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42. 세상이 뒤집혀도 (1) >
작전 개시 당일 아침.
지혁은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특임대 출발 후에 따라서 움직이려는데.
“어디 가시려고요?”
뒤에서 들린 말소리에 지혁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세크 위원이 규칙 어기고 이렇게 밖으로 나와도 돼요?”
윤 사장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말도 없이 위험한 곳에 출장 가시는 분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지혁은 쉘터를 나올 때, 드론 소리를 들었고 누군가 따라오는 걸 알고 있었다.
“조용히 갔다 올게요. 어차피 하루면 끝날 작전이니까.”
지혁은 곧바로 움직일 채비를 했고, 윤 사장은 말리지 않았다.
“회장님, 뭐가 그렇게 급합니까?”
“네?”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요.”
윤 사장은 캔 커피를 꺼내어 지혁에게 내민 뒤, 담뱃불을 붙였다.
“흡~ 하아~ 역시 밖에서 피는 담배 맛이 좋네요.”
딸깍.
지혁은 캔 커피를 따며 말했다.
“일 터지고 담배부터 사시더니, 아직 남아 있나 보네요.”
“아껴서 피고 있습니다. 하하.”
윤 사장은 담배 피우고, 지혁은 캔 커피 마시고.
예전에 선도물산 옥상에서 대화 나눌 때의 그 모습이었다.
“어쩌다 보니, 참 많이 왔습니다.”
“그러게요.”
“회장님 덕분에 이런 세상에서도 잘 살아 있네요.”
지혁은 가볍게 웃었고.
윤 사장은 담배를 피우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조심 좀 하세요. 걱정됩니다. 회장님 불사조 아니잖아요.”
지혁은 싱긋 웃고는 말했다.
“맞아요. 불사조가 아니죠. 그래서 보냈어요.”
“······?”
“시안이요.”
“아······.”
윤 사장은 ‘명분’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시안을 보낸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혁이 진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준다고 했었다.
“이미 이런 세상이 왔는데, 언제까지 제가 옆에 있을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
“무조건 위험한 곳에 두지 않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
“우리 시안이도 선도직원들도요.”
윤 사장은 정색하고 말했다.
“회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얘기는 하지 마세요.”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관여하지 않고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정 위험하면 나설 생각입니다. 시안이에게 별일은 없을 거예요. 제 아들 아닙니까.”
“······.”
“금방 갔다 올게요.”
지혁은 발걸음을 옮겼고, 윤 사장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크게 외쳤다.
“조심하세요!”
***
다다다다!
- 커컥!
- 죽여! 죽여!
눈이 돌아간 점거자들은 지혁이 자동 소총을 갈겨도 좀비같이 덤벼들었고.
소총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질 무렵, 지혁은 소리쳤다.
“시안아! 아빠 뒤로 와!”
“아니에요. 아빠! 저도 같이 싸울게요!”
“말 좀 들어!”
지혁은 사자후를 내뱉었고.
시안은 움찔했다.
“너 아직 이런 상황에서 나설만한 전투력이 아니야.”
“······.”
“아빠 뒤로 멀리 물러나 있어.”
지혁은 시안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시안은 잠자코 뒤로 물러섰다.
스릉-
지혁은 양손에 칼을 잡았다.
- 우와아~!
지혁이 총을 내려놓자, 주변의 점거자들은 사기가 올라서 함성을 질렀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서걱- 서걱-
상완 동맥(팔꿈치 안쪽)
요골 동맥(손목)
경동맥(목)
쇄골하 동맥
심장
.
.
.
지혁의 칼끝은 일격 필살의 급소만 노렸는데, 도저히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빨랐다.
간혹 한 번 정도 피하는 점거자도 있었는데.
‘칼 좀 쓸 줄 아네?’
지혁의 칼질을 한 번이라도 피해내는 것만 해도 꽤 준수한 거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두 번은 없었다.
서걱- 서걱-
지혁은 쉴 새 없이 급소를 향해 찌르고 베었으며, 그 와중에 지혁의 몸에도 칼자국이 생기기도 했지만.
- 찔렀어!
- 팔 베였다! 더 몰아붙여!
서걱- 서걱-
그럴수록 칼질의 속도는 빨라졌고, 더욱 집요하게 급소를 노렸다.
지혁의 주변에는 순식간에 시체가 쌓였다.
신기에 가까운 칼솜씨에 시안은 입을 벌리고 바라보기만 했다.
게다가 칼뿐만이 아니었다.
- 커컥!
양손이 너무 바쁘고, 몸이 밀착할 정도로 근접했을 때는 이빨도 사용했다.
양손으로 찌르면서, 입으로 목을 물어뜯고.
지혁은 말 그대로 살인 병기이자, 맹수 같았다.
후우- 후우-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을 즘.
꿀꺽.
시안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눈만 희번덕거리는 지혁을 보았다.
그를 둘러싼 수십 구가 넘는 시신.
‘아빠가 일하는 모습은 처음 본 건데.’
시안은 이상하게 몸이 떨렸다.
***
“시안아, 다친 데 없니?”
지혁은 다정하게 물었지만, 시안은 좀 전에 본 모습 때문인지 왠지 어려웠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전 없어요. 아빠는요?”
“아빠는 괜찮아.”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났고, 옷에 피가 배어있는데도 지혁은 괜찮다고 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흠······.”
지혁은 사주경계를 했다.
주변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혼잡한 쉘터 입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잠시 동안은 적들로부터 공격받지 않을 것 같았다.
‘포위된 거나 마찬가지야.’
수풀과 나무로 가려져 멀리 보이지 않지만, 지혁은 냄새와 소리로 느낄 수 있다.
쉘터 주변에 많은 적들이 퍼져 있었고, 당장은 괜찮지만 곧 마주하게 될 것 같았다.
혼자라면 몰라도, 시안을 데리고 이 포위를 뚫고 과천 쉘터로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일단 합쳐야 한다.’
특임대원들은 청주 쉘터로 진입했거나 입구 주변에 있었고, 점거자들은 쉘터 밖으로 나와 있다.
내부에 잔당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쉘터 안으로 진입하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시안아, 너 지금 뛸 수 있니?”
“네. 괜찮아졌어요.”
“그래. 아빠 말 잘 들어. 지금부터 쉘터 내부로 들어갈 건데.”
꿀꺽.
많은 사람이 뒤엉켜 아비규환인 쉘터 입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쉘터 내부에서 더 이상 연기가 나오지 않는 거였다.
“이동하는 동안에 최소한의 방어만 하고, 아빠 옆에만 붙어 있어. 알겠니?”
“네.”
지혁은 결정한 이후, 망설이지 않는다.
“달려!”
다다다
지혁은 양칼을 휘두르며 달렸고, 시안은 그의 뒤를 바싹 쫓았다.
- 뭐야?!
- 컥!
지혁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점거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쓰러졌고, 순식간에 쉘터 입구 근처까지 도착했다.
지혁은 소리쳤다.
“특임대! 전투 중지! 쉘터 안으로 진입하라!”
쉘터 입구 주변에서 악전고투 중인 특임대원들은 명령을 들었으나 누군지 모르기에 따르지 않았다.
“뭐하나?! 회장 말 안 들을 거야!”
특임대원들은 지혁을 확인한 뒤.
- 회장님이다!
- 우와아~!
- 어서! 전방 막고! 특임대원들 모두 쉘터 입구로 진입해!
지혁으로 인해 사기가 오르자, 점거자들에게 밀리고 있던 상황은 역전되었다.
- 막아!
- 못 들어가게 막아!
특임대 전 인원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니 점거자들은 막아내지 못했다.
쉘터 안으로 들어온 뒤, 지혁은 소리쳤다.
“문 닫아!”
- 우와아~!
전 특임대원은 문에 달라붙어, 온 힘을 다해 밀었고.
철컥!
문 닫은 뒤, 결속까지 끝냈다.
“3인 1개 조로 움직여서, 내부 잔당 소통하라!”
“네!”
탕! 탕!
지혁의 일사불란한 지휘에 쉘터 내부는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회장님!”
쉘터에 먼저 들어와 있던 남 단장은 지혁에게 다가갔다.
“다친 데는 없고?”
“전 괜찮습니다만, 회장님은······.”
피칠을 한 지혁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어, 난 괜찮아. 목자는 어딨어?”
“아직 못 찾았습니다.”
남 단장은 대답하고 나서 고개를 갸웃했다.
‘목자는 어떻게 아시지?’
지혁은 특임대 주변에 은폐해 있었기에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다.
남 단장은 그걸 모르기에, 지혁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목자를 아는 것도 모두 이해가 안 되었다.
“근데,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지혁은 그 말엔 대답하지 않고, 질책성 질문을 던졌다.
“목자를 지금까지 못 찾으면 어떡하나?!”
남 단장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목자를 잡는 것이 작전 목표는 아니기에 큰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직접 나서야 하나.’
지혁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시안을 살폈다. 아무래도 아들이 걱정되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다가 심우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선 가장 믿을만한 놈이야. 실력적으로 봐도.’
심우민을 만날 때마다 이마색을 확인하는데, 갈수록 청색을 띄어갔다.
미세한 차이지만, 지혁은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심 대리!”
“네!”
지혁은 시안을 그에게 밀면서 말했다.
“넌 딴 거 하지 말고, 시안이 돌 봐.”
“네?”
“지금부터 너의 유일한 임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안이 안전만 신경 써라.”
“······.”
“할 수 있지?”
심우민은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임무수행 제대로 못 하면 죽인다.”
“······.”
지혁은 시안을 심우민에게 맡긴 뒤, 남 단장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
“포로 같은 거 없어?”
“있습니다.”
“근데, 왜 목자 위치를 못 알아내?”
남 단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독합니다. 별 협박을 다 해도 입을 꾹 다물고······.”
지혁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협박할 시기야?”
“네?”
설명할 시간이 없기에, 지혁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어딨어? 데려와 봐.”
남 단장이 지시하자, 특임대원들은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남성을 데려왔다.
“석궁 들었던 놈 중의 한 명인가?”
“네, 맞습니다. 석궁도 아십니까.”
지혁은 대답하지 않고, 바로 칼을 빼 들었다.
스겅-
- 으악~!
남자의 한쪽 귀가 사라졌다.
비명을 지르며, 귀가 있던 자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걸 손으로 막았는데.
싹둑.
지혁은 막고 있던 손가락도 잘랐다.
- 으악~!
“시간이 없어. 빨리 진행하자.”
후비적, 후비적.
귀가 있던 곳에 칼끝을 쑤셔 넣으며 물었다.
- 끼약!
남 단장과 특임대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지켜보았는데.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물었다.
“목자 어딨냐?”
남성이 대답하지 않았고, 지혁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눈, 코, 입, 눈썹을 떼어내고, 이마에 낙서할 때쯤.
- 지하 3층! 왼쪽에서 네 번째 방!
턱!
지혁은 남성을 밀어버린 뒤 말했다.
“대답했으니까, 죽여줘라. 남 단장은 특임대원들 몇 명 데리고 나머지 나 따라와.”
지하 3층으로 내려오니, 잔당들이 많이 보였고.
섹- 섹-
탕! 탕!
석궁과 총소리가 번갈아 들리며, 일대 전투가 벌어졌다.
특임대원들 피해가 발생하는 걸 보며, 남 단장은 지혁에게 말했다.
“회장님, 목자를 꼭 처단해야겠습니까? 살려준다고 하면 전투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돼. 무조건 처단해야 해.”
“네?”
“우두머리가 살아 있는 한, 무리는 해산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는 생포하여 위협하는 것보다는 끝을 보여주는 게 좋아.”
지혁은 쉘터 주변에 운집된 수만 명의 점거자를 떠올렸다.
“목자의 모가지가 있어야, 의지를 꺾을 수 있어.”
남 단장은 그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회장 지시니 따랐다.
잠시 후.
- 상황 종료! 적들 모두 처리했습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석궁이 총의 위력을 이길 수는 없다.
굳게 닫힌 문 앞에 섰는데.
남 단장이 중얼거렸다.
“이걸 여는 방법이······.”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 쉘터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었나?”
“네?”
지혁은 주머니에서 마스터키를 꺼낸 뒤 말했다.
“문 열린다. 다들 조심해라.”
띡!
마스터키를 문 앞에 대자, 너무나 쉽게 열렸다.
섹- 섹-
열린 문으로 바로 석궁 수십 발이 쏘아져 날아왔다.
룸 안에는 석궁을 든 점거자들이 가득했다.
탕! 탕!
- 우와아!
무기에서 불리한 점거자들은 일제히 달려들었으며, 곧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혼잡한 상황 속.
지혁은 빨간 정장부터 찾았는데.
“물러가라아-!”
룸 가장 안에서 양손을 펼치고 괴성을 지르는 목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에 잘 띄는 옷 입어서 좋네.”
사사삭-
지혁은 점거자들 틈을 빠르게 비집고 들어가서, 목자의 앞에 섰고.
“악마는 물러가라······ 컥!”
단번에 칼을 목에 꽂아 넣었다.
“커컥!”
목자는 목과 입으로 피를 쏟아내었고.
그의 죽음에 점거자들은 일제히 얼어붙었다.
- 목자님이 죽었어.
- 어떻게 목자님이.
- 다시 살아나실 거야.
- 안돼. 말도 안 돼.
그는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으며,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뜬 채로 숨을 거뒀다.
서걱. 서걱.
지혁은 목자의 목부터 썰었다.
목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분리된 머리를 높이 들고 소리쳤다.
“모두 무기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