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35. 어떻게 할 것인가 (2) >
지혁과 세크 위원들은 특임대원 최종 선발을 마쳤다는 보고를 받고, 원형 케이지를 찾았다.
황 실장은 오자마자, 놀라서 눈이 커졌다.
“아들, 여기서 뭐 하냐?”
선발된 특임대원들 사이에 선 황한결을 보고, 황 실장은 황당한 듯 웃다가 순간 인상을 확 굳혔다.
“이노무새끼, 나대지 좀 말라니까. 다리 몽둥이를 확 그냥.”
지혁은 달려들려던 황 실장을 막았다.
“자식한테는 엄하시네요?”
“저 녀석이 자꾸 저를 엄하게 만듭니다.”
황 실장은 남 단장에게 다짜고짜 따졌다.
“단장님, 미성년자 데리고 뭐 하시는 겁니까?”
“아······ 그게.”
세크 위원이자, 한참 회사 선배가 핏대를 세우니 남 단장은 꼼짝 못 했다.
순하고 사람 좋은 황 실장이지만, 아들 일이라 그런지 평소와 달리 공격적이었다.
“정말 적진에라도 투입하시려고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황 실장은 맹랑한 아이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는데, 시안이었다.
“이 안에 갇혀서 맨날 똑같이 살기 싫고요. 바깥바람 좀 쐬고 싶은데. 그러면 안 돼요?”
“하하, 참나.”
황 실장은 한소리 하려다가, 지혁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기가 막혀도, 회장 아들에게 막말을 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 나올 때 순서 있어도, 갈 때 순서는 없다고.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인데요. 내일 죽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뜻이잖아요.”
“야······ 그 뜻이 아니지.”
황 실장은 황당해서 눈을 끔뻑였다.
‘매사에 조심하라고 하신 말씀 같은데, 멋대로 해석해버리네?’
“그리고 지금은 생존의 시대잖아요.”
“······.”
“살고 죽는데, 미성년자가 어딨어요. 속리산 얘기 들어보니까, 노인과 여자, 어린애들부터 당했다고 하던데요.”
“······.”
“어리다고 안전한 곳에 숨는 것보다는 특임대에서 몸을 단련하는 게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시안은 말을 마친 뒤, 입을 꾹 다물었고.
황 실장을 비롯한 이곳에 모인 어른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똑 부러지다 못해, 차갑다.’
‘누구 아들 아니랄까 봐.’
‘12살짜리가 어째 이렇게 주관이 뚜렷해?’
시안은 지혁과 눈이 마주치자 개구쟁이 미소를 보였고.
지혁은 남 단장을 툭 건드린 후, 턱짓으로 아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남 단장, 어떻게 된 거야?”
“특임대원 선발전에 참여했고, 합격했습니다.”
“그게 다야?”
그 외에 편법은 없었냐고 물은 거였는데.
“네. 규칙대로 진행했고, 기준 적격하여 합격했습니다.”
지혁은 남 단장 귀 가까이에서 작게 물었다.
“작전 투입 시킬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지혁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그래, 명예 특임대원으로 하면 되지.’
지혁은 선발된 신임 특임대원들에게 말했다.
“오늘 선발된 거 축하하고, 다들 고생 많았어요. 일단, 해산!”
***
“열외 없습니다!”
특임대원 선발전이 끝난 후, 손정진은 큰 소리로 말했다.
“승진턱 쏠 건데, 빠지시면 저 진짜 서운해할 겁니다. 필참입니다! 필참!”
- 하하, 알았어. 갈게~
- 승진턱 빠지지 말라고 겁주는 건 첨 보네.
- 손정진 목소리가 상당히 커진 거 같아.
- 많이 컸죠?
승진턱으로 세크 위원들과 지혁은 호프집에서 뭉쳤다.
손정진은 잔을 들고 소리쳤다.
“모두 건배하시죠. 제가 선창하면 위하여 외쳐 주세요!”
모두 황당한 얼굴로 손정진을 바라보았는데.
“손정진 이사의 승진을!”
“하하!”
지혁은 큰소리로 웃으며 손정진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얀마, 그 선창을 니가 하면 좀 이상하지 않겠냐?”
“하하. 제가 좀 급했나요?”
“많이 급했다.”
윤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손정진이 목소리만 커진 게 아니라, 얼굴도 두꺼워진 거 같아~”
손정진이 멋쩍은 미소로 머리를 긁적이자, 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었다.
“눈치 없는 예전 팀원을 생각해서, 왕년의 팀장인 제가 건배 제의 하겠습니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키득거렸고.
손정진의 얼굴은 빨개졌다.
윤 사장은 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저는 손정진이 이렇게 유능한 사람인지, 미사일 떨어지고 알았습니다.”
“하하.”
윤 사장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후배가 잘 풀려서 너무 기분 좋습니다. 손정진 이사의 승진을 축하하며 다 같이 건배하시죠.”
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위하여!”
다 함께 잔을 비운 뒤.
손정진은 윤 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이 자리에서는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형이라고 해도 되고~ 너 좋을 대로 해라~”
“하하. 네, 선배님.”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적들은 어디에 있을지 모르고.
핵무기는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압박 속에서 잠깐 미소 지을 수 있는 것.
이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모두 원 없이 마시고 대화하며 필사적으로 즐겼다.
“그때 석궁이 날아가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니깐요.”
“정진아, 혀 꼬였다. 그만 마셔라.”
“에이~ 형님~ 왜 그래요~더 마셔야지.”
오늘의 주인공 손정진은 술을 과하게 마셨으며, 지혁을 형이라 불렀다.
다 함께 취하고 술자리는 무르익어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손정진은 테이블에 엎어져 있고.
허 부사장도 혀가 꼬여서, 전화기만 붙잡고 있을 때.
“회장님.”
여기서 가장 술이 센 윤 사장은 그나마 멀쩡했다.
“네, 선배님.”
지혁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종종 윤 사장을 선배라 부른다.
쭉-
윤 사장은 잔을 비운 뒤,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이다가 결국 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어요?”
“네?”
“잠옷 차림 시신이요.”
“······.”
윤 사장은 고 전무의 죽음을 말하는 거였고, 지혁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특임대원조차도 작전명령 없이는 쉘터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쉘터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인데, 윤 사장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의아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지혁은 부인하지 않았다.
“고 전무 추방되자마자 회장님이 비밀통로로 나가는 거 봤고, 드론 띄웠습니다.”
“그러니까······ 뒤를 밟은 거네요?
“회장님 보호해야 하니까요.”
“······.”
“불사조처럼 행동하시는데, 불사조 아니잖아요.”
쭉-
지혁도 술잔을 비운 후 물었다.
“또 본 사람 있습니까?”
“저만 봤습니다. 드론에 찍힌 영상도 삭제했습니다.”
지혁이 칼을 건네었고, 고 전무가 그 칼로 자결하는 걸 봤다.
지혁은 천천히 말했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
“제가 자주 한 얘기 있죠? 배신자에게 자비는 없다고.”
윤 사장은 피식 웃고는 또 잔을 비웠다.
“비슷한 실수를 하면, 저에게도 그러시겠네요?”
“그런 가정은 하지 마세요.”
지혁은 고 전무 일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고, 큰 글라스에 독주를 가득 채웠다.
윤 사장은 눈시울이 붉어져서 말했다.
“저 고 전무님 좋아하거든요.”
“저도 좋아합니다.”
꿀꺽. 꿀꺽.
지혁은 글라스를 들이켰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아픕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혁은 윤 사장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서운한 일이 있든, 그 말고도 무슨 일이든. 문제가 생기면 꼭 제게 말하세요.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니까.”
“······.”
“배신만 하지 마세요.”
윤 사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하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해?”
남 단장은 ‘청주 쉘터 탈환 작전’을 두고 며칠째 계획을 짜고 있었다.
‘몇 명이 있는지 모르고, 어떤 체계를 가졌는지도 알 수가 없고.’
청주 쉘터 주변에 사람을 심어놓고 계속 관찰 중인데, 그걸로 내부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게다가 쉘터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규모도 짐작이 안 됐다.
‘파악된 건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짐꾼들 나온다는 것뿐인데.’
그걸로 보급 문제를 갖고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으나.
안에 비축분을 얼마나 쌓아놓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
‘섣불리 보급 끊었다가, 시간만 질질 끌 수도 있어.’
지금은 위험하긴 해도 밖에 다닐 수 있지만.
머지않아 밖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거라고 지혁이 말했었다.
‘속도전으로 치러야 한다는 거잖아.’
“단장님.”
함께 고민 중이던 특임팀장이 말했다.
“어차피 보급 때문에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문 열리는 건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
“그 타이밍에 밀고 들어가서, 안에 싹 다 청소해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남 단장이 그 생각을 안 해봤겠는가.
“안에 몇 명이나 있을 줄 알고?”
“많아 봐야 몇천 명 정도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시간이 흘렀잖아. 세를 늘렸을 수도 있어. 만 명이 넘을지도 모른다고.”
“······.”
“쉘터 중에서도 청주는 10만 명 수용이 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큰 편에 속해. 미로 같은 구조는 어떻고.”
남 단장은 한숨을 쉬었다.
“섣불리 공세작전으로 나섰다가, 수렁에 빠질 수 있어.”
그때, 남 단장의 눈에 상황판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심우민이 눈에 들어왔다.
작전계획은 그와 상의하라고 지혁이 말했었지만, 남 단장은 첫 임무를 온전히 본인의 힘으로 하고 싶어서 의견을 구하지 않았었다.
“심 대리님.”
“네, 단장님.”
심우민 또한 그의 심정을 알기에, 모르는 척 기다렸었다.
“혹시 뭐 좋은 생각 없으세요?”
***
심우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요?”
심우민은 남 단장이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자리에 앉았다.
“지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빼낼까를 생각하시잖아요.”
“······.”
“쉘터 안의 사람들이 방어적일 거라고 가정하고 계획을 짜시는데. 그들이 자발적으로 쉘터 밖으로 나오게끔 하면 어떨까요.”
남 단장은 눈을 끔뻑거렸다.
‘말이야 쉽지. 다들 쉘터에 못 들어가서 안달인데, 스스로 나오게 한다고?’
남 단장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심우민은 단호하게 말했다.
“쉘터는 안전하다는 믿음을 깨버리는 겁니다.”
남 단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뭐······ 쉘터 안에다가 불이라도 질러요?”
“바로 그겁니다!”
심우민은 눈을 크게 뜨고 대답한 후, 이어서 설명했다.
“건물에 불나면 서로 먼저 나오려고 안달이잖아요.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거기엔 너무 뻔한 제한사항이 있는데.”
“말씀해보세요.”
남 단장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첫 번째, 그런 짓을 벌이려면 내부자를 만들든가, 혹은 몰래 진입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둘 다 가능성이 없고요.”
심우민은 잠자코 들었다.
“두 번째, 안에다가 불 지르면 어떡해요? 우리는 쫓아내는 것만 목적이 아니잖아요? 미래를 위해 시설을 유지하고 자원을 확보하는 건데.”
심 우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상황 파악을 정확하게 하시네요. 그럼 제가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의구심에 대한 해결책을 드릴까요?”
“해결책이 있다고?!”
남 단장은 눈을 번쩍 뜨고, 심우민의 말에 집중했다.
“첫 번째, 내부자를 만들던가, 적들이 모르게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고요.”
“두 번째, 감쪽같이 속을만한 재난 상황을 연출하면 됩니다.”
남 단장은 황당하여 심우민을 바라봤다.
‘뭐야? 참 쉽게 말하네? 누군가랑 비슷한데.’
남 단장은 순간 지혁을 떠올렸고,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말장난해요? 참나, 난 또 무슨 소리 하나 했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쉘터 설계자부터 만나 보시죠.”
심우민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