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9 第 22 話 =========================================================================
第 22 話 “34일째”
“후.”
“갑자기 웬 한숨이야?”
약속한 대로 라즈와 함께 던전으로 가기 위해 누군가를 기다리던 도중, 내가 내쉰 한숨 소리를 들은 라즈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야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지만 라즈에게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냥.”
난 어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떠올린다.
유아에게 연락하라고 말했던 시나는 내가 못 미더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차 연락을 했다. 덧붙여 왜 전화를 했는지도 물어왔는데, 그 질문에 솔직하게 말해야 될지 고민한 나였지만 유아가 대뜸 '신아 전화에요?' 라고 물어보는 탓에 죄다 쓸모도 없게 되었다.
당연히 유아 목소리를 들은 시나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내게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본 시나는 이내 유아와 통화를 했고, 유아에게서 이런저런 말을 들은 시나는 거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더니 대략 30~40분 뒤에 내 집으로 찾아오고야 말았다.
근데 왜 하필 내 집일까?
어쨌든 시나는 자신과 상의도 없이 멋대로 행동한 유아에게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떠드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이게 다 내 탓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었던 내가 무슨 죄인지 모르겠지만…….
“뭘 그리 생각해?”
“응? 아, 별거 아니야.”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글쎄.”
그렇다는 말로 시나의 말을 인정했다. 괜히 따지다간 이쪽이 피곤해질 거 같아서였다.
“그것보다 유아와 시나를 데려갈 필요는 없잖아?”
이런 내 질문에 라즈는 의외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곧 부끄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설마 나랑 단 둘이 가고 싶은 거야? 미리 말하지 그랬어.”
“…….”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아무튼 시나에게 잘못을 인정하자, 시나는 '그럼 밥이라도 사줘요.' 라는 말을 꺼냈고, 어차피 그럴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난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하지만 막상 음식점에 들어간 시나는 마치 분풀이를 하듯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또 그렇게 먹어치운 음식에 맞는 합당한 가격이 나오자 그제야 만족했다는 표정을 보여줬다.
오죽했으면 유아가 대신 사과까지 했을까.
“다음에 던전 찾으면 둘이서 가자.”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에이~ 쑥스러워하긴. 조금 솔직해져 봐.”
“난 한없이 솔직한데?”
이런 내 대답에도 라즈는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왠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 보스라…….’
라즈가 굳이 유아와 시나까지 데려가는 이유는 던전의 보스를 잡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던전 보스 따위야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아직 내 능력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라즈는 생전 모르는 사람보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그 둘을 데려가는 것으로 타협을 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능력치를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기도 했다.
‘10강 뇌룡의 포효가 있는 내게 보스 따위야.’
어제 유아와 시나를 보내고 황혼에 접속한 나는 뇌룡의 포효만 10강으로 만들고는 접속을 종료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내 능력치는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이름:루딘]
[칭호:빛의 수호자]
[레벨:66]
[명성:1809]
[길드:엠페러(Emperor)]
[생명력:13182/13182]
[마나력:5010/5010]
[지구력:100.0%]
[공격력:2386] [마법 공격력:955]
[방어력:1560] [마법 방어력:1342]
[능력치]
근력(832) 지능(181) 민첩(381)
체력(638) 마력(405) 기술(69)
투지(60) 소환(130) 집중(24)
행운(221)
[습득한 스킬:19/30]
[동료 NPC:1명]
무려 2천이 넘어가는 공격력!
10강까지 강화된 유니크 무기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하지만 어제의 일로 충격이 컸던 탓에 이런 능력치를 봐도 예전처럼 기뻐 날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무기 자체는 참 대단한데.’
참고로 10강까지 강화된 망치의 능력치다.
[+10 뇌룡의 포효] (Unique)
설명:번개의 힘을 간직하고 있는 뇌룡의 뿔로 만들어진 망치. 단단함이 그 어느 금속보다 뛰어난 뇌룡의 뿔은 가공조차 불가능했던 탓에 그 형태 그대로 쓸 수 있는 망치로 만들어졌다. 또한 가공을 하지 않은 탓에 뿔에 지닌 번개의 힘이 전혀 손실되지 않았고, 그 번개의 힘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이 망치는 여타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기가 되었다.
<근력(150+68), 민첩(10+33), 체력(100+52)>
<번개 속성 10%>
공격력:1555(+955) 마법 공격력:777(+477)
내구력:210/210
*망치로 적중 시, 물리 공격력이 전격 데미지로 적용.
*망치로 적중 시, 자신의 근력보다 낮은 적에게 2배 데미지.
*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뇌룡의 포효' 발동.
*강화 옵션:번개 속성 10% 상승.
가격조차 측정이 안 되는 무기. 농담이 아니라 억 단위는 가볍게 넘길 듯했다. 막말로 마법 공격력만 봐도 투루 지팡이보다 훨씬 높다. 거기다 번개 속성이 20% 붙어 있었기에 내가 그쪽 계열 마법만 습득해도 곧장 마법사로 뛸 수 있을 정도였다.
“아, 저기 온다.”
라즈의 말에 거기까지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이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유아와 시나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라즈 님.”
“오랜만이네요.”
난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그녀들을 보고 있는 사이, 유아는 내게도 다가와 말을 건넸다.
“잘 주무셨어요?”
“예. 아, 거래 신청.”
문득 유아에게 줄 게 있다는 것을 떠올린 나는 거래 신청을 한 뒤, 빛나는 손을 내밀었다. 유아는 그런 나와 내 손을 번갈아보고는 의아하다는 표정과 함께 내 손을 잡았다.
“거래 신청은 왜요?”
대답 대신 거래창에 어제 만든 레어 창을 올려놓는다. 올려진 창을 본 유아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거래가 완료된 뒤, 다시 창을 꺼내 확인하는 유아의 표정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역시 쓰던 무기보다는 좋은 거 같네.’
“이거, 루딘 님이 만드신 건가요?”
“예.”
“나도 좀 보여줘.”
옆에 있던 시나도 궁금했는지 다가가 창을 확인했다.
“와~ 레어 아이템이네요. 응? 제작자가 루딘? 설마 직접 레어 아이템을 만드신 거예요?”
“그렇죠.”
“제작으로 레어 아이템을 만들다니.”
레어 아이템이라는 단어 때문인가? 그저 놀라는 둘과는 다르게 라즈는 뭐라 형용하지 못할 표정을 지으며 레어 창과 나를 바라보았다. 레어 창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나를 보는 거야? 어쨌거나 많은 의미가 담긴 듯한 라즈의 시선을 회피한 나는 어색함을 숨기기 위해 유아에게 말했다.
“도움은 될 거예요.”
“예, 잘 쓸게요.”
“차라리 이걸 팔아버리는 게 더 도움 되지 않을까?”
“…….”
시나의 말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가격 정도는 생각해보았다. 저걸 팔면 얼마가 나올까? 기껏해야 1천만 원도 안 될 거 같았다. 레어 아이템이라고 해도 공격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볼품 없었으니 말이다.
“나도 레어 아이템 만들어줘!”
“……뭐?”
지금까지 무기를 두 개나 만들어줬으면 됐지, 뭐라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재 라즈의 무기는 관통 확률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만 생각해도 유아의 무기보다 훨씬 더 유용했다.
“레어 아이템을?”
“응.”
“음, 재료만 가져오면 만들어줄게.”
만들어본 경험에 의하면 레어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레어급 재료가 필요한 거 같았다. 그 말은 라즈가 레어급 재료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레어 아이템은 만들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았는지 라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나저나 던전은 언제 가는 거야?’
시나의 이어 라즈까지 유아에게 다가가 무기를 보여 달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도무지 출발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러다가 오늘 못 가는 거 아냐?
걱정과는 달리, 무기 구경이 끝나자마자 라즈는 던전으로 안내했다. 던전도 꽤 먼 거리에 있어 다른 마을로 공간이동을 이용한 뒤에 이동했고, 이내 라즈가 찾았다는 던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즈는 찾은 던전을 '달콤한 꿈의 나락'이라 소개했다.
소개한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던전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형태로 이뤄졌기에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어둠을 밝혀주는 스킬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유아. 그리고 라즈.
그 둘이 어둠을 밝혀주는 스킬을 사용한 탓에 던전 진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믿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었다.
“킥킥킥!”
번쩍-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보라색 빛. 빛은 번쩍하며 생겨났기에 애초에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보라색 빛에 닿으니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다.
“아…….”
털썩-
[파티원 '유아' 님이 깊은 잠에 빠집니다.]
[파티원 '라즈' 님이 깊은 잠에 빠집니다.]
‘미친.’
뭐야? 이 던전은?
이 던전에서 나오는 녀석들은 '꿈을 먹는 악마'였다. 머리와 몸통이 동글동글한 눈사람 형태의 몬스터였는데, 실제 눈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온몸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몬스터가 보라색 빛을 내뿜는 스킬을 사용하자, 그 빛에 닿은 사람들은 곧장 쓰러져 잠에 빠졌고, 난 지니고 있는 투지로 인해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다.
[관련 능력치 '투지'로 저항을 시도합니다.]
[결과…… 성공!]
[잠의 권능에서 벗어납니다.]
게다가 유아나 라즈가 잠에 빠지면 어둠을 밝혀주는 스킬이 취소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지금 그 둘은 잠에 빠진 상태. 따라서 주변은 다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덮여버렸고, 난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망치를 휘둘러 싸웠다.
‘보이지도 않는 상대와 싸워야 되다니.’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 공격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파치칙!-
망치에 적중하자마자 터져 나오는 번개의 불꽃. 덧붙여 데미지도 엄청난 수준으로 생겨났다.
[적중 데미지! 1,768.]
“키에엑!”
‘맞았다!’
“역동!”
콰아앙!-
[스킬 데미지! 892.]
망치로 때리자마자 위치를 파악한 난 대지의 역동으로 움직임을 묶은 다음 다시 망치를 휘둘렀고, 그렇게 총 세 번의 공격을 맞은 악마는 경험치로 산화했다.
[전투 경험치 800 획득!]
‘후, 4명이서 800 경험치면 얼마를 준다는 말이지?’
아니, 지금은 그런 것보다 잠에 빠진 인원을 깨우는 게 먼저였다. 근데 이 던전 위험하지 않나? 지금이야 운 좋게 해결했지만 반대로 내가 잠에 빠진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남은 그녀들이 악마를 잡아야 되는데, 보아하니 나를 제외한 모두가 투지 능력치가 없는 거 같았다.
“역시 루딘 님이시네요.”
‘그러고 보니 시나는 잠에 안 빠졌나?’
일찌감치 전투에서 빠져 있었던 시나는 잠의 권능에 걸려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나가 깨어 있다고 해서 전투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역시라는 건 무슨 뜻…… 아니, 그건 뭐예요?”
원래는 어둠으로 인해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지금 시나의 손에는 아주 미약한 빛을 내뿜고 있는 물약이 있었다. 그 물약으로 인해 대략적인 사람의 형태까지만 보였던 난 거기에 대해 물어보았고, 시나는 간단하게 답해줬다.
“전에 만든 제 최고의 물약이요. 완성도가 높아서 그런지 이 물약은 약간의 빛이 나거든요.”
‘최고의 물약?’
주변을 밝힐 물약이 아니었나?
아마도 내가 제작할 때 대성공을 띄운 그런 걸 말하는 듯했다.
“그보다 깨워야겠네요.”
“스킬로 잠에 빠진 건데, 깨운다고 일어날까요?”
“으, 응.”
“음?”
그때 잠에 빠졌던 유아와 라즈는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니까 잠에 빠진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대략 5~10초 정도? 단지 모두가 잠들어버리면 그 정도 시간에도 위험할 수 있었기에 이 던전은 공략 자체는 힘들 거 같았다.
“시나가 보기에는 이 던전 공략이 어떨 거 같아요?”
“다른 방법이 없다면 좀 힘들겠죠.”
시나도 나와 비슷한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몬스터들도 처음인지라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와 시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즈는 몸을 일으키며 그 말에 부정했다.
“방법이라면 있어.”
“방법이 있다고?”
“네가 가진 스킬 중에 환영 있지? 의지가 없는 환영은 정신 계열 마법에 걸리지 않는다고 들었어.”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공략이 가능하다. 반대로 아니라면?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상관은 없을 듯했다. 고작 몇 초 정도 잠에 빠진다고 죽은 생명력과 방어력이 아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