으려고 하는 거예요?”
의아하다는 유아의 물음. 첫 전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에 빠졌던 유아는 이 던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했다. 그에 비해 라즈는 어떻게든 이 던전을 공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둘 다 허무하게 잠들었지만 반응은 정반대라고 할까? 보고 있자니 나 또한 궁금했다.
“돈이 되니까요. 던전을 팔아도 괜찮지만 보스 몬스터를 잡아서 얻는 아이템을 계속 파는 게 훨씬 이득이라 들었거든요.”
“돈이요?”
“처음에는 재미있을 거 같아 시작했지만…… 지금은 왠지 이쪽으로 나가도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랄까? 아무튼 그래요.”
‘다크 게이머로 나간다는 말인가?’
지금 라즈의 말은 던전을 팔지 않고 보스만 계속 잡아 획득하는 아이템을 현금으로 판다는 소리다. 의도야 좋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개인이 이 던전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자칫 잘못하다간 엉뚱한 길드에게 뺏길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침입하면 어쩔 건데?”
“아, 맞다. 거기에 대해 부탁할 게 있어.”
“……?”
라즈는 순간 부탁할 때만 짓는 사근사근한 미소로 내게 말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침입하면 엠페러 길드 던전이라 말해도 돼? 아니, 엠페러 길드의 부길마가 찾은 던전이라 하면 될 거 같아.”
‘소용없을 거 같은데.’
침입한 사람들에게 '여긴 루딘의 던전이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들이 '아, 그렇군요. 당장 나가겠습니다.' 라고 할까?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라즈의 말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킥킥킥.”
난 이런 내 생각을 라즈에게 말하려던 찰나, 앞쪽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몇 마리지?’
두세 마리가 나온다면 나도 잠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일단 환영부터 소환하는 게 좋으려나? 엘시크의 환영이동은 8레벨. 환영의 지속 시간은 45초였으니 수십 마리만 나오지 않는다면 환영으로 전부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그래도 혹시 몰라 환영을 난 은신 상태로 조금 기다렸고, 이내 세 마리의 악마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잠깐? 이대로도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회전 치기로 때린 뒤, 대지의 역동으로 묶어 다시 때린다면 세 마리 전부 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환영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니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나타났다! 루딘, 뭐해? 빨리 환영 만들어!”
“…….”
난 이미 만든 환영을 향해 소리치는 라즈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세 마리의 악마는 침입자를 확인하자마자 대뜸 보라색 빛부터 번쩍였다.
“으, 윽.”
[파티원 '유아' 님이 깊은 잠에 빠집니다.]
[파티원 '라즈' 님이 깊은 잠에 빠집니다.]
[관련 능력치 '투지'로 저항을…….]
‘확률이 아주 100%네.’
다만 시나는 걸려들지 않았다. 아마 보라색 빛을 봐도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면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환영도 멀쩡한데?’
환영은 보라색 빛이 공격 의사로 받아들였는지 그대로 악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연하지만 압도적인 전투였다. 환영은 신들린 듯이 망치를 휘두르며 악마를 때려잡았고, 악마들도 손에 든 꼬챙이를 들고 반격을 했지만 역시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투 경험치 800 획득!]
[전투 경험치…….]
[띠링!~ 파티원 라즈 님께서 '꿈의 목걸이'를 획득하셨습니다.]
‘와…….’
잠이나 잔 주제에 아이템까지 획득하다니.
아무튼 환영이 잠에 빠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으니 던전 공략도 무난할 거 같았다. 또 자신의 역할을 끝낸 환영은 지속 시간이 끝나자 사라졌고, 난 잠에 푹 빠진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이미 내 은신은 풀려버린 상태였기에 시나도 다가오는 날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이걸로 던전 공략이 가능하겠네요.”
“공략은 가능하겠죠.”
그것도 나 혼자.
다른 이들은 공략 자체가 불가능할 거 같았다. 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투지 능력치가 필수였다. 그 능력치가 없는 유아와 라즈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상관은 없었다.
‘이왕 같이 왔으니 보스까지는 잡아줘야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잠에 빠졌던 유아와 라즈는 다시 정신을 차리며 몸을 일으켰다.
“으…… 또 잠들었어.”
“일단 환영은 잠에 안 빠지는 거 같으니 공략은 가능할 거 같아.”
“그래도 네게 미안하잖아.”
“새삼스럽게. 신경 쓰지 마.”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대답할 때, 라즈는 자신에게 들어온 아이템을 확인했는지 깜짝 놀란 듯이 말했다.
“어? 아이템이다!”
‘꿈의 목걸이라고 했나?’
라즈는 아이템 창에서 하나의 목걸이를 꺼내 확인하더니 이내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것처럼 외쳤다.
“됐다!”
“뭐가 돼?”
“이 목걸이에 수면을 방지해주는 능력이 있어!”
“오?”
난 자랑스럽게 내밀고 있는 그 목걸이를 확인해보았다.
[꿈의 목걸이] (Magic)
설명:꿈을 먹는 악마의 마력이 깃든 목걸이. 꿈을 먹는 악마의 마력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 이 목걸이에도 그와 동일한 마력이 깃들어 있어 같은 힘을 어느 정도 중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지능(12), 마력(13)>
내구력:40/40
*수면에 빠질 확률 50% 감소.
“50%?”
생각보다 괜찮은 목걸이다. 수면 확률을 절반이나 줄여주다니? 이 목걸이를 착용하면 그럭저럭 전투에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라즈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목걸이를 즉시 교체했다.
“이젠 나도 도와줄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 던전에 대해 생각했다.
‘보니까 장신구 위주로 나오는 던전 같은데.’
목걸이가 나왔다는 것은 귀걸이나 팔찌, 반지 같은 것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남은 그 장신구도 수면 방지 확률이 붙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장신구부터 구하는 게 우선일 듯했다.
“좀 빠르게 움직이자.”
“응? 왜?”
“다른 사람도 장신구를 구해야 되니까.”
거기다 악마를 잡는 것도 어렵지 않으니 간단한 일이었다. 난 남은 사람들에게도 장신구를 구해줄 생각으로 빠르게 움직였고, 그녀들도 내 발걸음에 맞춰 따라왔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 빨리 갈 필요는 없잖아.”
“빨리 움직여야 몬스터를 만나지.”
-킥킥킥.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난 빛이 비춰지는 시야에 악마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이번엔 네 마리?’
난 대충 네 마리 전부 공격 범위에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는 행동을 개시했다.
“회전 치기!”
파치칙!
[스킬 데미지! 2,941.]
[스킬 데미지…….]
‘어라?’
무기를 강화한 탓인지, 아님 데미지가 두 배로 들어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믿기지 않은 데미지가 뜬다. 그리고 네 마리 전부 공격한 난 조금 전에 생각한 스킬 연계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역동.”
콰아앙!-
[전투 경험치…….]
마지막 세 번째의 회전 치기를 사용하기도 전에 죽어버린 악마들. 조금 진심으로 하니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또한 이런 내 전투를 처음으로 지켜본 둘은 놀람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정도로 약한 몬스터야?”
“나중에 직접 싸워봐.”
내심 라즈와 악마가 싸우면 어떨지 궁금했던 나는 그 말을 남기며 계속 진행했다. 나타나는 악마들이야 손쉽게 잡으니 진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바라던 장신구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구력이 좀 부족한 정도? 빠른 속도로 걸어가니 지구력은 좀처럼 채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유아와 라즈가 대신해 싸웠는데, 보니까 악마들도 그럭저럭 잘 싸운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참 많이 강해졌군.’
어쨌든 그런 식으로 던전 끝에 도착하니 이 동굴 형태의 던전과 어울리지 않는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빨리 왔네.”
라즈의 감탄한 목소리.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보통 던전을 공략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상당히 빨리 온 편이기도 하다. 때문에 라즈의 말에 끄덕인 난 문을 열기 위해 손을 올렸다.
“자, 들어가자.”
“응? 바로 들어갈 거야?”
“딱히 어려운 보스도 아닐 거 같아서.”
반대로 이런 던전의 보스가 주는 아이템이 현금으로 팔릴지 의문이었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열었고, 이내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어머나~ 오랜만에 손님이네.”
‘뭐지?’
딱-
그때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밝아졌다. 밝아진 중심에는 던전 보스로 추측되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서큐버스(BOSS)]
‘서큐버스?’
“응? 생각보다 손님이 많네.”
그렇게 말을 한 서큐버스는 자신의 머리를 찰랑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뭐라고 할까? 눈을 둘 데가 없다. 처음에는 그저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타이즈를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언뜻 속살까지 비치고 있었다.
더군다나 유난히 강조된 몸매에서 중요 부위까지 비치는 것을 확인한 나를 향해 옆에 있던 라즈가 싸늘하게 말했다.
“아주 구경났네. 구경났어.”
“…….”
“뭐해? 빨리 가서 안 잡아?!”
화난 건가? 혹시 몰라 뒤를 돌아보니 유아와 시나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못 이긴 난 한숨을 내쉬며 서큐버스에게 다가갔고, 서큐버스는 작은 날개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네가 상대할 거니?”
탓-
대답조차 필요 없다. 어쨌든 선빵이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난 즉각 서큐버스에게 접근하고는 뇌룡의 포효를 휘둘렀다. 그냥 휘둘러도 2천이 넘는 데미지! 하지만 놀랍게도 서큐버스는 그런 내 공격을 손쉽게 피해냈다.
‘꽤 빠른데.’
휘두르는 공격에 맞춰 뒤로 물러나 피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민첩이 높다고 판단했다.
‘도망부터 못 가게 해야 되나?’
거기에 대한 스킬이 딱 하나 있다.
“도발의 외침!”
쾅!-
“어설픈 도발이네.”
‘젠장.’
붉은 기류를 맞고도 요염하게 웃는 서큐버스. 도발의 외침이 일반 사냥에서는 좋은 스킬이라는 것에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과 같은 보스에게서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거 같았다.
“나도 선물을 줘야겠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큐버스의 주위로 회색의 창이 생겨났고, 숫자는 무려 10여 개에 달했다.
‘아니, 그것보다 어디서 본 창인데?’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예전에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인 투루가 사용했던 스킬. 그와 똑같은 스킬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서큐버스는 내게 그 창을 날렸고, 나 역시 방패를 들어 스킬을 사용했다.
“거신의 질주!”
쾅!- 쾅!-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800.]
[압도적인 방어력…….]
‘큭, 미친.’
창에 관통 효과까지 있었나? 하지만 대형 방패의 관통 방어 확률은 50p. 여기서 4레벨의 제이어의 방어지배로 다시 12p. 총 62p의 관통 방어 효과로 날아오는 대부분의 창을 막아냈다.
다만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기에 두 번 정도 관통 데미지가 떴지만 그 대가로 내 방패는 서큐버스에게 닿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