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 第 4 話 =========================================================================
第 4 話 “4일째”
‘이제…… 15명 정도 남았나?’
냉기 파동이라는 스킬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었다. 때문에 그 범위에 휩쓸린 플레이어는 죄다 죽었지만, 그래도 옆으로 도망친 몇 명의 플레이어는 남아있는 상황.
하지만 저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투루를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거기다 입구까지 막힌 상태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난 남은 플레이어가 죽을 때까지 지구력을 채우기로 결정했다.
“뭔 레이드가 이따위야!”
“우린 속은 거라니까!”
“젠장. 난 죽기 전에 스킬 하나라도 더 보겠어!”
뭐, 남은 플레이어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펼쳤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나무줄기의 속박.”
콰드등!-
‘끝났군.’
투루는 모든 플레이어가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곧장 지팡이로 바닥을 찍어 나무줄기를 소환했고, 그 나무줄기에 묶인 플레이어를 본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데미지 1천의 공격.
나조차 S랭크 스킬과 칭호가 아니었으면 올리지 못할 생명력이 1천이었는데, 저들의 생명력이 1천이 넘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대로 나무줄기에 묶인 플레이어 전원이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남은 건 나뿐인가?’
지구력도 어느 정도 채워진 상태였으니 마지막 공격 정도는 할 수 있을 듯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검을 은행에다 맡기고 오는 건데.’
모인 플레이어의 숫자가 상당했기에 레이드도 어떻게 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내 상상을 뛰어넘는 강함이었다.
어쨌든.
“후, 해볼까.”
모든 플레이어를 죽인 투루의 시선은 다시 나를 향했다.
“이제 남은 건 너뿐이다.”
“……제이어의 수호방패.”
파밧!-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활성화됩니다.]
[600의 마나력을 소모합니다.]
[마나력이 부족합니다.]
[지구력이 두 배로 소모됩니다.]
새하얀 빛기둥.
이전까지만 해도 뭐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의 빛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게 마지막 공격이라는 걸 알기에 그런 거겠지? 어쨌거나 제이어의 수호방패를 시전한 난 그 다음 스킬까지 사용했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순식간에 투루의 옆으로 이동한다. 지금 나와 투루의 거리는 5미터. 이미 환영이 있기에 투루의 시선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또 지금이라면 공격을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거신의 질주!”
콰콰콰콱!!-
지금 이 순간 지구력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와 투루와의 거리가 가깝다는 게 중요했다. 여기서 제이어의 수호방패까지 쓴 내 민첩은 335. 이런 민첩을 제외하더라도 은신 상태였기 때문에 투루가 눈치챈 순간, 내 공격은 적중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질주한 내 몸은 나조차 놀랄 정도로 빠르게 투루의 몸에 닿았다.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696.]
“키륵!”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큰 데미지.
그러나 나보다 근력이 높은 투루는 튕겨나가지 않았다. 잠깐의 신음을 지른 투루는 이내 자세를 바로잡아 지팡이를 뒤로 젖혔고, 그런 투루의 모습에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죽는다.
저 지팡이에 맞는 순간, 난 그 즉시 죽는다. 제이어의 수호방패로 생명력이 800이나 올라갔고, 방어력은 160이나 올라갔지만, 저 지팡이에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
지잉-
‘윽.’
죽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희미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희미하긴 했지만 뭔지는 알 수 있었다. 불과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연달아 사용했던 직감에서의 감각이었다.
이게 왜 지금 발동된 거지?
하지만 고민할 틈이 없었다. 난 그 직감대로 고개를 숙였다.
파앙!-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리고 내 앞에 뜬 메시지.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142.]
‘스친 건가?’
믿기지 않았다. 지금 내가 민첩 1천이 넘는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다시 불안감이 느껴졌고, 그 불안감에 반응하기도 전에 내 무릎으로 뭔가 부딪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쾅!-
“큭!”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829.]
데미지가 800?
조금 전과는 달랐다. 제이어의 수호방패 탓인가? 아니, 수호방패로는 이렇게까지 데미지가 줄어들지 않는다. 아마 맞은 부위가 다리였기에 데미지가 조금 경감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끝났군.’
그 생각과 함께 내 머리에는 뭔가 맞은 감각이 느껴졌다.
퍼억!-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1,223.]
‘그래, 이 데미지지.’
단 두 방 만에 모든 생명력이 다한 나는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뒤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내 앞으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창이 생겨났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영혼 상태로 전환합니다.]
[누군가 부활 계열과 관련된 주문을 걸어준다면 다시 한 번 살아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접속을 종료하여 주십시오. 죽음에 대한 패널티로 현실 시간으로 1시간 뒤에 접속이 가능합니다.]
“씨발, 이걸 대체 어떻게 잡으라고 만든 레이드야?”
영혼 상태로 전환된 내 몸은 그냥 반투명한 상태로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문제는 움직이지 못하는 정도? 그래도 고개는 돌릴 수 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살아남은 플레이어가 없었다.
‘전멸이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나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없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어떤 플레이어의 말처럼 진짜 속은 거 아닐까?
레이드(Raid)가 괜히 레이드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속은 거 같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일단 플레이어들을 죄다 앞으로 던져놓은 다음, 자기들은 족장 집에 있는 책을 회수한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그래봤자 이미 죽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지만.’
쩝, 그나저나 황혼에서의 첫 번째 죽음인가?
죽음에 대한 패널티도 신경이 쓰였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인 것은 방금 전에 전투였다. 대체 왜 직감이 발동됐을까? 그리고 발동된 직감도 이상했다. 지금까지 사용한 직감은 엄청난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방금 전투에서의 직감은 너무 희미했다.
‘공격을 피한 걸 보니 분명 직감이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일단 접속부터 종료할까.”
생각해도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봐야 누가 살려줄 것도 아니니 접속을 종료하는 게 맞는 거 같다.
“후, 접속 종료.”
[접속을 종료합니다.]
[다시 황혼이 비추는 거리에서…….]
팟-
“하아.”
접속을 종료한 나는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긴 숨을 내뱉었다. 이 나른함 때문에 그대로 잠이 들 거 같았다. 솔직히 캡슐 안에 있는 의자도 꽤나 편했기에 이대로 잠을 자더라도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자면 안 돼. 자더라도 씻고 자야지.
캡슐에서 나와 시간을 확인해보니, 현재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원래라면 5시 넘게까지 할 수 있었을 텐데.
‘뭐, 이미 죽어버린 걸 후회하는 짓은 하지 말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지워지진 않았다. 하지만 어쩔 건가? 따라가기로 한 건 순전히 내 스스로 정한 것이고, 투루에게 죽은 것도 내가 약해서 그런 건데.
“내 레벨이 60 정도면 잡으려나.”
그때쯤이면 스킬 레벨과 장비가 꽤 교체되어 있을 테니 도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난 배울 스킬이 19개나 남아있지 않은가? 레벨 60 정도라면 그 19개의 스킬도 다 배울 테니 투루와 상대해볼 만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슬슬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흐른 땀을 씻어내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난 곧바로 황혼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음?”
황혼 홈페이지에 접속한 건 좋았다. 좋았지만 홈페이지가 바뀌었다. 뭔가 좀 더 화려하게 변했는데, 아무래도 개편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홈페이지 상단에는 이런 글까지 있었다.
[매월 영상 이벤트를 실시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대하겠습니다.]
“영상 이벤트?”
클릭해본다.
“그러니까…….”
영상 이벤트는 다음과 같았다.
황혼에서의 영상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린다. 홈페이지에 올린 영상이 좋다면 추천을 받을 수 있는데, 추천이 가장 높은 영상을 찍은 사람에게 상금 300만 원을 준다는 거였다.
2등은 200만 원. 3등은 100만 원이다.
“이걸 매월 한다는 건가?”
찾아보니 실제로 영상 게시판이 있었다. 오늘 만든 건가? 혹시나 싶어 영상 게시판으로 들어가 보니 벌써 추천이 1천 개가 넘는 영상이 있었다.
이 영상은 뭔데 벌써 추천을 1천 개나 찍었지?
만든 지 불과 몇 시간 밖에 안 된 걸로 보이는 영상 게시판에서 벌써 추천 수 1천 이상을 찍었다는 것이 의아했다.
때문에 그 영상을 클릭했다.
[S랭크 스킬 등장!]
“S랭크?”
의외였다. 처음에는 설마 내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침착하게 생각하니 그건 또 아닌 거 같았다. 내 스스로 S랭크 스킬이라 밝힌 적도 없는데 어떻게 S랭크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일단 보면 알겠지.’
딸깍-
그 생각과 함께 난 제목 밑에 있는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을 재생하니, 웬 처음 보는 남자가 한 자루의 검을 든 채 몬스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처음 보는 몬스터였지만, 일그러진 돼지 형상의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오크 같았다.
‘근데 뭔 저런 갑옷을 입고 있대?’
영상에 나오는 오크는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거의 경갑 수준으로 입은 오크는 영상에서 나온 남자와 열심히 싸우고 있었는데, 영상으로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꽤 빠른 움직임이었다.
챙!- 채채챙!-
‘조금씩 밀리는군.’
예상했던 것보다 잘 싸웠으나 오크의 공격이 조금씩 플레이어의 몸을 스치고 있었다. 그에 비해 플레이어의 검은 오크의 검에 번번이 막히고 있었고, 다른 누가 봐도 플레이어가 밀리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멸살검.
파밧!-
‘멸살검?’
그리고 그 단어를 외친 남자의 검에서는 황금색 빛이 솟아올랐다. 거의 2미터 가까이 되는 그 황금색의 빛을 소환한 그는 그대로 오크에게 휘둘렀고, 황금빛의 검은 그대로 오크의 몸을 통과했다.
“오?”
저게 S랭크 스킬인가?
지금까지 내가 가진 스킬과는 다르게 공격용 스킬이었다. 역시 S랭크라고 할까? 단 일합 만에 불리하게 느껴졌던 전투는 그대로 역전하며 오크를 즉사시켰고,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검을 갈무리했다.
“나도 저런 공격용 스킬이 나왔어야 했는데.”
그렇게만 한다면 지구력 한계까지 몬스터를 잡고, 다시 지구력을 회복하고를 반복하면 사냥 속도가 지금보다 몇 배는 빨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보조 스킬과 이동 계열 스킬의 S랭크만 나온 나였기에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내용도 있네.”
영상 밑에는 작성자의 글이 적혀져 있었다.
[내용:보셨습니까? 드디어 저희 길드 마스터께서 S랭크 스킬을 뽑았습니다. 세피언의 멸살검이라는 스킬인데, 이 스킬에 대한 능력치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내용 밑으로 가니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능력치는 본인만 볼 수 있으니, 아마 멸살검을 쓴 본인 스스로 찍은 사진일 듯싶다.
어쨌든 사진에 있는 S랭크 스킬의 능력치는 이렇다.
[S랭크 세피언의 멸살검 효과] (LV1)
-공격력 100 상승.
-모든 능력치를 추가 데미지로 적용.
-검 계열의 속도 100 상승.
-적을 적중 시, 100% 관통 효과.
-적을 적중 시,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 1% 하락.
-사용 시, 30초간 탈진.
-1회 공격.
*사용 시, 마나력 소모 300.
*사용 시, 지구력 소모 10%.
“흐음.”
상세 정보로 찍힌 사진의 능력을 보니 역시 S랭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100% 관통 효과라니? 이건 맞으면 무조건 최대 데미지로 뜬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기 아니야?
막말로 이걸 맞고 살아남을 플레이어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뭐, 물론 난 살아남겠지.’
현재 내 생명력은 2천을 넘기고 있다. 투루에게 맞아도 한 방에 죽지 않을 정도의 생명력인 것이다. 저 멸살검이라 해도 죽을 수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S랭크 스킬을 습득한 뒤에 얻은 칭호입니다.]
[멸살검] (칭호)
설명:검의 정점이라 불린 세피언. 그의 최종 비기를 습득했다!
-공격력 10% 추가.
-검 계열 데미지 30% 증가.
-검 계열 스킬 마나력 50% 감소.
……그래도 살아…남겠지?
생각해보니 나 역시 제이어의 수호방패로 칭호를 획득했다. 엘시크의 환영이동은 왜 칭호를 안 주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도 나와 같은 경우로 칭호를 획득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댓글에는 난리가 났네.”
대부분이 '개사기다', '완전 미친 스킬이다!', '나도 S랭크!' 라는 글이 도배되어 있었다.
확실히 내가 보더라도 사기성이 짙은 스킬과 칭호지만…….
‘나는 뭐라 말할 수는 없지.’
나 또한 S랭크 스킬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2개나. 멸살검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내겐 안 될 것이다.
‘일단 맞지만 않으면 돼. 환영이동으로 교란시킨 뒤에 공격하면 이길 수 있을 거야.’
아주 잠깐 영상에서의 녀석과 나와의 전력을 비교한 나는 마지막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