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第 15 話 =========================================================================
第 15 話 “17일째”
“보스가 레이드용 보스에요.”
“…….”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란 말에 잠깐 할 말을 잃긴 했지만 그제야 이해가 갔다. 단순히 보스 몬스터를 잡아 레어 아이템을 준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투루인가요?”
하지만 난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라도 그 대상이 투루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투루는 인원이 적어질수록 약해지는 특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레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우스트라는 거대한 나무 형태의 보스에요.”
‘……하긴, 투루는 인원 제한이 없지.’
그렇다면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째서 아이젠이 거절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라니.
다만 인원 제한 30명이라는 부분에서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인원 제한이 정해져 있으니 그 우스트라는 보스도 생각보다 약하지 않겠는가? 바무트 사도와 싸웠을 때는 몇백 명이 죽고 난리가 났지만 우스트는 그 정도로 강하지 않을 거라는 소리였다.
‘어쨌든 궁금한 건 다 풀렸군.’
마지막 하나만 제외한다면.
“대가로 레어 아이템을 주기로 했죠? 한번 보여주세요.”
“예? 아, 여기 있어요.”
레어 아이템을 보여 달라는 내 말에 레시아는 신고 있던 자신의 신발을 벗어 내게 내밀었다. 신고 있었던 거였나?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으나 레어 아이템의 확인을 멈추지는 않았다.
[거친 방랑자의 가죽 신발] (Rare)
설명:가볍기로 유명한 모콘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 오로지 방랑자를 위해 만들어진 이 신발에는 걷기에 유용한 마법이 걸려있다. 따라서 아무리 먼 거리를 가더라도 지치지 않는 효과가 있다.
<근력(5), 민첩(30), 체력(30)>
<바람 속성 저항력 2%>
방어력:60 마법 방어력:60
내구력:85/85
*이동 속도 10% 상승.
*500M 이동 시, 지구력 1% 회복.
‘가죽 신발?’
가죽 신발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고 있는 푸른 돌 신발보다 좋았다. 그럼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레어 아이템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게 흠이었다.
한마디로 눈이 돌아갈 만큼 좋은 아이템은 아니라는 뜻이다.
“레어 아이템은 맞네요.”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목숨을 걸고 싸울 정도는 아니에요.”
“아…….”
솔직한 내 대답에 레시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단순히 이 신발을 얻기 위해 레이드 보스와 싸울 수는 없었다.
뭐, 어찌 됐든 이야기는 끝난 거겠지?
레시아에게도 충분히 대답이 됐을 거라 생각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내 움직임을 눈치 챈 레시아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내 팔을 붙잡았다.
“아님 원하시는 걸 들어드릴게요. 이번 한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아뇨, 딱히 원하는 게 없어서…….”
“거기 무슨 일이에요?”
그때 다른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련?’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무트 교단에서 A랭크 스킬인 화염 폭풍을 선보였던 마법사 화련이었다. 귀환 스크롤로 온 건가? 어느 샌가 이곳에 자리한 그녀를 보며 생각하고 있을 때, 화련은 이쪽으로 다가왔다.
“뭔가 재미있는 일 같은데, 저도 같이 들어요.”
재미있는 일은 무슨.
“별거 아니에요. 퀘스트 진행 중에 나오는 보스를 도와달라고 해서요.”
“보스 공략 말인가요? 이상하네요. 대체 어떤 보스이기에 루딘 님의 도움까지 필요한 거죠?”
“레이드용 보스에요.”
레이드용 보스라는 단어에 화련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레이드 정도는 돼야 루딘 님을 움직일 수 있겠죠.”
‘무슨 소리야?’
난 일반 보스 몬스터만 되도 승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이드용 보스라는 말에 거절한 건데, 화련은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저 신발은 루딘 님을 고용하는 대가로 주는 건가요?”
“뭐, 그렇죠.”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좀 볼게요.”
화련의 요구에 레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신발을 확인하게 된 화련은 살짝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 솔직히 저희 길드 최고 전력으로 불리는 루딘 님을 고용하기에는 부족하네요. 루딘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왜 내 의견을 묻는 걸까? 또 길드 최고 전력은 뭐야?
그리고 분위기를 보니 화련이 이 대화를 주도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덧붙여 나를 도와주려는 느낌도 들었기에 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발 말고 다른 건 없나요?”
“원하는 조건을 말하라고는 했는데…… 그것도 없어서요.”
“왜 없어요. 엄청 좋은 게 있잖아요.”
엄청 좋은 거? 그게 뭐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화련을 바라보자, 화련은 미소와 함께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퀘스트 공유요. 퀘스트를 공유해달라고 하세요.”
‘아, 그게 있었군.’
파트너끼리 할 수 있다는 퀘스트 공유. 거기까지 들으니 대충 화련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냥 퀘스트도 아니고 연계 퀘스트에다 마지막에는 레이드용 보스를 잡아야 된다. 그런 퀘스트의 보상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지금까지 내가 했던 그 어떤 퀘스트 보상보다 뛰어날 것이다.
“만족하신 표정이네요. 어때요? 퀘스트를 공유하신다면 루딘 님도 도와드릴 거 같은데.”
“…….”
의외로 레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표정을 보아하니 퀘스트를 공유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듯했다.
그러든 말든 화련은 냉정하게 대답을 재촉하기 바빴지만.
“싫으시다면 없던 일로 해요.”
“다른 걸로는 안 될까요?”
“무슨 소리에요? 아쉬운 건 그쪽이잖아요.”
화련에게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일까? 문득 레시아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마치 도와달라는 듯이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탓에 잠깐이나마 마음이 흔들렸지만, 고작 레어 아이템 하나로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 공유까지 해드릴게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끝끝내 기다리는 있으니 레시아는 모든 걸 포기한 말투로 퀘스트 공유를 승낙하고야 말았다.
“잘 생각하셨어요. 루딘 님도 괜찮죠?”
“아뇨, 퀘스트 보상을 들어봐야죠.”
“아, 그렇죠. 저도 어떤 보상인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화련은 뭐가 그리 좋을까?
연신 싱긋거리며 웃고 있는 화련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한 난 곧 보상에 대해 말해주는 레시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경험치와 돈. 그리고…… 저택이에요.”
‘저택?’
저택이라면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였다. 근데 그걸 보상으로 준다는 말인가? 또 화련은 저택이라는 보상에 놀랐는지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역시 보상이 대단하네요. 축하드려요. 루딘 님.”
“저택이 좋은 건가요?”
“당연하죠. 가장 저렴한 저택도 70~80골드는 줘야 할 걸요? 그리고 황혼에 있는 모든 저택은 NPC의 집이기도 해서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어요. 퀘스트를 통해 각종 부탁을 들어주면서 해당 NPC가 집을 판다고 해야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거였나?’
묘하게 저택을 가진 플레이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화련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다 저 여자 분의 퀘스트는 저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그냥 저택을 준다는 말일 걸요? 맞나요?”
“예, 맞아요.”
“깜빡하면 속을 뻔했네요.”
속을 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갖고 싶었다. 언제까지 아이젠의 집으로 이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귀환 스크롤이 다 떨어지면 아이젠에게 가서 부탁해야 되는데, 저택만 있다면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도와주실 건가요?”
어떻게 할까.
개인적으로 저택을 가지고 싶었지만 레이드 보스와 싸워야 했다. 또 레이드에 성공해야만 저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라.’
화련의 말을 들어보니 저택을 구하기란 꽤 힘들 거 같았다. 그러니 지금 이 기회에 얻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난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도와드릴게요.”
“감사해요. 그럼 움직이도록 할까요? 퀘스트 공유도 가면서 해드릴게요.”
“예.”
레시아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화련도 이젠 볼 일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야기도 다 끝난 거 같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
“예? 아, 예. 덕분에 도움이 됐어요.”
“뭘요. 같은 길드잖아요. 이럴 때라도 도와야죠.”
‘그런가?’
왠지 모르게 같은 길드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다. 겸사겸사 길드에 가입한 나였기에 소속감이 희미해 그럴지도 몰랐다. 어쨌든 할 말을 끝낸 화련은 밖으로 나갔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와 레시아도 밖으로 향했다.
“우스트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여기가 아닌 '로우튼'이라는 도시로 가야 해요. 그러니 마탑으로 가서 공간이동 장치를 사용하도록 해요.”
공간이동 장치?
들어본 적은 있다. 대충 다른 마을로 이동시켜주는 장치인데, 그걸 이용하면 순식간에 다른 마을에 갈 수 있었다.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그거 비싸지 않나요?”
“1골드에요.”
“응? 고작 1골드밖에 안 해요?”
전에 인터넷에서 본 기억으로는 좀 더 비쌌던 거 같은데?
“로우튼도 같은 하르페 제국에 속한 도시니까요. 만일 다른 나라로 가려면 그 비용은 10골드나 돼요.”
‘그럼 내가 본 게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비용이었군.’
뭐랄까? 예전에 읽은 탓에 기억이 희미하지만 이 황혼에는 여러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라로 가는 비용이 10골드나 된다면 왠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했다.
“파트너 신청.”
‘음?’
그때 레시아는 파트너를 신청하더니 빛나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여기서 악수를 하면 레시아와 파트너로 맺어지는 거 같았다.
[플레이어 '레시아'와 파트너를 맺으시겠습니까?]
내민 레시아의 손을 잡으니 생겨난 메시지 창. 그 메시지 창 내용을 읽은 난 곧장 수락했다.
“예.”
[축하합니다! 당신은 플레이어 '레시아'와 파트너를 맺었습니다.]
[이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파트너를 해제 시, 한 달간 그 대상을 파트너로 지목할 수 없습니다.]
[파트너를 해제 시, 함께한 비용만큼 그 대상에게 돈을 지불해야 됩니다.]
‘그러고 보니 황혼에서 첫 번째로 맺은 파트너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라니.’
뭐, 상관은 없었다. 이번 퀘스트만 같이 하고 헤어질 생각이었으니 별다른 문제도 없지 않겠는가? 단지 마지막 메시지에 적힌 내용이 신경 쓰였다.
“돈을 지불해야 되네요?”
“하루에 10실버씩 늘어나요. 5일 동안 파트너를 유지하면 50실버. 이런 식으로요.”
‘그럼 한 달 동안 파트너를 맺어도 3골드잖아?’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라면서 헤어지는 비용은 의외로 싸다. 이래서야 퀘스트가 있는 사람마다 파트너를 맺어 공유하는 것도 가능할 듯싶다.
“퀘스트 공유.”
그래, 지금처럼 말이다.
[파트너 '레시아' 님이 진행 중인 의뢰를 공유합니다.]
[의뢰가 생겼습니다. '빛을 잃은 숲의 지배자를 처치하라.']
‘빛을 잃은 숲의 지배자가 우스트라는 녀석이겠지?’
[빛을 잃은 숲의 지배자를 처치하라.]
설명:빛을 잃은 숲에서 일어난 실종의 원인을 알아낸 파드날 백작은 이제 그 원인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런 백작의 뜻에 따라 빛을 잃은 숲에 존재하는 우스트를 처치하시길 바랍니다.
<퀘스트 완료:경험치 100,000. 금화(50골드). 파드날 백작이 소유하고 있는 저택 중 하나.>
<퀘스트 실패:파드날 백작의 호감도 50 감소.>
‘호.’
역시 레이드 보스를 잡는 퀘스트.
획득하는 돈과 경험치가 장난이 아니다. 무려 50골드라니? 거기다 저택까지 준다고 되어 있으니 이때껏 내가 받았던 그 어떤 퀘스트보다 좋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파트너 해제는 퀘스트를 완료하신 뒤에 하시면 될 거 같아요.”
“음, 예.”
덧붙여 레시아 쪽에서도 나와 파트너를 할 마음이 없었나보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퀘스트만 잽싸게 완료하고 파트너를 해제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응. 그래, 나야. 루딘 님만 도와주신대. 지금 가고 있으니까 어제 말했던 인원을 좀 모아줘.”
‘대화 중이네.’
혼자서 중얼거리는 레시아를 본 나는 그녀가 다른 누구와 대화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레시아와 마탑에 도착한 난 1골드를 지불해 공간이동 장치를 이용했고, 곧 로우튼이라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로우튼인가요?”
“예. 루딘 님이 있던 수도와 조금 떨어진 도시에요.”
그 말을 들은 난 다시 로우튼이라는 도시를 둘러봤다. 내가 있던 곳과 다르게 높디높은 건물이 몇 없었지만 그래도 활기찬 마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쪽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