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27화 (27/211)

00027  第 3 話  =========================================================================

第 3 話 “3일째”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같이 의뢰를 하지 않으실래요?”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는군.’

“어떤 의뢰인데요?”

“E랭크 의뢰요. 명성 30의 의뢰인데, 한 명이 부족해서요.”

“…….”

E랭크 의뢰라.

나쁘지는 않았다. 나로서는 10실버를 아끼는 셈이고, E랭크 의뢰도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이게 진짜 희귀한 의뢰에요. 성공한다면 대마법사와 호감도까지 올라가거든요.”

“대마법사요?”

“예. 대마법사와 호감도를 올리면 나중에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쩔까?’

아니, 고민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고작 E랭크 의뢰 가지고 무슨 고민을 하는가? 나라면 혼자서도 깰 수 있고, 사람들이 많으면 더 쉽게 깰 수 있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예!”

흔쾌히 끄덕이는 내 모습에 플레이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파티를 신청했다.

[플레이어 '어스' 님께서 파티를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한다.”

[파티에 가입하셨습니다.]

[현재 파티원 6명. (루딘, 어스, 리트…….)]

‘죄다 남자들뿐인가?’

가입하면서 깨달은 사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 전원이 남자였다. 뭐, 솔직히 남자들의 비율이 높은 게임이긴 했다. 어쩌면 이게 정상이겠지.

“자자, 인원도 다 모였으니 의뢰 시작할게요.”

의뢰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며칠 전, 하르페 제국의 마탑에서는 악명 높은 흑마법사를 퇴치했다. 그리고 그 흑마법사의 연구 기록을 죄다 챙겨 분석하던 도중, 뒤늦게나마 딱 한 권의 연구 기록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마지막 한 권의 연구 기록은 어딘가 숨겼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마탑은 의뢰 길드에다 찾아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 의뢰를 받아들인 우리들은 마탑의 요청에 따라 숨겨진 연구 기록을 찾아야 된다는 것이 이번 의뢰의 내용이기도 했다.

“여기가 흑마법사의 거처인가 보네요.”

“후딱 찾고 돌아가죠.”

그리고 의뢰를 시작하자마자 이동된 장소는 어떤 넓은 홀이었다. 어둠침침한 분위기와 비어있는 책장. 곳곳에 그려진 색바랜 마법진. 회색으로 변한 몬스터 시체. 빈말이라도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여기서 책을 찾아야 된다는 말인가?’

잠깐 둘러봤지만 책 모양의 물건은 보이지도 않았다. 뭐, 당연한가? 쉽게 찾을 정도였으면 의뢰로 뜨지 않았겠지. 본의 아니게 보물찾기 놀이를 해야 할 듯싶다.

“일단 흩어져서 찾아볼까요?”

“그렇게 해야죠.”

“빨리 찾아봅시다!”

의욕은 넘친다. 어쨌든 다들 그 넘치는 의욕으로 책을 찾기 시작했고, 나도 책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씨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10여 분 정도 지났나? 책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젠장! 이런 의뢰인 줄 알았다면 진작 거절하는 건데! 차라리 어제처럼 도르겐과 한번 싸우는 게 낫지, 이런 보물찾기 같은 놀이는 나와 맞지 않았다.

‘진짜 어디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멀쩡한 책장을 집어 던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며, 몬스터 시체를 걷어차는 사람도 있었다.

저런다고 없는 책이 튀어나오나?

‘음?’

그러던 중, 문득 누군가의 행동이 눈에 띄었다. 아이디가 어스였나? 그는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미친 사람처럼 느껴졌다.

저놈은 대체 뭐하는 거야?

도무지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시선조차 때지 못하고 있을 때, 어스는 갑작스레 걸음을 멈춰서더니 이내 벽 한쪽을 꾹 눌렸다. 동시에 누른 벽이 위로 올라갔고, 그곳에서는 한 권이 나타났다.

드드득-

‘어? 어떻게 찾았지?’

벽을 짚다가 찾은 것도 아니다. 그냥 중얼거리더니 벽을 꾹 눌려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다른 사람들은 벽이 올라가는 소리에 놀라 어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찾았어요?”

“예.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뭔가 비밀장치로 된 게 아닌가 했죠.”

“이야~ 대단하네요.”

“뭘요. 별거 아니었어요.”

“…….”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그래도 일단 의뢰를 완료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뭔가 내가 모르는 모종의 방법을 사용했더라도 그것까지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경고! 함정이 작동합니다.]

[의뢰 내용 갱신! 책을 가지고 이곳에서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뭐, 뭐야?!”

“탈출? 갑자기 무슨 탈출이야?”

갑작스런 메시지에 나를 포함한 모든 인원. 심지어 책을 들고 있는 어스까지 사태파악이 되지 않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니, 이렇게 서 있으면 안 될 거 같은데?

파밧!-

생각이 끝나자마자 주변에 그려진 색바랜 마법진에서는 심상치 않은 검은색 빛을 뿜어내더니 곧 2미터 정도의 덩치를 가진 괴물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넓은 홀에 배치된 마법진의 개수는 총 7개. 따라서 나타난 괴물의 숫자도 총 7마리.

“크르르…….”

‘무섭게도 생겼네.’

놀랍게도 팔이 네 개나 달려있다. 온몸이 검은색으로 도배된 그 괴물은 유일하게 다른 빛을 내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이쪽을 노려봤고, 난 자연스레 그 괴물 위에 적혀진 글을 읽었다.

[흉포한 합성 생물]

“크어어엉!”

“젠장, 뛰어!”

‘칫.’

누군지도 모르는 그 외침에 다들 정신을 차리며 입구 쪽으로 달렸다. 다행히 이곳에서 나가는 길은 한곳 밖에 없었기에 혼동하지 않으며 그곳으로 달릴 수 있었고, 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일정 수준의 민첩을 보유하고 있는지 뒤처지는 사람 하나 없었다.

“마지막에 탈출 미션이라니!”

“어스 님! 죽지 마세요!”

“알고 있어요!”

짤막하게 대답한 어스는 갑자기 욕을 내뱉었다.

“제길! 근데 책이 아이템 창에 안 들어가요.”

“그게 무슨 문제인데요?”

“제가 쌍검을 쓰거든요.”

“……그냥 한 자루로 싸워요.”

이젠 여유가 생긴 모양이군. 이대로 달려 의뢰가 완료된다면 여유가 생기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생각해보니 도망쳐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죄다 잡으면 되지 않나요?”

“…….”

그 물음에 다들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각자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하지만 탈출하라는 메시지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 내 예상이 맞는다면 따라오는 몬스터의 힘이 상상 이상이거나, 혹은 숫자 제한이 없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다.

‘굳이 가르쳐줄 생각은 없지만.’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기도 했으니…….

“크어어엉!”

“……!?”

“큭! 길목에도 배치되어 있다니!”

달려가는 앞쪽 길에는 아까 마법진에서 봤던 괴물이 우릴 막아서고 있었다. 2미터의 덩치가 막아서니 길목의 절반 이상을 막아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저 네 개의 팔을 휘두르면 못해도 3~4명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거신의 질주로 뚫어버릴까?’

만일 괴물의 근력이 나보다 떨어진다면 거신의 질주로 튕겨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아까 죄다 잡으면 된다고 말한 플레이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모두 비켜요!”

외침과 함께 뛰쳐나온 플레이어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격투 스킬을 습득했나? 라는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몇 개의 스킬이 그의 입에서 시전되었다.

“질주! 분노! 힘껏 치기!”

“오?!”

몇 개의 스킬을 시전한 그의 몸이 빛나기 시작한다. 어깨에서 생겨난 희미한 붉은빛과 양쪽 다리에서 생겨난 희미한 초록빛. 마지막으로 그의 오른쪽 주먹은 푸른빛이 생겨났는데, 그런 형형색색한 모습에 모든 파티원은 감탄부터 터트렸다.

“간닷!”

감탄하는 파티원의 기대를 부응하듯이 그는 괴물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빛나는 오른손을 멋지게 내질렀다.

콰앙!-

정확히 가슴팍에 적중한 주먹.

“어떠냐…… 응?”

뭔가 잘못됐던 걸까? 의기양양하게 말하던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크엉!”

“이, 이런 씨발!”

안타깝게도 그것이 마지막 외침이었다. 당황하는 플레이어의 팔을 붙잡은 괴물은 남은 세 개의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고, 불과 3초도 지나지 않아 그는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파티원 '리트' 님이 죽었습니다.]

[영혼 상태로 전환합니다.]

“…….”

“…….”

“어떻게 하죠?”

침묵하는 파티원을 향해 내가 질문했다. 팔이 네 개라는 장점. 한 명을 죽이는데 걸린 시간이 3초. 이것만 봐도 저 괴물의 강함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뒤에서도 쫓아오는 상황.

머뭇거릴 시간 따윈 없었다.

“……뚫어야죠. 가요!”

시간만 끌면 이쪽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어스는 그 말을 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의뢰를 받은 어스가 그리 달려가니 어쩌겠는가? 남은 사람들도 어스를 뒤쫓아 달릴 수밖에.

“크어어엉!”

“노려보기!”

움찔!

‘저건 뭔 스킬이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의 몸이 잠깐이나마 움찔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상대의 움직임을 붙잡는 계열의 스킬 같았다.

“이때다! 힘껏 찌르기!”

쾅!-

깔끔한 공격이다. 내지른 창에 살짝 비틀거린 괴물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난 재빨리 그 괴물을 지나쳤다. 만일 내 손에 책이 쥐어져 있었다면 이대로 달려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의뢰를 받은 어스는 살려야 되니.’

“힘껏 치기!”

몸을 돌아 괴물의 등을 후려친다. 지금의 내 공격력과 근력이 합쳐진다면 힘껏 치기도 어느 정도는…….

[스킬 데미지! 9.]

‘미친!’

들어간 데미지는 절로 욕이 나올 정도로 낮았다. 이런 방어력이면 거신의 질주도 기대할 수 없다.

“크어엉!”

‘잡히면 죽는다.’

잡힌다면 도망은커녕, 방금 전에 죽은 파티원의 뒤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난 괴물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로 물러섰고, 파티원은 나름대로 빈틈을 이용해 괴물을 지나쳤다.

덥썩!-

“아악! 잡혔다!”

물론 전부 지나치지는 못했지만.

어떡하지?

“그냥 달려요!”

고민하는 내게, 어스는 아주 간단하게 해답을 던져주었다. 어차피 괴물에게 잡힌 것도 내가 아니니 이대로 도망가도 상관은 없다.

“야이 개새끼들아! 파티원이 붙잡혔으면 도와줘야…… 으아악!”

쾅! 쾅!-

괴물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붙잡은 파티원을 공격했고, 그 모습에 나는 주저 없이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려 달렸다.

‘후, 벌써 두 명이나 죽다니.’

E랭크 의뢰라고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나? 확실히 이번 의뢰는 책을 찾은 뒤, 탈출하기만 하면 끝나는 의뢰다. 적을 설명하는 전투와는 다르니 민첩이 높은 사람이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의 움직임도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고.

그런데도 두 명이나 죽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방심한 탓도 없지 않았다. 아마도 전원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어 나온 방심이겠지.

타탓!-

“젠장! 무슨 입구가 이렇게 멀어!”

달리는 시간은 불과 1분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평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구력도 한계가 있을 테니 불평도 이해는 간다.

“아, 저기 입구에요!”

“…….”

그 외침 그대로 앞에는 입구로 추측되는 빛이 보였다. 다만 입구 앞에도 괴물 한 마리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제 저 괴물만 뚫으면 이번 의뢰는 끝날 거 같았다.

“각자 알아서 해결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어스는 스스로 해결할 자신이 있는지 주저 없이 달려갔다. 근데 저 자식이 죽으면 의뢰 보상이 줄어들 텐데?

“혼신의 질주!”

팟!-

“엇?! D랭크 스킬?!”

‘D랭크?’

혼신의 질주라는 것이 D랭크 스킬인가? 어쨌든 그 스킬을 쓴 어스의 몸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괴물을 지나쳤다. 생각보다 민첩이 낮은 괴물은 그런 어스의 움직임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듯했다.

‘D랭크 스킬을 믿고 뛰어간 거였나?’

이러나저러나 어스는 입구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들만…….

[의뢰를 완료했습니다.]

[원래 있던 장소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엇?!”

“이건?”

그 사이,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책을 들고 있었던 건 어스였지? 그 어스가 입구로 빠져나가자, 곧장 의뢰가 완료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의뢰가 완료된 이상, 입구로 빠져나갈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동한다.”

[원래 있던 장소로 이동합니다.]

파밧!-

이동된 장소는 의뢰 길드 앞이었다. 어스는 이런 나보다 먼저 왔는지 도착하자마자 보였고, 나와 같이 이동한 파티원들은 한 명씩 옆에 나타나더니 이내 끝났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네요.”

“그러게요.”

의외로 화기애애한 모습이다. 마지막에 쉽게 해결돼서 그런 거겠지? 당연히 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럼 전 보고 하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며 의뢰 길드 안으로 들어가는 어스.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니 원하던 메시지 창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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