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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96화 (296/301)

< 외전38. 굴 속으로 (1) >

심우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 쳤는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이었다.

심우민은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금 상황에서 어중간하게 대답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주신 임무를 잘 수행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임무 수행을 잘하기 위해 꼭 내 아들이어야 했다?”

지혁은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으나, 심우민을 정신줄을 놓지 않았다.

“회장님 오해십니다. 제가 왜 회장님 아들만을 생각했겠습니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진심이 나오게 된다.

지혁은 심우민의 행동에 석연치 않은 부분을 느꼈었고.

일부러 정신없이 몰아세워서, 진심을 드러내게 할 생각이었다.

“오해? 내 아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날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데? 결과가 그렇지 않나?”

심우민은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지혁이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그래도 아들은 다르게 생각하시는구나.’

평소의 지혁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회장님,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우민은 지금은 팩트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전계획 수립 과정을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들어보시고 의심 가는 부분이 있으면, 남 단장과 대조해보십시오. 제가 거짓을 말했다면 처벌을 내리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

심우민은 설명을 시작했고, 지혁은 대꾸하지 않고 잠자코 들었다.

청주 쉘터의 정보가 미흡하여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했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계획한 것.

심우민은 일련의 과정을 상세히 말한 뒤.

“가용한 자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낼 방법을 남 단장에게 제안했습니다.”

“······.”

“저는 오시안 대원에게 특임대원 선발전에 참가하라고 종용한 적이 없고.”

지혁은 심우민의 눈만 뚫어지게 보며, 잠자코 들었다.

“작전에 투입할 대원을 최종 선정한 건 남 단장입니다. 전 아이디어만 제시했을 뿐입니다.”

심우민도 말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고, 지혁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회장님.”

“······.”

“내키지 않으면 이 작전을 철회하시면 되고요. 작전을 진행하실 건데 오시안 대원이 걱정되신다면, 다른 아이로 대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고아가 아닌 이상에, 어느 부모가 이런 작전에 아이를 투입하려 하겠는가.

쉘터는 직원과 가족들만 들어왔기에 고아는 있지도 않다.

***

어느 정도 오해는 풀렸으나, 지혁은 심우민의 마지막 말이 거슬렸다.

‘다른 아이로 대신해도 된다고?’

선도그룹의 회장이 어떻게 나올지 보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혹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헷갈렸다.

‘만약 후자라면······.’

다른 사람의 생명으로 대신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줄 아는 사람은 ‘보라색’ 성향밖에 없다.

지혁은 확실하게 물어봤다.

“방금 한 말도 진심이야?”

“뭘 말씀입니까?”

“다른 아이로 대신하라는 거 말이야.”

심우민은 이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진심입니다.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지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만약 너라면 어쩌겠어.”

“······.”

“위험한 척후조 임무를 대신하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해야죠.”

심 대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자살 작전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같은 시기에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서 제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해내야죠.”

지혁은 심우민이 말하던 중에 그의 이마 색을 다시 한번 살폈다.

‘참 묘하단 말이야. 짙은 보라색이었다가, 청자색이었다가.’

말하던 중에 색깔이 일렁였다.

다만, 은은할지라도 분명 청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 심우민이 틀린 소리 하는 건 아니지. 아들 얘기라, 내가 냉정하게 생각 못하는 것일지도.’

심우민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께서 절 의심한다고 하셨죠.”

“······.”

“전 오로지 일이 되는 방향만 생각합니다. 그 외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장실 안에는 잠시간 정적이 흘렀고.

지혁은 고민했다.

제3의 눈 못지않게, 본인의 관찰 능력을 중시한다.

말투와 대화 내용, 눈빛, 호흡, 안색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심우민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고 전무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색을 너무 맹신하는 건 아닐까.’

배신의 색을 보진 못했으나, 결국 안 좋게 끝나버린 일.

‘내가 선입견을 과하게 갖는 것일지도.’

일단, 심우민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난 개인이 아니다.’

쉘터 규율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회장으로서, 내 아들 걱정된다고 계획을 변경하라던가 다른 애를 보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작전계획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 다만.”

지혁은 심우민을 무섭게 바라봤다.

“척후조의 안전 확보 방안을 확실하게 준비하여 보고해라.”

“······.”

“어설프게 했다가는 각오해.”

심우민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

지혁은 결국 최종 승인 했고, 특임대는 작전 준비에 돌입했다.

‘작전명 : 천지(天地)’

‘천지 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며, 작전 투입 대상인 특임대원과 세크 위원들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야이, 새끼야. 누굴 척후조로 한다고? 날 이용해?!’

시안이 척후조로 뽑혔다는 얘기를 듣고, 윤 사장은 심우민의 멱살을 잡고 난리를 쳤지만.

이미 작전 승인이 난 상황.

돌이킬 수는 없었다.

다만, 윤 사장은 오해를 살까 봐, 지혁을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회장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도와준 거뿐이에요. 저 미친 인간에게 이용당할 줄은······.’

‘됐습니다. 심 대리는 자기 일 한 거예요.’

선선히 대답하는 지혁의 모습을 보며, 윤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회장님! 아들 일이잖아요!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심 대리나 회장님이나 둘 다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미친 게 아니냐는 말.

지혁 또한 자신이 일반 직원이었다면, 이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선도그룹의 회장으로서 명분을 생각해야 했다.

물론, 그 뿐만은 아니었지만.

‘결정된 사안 아닙니까. 공개된 장소에서 규칙에 맞게 선발이 되었고······.’

‘오지혁 회장님이 그런 거 신경쓰는 분이셨습니까?’

윤 사장은 지혁을 잘 알기에 납득하지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지혁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고민 많이 했습니다. 진짜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

‘지금 윤 사장님께서는 최대한 남 단장과 심 대리 도와주세요. 작전의 완성도가 높아야 시안이가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윤 사장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인화성에 강한 특수 제작 유니폼, 방검조끼, 블라인드 이어폰, 초감도 위성폰, 초경량 헬멧 등······.

시안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선도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안이는 안전해야 해.’

윤 사장은 시안을 아기 때부터 봐왔으며, 그룹 회장의 아들을 넘어 50만 쉘터민에게 특별한 운명을 가져온 존재인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을 정도로, 시안의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D-day를 하루 앞둔 날.

‘사모님한테는 말씀하셨어요?’

윤 사장은 지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얘기 못 했습니다.’

‘······.’

‘제가 아내한테는 진실하고 싶은데······ 이번엔 차마 솔직하게 얘기 못 하겠더라고요.’

‘이해합니다.’

‘특임대에서 1박 합숙 훈련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시안의 임무는 반나절이면 끝난다.

청주까지의 왕복 시간 포함하여, 하루 안에 끝나고 복귀할 수 있다.

물론, 계획대로 되었을 때 말이다.

***

D-day.

해가 뜨기 전인 이른 아침.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했지만, 남 단장은 시안에게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첫 번째 갈림길.”

“두 번째 통로입니다.”

“두 번째 갈림길.”

“첫 번째 통로입니다.”

“통과 후에 장애물은?”

“철망이 있습니다.”

“철망 해체 방법은?”

시안은 간이 토치를 꺼내어 말했다.

“이걸로 1분 안에 끊어냅니다.”

“그다음 길은 어떻게 되었지?”

“40도 경사로로 내려갑니다.”

.

.

.

.

문답식 확인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쉘터의 환기 통로는 치밀하고 꼼꼼하다.

이를 돌파해 가야 하는 미션은 절대 쉽지 않았다.

“잘 숙지하고 있네.”

“감사합니다.”

남 단장은 그다음으로, 청주 쉘터 진입 후 해야 할 일을 확인했다.

“C 구역으로 나온 후 뭘 해야 하지?”

“재빨리 A, B, C, D 구역의 공기배출구에 연막장치를 연결합니다.”

“완료 시간은?”

“전 구역 모두 30분 내로 끝내고, 복귀합니다.”

남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게 뭐냐?”

“의심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 급하게 한다고 뛰지 마라. 차라리 조금 늦어지는 게 나아.”

“알겠습니다.”

[모두 출동 준비 완료됐습니다!]

지휘실 밖에서 특임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우-

남 단장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오시안 대원.”

“네!”

“절대로 다치지 마라.”

“······.”

“너 다치면 진짜 큰일 나.”

‘시안이에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남 단장을 잠시 떠올려봤다가, 끔찍해서 고개를 저었다.

지혁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안 다칩니다. 무사히 임무 완수하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안은 참 명석하고 용감하다는 거였는데.

나이가 어릴 뿐, 여느 성인 특임대원에게 절대 뒤지지 않았다.

남 단장과 시안은 마지막으로 쉘터 보안 출입구로 나왔다.

극비 작전이라 대원들은 시차를 두고 밖으로 나왔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쉘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수많은 병력이 모여 있었다.

“특임대! 출발!”

남 단장의 명령에 가장 앞장선 지휘자가 크게 소리쳤다.

[행군하라!]

구령과 동시에 특임대는 20명씩 1개 팀으로 뭉쳤고, 시차를 두고 산개대형으로 이동했다.

이동방식은 뜀걸음이었다.

“척후조! 출발하라!”

“네!”

시안을 포함한 척후조 10명과 지휘부.

이들은 오토바이에 2명씩 나눠타고 출발했다.

특임대가 모두 사라진 진 곳.

이 모든 걸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

청주 쉘터에서 1km 정도 떨어진 지점.

수풀 속에 녹색 환기통 하나가 있었는데, 위치를 알지 못하면 찾기 힘들 정도로 잘 숨겨져 있었다.

시안은 그 앞에서 복장을 갖추어 들어갈 준비를 했다.

“불편한 거 없나?”

“네!”

시안은 옷매무새를 살폈다.

점거자들과 맞닥뜨릴 수 있기에 평상복으로 개조한 군복을 입었다.

인화성에 강하며 칼이 뚫지 못하는 옷이다.

남 단장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목소리 잘 들려?”

시안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잘 들립니다.”

“그래, 투입할 준비 해라.”

심우민은 지휘부에 함께 있었다.

작전계획에 관여한 부분이 많아서, 지혁은 수행원인 그를 특임대 지휘부로 파견 근무 보냈다.

“오시안 대원.”

“네.”

시안이 대답하자, 심우민은 힘주어 말했다.

“정신 바짝 차려.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설치 끝내고 돌아와야 해.”

“그래야죠.”

“네 임무가 이 작전의 핵심이라는 거 잊지 마.”

“······네.”

남 단장은 심우민을 못마땅한 듯 바라봤다.

‘조심해서 갔다 오라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한다는 소리가.’

흡-

후우-

시안은 크게 심호흡한 후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보고했다.

“오시안 대원! 준비 완료했습니다.”

척후조와 지휘부.

모두가 긴장된 눈으로 남 단장과 시안을 바라봤다.

남 단장은 눈을 질끈 감은 후, 명령을 내렸다.

“작전 개시.”

시안은 망설임 없이 환기구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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