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第 21 話 =========================================================================
第 21 話 “33일째”
‘미스릴?’
미스릴은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물건이었다. 이게 황혼에서는 레어 등급으로 나오는 건가? 때마침 재료를 찾고 있던 내게 이 미스릴은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미스릴이라면 무기도 더 좋은 게 나오겠지?’
못해도 라즈에게 만들어준 활보다는 좋은 무기가 나올 거라 생각한 난 미스릴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제가 살게요.”
“오오! 몇 개 구매하실 건가요?”
“몇 개라뇨?”
미스릴은 한 개만 있는 게 아니었나?
“3개까지 있거든요. 3개 전부 구매하시면 57골드에 드릴게요.”
“…….”
개당 1골드씩 깎아주는 그 배려에 감격한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스릴이 3개나 있었나? 그럼 적당히 55골드에 줬으면 좋았겠지만 굳이 이런 걸로 다투고 싶지 않았기에 조용히 끄덕이기만 했다.
“주세요.”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57골드가 날아가는군. 오랜만에 접속해서 돈이란 돈은 모조리 날리고 있는 나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쉬자, 문득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걸 사다니. 돈이 썩어나나?”
“저놈 누군지 몰라? 엠페러 길드의 부길마잖아.”
“부길마? 오~ 엠페러 길드에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문이 거짓말은 아니었나보네.”
“당연하지. 던전이 몇 개인데.”
“말이라도 걸면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꿈 깨라.”
진짜 투구라도 바꿔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게 좋으려나? 갈 때마다 수군거리고 있으니 여간 짜증나는 게 아니다. 마침 내 결투 승점도 레어 상자 하나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모였기 때문에 그걸로 검푸른 수호자의 투구를 뽑으면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다른 재료도 찾아봐야지.’
그렇게 미스릴을 구매한 난 자리를 옮겨 남은 재료도 마저 구매했다. 강화석이야 10개 전부 간단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구했지만, 재료만은 시간이 꽤 걸리고 말았다. 단순히 마음에 드는 재료가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이러나저러나 돌아다닌 보람이 없지는 않은지 대충 마음에 드는 재료를 구매한 난 다시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 내 집으로 돌아왔다.
[귀환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파밧!-
‘오늘 귀환 스크롤로 30실버나 썼네.’
뭐, 지금의 내겐 그 정도 돈은 아무런 부담도 되지 않지만.
“음.”
어쨌든 한참을 돌아다니며 구매한 재료를 확인한다. 미스릴보다야 싼 가격이었지만 방금 구매한 이 재료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것이다.
[이카륨 주괴(빛 속성)] (Magic)
설명:속성을 담을 수 있는 특수한 광물을 제련한 주괴. 원래 이카륨은 무속성을 띄고 있는데, 제련하는 과정에서 빛 속성을 주입했다. 이 주괴로 만든 무기와 방어구는 빛 속성이 깃들 확률이 높다.
*재료 가치 20.
[별의 조각] (Magic)
설명:광물의 숨겨진 힘을 이끌어내는 신비한 조각. 밤하늘에 별처럼 반짝이는 것이 특징이다. 만일 특수한 광물과 함께 이 재료를 넣는다면 숨겨진 힘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다.
*재료 가치 22.
‘이 정도면 괜찮겠지.’
미스릴 3개. 이카륨 주괴 10개. 별의 조각 1개. 총 14개의 재료를 모은 난 슬슬 무기를 만들기로 하며 레어 망치와 장갑을 꺼내들었다.
“제이어의 수호방패.”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활성화됩니다.]
“…….”
근데 보답으로 게임 아이템을 주는 건 이상하지 않나?
제이어의 수호방패를 사용하자마자 불연 듯 떠오른 생각. 이걸 잘못 해석하다가는 게임 중독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차라리 현실에서 밥이라도 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잠깐 거기에 대해 고민한 난 결국 둘 다 하자는 결론을 내리고는 망치를 내려쳤다.
깡!-
‘아마 빛 속성 무기가 뜨겠지?’
굳이 빛 속성을 선택한 건 유아에게 회복 스킬이 있어서다. 원래라면 관통 속성을 원했지만, 거기에 관한 아이템이 없었기에 그나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빛 속성을 고른 난 곧이어 모루에서 뿜어지는 황금색 빛을 보았다.
끝났군.
“완성한다.”
[찬란한 영혼의 창이 완성되었습니다.]
[설명에 루딘 님의 이름을 넣겠습니까?]
“응? 이름?”
갑자기 뭔 이름을 넣으라는 거지? 지금까지 수백 번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넣는다.”
[설명에 루딘 님의 이름이 추가됩니다.]
메시지 내용에 호기심을 느낀 난 설명에 내 이름을 추가하고는 만들어진 창을 확인했다.
[찬란한 영혼의 창] (Rare)
설명:제작자 '루딘'이 만든 무기. 두 종류의 광석을 완벽하게 합쳐 만들어진 이 창은 그가 가진 실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감탄할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이 창은 재료가 가진 특성으로 인해 빛 속성이 깃들어져 있다.
<근력(25), 체력(21), 민첩(24)>
<빛 속성 4%>
공격력:338 마법 공격력:217
내구력:332/332
*물리 공격력에 10% 추가 데미지.
*모든 빛 계열의 스킬 효과 10% 상승.
‘레어 아이템?’
뭐지? 미스릴을 섞어서 그런가? 그리고 설명을 읽어보니 정말로 내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아마 레어 아이템을 만들면 제작자의 이름을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좀 애매한데.”
레어 등급이 떴다는 사실은 놀라웠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공격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근력이나 체력과 같은 능력치도 모두 합쳐 70. 내가 가진 레어 검이 총 150이 올라가는 것에 비해 이 창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어 방패조차 120이 올라가거늘.
“레어라고 해도 다 같은 레어가 아니라는 건가?”
심지어 밑에 적힌 특수 능력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10% 추가 데미지? 차라리 10% 고정 데미지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님 관통 확률이나 붙을 것이지.”
나와는 달리 유아는 관통 데미지로 싸우는 스타일이었다. 그걸 따지면 이 창은 여러 의미로 실망이 컸다.
“뭐, 유아가 들고 있는 창보다는 좋겠지.”
다른 건 몰라도 공격력 하나는 높지 않은가? 난 그렇게 생각하고는 만든 창을 아이템 창에 집어넣었다.
‘이젠 강화를 할 차례군.’
유니크 망치의 강화. 10강까지 강화하면 대체 어떤 괴물이 탄생할지 내심 기대한 나는 망치와 강화석을 꺼내들었다.
[친구 '시나'님께서 접속하셨습니다.]
[친구 '시나'님께서 대화를 요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대화 요청?”
그때 시나가 접속과 동시에 내게 대화 요청을 한 것을 본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에 시나가 없는 걸 보니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접속하자마자 연락을 하다니.’
이런저런 고민을 짧게 끝낸 난 대화 요청에 수락했다.
[대화에 연결되었습니다.]
-오늘 퇴원하신 거예요?
“예, 그렇죠.”
-와~ 퇴원하자마자 게임에 접속하다니. 어떤 의미로 대단하네요.
“…….”
뭔가 말이라도 해야 될 텐데 막상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것보다 유아에게 연락했어요? 퇴원했다고?
“예? 아뇨, 아직.”
-역시 무심함의 끝을 보여주네요. 적어도 연락은 해야 될 거 아녜요. 유아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시나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접속하기 전에 연락이라도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은 뒤였다.
-지금 나가서 연락하세요.
“……예?”
-아님 계속 게임만 할 생각이었어요?
“아뇨, 연락해야죠.”
-유아에게 연락하고 다시 접속하던가 하세요.
시나는 그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끊었다. 대화가 끊긴 와중에도 몇 초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한 난 이내 망치와 강화석을 다시 아이템 창에 집어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나의 말대로 나도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연락하는 김에 저녁 약속도 잡으면 될 거 같았다.
“접속 종료.”
[접속을 종료합니다.]
[다시 황혼이 비추는 거리에서…….]
“후…… 응?”
접속을 종료하고 현실로 돌아온 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내 옷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직감을 써서 당연히 옷이 땀에 젖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뭐지?”
물론 멀쩡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에 비해 소량의 땀만 흘린 난 알 수 없는 현상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는 유아에게 연락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딩동~
“……?”
초인종?
내 집에 초인종이 울릴 일은 없다. 그래서 잠깐 잘못 들은 거라 착각했지만 다시 한 번 울린 초인종은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누구지?’
라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어보니……
철커덕-
“안녕하세요.”
그곳에는 유아가 있었다.
“……?”
그와 함께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잠시간 유아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유아가 있는 거지? 내가 그렇게 유아를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유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받으세요.”
‘뭘 받아?’
고개를 내려다보니 접시에 담겨진 떡이 있었다.
“그보다 들어가도 되죠?”
“아, 예.”
유아가 건네준 떡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아는 실례한다고 말을 남기고는 내 집으로 들어왔고, 난 내 손에 들린 떡을 보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와~ 깔끔하네요.”
그야 필요한 물품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깔끔한 거겠지만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난 손에 들린 접시를 대충 아무 곳에나 놔두고는 혹시나 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다.
“그, 이사 오신 건 아니죠?”
“맞는데요?”
“…….”
도무지 뭐라고 해야 될지 떠오르는 말이 없다. 괜스레 짜증과 걱정. 의문이 뒤섞여 복잡하기만 한 내게 유아는 다시 말했다.
“혹시 놀라셨어요?”
“……예.”
정확하게 따지면 이사를 왔다는 사실보다 유아가 이런 성격일 줄 몰랐다는 것에 더 놀랬지만 거기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혹시 시나에게는 말했어요?”
“아뇨, 말 안 했어요.”
“부모님은요?”
“저 원래 혼자 살아요.”
“…….”
그러니까 독단으로 왔다는 건가? 유아가 이사를 하든 말든 상관이야 없지만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상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가뜩이나 복잡해진 심정을 느낀 난 다시 유아에게 말했다.
“다시 돌아가시면 안 되죠?”
이런 내 질문에 잠깐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던 유아는 이내 배시시 웃었다.
“예. 안 돼요.”
“…….”
그 미소에 잠시 넋이 빠질 뻔한 나였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나에게 연락이라도 해서 대신 유아를 설득시키게 하려고 했지만 그런 내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아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기원 씨는 제가 싫으세요?”
“아뇨, 싫지는 않아요.”
“그럼 기뻐해도 되잖아요.”
“여기서 뭘 기뻐해야 돼요?”
되물으며 시나에게 연락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시나는 황혼에 접속해 있었지? 시나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황혼에 접속해야 된다는 뜻이다.
“전 현실에서도 볼 수 있어서 기쁜데요?”
그 말을 들은 난 캡슐에 들어가려다 말고 유아를 보았다. 당황한 탓에 허둥지둥 움직이고 있는 나와는 달리, 유아는 태연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유아의 모습에 내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은 난 유아와 대화를 나누기로 결심했다.
“아깐 경향이 없어 물어보지 못했네요. 어째서 이사 오신 거예요?”
“그때 기원 씨가 거절하셨잖아요.”
“거절했다고 해서 직접 오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어째서요?”
“그야…….”
할 말이 없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별다른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순히 유아의 행동만 보자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이사를 왔다. 이게 끝이지 않은가? 그런 유아에게 무슨 말을 할까. 잠시간 고민하던 나는 이내 다 집어치우고 솔직한 심정을 말하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유아에게 미안해서 그래요. 병원에서의 일을 포함해 괜히 신경 쓰게 만든 것도 미안한데, 여기까지 오시면 전 어떻게 보답해야 될까요? 그냥 제게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해요. 따지고 보면 제게 신경 쓸 이유도 없잖아요.”
횡설수설한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유아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전에 황혼에서 말했잖아요. 좋아한다고. 그거면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황혼에서의 루딘이 아닌, 현실에서의 나까지 좋아한다는 그 말에 난 어쩔 수 없이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